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문화의 해석』의 저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에서의 현지조사와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농업, 환경, 경제 발전의 인과관계를 규명한 책.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농업환경과 네덜란드 식민지경제 체제가 만나 경제 발전 및 문화에 미친 영향과 그 결과를 분석하였다. 책에서 그가 처음 사용한 ‘involution’ 개념은 이후 인문ㆍ사회과학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분석틀이 되었다. 전북대학교
20세기 문화인류학계의 대표적 학자, 기어츠의 두 번째 번역서
이 책의 저자인 클리퍼드 기어츠는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인류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열다섯 편의 논문을 모은 저서 『문화의 해석』은 발표된 후 인류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철학, 역사학, 교육학, 심지어 지리학에 이르기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상징인류학 또는 해석인류학이라 불리는 그의 이론은 문화를 상징과 의미의 체계로 보고, 어떤 행위의 다양한 의미를 그 행위가 일어난 맥락을 ‘두텁게 기술thick description’함으로써 밝혀내고자 한다. 그래야만 그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어 인간들 간의 의사소통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로 종교, 상징, 의미 해석에 관심을 두었던 기어츠의 주된 연구 경향을 보았을 때 『농업의 내향적 경제화』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농업, 환경, 경제 발전을 주제로 삼아 경험적 자료에 기초하여 인과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인도네시아는 그가 행한 세 번의 장기 현지조사 중 첫 번째 현지조사를 진행한 지역으로, 기어츠는 이곳에서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총 네 권의 책을 펴내었다. 또 인도네시아에 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의 해석』에 실린 논문들을 집필하였다.
현재 동남아시아 연구 저작들 중 영향력 있는 저서의 하나로 손꼽히는 『농업의 내향적 경제화』는 인도네시아 연구서로서뿐만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인 ‘involution’을 문화를 분석하는 데 처음으로 적용했다는 면에서 학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책이다.
‘involution’의 개념
이 책의 원제이며 기어츠 주장의 핵심인 ‘involution’은 원래 알렉산더 골든와이저가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기어츠는 이 책에서 이를 “기존에 확립된 형태가 과도하게 이용되면서 세부요소의 내향적인 정교화를 거쳐 고정된 상태”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기존 형태가 상이한 구조의 형태로 변환하지 않고 원래의 특성을 활용하여 기존 형태를 변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involu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기 파괴적 과정’, ‘변화 없는 변화’, ‘정적인 확장’ 등의 표현으로 알 수 있듯이 ‘involution’은 ‘퇴화’의 의미도 담고 있다. 기어츠가 인벌루션 과정을 거친 인도네시아 경제를 “상실된 기회의 모음집이며 낭비된 가능성의 저장소”라고 표현하며 인도네시아가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그 과정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옮긴이는 ‘involution’을 밖으로 뻗어나간 것이 아닌, 안으로 파고들어간 정교화 과정, 즉 ‘내향적 정교화’라고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기어츠는 인도네시아 경제의 어떠한 면을 보고 경제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데 ‘내향적 정교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을까?
이 책의 내용
기어츠는 인도네시아의 생태적 특징을 검토하는 데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인간의 문화는 그 문화가 존재하는 환경과 분리하여 설명할 수 없다. 에스키모의 이글루, 인도네시아 자바의 테라스식 논은 그 환경에 알맞게 형성된 물질문화 요소이자 거주유형, 가족구조, 노동조직 양식, 마을 구조의 형식, 사회계층화 등의 문화요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기어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크게 내인도네시아와 외인도네시아로 나뉜다. 내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거의 3분의 2가 모여 사는 자바의 북서부, 중부, 동부 및 발리 남부, 롬복 서부 지역이다. 외인도네시아는 외곽 도서의 나머지 부분과 자바 남서부 지역이다. 이 두 지역을 나누는 기준은 생태계의 차이이다. 내인도네시아는 수도작농업 중심, 외인도네시아는 화전농경 중심이다. 외인도네시아는 열대림과 아열대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주민들이 화전농경으로 살아 왔다. 화전농경은 열대림 생태계에 적합한 농경방식으로 보이지만 아열대 지역으로 갈수록, 그리고 인간의 문화적ㆍ사회적ㆍ심리적 변수에 따라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농경방식이다.
내인도네시아는 벼농사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을 가진 곳으로서, 테라스식 논을 일컫는 ‘사와’가 발달한 지역이다. 수도작은 기본적으로 화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인구와 훨씬 더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도랑을 파고, 보를 만들고, 논을 고르고 논둑을 쌓아야 한다. 관개체계를 발달시키고 유지하며 경작기술을 보다 면밀하게 고안해 나가면서 생산량을 조금씩 향상시킴으로써 노동력을 어느 정도까지 계속 흡수해 나갈 수 있다. 비탄력적이고 분산적인 특성을 지닌 화전농경과 팽창적이고 집중적인 특성을 지닌 수도작농경은 인구 증가라는 변수에 대하여 당연히 상반되게 반응하였다. 내인도네시아에서 발달한 사와 체계는 20세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자바 인구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같은 환경문화적 배경하에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후 농업의 발전 방향이 결정되었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철저하게 농산물 생산지로 한정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값싸게 농산물을 사들여 그 가공품을 비싸게 팔아 차익을 얻고자 하였다. 내인도네시아의 경작체계는 바로 이러한 체계에 맞추어 형성되었다. 기후적 특성으로 인해 사와에서는 쌀농사와 함께 일년생 식물(사탕수수, 인디고, 담배)을 경작할 수 있었다. 논이 많아지고 관개시설이 향상될수록 더 많은 벼를 재배하고 더 많은 사탕수수를 경작하게 되었다. 쌀의 생산량이 늘어나면 더 많은 인구가 먹고살 수 있었고, 늘어난 인구는 다시 사탕수수 경작에 투입되었다. 네덜란드 식민정부는 사탕수수 재배에서 농민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고, 농민은 더욱더 쌀농사에 집중되었다.
쌀농사를 짓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커피, 차, 후추 등 다년생 식물의 재배가 이루어졌다. 특히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였던 커피는 반숙련 노동력을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식으로 재배되었기 때문에, 커피 경작체계는 커피농장 그리고 농장 안 또는 주변에 거주하는 노동자로 구성되었다. 커피는 화전, 특히 산비탈의 화전에서도 재배할 수 있어서 간작間作 작물로 안성맞춤이었고, 점차 소토지 자작농에게까지 확대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커피는 네덜란드 농장의 수출작물이었고, 거의 전적으로 강제노동에 기초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인들의 생계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주요 수출품목으로서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된 일년생 식물과 다년생 식물은 네덜란드 경제의 일부가 되었고, 다수의 자바인들은 더욱더 쌀농사에 내몰려졌다. 그들에게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지만, 사탕수수 재배는 생태적 조건을 쌀 경작에 더욱 적합하게 개선함으로써 높은 인구밀도, 높은 ‘사와화’, 높은 생산성을 모두 만족시켰다. 쌀농사가 점점 더 노동집약적이 되어가자 이들은 육묘, 이앙, 정지작업, 모심기와 제초, 수확도구, 화산 주변에 새로운 농지를 개간하는 등, 정교하고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1900년경 이후 밭작물 경작 확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와의 생산성이 높아지자 전체적으로 생활수준이 안정되거나 매우 조금씩 상승하는 특징을 띠게 되었다. 사와 체계는 일인당 수입이 크게 하락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한 사람을 더 일하게 함으로써 일정 수준의 한계노동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서구의 침투가 야기한 추가 인구의 거의 전부를 최소한 간접적으로 빨아들일 수 있었다. 이처럼 궁극적으로 자기파괴적인 과정을 기어츠는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agricultural involution’라고 명명하였다.
이 같은 과정이 계속되자 자바 농업사회는 다른 많은 ‘저발전된’ 국가에서 나타난 양상과 달리 대토지 소유집단과 농노에 가까운 억압받는 집단으로 분화하는 대신, 경제적 파이를 점점 더 많은 수의 조각으로 나눔으로써 ‘빈곤을 공유’하였다. 반면 외인도네시아에서는 커피, 고무, 담배 등 수출작물 재배가 늘어가면서 소토지자작농의 비율도 높아졌다. 대다수 자바 농민이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 공유된 빈곤, 사회적 순응, 문화적 모호함을 향해 나아갈 때, 소수의 외곽 도서 농민은 농업 전문화, 노골적인 개인주의, 사회갈등, 문화적 합리화를 향해 움직였다.
기어츠는 이것이 인도네시아 농업이 근대화의 길을 걷지 못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일본은 산업 부문이 발전하면서 농업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게 되자 농업 부문의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었고, 농업 부문의 인구가 산업 부문으로 옮겨 가면서 서로 역동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농업 부문의 번영을 네덜란드가 가져갔다. 농민들은 활력을 빼앗겼고, 인도네시아의 토착 제조업 체계에 투자될 농업생산성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농장 부문으로 자본 투입이 증가한 반면, 농민 부문으로 노동 투입이 증가하자 중간적 산업활동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두 부문은 문화적ㆍ사회적ㆍ기술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1956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는 시험대에 섰다. 농장 부문과 농민 부문으로 나뉜 이중경제 체제, 성장과 거리가 먼 농업의 내향적 경제화 상태, 혼란스런 정치상황 등 ?대화를 이루기 위해 나아갈 길에 맞닥뜨릴 장애물이 수없이 많다. 기어츠는 이제 생태적ㆍ경제적 과정에 대한 분석을 뛰어넘어 국가의 정치적ㆍ사회적ㆍ문화적 역동성을 연구해야 할 때라고 말하며 글을 끝맺는다.
이 책의 의의
1963년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학계에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측은 문화적 분석에 환경을 핵심요소로 포함한 점, 역사적ㆍ정치적ㆍ경제적ㆍ생물학적ㆍ지리적ㆍ문화적ㆍ사회적 자료를 능숙하게 통합한 점,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매우 정교하게 분석한 점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반면 비판적인 측에서는 기어츠의 연구가 현실 적합성이 없으며,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역사적 현실의 일부를 전체인 양 왜곡한다고 평가하였다. 기어츠 스스로도 “[이 책은] 찬미되고 조롱되었으며, 이용되고 오용되었고, 열정적으로 분석되고 막연하게 언급되었다”라고 할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개념인 ‘involution’은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학자들이 각자의 연구에 알맞은 의미로 사용하는 등 매우 유용한 개념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involution’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기어츠는 이 책을 쓸 당시 근대화론적 관점으로 인도네시아 농업 경제 발전을 검토하였다. 그는 농업의 내향적 경제화로 인하여 농업의 특화, 개인주의, 사회적 갈등, 문화적 합리화 같은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능하게 할 변인이 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근대화론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서 이러한 관점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서구적 근대화가 아니라 빈부격차, 환경파괴, 삶의 질과 같은 기준에서 본다면 과연 인도네시아 사회가 ‘퇴화’했다고 볼 수 있을까? 기어츠 역시 20여 년 후 자바 농업에 대한 글에서 ‘involution’ 개념을 정리하면서 ‘퇴화’보다는 ‘복잡화’라는 측면을 강조하였다. 이후 많은 인류학적 연구들에서도 ‘퇴화’보다는 ‘정교화’라는 의미로 ‘involution’을 사용하였다.
현재 자바 농촌은 기어츠가 서술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논의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이 책을 쓸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경제 변화를 연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involution’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며, 현재의 자바 농촌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분석틀을 제시해 준다. 더 나아가 기어츠가 ‘involution’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인문ㆍ사회과학 분야의 분석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음은 명확한 사실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클리퍼드 기어츠
안티오크 칼리지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교 사회관계학과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여 195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몇 개 대학의 교수 및 특별연구원을 거친 후 시카고 대학교의 교수로 10년간 재직하였다. 1970년부터 2006년 작고할 때까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의 사회과학 교수로서 학문 활동을 계속하였다. 상징인류학과 해석인류학 분야의 선진적 이론가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저작으로는 『자바의 종교The Religion of Java』(1960), 『문화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1973), 『느가라Negara』(1980), 『작품과 생애: 작가로서의 인류학자Works and Lives: The Anthropologist as Author』(1988) 등이 있다.
역자 : 김형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다. 인도네시아 사회문화와 종교에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인도네시아 이슬람 조직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Reformist Muslims in a Yogyakarta Village(2007), 『적도를 달리는 남자: 어느 문화인류학자의 인도네시아 깊이 읽기』(2012)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대중문화를 통한 한국이미지의 형성과 소비: 인도네시아 네티즌의 사례」(2008),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급진주의」(2009), “Praxis and Religious Authority in Islam”(2010)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감사의 글
제1부 이론적이고 사실에 기반한 출발점
제1장 인류학 내의 생태적 접근
전통적 접근의 한계|문화생태학
제2장 두 가지 형태의 생태계
내인도네시아 vs. 외인도네시아|화전|사와
제2부 유형의 구체화
제3장 고전기
제4장 식민시기: 기초
회사|경작체계
제5장 식민시기: 번영기
기업농장체계|외인도네시아의 발전
제3부 결과
제6장 비교와 전망
현재의 상황|자바와 일본|미래의 개관
후주
참고문헌
옮긴이 해설
찾아보기
『문화의 해석』의 저자 클리퍼드 기어츠가 인도네시아에서의 현지조사와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농업, 환경, 경제 발전의 인과관계를 규명한 책.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농업환경과 네덜란드 식민지경제 체제가 만나 경제 발전 및 문화에 미친 영향과 그 결과를 분석하였다. 책에서 그가 처음 사용한 ‘involution’ 개념은 이후 인문ㆍ사회과학 분야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분석틀이 되었다. 전북대학교
20세기 문화인류학계의 대표적 학자, 기어츠의 두 번째 번역서
이 책의 저자인 클리퍼드 기어츠는 20세기 중반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문화인류학자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고 있다. 열다섯 편의 논문을 모은 저서 『문화의 해석』은 발표된 후 인류학뿐만 아니라 사회학, 철학, 역사학, 교육학, 심지어 지리학에 이르기까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상징인류학 또는 해석인류학이라 불리는 그의 이론은 문화를 상징과 의미의 체계로 보고, 어떤 행위의 다양한 의미를 그 행위가 일어난 맥락을 ‘두텁게 기술thick description’함으로써 밝혀내고자 한다. 그래야만 그 문화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어 인간들 간의 의사소통의 세계가 넓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주로 종교, 상징, 의미 해석에 관심을 두었던 기어츠의 주된 연구 경향을 보았을 때 『농업의 내향적 경제화』는 독특한 위치에 있는 책이다. 이 책에서 그는 농업, 환경, 경제 발전을 주제로 삼아 경험적 자료에 기초하여 인과관계를 규명하고자 한다. 인도네시아는 그가 행한 세 번의 장기 현지조사 중 첫 번째 현지조사를 진행한 지역으로, 기어츠는 이곳에서의 연구 결과를 가지고 총 네 권의 책을 펴내었다. 또 인도네시아에 대한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문화의 해석』에 실린 논문들을 집필하였다.
현재 동남아시아 연구 저작들 중 영향력 있는 저서의 하나로 손꼽히는 『농업의 내향적 경제화』는 인도네시아 연구서로서뿐만 아니라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유용한 개념인 ‘involution’을 문화를 분석하는 데 처음으로 적용했다는 면에서 학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가진 책이다.
‘involution’의 개념
이 책의 원제이며 기어츠 주장의 핵심인 ‘involution’은 원래 알렉산더 골든와이저가 처음 주창한 개념이다. 기어츠는 이 책에서 이를 “기존에 확립된 형태가 과도하게 이용되면서 세부요소의 내향적인 정교화를 거쳐 고정된 상태”를 지시하는 개념으로 정의한다.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여 기존 형태가 상이한 구조의 형태로 변환하지 않고 원래의 특성을 활용하여 기존 형태를 변형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변화하는 과정을 ‘involution’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자기 파괴적 과정’, ‘변화 없는 변화’, ‘정적인 확장’ 등의 표현으로 알 수 있듯이 ‘involution’은 ‘퇴화’의 의미도 담고 있다. 기어츠가 인벌루션 과정을 거친 인도네시아 경제를 “상실된 기회의 모음집이며 낭비된 가능성의 저장소”라고 표현하며 인도네시아가 경제 발전을 이루는 데 그 과정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옮긴이는 ‘involution’을 밖으로 뻗어나간 것이 아닌, 안으로 파고들어간 정교화 과정, 즉 ‘내향적 정교화’라고 번역하였다. 그렇다면 기어츠는 인도네시아 경제의 어떠한 면을 보고 경제 발전 과정을 설명하는 데 ‘내향적 정교화’라는 개념을 사용하였을까?
이 책의 내용
기어츠는 인도네시아의 생태적 특징을 검토하는 데에서 이 책을 시작한다. 인간의 문화는 그 문화가 존재하는 환경과 분리하여 설명할 수 없다. 에스키모의 이글루, 인도네시아 자바의 테라스식 논은 그 환경에 알맞게 형성된 물질문화 요소이자 거주유형, 가족구조, 노동조직 양식, 마을 구조의 형식, 사회계층화 등의 문화요소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기어츠에 따르면, 인도네시아는 크게 내인도네시아와 외인도네시아로 나뉜다. 내인도네시아는 전체 인구의 거의 3분의 2가 모여 사는 자바의 북서부, 중부, 동부 및 발리 남부, 롬복 서부 지역이다. 외인도네시아는 외곽 도서의 나머지 부분과 자바 남서부 지역이다. 이 두 지역을 나누는 기준은 생태계의 차이이다. 내인도네시아는 수도작농업 중심, 외인도네시아는 화전농경 중심이다. 외인도네시아는 열대림과 아열대림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주민들이 화전농경으로 살아 왔다. 화전농경은 열대림 생태계에 적합한 농경방식으로 보이지만 아열대 지역으로 갈수록, 그리고 인간의 문화적ㆍ사회적ㆍ심리적 변수에 따라 생태계를 파괴할 수도 있기 때문에 매우 제한적인 농경방식이다.
내인도네시아는 벼농사에 적합한 기후와 토양을 가진 곳으로서, 테라스식 논을 일컫는 ‘사와’가 발달한 지역이다. 수도작은 기본적으로 화전보다 훨씬 더 많은 인구와 훨씬 더 높은 기술력을 필요로 한다. 도랑을 파고, 보를 만들고, 논을 고르고 논둑을 쌓아야 한다. 관개체계를 발달시키고 유지하며 경작기술을 보다 면밀하게 고안해 나가면서 생산량을 조금씩 향상시킴으로써 노동력을 어느 정도까지 계속 흡수해 나갈 수 있다. 비탄력적이고 분산적인 특성을 지닌 화전농경과 팽창적이고 집중적인 특성을 지닌 수도작농경은 인구 증가라는 변수에 대하여 당연히 상반되게 반응하였다. 내인도네시아에서 발달한 사와 체계는 20세기에 폭발적으로 증가한 자바 인구의 대부분을 흡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 같은 환경문화적 배경하에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이후 농업의 발전 방향이 결정되었다. 네덜란드는 인도네시아를 철저하게 농산물 생산지로 한정하였다. 인도네시아에서 값싸게 농산물을 사들여 그 가공품을 비싸게 팔아 차익을 얻고자 하였다. 내인도네시아의 경작체계는 바로 이러한 체계에 맞추어 형성되었다. 기후적 특성으로 인해 사와에서는 쌀농사와 함께 일년생 식물(사탕수수, 인디고, 담배)을 경작할 수 있었다. 논이 많아지고 관개시설이 향상될수록 더 많은 벼를 재배하고 더 많은 사탕수수를 경작하게 되었다. 쌀의 생산량이 늘어나면 더 많은 인구가 먹고살 수 있었고, 늘어난 인구는 다시 사탕수수 경작에 투입되었다. 네덜란드 식민정부는 사탕수수 재배에서 농민을 배제하려고 노력하였고, 농민은 더욱더 쌀농사에 집중되었다.
쌀농사를 짓기 어려운 지역에서는 커피, 차, 후추 등 다년생 식물의 재배가 이루어졌다. 특히 주요 수출품목 중 하나였던 커피는 반숙련 노동력을 지속적이고 집중적으로 투입하는 식으로 재배되었기 때문에, 커피 경작체계는 커피농장 그리고 농장 안 또는 주변에 거주하는 노동자로 구성되었다. 커피는 화전, 특히 산비탈의 화전에서도 재배할 수 있어서 간작間作 작물로 안성맞춤이었고, 점차 소토지 자작농에게까지 확대되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커피는 네덜란드 농장의 수출작물이었고, 거의 전적으로 강제노동에 기초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인들의 생계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주요 수출품목으로서 인도네시아에서 재배된 일년생 식물과 다년생 식물은 네덜란드 경제의 일부가 되었고, 다수의 자바인들은 더욱더 쌀농사에 내몰려졌다. 그들에게는 비극적인 결과를 가져다주었지만, 사탕수수 재배는 생태적 조건을 쌀 경작에 더욱 적합하게 개선함으로써 높은 인구밀도, 높은 ‘사와화’, 높은 생산성을 모두 만족시켰다. 쌀농사가 점점 더 노동집약적이 되어가자 이들은 육묘, 이앙, 정지작업, 모심기와 제초, 수확도구, 화산 주변에 새로운 농지를 개간하는 등, 정교하고 보다 높은 수준의 기술을 발전시켜 나갔다. 1900년경 이후 밭작물 경작 확대의 도움을 받으면서 사와의 생산성이 높아지자 전체적으로 생활수준이 안정되거나 매우 조금씩 상승하는 특징을 띠게 되었다. 사와 체계는 일인당 수입이 크게 하락하지 않으면서도 항상 한 사람을 더 일하게 함으로써 일정 수준의 한계노동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었고, 서구의 침투가 야기한 추가 인구의 거의 전부를 최소한 간접적으로 빨아들일 수 있었다. 이처럼 궁극적으로 자기파괴적인 과정을 기어츠는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agricultural involution’라고 명명하였다.
이 같은 과정이 계속되자 자바 농업사회는 다른 많은 ‘저발전된’ 국가에서 나타난 양상과 달리 대토지 소유집단과 농노에 가까운 억압받는 집단으로 분화하는 대신, 경제적 파이를 점점 더 많은 수의 조각으로 나눔으로써 ‘빈곤을 공유’하였다. 반면 외인도네시아에서는 커피, 고무, 담배 등 수출작물 재배가 늘어가면서 소토지자작농의 비율도 높아졌다. 대다수 자바 농민이 농업의 내향적 정교화, 공유된 빈곤, 사회적 순응, 문화적 모호함을 향해 나아갈 때, 소수의 외곽 도서 농민은 농업 전문화, 노골적인 개인주의, 사회갈등, 문화적 합리화를 향해 움직였다.
기어츠는 이것이 인도네시아 농업이 근대화의 길을 걷지 못한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본다. 예를 들어 일본은 산업 부문이 발전하면서 농업을 기술적으로 뒷받침하게 되자 농업 부문의 노동생산성이 향상되었고, 농업 부문의 인구가 산업 부문으로 옮겨 가면서 서로 역동적으로 발전해 나갔다. 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농업 부문의 번영을 네덜란드가 가져갔다. 농민들은 활력을 빼앗겼고, 인도네시아의 토착 제조업 체계에 투자될 농업생산성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게다가 농장 부문으로 자본 투입이 증가한 반면, 농민 부문으로 노동 투입이 증가하자 중간적 산업활동이 거의 없는 상황에서 두 부문은 문화적ㆍ사회적ㆍ기술적으로 완전히 분리되었다.
1956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는 시험대에 섰다. 농장 부문과 농민 부문으로 나뉜 이중경제 체제, 성장과 거리가 먼 농업의 내향적 경제화 상태, 혼란스런 정치상황 등 ?대화를 이루기 위해 나아갈 길에 맞닥뜨릴 장애물이 수없이 많다. 기어츠는 이제 생태적ㆍ경제적 과정에 대한 분석을 뛰어넘어 국가의 정치적ㆍ사회적ㆍ문화적 역동성을 연구해야 할 때라고 말하며 글을 끝맺는다.
이 책의 의의
1963년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학계에 극단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긍정적으로 평가한 측은 문화적 분석에 환경을 핵심요소로 포함한 점, 역사적ㆍ정치적ㆍ경제적ㆍ생물학적ㆍ지리적ㆍ문화적ㆍ사회적 자료를 능숙하게 통합한 점, 현학적이지 않으면서 매우 정교하게 분석한 점 등을 그 이유로 꼽았다. 반면 비판적인 측에서는 기어츠의 연구가 현실 적합성이 없으며, 역사적 사실을 간과하고, 역사적 현실의 일부를 전체인 양 왜곡한다고 평가하였다. 기어츠 스스로도 “[이 책은] 찬미되고 조롱되었으며, 이용되고 오용되었고, 열정적으로 분석되고 막연하게 언급되었다”라고 할 정도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개념인 ‘involution’은 사회학, 정치학, 경제학, 역사학, 문화인류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학자들이 각자의 연구에 알맞은 의미로 사용하는 등 매우 유용한 개념이 되었다. 하지만 이는 그만큼 ‘involution’의 의미가 명확하지 않다는 점을 방증한다.
기어츠는 이 책을 쓸 당시 근대화론적 관점으로 인도네시아 농업 경제 발전을 검토하였다. 그는 농업의 내향적 경제화로 인하여 농업의 특화, 개인주의, 사회적 갈등, 문화적 합리화 같은 자본주의적 발전을 가능하게 할 변인이 출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였다. 이후 근대화론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면서 이러한 관점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서구적 근대화가 아니라 빈부격차, 환경파괴, 삶의 질과 같은 기준에서 본다면 과연 인도네시아 사회가 ‘퇴화’했다고 볼 수 있을까? 기어츠 역시 20여 년 후 자바 농업에 대한 글에서 ‘involution’ 개념을 정리하면서 ‘퇴화’보다는 ‘복잡화’라는 측면을 강조하였다. 이후 많은 인류학적 연구들에서도 ‘퇴화’보다는 ‘정교화’라는 의미로 ‘involution’을 사용하였다.
현재 자바 농촌은 기어츠가 서술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의 논의가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는 이 책을 쓸 당시 네덜란드 식민지 시대의 경제 변화를 연구한 것이기 때문이다. ‘involution’ 개념은 아직도 유효하며, 현재의 자바 농촌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분석틀을 제시해 준다. 더 나아가 기어츠가 ‘involution’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인문ㆍ사회과학 분야의 분석틀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음은 명확한 사실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클리퍼드 기어츠
안티오크 칼리지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하버드 대학교 사회관계학과 대학원에서 인류학을 공부하여 1956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몇 개 대학의 교수 및 특별연구원을 거친 후 시카고 대학교의 교수로 10년간 재직하였다. 1970년부터 2006년 작고할 때까지 프린스턴 고등연구소Institute for Advanced Study의 사회과학 교수로서 학문 활동을 계속하였다. 상징인류학과 해석인류학 분야의 선진적 이론가로 평가받고 있다. 주요 저작으로는 『자바의 종교The Religion of Java』(1960), 『문화의 해석The Interpretation of Cultures』(1973), 『느가라Negara』(1980), 『작품과 생애: 작가로서의 인류학자Works and Lives: The Anthropologist as Author』(1988) 등이 있다.
역자 : 김형준
서울대학교 인류학과를 졸업하고 호주국립대학교에서 인류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강원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이다. 인도네시아 사회문화와 종교에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인도네시아 이슬람 조직에 대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저서로 Reformist Muslims in a Yogyakarta Village(2007), 『적도를 달리는 남자: 어느 문화인류학자의 인도네시아 깊이 읽기』(2012)가 있으며, 주요 논문으로 「대중문화를 통한 한국이미지의 형성과 소비: 인도네시아 네티즌의 사례」(2008),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급진주의」(2009), “Praxis and Religious Authority in Islam”(2010)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감사의 글
제1부 이론적이고 사실에 기반한 출발점
제1장 인류학 내의 생태적 접근
전통적 접근의 한계|문화생태학
제2장 두 가지 형태의 생태계
내인도네시아 vs. 외인도네시아|화전|사와
제2부 유형의 구체화
제3장 고전기
제4장 식민시기: 기초
회사|경작체계
제5장 식민시기: 번영기
기업농장체계|외인도네시아의 발전
제3부 결과
제6장 비교와 전망
현재의 상황|자바와 일본|미래의 개관
후주
참고문헌
옮긴이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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