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이제 ''역사의 이면''을 직시하고, 그 진실 앞에 다가선다―
역사가의 눈으로 밝혀내고, 문학자의 호흡으로 써내려간
삼국지 이야기의 새로운 전범
이 책은 재일교포 인문학자이자 일본 교토대학 교수인 김문경이 쓴, 새롭게 바라본 삼국지 이야기이다. 저자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란 팩션faction과 역사가 진수가 쓴 [삼국지]의 역사적 사실 사이를 오가며, 허구의 그림자에 뒤덮이거나 기술자의 의도를 좇아 왜곡되었던 역사적 진실의 원형을 회복해낸다. 이때 독창적인 캐릭터로 다가오는 인물이 바로 ''손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비와 조조, 그리고 촉나라와 위나라 위주로 논의돼왔던 지금까지의 삼국지 담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삼국정립의 실질적인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노회한 현실주의자'' 손권과 그의 제국 오나라를 역사와 문학의 각 페이지에 돋움 세운다. 일본 고단샤講錟社에서 나온 ''중국의 역사 시리즈'' 제4권 [삼국지의 세계三國志の世界]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의 영웅 유비도, 정사 [삼국지]의 영웅 조조도
삼국시대의 결정적인 주인공은 아니었다?!
노회한 현실주의자 손권이 쥐고 흔든, 삼국정립의 캐스팅보트와 그 진실
이 책의 저자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았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는 촉나라를 중심에 두고 각각 삼국의 역사를 묘사하였다."고 전제한다. 더불어 삼국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오나라는 조연에 불과하였고,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사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삼국의 [삼국지] 관련 출판시장을 살펴보아도, 유비의 촉나라에 중점을 두거나 조조의 위나라에 중점을 둔 서적들이 서점가를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삼국지의 세계'' 속에 명멸했던 수많은 영웅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 중에서 독자의 뇌리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대부분 유비·관우·장비·조조나 조금 더 나가 제갈공명 등에서 그친다.
하지만 위나라와 오나라, 오나라와 촉나라의 어느 동맹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기에, 제국으로서의 세 국가가 각각 정립하고 그 긴장의 시대가 존재했다고 가정한다면, 정작은 오나라의 주군 손권이 삼국시대를 연출하고, 캐스팅보트를 쥔 숨은 주역이었다.
왜냐하면 위·촉·오 삼국의 항쟁에서 외교전략은 실제 전쟁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요한 흐름은 적벽대전(208년)을 계기로 하는 ''오촉동맹''으로부터 관우의 번성 공략(219년)에 의한 ''위오동맹''을 거쳐, 유비 사후(223년) 두 번째의 ''오촉동맹''으로 전개되었다. 삼국이 삼파전의 싸움을 벌이는 이상,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 쪽이 유리한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런데 위나라와 촉나라는 한 왕조의 정통적 계승자를 다투는 불구대천의 적이었으며, 그 때문에 양자의 동맹은 절대로 불가능하였다. 그 결과 외교상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오나라였다. 오나라가 위나라와 동맹하는가 혹은 촉나라와 동맹하는가에 따라 상황이 변해간 것이다.
손권은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촉의 제갈공명에게 이제병존二帝幷尊, 즉 두 황제가 대등한 입장에서 동맹을 맺자고 제안한다. 이것은 물론 삼국 중 최강국인 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촉나라와 동맹할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국 유일의 지배자만을 인정하는 중국적 황제관 혹은 세계관의 맥락에서 그야말로 공전절후空前絶後의 기상奇想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손권의 이 생각이 후세에까지 이어졌다면, 중국의 역사는 물론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도 영 딴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에 저자는 손권에게 ''노회한 현실주의자''라는 타이틀을 부여하며, 그의 제국 오나라를 중심에 둔 ''재편된 삼국시대''를 서술해나간다. 오나라는 삼국 가운데 무인정권의 성격이 가장 강했고, 한나라의 후계자를 둘러싼 위나라와 촉나라와의 정통 싸움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때로는 위나라에 복종하고, 때로는 촉나라와 동맹을 맺기도 하면서 주로 남방의 광대한 미개척지의 개발에 온힘을 기울였다. 오나라가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황제를 칭하고, 가장 길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연유도 이러한 점과 무관치 않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의 대화
저자는 이 책에서 ''소설'' [삼국지연의]의 아름다운 서정성과 영웅에 대한 재해석·미화를 부각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치열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규명이라는 입장에서 그에 ''정사正史'' [삼국지]를 대응시키고 있다. 또한 치밀한 인문학자적 소명으로, 후한 삼국시대의 문헌과 출토자료를 전적으로 활용하면서 여러 인물들을 둘러싼 ''허구''와 ''진실''을 대응시킨다.
예를 들어, [삼국지연의]에서 대표적인 악역의 캐릭터를 담당한 조조. ''난세의 간웅''의 이미지로 점철된 조조는 사실 강렬한 개성을 갖춘 탁월한 개혁가였으며, 그 자신 및 그의 아들 조비, 조식도 모두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조조가 문인을 우대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조조에게 덧칠해진 악역의 이미지는 촉나라를 중심에 두고 위나라를 왜소화시키던 [삼국지연의]의 서사 전략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다. 전설적인 맹장으로 형상화된 관우, 오나라의 현실파 전략가 노숙, 특히 [삼국지연의]에서 탁월한 지략가·우국의 충신으로만 이상화된 제갈량 등 중요한 조연들도 이 책에서는 ''만들어진 이미지''를 벗는다.
정치·사회·문화적 격변 속에 사상과 예술의 풍요가 함께했던,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난세''인 삼국시대에 대한 재조명
현실에서의 치열한 각축 때문이었을까? 삼국간의 대항쟁기이자 정치·사회적 격변기이도 했던 삼국시대엔 사상과 예술의 풍요도 함께했다. 일본의 한 고명한 역사학자는 일찍이 삼국시대와 그 뒤를 잇는 남북조시대를 ''화려한 암흑시대''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이 시대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난세였지만, 다름 아닌 난세였기 때문에 오히려 번뜩이는 개성을 지닌 인물이 자유롭게 활약하고 가지각색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 역사상 세 종교―유·불·도―가 다함께 등장한 시기가 바로 삼국시대이다. 즉, 삼국시대는 ''삼교정립三敎鼎立''의 최초의 시대였다. 다만 ''정립''이라 해도 삼국정립이 이루어진 위·촉·오의 국력이 동일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물론 삼교의 세력에도 차이가 있었다. 도교는 이 시대에 처음 등장한 새로운 종교로, 이후 급속히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후한시대에 막 전해져온 불교도 이 시대부터 겨우 정착화의 단계로 들어선다. 가장 역사가 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유교였지만, 이 시대에는 커다란 변혁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유교·불교·도교가 어떻게 태어나고 입수되며 전개되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며 삼국시대 사상의 궤적을 좇는다.
아울러 삼국시대는 ''문학의 시대''이기도 하다(저자는 삼국의 문학·예술·과학·의학·건축·정보의 분야를 다루는 장을 ''문학의 시대''라 호명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이른바 인간 ''개성''의 특질이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시기가 바로 이때인 것이다. 저자는 오나라에 조금 더 무게 중심을 두어, 삼국의 문화적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삼국의 문화를 비교하자면 문학이나 철학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낸 것은 위나라이지만, 미술과 공예, 민간 종교 등의 분야에서 다채로운 문화를 개화시킨 것은 오히려 오나라였다. 후세에 이 지역이 중국문화의 중심이 될 소지는 이 시대에 열려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에 비해 촉나라는 독자적인 지방문화를 지녔고, 또 칠기와 거울 등의 제작에도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외인 정권이었던 유비와 제갈량 정부는 군비 편중의 정책을 취해 문화면에서는 그 특색을 잘 살리지 못한 까닭에 새로움도 다양함도 찾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는 오늘날 국제관계의 원형?!
―한·중·일 현대의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적 각축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내던 저자는 이제 시선을 현재로 돌려, 마지막 장에서 21세기 새로운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 집중해본다. 그가 보기에 중국의 삼국시대는, 한반도에 고구려·신라·백제의 삼국시대가 출현하고, 일본에서도 국가 형성의 시초가 나타난 때와 겹쳐진다. 그리고 이 나라들은 모두 앞 다투어 중국과의 교섭을 모색하였고, 한자 문화나 유교·불교 등을 받아들일 때였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한자 문화권의 탄생 모습이며, 동아시아 국제교류의 서막이었다. 따라서 21세기 초, 중국과 한반도의 남한·북한,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새로운 국제관계가 모색되고 있는 이때, 동아시아 문화권의 교류가 시작된 개막의 시대를 회고해 보는 일은 의미가 깊으며, 또한 흥미진진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저자는 이 국제관계의 맥락을 후한 삼국시대에 성립된 중국의 ''정통론''―중국의 유일무이한 정통 황제와 그 왕조가 세계 전체의 지배자라는 사상―에서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일본은 중국의 정통론을 그대로 모방해, 스스로를 천하로 간주하고 천황을 중국황제와 대등한 지위에 둔다. 국내 주변부를 모두 이적으로 여겼으며, 또 신라나 백제에서 온 외교사절도 조공으로 취급했다. 또한 기묘한 것은 조선이다. 조선은 중국의 조공체제 하의 이른바 ''우등생''이었지만, 17세기 중국이 만주족의 청에 정복되자 중화문명은 멸망하고 자신이야말로 그 후계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조에 조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을 이적시하는 관념을 좇아 현실을 거꾸로 꾸며버린다. 즉, 중국이 정통론에 입각해 주변 여러 나라를 이적시한 것이 돌고 돌아, 이번에는 주변 여러 나라가 중국을 이적시함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탓에 동아시아에�姑�이웃 나라와 서로 대등한 관계가 인정되지 않고, 상대를 서로 무시하는 왜곡된 국제관계가 형성된다.
이 비정상적인 관계는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에도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 좋은 예가 한국전쟁 이후 장기간에 걸쳐 한국이 중국을 중공 오랑캐라고 부르던 일이다. 중국 공산당이라고 하는 이적, 즉 중국은 이적이라는 자가당착적인 언사에는, 정통론이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미친 영향이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하여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반성하고 새로운 협력의 관계를 전망하는 저자의 의도는 바로 이곳,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 된 삼국시대의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문경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중국어문학을 전공했다. 게이오기주쿠대학 조교수 등을 거쳐, 현재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있다. 중국문학 중에서도 소설과 희곡 그리고 강창講唱문학을 통일적 시점에서 바라보며, 사회적 배경을 통해 그 상호관계를 해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화관색전 연구花索の究』, 『중국소설선中小選』, 『삼국지연의의 세계三志演義の世界』, 『교양을 위한 중국어養のための中語』 등이 있다.
역자 : 송완범
현재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조교수로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나라시대의 백제왕씨와 문화적 특성」,「백촌강전투와 왜-동아시아세계의 재편과 관련하여」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교양으로 읽는 일본사상사』(공역)『일본의 고대사 인식』『동아시아 역사와 일본』(공역) 등이 있다.
역자 : 신현승
현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있다. 옮긴 책으로는 『송학의 형성과 전재』『사대부의 시대-주자학과 양명학 새롭게 읽기』『청년 모택동-중국은 어디로 가는가』『동아시아 역사와 일본』(공역)등 다수가 있다.
역자 : 전성곤
현재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HK 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근대 조선의 아이덴티티와 최남선』『일본 인류학과 동아시아』가 있고, 옮긴책으로는 『재일 한국인』『인문학으로서의 죽음 교육』『근대 일본의 젠더 이데올로기』『고류큐의 정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장 화려한 난세
제1장 저물어가는 한 제국
1. 중국인의 역사관
2. 후한이라는 시대
3. 황건적의 난
4. 주인공의 등장
제2장 군웅할거
1. 패권으로 가는 길
2. 천하대란
3. 관도대전
4. 적벽대전
제3장 산분천하
1. 병가필쟁의 땅-형주의 공방
2. 유비의 익주 평정과 한중 공방
3. 조조 대 손권-합비 공방
4. 다시 형주 공방
제4장 삼제정립
1. 위의 문제와 촉의 소열제
2. 손권의 전략과 야망
3. 제갈량의 남정북벌
제5장 삼국의 외교와 정보전략
1. 외교전술
2. 망명ㆍ투항과 정보교란
3. 위ㆍ촉ㆍ오 각국의 이민족 문제
4. 장수와 군대
제6장 그늘져 가는 세 제국
1. 촉나라의 쇠퇴와 멸망
2. 위나라의 내란과 사마씨의 찬탈
3. 오나라의 내정과 내분
제7장 유ㆍ불ㆍ도 삼교정립의 시대
1. 유교의 종합화
2. 도교의 탄생
3. 불교의 보급
제8장 문학이 움튼 시대
1. 시와 소설-개성의 문학
2. 과학과 의학
3. 삼국시대의 도성
4. 미술과 공예
5. 종이와 정보의 역할
제9장 야마타이국을 둘러싼 국제관계
1. 조공과 황제의 정체성
2. 왜의 사절 도래
종장 상국시대와 현대의 동아시아
주요인물 약전
역사핵심어 해설
참고문헌
연표
옮긴이의 글
지은이ㆍ옮긴이 소개
찾아보기
이제 ''역사의 이면''을 직시하고, 그 진실 앞에 다가선다―
역사가의 눈으로 밝혀내고, 문학자의 호흡으로 써내려간
삼국지 이야기의 새로운 전범
이 책은 재일교포 인문학자이자 일본 교토대학 교수인 김문경이 쓴, 새롭게 바라본 삼국지 이야기이다. 저자는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란 팩션faction과 역사가 진수가 쓴 [삼국지]의 역사적 사실 사이를 오가며, 허구의 그림자에 뒤덮이거나 기술자의 의도를 좇아 왜곡되었던 역사적 진실의 원형을 회복해낸다. 이때 독창적인 캐릭터로 다가오는 인물이 바로 ''손권''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유비와 조조, 그리고 촉나라와 위나라 위주로 논의돼왔던 지금까지의 삼국지 담론을 해체하고 재구성하여, 삼국정립의 실질적인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었던 ''노회한 현실주의자'' 손권과 그의 제국 오나라를 역사와 문학의 각 페이지에 돋움 세운다. 일본 고단샤講錟社에서 나온 ''중국의 역사 시리즈'' 제4권 [삼국지의 세계三國志の世界]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소설 [삼국지연의]의 영웅 유비도, 정사 [삼국지]의 영웅 조조도
삼국시대의 결정적인 주인공은 아니었다?!
노회한 현실주의자 손권이 쥐고 흔든, 삼국정립의 캐스팅보트와 그 진실
이 책의 저자는 "진수의 정사 [삼국지]가 위나라를 정통으로 보았고,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는 촉나라를 중심에 두고 각각 삼국의 역사를 묘사하였다."고 전제한다. 더불어 삼국시대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오나라는 조연에 불과하였고, 역사의 주역이 되지 못했음을 지적한다. 사실 지금까지 동아시아 삼국의 [삼국지] 관련 출판시장을 살펴보아도, 유비의 촉나라에 중점을 두거나 조조의 위나라에 중점을 둔 서적들이 서점가를 점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역시 ''삼국지의 세계'' 속에 명멸했던 수많은 영웅과 다양한 인간 군상들 중에서 독자의 뇌리에 남는 인물을 꼽으라면, 대부분 유비·관우·장비·조조나 조금 더 나가 제갈공명 등에서 그친다.
하지만 위나라와 오나라, 오나라와 촉나라의 어느 동맹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았기에, 제국으로서의 세 국가가 각각 정립하고 그 긴장의 시대가 존재했다고 가정한다면, 정작은 오나라의 주군 손권이 삼국시대를 연출하고, 캐스팅보트를 쥔 숨은 주역이었다.
왜냐하면 위·촉·오 삼국의 항쟁에서 외교전략은 실제 전쟁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주요한 흐름은 적벽대전(208년)을 계기로 하는 ''오촉동맹''으로부터 관우의 번성 공략(219년)에 의한 ''위오동맹''을 거쳐, 유비 사후(223년) 두 번째의 ''오촉동맹''으로 전개되었다. 삼국이 삼파전의 싸움을 벌이는 이상, 두 나라가 동맹을 맺는 쪽이 유리한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 그런데 위나라와 촉나라는 한 왕조의 정통적 계승자를 다투는 불구대천의 적이었으며, 그 때문에 양자의 동맹은 절대로 불가능하였다. 그 결과 외교상의 주도권을 잡는 것은 오나라였다. 오나라가 위나라와 동맹하는가 혹은 촉나라와 동맹하는가에 따라 상황이 변해간 것이다.
손권은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촉의 제갈공명에게 이제병존二帝幷尊, 즉 두 황제가 대등한 입장에서 동맹을 맺자고 제안한다. 이것은 물론 삼국 중 최강국인 위나라에 대항하기 위해 촉나라와 동맹할 수밖에 없었다는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일국 유일의 지배자만을 인정하는 중국적 황제관 혹은 세계관의 맥락에서 그야말로 공전절후空前絶後의 기상奇想이라 할 수 있다. 만일 손권의 이 생각이 후세에까지 이어졌다면, 중국의 역사는 물론 동아시아의 국제 관계도 영 딴판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이에 저자는 손권에게 ''노회한 현실주의자''라는 타이틀을 부여하며, 그의 제국 오나라를 중심에 둔 ''재편된 삼국시대''를 서술해나간다. 오나라는 삼국 가운데 무인정권의 성격이 가장 강했고, 한나라의 후계자를 둘러싼 위나라와 촉나라와의 정통 싸움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때로는 위나라에 복종하고, 때로는 촉나라와 동맹을 맺기도 하면서 주로 남방의 광대한 미개척지의 개발에 온힘을 기울였다. 오나라가 삼국 가운데 가장 늦게 황제를 칭하고, 가장 길게 나라를 보전할 수 있었던 연유도 이러한 점과 무관치 않다.
역사적 사실과 소설적 허구의 대화
저자는 이 책에서 ''소설'' [삼국지연의]의 아름다운 서정성과 영웅에 대한 재해석·미화를 부각시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치열했던 역사적 사실에 대한 규명이라는 입장에서 그에 ''정사正史'' [삼국지]를 대응시키고 있다. 또한 치밀한 인문학자적 소명으로, 후한 삼국시대의 문헌과 출토자료를 전적으로 활용하면서 여러 인물들을 둘러싼 ''허구''와 ''진실''을 대응시킨다.
예를 들어, [삼국지연의]에서 대표적인 악역의 캐릭터를 담당한 조조. ''난세의 간웅''의 이미지로 점철된 조조는 사실 강렬한 개성을 갖춘 탁월한 개혁가였으며, 그 자신 및 그의 아들 조비, 조식도 모두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다. 조조가 문인을 우대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즉, 조조에게 덧칠해진 악역의 이미지는 촉나라를 중심에 두고 위나라를 왜소화시키던 [삼국지연의]의 서사 전략이 만들어낸 허구에 불과하다. 뿐만 아니다. 전설적인 맹장으로 형상화된 관우, 오나라의 현실파 전략가 노숙, 특히 [삼국지연의]에서 탁월한 지략가·우국의 충신으로만 이상화된 제갈량 등 중요한 조연들도 이 책에서는 ''만들어진 이미지''를 벗는다.
정치·사회·문화적 격변 속에 사상과 예술의 풍요가 함께했던,
중국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난세''인 삼국시대에 대한 재조명
현실에서의 치열한 각축 때문이었을까? 삼국간의 대항쟁기이자 정치·사회적 격변기이도 했던 삼국시대엔 사상과 예술의 풍요도 함께했다. 일본의 한 고명한 역사학자는 일찍이 삼국시대와 그 뒤를 잇는 남북조시대를 ''화려한 암흑시대''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이 시대가 정치적으로 매우 혼란한 난세였지만, 다름 아닌 난세였기 때문에 오히려 번뜩이는 개성을 지닌 인물이 자유롭게 활약하고 가지각색의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는 의미였다.
이런 의미에서 중국 역사상 세 종교―유·불·도―가 다함께 등장한 시기가 바로 삼국시대이다. 즉, 삼국시대는 ''삼교정립三敎鼎立''의 최초의 시대였다. 다만 ''정립''이라 해도 삼국정립이 이루어진 위·촉·오의 국력이 동일한 것이 아니었던 것처럼, 물론 삼교의 세력에도 차이가 있었다. 도교는 이 시대에 처음 등장한 새로운 종교로, 이후 급속히 세력을 확대해 나간다. 후한시대에 막 전해져온 불교도 이 시대부터 겨우 정착화의 단계로 들어선다. 가장 역사가 긴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유교였지만, 이 시대에는 커다란 변혁이 이루어진다. 저자는 유교·불교·도교가 어떻게 태어나고 입수되며 전개되는지 그 흐름을 따라가며 삼국시대 사상의 궤적을 좇는다.
아울러 삼국시대는 ''문학의 시대''이기도 하다(저자는 삼국의 문학·예술·과학·의학·건축·정보의 분야를 다루는 장을 ''문학의 시대''라 호명한다). 중국의 역사에서 이른바 인간 ''개성''의 특질이 두드러지게 발현되는 시기가 바로 이때인 것이다. 저자는 오나라에 조금 더 무게 중심을 두어, 삼국의 문화적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삼국의 문화를 비교하자면 문학이나 철학의 영역에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낸 것은 위나라이지만, 미술과 공예, 민간 종교 등의 분야에서 다채로운 문화를 개화시킨 것은 오히려 오나라였다. 후세에 이 지역이 중국문화의 중심이 될 소지는 이 시대에 열려 있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이에 비해 촉나라는 독자적인 지방문화를 지녔고, 또 칠기와 거울 등의 제작에도 뛰어난 기술을 갖고 있었지만, 외인 정권이었던 유비와 제갈량 정부는 군비 편중의 정책을 취해 문화면에서는 그 특색을 잘 살리지 못한 까닭에 새로움도 다양함도 찾기가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삼국시대는 오늘날 국제관계의 원형?!
―한·중·일 현대의 동아시아
삼국의 역사적 각축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내던 저자는 이제 시선을 현재로 돌려, 마지막 장에서 21세기 새로운 동아시아의 국제관계에 집중해본다. 그가 보기에 중국의 삼국시대는, 한반도에 고구려·신라·백제의 삼국시대가 출현하고, 일본에서도 국가 형성의 시초가 나타난 때와 겹쳐진다. 그리고 이 나라들은 모두 앞 다투어 중국과의 교섭을 모색하였고, 한자 문화나 유교·불교 등을 받아들일 때였다. 이것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 한자 문화권의 탄생 모습이며, 동아시아 국제교류의 서막이었다. 따라서 21세기 초, 중국과 한반도의 남한·북한, 그리고 일본 사이에서 새로운 국제관계가 모색되고 있는 이때, 동아시아 문화권의 교류가 시작된 개막의 시대를 회고해 보는 일은 의미가 깊으며, 또한 흥미진진한 일임에 틀림이 없다.
저자는 이 국제관계의 맥락을 후한 삼국시대에 성립된 중국의 ''정통론''―중국의 유일무이한 정통 황제와 그 왕조가 세계 전체의 지배자라는 사상―에서부터 풀어나가기 시작한다.
일본은 중국의 정통론을 그대로 모방해, 스스로를 천하로 간주하고 천황을 중국황제와 대등한 지위에 둔다. 국내 주변부를 모두 이적으로 여겼으며, 또 신라나 백제에서 온 외교사절도 조공으로 취급했다. 또한 기묘한 것은 조선이다. 조선은 중국의 조공체제 하의 이른바 ''우등생''이었지만, 17세기 중국이 만주족의 청에 정복되자 중화문명은 멸망하고 자신이야말로 그 후계자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청조에 조공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을 이적시하는 관념을 좇아 현실을 거꾸로 꾸며버린다. 즉, 중국이 정통론에 입각해 주변 여러 나라를 이적시한 것이 돌고 돌아, 이번에는 주변 여러 나라가 중국을 이적시함에 이르게 된 것이다. 그런 탓에 동아시아에�姑�이웃 나라와 서로 대등한 관계가 인정되지 않고, 상대를 서로 무시하는 왜곡된 국제관계가 형성된다.
이 비정상적인 관계는 결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현대에도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그 좋은 예가 한국전쟁 이후 장기간에 걸쳐 한국이 중국을 중공 오랑캐라고 부르던 일이다. 중국 공산당이라고 하는 이적, 즉 중국은 이적이라는 자가당착적인 언사에는, 정통론이 동아시아 국제관계에 미친 영향이 단적으로 드러나 있다. 그러하여 동아시아 국제관계를 반성하고 새로운 협력의 관계를 전망하는 저자의 의도는 바로 이곳, 모든 관계의 출발점이 된 삼국시대의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김문경
1952년 도쿄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학 문학부를 졸업하고,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중국어문학을 전공했다. 게이오기주쿠대학 조교수 등을 거쳐, 현재 교토대학 인문과학연구소 교수로 있다. 중국문학 중에서도 소설과 희곡 그리고 강창講唱문학을 통일적 시점에서 바라보며, 사회적 배경을 통해 그 상호관계를 해명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화관색전 연구花索の究』, 『중국소설선中小選』, 『삼국지연의의 세계三志演義の世界』, 『교양을 위한 중국어養のための中語』 등이 있다.
역자 : 송완범
현재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조교수로 있다. 대표 논문으로는 「나라시대의 백제왕씨와 문화적 특성」,「백촌강전투와 왜-동아시아세계의 재편과 관련하여」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교양으로 읽는 일본사상사』(공역)『일본의 고대사 인식』『동아시아 역사와 일본』(공역) 등이 있다.
역자 : 신현승
현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있다. 옮긴 책으로는 『송학의 형성과 전재』『사대부의 시대-주자학과 양명학 새롭게 읽기』『청년 모택동-중국은 어디로 가는가』『동아시아 역사와 일본』(공역)등 다수가 있다.
역자 : 전성곤
현재 고려대학교 일본연구센터 HK 연구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근대 조선의 아이덴티티와 최남선』『일본 인류학과 동아시아』가 있고, 옮긴책으로는 『재일 한국인』『인문학으로서의 죽음 교육』『근대 일본의 젠더 이데올로기』『고류큐의 정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서문
서장 화려한 난세
제1장 저물어가는 한 제국
1. 중국인의 역사관
2. 후한이라는 시대
3. 황건적의 난
4. 주인공의 등장
제2장 군웅할거
1. 패권으로 가는 길
2. 천하대란
3. 관도대전
4. 적벽대전
제3장 산분천하
1. 병가필쟁의 땅-형주의 공방
2. 유비의 익주 평정과 한중 공방
3. 조조 대 손권-합비 공방
4. 다시 형주 공방
제4장 삼제정립
1. 위의 문제와 촉의 소열제
2. 손권의 전략과 야망
3. 제갈량의 남정북벌
제5장 삼국의 외교와 정보전략
1. 외교전술
2. 망명ㆍ투항과 정보교란
3. 위ㆍ촉ㆍ오 각국의 이민족 문제
4. 장수와 군대
제6장 그늘져 가는 세 제국
1. 촉나라의 쇠퇴와 멸망
2. 위나라의 내란과 사마씨의 찬탈
3. 오나라의 내정과 내분
제7장 유ㆍ불ㆍ도 삼교정립의 시대
1. 유교의 종합화
2. 도교의 탄생
3. 불교의 보급
제8장 문학이 움튼 시대
1. 시와 소설-개성의 문학
2. 과학과 의학
3. 삼국시대의 도성
4. 미술과 공예
5. 종이와 정보의 역할
제9장 야마타이국을 둘러싼 국제관계
1. 조공과 황제의 정체성
2. 왜의 사절 도래
종장 상국시대와 현대의 동아시아
주요인물 약전
역사핵심어 해설
참고문헌
연표
옮긴이의 글
지은이ㆍ옮긴이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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