책 소개
▣ 출판사서평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 - 크리오요 민족주의의 발현과 원주민, 이주 흑인 노예의 배제
흔히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로 쓰든, 아니면 영어로 쓰든 모두 같은 단어일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인들은 단 한 번도 ''아메리카''를 미국과 동의어로 쓴 적이 없다. 당연히 ''아메리카인''은 미국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포함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지역을 이 책에서는 ''아메리카''로 부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인''(americano)이란 영어가 아니라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사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단어이다. 1807~08년, 다시 말해 나폴레옹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침공해 아메리카에 중대한 변화가 조성된 시기에 ''아메리카인''이라고 하면 흔히 백인만을 의미했다. 그러나 유혈 진압으로 소요가 가라앉는 1825년에 이르면 아메리카인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때 아메리카인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 아프리카인, 그리고 혼혈인까지 아우르는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1780년대 페루의 투팍 아마루 반란이나 1790년대 생도맹그(현재의 아이티)의 노예 봉기를 발판으로 181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된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베리아 반도 점령에 가장 먼저 항거한 리오데라플라타(현재의 아르헨티나), 시몬 볼리바르의 활약이 두드러진 누에바그라나다(현재의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인적ㆍ물적 피해가 가장 컸던 누에바에스파냐(현재의 멕시코), 그리고 유혈투쟁의 양상이 덜 심각했던 브라질 등 네 지역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누에바에스파냐의 사례가 예증하듯이, 초창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원주민들의 참여가 돋보였지만 곧 이들의 봉기가 좌절된 뒤 식민 당국의 반(反)혁명이 얼마간 지속되었고 결국 독립은 정치체제의 제한적인 변화를 바라는 안정 지향적인 크리오요(criollo, 아메리카 태생의 백인 / 영어식 표현으로는 ''크리올'')들의 주도로 성취되었다. 어디서나 독립투쟁은 지배 세력인 페닌술라르(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백인)와 크리오요 간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특징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지적한 대로 크리오요 민족주의의 발현과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 노예들의 배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크리오요의 독립투쟁은 페닌술라르의 권력을 획득하려는 투쟁에서 점차 유럽 혈통과 아프리카 혈통이 섞인 파르도(pardo)가 에스파냐인의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보수적인 혁명으로 변모했다. 앞서 1790년대에 투생 루베르튀르의 지휘 아래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서 발생한 ''흑인 혁명''같이 급진적인 대중 봉기와 인종 갈등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훔볼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귀족들은 아메리카 출신 하층민의 통치보다 외국인의 지배를 선호"했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도 「앙고스투라 의회 연설」(1819)에서 크리오요의 복잡한 형편과 이중적 갈등을 "우리는 유럽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메리카 원주민도 아닙니다. 우리는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의 혼혈입니다. 태생으로는 아메리카인이며 법적으로는 유럽인인 우리는 원주민과 소유권을 놓고 다투어야 하고 우리가 태어난 곳에서 살기 위해 침략자에 맞서 투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분리를 이뤄냈지만 각 지역의 독립투쟁은 아메리카의 경제적 기반을 뒤흔들 만큼 엄청난 손실과 희생을 초래했다. 광산과 대농장의 생산량은 독립투쟁 이전과 비교해 3분의 1에 불과했다. 또한 유럽이 상대적 안정기에 접어든 1820년대에 독립하게 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로서는 신생 공화국 미국이 1790년대에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 이득의 기회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더해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 노예들을 배제한 채 크리오요 엘리트층이 주도한 라틴아메리카의 탈식민화는 국가의 독립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걸출한 개인과 집단 차원의 독립으로 여겨졌다.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가장 큰 공헌 -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
오늘날 아메리카는 서양과 그 밖의 다른 지역 간의 경계에 다소 모호하게 서 있다. 아메리카인들은 언어, 종교, 물질문화, 정치적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압도적으로 서양적이다. 대다수 아메리카인들은 순수한 유럽인 혈통을 계승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사회 또한 유럽적 전통의 토대 위에서만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명백하게도 라틴아메리카의 다인종국가들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자유주의적 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하? 있다. 다인종 국가를 사회적으로 통합된 공화국으로 만들고 모든 이들에게 시민권의 충분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오래 지속되어온 투쟁이었고 여전히 결코 끝나지 않은 라틴아메리카의 과업이다. 아메리카인들은 자유주의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가파르고 장애물이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들의 독립투쟁은 서양의 정치적 가치들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과정은 이런 가치들의 혁명적 잠재력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이한 전통에 따라 형성된 사회에 전파되었을 때 어떤 저항을 유발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가장 큰 공헌은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이었다. 아메리카의 인민주권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서양의 식민통치가 막바지에 다다르던 1945년에 전 세계적 탈식민화의 최우선 원칙으로 명시되었던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존 찰스 채스틴
John Charles Chasteen
197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그린즈버러 캠퍼스)을 졸업하고, 1988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채플 힐 캠퍼스)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루과이의 군사ㆍ정치 지도자로 활동한 사라비아 형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채플 힐 캠퍼스)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세기 라틴아메리카, 특히 브라질과 리오데라플라타 지역의 정치문화와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와 문화적 정체성에 주목한 그의 저서로는 『말을 탄 영웅들: 마지막 가우초 카우디요들의 시대』(1995), 『민족의 리듬, 아프리카적 근원: 라틴아메리카 대중 댄스의 역사』(2004), 『피와 불 속에서 탄생하다: 라틴아메리카 약사(略史)』(제3판, 2011) 등이 있다. 또한 번역가로서도 유명한 그는 툴리오 알페린 동기의 『라틴아메리카 현대사』(1993), 에르마누 비안나의 『삼바의 신비: 브라질의 대중음악과 국민 정체성』(1999) 등을 번역ㆍ출판했다.
저자 : 박구병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 사학과에서 (James W. Wilkie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0세기 라틴아메리카 정치사,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 미국 내 라티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아주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제3세계의 역사와 문화』(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7), 『세계화 시대의 서양현대사』(공저, 아카넷, 2010)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공역, 그린비, 2008) 등이 있다. 그리고 논문으로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선린정책’과 멕시코의 석유 국유화」(2007), 「세사르 차베스의 변모」(2011) 등이 있다.
저자 : 이성형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석사ㆍ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에 관한 연구서를 네 권 출간했고 최근의 지정학적 변동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다. 현재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대홍수: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그린비, 2009),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민족주의』(도서출판 길, 2009)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멕시코 혁명과 영웅들』(까치, 2006), 『라틴아메리카, 미국, 세계』(공역, 까치, 2010) 등이 있다.
저자 : 최해성
1964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 스페인어문학과에서 학사ㆍ석사과정을 마치고, 같은 대학교 역사지리학부 현대사학과에서 (Juan Carlos Pereira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페인내전과 한국전쟁의 비교 연구에 몰두했고, 19세기 초 스페인 자유주의와 라틴아메리카 독립 운동의 상호작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B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Corea interior, Corea exterior(공저, Madrid, 2008)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스페인 내전의 국제사적 고찰」(2006), 「스페인 독립전쟁과 자유주의의 태동」(2009) 등이 있다.
저자 : 황보영조
1963년 강원도 철암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스페인 근현대사, 특히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체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대중독재』(공저, 책세상, 2004),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공저, 휴머니스트, 2005),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공저, 한길사, 2005)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히스패닉 세계』(공역, 새물결, 2003), 『대중의 반역』(역사비평사, 2005), 『전쟁의 패러다임』(까치, 2008), 『세계사 특강』(삼천리, 2010) 등이 있다. 그리고 논문으로는 「스페인 내전 연구의 흐름과 전망」(2002), 「프랑코 체제와 대중」(2004)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등장인물
부왕
주요 등장인물
연표
머리말 왜 ''아메리카노''인가
제1장 아메리카의 발견 1799~1805년
제2장 군주정의 기둥들 1806~10년
제3장 야만적인 내전 1810~12년
제4장 독립운동의 패배? 1812~15년
제5장 독립의 성취 1816~24년
제6장 국가 건설이 시작되다 1825~40년
에필로그 유산이 지속되다
용어해설
출처와 읽을거리
옮긴이의 말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파노라마
찾아보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 - 크리오요 민족주의의 발현과 원주민, 이주 흑인 노예의 배제
흔히 ''아메리카''는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로 쓰든, 아니면 영어로 쓰든 모두 같은 단어일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라틴아메리카인들은 단 한 번도 ''아메리카''를 미국과 동의어로 쓴 적이 없다. 당연히 ''아메리카인''은 미국인을 의미하지 않는다. 에스파냐와 포르투갈의 식민지를 포함해 오늘날 라틴아메리카에 해당하는 지역을 이 책에서는 ''아메리카''로 부르고 있다. 마찬가지로 ''아메리카인''(americano)이란 영어가 아니라 에스파냐어나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사람을 의미하게 된다.
사실 ''아메리카''와 ''아메리카인''은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을 이해하는 데 가장 핵심적인 단어이다. 1807~08년, 다시 말해 나폴레옹이 포르투갈과 에스파냐를 침공해 아메리카에 중대한 변화가 조성된 시기에 ''아메리카인''이라고 하면 흔히 백인만을 의미했다. 그러나 유혈 진압으로 소요가 가라앉는 1825년에 이르면 아메리카인은 완전히 다른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때 아메리카인은 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원주민, 아프리카인, 그리고 혼혈인까지 아우르는 넓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1780년대 페루의 투팍 아마루 반란이나 1790년대 생도맹그(현재의 아이티)의 노예 봉기를 발판으로 181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된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이베리아 반도 점령에 가장 먼저 항거한 리오데라플라타(현재의 아르헨티나), 시몬 볼리바르의 활약이 두드러진 누에바그라나다(현재의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 인적ㆍ물적 피해가 가장 컸던 누에바에스파냐(현재의 멕시코), 그리고 유혈투쟁의 양상이 덜 심각했던 브라질 등 네 지역으로 대별해볼 수 있다. 누에바에스파냐의 사례가 예증하듯이, 초창기 라틴아메리카의 독립투쟁은 원주민들의 참여가 돋보였지만 곧 이들의 봉기가 좌절된 뒤 식민 당국의 반(反)혁명이 얼마간 지속되었고 결국 독립은 정치체제의 제한적인 변화를 바라는 안정 지향적인 크리오요(criollo, 아메리카 태생의 백인 / 영어식 표현으로는 ''크리올'')들의 주도로 성취되었다. 어디서나 독립투쟁은 지배 세력인 페닌술라르(이베리아 반도 출신의 백인)와 크리오요 간의 대립으로 나타났다. 그런 점에서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특징은 베네딕트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지적한 대로 크리오요 민족주의의 발현과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 노예들의 배제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크리오요의 독립투쟁은 페닌술라르의 권력을 획득하려는 투쟁에서 점차 유럽 혈통과 아프리카 혈통이 섞인 파르도(pardo)가 에스파냐인의 권력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보수적인 혁명으로 변모했다. 앞서 1790년대에 투생 루베르튀르의 지휘 아래 프랑스 식민지 생도맹그에서 발생한 ''흑인 혁명''같이 급진적인 대중 봉기와 인종 갈등이 재현되지 않을까 하는 공포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훔볼트에 따르면, "베네수엘라의 귀족들은 아메리카 출신 하층민의 통치보다 외국인의 지배를 선호"했다.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도 「앙고스투라 의회 연설」(1819)에서 크리오요의 복잡한 형편과 이중적 갈등을 "우리는 유럽인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메리카 원주민도 아닙니다. 우리는 원주민과 에스파냐인의 혼혈입니다. 태생으로는 아메리카인이며 법적으로는 유럽인인 우리는 원주민과 소유권을 놓고 다투어야 하고 우리가 태어난 곳에서 살기 위해 침략자에 맞서 투쟁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정치적 분리를 이뤄냈지만 각 지역의 독립투쟁은 아메리카의 경제적 기반을 뒤흔들 만큼 엄청난 손실과 희생을 초래했다. 광산과 대농장의 생산량은 독립투쟁 이전과 비교해 3분의 1에 불과했다. 또한 유럽이 상대적 안정기에 접어든 1820년대에 독립하게 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로서는 신생 공화국 미국이 1790년대에 누릴 수 있었던 경제적 이득의 기회를 포착하기 어려웠다. 여기에 더해 원주민이나 이주 흑인 노예들을 배제한 채 크리오요 엘리트층이 주도한 라틴아메리카의 탈식민화는 국가의 독립이라기보다는 여전히 걸출한 개인과 집단 차원의 독립으로 여겨졌다.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가장 큰 공헌 -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
오늘날 아메리카는 서양과 그 밖의 다른 지역 간의 경계에 다소 모호하게 서 있다. 아메리카인들은 언어, 종교, 물질문화, 정치적 가치의 측면에서 볼 때 압도적으로 서양적이다. 대다수 아메리카인들은 순수한 유럽인 혈통을 계승하지도 않았고 그들의 사회 또한 유럽적 전통의 토대 위에서만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명백하게도 라틴아메리카의 다인종국가들은 오늘날 전 세계에서 가장 견고한 자유주의적 공화국으로 자리매김하? 있다. 다인종 국가를 사회적으로 통합된 공화국으로 만들고 모든 이들에게 시민권의 충분한 혜택을 부여하는 것은 오래 지속되어온 투쟁이었고 여전히 결코 끝나지 않은 라틴아메리카의 과업이다. 아메리카인들은 자유주의적 이상을 추구하면서 가파르고 장애물이 많은 길을 걸어왔다. 그들의 독립투쟁은 서양의 정치적 가치들을 전 세계로 확대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 과정은 이런 가치들의 혁명적 잠재력뿐만 아니라 그것이 상이한 전통에 따라 형성된 사회에 전파되었을 때 어떤 저항을 유발하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아울러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가장 큰 공헌은 탈식민 세계의 주권을 확립한 것이었다. 아메리카의 인민주권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 서양의 식민통치가 막바지에 다다르던 1945년에 전 세계적 탈식민화의 최우선 원칙으로 명시되었던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존 찰스 채스틴
John Charles Chasteen
1978년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그린즈버러 캠퍼스)을 졸업하고, 1988년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채플 힐 캠퍼스)에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우루과이의 군사ㆍ정치 지도자로 활동한 사라비아 형제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부터 현재까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채플 힐 캠퍼스)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19세기 라틴아메리카, 특히 브라질과 리오데라플라타 지역의 정치문화와 대중문화를 연구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민족주의와 문화적 정체성에 주목한 그의 저서로는 『말을 탄 영웅들: 마지막 가우초 카우디요들의 시대』(1995), 『민족의 리듬, 아프리카적 근원: 라틴아메리카 대중 댄스의 역사』(2004), 『피와 불 속에서 탄생하다: 라틴아메리카 약사(略史)』(제3판, 2011) 등이 있다. 또한 번역가로서도 유명한 그는 툴리오 알페린 동기의 『라틴아메리카 현대사』(1993), 에르마누 비안나의 『삼바의 신비: 브라질의 대중음악과 국민 정체성』(1999) 등을 번역ㆍ출판했다.
저자 : 박구병
1966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LA) 사학과에서 (James W. Wilkie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20세기 라틴아메리카 정치사,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의 관계, 미국 내 라티노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현재 아주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제3세계의 역사와 문화』(공저, 한국방송통신대학교출판부, 2007), 『세계화 시대의 서양현대사』(공저, 아카넷, 2010)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라틴아메리카의 근대를 말하다』(공역, 그린비, 2008) 등이 있다. 그리고 논문으로는 「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선린정책’과 멕시코의 석유 국유화」(2007), 「세사르 차베스의 변모」(2011) 등이 있다.
저자 : 이성형
1959년 부산에서 태어나 부산대 회계학과를 졸업했다.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석사ㆍ박사학위를 받았으며,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에 관한 연구서를 네 권 출간했고 최근의 지정학적 변동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다. 현재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대홍수: 라틴아메리카 신자유주의 20년의 경험』(그린비, 2009), 『라틴아메리카의 문화적 민족주의』(도서출판 길, 2009)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멕시코 혁명과 영웅들』(까치, 2006), 『라틴아메리카, 미국, 세계』(공역, 까치, 2010) 등이 있다.
저자 : 최해성
1964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어서문학과를 졸업했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 스페인어문학과에서 학사ㆍ석사과정을 마치고, 같은 대학교 역사지리학부 현대사학과에서 (Juan Carlos Pereira 교수의 지도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페인내전과 한국전쟁의 비교 연구에 몰두했고, 19세기 초 스페인 자유주의와 라틴아메리카 독립 운동의 상호작용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현재 서울대 서어서문학과 BK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Corea interior, Corea exterior(공저, Madrid, 2008) 등이 있고, 논문으로는 「스페인 내전의 국제사적 고찰」(2006), 「스페인 독립전쟁과 자유주의의 태동」(2009) 등이 있다.
저자 : 황보영조
1963년 강원도 철암에서 태어나 서울대 서양사학과를 졸업했다. 같은 대학교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한 뒤, 스페인 마드리드 콤플루텐세 대학에서 역사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북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스페인 근현대사, 특히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 체제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저서로 『대중독재』(공저, 책세상, 2004), 『대중독재의 영웅 만들기』(공저, 휴머니스트, 2005),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공저, 한길사, 2005) 등이 있으며, 역서로는 『히스패닉 세계』(공역, 새물결, 2003), 『대중의 반역』(역사비평사, 2005), 『전쟁의 패러다임』(까치, 2008), 『세계사 특강』(삼천리, 2010) 등이 있다. 그리고 논문으로는 「스페인 내전 연구의 흐름과 전망」(2002), 「프랑코 체제와 대중」(2004)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등장인물
부왕
주요 등장인물
연표
머리말 왜 ''아메리카노''인가
제1장 아메리카의 발견 1799~1805년
제2장 군주정의 기둥들 1806~10년
제3장 야만적인 내전 1810~12년
제4장 독립운동의 패배? 1812~15년
제5장 독립의 성취 1816~24년
제6장 국가 건설이 시작되다 1825~40년
에필로그 유산이 지속되다
용어해설
출처와 읽을거리
옮긴이의 말 라틴아메리카 독립투쟁의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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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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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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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