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한국 시단에서 시와 자신의 시론을 함께 병행하여 추구했던 시인은 그다지 흔치 않은데, 이상옥 시인은 그런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이상옥은 우리 시단에서 다소 낯선 ‘디카詩’(dica-poem)나 ‘포착시’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여기에 맞추어 시적 실천을 이루어가는 시인이다. 그런 면에서 ‘디카詩’론과 ‘포착시’론은 그의 시론적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그는 시적 방법론에 매우 민감한 자의식을 가진 시인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시를 쓰면서 자신의 시론이라 할 수 있는 ‘디카詩’론과 ‘포착시’론을 지속적으로 치밀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으며, 여기에 입각해 시를 쓰고, 그에 따라 시적 성취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자신의 시적 방법론을 앞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작업으로 시를 써왔다. 이상옥의 이번 시집 『그리운 외뿔』은 그가 내세우고 있는 시적 방법론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란 말하는 회화이고 회화는 말하지 않는 시라고 했던가. 디카시는 말하는 회화와 말하지 않는 시가 서로 만나 부르는 이중창이다. 일종의 현대판 문인화인 것이다. 이번 시집은 “사물 속에 언뜻 드러나는 시적 형상”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디카-시의 작업으로부터 “사람이나 사물, 혹은 에피소드 속에 언뜻 드러나는 시적 형상을 문자로 고스란히 옮기는”(「自序」) 작업에 치중하고 있다. 전자가 외양의 열린 찰나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후자는 내면의 닫힌 풍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상옥의 『그리운 외뿔』은 그의 내면 풍경을 반사시킨 언어의 사진첩이다. 따라서 이번 시집에서 우리는 그의 시적 삶의 근원과 생리를 좀더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그가 추구하는 시적 삶은 느리고 부드럽고 포용적인 현자의 예지에 대한 터득이 중심을 이룬다. 시상의 주조가 고전의 지혜와 간디, 테레사, 펄 벅 등의 위인들의 행적에서 발견되는 현묘한 잠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직선적인 무한 경쟁과 투쟁의 현실 속에서 곡선의 겸허와 포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 잠언적 깨달음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
이상옥의 시 세계가 삶의 근원 혹은 본성을 일깨우는 작품에 집중하는 까닭은 삶의 신성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잠언적 깨달음의 시편이 연달아 씌어진다.
①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타다가 그만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기차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려 놓았다 사람들이 의아해하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간디」 전문
② 손수 운전하며 장애우와 함께 예수의 작은 마을로 향하는 수녀님에게 잠시 길을 양보하다
눈인사를 하신다
금방 눈빛 한 구절로 세상의 아침이 환하다
――「나팔꽃」 일부
③ 볏단 실은 소달구지 고삐를 잡고
농부도 볏단을 지고 가는 60년대 풍경
“미국 같으면 저렇게 하지 않을 거야 지게의 짐도 달구지에 싣고 농부도 올라탔을 거야.”
――「펄 벅」 일부
④ 며칠치 식수에 불과한 물을 우주로 삼고
불평 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손톱만 한 생
문득 문득 눈부시다
――「어떤 생」 일부
시집의 어디를 펼쳐도 이처럼 깊고 그윽한 삶의 지혜가 묻어 나온다. 시 ①에서 간디는 소유의 집착에 빠지기 쉬운 순간에 자발적인 가난의 선택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가를 보여준다. 간디의 생활 속에 배어 있는 비움과 봉사의 철학이다. 시 ②는 사람에게서 꽃의 눈부심을 읽고 있다. “장애우”를 돌보는 “수녀”의 “눈빛”으로 인해 “세상의 아침이 환”해지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시 ③은 『대지』의 작가 펄벅의 전언에서 배우는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도 끌어안는 이타적 사랑의 진경이다. 서구사회에 습속화된 인간 중심의 근대 기계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이타적 사랑과 존중은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더 나아가 인간과 물건에 이르기까지 두루 해당된다. 그의 “말귀도 알아들을 만한 구형 프린스/섭섭하지나 않았을까”라고 전전긍긍하며 “오늘 아침에는 몸을 어루만져주며/깔판도 털고 종이 부스러기도 치”(「구형 프린스를 생각하다」)우는 모습은 경물敬物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것은 마치 농부들이 농기구를 다루고 보관할 때에도 늘 함부로 하지 않았던 물오동포物悟同胞의 민중적 전통의 세계관을 환기시킨다.
시 ④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긍정적 세계관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다. “며칠치 식수”에도 감사하는 “손톱만 한 생”이 세상을 환히 밝히는 빛이라는 인식이다.
이? 같이 이상옥의 시적 주조음은 파시즘적인 직선의 공격적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곡선의 낮고 느린 포용의 언어를 추구한다. 그의 시편이 이처럼 삶의 근원에 대한 성찰의 언어에 천착할 수 있는 배경에는 아마도 “오누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경험이 가로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세상을 훌훌 떠”났지만 그러나 “폰 전화부에 아직도 지우지 못한”(「오누이」) 누이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그의 시적 삶을 잠시도 들뜨지 않게 진중한 사유의 언어로 가라앉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스로 깊은 그늘을 안고 살게 되면서 세상의 존재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직시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나무 아래 누워/이파리들을” 보면서도 “무심히 보면 온전한 것 같아도/상처투성이 몸”(「나무」)을 지녔음을 헤아린다. 이러한 외적 직관이 자신의 내면을 향하면 “신문 읽는 것도 그렇다/먼 데 것만/ 뚜렷하다//그래/무슨 뜻인지 알겠다”(「詩眼」) 는 견성의 언어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이상옥의 시 세계가 음과 양의 성향을 연결하는 삶의 근원의 세계를 일깨우고 있음을 좀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노래하는 잠언이 우리 자신의 본성을 환기시키는 거울로 다가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앞으로 그의 시 세계가 좀더 참신하고 명징한 서정으로 밀도 높게 승화되면서 “세속의 거리”(「세속의 거리에서」)를 충격하는 성찰의 거울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2. 내면 풍경을 반사시킨 언어의 사진첩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불교 최초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다/무소는 다름 아닌 인도코뿔소다/아프리카코뿔소는 뿔이 두 개지만/인도코뿔소는 정신의 뿔을 베어버리고/육체의 뿔 달랑 하나다/무리 짓지 않고/혼자서 길 가는 외뿔이다//아, 그런데 나는 너무 관념주의자다
――「그리운 외뿔」 전문
관념주의자로서의 갈등과 고통은 어쩌면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발견이며 포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정신은 인간사의 번뇌와 한계를 넘어 만유로 열려 있고 어느 한 생각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세계를 지향한다. 이러한 태도는 나와 우주의 근원을 바라보는 보편적이며 궁극적인 인식의 상태이다. 욕망, 집착, 번뇌, 연민 등이 녹아드는 니르바나의 충만한 인식 상태이다. 그러나 그러한 궁극의 세계, 충만한 세계는 쉬이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시인은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갈등하는 관념주의자로서의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운 외뿔」은 시상의 전개는 간단하지만 형이상학적 깊이와 성찰을 함축하고 있다. 나무에 오르기를 자랑하는 자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헤엄 실력을 자랑하는 자는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는 우월성만이 능사가 아니다. 멈추어야 할 곳, 쉬어야 할 곳,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할 곳을 아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두 길을 동시에 따르는” 지혜가 없으면 자신의 특장이 오히려 자신의 함정이 되기 쉽다.
당신은 어떻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 당신은 정말 위대한 예술가예요
아니에요 신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을 배달하는 심마니와 다를 바 없어요 숨어 있는 산삼을 찾아서 잔뿌리 하나도 다치지 않게 정성껏 파내듯이, 대리석 속에 숨어 있는 조각상을 정이나 쇠망치로 손상 없이 꺼내주었을 뿐이에요
――「미켈란젤로」 일부
이상옥은 르네상스의 봄을 불러온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조각의 비밀을 노래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에 조각을 한 것이 아니라 대리석의 조각상을 깨워내었던 것이다. 마치 불가에서 ‘석공이 돌을 쪼아 부처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석공이 돌의 불성을 깨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든 사물에는 신의 뜻이 숨쉬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사물의 본성은 곧 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의 본성을 깨우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 곧 절정의 예술행위이다.
▣ 주요 목차
제1부 네팔 코뿔소
초보 심마니
미켈란젤로
성녀 마더 데레사
인종신록을 읽다가 하늘을 바라보다
간디
펄 벅
사람
나팔꽃
성소聖所
보석
네팔 코뿔소
선교사가 독수리에게 전한 복음
샬럿 데이비스
어떤 생
제2부 그리운 외뿔
구형 프린스를 생각하다
제물祭物
어느 가을에
오십 하나
굴렁쇠
그리운 외뿔
교회당 옆
알람 이전
원고마감
거울 속의 나
시안詩眼
UFO
본문을 읽는 저녁
무제
3부 세속의 거리에서
푸른 신호등
조물
상처에 관한 기억
미로
참새
브리짓 바르도
가을 홍등가
워낭소리
모과 이후
우주
나무
쇠가야
함양 소담식당에서
세속의 거리에서
4부 마지막 통화
가분다리
단풍
팜파탈
고야
별
‘동그라미 베이커리’ 광고
진도아리랑 투로
호두
시
일상사
오빠였던 나
누이 심영무에게 주는 시
오누이 심영무에게 주는 시 2
마지막 통화
□ 해설 | 홍용희
무위와 성찰의 언어
한국 시단에서 시와 자신의 시론을 함께 병행하여 추구했던 시인은 그다지 흔치 않은데, 이상옥 시인은 그런 시인 중 한 사람이다. 이상옥은 우리 시단에서 다소 낯선 ‘디카詩’(dica-poem)나 ‘포착시’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여기에 맞추어 시적 실천을 이루어가는 시인이다. 그런 면에서 ‘디카詩’론과 ‘포착시’론은 그의 시론적 입장으로 볼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그는 시적 방법론에 매우 민감한 자의식을 가진 시인이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는 시를 쓰면서 자신의 시론이라 할 수 있는 ‘디카詩’론과 ‘포착시’론을 지속적으로 치밀하게 구축해 나가고 있으며, 여기에 입각해 시를 쓰고, 그에 따라 시적 성취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자신의 시적 방법론을 앞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작업으로 시를 써왔다. 이상옥의 이번 시집 『그리운 외뿔』은 그가 내세우고 있는 시적 방법론의 산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란 말하는 회화이고 회화는 말하지 않는 시라고 했던가. 디카시는 말하는 회화와 말하지 않는 시가 서로 만나 부르는 이중창이다. 일종의 현대판 문인화인 것이다. 이번 시집은 “사물 속에 언뜻 드러나는 시적 형상”을 카메라로 포착하는 디카-시의 작업으로부터 “사람이나 사물, 혹은 에피소드 속에 언뜻 드러나는 시적 형상을 문자로 고스란히 옮기는”(「自序」) 작업에 치중하고 있다. 전자가 외양의 열린 찰나에 초점을 두고 있다면 후자는 내면의 닫힌 풍경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상옥의 『그리운 외뿔』은 그의 내면 풍경을 반사시킨 언어의 사진첩이다. 따라서 이번 시집에서 우리는 그의 시적 삶의 근원과 생리를 좀더 분명하게 감지할 수 있는 계기를 얻게 된다. 그가 추구하는 시적 삶은 느리고 부드럽고 포용적인 현자의 예지에 대한 터득이 중심을 이룬다. 시상의 주조가 고전의 지혜와 간디, 테레사, 펄 벅 등의 위인들의 행적에서 발견되는 현묘한 잠언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는 직선적인 무한 경쟁과 투쟁의 현실 속에서 곡선의 겸허와 포용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1. 잠언적 깨달음 속에 녹아 있는 삶의 지혜
이상옥의 시 세계가 삶의 근원 혹은 본성을 일깨우는 작품에 집중하는 까닭은 삶의 신성성을 회복하는 것이며 자연의 순리에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잠언적 깨달음의 시편이 연달아 씌어진다.
① 막 출발하려는 기차에 간디가 올라타다가 그만 신발 한 짝이 벗겨져 플랫폼 바닥에 떨어져버렸다 기차가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에 간디는 그 신발을 주울 수가 없었다 간디는 얼른 나머지 신발 한 짝을 벗어 그 옆에 떨어뜨려 놓았다 사람들이 의아해하자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바닥에 떨어진 신발 한 짝을 주웠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간디」 전문
② 손수 운전하며 장애우와 함께 예수의 작은 마을로 향하는 수녀님에게 잠시 길을 양보하다
눈인사를 하신다
금방 눈빛 한 구절로 세상의 아침이 환하다
――「나팔꽃」 일부
③ 볏단 실은 소달구지 고삐를 잡고
농부도 볏단을 지고 가는 60년대 풍경
“미국 같으면 저렇게 하지 않을 거야 지게의 짐도 달구지에 싣고 농부도 올라탔을 거야.”
――「펄 벅」 일부
④ 며칠치 식수에 불과한 물을 우주로 삼고
불평 없이 목숨을 이어가는 손톱만 한 생
문득 문득 눈부시다
――「어떤 생」 일부
시집의 어디를 펼쳐도 이처럼 깊고 그윽한 삶의 지혜가 묻어 나온다. 시 ①에서 간디는 소유의 집착에 빠지기 쉬운 순간에 자발적인 가난의 선택이 얼마나 아름답고 풍요로운가를 보여준다. 간디의 생활 속에 배어 있는 비움과 봉사의 철학이다. 시 ②는 사람에게서 꽃의 눈부심을 읽고 있다. “장애우”를 돌보는 “수녀”의 “눈빛”으로 인해 “세상의 아침이 환”해지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다. 시 ③은 『대지』의 작가 펄벅의 전언에서 배우는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도 끌어안는 이타적 사랑의 진경이다. 서구사회에 습속화된 인간 중심의 근대 기계주의적 세계관에 대한 비판의식이 제기되고 있다. 이타적 사랑과 존중은 인간과 인간 관계에서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더 나아가 인간과 물건에 이르기까지 두루 해당된다. 그의 “말귀도 알아들을 만한 구형 프린스/섭섭하지나 않았을까”라고 전전긍긍하며 “오늘 아침에는 몸을 어루만져주며/깔판도 털고 종이 부스러기도 치”(「구형 프린스를 생각하다」)우는 모습은 경물敬物의 태도를 드러낸다. 이것은 마치 농부들이 농기구를 다루고 보관할 때에도 늘 함부로 하지 않았던 물오동포物悟同胞의 민중적 전통의 세계관을 환기시킨다.
시 ④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상황에 감사하는 긍정적 세계관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다. “며칠치 식수”에도 감사하는 “손톱만 한 생”이 세상을 환히 밝히는 빛이라는 인식이다.
이? 같이 이상옥의 시적 주조음은 파시즘적인 직선의 공격적 속도가 지배하는 현대사회 속에서 곡선의 낮고 느린 포용의 언어를 추구한다. 그의 시편이 이처럼 삶의 근원에 대한 성찰의 언어에 천착할 수 있는 배경에는 아마도 “오누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경험이 가로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세상을 훌훌 떠”났지만 그러나 “폰 전화부에 아직도 지우지 못한”(「오누이」) 누이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그의 시적 삶을 잠시도 들뜨지 않게 진중한 사유의 언어로 가라앉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스스로 깊은 그늘을 안고 살게 되면서 세상의 존재성을 더욱 입체적으로 직시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를테면, 그는 “나무 아래 누워/이파리들을” 보면서도 “무심히 보면 온전한 것 같아도/상처투성이 몸”(「나무」)을 지녔음을 헤아린다. 이러한 외적 직관이 자신의 내면을 향하면 “신문 읽는 것도 그렇다/먼 데 것만/ 뚜렷하다//그래/무슨 뜻인지 알겠다”(「詩眼」) 는 견성의 언어로 이어진다.
여기에 이르면, 우리는 이상옥의 시 세계가 음과 양의 성향을 연결하는 삶의 근원의 세계를 일깨우고 있음을 좀더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노래하는 잠언이 우리 자신의 본성을 환기시키는 거울로 다가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앞으로 그의 시 세계가 좀더 참신하고 명징한 서정으로 밀도 높게 승화되면서 “세속의 거리”(「세속의 거리에서」)를 충격하는 성찰의 거울로 작용하기를 기대한다.
2. 내면 풍경을 반사시킨 언어의 사진첩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불교 최초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이다/무소는 다름 아닌 인도코뿔소다/아프리카코뿔소는 뿔이 두 개지만/인도코뿔소는 정신의 뿔을 베어버리고/육체의 뿔 달랑 하나다/무리 짓지 않고/혼자서 길 가는 외뿔이다//아, 그런데 나는 너무 관념주의자다
――「그리운 외뿔」 전문
관념주의자로서의 갈등과 고통은 어쩌면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발견이며 포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정신은 인간사의 번뇌와 한계를 넘어 만유로 열려 있고 어느 한 생각에 고정되어 있지 않은 세계를 지향한다. 이러한 태도는 나와 우주의 근원을 바라보는 보편적이며 궁극적인 인식의 상태이다. 욕망, 집착, 번뇌, 연민 등이 녹아드는 니르바나의 충만한 인식 상태이다. 그러나 그러한 궁극의 세계, 충만한 세계는 쉬이 도달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다. 시인은 괴로워하고 번민하며 갈등하는 관념주의자로서의 인간의 실존적 한계에 대한 반성적 성찰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리운 외뿔」은 시상의 전개는 간단하지만 형이상학적 깊이와 성찰을 함축하고 있다. 나무에 오르기를 자랑하는 자는 나무에서 떨어져 죽고, 헤엄 실력을 자랑하는 자는 물에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다. 일방적으로 밀고 나가는 우월성만이 능사가 아니다. 멈추어야 할 곳, 쉬어야 할 곳, 그리고 다시 시작해야 할 곳을 아는 것이 삶의 지혜이다. “두 길을 동시에 따르는” 지혜가 없으면 자신의 특장이 오히려 자신의 함정이 되기 쉽다.
당신은 어떻게 피에타 상이나 다비드 상 같은 훌륭한 조각상을 만들 수 있었습니까 당신은 정말 위대한 예술가예요
아니에요 신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보내는 선물을 배달하는 심마니와 다를 바 없어요 숨어 있는 산삼을 찾아서 잔뿌리 하나도 다치지 않게 정성껏 파내듯이, 대리석 속에 숨어 있는 조각상을 정이나 쇠망치로 손상 없이 꺼내주었을 뿐이에요
――「미켈란젤로」 일부
이상옥은 르네상스의 봄을 불러온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조각의 비밀을 노래하고 있다. 미켈란젤로는 대리석에 조각을 한 것이 아니라 대리석의 조각상을 깨워내었던 것이다. 마치 불가에서 ‘석공이 돌을 쪼아 부처를 만들었다’가 아니라 ‘석공이 돌의 불성을 깨웠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모든 사물에는 신의 뜻이 숨쉬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를 다르게 표현하면, 모든 사물의 본성은 곧 신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사물의 본성을 깨우고 이를 실현하는 것이 곧 절정의 예술행위이다.
▣ 주요 목차
제1부 네팔 코뿔소
초보 심마니
미켈란젤로
성녀 마더 데레사
인종신록을 읽다가 하늘을 바라보다
간디
펄 벅
사람
나팔꽃
성소聖所
보석
네팔 코뿔소
선교사가 독수리에게 전한 복음
샬럿 데이비스
어떤 생
제2부 그리운 외뿔
구형 프린스를 생각하다
제물祭物
어느 가을에
오십 하나
굴렁쇠
그리운 외뿔
교회당 옆
알람 이전
원고마감
거울 속의 나
시안詩眼
UFO
본문을 읽는 저녁
무제
3부 세속의 거리에서
푸른 신호등
조물
상처에 관한 기억
미로
참새
브리짓 바르도
가을 홍등가
워낭소리
모과 이후
우주
나무
쇠가야
함양 소담식당에서
세속의 거리에서
4부 마지막 통화
가분다리
단풍
팜파탈
고야
별
‘동그라미 베이커리’ 광고
진도아리랑 투로
호두
시
일상사
오빠였던 나
누이 심영무에게 주는 시
오누이 심영무에게 주는 시 2
마지막 통화
□ 해설 | 홍용희
무위와 성찰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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