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위대한 제국의 조건
제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넘치는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와 강력한 군대, 그리고 풍요로운 재화. 그런 것들을 모두 갖춘 것이 제국이라면, 로마제국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도 어째서 1차, 2차, 3차로 이어질 만큼 많은 패배를 겪었던 것일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제국의 조건이 옳은지, 또 가장 강력한 집단의 자질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제국의 탄생』은 제국이 되는 조건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천재적인 지도자나 넓은 영토, 강한 군사력과 엄청난 부가 있다고 해서 저절로 위대한 제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승리를 거머쥐는 집단의 비결은 전 세계를 걸쳐 고대에나 지금에나 똑같다는 것이다. 전투에서 패배해도 결국 전쟁에서는 이기게 만든 로마인들의 자질은 어떤 것일까? 제국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과학, 클리오다이내믹스
수학과 진화생물학, 생태학과 게임이론을 녹여내어 세계사를 읽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있는 통섭형 연구의 프런티어인 저자 피터 터친은 역사란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책을 시작한다. 수학 모형과 행동 이론이라는 과학적 프리즘을 통해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기적 양상을 드러낸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구 역학과 역사적 발전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인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의 관점에서 제국의 역사를 훑어간다. 로마, 몽골, 러시아, 프랑스,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사를 아우르는 풍부한 사료와 다채로운 텍스트, 새로운 방법론 속에서는 로마제국도 핵심 대상이기보다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도킨스, 로버트 퍼트넘, 폴 크루그먼, 맬컴 글래드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자와 이론을 불러내며 전방위적인 사유의 향연을 펼치는 이 책은 최신 학문들의 통찰들을 조화롭게 녹여내어 새로운 역사 읽기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노련한 역사가의 감각과 통찰에만 기대왔던 것이 이제까지의 역사였다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과학을 통해 거듭난 진정한 역사과학(Historical Science),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다.
제국의 탄생: 무엇이 제국을 만드는가
제국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제국을 ‘영토가 넓고 복잡한 권력 구조를 가진 다민족국가’라고 정의한다. 제국이란 민족성이나 군사력 같은 내적 요인이 아닌, 통상 민족으로 구별되는 ‘집단 간의 관계’ 속에서 태동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두 문명이 충돌하기에 ‘문명의 단층선’이라고도 하는 변경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충돌할 때, 제국은 움트게 된다.
그러나 변경에서 충돌한 모든 집단이 제국이 되는 것은 아닌데, 그 충돌을 견뎌내기 위해 강력한 내적 결속을 이뤄 승리한 집단만이 결국 제국을 이루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 내적 결속의 능력 즉 협력의 역량을 ‘집단행동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자본’인 ‘아사비야’라고 부른다. 12세기 무슬림 사회학자인 이븐 할둔이 제시한 개념인 아사비야는 사막의 혼란 속에서 거대한 이슬람제국을 탄생시킨 역량이자 세계 모든 제국을 탄생시킨 씨앗이다. 아사비야는 계급과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어 구성원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더 큰 집단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그 아사비야를 이끌어내는 것이 합리적인 것보다는 ‘옳은 것’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실질적인 당장의 보상보다는 정신적인 가치와 그 충만감이 더 큰 집단을 만들 수 있는 신뢰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는 한 민족적 집단만을 결속하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출신이 서로 다른 여러 집단들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 이것이 ‘초민족 공동체’ 제국을 이루는 아사비야의 비밀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현대의 제국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초국적 거대기업을 이런 원리로 바라보았을 때 역시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강한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나라들에서만 이런 거대기업이 탄생하며, 이 기업들이 외적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내부에서는 CEO부터 사원에 이르기까지 구성원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현대의 경영학과 사회학 이론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목이다.
제국의 몰락: 거대한 인간 집단은 어떻게 무너지기 시작하는가
그렇다면 왜 위대한 제국들은 다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가? 제국 탄생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면 멸망의 법칙도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2부에서는 끝없는 황금기가 지속될 것 같던 중세 유럽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로마제국이 어떻게 시들어갔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역사의 순환 이론을 제시하고, ‘몰락의 원리’를 파악해낸다. 제국 탄생의 시기가 ‘통합의 시대’였다면 ?락의 시기는 ‘분열의 시대’다.
사회의 부가 늘어나면 엘리트층은 더 많은 부를 비축하면서 부패하게 된다. 또 하위 계급도 부를 쌓아 신분상승을 꾀하면서 사회 피라미드의 상층부가 무거워진다. 그에 따라 부패와 분배 불평등이 심해지고, 계급간의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부패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문제다. 그 과정은 아사비야가 사라져가는 과정이다. 협력하지 못하는 사회는 다양한 분쟁과 재난에 맞닥뜨린다. 내전에 노동력과 재화를 빼앗기기 시작하면 당연히 전염병이나 기근 같은 재난을 관리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할 힘이 떨어진다. 몰락은 그저 기후나 병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부패와 그에 따른 내전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로마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유지되던 귀족과 평민의 결속이 부패와 사치로 무너졌을 때 아사비야가 사라졌고, 몰락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침략과 재난 등의 위기는 멸망의 징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위기 때문에 내적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한 집단은 문화나 사회적으로 한 단계 더 진보하게 된다. 진짜 위기는 이 아사비야가 사라질 때다. 신뢰가 무너질 때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날 제국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이제까지 살펴본 제국의 조건, 집단행동의 원리를 통해 현대 세계를 균형 있게 바라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제국인 미국으로부터 제국 몰락의 신호, 즉 아사비야의 감소에 따른 다양한 문제를 읽어내고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 미국 정치의 모습을 돌아본다.한편, 아랍권의 수많은 테러 사태를 ‘이슬람교에 내재한 어떤 광신’ 등의 안이한 시각으로 보지 않고 이 역시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강대한 변경에 대항하기 위한 이슬람사회의 대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제국의 정의에 가장 들어맞는’ 중국을 다음번 세계 패권국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어 제국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 체첸을 연방에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면 세계 제국으로 다시 발돋움 할 가능성이 있는 러시아의 사정까지를 훑으며 제국에 대한 통찰을 공고히 한다.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집단행동 도구,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대한 통찰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6년 이전에 이 책을 집필하며 “사회 동역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장치는 휴대전화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는 개인들의 행동을 손쉽게 결합하여 집단으로 결속하는 이 새로운 매체가 역사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제국의 가르침으로부터 우리 시대의 위기와 미래를 꿰뚫어보는 역사과학의 진수를 이 책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피터 터친
수학과 진화생물학, 생태학과 게임이론을 녹여내어 세계사를 읽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있는 통섭형 연구의 프런티어. 그는 이 책에서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통섭의 시선으로 인간 집단이 탄생하고 몰락하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이 원리를 통해 현대 사회의 위기와 미래도 예측하고자 한다. 인구 역학과 역사적 발전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인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 그의 전문 분야다. 195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1977년 아버지가 소련에 반대하다 추방되면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후 뉴욕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학위를 받고 듀크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코네티컷대학교에서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교수, 수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의 과학 잡지에 인구 역학과 협동 전략 등을 다룬 글들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역사 동역학』, 『장기 사이클』, 『복합 인구 역학』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사용한 역사 동역학의 개념에 대해선 아래 웹사이트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저자가 주도하고 있는 학술지 《클리오다이내믹스》의 정보도 접할 수 있다.
역 : 윤길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으며, 중원문화사 편집장을 지내는 등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좋은 책을 골라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힘써오고 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 옮긴 책으로 『세계 패션사』,『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건축 이야기』,『작은 집이 아름답다』,『아름다운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체 게바라 핸드북』,『나눔』,『티나 모도티』,『앙코르와트』,『내 영혼의 달콤한 자유』,『산파일기』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모든 인간 집단을 움직이는 방식
1부 제국의 발생
1장 한 무리의 모험가, 왕국을 물리치다 - 카자크의 타타르족 정복기
정복자의 조건
독재자와 침략자의 공통점
뭉침과 흩어짐, 그 이중주의 원리
2장 변경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 - 러시아와 미국의 경우
변경을 지키는 방법
단층선에서 싹트는 힘
아메리카, 만행과 격투의 땅
우리와 저들을 구별하라
3장 문명의 단층선 - 로마제국의 경계에서 태어난 제국들
힘이 흐르는 길
로마와 게르만, 변경에서 만나다
문명의 충돌이 만든 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생존 전략
4장 사막의 아사비야 - 이븐 할둔이 역사의 열쇠를 발견하다
유목민족의 사회적 자본
사막의 혼란과 이슬람교의 탄생
적들 사이에서 성장하다
5장 널리 집단을 이롭게 하라 - 이기심이라는 신화와 협력이라는 과학
합리적 선택이 모든 것을 이끄는가?
인간, ''초사회성''을 가진 동물
공공재와 최후 통첩 게임
집단 선택론과 문화적 전달
''우리''라는 상징
6장 늑대의 후손, 제국의 표본 - 로마의 기원
로마의 두 변경
갈리아와 로마, 운명의 적수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가치들
노블레스 오블리주, 로마의 귀족
로마 그리고 로마가 되지 못한 나라들
7장 중세의 블랙홀 - 카톨링거 제국의 변경에서 유럽 열강이 움트다
이베리아, 무슬림과 기독교의 변경
또다른 변경들
들끓는 북프랑스, 노르망디의 산실
독일의 변경
세계에서 가장 큰 단층선
문제는 자리가 아니다
2부 제국의 몰락
8장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다 - 영광의 13세기에서 수렁에 빠진 14세기까지
유럽의 기근과 과자 동화
흑사병의 순기능
엘리트 귀족의 함정
내전의 시작, 재정의 파탄
백년전쟁의 신화
9장 분열과 회복의 순환 - 왜 인간의 갈등은 산불이나 전염병 같을까?
복수의 연쇄, 폭력의 진화
잉여 귀족의 몰락과 회복의 시작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갈림길
묵시록의 네 기사가 가져오는 순환
10장 마태 원리 - 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까
모형으로 읽는 분배의 구조
현실 속의 마태 효과
혼란이 불평등을 해소한다?
불행과 모험의 17세기, 다르타냥의 시대
11장 바퀴 속의 바퀴 - 세상이 바뀌는 세 겹의 주기
로마의 ''세기적 순환''
손님들을 샘이 나서 죽도록 만들어라
프린키파투스, 사회 분열을 가다듬다
돌고 도는 안정과 혼란의 시대
아사비야가 사라진 날
3부 제국의 미래
12장 역사는 과학이 될 수 있을까 - 역사과학의 한계와 가능성
역사에는 불안정한 순간들이 있다
톨스토이, 수학으로 역사를 읽다
13장 지금 우리 사회는? - 아사비야로 본 현대 사회의 징후들
''가족적인''이탈리아의 한계?
역사의 거대한 리듬
14장 제국의 새로운 미래 - 스마트폰은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현대의 제국들
자살 테러범의 눈물
인터넷, 아사비야의 새로운 통로
위대한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며
주석
감사의 말
찾아보기
위대한 제국의 조건
제국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누구나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다. 넘치는 카리스마를 가진 지도자와 강력한 군대, 그리고 풍요로운 재화. 그런 것들을 모두 갖춘 것이 제국이라면, 로마제국은 그런 조건을 갖추고도 어째서 1차, 2차, 3차로 이어질 만큼 많은 패배를 겪었던 것일까? 역사의 수수께끼를 풀려면 우리가 생각하는 제국의 조건이 옳은지, 또 가장 강력한 집단의 자질이란 과연 무엇인지를 돌아보아야 한다. 『제국의 탄생』은 제국이 되는 조건은 따로 있다고 말한다. 천재적인 지도자나 넓은 영토, 강한 군사력과 엄청난 부가 있다고 해서 저절로 위대한 제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승리를 거머쥐는 집단의 비결은 전 세계를 걸쳐 고대에나 지금에나 똑같다는 것이다. 전투에서 패배해도 결국 전쟁에서는 이기게 만든 로마인들의 자질은 어떤 것일까? 제국의 역사는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과학, 클리오다이내믹스
수학과 진화생물학, 생태학과 게임이론을 녹여내어 세계사를 읽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있는 통섭형 연구의 프런티어인 저자 피터 터친은 역사란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는 전제에서 책을 시작한다. 수학 모형과 행동 이론이라는 과학적 프리즘을 통해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주기적 양상을 드러낸다는 결론을 내리고, 인구 역학과 역사적 발전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인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의 관점에서 제국의 역사를 훑어간다. 로마, 몽골, 러시아, 프랑스, 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사를 아우르는 풍부한 사료와 다채로운 텍스트, 새로운 방법론 속에서는 로마제국도 핵심 대상이기보다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재러드 다이아몬드, 리처드 도킨스, 로버트 퍼트넘, 폴 크루그먼, 맬컴 글래드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학자와 이론을 불러내며 전방위적인 사유의 향연을 펼치는 이 책은 최신 학문들의 통찰들을 조화롭게 녹여내어 새로운 역사 읽기의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노련한 역사가의 감각과 통찰에만 기대왔던 것이 이제까지의 역사였다면, 인간과 사회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과 과학을 통해 거듭난 진정한 역사과학(Historical Science), 그것이 바로 이 책이 보여주고자 하는 바다.
제국의 탄생: 무엇이 제국을 만드는가
제국이란 무엇일까? 이 책은 제국을 ‘영토가 넓고 복잡한 권력 구조를 가진 다민족국가’라고 정의한다. 제국이란 민족성이나 군사력 같은 내적 요인이 아닌, 통상 민족으로 구별되는 ‘집단 간의 관계’ 속에서 태동하고 발전한다는 것이다. 두 문명이 충돌하기에 ‘문명의 단층선’이라고도 하는 변경에서 서로 다른 집단이 충돌할 때, 제국은 움트게 된다.
그러나 변경에서 충돌한 모든 집단이 제국이 되는 것은 아닌데, 그 충돌을 견뎌내기 위해 강력한 내적 결속을 이뤄 승리한 집단만이 결국 제국을 이루게 된다. 이 책에서는 이 내적 결속의 능력 즉 협력의 역량을 ‘집단행동을 가능케 하는 사회적 자본’인 ‘아사비야’라고 부른다. 12세기 무슬림 사회학자인 이븐 할둔이 제시한 개념인 아사비야는 사막의 혼란 속에서 거대한 이슬람제국을 탄생시킨 역량이자 세계 모든 제국을 탄생시킨 씨앗이다. 아사비야는 계급과 빈부의 격차를 뛰어넘어 구성원들을 하나로 통합하고 더 큰 집단행동을 할 수 있도록 만든다.
또한 그 아사비야를 이끌어내는 것이 합리적인 것보다는 ‘옳은 것’이라는 사실도 주목할 만하다. 실질적인 당장의 보상보다는 정신적인 가치와 그 충만감이 더 큰 집단을 만들 수 있는 신뢰를 자아낸다는 것이다. 이런 가치는 한 민족적 집단만을 결속하게 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출신이 서로 다른 여러 집단들도 하나로 묶어줄 수 있다. 이것이 ‘초민족 공동체’ 제국을 이루는 아사비야의 비밀이다.
저자는 더 나아가 현대의 제국이라고도 부를 수 있는 초국적 거대기업을 이런 원리로 바라보았을 때 역시 같은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을 발견한다. 미국이나 일본처럼 강한 사회적 신뢰를 바탕으로 한 나라들에서만 이런 거대기업이 탄생하며, 이 기업들이 외적으로는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내부에서는 CEO부터 사원에 이르기까지 구성원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현대의 경영학과 사회학 이론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대목이다.
제국의 몰락: 거대한 인간 집단은 어떻게 무너지기 시작하는가
그렇다면 왜 위대한 제국들은 다시 몰락의 길을 걷게 되는가? 제국 탄생의 원리를 파악할 수 있다면 멸망의 법칙도 찾을 수 있다. 이 책의 2부에서는 끝없는 황금기가 지속될 것 같던 중세 유럽이 어떻게 몰락했는지, 로마제국이 어떻게 시들어갔는지를 치밀하게 분석하여 역사의 순환 이론을 제시하고, ‘몰락의 원리’를 파악해낸다. 제국 탄생의 시기가 ‘통합의 시대’였다면 ?락의 시기는 ‘분열의 시대’다.
사회의 부가 늘어나면 엘리트층은 더 많은 부를 비축하면서 부패하게 된다. 또 하위 계급도 부를 쌓아 신분상승을 꾀하면서 사회 피라미드의 상층부가 무거워진다. 그에 따라 부패와 분배 불평등이 심해지고, 계급간의 갈등이 격화되기 시작한다.
하지만 부패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다. 부패 때문에 구성원들 간의 사회적 신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이 문제다. 그 과정은 아사비야가 사라져가는 과정이다. 협력하지 못하는 사회는 다양한 분쟁과 재난에 맞닥뜨린다. 내전에 노동력과 재화를 빼앗기기 시작하면 당연히 전염병이나 기근 같은 재난을 관리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할 힘이 떨어진다. 몰락은 그저 기후나 병균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부패와 그에 따른 내전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로마 역시 노블레스 오블리주로 유지되던 귀족과 평민의 결속이 부패와 사치로 무너졌을 때 아사비야가 사라졌고, 몰락이 시작되었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이 침략과 재난 등의 위기는 멸망의 징후가 아니다. 오히려 이런 위기 때문에 내적 결속을 더욱 공고히 한 집단은 문화나 사회적으로 한 단계 더 진보하게 된다. 진짜 위기는 이 아사비야가 사라질 때다. 신뢰가 무너질 때 본격적인 추락이 시작되는 것이다.
오늘날 제국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가
이 책의 마지막에서는 이제까지 살펴본 제국의 조건, 집단행동의 원리를 통해 현대 세계를 균형 있게 바라보고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의 제국인 미국으로부터 제국 몰락의 신호, 즉 아사비야의 감소에 따른 다양한 문제를 읽어내고 그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는 미국 정치의 모습을 돌아본다.한편, 아랍권의 수많은 테러 사태를 ‘이슬람교에 내재한 어떤 광신’ 등의 안이한 시각으로 보지 않고 이 역시 미국과 이스라엘이라는 강대한 변경에 대항하기 위한 이슬람사회의 대응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제국의 정의에 가장 들어맞는’ 중국을 다음번 세계 패권국으로 지목하고 있다. 이어 제국의 가능성을 다양하게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 체첸을 연방에 통합하는 데 성공한다면 세계 제국으로 다시 발돋움 할 가능성이 있는 러시아의 사정까지를 훑으며 제국에 대한 통찰을 공고히 한다.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집단행동 도구,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대한 통찰도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아직 스마트폰이 대중화되기 전인 2006년 이전에 이 책을 집필하며 “사회 동역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장치는 휴대전화가 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그는 개인들의 행동을 손쉽게 결합하여 집단으로 결속하는 이 새로운 매체가 역사를 이끌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이 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제국의 가르침으로부터 우리 시대의 위기와 미래를 꿰뚫어보는 역사과학의 진수를 이 책에서 맛볼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피터 터친
수학과 진화생물학, 생태학과 게임이론을 녹여내어 세계사를 읽는 새로운 이론을 만들고 있는 통섭형 연구의 프런티어. 그는 이 책에서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통섭의 시선으로 인간 집단이 탄생하고 몰락하는 원리를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음을 역설하고, 이 원리를 통해 현대 사회의 위기와 미래도 예측하고자 한다. 인구 역학과 역사적 발전에 대한 수학적 모델링인 ‘역사동역학(Cliodynamics)’이 그의 전문 분야다. 1957년 모스크바에서 태어나 모스크바대학교에서 생물학을 전공했으나 1977년 아버지가 소련에 반대하다 추방되면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그 후 뉴욕대학교에서 생물학 학사학위를 받고 듀크대학교에서 동물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코네티컷대학교에서 생태학 및 진화생물학 교수, 수학과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네이처》와 《사이언스》 등의 과학 잡지에 인구 역학과 협동 전략 등을 다룬 글들을 발표했으며, 저서로 『역사 동역학』, 『장기 사이클』, 『복합 인구 역학』 등이 있다. 이 책에서 사용한 역사 동역학의 개념에 대해선 아래 웹사이트에서 자세히 소개하고 있으며, 저자가 주도하고 있는 학술지 《클리오다이내믹스》의 정보도 접할 수 있다.
역 : 윤길순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과를 졸업했으며, 중원문화사 편집장을 지내는 등 출판사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좋은 책을 골라 우리말로 옮기는 일에 힘써오고 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 동안 옮긴 책으로 『세계 패션사』,『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입니다』,『건축 이야기』,『작은 집이 아름답다』,『아름다운 페미니스트 글로리아 스타이넘』,『체 게바라 핸드북』,『나눔』,『티나 모도티』,『앙코르와트』,『내 영혼의 달콤한 자유』,『산파일기』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모든 인간 집단을 움직이는 방식
1부 제국의 발생
1장 한 무리의 모험가, 왕국을 물리치다 - 카자크의 타타르족 정복기
정복자의 조건
독재자와 침략자의 공통점
뭉침과 흩어짐, 그 이중주의 원리
2장 변경에서 일어나는 소용돌이 - 러시아와 미국의 경우
변경을 지키는 방법
단층선에서 싹트는 힘
아메리카, 만행과 격투의 땅
우리와 저들을 구별하라
3장 문명의 단층선 - 로마제국의 경계에서 태어난 제국들
힘이 흐르는 길
로마와 게르만, 변경에서 만나다
문명의 충돌이 만든 제국
비잔티움 제국의 생존 전략
4장 사막의 아사비야 - 이븐 할둔이 역사의 열쇠를 발견하다
유목민족의 사회적 자본
사막의 혼란과 이슬람교의 탄생
적들 사이에서 성장하다
5장 널리 집단을 이롭게 하라 - 이기심이라는 신화와 협력이라는 과학
합리적 선택이 모든 것을 이끄는가?
인간, ''초사회성''을 가진 동물
공공재와 최후 통첩 게임
집단 선택론과 문화적 전달
''우리''라는 상징
6장 늑대의 후손, 제국의 표본 - 로마의 기원
로마의 두 변경
갈리아와 로마, 운명의 적수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가치들
노블레스 오블리주, 로마의 귀족
로마 그리고 로마가 되지 못한 나라들
7장 중세의 블랙홀 - 카톨링거 제국의 변경에서 유럽 열강이 움트다
이베리아, 무슬림과 기독교의 변경
또다른 변경들
들끓는 북프랑스, 노르망디의 산실
독일의 변경
세계에서 가장 큰 단층선
문제는 자리가 아니다
2부 제국의 몰락
8장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다 - 영광의 13세기에서 수렁에 빠진 14세기까지
유럽의 기근과 과자 동화
흑사병의 순기능
엘리트 귀족의 함정
내전의 시작, 재정의 파탄
백년전쟁의 신화
9장 분열과 회복의 순환 - 왜 인간의 갈등은 산불이나 전염병 같을까?
복수의 연쇄, 폭력의 진화
잉여 귀족의 몰락과 회복의 시작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갈림길
묵시록의 네 기사가 가져오는 순환
10장 마태 원리 - 왜 부자는 더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까
모형으로 읽는 분배의 구조
현실 속의 마태 효과
혼란이 불평등을 해소한다?
불행과 모험의 17세기, 다르타냥의 시대
11장 바퀴 속의 바퀴 - 세상이 바뀌는 세 겹의 주기
로마의 ''세기적 순환''
손님들을 샘이 나서 죽도록 만들어라
프린키파투스, 사회 분열을 가다듬다
돌고 도는 안정과 혼란의 시대
아사비야가 사라진 날
3부 제국의 미래
12장 역사는 과학이 될 수 있을까 - 역사과학의 한계와 가능성
역사에는 불안정한 순간들이 있다
톨스토이, 수학으로 역사를 읽다
13장 지금 우리 사회는? - 아사비야로 본 현대 사회의 징후들
''가족적인''이탈리아의 한계?
역사의 거대한 리듬
14장 제국의 새로운 미래 - 스마트폰은 역사를 바꿀 수 있을까
현대의 제국들
자살 테러범의 눈물
인터넷, 아사비야의 새로운 통로
위대한 시대의 도래를 기다리며
주석
감사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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