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꽃도 없고 시도 없는 사막의 시대에 피워 올린, 『들풀』
루쉰의 산문시집 『들풀』은 1924년에서 1926년 사이에 쓰여진 산문시 23편과 출간을 앞두고 첨가한 머리말을 묶은 산문시집이다. 이 시기는 후스 및 현대평론파와의 논쟁, 베이징여자사범대학교 사건, 3?18 참사, 4?12 사변 등 루쉰 생애에 있어 가장 혹독하고, 괴로운 때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루쉰의 창작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기도 했다. 이 당시 루쉰은 단편소설집(『방황』)과 함께 여러 편의 잡문집(『무덤』, 『화개집』, 『화개집속편』)을 발표했으며, 또 유년 시절과 젊은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아침 꽃 저녁에 줍다』도 썼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피와 살”을 가장 많이 드러낸 작품은 바로 이 산문시집 『들풀』이다.
『들풀』의 작품들은 루쉰의 내면세계를 응시하면서, 삶과 죽음의 존재 의의, 삶의 존재 방식을 묻는 작품들이 대다수이다. 루쉰은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자리하는 것들을 실존적 측면에서 집요하게 파헤쳤다. 「동냥치」라는 작품에서는 “보시”로 상징되는 동정과 연민과 자애로움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모든 사랑과 동정, 보시는 감정 면에서 짐이 되어 보시한 사람까지도 엮여들고 결국 초연하게 제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에서는 “나의 영혼의 손도 떨리고 있을 것이며, 영혼의 머리칼도 희끗희끗”해졌으며, “몸 밖의 청춘도 죄다 스러지고 세상 청년들이 죄 늙어지고” 만 “희망”이 깡그리 소진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루쉰은 그와 동시에 “희망”의 기만성과 허망성을 발견한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임을 안 그는 희망을 버린다. 또한 절망도 버린다. 양자를 모두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 마침내 철저한 ‘무’(?에 도달한다.『들풀』에서 가장 충격적인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무너지는 선의 떨림」에서는 작중의 늙은 여인을 통해 정신계 ‘전사’가 살아가는 세계와 현실적인 인간 세상과의 진실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모든 것을 바쳤지만 결국 사회 전체에 의해 버림받고 쫓겨나는 작중 인물의 운명은 루쉰의 그것과도 겹친다. 그러나 “그녀는, 냉정하게, 앙상한 석상처럼, 우뚝 일어섰다. 그녀는 널문을 열고 깊은 밤 속으로 걸어 나갔다. 싸늘한 욕설, 독한 웃음을 등 뒤에 남겨 둔 채.” 사회의 버림을 받은 그가 이제 사회를 버리고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다. 루쉰의 생명철학이 총괄되어 있는 작품 「길손」에서는 돌아가는 것도, 멈추어 쉬는 것도 거부하고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인 나그네가 등장한다. 늙은이는 앞은 무덤뿐이라고 만류하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것이 루쉰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었다. 유토피아나 이상세계가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나 신념이 있지는 않았지만, 결과를 셈하지 않고, 희망을 품지 않고 언제까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루쉰의 절대 명령이었다.
『들풀』과 『아침 꽃 저녁에 줍다』를 마무리한 후 루쉰의 문학 창작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나중에 나는 더 이상 이런 것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날로 변화하는 시대 상황이 이런 글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런 감상이 존재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루쉰의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든 꽃도 아름답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이하 『아침 꽃…』)에는 루쉰이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되돌아보며 집필한 10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고향 사오싱에서 어린 루쉰과 함께했던 가족, 친척, 친구, 하인들과의 에피소드(「백초원에서 삼미서옥으로」, 「키다리와 『산해경』, 「『24효도』」, 「오창묘의 제놀이」, 「무상」, 「아버지의 병환」), 약소국의 신세로 전락한 나라의 청년으로서 유학 시절 겪어야 했던 수모와 그로 인한 깨우침(「후지노 선생」), 신해혁명 시기의 풍경(「판아이눙」)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미문들이다. 날카롭고 냉철한 루쉰의 잡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서정적이고 따뜻한 필체를 느낄 수 있음은 물론, 과거를 회고하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놓치지 않는 루쉰의 통찰력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것이 『아침 꽃…』의 묘미다.
『아침 꽃…』을 읽으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집필 시점과 당시 루쉰의 행보다. 루쉰은 『아침 꽃…』의 10편을 1926년 한 해 동안, 머리말과 후기를 1927년에 완성했다. 그리고 이 글들을 집필하면서 베이징에서 샤먼으로, 샤먼에서 광저우로, 다시 상하이로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했다. 1926년 일어난 3?18 참사가 시발점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연합한 군벌에 반대하는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를 무참히 진압한 이 사건으로 인해 루쉰의 제자였던 류허전, 양더췬 등이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루쉰 역시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베이징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후 샤먼대학의 교수로 부임했으나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가 맞지 않아 한 학기 만에 광저우의 중산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광저우에서는 1927년 4월 12일 장제스가 공산당 세력을 무참히 학살한 4?12 정변이 일어나 루쉰이 가르치던 학생들이 체포되거나 행방불명되고, 루쉰도 결국 이 해 9월에 상하이로 거주지로 옮기고, 여기서 생을 마감한다.
다시 말해 『아침 꽃…』을 집필하던 시기는 루쉰에게 시련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사회적 불행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루쉰은 이 시기를 묵은 원고를 정리하는 것으로 소일을 한다. 그는 『들풀』의 편집을 마치고, 『망위안』에 ‘옛 일을 다시 들추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원고를 정리하여 제목을 『아침 꽃…』으로 고친 후 이렇게 고백한다. “아침 이슬을 함초롬히 머금은 꽃을 꺾는다면 색깔도 향기도 훨씬 더 좋을 터이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루쉰은 왜 아침 꽃을 꺾을 수 없다고 했을까? 저녁이면 이미 아침이, 아침이면 지난 저녁이 흘러간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루쉰은 아침과 저녁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든 ‘꽃’이라도 ‘뽑거나, 버리지’ 않고 ‘줍고자’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 다시보기 & 다시쓰기, 『새로 쓴 옛날이야기』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루쉰의 세번째 소설집으로 1922년부터 1935년 사이에 쓴 역사소설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제목 그대로 신화와 전설, 사실 등의 옛이야기를 루쉰이 새로 쓰고, 새로 해석한 일종의 ‘장르문학’이다.
5?4신문화운동의 퇴조기였던 1922년에 쓰여진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는 중국의 창조 신화인 여와 전설이 새롭게 쓰여진 것이고, 3?18 참사가 일어났던 1926년에 쓴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에는 한때는 영웅이며 전사였으나 몰락하여 끼니를 걱정하고, 아내까지 떠나고 만 예의 이야기를, 역시 같은 해에 쓴 「검을 벼린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불의한 권력에 복수하는 자객 연지오자를 그려내고 있다. 베이징에서 샤먼으로, 다시 광저우로 그리고 마침내 정착하게 된 상하이에서 루쉰은 『새로 쓴 옛날이야기』의 나머지 5편의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묵자가 초나라 왕을 만나 송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저지시킨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전쟁을 막은 이야기」, 우의 치수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홍수를 막은 이야기」, 노자( ?가 『도덕경』을 남기게 된 사연을 담은 「관문을 떠난 이야기」, 백이와 숙제의 고사를 차용한 「고사리를 캔 이야기」, 장자의 일화를 담은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가 그것이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의 소설은 단순한 리바이벌이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렌즈를 통해 ‘리라이팅’된 옛날이야기, 곧 지금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연대를 정확히 알 수도 없는 먼 고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행간 속에서는 오히려 집필 당시 중국 사회나 루쉰이 처해 있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에서는 전욱과 공공으로 대표되는 봉건세력과, 군벌들의 각축으로 인해 억눌려야 했던 작가의 창작욕과 의지를 고발하고 있으며,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와 「검을 벼린 이야기」에서는 각각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수배를 받아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 버린 루쉰 자신에 대한 자조와 탄식이, 그러면서도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계에 대한 울분과 복수를 꿈꾸는 루쉰의 모습이 그려진다. 「고사리를 캔 이야기」, 「관문을 떠난 이야기」, 「홍수를 막은 이야기」,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인들의 무능을 조롱한다.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지조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백이와 숙제에 대한 풍자를 통해 전통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를 비난하고, 시든 나무토막처럼 앉아 ‘함도 없고 하지 않음도 없다’는 알쏭달쏭한 말로 민중들을 졸게나 만드는 노자에게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강의 승리’라며 침략자들에게 화친정책으로 일관하는 무능한 정부의 모습을 덧씌운다. 입으로는 옷이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면서도 벌거벗은 사내에게 자신의 옷가지 하나 내주지 않는 장자 역시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관념론자에 불과하다. 「홍수를 막은 이야기」에서는 민중들이 홍수로 고통을 겪든 말든, 한가롭게 낚시나 연회를 즐기는 부패한 관리와 무식한 학자들의 작태를 가감 없이 묘사한다.
루쉰은 죽기 1년 전인 1935년 마지막 4편의 작품을 탈고하면서 서둘러 이 소설집을 완성했다. 그는 왜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까지 이 책을 완성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끊이지 않는 서구충격과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 정치 모리배들의 반민중성과 노예근성, 미미해 보이는 혁명의 성과……. 1930년대 상하이의 조계지에서 정치적 압박과 언론의 탄압을 견뎌야 했던 루쉰에게 이 소설 속의 세계들은 그가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였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루쉰
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정전(阿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역자 : 한병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였고 전남대학교에서『노신 잡문 연구』(199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국립 순천대학교 교수. 루쉰 관련 논문으로「노신에게 있어서의 문학과 혁명」(1988),「 혁명문학논쟁 시기 노신의 번역」(1993),「 노신의 번역관」(1993),「 노신과 지식인?노신은 무엇에 저항하였는가」(2003),「 건국초기 중화인민공화국 어문 교과서 속의 노신」(2006) 등이 있다.
역자 : 김하림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剋瀯瓚?형성과 전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조선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루쉰의 문학과 사상』(공저, 1990), 『중국문화대혁명시기 학문과 예술』(공저, 2007)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중국인도 다시 읽는 중국사람 이야기』(1998), 『한자왕국』(공역, 2002),『 중국의 차문화』(공역, 2004),『 차가운 밤』(2010) 등이 있다.
역자 : 유세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서 루쉰 산문시집『들풀』의 상징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루쉰식 혁명과 근대중국』(2008),『화엄의 세계와 혁명?동아시아의 루쉰과 한용운』(2009)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들풀』(1996),『 루쉰전』(공역, 2007)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들풀
제목에 부쳐
가을밤
그림자의 고별
동냥치
나의 실연? 옛것을 본뜬 신식의 통속시
복수
복수(2)
희망
눈
연
아름다운 이야기
길손
죽은 불
개의 힐난
잃어버린 좋은 지옥
빗돌 글
무너지는 선의 떨림
입론
죽은 뒤
이러한 전사
총명한 사람, 바보, 종
마른 잎
빛바랜 핏자국 속에서? 몇몇 죽은 자와 산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기념하여
일각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머리말
개 고양이 쥐
키다리와 『산해경』
『24효도』
오창묘의 제놀이
무상
백초원에서 삼미서옥으로
아버지의 병환
사소한 기록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
후기
새로 쓴 옛날이야기
서언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
홍수를 막은 이야기
고사리를 캔 이야기
검을 벼린 이야기
관문을 떠난 이야기
전쟁을 막은 이야기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
『들풀』에 대하여 『아침 꽃 저녁에 줍다』에 대하여 『새로 쓴 옛날이야기』에 대하여
꽃도 없고 시도 없는 사막의 시대에 피워 올린, 『들풀』
루쉰의 산문시집 『들풀』은 1924년에서 1926년 사이에 쓰여진 산문시 23편과 출간을 앞두고 첨가한 머리말을 묶은 산문시집이다. 이 시기는 후스 및 현대평론파와의 논쟁, 베이징여자사범대학교 사건, 3?18 참사, 4?12 사변 등 루쉰 생애에 있어 가장 혹독하고, 괴로운 때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루쉰의 창작이 절정에 이른 시기이기도 했다. 이 당시 루쉰은 단편소설집(『방황』)과 함께 여러 편의 잡문집(『무덤』, 『화개집』, 『화개집속편』)을 발표했으며, 또 유년 시절과 젊은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아침 꽃 저녁에 줍다』도 썼다. 그러나 그가 스스로 “피와 살”을 가장 많이 드러낸 작품은 바로 이 산문시집 『들풀』이다.
『들풀』의 작품들은 루쉰의 내면세계를 응시하면서, 삶과 죽음의 존재 의의, 삶의 존재 방식을 묻는 작품들이 대다수이다. 루쉰은 자신의 의식 밑바닥에 자리하는 것들을 실존적 측면에서 집요하게 파헤쳤다. 「동냥치」라는 작품에서는 “보시”로 상징되는 동정과 연민과 자애로움에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모든 사랑과 동정, 보시는 감정 면에서 짐이 되어 보시한 사람까지도 엮여들고 결국 초연하게 제 길을 걸을 수 없기 때문이다. 「희망」에서는 “나의 영혼의 손도 떨리고 있을 것이며, 영혼의 머리칼도 희끗희끗”해졌으며, “몸 밖의 청춘도 죄다 스러지고 세상 청년들이 죄 늙어지고” 만 “희망”이 깡그리 소진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러나 루쉰은 그와 동시에 “희망”의 기만성과 허망성을 발견한다. “절망이 허망한 것은 희망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임을 안 그는 희망을 버린다. 또한 절망도 버린다. 양자를 모두 허망한 것으로 만들어 마침내 철저한 ‘무’(?에 도달한다.『들풀』에서 가장 충격적인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무너지는 선의 떨림」에서는 작중의 늙은 여인을 통해 정신계 ‘전사’가 살아가는 세계와 현실적인 인간 세상과의 진실한 관계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모든 것을 바쳤지만 결국 사회 전체에 의해 버림받고 쫓겨나는 작중 인물의 운명은 루쉰의 그것과도 겹친다. 그러나 “그녀는, 냉정하게, 앙상한 석상처럼, 우뚝 일어섰다. 그녀는 널문을 열고 깊은 밤 속으로 걸어 나갔다. 싸늘한 욕설, 독한 웃음을 등 뒤에 남겨 둔 채.” 사회의 버림을 받은 그가 이제 사회를 버리고 거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앞을 향해 나아가는 것뿐이다. 루쉰의 생명철학이 총괄되어 있는 작품 「길손」에서는 돌아가는 것도, 멈추어 쉬는 것도 거부하고 오직 앞으로 나아갈 뿐인 나그네가 등장한다. 늙은이는 앞은 무덤뿐이라고 만류하지만 그는 말을 듣지 않는다. 이것이 루쉰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이었다. 유토피아나 이상세계가 기다리고 있거나, 혹은 그럴 것이라는 확신이나 신념이 있지는 않았지만, 결과를 셈하지 않고, 희망을 품지 않고 언제까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루쉰의 절대 명령이었다.
『들풀』과 『아침 꽃 저녁에 줍다』를 마무리한 후 루쉰의 문학 창작은 내리막길을 걷는다. “나중에 나는 더 이상 이런 것을 쓰지 않게 되었다. 날로 변화하는 시대 상황이 이런 글을 허락하지 않으며, 이런 감상이 존재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루쉰의 말에서 그 이유를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시든 꽃도 아름답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이하 『아침 꽃…』)에는 루쉰이 자신의 유년기와 청년기를 되돌아보며 집필한 10편의 산문이 수록되어 있다. 고향 사오싱에서 어린 루쉰과 함께했던 가족, 친척, 친구, 하인들과의 에피소드(「백초원에서 삼미서옥으로」, 「키다리와 『산해경』, 「『24효도』」, 「오창묘의 제놀이」, 「무상」, 「아버지의 병환」), 약소국의 신세로 전락한 나라의 청년으로서 유학 시절 겪어야 했던 수모와 그로 인한 깨우침(「후지노 선생」), 신해혁명 시기의 풍경(「판아이눙」)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는 미문들이다. 날카롭고 냉철한 루쉰의 잡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서정적이고 따뜻한 필체를 느낄 수 있음은 물론, 과거를 회고하면서도 현실의 문제를 놓치지 않는 루쉰의 통찰력을 동시에 읽을 수 있는 것이 『아침 꽃…』의 묘미다.
『아침 꽃…』을 읽으면서 주목해야 할 것은 집필 시점과 당시 루쉰의 행보다. 루쉰은 『아침 꽃…』의 10편을 1926년 한 해 동안, 머리말과 후기를 1927년에 완성했다. 그리고 이 글들을 집필하면서 베이징에서 샤먼으로, 샤먼에서 광저우로, 다시 상하이로 세 번이나 거처를 옮겨야 했다. 1926년 일어난 3?18 참사가 시발점이었다. 일본 제국주의 세력과 연합한 군벌에 반대하는 청년학생들과 시민들의 시위를 무참히 진압한 이 사건으로 인해 루쉰의 제자였던 류허전, 양더췬 등이 목숨을 잃었을 뿐 아니라, 루쉰 역시 이 사건의 배후로 지목되어 베이징을 떠나야 했던 것이다. 이후 샤먼대학의 교수로 부임했으나 보수적인 학교 분위기가 맞지 않아 한 학기 만에 광저우의 중산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나 광저우에서는 1927년 4월 12일 장제스가 공산당 세력을 무참히 학살한 4?12 정변이 일어나 루쉰이 가르치던 학생들이 체포되거나 행방불명되고, 루쉰도 결국 이 해 9월에 상하이로 거주지로 옮기고, 여기서 생을 마감한다.
다시 말해 『아침 꽃…』을 집필하던 시기는 루쉰에게 시련의 연속이었다. 계속되는 사회적 불행 속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루쉰은 이 시기를 묵은 원고를 정리하는 것으로 소일을 한다. 그는 『들풀』의 편집을 마치고, 『망위안』에 ‘옛 일을 다시 들추기’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원고를 정리하여 제목을 『아침 꽃…』으로 고친 후 이렇게 고백한다. “아침 이슬을 함초롬히 머금은 꽃을 꺾는다면 색깔도 향기도 훨씬 더 좋을 터이나, 나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루쉰은 왜 아침 꽃을 꺾을 수 없다고 했을까? 저녁이면 이미 아침이, 아침이면 지난 저녁이 흘러간 시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루쉰은 아침과 저녁에 집착하지 않았다. 그래서 시든 ‘꽃’이라도 ‘뽑거나, 버리지’ 않고 ‘줍고자’한 것이다.
과거와 현재 다시보기 & 다시쓰기, 『새로 쓴 옛날이야기』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루쉰의 세번째 소설집으로 1922년부터 1935년 사이에 쓴 역사소설 8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소설집의 작품들은 제목 그대로 신화와 전설, 사실 등의 옛이야기를 루쉰이 새로 쓰고, 새로 해석한 일종의 ‘장르문학’이다.
5?4신문화운동의 퇴조기였던 1922년에 쓰여진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는 중국의 창조 신화인 여와 전설이 새롭게 쓰여진 것이고, 3?18 참사가 일어났던 1926년에 쓴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에는 한때는 영웅이며 전사였으나 몰락하여 끼니를 걱정하고, 아내까지 떠나고 만 예의 이야기를, 역시 같은 해에 쓴 「검을 벼린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불의한 권력에 복수하는 자객 연지오자를 그려내고 있다. 베이징에서 샤먼으로, 다시 광저우로 그리고 마침내 정착하게 된 상하이에서 루쉰은 『새로 쓴 옛날이야기』의 나머지 5편의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묵자가 초나라 왕을 만나 송나라를 정벌하려는 계획을 저지시킨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전쟁을 막은 이야기」, 우의 치수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홍수를 막은 이야기」, 노자( ?가 『도덕경』을 남기게 된 사연을 담은 「관문을 떠난 이야기」, 백이와 숙제의 고사를 차용한 「고사리를 캔 이야기」, 장자의 일화를 담은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가 그것이다.
『새로 쓴 옛날이야기』의 소설은 단순한 리바이벌이 아니다. 가장 현실적인 렌즈를 통해 ‘리라이팅’된 옛날이야기, 곧 지금의 이야기이다. 따라서 연대를 정확히 알 수도 없는 먼 고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그 행간 속에서는 오히려 집필 당시 중국 사회나 루쉰이 처해 있던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에서는 전욱과 공공으로 대표되는 봉건세력과, 군벌들의 각축으로 인해 억눌려야 했던 작가의 창작욕과 의지를 고발하고 있으며,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와 「검을 벼린 이야기」에서는 각각 주인공의 모습을 통해 수배를 받아 도망치는 신세가 되어 버린 루쉰 자신에 대한 자조와 탄식이, 그러면서도 부조리하고 폭력적인 세계에 대한 울분과 복수를 꿈꾸는 루쉰의 모습이 그려진다. 「고사리를 캔 이야기」, 「관문을 떠난 이야기」, 「홍수를 막은 이야기」,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지식인들의 무능을 조롱한다. 새로운 세계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나라 곡식을 먹지 않는 것으로 지조를 다한다고 생각하는 백이와 숙제에 대한 풍자를 통해 전통에 대한 무조건적인 숭배를 비난하고, 시든 나무토막처럼 앉아 ‘함도 없고 하지 않음도 없다’는 알쏭달쏭한 말로 민중들을 졸게나 만드는 노자에게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강의 승리’라며 침략자들에게 화친정책으로 일관하는 무능한 정부의 모습을 덧씌운다. 입으로는 옷이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면서도 벌거벗은 사내에게 자신의 옷가지 하나 내주지 않는 장자 역시 현실에서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관념론자에 불과하다. 「홍수를 막은 이야기」에서는 민중들이 홍수로 고통을 겪든 말든, 한가롭게 낚시나 연회를 즐기는 부패한 관리와 무식한 학자들의 작태를 가감 없이 묘사한다.
루쉰은 죽기 1년 전인 1935년 마지막 4편의 작품을 탈고하면서 서둘러 이 소설집을 완성했다. 그는 왜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까지 이 책을 완성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보지 않으려 해도 볼 수밖에 없었던 절망적 현실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편전쟁 이후 끊이지 않는 서구충격과 일본 제국주의의 압박, 정치 모리배들의 반민중성과 노예근성, 미미해 보이는 혁명의 성과……. 1930년대 상하이의 조계지에서 정치적 압박과 언론의 탄압을 견뎌야 했던 루쉰에게 이 소설 속의 세계들은 그가 마음껏 상상력을 펼칠 수 있고, 비판할 수 있는 자유로운 세계였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루쉰
迅,본명 : 저우수런(周樹人), 자 : 위차이(豫才)
중국 현대 문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루쉰은 당대의 중국 예술과 화에서 다른 어떤 작가와도 비견될 수 없는 위치를 차지한다. 중국 공산당이 국민적 영웅으로 찬양한 루쉰은 중국혁명의 지적 원천으로서 추앙받아 왔으며, 마오쩌둥을 위해 사상적 기반을 마련한 인물이기도 하다.
저장성 사오싱(紹興)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조부의 하옥, 아버지의 병사 등으로 어려서부터 고생스럽게 살았다. 청년시대에 진화론과 니체의 초인철학, 톨스토이의 박애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1898년 난징의 강남수사학당에 입학, 당시의 계몽적 신학문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1902년 졸업 후 일본에 유학, 고분학원을 거쳐 1904년 센다이의학전문학교에 입학하였으나, 문학의 중요성을 통감하고 의학을 단념, 국민정신의 개조를 위하여 문예 활동에 힘썼다. 1905~1907년 혁명당원의 활동에 참가하고, ‘마라시력설’, ‘문화편지론’ 등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 무렵 유럽의 피압박민족 및 슬라브계 작품에 공감하여 1909년 동생 저우쭤런(周作人)과 ‘역외소설집’을 공역하는 한편, 망명중인 장빙린(章炳麟)에게 사사하였다.
1909년 귀국하여 고향에서 교편을 잡다가 1911년 신해혁명이 일어나자, 남경임시정부와 북경정부의 교육부원이 되어 일하면서 틈틈이 금석 탁본의 수집, 고서 연구 등에 심취하였다. 1918년 문학혁명을 계기로, 처음으로 ‘루쉰(魯迅)’이라는 필명을 사용, 중국현대문학사상 첫번째의 백화소설인 ‘광인일기’를 발표하여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다. 5·4운동 전후 ‘신청년’ 잡지의 일에 참가하여 ‘5·4’ 신문화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1918년에서 1926년에 이르는 동안 창작을 계속하여 소설집 ‘눌함’, ‘방황’, 논문집 ‘분(墳)’, 산문시집 ‘야초’, 산문집 ‘조화석습’, 잡문집 ‘열풍’, ‘화개집(華蓋集)’, ‘화개집 속편’ 등을 출판하였다. 이 중에 ‘공을기(孔乙己)’, ‘고향’, ‘축복’ 등을 발표하여 중국 근대문학을 확립하였는데, 1921년 12월에 발표된 중편소설 ‘아정전(阿正傳)’은 중국현대문학사상 불후의 대표작으로 세계적 수준의 작품이다. 많은 외국 작가의 작품을 번역하였고, 1920년 이후에는 베이징대학,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았다.
1924년 저우쭤런과 어사사를 조직하고, 1925년 청년문학사와 미명사(未名社)를 조직하였으나, 1926년 8월 베이양 군벌의 문화 탄압과 격돌한 베이징 학생애국운동 지지로 말미암아 베이징을 탈출, 아모이대학 중문과 주임으로 부임하고, 1927년 1월 당시의 혁명 중심 광저우(廣州)에 이르러 중산대학의 교무주임이 되었다. 1927년 가을 상하이의 조계에 숨어 쉬광핑(許廣平)과 동거하며 문필생활에 몰두하는 한편, 창조사, 태양사 등 혁명문학을 주창하는 급진적 그룹 및 신월사(新月社) 등 우익적 그룹에 대한 논전을 통하여 매우 전투적인 사회 단평(短評)의 문체를 확립하였다.
한편 소비에트 러시아 문학작품을 번역하여 소개하기도 하였다. 1930년 전후하여 중국자유운동대동맹, 중국좌익작가연맹과 중국민권보장동맹에 참가하여 국민당 정부의 독재 통치와 정치 박해에 항거하였다. 1931년 만주사변 뒤에 대두된 민족주의 문학, 예술지상주의 및 소품문파(小品文派)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을 가하였다. 1927년부터 1936년까지 역사소설집 ‘고사신편’을 출판하였고, 대부분의 작품과 잡문은 ‘이이집’, ‘삼한집’, ‘이심집’, ‘남강북조집’, ‘위자유서’, ‘준풍월담’, ‘화변문학’, ‘차개정잡문’, ‘차개정잡문 이편’, ‘차개정잡문 말편’, ‘집외집’과 ‘집외집습유’ 등에 수록되었다.
또 1931년부터 판화 운동도 지도하여 중국 신판화의 기틀을 다졌다. 루쉰의 일생은 중국 문화사업에 지대한 공헌을 이룩하였다. ‘미명사(未名社)’, ‘조화사(朝花社)’ 등 문학 단체를 영도하고 지지하였으며, ‘국민신보부간’, ‘망원(莽原)’, ‘어사(語絲)’, ‘분류(奔流)’, ‘맹아(萌芽)’, ‘역문(譯文)’ 등 문예잡지를 주편하였고, 청년 작가를 열성적으로 적극 배양하였다. 외국의 진보된 문학 작품을 번역하는 데 힘쓰고, 국내외의 저명한 회화, 목각을 소개하였으며, 대량의 고전문학을 수집, 연구, 정리하고, ‘중국소설사략’, ‘한문학사강요’를 저술하였으며, ‘혜강집’을 정리하고 ‘회계군고서잡록’, ‘고소설구침(古小說鉤沈)’, ‘당송전기록’, ‘소설구문초’ 등등을 집록하였다. 죽기 직전에는 항일투쟁 전선을 둘러싸고 저우양(周揚) 등과 논쟁을 벌이기도 하였으나, 그가 죽은 뒤에는 대체로 그의 주장에 따른 형태로 문학계의 통일전선이 형성되었다.
그의 문학과 사상에는 모든 허위를 거부하는 정신과 언어의 공전이 없는, 어디까지나 현실에 뿌리박은 강인한 사고가 뚜렷이 부각되어 있다. 1936년 10월 19일 폐결핵으로 말미암아 상하이에서 세상을 떠나고 민중 만여 명이 자발적으로 공제(公祭)를 거행하여 훙자오만국공묘에 묻혔다. 1956년 루쉰의 유해는 훙커우공원에 이장되었다. 1938년 ‘루쉰전집’ 20권이 출판되었다. 그를 혁명의 모범이자 사상의 근원으로 여긴 마오쩌둥에 의해 20세기 내내 중국을 지배한 개혁과 혁명적 변화의 선동가로서 거의 신적인 존재로까지 추앙받았다.
인민정부 성립 후, 루쉰의 저서는 분야별로 나뉘어 ‘루쉰전집’ 10권, ‘루쉰역문집’ 10권, ‘루쉰일기’ 2권, ‘루쉰서신집’이 간행되었고, 루쉰이 편교(編校)한 고적(古籍) 여러 종류도 다시 간행되었다. 1981에는 ‘루쉰전집’ 16권이 출판되었다. 베이징, 상하이, 사오싱, 아모이 등지에는 전후하여 루쉰 박물관, 기념관 등이 건립되었다.
역자 : 한병곤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를 졸업하였고 전남대학교에서『노신 잡문 연구』(1995)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국립 순천대학교 교수. 루쉰 관련 논문으로「노신에게 있어서의 문학과 혁명」(1988),「 혁명문학논쟁 시기 노신의 번역」(1993),「 노신의 번역관」(1993),「 노신과 지식인?노신은 무엇에 저항하였는가」(2003),「 건국초기 중화인민공화국 어문 교과서 속의 노신」(2006) 등이 있다.
역자 : 김하림
고려대학교 중어중문학과에서『?剋瀯瓚?형성과 전변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 조선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루쉰의 문학과 사상』(공저, 1990), 『중국문화대혁명시기 학문과 예술』(공저, 2007)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중국인도 다시 읽는 중국사람 이야기』(1998), 『한자왕국』(공역, 2002),『 중국의 차문화』(공역, 2004),『 차가운 밤』(2010) 등이 있다.
역자 : 유세종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에서 루쉰 산문시집『들풀』의 상징체계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현재는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에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루쉰식 혁명과 근대중국』(2008),『화엄의 세계와 혁명?동아시아의 루쉰과 한용운』(2009)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들풀』(1996),『 루쉰전』(공역, 2007)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루쉰전집』을 발간하며
들풀
제목에 부쳐
가을밤
그림자의 고별
동냥치
나의 실연? 옛것을 본뜬 신식의 통속시
복수
복수(2)
희망
눈
연
아름다운 이야기
길손
죽은 불
개의 힐난
잃어버린 좋은 지옥
빗돌 글
무너지는 선의 떨림
입론
죽은 뒤
이러한 전사
총명한 사람, 바보, 종
마른 잎
빛바랜 핏자국 속에서? 몇몇 죽은 자와 산 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기념하여
일각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머리말
개 고양이 쥐
키다리와 『산해경』
『24효도』
오창묘의 제놀이
무상
백초원에서 삼미서옥으로
아버지의 병환
사소한 기록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
후기
새로 쓴 옛날이야기
서언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
달나라로 도망친 이야기
홍수를 막은 이야기
고사리를 캔 이야기
검을 벼린 이야기
관문을 떠난 이야기
전쟁을 막은 이야기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
『들풀』에 대하여 『아침 꽃 저녁에 줍다』에 대하여 『새로 쓴 옛날이야기』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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