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산 안창호 평전 (2012.4 개정판)

고객평점
저자이태복
출판사항흰두루, 발행일:2012/04/10
형태사항p.471p. B5판:24cm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6272519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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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훌륭한 인격을 따라 배우고 싶은 인물을 갖지 못한 사회는 지극히 불행한 사회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도산이 있다. 세상을 떠난 지 68년이 되도록 제대로 평가받기는커녕 오해와 편견에 가린 도산을, 오늘의 현실에서 되살려내기 위해서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작업이 도산 안창호의 일생을 온전하게 복원하는 일이다. 전문 연구자가 아닌 한 운동가가 도산의 평전을 쓴다는 것이 무리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운동가의 자세와 감각으로, 도산의 삶 전체 모습을 되살릴 수 있기를, 그리하여 도산 안창호의 삶의 자세를 따라 배우려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며 이 책을 감히 세상에 내놓는다.
― 이태복

도산 때문에 다시 든 펜
1984년 늦봄, 전주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을 때 지은이 이태복은 단식투쟁 끝에 담당검사에게 볼펜을 써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 안창호 평전을 쓰기 위해서였다. 이태복은 도산을 사표로 삼고 민주화운동을 했다. 그런 지은이에게 같이 갇혀 있던 양심수들은 도산 안창호를 개량주의자, 부르주아민족주의자로 치부하면서 연구할 가치도 없는 사람으로 매도했다. 지은이는 일방적인 찬양이나 비난을 넘어, 치열한 실천으로 독립운동과 공화국 건설, 인물 키우기 사업을 펼쳤던 도산의 삶을 온전히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8.15 기념투쟁을 벌였다는 이유로 볼펜을 다시 빼앗기고 말았고, 그 뒤 1988년 10월 석방될 때까지 펜을 잡을 수 없었다. 석방된 뒤에는 노동자언론을 세우고 복지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느라 평전을 쓸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학교 강의를 하는 지금 틈을 내지 않으면 도산에 대한 잘못된 초상을 바로잡을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에 20여 년 만에 집필을 다시 이었다.

지금, 도산을 다시 부르는 까닭
도산이 세상을 떠난 지 68년이 지났다. 그 시간 동안 도산은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고, 일제정책에 이용당했다는 오명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지은이는 도산으로부터 나라와 겨레에 대한 사랑이 ‘공허한 말’이 아니라 ‘온전한 함’에 있다는 사실을, 자신을 끊임없이 혁신해가는 인간만이 자유로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배웠기에 그를 다시 역사의 광장으로 불러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는 도산의 삶이 그 자체로서 아름답기 때문이다. 굶어죽는 독립운동이 아니라 싸워 이기는 독립운동, 공리공론을 일삼는 독립운동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안을 무실역행하는 운동,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독립운동을 호소하고 몸소 실천하였던 인간이 바로 도산 안창호였다. 자리를 탐하고, 명예욕에 빠지며 변절한 몇몇 독립운동가와 다르게 오로지 독립운동이라는 대의에 철저했다.

둘째는 도산의 풍부한 독립운동방략에 배울 점이 많아서다.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끊임없이 제시하는 인물들이 없으면 독립운동도, 독립 후에도 나라꼴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며 ‘인물 기르기’를 강조했던 도산의 문제의식은 한국사회의 현실에서 여전히 유효한 교훈이다. 목소리만 요란할 뿐 현실에 근거한 실천방안이 없는 개혁파들,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지도층, 국민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할 생각보다 안일과 골프에 여념이 없는 고위 공직자들, 국가와 국민의 밥그릇보다 자기 밥그릇만 욕심내는 사회 각 집단들, 남북의 통일단결보다 정치적으로 서로 이용하기에 바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한민국의 중심축을 떠받칠 인물들을 기르고 그 인물들이 결집해야 한다는 점에서 도산의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셋째는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는 한국사회에서 통일단결과 통합의 리더십이 절실한 탓이다. 서로 감정이 쌓인 사람들에게 아무리 통합과 단결을 강조해도 마이동풍일 뿐이다. 분열적 언어와 행동을 삼가고 통일단결의 큰 길을 지향하며 민주적인 공론을 모아가는 리더십을 도산은 이미 독립운동 과정에서 보여줬다.

도산의 발자취
도산 안창호는 1878년 전형적인 잔반(殘班)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안창호는 서당에서 공부하다가 열여섯 살에 신학문을 배우려 고향 평안남도를 떠나 한양으로 가, 예수를 믿으면 가르쳐주고 먹여주고 재워준다는 말에 언더우드가 운영하던 구세학당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 이듬해에 서재필의 연설을 듣고 나라를 구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기로 다짐한다. 이름 없는 우국청년으로 활동하던 안창호는 스무 살인 1898년 평양에서 만민공동회가 개최한 연설에서 18개 쾌재와 18개 불쾌로 탐관오리들의 학정과 비리를 규탄하고 외세의 침탈에 강력 대응할 것을 호소하여 유명해진다. 그러나 도산의 첫 구국운동의 무대였던 만민공동회 운동은 실패했고, 1899년에 고향에 돌아와 근대 학교인 점진학교와 개간사업을 전개하여 문명개화운동에 헌신했다. 1902?에 미국으로 건너가 샌프란시스코에서 한국인 친목회와 공립협회를 조직하고, 1907년 1월 귀국하여 이갑, 양기탁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신민회를 조직하였다.

도산은 전국순회강연과 민중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08년 평양에 대성학교를 세웠다. 분투노력에도 불구하고 통감부의 탄압이 계속되자 1910년 망명하여 만주지역에 독립운동의 근거지 건설을 추진하였다. 1911년 다시 샌프란시스코로 건너가서 대한인 국민회 중앙 총회를 조직하고 1913년 5월 흥사단을 조직하였다. 3.1 운동 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직을 맡아 임시정부의 기초를 닦았다. 1932년 윤봉길 폭탄 의거로 투옥되었고, 1937년 동우회 사건으로 흥사단 동지들과 붙잡혀 투옥되었다가 병보석 중에 1938년 세상을 떠났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 공로 훈장에 추서되었다. 2006년 현재까지 도산의 인격과 가르침을 따르는 흥사단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개정판에서 달라진 점

초판에서 제대로 다루지 못했던 내용이 몇 가지 있었다. 첫 째는 윤봉길 의사의 상해 의거와 관련된 내용이다. 둘째는 대전감옥 출옥 이후 해외망명시도 등이다. 초판에서 윤 의사가 상해에 와서 몇 차례 이사를 했는데, 세 곳이 흥사단 단우의 거처였다는 사실, 백범이 임정 간부들에게 보고했고, 중요사항은 도산과 협의해왔다는 점 등을 들어 윤봉길 의거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고 기술하는 수준에서 멈췄다. 하지만 최근 일본 측의 윤봉길 취조 기록이나 독립운동가 김광의『윤봉길전』의 기록 등으로 볼 때 독자적으로 의열투쟁을 계획해 이유필과 협의하여 4월 24일 칙어50주년 반포 기념식장에서 폭탄을 투척하기로 했으나 폭탄확보가 되지 않아 29일의 일왕생일 기념식장을 겨냥하게 됐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윤봉길 의사가 상해로 와서 도산과 이유필 당시 민단장 등 흥사단 원동위원부 인사들을 만나고 대부분의 거처를 함께한 사실, 특히 도산의 거처였던 태평촌에서 윤 의사는 흥사단우였던 김광과 10개월 정도 함께 생활한 점, 윤 의사가 주도한 파업을 이유필과 도산의 중재로 마무리했다는 점도 주목했다. 그리고 윤 의사가 일제에 체포된 직후 거류민단장과 협의했다고 진술한 점, 또 중국 측의 반응이 도산과 흥사단 사람들에게 호의적이었다는 사실은 무슨 의미인지 살펴봤다.

그래서 이번 개정판에서 도산이 상해에 진주한 일본군에 맞서 한중연합 군사작전을 도모할 필요에 직면하여 측근으로 알려진 이유필을 고리로 해서 군사행동을 시도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만 이유필이 폭탄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이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그때 중국정부는 남경의 장개석과 광동의 왕정위, 공산당의 모택동 정부로 분열돼 있었고 장개석의 상해쿠데타로 상해의 독립지사들은 대부분 장개석 정부에 호의적이지 않았다. 도산은 대일 한중연합전선을 구축하기 위해 우리 내부에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대처해가기로 했다, 중국도 일본의 전면적 침략에 대응하기 위해 통일정부를 구성하기로 1932년 초에 비로소 양파가 합의하여 통합정부가 출범하였다. 이런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위력 있는 폭탄확보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윤봉길 의사는 장개석의 국민당과 밀착돼 있던 백범을 찾아가 2차 거사를 협의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개정판에서는 최근 자료를 근거로 윤봉길 의사 상해 의거는 윤 의사가 적극적으로 1차 시도를 하였으나 폭탄확보가 되지 않아 백범을 찾아가 2차 시도를 하여 성공한 것이었다는 점, 1차 시도에 이유필과 도산이 관련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2차 거사에 대해서도 그 내용을 알게 되었다는 점을 반영했다. 해외 망명 시도는 초판에서 다룬 내용 이상의 새로운 자료를 찾지 못했다. 직접 관련된 분들의 타계로 증언이 더 이상 나올 수 없고 건강이 악화된 상황에서 해외 망명 시도가 갖는 동사적 의미가 크지 않아서 이번 개정판에서 손을 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초판에서 도산의 삶과 정신을 본받기 위해 오늘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의 일단을 쓴 것이 있었다. 그러나 상황이 더욱 악화되고 흥사단 내부의 변화만을 기다릴 수 없게 되었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태복
민주화운동의 전설적 인물이다. 날카로운 정세분석과 몸을 던지는 실천으로 민주화운동에서 독보적인 지도력을 발휘했다. 청와대 복지노동수석과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다. 저서로는 『세상의 문앞에서(옥중서한집)』(1990), 『노동자의 논리와 희망의 노래』(1992), 『전환기의 노동운동』(1995), 『우리시대의 희망찾기』(1996), 『기백이 있어야 희망이 보인다』(2000), 『쓰러져도 멈추지 않는다』(2002), 『대한민국은 침몰하는가』(2004), 『사회복지정책론』(2006)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막| 먹장구름 속에서 싹튼 새싹
2막| 한양에서 신학문을 배우다
3막| 구국운동에 뛰어들다
4막| 미국에서 한인 노동자를 조직하다
5막| 공화국의 꿈을 안고 조국으로 돌아오다
6막| 해외 독립운동 기지 개척과 흥사단 창단
7막| 통합 임시정부의 틀을 세우다
8막| 흥사단 원동위원부와 독립운동 근거지 건설 사업
9막| 민족유일당, 좌우 통일운동
10막| 낙심 마오!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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