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이 책은
휴대용 음악 기기의 치솟는 인기, 요란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게,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공사 소음, 끝으로 치닫는 교통 홍수의 틈바구니에서 침묵의 공간은 자꾸만 사라져 간다. 이 책은 세상에서 점차 모습을 감춰 가는 천연자원으로서의 침묵을 우리 삶에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소음 관련 전문가와 일상에서 침묵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직접 소음과 침묵을 경험해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어째서 이토록 시끄러워졌는지, 침묵하지 못하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탐색한다. 또한 어떻게 침묵의 권리를 되찾아 나갈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우리는 세상이 조용해지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 더 많은 것을 들으려 한다.
어떻게 듣는 일과 듣지 않는 일 사이의 조화를 이룰 것인가.
갈수록 시끄러워지는 세상에서 침묵하는 일의 가치를 일깨우는 탐색의 여정.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을 바꿀 가장 소중한 자원은 침묵이다.
1930년 도쿄위생연구소 소속 의사 두 사람이 행한 소음 실험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의사 후지마키와 아리모토는 흰 쥐 40마리를 절반으로 나눠 각각 소음 상태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도록 한 후 양쪽 무리의 신체 상태를 비교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여서, 매일 기차 1,283대가 통과하는 고가 철로 밑에서 성장한 쥐가 더욱 신경질적이고 성장이 더디고 새끼의 사망률이 높고 번식력이 떨어지고 더 자주 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숨어 있었다. 소음에 찌든 쥐들의 삶은 확실히 고약했지만 적어도 흰 쥐의 기준으로는 수명이 특별히 짧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가 철로 밑에서 성장한 쥐들은 소리가 차단된 환경에서 자란 쥐보다 53일을 더 살았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믿기지 않은 두 의사는 소음의 유형을 바꾸어 가며 실험을 계속해 보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결과는 같았다. 소음을 들으며 자란 쥐는 소음 때문에 발생한 건강 문제에 시달렸지만 조용하게 자란 쥐보다 오히려 더 오래 살았다.(213쪽)
이 같은 실험 결과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음과 침묵의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소음은 듣기 싫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실 세계에 퍼져 있는 소음 중에는 꼭 필요한 것도 있고 또 그것을 차단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침묵은 그 이점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지만 아무 소리도 없는 완전한 침묵은 불가능하거니와 그 안에 속한 존재의 고립을 초래할 뿐 의미가 없다.
저자는 전원을 끈 디브이알에서 조그맣게 들리는 소리에 방의 침묵이 깨져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자신이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닌지, 고요함을 누리고자 하는 자신의 열망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지에 생각이 미치면서 본격적으로 침묵에 대한 탐색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한다. 주변에 소음이 싫다는 사람은 많은데 왜 세상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는지, 침묵이 진정 가치가 있다면 왜 일상에서 그것을 경험할 기회를 가지기가 어려운지, 사라져 가는 침묵의 권리를 되찾을 구체적인 방법은 과연 무엇인지에 의문을 품고 그 답을 찾기 위한 탐색의 여정에 나선다.
소음 관련 전문가와 청각학자, 뇌 전문가, 일상에서 소음 혹은 침묵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직접 소음과 침묵을 경험해 보면서 저자는 침묵을 추구하는 일이 소음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소음의 조화, 즉 우리를 둘러싼 모든 소리의 균형을 맞추고, 소음에 익숙해진 생활을 침묵에 익숙해지도록 바꾸어 가는 일이라고 결론 내리게 된다.
이 책은 세상에서 점차 모습을 감춰 가는 천연자원으로서의 침묵을 우리 삶에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로, 우리가 듣는 소리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침묵의 가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흥미로우면서 놀라운 에피소드들을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소음에 대해 사색할 기회를 갖도록 하고, 새롭고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침묵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침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소음을 사랑하는 우리들
저자가 추구하는 침묵은 스스로 입을 닫고 조용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 세계가 고요해지는 것이다. 소란함과 고요함을 느끼는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 귀의 역할이다. 저자는 귀 전문가인 청각학자, 의사, 신경과학자 등을 만나 소음의 영향과 침묵의 이점을 인터뷰하는데, 이들 전문가는 세상이 점점 시끄러워지면서 발생하는 청각 손상의 위험을 경고하며 ‘새로운 소음’이 위험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20쪽) 여기서 새로운 소음이란 현대인이 원치 않는 소란을 차단하려고 스스로 선택해서 자신을 에워싸도록 한 소음으로, 아이팟 등 휴대용 개인 음향기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집 안에 들어서면 무조건 켜 놓는 텔레비전, 오디오 소리도 현대인이 사랑하는 새로운 소음이다. 저자는 소음 단속에 나선 경찰관과 동행한 자리에서 가정 분쟁의 불씨가 대부분 소음이라는 말을 듣고는(22쪽) 침묵에 대한 추구를 이해하려면 소음을 추구하는 일에 대한 추적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첫 번째 여정_침묵의 세계에 귀 기울이기
본격적으로 침묵 찾기에 나선 저자는 침묵 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찾는다. 암흑에 싸인 예배당에 앉아 침묵의 순간을 경험하던 중 갑자기 틱, 탭, 쨍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단순히 난방 파이프가 식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였을 뿐이지만 저자는 ‘침묵을 듣고 있다’고 느꼈고, 침묵은 완전한 고요가 아닌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하는, 만물을 공명하게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27쪽)
수도원의 한 수도승은 ‘사람들이 자동차에 오르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방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텔레비전을 켜는 이유가 바로 자신과 대치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 말하며, 걸프전 당시 ‘죽음의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비극도 이러한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지적한다.(32-33쪽) 이는 침묵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잃게 된 것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우리는 침묵을 통해 우리 내면을 살피고 성장시킬 기회를 점점 잃어 가고 있으며 그 기회 자체를 두려워하여 새로운 소음을 우리 귀에 계속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수도원 여정에서 저자는 침묵 추구의 신학적 기원(38쪽), 명상 수도승의 선구자인 사막 교부(36쪽), 침묵 경험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40쪽), 호주 원주민 부족의 ‘침묵하는 홀어미’(43쪽)와 미국 아파치족의 침묵 준수 관습(52쪽) 등 전통적인 침묵 추구의 예, 묵념의 기원(45쪽) 등을 소개하고 직접 수도원 생활을 체험해 나가는 가운데 육체적·정신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침묵의 전통적인 가치를 새삼 확인한다.
두 번째 여정_우리는 왜 들을까
수도원 여행 후 저자는 우리의 귀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소리를 듣기 시작한 이유를 이해하면 소음이나 침묵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더 명백해지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귀의 생물학적인 구성과 기능(63쪽)을 탐색하고 귀 전문가, 청각 연구가 등과 인터뷰하는 가운데 우리 귀는 현대의 소음을 버텨 낼 만하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접하게 된다. 본래 생태계 안에서 동물은 기본적으로 침묵하며 생존을 위해 소리를 들었다. 커다란 소리가 그다지 많지 않은 자연 속에서 먹이를 찾거나 적이 다가오는 낌새를 알아채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귀의 증폭 기능을 주로 담당하는 중이(中耳)는 소리 완화 기능 또한 수행한다. 그 이유를 청각 전문가는 “동물 자신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73쪽)이라 말한다. 즉 원래 동물의 귀는 생존을 위해 소리를 증폭시키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내는 목소리를 완화시키며 진화해 왔다. 이라크 침공 당시 장교로 복무했던 한 군인은 생사의 기로인 전쟁터에서 경험한 소리와 침묵에 대해 증언하는데, 이는 포식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생태계에서 생존을 위해 소리를 듣고 또 차단해 온 우리 귀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 준다.(67쪽) 본래 조용한 자연계에서 예민하게 진화해 온 우리의 귀는 오늘날처럼 소음에 계속해서 노출될 경우 청각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결과(청력 상실. 19쪽, 66쪽, 193쪽)를 보이게 될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왜 끝없이 소음을 만들어 내 자신의 예민한 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세 번째 여정_우리는 왜 소음을 만들어 낼까
다윈은 완전히 성장한 동물의 발성을 일종의 무기로 보았다.(79쪽) 수컷은 다른 수컷을 위협하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커다란 소리를 낸다. 한마디로 동물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침묵하고, 육체적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소음을 낸다. 대표적으로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꼽히는 아기 울음소리는 아기가 자신의 불편함을 없애 주도록 부모를 자극하기 위해 선택한 생존 기제라 할 수 있다.(93쪽)
청중을 효과적으로 선동하는 연설가로 알려진 히틀러는 동시대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들보다 높은 음량과 주파수(듣는 사람의 분노와 공격성을 불러일으키는 주파수는 220이지만 히틀러 음성의 주파수는 228이었다.)를 기록했다고 한다.(78쪽) 그런데 히틀러의 목소리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주파수가 아닌 배음(倍音, 기본 소리의 배수가 되는 소리. 보통 기본 소리가 울릴 때 같이 울리는 소리를 말한다.)에서 찾을 수도 있다. 1933년 2월 5일자 「뉴욕타임스」는 “히틀러는 모든 공식 석상에서 원칙에서 벗어난 단호하고 거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유쾌한 바리톤으로 어조를 바꿨다.”고 썼다. 히틀러는 계속해서 여�÷�비명 수준까지 목소리를 끌어올렸다가 다시 낮은 소리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연설을 이어갔는데, 이처럼 배음을 반복적으로 변화시킨 방식에서 청중의 공격성이 유발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94쪽) 한 화성연구가는 “상대적인 배음 수준이 바뀌면 인간에게 생리적 변화를 초래한다.”고 전한다.(92쪽) 권력을 위해 큰 소리를 냈던 히틀러는 언젠가 말하기를, 확성기가 없었다면 독일을 정복할 수 없었고 자신의 커다란 음성은 떠오르는 나치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79쪽)
동물이 소음을 내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학자들을 만나고 나서 저자는 동물이 짝을 찾거나 전투할 때 본능적으로 내는 소음이 현대의 상업이나 연예·오락 부문에서 발하는 소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비난하면서도 즐겨 찾는 의류 매장(애버크롬비 앤드 피치, 100쪽)을 찾아가 보고, 소음으로 유명한 풋볼 경기장의 상황(115쪽)을 살펴보았다. 현대의 수많은 상점과 음식점은 손님의 관심을 끌고 매상을 높이기 위해 소음을 낸다. 또한 경기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끄러운 운동 경기장은 선수들의 투지를 북돋고 팬들을 선동하기 위해 소음을 증폭시킨다. 상품 디자이너들은 개별 상품이 내는 소음을 통해 구매 욕구를 부추기고자 자동차 엔진의 굉음, 카메라의 찰칵 소리, 감자칩 씹는 아삭 소리, 립스틱이 미끄러져 올라오는 소리 등을 분석, 개발한다.(128쪽)
저자가 소음을 위한 소음으로 생각한 것은 자동차 오디오 경쟁 분야로, 저자는 직접 붐 카(boom-car, 고성능 스피커를 장치하여 음악을 큰 소리로 트는 자동차)를 타 보고 데시벨 드래그 레이스(dB Drag Race, 자동차 오디오의 음압과 강약을 측정해 승부를 겨루는 대회)에 참석하여 참가자들과 인터뷰한다. 데시벨 드래그 레이스에서 참가자들은 181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내며 경쟁한다.〔약 30센티미터(1피트) 거리에서 듣는 제트 엔진의 소리가 약 180데시벨이다.〕관객들은 아무런 청력 보호 장치도 갖추지 않은 채 자동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커다란 소리와 진동에 몸을 맡긴다. 이 대회 관계자는 “커다란 소리는 너무나 관능적”이라는 말로 대회 참가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177쪽) 저자는 붐 카의 유행 요인으로 베이스의 순수한 관능성 외에도 붐 카를 모는 사람들 대부분이 요란한 교통 소리에 평생 파묻혀 산다는 사실을 들었다. 소음에 묻혀 생활하는 현대인에게서 일종의 음향적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 인질이 범인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327쪽)
붐 카 운전자들 사이에 유명한 서브우퍼 ‘마터호른’이 내는 소리는 동굴을 붕괴시키는 위력을 지닌다. 이 같은 소리의 위력이 무기로 개발되면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실제로 관타나모 만 수용소에서 죄수를 고문하는 도구로 증폭된 소음이 사용되었다는 보고서가 존재한다.(185쪽)
소음은 속도와 관계가 있다. 1909년 활동을 시작한 미래파는 침묵을 혐오하고 소음의 추구를 주장하면서 특히 소음과 속도를 동시에 구현하는 자동차를 찬양했다.(147쪽) 1979년 출시돼 16년 동안 1억 1,500만 대를 판매한 워크맨도 이름 자체에 운동 개념이 포함되어 있듯 소리와 속도를 동시에 추구했다.(187쪽) 8년간 2억 2천만 대가 팔린 아이팟은 뉴욕 등 대도시의 보행자 수가 증가해 걷는 속도가 더뎌지는 시점에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아이팟의 매력은 바깥세상에서 방해를 받는 속도와 운동 감각을 이어폰을 통해 개개인에게 제공하는 데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188쪽)
하지만 소음에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도 분명하다. 단적인 예로 젊은 세대라면 누구나 귀에 꽂고 다니는 듯한 휴대용 음향기기의 음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청력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193쪽)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청력이 손상된다는 경고를 가벼이 무시하고 더욱 음량을 높이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뇌 유연성 분야의 한 학자는 많은 아동의 청각 피질이 소음 지향적으로 재형성되어 언어 기능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한다. 즉 시끄러운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언어 처리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될 것이고 이는 자폐증 발생을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리라 예측했다.(265쪽)
현대인은 생존의 수준을 넘어 권력을 얻기 위해, 또한 상업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이유에서 소음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활력과 젊음, 관능을 느끼고 집중력을 살리고 자유와 속도감을 만끽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에 더해 스스로는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소음을 갈망한다.
네 번째 여정_방음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이제 저자는 소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소음을 차단하는 분야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먼저 ‘소음 회의’에 참석한 저자는 각종 방음장치를 살펴보고 방음 산업 종사자?과 인터뷰한다.(198쪽) 기원전 4세기 말에 건축되었다고 알려진 그리스 에피다우루스 거대 극장의 방음에서 시작해 오랜 역사를 이어 온 방음 분야는 19세기에 이르러 전문 용어가 생겨날 만큼 큰 발전을 이루었으나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작가 토마스 칼라일은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통풍이 되는 방음실을 자택에 짓고자 했으나 결국 미완성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고 그 방음실에서 비탄에 잠겨 있다 담배 연기에 질식해 쓰러지고 말았다.(206쪽) 이후 방음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자신의 심장 소리가 아주 분명하게 들리는 방음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210쪽)
방음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에 따르는 건강상의 유익함 또한 연구되고 있으나, 방음이 지나치게 과할 수도 있다는 사례 또한 나오고 있다. 저자의 지인인 한 건축가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집’을 지어 달라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집을 지었다. 그러나 그 집은 방음이 너무 잘된 탓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소음이 되었고, 건축가는 고객의 끝없는 불평에 시달려야만 했다.(217쪽)
저자는 소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소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개개인이 추구하는 새로운 소음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침묵의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소소한 소리들마저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 낙엽이 바스락 대는 소리,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 등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들리는 소리는 분명히 소음과는 다르다. 저자는 침묵과 더불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여러 소리를 새로운 소음으로 덮어 버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방탄조끼가 그렇듯 방음(저자는 듣기 싫은 소음을 덮고자 개인이 선택하여 귀에 집어넣는 새로운 소음 또한 방음의 한 종류로 보았다.)도 멋지다. 하지만 총에 맞을까 봐 늘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더 좋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며, 개인 생활의 방음이 소음 해결의 열쇠가 아니라면 공공 정책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다섯 번째 여정_소음 방지 정책의 역사
저자는 소음 방지 정책의 역사를 한 마디로 “바퀴를 재발명해 온 역사”라 말한다.(232쪽) 비슷한 정책 제시만 반복될 뿐, 이미 제시된 정책을 제대로 실행한 적은 없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소음 관련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했지만〔2008년 사라소타에서는 경찰관이 8미터(25피트) 거리에서 들을 만큼의 음량으로 자동차 오디오를 틀어 놓은 사람을 체포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얼마 후 위헌 소송에 휩싸여 집행이 중지되었다. 235쪽〕효과적으로 시행되기에는 경찰 인력 확보 등의 실제적인 뒷받침이 부족했다.
오히려 개인이 설립한 재단의 소음 정책이 아주 효과적인 경우가 있었는데, 1906년 ‘불필요한 소음 억제 협회’를 설립한 줄리아 바넷 라이스의 소음 줄이기 운동이 그 예이다.(237쪽) 줄리아는 소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자고 강조하며 선박의 경적, 병원 주변의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등 지속적인 소음 방지 운동을 벌여 나갔으며 면밀한 소음 측정을 토대로 자료를 만들어 국가 차원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애석하게도 줄리아의 운동은 1920년대 초에 끝나게 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의 등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욕 시에서 개인으로서는 처음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줄리아의 남편이었다.
저자는 소음 방지 정책 면에서 앞서간다고 평가되는 유럽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유럽연합은 2002년 유럽소음강령을 통과시키고 회원국 전체에 소음 지도를 제작하도록 요구했다.(247쪽) 그리고 이 지도를 바탕으로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한 상세한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없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실행한 나라가 없는 실정이다. 도시의 소음도를 실제 지도 모양으로 나타내는 소음 지도 또한 급변하는 도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럽 연합의 소음 프로젝트 관계자와 덴마크의 음향 관리 회사 브뤼엘 앤드 케아의 직원은 소음 지도가 자체적으로 결함을 지니고 있지만 정치가를 설득하는 데 유용한 강력한 도구라고 말한다. 지역구 의원은 자기 지역이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소음 지도를 들고 국가회의에 나가 재정 지원을 해 달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258쪽)
2009년 들어 세계보건기구는 소음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보고서를 연달아 발표해 새롭고 엄격한 소음 지침을 개발하기 위한 토대를 형성했다.(259쪽) 세계보건기구의 소음 관련 대책위원회 의장 김록호 박사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심장 질환의 유발 원인은 대기오염보다 소음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고 전한다.(234쪽) 세계보건기구의 이 같은 노력은 국가별 소음 정책의 미래에 밝은 전망을 제시한다.
여섯 번째 여정_초점을 침묵에, 갤로뎃대학의 ‘청각장애 공간’
소음 방지를 위한 정책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들긴 하지만 저자는 문제의 초점을 소음에만 두는 방식이 과연 옳은지 의문을 가진다. 수십 년간 소음을 줄이는 일에 앞장서 온 한 운동가는 소음 방지에 애를 써서 좀 더 조용한 세상을 만들 수 있었는지 질문하자, “사람들이 좀 더 착해졌나요? 비행기 소음도, 기차 소음도 생각하지 마세요. 음식점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이웃이 집 바닥에 두툼한 카펫을 깔지 않는 것이 문제예요. 정책이 점차 나아지더라도 소음은 계속 악화된답니다.”라 답한다.(327쪽)
이제 저자는 생각의 초점을 소음에 맞서는 싸움에서 사람들의 성공적인 침묵 경험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 유일의 청각장애인 대학인 갤로뎃대학에서 ‘청각장애 공간’을 구현하고 있는 ‘청각장애 건축’ 전문가를 만난다.(276쪽) 청각장애 공간을 짓는 의도는 사람들이 침묵 자체에 대한 대화를 하도록 독려하는 데 있다. 이 공간에는 청각장애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곳 또한 들어설 계획이며 설계자들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누리고 정보를 얻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소음 제조 장비들을, 소리를 없앤 상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저자는 청각장애 건축을 이해하고 여러 청각장애인과 인터뷰하면서, 청각장애인이 공간과 소통하는 방식 즉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자신을 그 공간의 일부로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깨닫고, 청각장애 건축이 청각 정상인에게 침묵 경험의 깊이와 넓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오늘날 갤로뎃에서는 많은 학생이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받고 있지만 대부분 전원을 꺼 놓는다고 한다. 하루에 소리를 즐기거나 듣고 싶은 시간은 매우 적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280쪽) 헤드폰으로 음악을 크게 듣는 습관을 지니고 있던 중에 청력을 잃게 된 한 여성은 “소리의 95~97퍼센트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어요. 사방이 조용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것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요. 보청기를 사용하면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겠죠. 하지만 지금은 개나리가 활짝 핀 아름다운 광경을 맘껏 즐길 수 있답니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매일같이 던져지는 온갖 허섭스레기 같은 소리를 많은 시간을 낭비해 가며 전부 들을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해방감을 느껴요.”라 말했다.(283쪽)
청각이 정상인 사람은 소리의 강도를 바탕으로 여러 사건의 중요성을 판단할지 모르나, 청각장애인은 속담에 나오는 ‘삐걱거리는 바퀴(목소리가 큰사람의 비유)’에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은 세세한 사건에 적당히 초연하고 큰 사건에 적당히 신경을 쓰는 등 조화를 찾을 가능성이 청각 정상인에 비해 높다.(284쪽)
조용한 결론_소음에 맞서는 대신 침묵과 친숙해진다.
저자가 청각장애 공간에 대해 이 책의 많은 면을 할애한 이유는, 그 공간이 침묵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의 침묵에 대한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구석구석 모두 조용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반적인 소음 체험을 차단할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침묵의 비율이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갈구해야 한다.
저자는 주변 소음을 공해 문제로 생각하기보다 다이어트의 문제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청각 식습관은 끔찍하다. 지나치게 기름지면서 영양가는 전혀 없는 소리를 늘상 과도하게 섭취한다. 그리고 충분한 침묵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통해 침묵의 비율을 늘린다면 불건전한 식습관은 고쳐질 것이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다이어트에 대해 가르칠 때 교사는 패스트푸드 섭취에 따른 위험뿐 아니라 건강에 좋은 영양식의 이점에 대해서도 말한다. 침묵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교육이 필요하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퀘이커프렌드스쿨 학생들은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침묵의 시간을 매일 갖는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침묵은 학창시절의 중요한 부분인데 많은 학교에서 이 점을 놓치고 있어요.”라고 지적하며 “그저 멈추고 느긋해지는 겁니다. 침묵의 이 같은 단순성을 경험한 학생들은 상황을 올바로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침묵은 우리가 행동하면서 안타깝게도 놓치고 있는 사색적인 요소랍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퀘이커프렌드스쿨이 학생들에게 침묵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었던 것은 훈육 자체 덕분이라기보다는 도시 교육부의 감독에서 벗어나 학교 자체적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동료들로부터 요즘 공립학교의 정신 나간 시험제도에 대해 자주 들어요. 그런 제도 밑에서는 개인적으로 심오하고 명상적으로 사고할 시간을 가질 수 없죠.”(322쪽)
저자는 또한 경제적 능력과 관계없이 침묵 경험의 기회를 골고루 가질 수 있는 사회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도심 속 공원과 공공 침묵 공간, 침묵 재단의 설립과 침묵 축제의 개최 등 침묵을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안한다.
소음을 내는 사람을 강제로 침묵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두더지 잡기 게임과 비슷하다. 소음의 한 가지 근원을 침묵하라고 강요하면, 현대인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장치만큼이나 끝없이 다양한 새로운 소음이 형태를 바꿔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곤란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침묵 추구 자체를 귀가 솔깃한 제안으로 만드는 것이다. 침묵에서 점점 제외되고 있는 사람들이 침묵의 영향력을 느낄 기회를 많이 가질수록, 침묵이 사회에 독특한 혜택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328쪽)
20세기 초 학자이자 침묵 운동가인 테오도르 레싱은 ‘자기혐오적인 유태인(반유태주의자들이 가하는 유태인에 대한 모욕을 내재화한 사람)’ 개념을 분석하면서 “인간을 개로 만들려면 인간을 향해 ‘이 개자식아!’라고 오랫동안 소리 지르기만 하면 된다.”고 썼다.(313쪽) 또한 경제적·사회적 힘이 부족하여 존중받지 못한 사람들은 종종 소음을 만들어서 세상에 대한 물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애쓴다고 주장하여,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 자발적인 침묵이 생성될 것임을 시사했다.
소음에 익숙해지기는 쉽지만 그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 크다.
침묵에 익숙해지는 일은 어려운 듯하지만, 소리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침묵 경험을 늘려 나간다면 어느덧 그 편안함에 익숙해질 것이다.
“지적인 책이다. … 침묵은 잠에 빠지는 데 좋다. 하지만 저자는 소음에 초점을 맞추어 독자를 활짝 깨어 있게 만든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우아하고 절제된 어조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시해 왔던 측면을 다루면서 현대인들이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_북리스트
“우리가 매일 혹사하고 있는 감각에 대한 매혹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다. 이제 아이팟을 끄고 이 책을 읽자.” _엘리자베스 콜베르트(『인구 재앙 보고서』의 저자)
“엄숙한 침묵을 명쾌하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이해했다.” _커쿠스
“명쾌하고 유려하다!” _뉴욕타임스
“현대 생활의 소음에 대한 자세하고 유익한 연구이다.” _뉴리퍼블릭
▣ 작가 소개
저자 : 조지 프로흐니크 (George Prochnik)
뉴욕 시 브루클린에 거주하면서 「뉴욕타임스」, 「보스턴글로브」, 「캐비닛」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퍼트넘 캠프: 지그문트 프로이트, 제임스 잭슨 퍼트넘, 그리고 미국 심리학의 목적(Putnam Camp: Sigmund Freud, James Jackson Putnam, and the Purpose of American Psychology)』이 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의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에 선정되었고, 2007년 그라디바상(Gradiva Award)을 수상했다.
역자 : 안기순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 전공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학 사회사업대학원에서 사회사업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시애틀 소재 아시안 카운슬링&리퍼럴 서비스(The Asian Counseling&Referral Services)에서 카운슬러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실버스트리트의 하숙인 셰익스피어』,『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마크 트웨인 자서전』,『루시 모드 몽고메리 자서전』,『블랙먼, 판사가 되다』,『너는 무엇을 위해 살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장 미지의 세계에 귀 기울이다
2장 우리는 왜 들을까
3장 우리는 왜 소음을 만들어 낼까
4장 소음과 삶의 에너지
5장 소음인가 소리인가
6장 잠시 조용한 휴식을
7장 소리 죽이기
8장 소음 고속도로
9장 방음 전선
10장 이건 전쟁이야!
11장 승냥이 덫
12장 조용한 결론
이 책은
휴대용 음악 기기의 치솟는 인기, 요란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게, 온 나라를 들썩이게 하는 공사 소음, 끝으로 치닫는 교통 홍수의 틈바구니에서 침묵의 공간은 자꾸만 사라져 간다. 이 책은 세상에서 점차 모습을 감춰 가는 천연자원으로서의 침묵을 우리 삶에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소음 관련 전문가와 일상에서 침묵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직접 소음과 침묵을 경험해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어째서 이토록 시끄러워졌는지, 침묵하지 못하면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탐색한다. 또한 어떻게 침묵의 권리를 되찾아 나갈 수 있는지 그 구체적인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우리는 세상이 조용해지기를 바라면서 한편으로 더 많은 것을 들으려 한다.
어떻게 듣는 일과 듣지 않는 일 사이의 조화를 이룰 것인가.
갈수록 시끄러워지는 세상에서 침묵하는 일의 가치를 일깨우는 탐색의 여정.
지금 이 순간 우리 삶을 바꿀 가장 소중한 자원은 침묵이다.
1930년 도쿄위생연구소 소속 의사 두 사람이 행한 소음 실험이 세간의 화제가 되었다. 의사 후지마키와 아리모토는 흰 쥐 40마리를 절반으로 나눠 각각 소음 상태가 다른 환경에서 자라도록 한 후 양쪽 무리의 신체 상태를 비교했다. 결과는 예상했던 대로여서, 매일 기차 1,283대가 통과하는 고가 철로 밑에서 성장한 쥐가 더욱 신경질적이고 성장이 더디고 새끼의 사망률이 높고 번식력이 떨어지고 더 자주 먹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여기에는 반전이 숨어 있었다. 소음에 찌든 쥐들의 삶은 확실히 고약했지만 적어도 흰 쥐의 기준으로는 수명이 특별히 짧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가 철로 밑에서 성장한 쥐들은 소리가 차단된 환경에서 자란 쥐보다 53일을 더 살았다.
이러한 연구 결과가 믿기지 않은 두 의사는 소음의 유형을 바꾸어 가며 실험을 계속해 보았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결과는 같았다. 소음을 들으며 자란 쥐는 소음 때문에 발생한 건강 문제에 시달렸지만 조용하게 자란 쥐보다 오히려 더 오래 살았다.(213쪽)
이 같은 실험 결과는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소음과 침묵의 문제가 결코 단순하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소음은 듣기 싫고 건강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알려져 있지만 현실 세계에 퍼져 있는 소음 중에는 꼭 필요한 것도 있고 또 그것을 차단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완전히 없앨 수는 없다. 침묵은 그 이점이 갈수록 부각되고 있지만 아무 소리도 없는 완전한 침묵은 불가능하거니와 그 안에 속한 존재의 고립을 초래할 뿐 의미가 없다.
저자는 전원을 끈 디브이알에서 조그맣게 들리는 소리에 방의 침묵이 깨져 고통스럽다고 느끼는 자신이 너무 민감한 것은 아닌지, 고요함을 누리고자 하는 자신의 열망이 터무니없는 것은 아닌지에 생각이 미치면서 본격적으로 침묵에 대한 탐색을 시작해 보기로 결심한다. 주변에 소음이 싫다는 사람은 많은데 왜 세상은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있는지, 침묵이 진정 가치가 있다면 왜 일상에서 그것을 경험할 기회를 가지기가 어려운지, 사라져 가는 침묵의 권리를 되찾을 구체적인 방법은 과연 무엇인지에 의문을 품고 그 답을 찾기 위한 탐색의 여정에 나선다.
소음 관련 전문가와 청각학자, 뇌 전문가, 일상에서 소음 혹은 침묵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직접 소음과 침묵을 경험해 보면서 저자는 침묵을 추구하는 일이 소음과 맞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침묵과 소음의 조화, 즉 우리를 둘러싼 모든 소리의 균형을 맞추고, 소음에 익숙해진 생활을 침묵에 익숙해지도록 바꾸어 가는 일이라고 결론 내리게 된다.
이 책은 세상에서 점차 모습을 감춰 가는 천연자원으로서의 침묵을 우리 삶에 되살리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물로, 우리가 듣는 소리에 대한 과학적 탐구와 침묵의 가치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쉽게 접할 수 없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과 흥미로우면서 놀라운 에피소드들을 제공함으로써 우리가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우리 주변의 소음에 대해 사색할 기회를 갖도록 하고, 새롭고 현실적인 방법을 통해 침묵에 다가설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충실히 한다.
침묵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소음을 사랑하는 우리들
저자가 추구하는 침묵은 스스로 입을 닫고 조용해지는 것만이 아니라 주변 세계가 고요해지는 것이다. 소란함과 고요함을 느끼는 것은 일차적으로 우리 귀의 역할이다. 저자는 귀 전문가인 청각학자, 의사, 신경과학자 등을 만나 소음의 영향과 침묵의 이점을 인터뷰하는데, 이들 전문가는 세상이 점점 시끄러워지면서 발생하는 청각 손상의 위험을 경고하며 ‘새로운 소음’이 위험을 초래한다고 주장한다.(20쪽) 여기서 새로운 소음이란 현대인이 원치 않는 소란을 차단하려고 스스로 선택해서 자신을 에워싸도록 한 소음으로, 아이팟 등 휴대용 개인 음향기기가 대표적인 예이다. 또한 집 안에 들어서면 무조건 켜 놓는 텔레비전, 오디오 소리도 현대인이 사랑하는 새로운 소음이다. 저자는 소음 단속에 나선 경찰관과 동행한 자리에서 가정 분쟁의 불씨가 대부분 소음이라는 말을 듣고는(22쪽) 침묵에 대한 추구를 이해하려면 소음을 추구하는 일에 대한 추적 또한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첫 번째 여정_침묵의 세계에 귀 기울이기
본격적으로 침묵 찾기에 나선 저자는 침묵 수행을 기본으로 하는 트라피스트 수도원을 찾는다. 암흑에 싸인 예배당에 앉아 침묵의 순간을 경험하던 중 갑자기 틱, 탭, 쨍 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단순히 난방 파이프가 식는 과정에서 나는 소리였을 뿐이지만 저자는 ‘침묵을 듣고 있다’고 느꼈고, 침묵은 완전한 고요가 아닌 그동안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하는, 만물을 공명하게 하는 존재임을 깨닫는다.(27쪽)
수도원의 한 수도승은 ‘사람들이 자동차에 오르자마자 라디오를 켜고 방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텔레비전을 켜는 이유가 바로 자신과 대치하는 상황을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라 말하며, 걸프전 당시 ‘죽음의 고속도로’에서 일어난 비극도 이러한 맥락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지적한다.(32-33쪽) 이는 침묵하지 못하면서 우리가 잃게 된 것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보여 준다. 우리는 침묵을 통해 우리 내면을 살피고 성장시킬 기회를 점점 잃어 가고 있으며 그 기회 자체를 두려워하여 새로운 소음을 우리 귀에 계속 집어넣고 있는 것이다.
수도원 여정에서 저자는 침묵 추구의 신학적 기원(38쪽), 명상 수도승의 선구자인 사막 교부(36쪽), 침묵 경험이 두뇌에 미치는 영향(40쪽), 호주 원주민 부족의 ‘침묵하는 홀어미’(43쪽)와 미국 아파치족의 침묵 준수 관습(52쪽) 등 전통적인 침묵 추구의 예, 묵념의 기원(45쪽) 등을 소개하고 직접 수도원 생활을 체험해 나가는 가운데 육체적·정신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침묵의 전통적인 가치를 새삼 확인한다.
두 번째 여정_우리는 왜 들을까
수도원 여행 후 저자는 우리의 귀에 대해 좀 더 알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소리를 듣기 시작한 이유를 이해하면 소음이나 침묵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더 명백해지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 귀의 생물학적인 구성과 기능(63쪽)을 탐색하고 귀 전문가, 청각 연구가 등과 인터뷰하는 가운데 우리 귀는 현대의 소음을 버텨 낼 만하지 않다는 우려의 목소리를 접하게 된다. 본래 생태계 안에서 동물은 기본적으로 침묵하며 생존을 위해 소리를 들었다. 커다란 소리가 그다지 많지 않은 자연 속에서 먹이를 찾거나 적이 다가오는 낌새를 알아채기 위해 귀를 쫑긋 세웠던 것이다. 그런데 귀의 증폭 기능을 주로 담당하는 중이(中耳)는 소리 완화 기능 또한 수행한다. 그 이유를 청각 전문가는 “동물 자신의 목소리가 크기 때문”(73쪽)이라 말한다. 즉 원래 동물의 귀는 생존을 위해 소리를 증폭시키고 한편으로는 자신이 내는 목소리를 완화시키며 진화해 왔다. 이라크 침공 당시 장교로 복무했던 한 군인은 생사의 기로인 전쟁터에서 경험한 소리와 침묵에 대해 증언하는데, 이는 포식 관계를 중심으로 형성되는 생태계에서 생존을 위해 소리를 듣고 또 차단해 온 우리 귀의 상황을 그대로 보여 준다.(67쪽) 본래 조용한 자연계에서 예민하게 진화해 온 우리의 귀는 오늘날처럼 소음에 계속해서 노출될 경우 청각 전문가들이 경고하는 결과(청력 상실. 19쪽, 66쪽, 193쪽)를 보이게 될 것임이 자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들은 왜 끝없이 소음을 만들어 내 자신의 예민한 귀를 괴롭히고 있는 것일까?
세 번째 여정_우리는 왜 소음을 만들어 낼까
다윈은 완전히 성장한 동물의 발성을 일종의 무기로 보았다.(79쪽) 수컷은 다른 수컷을 위협하고 암컷을 유혹하기 위해 커다란 소리를 낸다. 한마디로 동물은 자신의 모습을 감추기 위해 침묵하고, 육체적 실체를 드러내기 위해 소음을 낸다. 대표적으로 귀에 거슬리는 소리로 꼽히는 아기 울음소리는 아기가 자신의 불편함을 없애 주도록 부모를 자극하기 위해 선택한 생존 기제라 할 수 있다.(93쪽)
청중을 효과적으로 선동하는 연설가로 알려진 히틀러는 동시대 다른 나라의 국가원수들보다 높은 음량과 주파수(듣는 사람의 분노와 공격성을 불러일으키는 주파수는 220이지만 히틀러 음성의 주파수는 228이었다.)를 기록했다고 한다.(78쪽) 그런데 히틀러의 목소리가 강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를 주파수가 아닌 배음(倍音, 기본 소리의 배수가 되는 소리. 보통 기본 소리가 울릴 때 같이 울리는 소리를 말한다.)에서 찾을 수도 있다. 1933년 2월 5일자 「뉴욕타임스」는 “히틀러는 모든 공식 석상에서 원칙에서 벗어난 단호하고 거친 어조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런 다음 유쾌한 바리톤으로 어조를 바꿨다.”고 썼다. 히틀러는 계속해서 여�÷�비명 수준까지 목소리를 끌어올렸다가 다시 낮은 소리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하며 연설을 이어갔는데, 이처럼 배음을 반복적으로 변화시킨 방식에서 청중의 공격성이 유발되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94쪽) 한 화성연구가는 “상대적인 배음 수준이 바뀌면 인간에게 생리적 변화를 초래한다.”고 전한다.(92쪽) 권력을 위해 큰 소리를 냈던 히틀러는 언젠가 말하기를, 확성기가 없었다면 독일을 정복할 수 없었고 자신의 커다란 음성은 떠오르는 나치당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했다.(79쪽)
동물이 소음을 내는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 여러 학자들을 만나고 나서 저자는 동물이 짝을 찾거나 전투할 때 본능적으로 내는 소음이 현대의 상업이나 연예·오락 부문에서 발하는 소음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비난하면서도 즐겨 찾는 의류 매장(애버크롬비 앤드 피치, 100쪽)을 찾아가 보고, 소음으로 유명한 풋볼 경기장의 상황(115쪽)을 살펴보았다. 현대의 수많은 상점과 음식점은 손님의 관심을 끌고 매상을 높이기 위해 소음을 낸다. 또한 경기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어려울 정도로 시끄러운 운동 경기장은 선수들의 투지를 북돋고 팬들을 선동하기 위해 소음을 증폭시킨다. 상품 디자이너들은 개별 상품이 내는 소음을 통해 구매 욕구를 부추기고자 자동차 엔진의 굉음, 카메라의 찰칵 소리, 감자칩 씹는 아삭 소리, 립스틱이 미끄러져 올라오는 소리 등을 분석, 개발한다.(128쪽)
저자가 소음을 위한 소음으로 생각한 것은 자동차 오디오 경쟁 분야로, 저자는 직접 붐 카(boom-car, 고성능 스피커를 장치하여 음악을 큰 소리로 트는 자동차)를 타 보고 데시벨 드래그 레이스(dB Drag Race, 자동차 오디오의 음압과 강약을 측정해 승부를 겨루는 대회)에 참석하여 참가자들과 인터뷰한다. 데시벨 드래그 레이스에서 참가자들은 181데시벨 이상의 소리를 내며 경쟁한다.〔약 30센티미터(1피트) 거리에서 듣는 제트 엔진의 소리가 약 180데시벨이다.〕관객들은 아무런 청력 보호 장치도 갖추지 않은 채 자동차 안에서 울려 퍼지는 커다란 소리와 진동에 몸을 맡긴다. 이 대회 관계자는 “커다란 소리는 너무나 관능적”이라는 말로 대회 참가자들의 입장을 대변한다.(177쪽) 저자는 붐 카의 유행 요인으로 베이스의 순수한 관능성 외에도 붐 카를 모는 사람들 대부분이 요란한 교통 소리에 평생 파묻혀 산다는 사실을 들었다. 소음에 묻혀 생활하는 현대인에게서 일종의 음향적 스톡홀름 신드롬(Stockholm syndrome, 인질이 범인에게 정신적으로 동화되어 호감과 지지를 나타내는 심리 현상)을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327쪽)
붐 카 운전자들 사이에 유명한 서브우퍼 ‘마터호른’이 내는 소리는 동굴을 붕괴시키는 위력을 지닌다. 이 같은 소리의 위력이 무기로 개발되면 끔찍한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실제로 관타나모 만 수용소에서 죄수를 고문하는 도구로 증폭된 소음이 사용되었다는 보고서가 존재한다.(185쪽)
소음은 속도와 관계가 있다. 1909년 활동을 시작한 미래파는 침묵을 혐오하고 소음의 추구를 주장하면서 특히 소음과 속도를 동시에 구현하는 자동차를 찬양했다.(147쪽) 1979년 출시돼 16년 동안 1억 1,500만 대를 판매한 워크맨도 이름 자체에 운동 개념이 포함되어 있듯 소리와 속도를 동시에 추구했다.(187쪽) 8년간 2억 2천만 대가 팔린 아이팟은 뉴욕 등 대도시의 보행자 수가 증가해 걷는 속도가 더뎌지는 시점에 등장해 큰 인기를 끌었다. 아이팟의 매력은 바깥세상에서 방해를 받는 속도와 운동 감각을 이어폰을 통해 개개인에게 제공하는 데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188쪽)
하지만 소음에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도 분명하다. 단적인 예로 젊은 세대라면 누구나 귀에 꽂고 다니는 듯한 휴대용 음향기기의 음량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청력을 앗아갈 위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193쪽) 이보다 더 위험한 것은 청력이 손상된다는 경고를 가벼이 무시하고 더욱 음량을 높이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뇌 유연성 분야의 한 학자는 많은 아동의 청각 피질이 소음 지향적으로 재형성되어 언어 기능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경고한다. 즉 시끄러운 환경에서 성장한 아이들의 언어 처리 능력이 현저하게 저하될 것이고 이는 자폐증 발생을 증가시키는 주요 원인이 되리라 예측했다.(265쪽)
현대인은 생존의 수준을 넘어 권력을 얻기 위해, 또한 상업적이며 사회문화적인 이유에서 소음을 추구한다. 이를 통해 활력과 젊음, 관능을 느끼고 집중력을 살리고 자유와 속도감을 만끽하고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그에 더해 스스로는 통제할 수 없는 다른 소음을 차단하기 위해 새로운 형태의 소음을 갈망한다.
네 번째 여정_방음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이제 저자는 소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소음을 차단하는 분야에 대한 탐색에 나선다. 먼저 ‘소음 회의’에 참석한 저자는 각종 방음장치를 살펴보고 방음 산업 종사자?과 인터뷰한다.(198쪽) 기원전 4세기 말에 건축되었다고 알려진 그리스 에피다우루스 거대 극장의 방음에서 시작해 오랜 역사를 이어 온 방음 분야는 19세기에 이르러 전문 용어가 생겨날 만큼 큰 발전을 이루었으나 실제 적용에 있어서는 여전히 문제가 있었다. 작가 토마스 칼라일은 전혀 소리가 들리지 않으면서 완벽하게 통풍이 되는 방음실을 자택에 짓고자 했으나 결국 미완성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고 그 방음실에서 비탄에 잠겨 있다 담배 연기에 질식해 쓰러지고 말았다.(206쪽) 이후 방음 기술은 더욱 발전하여 네덜란드 위트레흐트에는 조금만 움직여도 자신의 심장 소리가 아주 분명하게 들리는 방음실이 만들어지기도 했다.(210쪽)
방음 기술의 발달에 따라 그에 따르는 건강상의 유익함 또한 연구되고 있으나, 방음이 지나치게 과할 수도 있다는 사례 또한 나오고 있다. 저자의 지인인 한 건축가는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집’을 지어 달라는 고객의 요구에 따라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집을 지었다. 그러나 그 집은 방음이 너무 잘된 탓에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소음이 되었고, 건축가는 고객의 끝없는 불평에 시달려야만 했다.(217쪽)
저자는 소음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버리고 소리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개개인이 추구하는 새로운 소음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침묵의 기회를 앗아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주변의 소소한 소리들마저도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아이들 노는 소리, 낙엽이 바스락 대는 소리, 도란도란 얘기 나누는 소리 등 자연스럽고 친근하게 들리는 소리는 분명히 소음과는 다르다. 저자는 침묵과 더불어 삶을 풍요롭게 해 주는 여러 소리를 새로운 소음으로 덮어 버리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그리고 “방탄조끼가 그렇듯 방음(저자는 듣기 싫은 소음을 덮고자 개인이 선택하여 귀에 집어넣는 새로운 소음 또한 방음의 한 종류로 보았다.)도 멋지다. 하지만 총에 맞을까 봐 늘 전전긍긍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더 좋지 않을까?”라고 반문하며, 개인 생활의 방음이 소음 해결의 열쇠가 아니라면 공공 정책이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다섯 번째 여정_소음 방지 정책의 역사
저자는 소음 방지 정책의 역사를 한 마디로 “바퀴를 재발명해 온 역사”라 말한다.(232쪽) 비슷한 정책 제시만 반복될 뿐, 이미 제시된 정책을 제대로 실행한 적은 없다는 얘기다. 미국에서는 주에 따라 소음 관련 법안이 시행되기까지 했지만〔2008년 사라소타에서는 경찰관이 8미터(25피트) 거리에서 들을 만큼의 음량으로 자동차 오디오를 틀어 놓은 사람을 체포할 수 있는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얼마 후 위헌 소송에 휩싸여 집행이 중지되었다. 235쪽〕효과적으로 시행되기에는 경찰 인력 확보 등의 실제적인 뒷받침이 부족했다.
오히려 개인이 설립한 재단의 소음 정책이 아주 효과적인 경우가 있었는데, 1906년 ‘불필요한 소음 억제 협회’를 설립한 줄리아 바넷 라이스의 소음 줄이기 운동이 그 예이다.(237쪽) 줄리아는 소음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소음을 줄이자고 강조하며 선박의 경적, 병원 주변의 소음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등 지속적인 소음 방지 운동을 벌여 나갔으며 면밀한 소음 측정을 토대로 자료를 만들어 국가 차원의 협력을 이끌어냈다. 애석하게도 줄리아의 운동은 1920년대 초에 끝나게 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동차의 등장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뉴욕 시에서 개인으로서는 처음 자동차를 소유한 사람은 줄리아의 남편이었다.
저자는 소음 방지 정책 면에서 앞서간다고 평가되는 유럽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유럽연합은 2002년 유럽소음강령을 통과시키고 회원국 전체에 소음 지도를 제작하도록 요구했다.(247쪽) 그리고 이 지도를 바탕으로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한 상세한 계획을 세우도록 했다. 하지만 강제 규정이 없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실행한 나라가 없는 실정이다. 도시의 소음도를 실제 지도 모양으로 나타내는 소음 지도 또한 급변하는 도시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유럽 연합의 소음 프로젝트 관계자와 덴마크의 음향 관리 회사 브뤼엘 앤드 케아의 직원은 소음 지도가 자체적으로 결함을 지니고 있지만 정치가를 설득하는 데 유용한 강력한 도구라고 말한다. 지역구 의원은 자기 지역이 소음에 노출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소음 지도를 들고 국가회의에 나가 재정 지원을 해 달라는 주장을 할 수 있다.(258쪽)
2009년 들어 세계보건기구는 소음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 주는 보고서를 연달아 발표해 새롭고 엄격한 소음 지침을 개발하기 위한 토대를 형성했다.(259쪽) 세계보건기구의 소음 관련 대책위원회 의장 김록호 박사는 “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심장 질환의 유발 원인은 대기오염보다 소음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고 전한다.(234쪽) 세계보건기구의 이 같은 노력은 국가별 소음 정책의 미래에 밝은 전망을 제시한다.
여섯 번째 여정_초점을 침묵에, 갤로뎃대학의 ‘청각장애 공간’
소음 방지를 위한 정책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들긴 하지만 저자는 문제의 초점을 소음에만 두는 방식이 과연 옳은지 의문을 가진다. 수십 년간 소음을 줄이는 일에 앞장서 온 한 운동가는 소음 방지에 애를 써서 좀 더 조용한 세상을 만들 수 있었는지 질문하자, “사람들이 좀 더 착해졌나요? 비행기 소음도, 기차 소음도 생각하지 마세요. 음식점에서 휴대전화를 사용하고, 이웃이 집 바닥에 두툼한 카펫을 깔지 않는 것이 문제예요. 정책이 점차 나아지더라도 소음은 계속 악화된답니다.”라 답한다.(327쪽)
이제 저자는 생각의 초점을 소음에 맞서는 싸움에서 사람들의 성공적인 침묵 경험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세계 유일의 청각장애인 대학인 갤로뎃대학에서 ‘청각장애 공간’을 구현하고 있는 ‘청각장애 건축’ 전문가를 만난다.(276쪽) 청각장애 공간을 짓는 의도는 사람들이 침묵 자체에 대한 대화를 하도록 독려하는 데 있다. 이 공간에는 청각장애를 경험해 볼 수 있는 곳 또한 들어설 계획이며 설계자들은 사람들이 즐거움을 누리고 정보를 얻기 위해 귀를 기울이는 소음 제조 장비들을, 소리를 없앤 상태로 선보일 예정이다. 저자는 청각장애 건축을 이해하고 여러 청각장애인과 인터뷰하면서, 청각장애인이 공간과 소통하는 방식 즉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침묵 속에서 자신을 그 공간의 일부로 인식하는 방식에 대해 깨닫고, 청각장애 건축이 청각 정상인에게 침묵 경험의 깊이와 넓이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된다.
오늘날 갤로뎃에서는 많은 학생이 인공 달팽이관을 이식받고 있지만 대부분 전원을 꺼 놓는다고 한다. 하루에 소리를 즐기거나 듣고 싶은 시간은 매우 적다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다.(280쪽) 헤드폰으로 음악을 크게 듣는 습관을 지니고 있던 중에 청력을 잃게 된 한 여성은 “소리의 95~97퍼센트에 대해서는 미련이 없어요. 사방이 조용하기 때문에 시각적인 것에 더욱 집중할 수 있어요. 보청기를 사용하면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겠죠. 하지만 지금은 개나리가 활짝 핀 아름다운 광경을 맘껏 즐길 수 있답니다. 내 말이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매일같이 던져지는 온갖 허섭스레기 같은 소리를 많은 시간을 낭비해 가며 전부 들을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해방감을 느껴요.”라 말했다.(283쪽)
청각이 정상인 사람은 소리의 강도를 바탕으로 여러 사건의 중요성을 판단할지 모르나, 청각장애인은 속담에 나오는 ‘삐걱거리는 바퀴(목소리가 큰사람의 비유)’에는 관심을 쏟지 않는다. 따라서 청각장애인은 세세한 사건에 적당히 초연하고 큰 사건에 적당히 신경을 쓰는 등 조화를 찾을 가능성이 청각 정상인에 비해 높다.(284쪽)
조용한 결론_소음에 맞서는 대신 침묵과 친숙해진다.
저자가 청각장애 공간에 대해 이 책의 많은 면을 할애한 이유는, 그 공간이 침묵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결국 저자의 침묵에 대한 결론은 이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구석구석 모두 조용할 필요는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반적인 소음 체험을 차단할 수 있도록 좀 더 많은 공간을 확보하는 일이다. 우리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침묵의 비율이 더욱 높아질 수 있도록 갈구해야 한다.
저자는 주변 소음을 공해 문제로 생각하기보다 다이어트의 문제로 생각해 보자고 제안한다. 우리의 청각 식습관은 끔찍하다. 지나치게 기름지면서 영양가는 전혀 없는 소리를 늘상 과도하게 섭취한다. 그리고 충분한 침묵을 섭취하지 못하고 있다. 제대로 된 다이어트를 통해 침묵의 비율을 늘린다면 불건전한 식습관은 고쳐질 것이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바로 교육이다. 아이들에게 다이어트에 대해 가르칠 때 교사는 패스트푸드 섭취에 따른 위험뿐 아니라 건강에 좋은 영양식의 이점에 대해서도 말한다. 침묵에 대해서도 이와 같은 교육이 필요하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퀘이커프렌드스쿨 학생들은 유치원 때부터 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침묵의 시간을 매일 갖는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침묵은 학창시절의 중요한 부분인데 많은 학교에서 이 점을 놓치고 있어요.”라고 지적하며 “그저 멈추고 느긋해지는 겁니다. 침묵의 이 같은 단순성을 경험한 학생들은 상황을 올바로 정리할 수 있게 됩니다. 침묵은 우리가 행동하면서 안타깝게도 놓치고 있는 사색적인 요소랍니다.”라고 전했다. 그는 퀘이커프렌드스쿨이 학생들에게 침묵의 가치를 성공적으로 교육시킬 수 있었던 것은 훈육 자체 덕분이라기보다는 도시 교육부의 감독에서 벗어나 학교 자체적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공립학교에서 가르치는 동료들로부터 요즘 공립학교의 정신 나간 시험제도에 대해 자주 들어요. 그런 제도 밑에서는 개인적으로 심오하고 명상적으로 사고할 시간을 가질 수 없죠.”(322쪽)
저자는 또한 경제적 능력과 관계없이 침묵 경험의 기회를 골고루 가질 수 있는 사회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도심 속 공원과 공공 침묵 공간, 침묵 재단의 설립과 침묵 축제의 개최 등 침묵을 공유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제안한다.
소음을 내는 사람을 강제로 침묵하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두더지 잡기 게임과 비슷하다. 소음의 한 가지 근원을 침묵하라고 강요하면, 현대인이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새로운 장치만큼이나 끝없이 다양한 새로운 소음이 형태를 바꿔 나타날 것이다.
이러한 곤란한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침묵 추구 자체를 귀가 솔깃한 제안으로 만드는 것이다. 침묵에서 점점 제외되고 있는 사람들이 침묵의 영향력을 느낄 기회를 많이 가질수록, 침묵이 사회에 독특한 혜택을 제공할 가능성이 높다.(328쪽)
20세기 초 학자이자 침묵 운동가인 테오도르 레싱은 ‘자기혐오적인 유태인(반유태주의자들이 가하는 유태인에 대한 모욕을 내재화한 사람)’ 개념을 분석하면서 “인간을 개로 만들려면 인간을 향해 ‘이 개자식아!’라고 오랫동안 소리 지르기만 하면 된다.”고 썼다.(313쪽) 또한 경제적·사회적 힘이 부족하여 존중받지 못한 사람들은 종종 소음을 만들어서 세상에 대한 물리적 영향력을 확대하려 애쓴다고 주장하여, 모든 사람이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면 자발적인 침묵이 생성될 것임을 시사했다.
소음에 익숙해지기는 쉽지만 그 때문에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나 크다.
침묵에 익숙해지는 일은 어려운 듯하지만, 소리에 대한 인식을 새로이 하고 침묵 경험을 늘려 나간다면 어느덧 그 편안함에 익숙해질 것이다.
“지적인 책이다. … 침묵은 잠에 빠지는 데 좋다. 하지만 저자는 소음에 초점을 맞추어 독자를 활짝 깨어 있게 만든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우아하고 절제된 어조로 깊은 사색을 담고 있는 이 책은 우리가 일상에서 무시해 왔던 측면을 다루면서 현대인들이 많은 대가를 치르면서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_북리스트
“우리가 매일 혹사하고 있는 감각에 대한 매혹적이면서도 재미있는 책이다. 이제 아이팟을 끄고 이 책을 읽자.” _엘리자베스 콜베르트(『인구 재앙 보고서』의 저자)
“엄숙한 침묵을 명쾌하고 균형 잡힌 시선으로 이해했다.” _커쿠스
“명쾌하고 유려하다!” _뉴욕타임스
“현대 생활의 소음에 대한 자세하고 유익한 연구이다.” _뉴리퍼블릭
▣ 작가 소개
저자 : 조지 프로흐니크 (George Prochnik)
뉴욕 시 브루클린에 거주하면서 「뉴욕타임스」, 「보스턴글로브」, 「캐비닛」 등 여러 매체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퍼트넘 캠프: 지그문트 프로이트, 제임스 잭슨 퍼트넘, 그리고 미국 심리학의 목적(Putnam Camp: Sigmund Freud, James Jackson Putnam, and the Purpose of American Psychology)』이 있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의 ‘에디터스 초이스(Editor’s Choice)’에 선정되었고, 2007년 그라디바상(Gradiva Award)을 수상했다.
역자 : 안기순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 전공 과정을 수료하였으며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학 사회사업대학원에서 사회사업학 석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시애틀 소재 아시안 카운슬링&리퍼럴 서비스(The Asian Counseling&Referral Services)에서 카운슬러로 근무하였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한 책으로『실버스트리트의 하숙인 셰익스피어』,『레오나르도 다 빈치 평전』,『마크 트웨인 자서전』,『루시 모드 몽고메리 자서전』,『블랙먼, 판사가 되다』,『너는 무엇을 위해 살래?』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장 미지의 세계에 귀 기울이다
2장 우리는 왜 들을까
3장 우리는 왜 소음을 만들어 낼까
4장 소음과 삶의 에너지
5장 소음인가 소리인가
6장 잠시 조용한 휴식을
7장 소리 죽이기
8장 소음 고속도로
9장 방음 전선
10장 이건 전쟁이야!
11장 승냥이 덫
12장 조용한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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