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973년 9월 11일, 세계 최초 선거로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다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 빅토르 하라, 아리엘 도르프만이 전하는
칠레 쿠데타의 비극적 현장과 미국의 패권주의 대외정책의 실체!
9·11 테러 10년, 칠레의 9·11을 떠올리다
어느 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올해, 미국은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지지율이 땅에 떨어졌던 오바마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빈 라덴의 사망 사실을 알렸고, 옛 세계무역센터 주변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환호를 질렀다.
네이비실 특공대의 영화 같은 사살 작전을 통해 미국인들의 가슴에 쌓인 한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지 모르지만, 미국의 패권주의 대외정책이 만들어놓은 악순환의 꼬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빈 라덴이 소련의 침공에 맞선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에서 미국을 지원을 받고 싸우던 게릴라였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지금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테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피해자 미국의 9·11을 추모하고 그 테러에 분노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없다. 가해자 미국의 추악한 실상을 확인해야만 미국이 주장한 세계의 ‘무한정의’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2001년 9·11에 가려져 이미 우리 기억 속에 희미해져가는 1973년 칠레의 9·11이야말로 미국의 실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을 어떻게 무너뜨렸나?
1970년 출범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은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이었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세 차례 패배 후, 네 번째 도전인 1970년 대선에 인민연합의 후보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소련이 건재하고, 쿠바혁명의 기운이 채 가시기 전이었던 당시 칠레는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미국은 평화적으로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걸 막아야 했고, 또한 이들이 쿠바와 연대하는 걸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제국과 자본의 음모가 판을 쳤고,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기득권이 국가의 목을 졸랐다. 미국은 비축해두었던 구리를 방출해, 당시 국가 재정의 75%를 구리 관련 산업을 통해 충당하던 칠레를 궁지로 몰았고, 반 아옌데 언론과 단체들을 움직여 아옌데에 대한 공격을 퍼붓도록 했다. 칠레 기업가들을 움직여 칠레 산업을 마비시키고, 군부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 결국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다. 이후 칠레는 기나긴 피노체트 군부독재의 어두운 터널로 들어섰다.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 빅토르 하라, 피델 카스트로, 아리엘 도르프만 등이 전하는 9·11 칠레 쿠데타의 비극적 현장, 그리고 칠레와 아옌데의 위대한 도전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은 1970년 아옌데의 집권과 1973년 군사 쿠데타를 직접 겪거나 지켜본 이들이 당시 현장에서, 혹은 당시를 기억하며 말하고 쓴 것들을 모은 책이다. 쿠데타 당시 칠레를 탈출한 현 듀크대 교수이자 문학가인 아리엘 도르프만의, 두 9·11의 연관성을 밝히고 2001년 9·11 이후 변화된 세계를 얘기하는 글을 시작으로, 1973년 9월 11일 쿠데타 당시 라디오를 통해 전해진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이 이어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는 직설적인 시를 통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비난한다. 유명한 민중가요 가수였던 빅토르 하라가 죽음의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쓴 노랫말은 그가 느꼈던 공포와 쿠데타가 주는 절망감이 얼마나 컸는지 실감케 해준다. 라 모네다 대통령궁에서 아버지 아옌데와 함께 있다 마지막 순간에 빠져나온 베아트리스 아옌데의 연설은 비극적 현장에서 빛난 위대한 혁명가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주며, 빅토르 하라의 아내 조안 하라의 글 두 편은 쿠데타 당시 산티아고의 모습과 쿠데타군의 인권 유린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문은 미국과 군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옌데 정권을 흔들고 쿠데타까지 일으켰는지 낱낱이 밝혀주는 글이다. 또한 옮긴이가 덧붙인 아옌데 집권까지의 내용과 2005년 칠레 방문기는 좀 더 입체적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0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은 아옌데 정권과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의 말과 글을 통해 사회주의 정권의 도전과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9·11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 작가 소개
저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본명 :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이에스 바소알토
파블로 네루다는 철도노동자인 아버지 호세 델 카르멘 레예스와 어머니 로사 바소알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죽었으며,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테무코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으며,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사랑하였다. 뒤에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여 "조국의 개척지인 ''머나먼 서부''에서 나는 삶과 대지, 시, 비 속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그는 1910년 테무코 남자국민학교에 들어가 1920년 중등과정을 마쳤다. 1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일부는 나중에 학생잡지에 실렸으며 처음에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가명을 썼다. 1920년부터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으며, 1946년에는 법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12세 때 칠레의 저명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을 만나 위대한 고전작가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들은 그가 진로를 선택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투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한 탁월한 이론가 장 그라브의 저서를 번역했다.
파블로 네루다는 자신의 시와 정치 사상을 통해 동시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작가였다. 그는 고국인 칠레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폭 넓은 일반 독자층으로부터 평범한 삶의 찬양자이자 국민적 정체성의 창시자로서 존경받았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어느 판자촌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라 마을명을 정하고, 그의 시집 제목을 따라 비포장도로명을 붙이기도 했다.
칠레 밖에서 볼 때도 네루다는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번역되는 시인으로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소설에서 그랬듯이 그 지역의 특징적인 목소리이자 전세계적인 영감과 영향력의 원천으로서 라틴아메리카 시에 크게 기여했다. 네루다는 무려 2천 페이지 이상의 30권이 넘는 책을 출판하며 시적 발전을 이룩했는데, 그 발전은 20세기의 개인적 방랑과 시적 표현의 역사를 잘 반영해준다. 다른 어떤 시인도 그만큼 재주가 많거나 다차원적이지는 못했다.
네루다는 격렬한 주관적 연애 서정시에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치를 다룬 서사시까지, 또 일상적인 사물들에 대한 오드 즉 송시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현상을 탐구와 의미의 강력한 형태로 외관상 굴절시켰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는 『지상의 거처ⅠㆍⅡㆍⅢ』 『모두의 노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충만한 힘』 등이 있다.
저자 :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70~1973년 칠레 대통령.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1933년 칠레 사회당 창설에 참여하고 1939~1942년 보건장관을 지냈다. 1952년 처음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세 차례 고배를 마셨으나, 1970년 좌파 정당들의 연합인 인민연합 후보로 나서 세계 최초로 선거로 집권한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후 대기업 국유화, 농지개혁, 일자리 창출 등 과감한 정책을 펼쳤으나, 기득권층과 군부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고, 특히 자국 기업의 경제적 이익 감소와 사회주의 세력의 확산을 경계한 미국의 개입을 불러왔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적극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아옌데는 끝까지 대통령궁에서 쿠데타군과 맞서다 사망했다.
역자 : 정인환
1970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국제뉴스와 뉴미디어에 관심을 두고 산다. 성균관대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국제지역원에서 미국정치를 전공했다. 1999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국 사회-국제-정치부를 거치는 동안, 한겨레21의 국제뉴스를 가장 오래 다뤘다. 지금은 편집국 사회2부에서 일하고 있다. 《전쟁을 팝니다》·《예스맨 프로젝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두 딸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 《아주 힘센 1천원》(근간)을 썼다.
▣ 주요 목차
선거를 통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아옌데의 인민연합이 집권하기까지 _정인환
- 머리말 _필라르 아귈레라, 리카르도 페레데스
- 9·11 이전의 9·11_아리엘 도르프만
*시-월트 휘트만을 떠올리며_파블로 네루다
-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_살바도르 아옌데
*시-칠레여, 아옌데여_앙드레 아펙셀
*시-유색인종 모임에서 발표된 시_이스마엘 리드
- 실종_조안 하라
- 끝나지 않은 노래_조안 하라
*시-칠레 경기장에서_빅토르 하라
- 내 아버지는 망설임이 없었다_베아트리스 아옌데
- 시인의 죽음_마틸데 네루다·조안 하라
*시-한 사내의 초상_파블로 네루다
*시-안데스 산맥, 파블로 네루다에게_데이비드 레이
*시-네루다, 와인_무리엘 루케이세르
- 칠레 군사 쿠데타에 대하여_피델 카스트로
- 칠레, 1970~73년 연보_제임스 콕크로프트·제인 캐닝
- 옮긴이의 말
- 참고자료
1973년 9월 11일, 세계 최초 선거로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이 무너지다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 빅토르 하라, 아리엘 도르프만이 전하는
칠레 쿠데타의 비극적 현장과 미국의 패권주의 대외정책의 실체!
9·11 테러 10년, 칠레의 9·11을 떠올리다
어느 새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도 믿을 수 없었던 9·11 테러가 일어난 지 10년이 되는 올해, 미국은 테러의 주범으로 지목한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했다고 발표했다. 지지율이 땅에 떨어졌던 오바마 대통령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빈 라덴의 사망 사실을 알렸고, 옛 세계무역센터 주변에서는 시민들이 모여 환호를 질렀다.
네이비실 특공대의 영화 같은 사살 작전을 통해 미국인들의 가슴에 쌓인 한은 어느 정도 해소되었을지 모르지만, 미국의 패권주의 대외정책이 만들어놓은 악순환의 꼬리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빈 라덴이 소련의 침공에 맞선 아프가니스탄의 전장에서 미국을 지원을 받고 싸우던 게릴라였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며, 지금도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테러가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따라서 단순히 피해자 미국의 9·11을 추모하고 그 테러에 분노하는 것은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가져올 수 없다. 가해자 미국의 추악한 실상을 확인해야만 미국이 주장한 세계의 ‘무한정의’을 실현해 나갈 수 있다. 그리고 2001년 9·11에 가려져 이미 우리 기억 속에 희미해져가는 1973년 칠레의 9·11이야말로 미국의 실제 모습과 마주할 수 있는 대표적인 사례의 하나이다.
미국은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을 어떻게 무너뜨렸나?
1970년 출범한 칠레의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은 세계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이었다. 살바도르 아옌데는 세 차례 패배 후, 네 번째 도전인 1970년 대선에 인민연합의 후보로 나서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하지만 소련이 건재하고, 쿠바혁명의 기운이 채 가시기 전이었던 당시 칠레는 냉전의 최전선이었다. 미국은 평화적으로 집권한 사회주의 정권이 안정적으로 지속되는 걸 막아야 했고, 또한 이들이 쿠바와 연대하는 걸 내버려둘 수 없었다. 제국과 자본의 음모가 판을 쳤고, 돈과 권력으로 무장한 기득권이 국가의 목을 졸랐다. 미국은 비축해두었던 구리를 방출해, 당시 국가 재정의 75%를 구리 관련 산업을 통해 충당하던 칠레를 궁지로 몰았고, 반 아옌데 언론과 단체들을 움직여 아옌데에 대한 공격을 퍼붓도록 했다. 칠레 기업가들을 움직여 칠레 산업을 마비시키고, 군부에 대한 집중적인 지원을 통해 결국 군사 쿠데타를 일으키게 했다. 이후 칠레는 기나긴 피노체트 군부독재의 어두운 터널로 들어섰다.
살바도르 아옌데, 파블로 네루다, 빅토르 하라, 피델 카스트로, 아리엘 도르프만 등이 전하는 9·11 칠레 쿠데타의 비극적 현장, 그리고 칠레와 아옌데의 위대한 도전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은 1970년 아옌데의 집권과 1973년 군사 쿠데타를 직접 겪거나 지켜본 이들이 당시 현장에서, 혹은 당시를 기억하며 말하고 쓴 것들을 모은 책이다. 쿠데타 당시 칠레를 탈출한 현 듀크대 교수이자 문학가인 아리엘 도르프만의, 두 9·11의 연관성을 밝히고 2001년 9·11 이후 변화된 세계를 얘기하는 글을 시작으로, 1973년 9월 11일 쿠데타 당시 라디오를 통해 전해진 아옌데 대통령의 마지막 연설이 이어진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파블로 네루다는 직설적인 시를 통해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비난한다. 유명한 민중가요 가수였던 빅토르 하라가 죽음의 현장에서 마지막으로 쓴 노랫말은 그가 느꼈던 공포와 쿠데타가 주는 절망감이 얼마나 컸는지 실감케 해준다. 라 모네다 대통령궁에서 아버지 아옌데와 함께 있다 마지막 순간에 빠져나온 베아트리스 아옌데의 연설은 비극적 현장에서 빛난 위대한 혁명가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주며, 빅토르 하라의 아내 조안 하라의 글 두 편은 쿠데타 당시 산티아고의 모습과 쿠데타군의 인권 유린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구성한다. 피델 카스트로의 연설문은 미국과 군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옌데 정권을 흔들고 쿠데타까지 일으켰는지 낱낱이 밝혀주는 글이다. 또한 옮긴이가 덧붙인 아옌데 집권까지의 내용과 2005년 칠레 방문기는 좀 더 입체적으로 책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처럼 2001년 미국에서 9·11 테러가 발생한 지 10년 만에 국내에 소개되는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은 아옌데 정권과 피노체트의 쿠데타를 경험한 다양한 사람들의 말과 글을 통해 사회주의 정권의 도전과 미국의 제국주의 정책이라는 큰 그림 속에서 9·11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 작가 소개
저 : 파블로 네루다
Pablo Neruda,본명 :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이에스 바소알토
파블로 네루다는 철도노동자인 아버지 호세 델 카르멘 레예스와 어머니 로사 바소알토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그가 태어난 지 한 달도 되기 전에 죽었으며, 2년 뒤 가족은 남부의 ''새로운 땅''으로 이주해 테무코에 자리잡았다. 아버지는 그곳에서 재혼했으며, 네루다는 계모를 친어머니처럼 사랑하였다. 뒤에 그는 그 당시를 회고하여 "조국의 개척지인 ''머나먼 서부''에서 나는 삶과 대지, 시, 비 속에서 태어났다"고 썼다.
그는 1910년 테무코 남자국민학교에 들어가 1920년 중등과정을 마쳤다. 10세에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그 일부는 나중에 학생잡지에 실렸으며 처음에는 아버지의 노여움을 사지 않으려고 가명을 썼다. 1920년부터 파블로 네루다라는 이름을 쓰기 시작했으며, 1946년에는 법적으로 이름을 바꿨다. 12세 때 칠레의 저명한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을 만나 위대한 고전작가들에 대해 눈을 뜨게 되었다. 이들은 그가 진로를 선택하고 정치적으로 성장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그는 전투적 무정부주의자가 되어, 표트르 크로포트킨의 ''무정부주의적 공산주의''에 대한 탁월한 이론가 장 그라브의 저서를 번역했다.
파블로 네루다는 자신의 시와 정치 사상을 통해 동시대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한 작가였다. 그는 고국인 칠레에서 국가적 영웅으로 칭송받았고, 폭 넓은 일반 독자층으로부터 평범한 삶의 찬양자이자 국민적 정체성의 창시자로서 존경받았다. 그래서 산티아고의 어느 판자촌에서는 그의 이름을 따라 마을명을 정하고, 그의 시집 제목을 따라 비포장도로명을 붙이기도 했다.
칠레 밖에서 볼 때도 네루다는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이 번역되는 시인으로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소설에서 그랬듯이 그 지역의 특징적인 목소리이자 전세계적인 영감과 영향력의 원천으로서 라틴아메리카 시에 크게 기여했다. 네루다는 무려 2천 페이지 이상의 30권이 넘는 책을 출판하며 시적 발전을 이룩했는데, 그 발전은 20세기의 개인적 방랑과 시적 표현의 역사를 잘 반영해준다. 다른 어떤 시인도 그만큼 재주가 많거나 다차원적이지는 못했다.
네루다는 격렬한 주관적 연애 서정시에서부터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와 정치를 다룬 서사시까지, 또 일상적인 사물들에 대한 오드 즉 송시에 이르기까지, 세상의 모든 현상을 탐구와 의미의 강력한 형태로 외관상 굴절시켰다. 197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시집으로는 『지상의 거처ⅠㆍⅡㆍⅢ』 『모두의 노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이슬라 네그라 비망록』 『충만한 힘』 등이 있다.
저자 : 살바도르 아옌데(Salvador Allende)
1970~1973년 칠레 대통령. 소아과 의사 출신의 정치인으로 1933년 칠레 사회당 창설에 참여하고 1939~1942년 보건장관을 지냈다. 1952년 처음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세 차례 고배를 마셨으나, 1970년 좌파 정당들의 연합인 인민연합 후보로 나서 세계 최초로 선거로 집권한 사회주의자 대통령이 되었다. 집권 후 대기업 국유화, 농지개혁, 일자리 창출 등 과감한 정책을 펼쳤으나, 기득권층과 군부의 반발이 거세게 일어났고, 특히 자국 기업의 경제적 이익 감소와 사회주의 세력의 확산을 경계한 미국의 개입을 불러왔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미국의 적극 지원을 받은 피노체트가 군사쿠데타를 일으켰고, 아옌데는 끝까지 대통령궁에서 쿠데타군과 맞서다 사망했다.
역자 : 정인환
1970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나, 국제뉴스와 뉴미디어에 관심을 두고 산다. 성균관대 한국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외대 국제지역원에서 미국정치를 전공했다. 1999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편집국 사회-국제-정치부를 거치는 동안, 한겨레21의 국제뉴스를 가장 오래 다뤘다. 지금은 편집국 사회2부에서 일하고 있다. 《전쟁을 팝니다》·《예스맨 프로젝트》 등을 우리말로 옮겼고, 두 딸을 주인공으로 한 동화 《아주 힘센 1천원》(근간)을 썼다.
▣ 주요 목차
선거를 통한 최초의 사회주의 정권, 아옌데의 인민연합이 집권하기까지 _정인환
- 머리말 _필라르 아귈레라, 리카르도 페레데스
- 9·11 이전의 9·11_아리엘 도르프만
*시-월트 휘트만을 떠올리며_파블로 네루다
- 기억하라, 우리가 이곳에 있음을_살바도르 아옌데
*시-칠레여, 아옌데여_앙드레 아펙셀
*시-유색인종 모임에서 발표된 시_이스마엘 리드
- 실종_조안 하라
- 끝나지 않은 노래_조안 하라
*시-칠레 경기장에서_빅토르 하라
- 내 아버지는 망설임이 없었다_베아트리스 아옌데
- 시인의 죽음_마틸데 네루다·조안 하라
*시-한 사내의 초상_파블로 네루다
*시-안데스 산맥, 파블로 네루다에게_데이비드 레이
*시-네루다, 와인_무리엘 루케이세르
- 칠레 군사 쿠데타에 대하여_피델 카스트로
- 칠레, 1970~73년 연보_제임스 콕크로프트·제인 캐닝
-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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