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그리스도교는 어떻게 해방의 이념이 되었는가!!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운동과 해방신학에 대한 이론적/역사적 고찰!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에 비해 핵심적인 저작이나 주제에 대한 소개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국내의 대표적인 라틴아메리카 연구 기관인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그린비와 함께 펴내고 있는 ‘트랜스라틴 총서’의 10번째 책 신들의 전쟁이 출간되었다. 국내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소개된 바 없지만 왕성한 저술활동과 사회운동 참여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미카엘 뢰비(Michael L?wy, 1938~ )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그리스도교’를 이론적 측면에서, 그리고 실천적?역사적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한 역작이다. 이 책에서 뢰비는 칼 맑스와 막스 베버의 논의를 통해 가톨릭의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고찰하는가 하면, ‘종교는 보수적’이라는 일반적인 이해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언설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를 거부하고 주요 맑스주의 이론가들의 종교 인식을 살펴 맑스주의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는 탁월한 이론적 작업을 전개한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브라질,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라틴아메리카 각지에서 그리스도교와 민중 운동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역사적 분석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해방그리스도교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책의 제목인 ‘신들의 전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의 서문에서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따온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밝히고 있다. 우선 이 전쟁은 내적으로 진보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 개념과 보수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 개념 사이의 투쟁으로, 극단적인 경우 내전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들의 전쟁’의 더 중요한 의미는 해방신학의 신과 자본주의의 우상들(돈, 시장, 상품, 자본 등) 사이의 전쟁이다. 해방신학에서 상정하는 신의 이미지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신’으로서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흔히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자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해방그리스도교의 투쟁은 단순히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나, 빈곤의 단편적인 해결에서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미카엘 뢰비의 주장이다.
미카엘 뢰비의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멀게는 1970~80년대 한국의 해방신학 수용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조점이 되겠지만, 문정현 신부나 지율 스님과 같이 여전히 사회적 투쟁에 나서고 있는 성직자들의 활동을 역사적?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대형화?사유화?권력지향과 같은 문제들, 최근 레이디 가가 방한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응을 통해 드러난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보수화의 문제 등 종교와 관련된 갈등이 점점 커져 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고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가?
막스 베버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신교(특히 칼뱅교)와 자본주의 사이에 ‘선택적 친화성’(elective affinity)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선택적 친화성’이 뜻하는 것은 개신교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 사이에는 서로 보강하고 이끌어주는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미카엘 뢰비는 베버의 이러한 주장을 역으로 뒤집어, 베버가 자신의 저작에서 빼놓은 하나의 장( ))을 찾아낸다. 바로 개신교 교회가 자본주의 발전과 선택적 친화성의 관계에 있다면, 역으로 가톨릭 교회는 자본주의 발전과 ‘부정적 친화성’(negative affinity)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베버 자신도 이후 ?경제와 사회?나 ?사회경제사? 등의 저작에서 밝히고 있듯이, 가톨릭 교회(그리고 일부 개신교 교파) 내에는 자본주의 정신과 화해할 수 없는 기본적인 혐오가 존재한다. 즉 “상인은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homo mercator vix aut numquam potest Deo placere)와 같은 구절에서 드러나는 이윤 추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부정적 태도,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져올 비인격적 관계에 대한 혐오와 같은 감정들이 그렇다. 베버가 빼먹은 가톨릭의 반자본주의적 성향에 대한 장은 이후 베르나르드 그루아튀상(Bernard Groethuysen), 에밀 풀라(?mile Poulat), 아민토레 판파니(Amintore Fanfani) 등에 의해 채워지게 된다.
가톨릭의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성격은 당연히 맑스주의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뢰비는 우선 맑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문장을 거론하면서, 이 문장이 그동안 종교 현상에 대한 맑스주의적 개념의 정수로 이해되어 왔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 표현이 들어 있는 맑스의 글(“종교적 고통은 현실 고통의 표현이면서 그와 동시에 현실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눌린 피조물의 한숨이고, 심장없는 세계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_ 헤겔 법철학 비판서설)을 전체적으로 주의 깊게 읽는다면, 종교를 사제들의 음모라고 보는 일방적인 해석보다는 인간 본질의 소외로서 종교를 바라 본 신헤겔주의 좌파의 입장에 더 가까운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표현을 포함한 몇몇 단편적이 언급 외에 맑스에게서 종교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상품 물신숭배에 바탕한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언어로서 종교적인 메타포를 사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엥겔스 이후, 여러 맑스주의자들은 종교의 반자본주의적 성격에 주목했다. 엥겔스는 대부분의 종교가 기존 질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비판적, 저항적, 심지어 혁명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엥겔스는 원시그리스도교를 근대 사회주의와 비교하거나, 독일의 천년왕국설적 예언자들에 대한 칭송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카를 카우츠키는 토마스 뮌처와 토머스 모어에 대한 연구에서 이들을 근대 사회주의의 선구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확신에 찬 무신론자였던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 근대 사회주의자가 보수적인 사제보다 그리스도교의 근본 원칙에 더 충실하다고 주장하면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억누르는 자들을 지지할 때 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거슬러 행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외에도 안토니오 그람시, 에른스트 블로흐, 뤼시앙 골드만, 그리고 페루의 호세 마리아테기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맑스주의자들이 모두 사회주의 혁명에서 종교적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 다시 말해 맑스주의와 종교 사이에 일정한 접점이 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 뢰비의 주장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회적 격변과 해방그리스도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 시기는 195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약 35년간으로, 이 시기는 쿠바혁명의 성공과 ‘교회의 변화’를 천명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소집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35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군사 독재의 억압은 더욱 극심해졌고,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과 급격한 도시화에 의한 삶의 피폐화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쿠바로부터 용기를 얻은 혁명적 열기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 변화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 투쟁에 힘이 되었고 그 투쟁에 많은 그리스도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이런 투쟁들 중에서 이 책의 3장에서 대표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브라질의 민주화 운동과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이 주도한 엘살바도르 내전이다.
▶ 브라질의 교회와 민주화
뢰비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브라질의 교회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독특한 사례로 꼽는다. 브라질의 교회가 해방신학과 그에 기반한 사목활동가들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교회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0년대 이후 브라질에서 발생한 민중운동들은 대부분 이 교회 부문(그리스도교인들, 사목활동가들, 기초공동체 구성원들)이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초 브라질에서는 쿠바혁명과 프랑스의 영향으로 ‘가톨릭 좌파’라고 부를 수 있는 흐름이 형성되었고, 이 활동가들은 주로 세속적 좌파와 연대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사회적 투쟁을 지원하며, (파울루 프레이리의 교육론에 바탕하여) 민중교육에 투신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이 중에서도 가톨릭대학생회(JUC)와 민중교육운동(MEB)은 맑스주의적 방법을 채택하는 비종교적 정치운동인 ‘민중운동’(AP)을 결성한다. 하지만 이후 이러한 가톨릭 좌파는 가톨릭의 보수적 교계의 공격을 받았고, 구성원의 다수가 가톨릭에서 이탈하여 마오주의적 경향을 가진 ‘브라질 공산당’(PCdoB)에 입당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브라질 정치에서 중요했던 전환점은 1964년의 군부 쿠데타였다. 쿠데타로 인한 정권 장악과 긴급조치 발표 이후, 군사정부는 저항세력을 숨겨주고 그들의 도피를 돕는 가톨릭의 성직자와 신도들에 대해서도 살해, 구금, 고문과 같은 극심한 탄압을 가했다. 그러나 가톨릭 성직자와 신도들에 대한 탄압은 돔 헬더 카마라 주교, 돔 아그넬루 로씨 주교와 같은 고위 성직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나아가 교황청까지도 브라질 사태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1970년대 내내 브라질 교회는 군부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80년대의 점진적인 민주화 과정에서의 다양한 운동들(노동자당, 유일노총, 무토지농민운동, 전국민중운동연합)에 기초공동체와 사목활동가 출신이 상당수 참여하여 활동하게 된다.
▶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니카라과에서는 호세 데 라 하라 신부가 메리놀 수녀회의 모라 클라크 수녀와 다른 수녀회 소속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기초공동체 운동을 시작했고,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의 메데인 총회(1968년) 이후 이 기초공동체 운동은 크게 활성화 되어 빈민촌과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점점 급진화되었다. 1969년 산파블로 공동체에서 창립한 ‘그리스도교 청년운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그리스도교 운동단체들이 생겨났고, 이 운동단체들이 점차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으로 집결하게 되었다. 또한 농촌 지역에서는 카푸친회와 예수회가 평신도 지도자인 ‘말씀의 대표’를 육성했는데, 이들이 점차 급진성을 띠면서 소모사 정권의 국가수비대에 의한 탄압과 희생이 늘어나게 되었고, 이들 역시 산디티스타 민족해방전선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렇게 가톨릭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대거 참여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소모사 정권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결국 1979년 소모사 정권을 축출하면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승리하게 된다. 이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종교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여 그리스도교인들이 대대적으로 혁명에 참여한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후 보수적인 사제들을 추방하는 등 혁명정부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몇 차례 갈등이 있었지만, 여러 신부들이 혁명정부의 장관으로 기용되는 등, 혁명정부가 1990년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
▶ 오스카르 로메로 주교와 엘살바도르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
엘살바도르에서도 ‘메데인 총회’ 이후 기초공동체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에 의해 주도된 기초공동체 운동은, 점차 사제가 없는 지역에서 신앙공동체를 이끄는 역할을 하는 ‘말씀의 대표들’로 대체되었고, 이들은 니카라과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차 급진화되었다. 이들은 단지 예수를 숭배하는 것보다 그의 모범을 따라 사회적 죄(착취와 자본주의)와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농민들의 공동체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은 루틸리오 신부가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등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여러 민중운동은 이런 탄압 속에서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으로 결집하여 군부정권과 내전을 이어 나갔다. 이 내전은 12년 동안 이어졌고, 1993년 정부와 합의를 이루어 내면서 오랜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엘살바도르의 혁명 운동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 바로 오스카르 로메로 주교였다. 원래 사회 변혁보다는 개인적인 기도나 회심을 신봉하는 보수적인 성향의 성직자였으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의 죽음과 이어지는 극심한 탄압을 계기로 해방신학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되게 된다. 주교좌성당에서 수천 명이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주장하는 그의 강론을 들었고, 그 강론은 교회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수십만 명에게 전해졌다. 이런 영향력을 두려워한 군부는 준군사조직인 ‘죽음의 부대’를 보내 미사를 집전 중이던 로메로 주교를 살해했고, 로메로 대주교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총격을 가해 35명을 다시 살해했다. 이 죽음으로 로메로 주교는 라틴아메리카 안팎의 모든 그리스도교 활동가들에게 카리스마적인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복음주의 교회 확산의 여러 가지 원인
해방그리스도교는 가톨릭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개신교 쪽에도 중요한 해방그리스도교 분파들이 있었고 이들은 가톨릭의 해방그리스도교와 유사한 방식으로 발전하여 여러 국면에서 가톨릭 해방그리스도교 운동과 결합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개신교에서 두드러진 움직임은 보수적이거나 극히 반혁명적인 종교 문화를 가지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 특히 오순절파 교회의 급속한 확산이다. 근본주의(‘문자주의적’ 성서 해석), 개인적 구원에 대한 전적인 강조, ‘믿음에 의한 치유’ 등과 같은 마술적 행태, 그리고 근대적 커뮤니케이션 매체(특히 텔레비전)의 집중적인 사용 등을 특징으로 갖는 이들 복음주의 교회들은 전통적인 개신교와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종교적 우파에 속하는 선교기관들은 미국의 단체들과 관련이 있으며,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우호적이다. 또한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그 압도적인 보수적 종교문화로 인해 기존 질서, 심지어 사악한 군사독재의 옹호자가 되기도 했다.
흔히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러한 복음주의 교회의 확산은 해방신학을 견제하고 사회운동을 방해하기 위한 미국의 ‘음모’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되곤 했다. 하지만 뢰비는 이러한 ‘음모이론’만으로는 라틴�P메리카의 대다수 지역에서 복음주의 교회가 대중적 지지를 얻은 배경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이야기한다. 복음주의 교회들이 미국의 달러를 대대적으로 투여해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분석하는 것 역시 사태의 복잡성을 간과하는 것이라는 것이 뢰비의 주장이다. 실제로 하나의 단일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적?정치적?문화적?종교적인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가톨릭에 대한 군사적?준군사적 폭력으로부터의 피난처로서의 역할, 당국자들이 존중하는 종교에 자신을 맡기면서 얻을 수 있는 안전의 보장, 술과 노름을 끊고 가족을 중시하도록 만드는 실질적인 삶의 개선 유인 등등. 또한 치유와 기적, 악귀추방과 같은, 특히 오순절 교회가 가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대중 종교와의 친화성 또한 이 급격한 확산의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방신학은 끝났는가?
보수적인 개신교의 급속한 확장이라는 문제 외에도 해방그리스도교적 사회운동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은 바티칸의 움직임에서도 나타난다. 해방그리스도교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 바티칸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용인했지만, 계속해서 라틴아메리카의 교회를 ‘정상화’, 즉 해방그리스도교에서 탈각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진보적인 주교가 선종하거나 자리를 옮기면, 그 자리에 보수적인 인물을 앉히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되었고, 이렇게 새로 임명된 이들은 기존의 진보적 교회조직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교회를 ‘정상화’시키고 있다.
이 외에도 80년대 말의 현실사회주의 블록의 붕괴,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확장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해방그리스도교의 기획은 쇠락을 거듭해 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카엘 뢰비는 이 책의 ‘결론’에서 해방신학이 끝났다는 주장은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뢰비는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이나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 등은 사례로 들면서, 이 운동들이 명시적으로 해방그리스도교의 이념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운동의 구성원들과 운동의 양식에는 여전히 해방그리스도교적 요소들이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해방그리스도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여러 세대 동안 그리스도교 활동가들의 종교적?정치적 문화를 형성했고, 이 활동가들에게 뿌리내린 윤리적?사회적 확신은 쉽게 포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방그리스도교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종교적 환경에 중요한 씨앗들을 남겼고, 이 씨앗이 어떻게 커갈지는 여전히 지켜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미카엘 뢰비
브라질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다. 1938년, 오스트리아에서 이민 온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60년에 상파울루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프랑스에 유학하여, 1964년에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강의하였으며, 스탠퍼드 대학교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대학의 초청을 받아 강의한 바 있다. 현재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명예 연구이사이고,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연구·교육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Research and Education)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한 여러 학술지의 편집에 관여하고 있으며, 프랑스 신 반자본당과 제4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면서 브라질 노동자당이나 무토지농민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등, 사회활동에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2007년 파리에서 열린 제1차 국제생태사회주의회의(International Ecosocialist Meeting)를 조직하기도 했다. 미카엘 뢰비는 지금까지 수많은 논문과 책을 썼는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맑스, 루카치...등 맑스주의 사상을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다뤘고,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문화 현상, 특히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많은 글을 발표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이 책 『신들의 전쟁』 이외에도 『체 게바라의 맑스주의』(1973, 2007), 『루카치 : 낭만주의에서 볼셰비즘까지』(1981), 『조합되고 불균등한 발전의 정치 : 영구혁명론』(1981), 『구원과 유토피아 : 중부 유럽의 해방적 유대교』(1992), 『세계 변화에 대해 : 정치철학 에세이-맑스에서 발터 벤야민까지』(1993), 『조국이냐 어머니 지구냐 : 민족 문제에 대한 에세이』(1998), 『프란츠 카프카 : 꺾이지 않는 몽상가』(2004), 『화재경보 : 벤야민의 ‘역사개념론’』(2005), 『체 게바라 : 꺼지지 않은 불꽃』(2007) 등이 있다.
역자 : 김항섭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를 마치고, 브라질 상파울루 가톨릭대학교에서 종교학 석사, 상파울루 감리교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를 하였다. 현재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이고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생태학의 도전과 그리스도교』, 『21세기 사회와 종교 그리고 유토피아』(공저), 『신자유주의시대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과 문화변동』(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물신』(프란츠 힌켈라메르트), 『생태 신학』(레오나르두 보프), 『종교사회학 : 마르크스주의적 관점』(프랑수아 후타르)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장 l 종교와 정치 : 맑스와 베버의 재해석
1. 맑스주의와 종교 : 인민의 아편?
2. 가톨릭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의 종교사회학에 빠져 있는 장(章)
2장 l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그리스도교
1. 해방신학과 해방그리스도교
2. 해방신학에서의 근대성과 근대성 비판
3. 해방신학과 맑스주의
3장 l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종교 : 세 가지 사례
1. 브라질 교회와 정치
2. 중미 그리스도교와 봉기의 기원
3. 해방 개신교와 보수 개신교
결론 l 해방신학은 끝났는가?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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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는 어떻게 해방의 이념이 되었는가!!
라틴아메리카의 민중운동과 해방신학에 대한 이론적/역사적 고찰!
라틴아메리카에 대한 일반적인 관심에 비해 핵심적인 저작이나 주제에 대한 소개는 체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문제의식에서, 국내의 대표적인 라틴아메리카 연구 기관인 서울대학교 라틴아메리카연구소가 그린비와 함께 펴내고 있는 ‘트랜스라틴 총서’의 10번째 책 신들의 전쟁이 출간되었다. 국내에는 아직 본격적으로 소개된 바 없지만 왕성한 저술활동과 사회운동 참여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미카엘 뢰비(Michael L?wy, 1938~ )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이 책은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그리스도교’를 이론적 측면에서, 그리고 실천적?역사적 측면에서 종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분석한 역작이다. 이 책에서 뢰비는 칼 맑스와 막스 베버의 논의를 통해 가톨릭의 반자본주의적 성격을 고찰하는가 하면, ‘종교는 보수적’이라는 일반적인 이해와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언설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를 거부하고 주요 맑스주의 이론가들의 종교 인식을 살펴 맑스주의와 그리스도교 사이의 접점을 찾아내는 탁월한 이론적 작업을 전개한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브라질, 니카라과, 엘살바도르 등, 라틴아메리카 각지에서 그리스도교와 민중 운동이 어떻게 결합되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역사적 분석을 통해 라틴아메리카 해방그리스도교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책의 제목인 ‘신들의 전쟁’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은이는 이 책의 서문에서 막스 베버의 ?직업으로서의 학문?에서 따온 이 제목이 의미하는 바를 밝히고 있다. 우선 이 전쟁은 내적으로 진보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 개념과 보수적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 개념 사이의 투쟁으로, 극단적인 경우 내전의 형태를 취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신들의 전쟁’의 더 중요한 의미는 해방신학의 신과 자본주의의 우상들(돈, 시장, 상품, 자본 등) 사이의 전쟁이다. 해방신학에서 상정하는 신의 이미지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신’으로서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는 흔히 가장 가난하고 비천한 자의 형상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해방그리스도교의 투쟁은 단순히 정치적 억압에 대한 저항이나, 빈곤의 단편적인 해결에서 그치지 않고,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한 근본적인 저항으로 나아간다는 것이 미카엘 뢰비의 주장이다.
미카엘 뢰비의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멀게는 1970~80년대 한국의 해방신학 수용을 연구하는 데 있어 중요한 참조점이 되겠지만, 문정현 신부나 지율 스님과 같이 여전히 사회적 투쟁에 나서고 있는 성직자들의 활동을 역사적?이론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대형화?사유화?권력지향과 같은 문제들, 최근 레이디 가가 방한에 대한 기독교계의 반응을 통해 드러난 극단적이고 맹목적인 보수화의 문제 등 종교와 관련된 갈등이 점점 커져 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어떻게 바라보고 새롭게 정립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기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자본주의와 양립할 수 있는가?
막스 베버는 개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개신교(특히 칼뱅교)와 자본주의 사이에 ‘선택적 친화성’(elective affinity)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여기서 ‘선택적 친화성’이 뜻하는 것은 개신교가 자본주의 경제 발전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이 아니라, 특정 종교와 자본주의적 생활양식 사이에는 서로 보강하고 이끌어주는 관계가 있다는 말이다. 미카엘 뢰비는 베버의 이러한 주장을 역으로 뒤집어, 베버가 자신의 저작에서 빼놓은 하나의 장( ))을 찾아낸다. 바로 개신교 교회가 자본주의 발전과 선택적 친화성의 관계에 있다면, 역으로 가톨릭 교회는 자본주의 발전과 ‘부정적 친화성’(negative affinity)의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베버 자신도 이후 ?경제와 사회?나 ?사회경제사? 등의 저작에서 밝히고 있듯이, 가톨릭 교회(그리고 일부 개신교 교파) 내에는 자본주의 정신과 화해할 수 없는 기본적인 혐오가 존재한다. 즉 “상인은 하느님을 기쁘게 할 수 없다”(homo mercator vix aut numquam potest Deo placere)와 같은 구절에서 드러나는 이윤 추구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부정적 태도, 그리고 자본주의가 가져올 비인격적 관계에 대한 혐오와 같은 감정들이 그렇다. 베버가 빼먹은 가톨릭의 반자본주의적 성향에 대한 장은 이후 베르나르드 그루아튀상(Bernard Groethuysen), 에밀 풀라(?mile Poulat), 아민토레 판파니(Amintore Fanfani) 등에 의해 채워지게 된다.
가톨릭의 이러한 반자본주의적 성격은 당연히 맑스주의자들의 주의를 끌었다. 뢰비는 우선 맑스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라는 문장을 거론하면서, 이 문장이 그동안 종교 현상에 대한 맑스주의적 개념의 정수로 이해되어 왔다는 점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 표현이 들어 있는 맑스의 글(“종교적 고통은 현실 고통의 표현이면서 그와 동시에 현실 고통에 대한 저항이다. 종교는 억눌린 피조물의 한숨이고, 심장없는 세계의 심장이며, 영혼 없는 상황의 영혼이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 _ 헤겔 법철학 비판서설)을 전체적으로 주의 깊게 읽는다면, 종교를 사제들의 음모라고 보는 일방적인 해석보다는 인간 본질의 소외로서 종교를 바라 본 신헤겔주의 좌파의 입장에 더 가까운 표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이 표현을 포함한 몇몇 단편적이 언급 외에 맑스에게서 종교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다만 상품 물신숭배에 바탕한 자본주의를 비판하기 위한 언어로서 종교적인 메타포를 사용했을 뿐이다.
하지만 엥겔스 이후, 여러 맑스주의자들은 종교의 반자본주의적 성격에 주목했다. 엥겔스는 대부분의 종교가 기존 질서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역할을 하지만 상황에 따라 비판적, 저항적, 심지어 혁명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엥겔스는 원시그리스도교를 근대 사회주의와 비교하거나, 독일의 천년왕국설적 예언자들에 대한 칭송을 숨기지도 않았다. 그 외에도 카를 카우츠키는 토마스 뮌처와 토머스 모어에 대한 연구에서 이들을 근대 사회주의의 선구자로 묘사하기도 했다. 확신에 찬 무신론자였던 로자 룩셈부르크 역시 근대 사회주의자가 보수적인 사제보다 그리스도교의 근본 원칙에 더 충실하다고 주장하면서, 교회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고 억누르는 자들을 지지할 때 이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거슬러 행동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이 외에도 안토니오 그람시, 에른스트 블로흐, 뤼시앙 골드만, 그리고 페루의 호세 마리아테기에 이르기까지 쟁쟁한 맑스주의자들이 모두 사회주의 혁명에서 종교적 감정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했다는 것, 다시 말해 맑스주의와 종교 사이에 일정한 접점이 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 뢰비의 주장이다,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사회적 격변과 해방그리스도교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 시기는 195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의 약 35년간으로, 이 시기는 쿠바혁명의 성공과 ‘교회의 변화’를 천명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소집과 함께 시작되었다. 이 35년 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나라에서 군사 독재의 억압은 더욱 극심해졌고, 불평등으로 인한 빈곤과 급격한 도시화에 의한 삶의 피폐화는 더욱 악화되고 있었다. 하지만 쿠바로부터 용기를 얻은 혁명적 열기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교회의 입장 변화는, 현실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중 투쟁에 힘이 되었고 그 투쟁에 많은 그리스도교 성직자와 신자들이 직간접적으로 결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라틴아메리카의 이런 투쟁들 중에서 이 책의 3장에서 대표적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브라질의 민주화 운동과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이 주도한 엘살바도르 내전이다.
▶ 브라질의 교회와 민주화
뢰비는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브라질의 교회를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독특한 사례로 꼽는다. 브라질의 교회가 해방신학과 그에 기반한 사목활동가들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일한 교회이며, 세계에서 가장 큰 가톨릭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그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1960년대 이후 브라질에서 발생한 민중운동들은 대부분 이 교회 부문(그리스도교인들, 사목활동가들, 기초공동체 구성원들)이 낳은 산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960년대 초 브라질에서는 쿠바혁명과 프랑스의 영향으로 ‘가톨릭 좌파’라고 부를 수 있는 흐름이 형성되었고, 이 활동가들은 주로 세속적 좌파와 연대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고, 사회적 투쟁을 지원하며, (파울루 프레이리의 교육론에 바탕하여) 민중교육에 투신하는 방식으로 활동했다. 이 중에서도 가톨릭대학생회(JUC)와 민중교육운동(MEB)은 맑스주의적 방법을 채택하는 비종교적 정치운동인 ‘민중운동’(AP)을 결성한다. 하지만 이후 이러한 가톨릭 좌파는 가톨릭의 보수적 교계의 공격을 받았고, 구성원의 다수가 가톨릭에서 이탈하여 마오주의적 경향을 가진 ‘브라질 공산당’(PCdoB)에 입당하게 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브라질 정치에서 중요했던 전환점은 1964년의 군부 쿠데타였다. 쿠데타로 인한 정권 장악과 긴급조치 발표 이후, 군사정부는 저항세력을 숨겨주고 그들의 도피를 돕는 가톨릭의 성직자와 신도들에 대해서도 살해, 구금, 고문과 같은 극심한 탄압을 가했다. 그러나 가톨릭 성직자와 신도들에 대한 탄압은 돔 헬더 카마라 주교, 돔 아그넬루 로씨 주교와 같은 고위 성직자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고, 나아가 교황청까지도 브라질 사태에 대해 성명을 발표하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1970년대 내내 브라질 교회는 군부의 가장 강력한 적으로 자리매김했으며, 이후 80년대의 점진적인 민주화 과정에서의 다양한 운동들(노동자당, 유일노총, 무토지농민운동, 전국민중운동연합)에 기초공동체와 사목활동가 출신이 상당수 참여하여 활동하게 된다.
▶ 니카라과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니카라과에서는 호세 데 라 하라 신부가 메리놀 수녀회의 모라 클라크 수녀와 다른 수녀회 소속 수녀들의 도움을 받아 기초공동체 운동을 시작했고, 라틴아메리카 주교회의의 메데인 총회(1968년) 이후 이 기초공동체 운동은 크게 활성화 되어 빈민촌과 농촌으로 확산되면서 점점 급진화되었다. 1969년 산파블로 공동체에서 창립한 ‘그리스도교 청년운동’을 시작으로 다양한 그리스도교 운동단체들이 생겨났고, 이 운동단체들이 점차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으로 집결하게 되었다. 또한 농촌 지역에서는 카푸친회와 예수회가 평신도 지도자인 ‘말씀의 대표’를 육성했는데, 이들이 점차 급진성을 띠면서 소모사 정권의 국가수비대에 의한 탄압과 희생이 늘어나게 되었고, 이들 역시 산디티스타 민족해방전선으로 합류하게 되었다. 이렇게 가톨릭 성직자들과 신도들이 대거 참여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소모사 정권을 공격하기 시작했고, 결국 1979년 소모사 정권을 축출하면서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이 승리하게 된다. 이후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은 ?종교에 관한 선언?을 발표하여 그리스도교인들이 대대적으로 혁명에 참여한 역사적으로 유례없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후 보수적인 사제들을 추방하는 등 혁명정부와 그리스도교 사이에 몇 차례 갈등이 있었지만, 여러 신부들이 혁명정부의 장관으로 기용되는 등, 혁명정부가 1990년 선거에서 패배하기 전까지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었다.
▶ 오스카르 로메로 주교와 엘살바도르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
엘살바도르에서도 ‘메데인 총회’ 이후 기초공동체가 조직되기 시작했다.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에 의해 주도된 기초공동체 운동은, 점차 사제가 없는 지역에서 신앙공동체를 이끄는 역할을 하는 ‘말씀의 대표들’로 대체되었고, 이들은 니카라과에서와 마찬가지로 점차 급진화되었다. 이들은 단지 예수를 숭배하는 것보다 그의 모범을 따라 사회적 죄(착취와 자본주의)와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농민들의 공동체를 조직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은 루틸리오 신부가 군인들에 의해 살해되는 등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여러 민중운동은 이런 탄압 속에서 ‘파라분도 마르티 민족해방전선’으로 결집하여 군부정권과 내전을 이어 나갔다. 이 내전은 12년 동안 이어졌고, 1993년 정부와 합의를 이루어 내면서 오랜 갈등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러한 엘살바도르의 혁명 운동 과정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인물이 바로 오스카르 로메로 주교였다. 원래 사회 변혁보다는 개인적인 기도나 회심을 신봉하는 보수적인 성향의 성직자였으나, 루틸리오 그란데 신부의 죽음과 이어지는 극심한 탄압을 계기로 해방신학의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되게 된다. 주교좌성당에서 수천 명이 가난한 이들의 해방을 주장하는 그의 강론을 들었고, 그 강론은 교회의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 수십만 명에게 전해졌다. 이런 영향력을 두려워한 군부는 준군사조직인 ‘죽음의 부대’를 보내 미사를 집전 중이던 로메로 주교를 살해했고, 로메로 대주교의 장례식에 모인 사람들에게도 총격을 가해 35명을 다시 살해했다. 이 죽음으로 로메로 주교는 라틴아메리카 안팎의 모든 그리스도교 활동가들에게 카리스마적인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복음주의 교회 확산의 여러 가지 원인
해방그리스도교는 가톨릭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개신교 쪽에도 중요한 해방그리스도교 분파들이 있었고 이들은 가톨릭의 해방그리스도교와 유사한 방식으로 발전하여 여러 국면에서 가톨릭 해방그리스도교 운동과 결합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의 개신교에서 두드러진 움직임은 보수적이거나 극히 반혁명적인 종교 문화를 가지고 있는 복음주의 교회, 특히 오순절파 교회의 급속한 확산이다. 근본주의(‘문자주의적’ 성서 해석), 개인적 구원에 대한 전적인 강조, ‘믿음에 의한 치유’ 등과 같은 마술적 행태, 그리고 근대적 커뮤니케이션 매체(특히 텔레비전)의 집중적인 사용 등을 특징으로 갖는 이들 복음주의 교회들은 전통적인 개신교와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이들 중에서도 특히 종교적 우파에 속하는 선교기관들은 미국의 단체들과 관련이 있으며,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 우호적이다. 또한 대부분의 복음주의 교회들은 그 압도적인 보수적 종교문화로 인해 기존 질서, 심지어 사악한 군사독재의 옹호자가 되기도 했다.
흔히 라틴아메리카에서 이러한 복음주의 교회의 확산은 해방신학을 견제하고 사회운동을 방해하기 위한 미국의 ‘음모’와 같은 방식으로 설명되곤 했다. 하지만 뢰비는 이러한 ‘음모이론’만으로는 라틴�P메리카의 대다수 지역에서 복음주의 교회가 대중적 지지를 얻은 배경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라고 이야기한다. 복음주의 교회들이 미국의 달러를 대대적으로 투여해 눈부신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고 분석하는 것 역시 사태의 복잡성을 간과하는 것이라는 것이 뢰비의 주장이다. 실제로 하나의 단일한 설명은 존재하지 않으며, 사회적?정치적?문화적?종교적인 요인들을 복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 가톨릭에 대한 군사적?준군사적 폭력으로부터의 피난처로서의 역할, 당국자들이 존중하는 종교에 자신을 맡기면서 얻을 수 있는 안전의 보장, 술과 노름을 끊고 가족을 중시하도록 만드는 실질적인 삶의 개선 유인 등등. 또한 치유와 기적, 악귀추방과 같은, 특히 오순절 교회가 가지고 있는 라틴아메리카 대중 종교와의 친화성 또한 이 급격한 확산의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해방신학은 끝났는가?
보수적인 개신교의 급속한 확장이라는 문제 외에도 해방그리스도교적 사회운동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인은 바티칸의 움직임에서도 나타난다. 해방그리스도교가 라틴아메리카에서 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을 때, 바티칸은 어쩔 수 없이 이들을 용인했지만, 계속해서 라틴아메리카의 교회를 ‘정상화’, 즉 해방그리스도교에서 탈각시키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진보적인 주교가 선종하거나 자리를 옮기면, 그 자리에 보수적인 인물을 앉히는 방식으로 주로 진행되었고, 이렇게 새로 임명된 이들은 기존의 진보적 교회조직들을 내쫓는 방식으로 교회를 ‘정상화’시키고 있다.
이 외에도 80년대 말의 현실사회주의 블록의 붕괴, 신자유주의적 질서의 확장 등, 라틴아메리카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해방그리스도교의 기획은 쇠락을 거듭해 온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카엘 뢰비는 이 책의 ‘결론’에서 해방신학이 끝났다는 주장은 아직 이르다고 말한다. 뢰비는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민족해방전선이나 브라질의 무토지농민운동, 에콰도르의 원주민 운동 등은 사례로 들면서, 이 운동들이 명시적으로 해방그리스도교의 이념을 내세우고 있지는 않지만, 운동의 구성원들과 운동의 양식에는 여전히 해방그리스도교적 요소들이 남아 있다고 주장한다. 해방그리스도교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여러 세대 동안 그리스도교 활동가들의 종교적?정치적 문화를 형성했고, 이 활동가들에게 뿌리내린 윤리적?사회적 확신은 쉽게 포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해방그리스도교는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적?종교적 환경에 중요한 씨앗들을 남겼고, 이 씨앗이 어떻게 커갈지는 여전히 지켜보아야 할 문제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미카엘 뢰비
브라질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이다. 1938년, 오스트리아에서 이민 온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1960년에 상파울루 대학교 사회학과를 졸업하였다. 이후 프랑스에 유학하여, 1964년에 프랑스 소르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8년부터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강의하였으며, 스탠퍼드 대학교를 비롯한 미국의 여러 대학의 초청을 받아 강의한 바 있다. 현재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 명예 연구이사이고, 사회과학고등연구원, 암스테르담에 있는 국제연구·교육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for Research and Education)에서 강의하고 있다. 또한 여러 학술지의 편집에 관여하고 있으며, 프랑스 신 반자본당과 제4인터내셔널에서 활동하면서 브라질 노동자당이나 무토지농민운동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 등, 사회활동에도 활발하게 나서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2007년 파리에서 열린 제1차 국제생태사회주의회의(International Ecosocialist Meeting)를 조직하기도 했다. 미카엘 뢰비는 지금까지 수많은 논문과 책을 썼는데, 198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맑스, 루카치...등 맑스주의 사상을 지식사회학적 관점에서 다뤘고, 8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문화사회학적 관점에서 다양한 문화 현상, 특히 종교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많은 글을 발표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이 책 『신들의 전쟁』 이외에도 『체 게바라의 맑스주의』(1973, 2007), 『루카치 : 낭만주의에서 볼셰비즘까지』(1981), 『조합되고 불균등한 발전의 정치 : 영구혁명론』(1981), 『구원과 유토피아 : 중부 유럽의 해방적 유대교』(1992), 『세계 변화에 대해 : 정치철학 에세이-맑스에서 발터 벤야민까지』(1993), 『조국이냐 어머니 지구냐 : 민족 문제에 대한 에세이』(1998), 『프란츠 카프카 : 꺾이지 않는 몽상가』(2004), 『화재경보 : 벤야민의 ‘역사개념론’』(2005), 『체 게바라 : 꺼지지 않은 불꽃』(2007) 등이 있다.
역자 : 김항섭
전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정치학 석사를 마치고, 브라질 상파울루 가톨릭대학교에서 종교학 석사, 상파울루 감리교대학교에서 종교학 박사를 하였다. 현재 한신대학교 종교문화학과 교수이고 우리신학연구소 이사장을 맡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생태학의 도전과 그리스도교』, 『21세기 사회와 종교 그리고 유토피아』(공저), 『신자유주의시대 라틴아메리카 시민사회의 대응과 문화변동』(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물신』(프란츠 힌켈라메르트), 『생태 신학』(레오나르두 보프), 『종교사회학 : 마르크스주의적 관점』(프랑수아 후타르)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1장 l 종교와 정치 : 맑스와 베버의 재해석
1. 맑스주의와 종교 : 인민의 아편?
2. 가톨릭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막스 베버의 종교사회학에 빠져 있는 장(章)
2장 l 라틴아메리카의 해방그리스도교
1. 해방신학과 해방그리스도교
2. 해방신학에서의 근대성과 근대성 비판
3. 해방신학과 맑스주의
3장 l 라틴아메리카의 정치와 종교 : 세 가지 사례
1. 브라질 교회와 정치
2. 중미 그리스도교와 봉기의 기원
3. 해방 개신교와 보수 개신교
결론 l 해방신학은 끝났는가?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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