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인도네시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속이 타는군요.
한때는 치열하게 싸워서까지 지켜 내려고 했던 나라가 썩어 가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거인, 프라무댜의 마지막 대담집
침묵시킬 수 없는 저항의 목소리로
상처 받은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와 자신의 문학을 말한다.
식민 통치와 권위주의 체제에 온몸으로 맞선 저항적 지식인
‘인도네시아의 양심’이라 불리는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비록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 지배, 그리고 수하르토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맞선 지식인이자, 수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세계적인 대문호로 손꼽힌다. 대표작인 ‘부루 4부작’은 적어도 28개 이상의 언어로 옮겨져 전 세계의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고, 2006년 그가 타계했을 때 해외 주요 언론에서는 “세계 문학계의 큰 손실”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1925년 그가 태어났을 때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다. 1942년 일본이 동남아를 점령하면서 네덜란드의 지배는 종식되었지만, 그저 일본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었다. 1945년 일본이 물러난 뒤에는 (연합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자기 영토’를 수복하겠다며) 네덜란드 군이 들어왔다. 이를 물리치고 독립을 일군 시기를 인도네시아에서는 ‘혁명’기라고 하는데, 프람도 이때 자원입대해 힘을 보탰고 1947~49년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독립 투쟁 시기의 혁명적 기운을 체험한 프람은 사회 개혁과 이를 위한 문학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1965년에 일어난 쿠데타 이후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2백만 명에 가까운 공산주의자와 급진주의자, 운동가 등 수카르노를 지지하던 세력이 학살당했다. 프람의 시련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98년 수하르토가 하야할 때까지 서구 열강의 지원을 바탕으로 30년 넘게 이어진 권위주의적 통치 시기는, 프람이 유배와 강제노동, 그리고 가택 연금에 처했던 세월과 거의 일치한다. 국제사면위원회 등 여러 국제단체는 물론, 귄터 그라스를 비롯한 저명인사들의 구명 활동에 힘입어 유배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출간된 작품은 곧바로 금서가 되는 등 철저히 고립되었다. 적어도 1998년까지 그는 동시대 인도네시아 인에게 ‘보이지 않는’ 거인이었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현실 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자
“위대한 인도네시아 문화라고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도네시아 문화는 빈약합니다. 도대체 거기 실제로 뭐가 있는 거죠? 진정한 인도네시아 문화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1백여 년간 자바가 모든 것을 지배해 왔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젊은 세대는 낡은 문화를 잊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글쓰기를 통해 이를 드러낸 프람은,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지도, 종족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당연히 식민지 시기에는 잔혹함이 일상화되어 있었죠. 그렇지만 한편으로, 네덜란드 인들은 적어도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일종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우리 사회에 소개했습니다.”라고 하는 프람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 긍정적인 유산은 받아들였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권위에 굴종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자바 문화를 서슴지 않고 비판한 프람이야말로 “자바 전통의 정형화된 형태에 맞서” 투쟁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근대 중국의 지식인 루쉰을 떠올리게 한다. 외세에 대해 감정적·민족주의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자국 문화의 후진성과 봉건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수카르노를 옹호했던 프람이었지만,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의 경제적 지배권을 국가로 환수하기 위해 이들을 탄압한 수카르노 정부에 반대해 투옥되기까지 했다. 이처럼 배타적으로 종족을 구분하거나 차별하지 않으면서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해 온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와 역사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선보인다. 『작가의 망명』은 유럽이 아시아를 둘러싸고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 16세기부터 1998년 5월 수하르토가 몰락하기까지의 인도네시아 근·현대사를 개괄한 서론과, 이 시기를 작가 자신만의 시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생생하게 이야기한 본문의 대담 내용을 통해, 여전히 한국 독자에게 낯선 인도네시아 역사를 소개한다.
“어떻게 누군가로부터,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말할 권리마저 앗아갈 수 있는가?”
: ‘부루 4부작’,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완성해 낸 작품
프람은 작품을 남긴 시기의 대부분을 사회와 철저히 고립된 채 보냈다. 그쟀 작품들은 읽을 대상을 상정하지도, 이들과 교감을 나누지도 못한 채 쓰였다. 인도네시아를 떠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를 ‘내적 망명’ 상태에 있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글쓰기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자 소통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프람을 전 세계에 알린 ‘부루 4부작’이 그가 부루 섬에서 유배되던 1965~79년, 즉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구상되고 집필되었다는 사실은 글쓰기의 의미, 작가로서의 삶과 실천,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프람은 어느 누구도 누군가를 침묵시킬 수 없다는 것을 글쓰기를 통해 증명하고자 했다. 부루 섬에 유배된 그에게는 필기도구가 지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밤마다 동료 수감자에게 주인공 ‘밍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설을 완성해 갔고, 이를 바탕으로 풀려나기 2년 전(이때 비로소 필기도구가 지급되고 집필을 허가받았다)부터 ‘부루 4부작’의 첫 두 권을 집필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이 책이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출감하면서 원본은 압수당했지만) 따로 보관해 둔 사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수하르토 체제 아래 불태워진 자신의 원고를 언급하면서, 한 번 썼던 글은 다시 반복해 쓸 수 없다고 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자신의 문학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가깝다고 하는 프람이, 1999년 한 인터뷰에서 “설사 아무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작가는 그가 속한 공동체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특히 인도네시아에는 신분이나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인민을 균등하게 대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작가가 무척 필요한 상황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란 곧 그의 사회 구성원들의 경험이기에 창작 과정은 사회의 일부분이며, 사회 현실과 대중의 삶에 눈감는 것은 작가의 직무유기”라는 일관된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고립되어 있던 작가가, 대중과 소통할 필요성을 가장 강조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프람의 이런 문학관과 사회관이 담긴 대표적 작품인 ‘부루 4부작’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연작에서는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신질서(수하르토 체제)를 비판한다. (인도네시아의 민족 혁명기를 다루며) 민족주의적 각성과 식민주의가 결합해 새로운 민족주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보여 주면서, 수카르노 시기와 신질서의 충돌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그려 냈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몰락했을 때 프람은 새로운 (변증법적) 종합, 즉 자신과 수카르노가 꿈꾸던 인도네시아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겠지만, 『작가의 망명』에서 그가 토로했듯이,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서구 학계에서 인정받고 찬사를 받는 것은 뛰어난 문학적 성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망명』에서도 나타난) 식민 지배 시기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 서구 사회와 문화, 자본 등에 대한 비판 의식을 작품 속에 녹여 냈기 때문이다. 몇몇 노벨상 수상 작가들을 제외하면, 이른바 제3세계 대표 작가들의 경우 작품의 가치와 그 함의가 출중함에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작품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옮긴이 후기를 통해 대표작의 해제가 담겼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본론이라고 한다면) 『작가의 망명』은 일종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적 망명’에 담긴 절망의 의미
: 『작가의 망명』, ‘아직 오지 않은 시대’를 구현할 젊은 세대를 향한 제언
“사실 얘기할 게 무척 많습니다. 우선 젊은 세대, 그리고 수하르토가 물러날 때까지 투쟁했던 학생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시대, 곧 사람들이 쫓기고, 살해당하고, 바다에 버려진 시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도 항상 인도네시아에 대해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큰 고통을 느낍니다. 내게는 어떤 조직이나 매체도 없고, 그래서 모든 걸 내면에 간직할 뿐이죠. 이제는 책을 쓸 수도 없기에 당신 같은 방문객들이 있을 때에만 내 내면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프람은 1999년만 해도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했다. 그 전 해에 수하르토를 물러나게 했던 젊은 세대의 힘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적입니다. 왜냐고요? 인도네시아에는 젊은 세대가 있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들은 행동에 나설 줄 알고,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으며, 더 순수한 의도를 지녔습니다”(1999년 한 인터뷰에서).
하지만 『작가의 망명』에 수록된 대담이 진행된 2004년의 프람은 깊은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학생 지도자들은 수하르토 정부와 이른바 ‘정실주의’에 대해서만 반기를 들었을 뿐, 그 이후 퇴행적 문화, 억압적인 가족 구조, 시민들의 일상에 대한 종교의 개입, 심지어 억압적인 정치·경제구조에 대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프람은 (타리크 알리의 저서에서) “정치가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삶도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스스로 비정치적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은, 이미 지배적인 정치 문화에 동화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마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그들은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수하르토는 물러났지만,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은 여전히 남았고, 군부는 변함없이 인도네시아의 핵심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민주화는 온전히 달성되지 못했다. 신질서 시기에 외국자본의 유입은 가속화되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소비를 중시하고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기존 정치의 구태 그 이상으로 프람에게 절망스러웠던 것은, 젊은 세대마저 변화의 수단인 ‘정치’를 점점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을 가두고 원고마저 불태운 수하르토 체제는 막을 내렸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스스로가 ‘내적 망명’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였다. 작가는 이제 집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더 이상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람이 ‘젊은 세대’에게 절망감을 토로하는 것은, 결국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그들뿐이기 때문이다. “이 젊은 세대는 잘못된 정보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제공해 통제를 강화한 전제적인 독재 체제 아래에서 자라났습니다.”라는 질문자의 말에 동의하면서, “그들이 아니면 누구에게 이 나라가 의지할 수 있을까요? ‘청년의 서’ 이래, 인도네시아 역사는 언제나 젊은이들이 만들어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프람에게서는 절망과 절박함, 그리고 희망이 엿보인다. “파괴가 없으면 새로운 건설도 없다는 말은 대체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파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건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루쉰의 말에 빗대면, 프람은 새로운 건설을 담당할 세대에게 마지막까지 말을 걸고 있는 셈이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 어느새 잊힌 또 다른 망명객을 떠올리며
한국에서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작가와 그의 세계, 그리고 제3세계의 문화와 역사가 소개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 책은 그 의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식민 지배, 내전, 불완전한 국가 건설, 권위주의 정권의 민간인 학살을 겪었으며, 특히 여전히 ‘민주화’에 성공하지 못한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미완의 과제들이 어서 달성되기를 바라는 프람의 절박함은, 우리에게도 민주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한국 사회가 만약 민주화에 실패했다면’ 지금 어땠을까를 떠올려 볼 수도 있고, 민주화에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지금도 권위주의적 유산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화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동시에 ‘민주화’가 만능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이 만들어 낸 성과를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어느덧 20년이 넘었지만 공론의 영역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인식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데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한 사건이 있었다.
프람이 이 책의 필자들과 인터뷰하며 ‘내적 망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격정을 토로하던 2004년, 한국 사회에도 한 명의 망명객이 있었다. 전 세계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곳만은 방문할 수 없었던 재독 학자 송두율이 바로 그다. 그랬던 그가 한국에 방문한 2003년 9월부터 다시 독일로 출국한 이듬해 8월까지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전히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가 (심지어 진보라고 불리는 이들조차) 그를 매도하거나 외면했던 모습은, ‘민주화’라는 계기적 사건만으로 지난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이 해소될 수 없다는 점과, 민주주의의 훈련이 지속되어 일상생활에서까지 민주적 가치가 내면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분명한 모순에도 대다수 사람이 무감각해졌다”(『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이는 민주화를 완성하지 못한 인도네시아에 대해 프람이 갖는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민주화를 완성한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Pramoedya Ananta Toer, 1925~2006는 인도네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부루 4부작’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거의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2006년 그가 타계했을 때 많은 해외 언론들은 “세계 문학계의 큰 손실”이라며 애도했다. 수하르토 독재 체제 아래 강제수용소 생활과 가택 연금, 작품의 출판 금지 등을 겪으면서, 수하르토 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나눈 대담을 기록한 이 책에서는 세계적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 그리고 그 근간을 이룬 인도네시아 근·현대사를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재조명했다.
▣ 작가 소개
저자 : 안드레 블첵 Andre Vltchek
체코계 미국인으로 소설가, 영화 제작자, 탐사 기자이며, 메인스테이 출판사의 공동 설립자이자 오클랜드 재단의 선임 연구원이다. 저서로 『귀환 불능 지점』(Point of No Return) 등의 소설과 에세이집 『서구의 테러: 포토시에서 바그다드까지』(Western Terror: From Potosi to Baghdad)가 있다. 수하르토 독재의 잔혹성을 고발한 90분짜리 다큐멘터리 [잠들다: 민족의 파괴](Terlena: Breaking of a Nation)를 감독·제작했다. 현재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저자 : 로시 인디라 Rossie Indira
건축가, 사업 분석가, 작가다. 『작가의 망명』 인도네시아판의 공저자이기도 한 그녀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자카르타 포스트』와 『가트라』에 기고하고 있다.
역자 : 여운경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인도네시아의 다룰 이슬람 반란: 서부 자바와 아체의 비교 연구”(Darul Islam Rebellion in Indonesia: A Comparative Study of West Java and Aceh)로 석사 학위(동남아시아 연구)를 받았다. 현재 미국 워싱턴 주립 대학 사학과에서 1950년대 인도네시아 팔렘방 지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으며, 다트머스 대학에서 동남아시아 역사와 인도네시아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서론
서장 자카르타에서의 만남
1. 1965년 이전: 역사, 식민주의, 수카르노 시기
2. 1965년 쿠데타
3. 문화와 ‘자바주의
4. 글쓰기
5. 수하르토 체제와 현재의 인도네시아
6. 미국의 개입
7. 화해?
8. 혁명: 인도네시아의 미래
9. 헤어지기에 앞서
옮긴이 후기
연보 및 주요 저작
참고문헌
“인도네시아의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자니 속이 타는군요.
한때는 치열하게 싸워서까지 지켜 내려고 했던 나라가 썩어 가고 있으니,
내가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보이지 않는’ 거인, 프라무댜의 마지막 대담집
침묵시킬 수 없는 저항의 목소리로
상처 받은 인도네시아의 근·현대사와 자신의 문학을 말한다.
식민 통치와 권위주의 체제에 온몸으로 맞선 저항적 지식인
‘인도네시아의 양심’이라 불리는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는 (비록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네덜란드와 일본의 식민 지배, 그리고 수하르토의 권위주의 정치체제에 맞선 지식인이자, 수차례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올랐을 만큼 세계적인 대문호로 손꼽힌다. 대표작인 ‘부루 4부작’은 적어도 28개 이상의 언어로 옮겨져 전 세계의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고, 2006년 그가 타계했을 때 해외 주요 언론에서는 “세계 문학계의 큰 손실”이라며 애도를 표했다.
1925년 그가 태어났을 때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 아래 있었다. 1942년 일본이 동남아를 점령하면서 네덜란드의 지배는 종식되었지만, 그저 일본이 그 자리를 대신했을 뿐이었다. 1945년 일본이 물러난 뒤에는 (연합군의 지원을 등에 업고 ‘자기 영토’를 수복하겠다며) 네덜란드 군이 들어왔다. 이를 물리치고 독립을 일군 시기를 인도네시아에서는 ‘혁명’기라고 하는데, 프람도 이때 자원입대해 힘을 보탰고 1947~49년 포로 생활을 하기도 했다. 독립 투쟁 시기의 혁명적 기운을 체험한 프람은 사회 개혁과 이를 위한 문학의 역할에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1965년에 일어난 쿠데타 이후 수하르토가 집권하면서 2백만 명에 가까운 공산주의자와 급진주의자, 운동가 등 수카르노를 지지하던 세력이 학살당했다. 프람의 시련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1998년 수하르토가 하야할 때까지 서구 열강의 지원을 바탕으로 30년 넘게 이어진 권위주의적 통치 시기는, 프람이 유배와 강제노동, 그리고 가택 연금에 처했던 세월과 거의 일치한다. 국제사면위원회 등 여러 국제단체는 물론, 귄터 그라스를 비롯한 저명인사들의 구명 활동에 힘입어 유배에서 풀려날 수 있었지만, 집 밖으로 나가지 못했고, 출간된 작품은 곧바로 금서가 되는 등 철저히 고립되었다. 적어도 1998년까지 그는 동시대 인도네시아 인에게 ‘보이지 않는’ 거인이었다.
인도네시아 문화와 현실 정치에 대한 통렬한 비판자
“위대한 인도네시아 문화라고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인도네시아 문화는 빈약합니다. 도대체 거기 실제로 뭐가 있는 거죠? 진정한 인도네시아 문화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습니다. 지난 1백여 년간 자바가 모든 것을 지배해 왔습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젊은 세대는 낡은 문화를 잊고 새로운 문화를 창조해야 합니다.”
인도네시아가 처한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글쓰기를 통해 이를 드러낸 프람은, 인도네시아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옹호하지도, 종족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히지도 않았다. “당연히 식민지 시기에는 잔혹함이 일상화되어 있었죠. 그렇지만 한편으로, 네덜란드 인들은 적어도 이전에 알지 못했던 일종의 평등이라는 개념을 우리 사회에 소개했습니다.”라고 하는 프람은 네덜란드의 식민 지배를 비판하는 동시에 그 긍정적인 유산은 받아들였다. 베네딕트 앤더슨은, (권위에 굴종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자바 문화를 서슴지 않고 비판한 프람이야말로 “자바 전통의 정형화된 형태에 맞서” 투쟁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근대 중국의 지식인 루쉰을 떠올리게 한다. 외세에 대해 감정적·민족주의적으로 비판하는 대신, 자국 문화의 후진성과 봉건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한편 수카르노를 옹호했던 프람이었지만,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의 경제적 지배권을 국가로 환수하기 위해 이들을 탄압한 수카르노 정부에 반대해 투옥되기까지 했다. 이처럼 배타적으로 종족을 구분하거나 차별하지 않으면서 불평등한 사회체제를 개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해 온 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그는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와 역사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선보인다. 『작가의 망명』은 유럽이 아시아를 둘러싸고 식민지 쟁탈전을 벌인 16세기부터 1998년 5월 수하르토가 몰락하기까지의 인도네시아 근·현대사를 개괄한 서론과, 이 시기를 작가 자신만의 시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좀 더 생생하게 이야기한 본문의 대담 내용을 통해, 여전히 한국 독자에게 낯선 인도네시아 역사를 소개한다.
“어떻게 누군가로부터, 타인과 자기 자신에게 말할 권리마저 앗아갈 수 있는가?”
: ‘부루 4부작’, 아무것도 쓸 수 없는 상황에서 완성해 낸 작품
프람은 작품을 남긴 시기의 대부분을 사회와 철저히 고립된 채 보냈다. 그쟀 작품들은 읽을 대상을 상정하지도, 이들과 교감을 나누지도 못한 채 쓰였다. 인도네시아를 떠나지 않았음에도 스스로를 ‘내적 망명’ 상태에 있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는 글쓰기란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투쟁이자 소통의 수단이라고 말한다. 프람을 전 세계에 알린 ‘부루 4부작’이 그가 부루 섬에서 유배되던 1965~79년, 즉 그의 인생 가운데 가장 열악한 상황에서 구상되고 집필되었다는 사실은 글쓰기의 의미, 작가로서의 삶과 실천, 문학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프람은 어느 누구도 누군가를 침묵시킬 수 없다는 것을 글쓰기를 통해 증명하고자 했다. 부루 섬에 유배된 그에게는 필기도구가 지급되지 않았다. 그래서 밤마다 동료 수감자에게 주인공 ‘밍케’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소설을 완성해 갔고, 이를 바탕으로 풀려나기 2년 전(이때 비로소 필기도구가 지급되고 집필을 허가받았다)부터 ‘부루 4부작’의 첫 두 권을 집필할 수 있었다. 그나마 이 책이 알려질 수 있었던 것은 (출감하면서 원본은 압수당했지만) 따로 보관해 둔 사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그는, 수하르토 체제 아래 불태워진 자신의 원고를 언급하면서, 한 번 썼던 글은 다시 반복해 쓸 수 없다고 했다).
사회적 책임이라는 문제를 다룬다는 점에서 자신의 문학이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에 가깝다고 하는 프람이, 1999년 한 인터뷰에서 “설사 아무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할지라도, 작가는 그가 속한 공동체의 지도자입니다. 그리고 특히 인도네시아에는 신분이나 계급과 상관없이 모든 인민을 균등하게 대하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작가가 무척 필요한 상황입니다.”라고 말한 것은 “작가의 개인적 경험이란 곧 그의 사회 구성원들의 경험이기에 창작 과정은 사회의 일부분이며, 사회 현실과 대중의 삶에 눈감는 것은 작가의 직무유기”라는 일관된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가장 고립되어 있던 작가가, 대중과 소통할 필요성을 가장 강조한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프람의 이런 문학관과 사회관이 담긴 대표적 작품인 ‘부루 4부작’이 한국에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것은 아쉬운 일이다. 이 연작에서는 인도네시아 민족주의의 기원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시에 신질서(수하르토 체제)를 비판한다. (인도네시아의 민족 혁명기를 다루며) 민족주의적 각성과 식민주의가 결합해 새로운 민족주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변증법적으로 보여 주면서, 수카르노 시기와 신질서의 충돌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그려 냈다고 할 수 있다. 1998년 수하르토 정권이 몰락했을 때 프람은 새로운 (변증법적) 종합, 즉 자신과 수카르노가 꿈꾸던 인도네시아를 이룰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겠지만, 『작가의 망명』에서 그가 토로했듯이, 그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의 작품이 서구 학계에서 인정받고 찬사를 받는 것은 뛰어난 문학적 성과 때문이기도 하지만, (『작가의 망명』에서도 나타난) 식민 지배 시기에 대한 객관적인 성찰, 서구 사회와 문화, 자본 등에 대한 비판 의식을 작품 속에 녹여 냈기 때문이다. 몇몇 노벨상 수상 작가들을 제외하면, 이른바 제3세계 대표 작가들의 경우 작품의 가치와 그 함의가 출중함에도 제대로 소개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작품들에 대한 작가 자신의 이야기가 들어 있고, 옮긴이 후기를 통해 대표작의 해제가 담겼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을 본론이라고 한다면) 『작가의 망명』은 일종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내적 망명’에 담긴 절망의 의미
: 『작가의 망명』, ‘아직 오지 않은 시대’를 구현할 젊은 세대를 향한 제언
“사실 얘기할 게 무척 많습니다. 우선 젊은 세대, 그리고 수하르토가 물러날 때까지 투쟁했던 학생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시대, 곧 사람들이 쫓기고, 살해당하고, 바다에 버려진 시대에 대해서도 얘기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도 항상 인도네시아에 대해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큰 고통을 느낍니다. 내게는 어떤 조직이나 매체도 없고, 그래서 모든 걸 내면에 간직할 뿐이죠. 이제는 책을 쓸 수도 없기에 당신 같은 방문객들이 있을 때에만 내 내면의 생각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프람은 1999년만 해도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신을 거두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가 자리 잡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낙관했다. 그 전 해에 수하르토를 물러나게 했던 젊은 세대의 힘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나는 [인도네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해] 낙관적입니다. 왜냐고요? 인도네시아에는 젊은 세대가 있기 때문이죠. 그들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 있습니다. 그들은 행동에 나설 줄 알고, 부모 세대보다 더 나은 교육을 받았으며, 더 순수한 의도를 지녔습니다”(1999년 한 인터뷰에서).
하지만 『작가의 망명』에 수록된 대담이 진행된 2004년의 프람은 깊은 절망에 사로잡혀 있었다. 학생 지도자들은 수하르토 정부와 이른바 ‘정실주의’에 대해서만 반기를 들었을 뿐, 그 이후 퇴행적 문화, 억압적인 가족 구조, 시민들의 일상에 대한 종교의 개입, 심지어 억압적인 정치·경제구조에 대해서도 저항하지 않았다. 프람은 (타리크 알리의 저서에서) “정치가 삶과 분리될 수 없는 것처럼, 삶도 정치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스스로 비정치적이라고 간주하는 사람들은, 이미 지배적인 정치 문화에 동화된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다. 아마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조차 그들은 자각하지 못할 것이다.”라고 했다. 수하르토는 물러났지만,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은 여전히 남았고, 군부는 변함없이 인도네시아의 핵심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며, 민주화는 온전히 달성되지 못했다. 신질서 시기에 외국자본의 유입은 가속화되었고, 사람들의 사고방식도 소비를 중시하고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변모했다.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기존 정치의 구태 그 이상으로 프람에게 절망스러웠던 것은, 젊은 세대마저 변화의 수단인 ‘정치’를 점점 외면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을 가두고 원고마저 불태운 수하르토 체제는 막을 내렸지만,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스스로가 ‘내적 망명’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 것도 그래서였다. 작가는 이제 집 밖으로 나와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되었지만, 더 이상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람이 ‘젊은 세대’에게 절망감을 토로하는 것은, 결국 기대를 걸 수 있는 것은 그들뿐이기 때문이다. “이 젊은 세대는 잘못된 정보와 일방적인 주입식 교육을 제공해 통제를 강화한 전제적인 독재 체제 아래에서 자라났습니다.”라는 질문자의 말에 동의하면서, “그들이 아니면 누구에게 이 나라가 의지할 수 있을까요? ‘청년의 서’ 이래, 인도네시아 역사는 언제나 젊은이들이 만들어 왔습니다.”라고 말하는 프람에게서는 절망과 절박함, 그리고 희망이 엿보인다. “파괴가 없으면 새로운 건설도 없다는 말은 대체로 옳은 말이다. 그러나 파괴가 있다고 해서 반드시 새로운 건설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루쉰의 말에 빗대면, 프람은 새로운 건설을 담당할 세대에게 마지막까지 말을 걸고 있는 셈이다.
인도네시아와 한국
: 어느새 잊힌 또 다른 망명객을 떠올리며
한국에서 제대로 소개되지 않은 작가와 그의 세계, 그리고 제3세계의 문화와 역사가 소개될 수 있다는 것으로 이 책은 그 의의를 갖는다. 다른 한편으로 식민 지배, 내전, 불완전한 국가 건설, 권위주의 정권의 민간인 학살을 겪었으며, 특히 여전히 ‘민주화’에 성공하지 못한 인도네시아에서 이런 미완의 과제들이 어서 달성되기를 바라는 프람의 절박함은, 우리에게도 민주화에 대한 문제의식을 환기시키는 면이 있다. 역사적 상상력을 발휘해 ‘한국 사회가 만약 민주화에 실패했다면’ 지금 어땠을까를 떠올려 볼 수도 있고, 민주화에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지금도 권위주의적 유산이 남아 있지는 않은지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화는 모든 것을 해결해 줄 수 있는가? 우리는 이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동시에 ‘민주화’가 만능이 아니라고 해서, 그것이 만들어 낸 성과를 부정할 수 없고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어느덧 20년이 넘었지만 공론의 영역에서, 그리고 사람들의 일상적인 인식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자리 잡는 데는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깨닫게 한 사건이 있었다.
프람이 이 책의 필자들과 인터뷰하며 ‘내적 망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격정을 토로하던 2004년, 한국 사회에도 한 명의 망명객이 있었다. 전 세계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곳만은 방문할 수 없었던 재독 학자 송두율이 바로 그다. 그랬던 그가 한국에 방문한 2003년 9월부터 다시 독일로 출국한 이듬해 8월까지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여전히 반공주의에 사로잡힌 우리 사회가 (심지어 진보라고 불리는 이들조차) 그를 매도하거나 외면했던 모습은, ‘민주화’라는 계기적 사건만으로 지난 권위주의 체제의 유산이 해소될 수 없다는 점과, 민주주의의 훈련이 지속되어 일상생활에서까지 민주적 가치가 내면화되어야 한다는 점을 일깨웠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분명한 모순에도 대다수 사람이 무감각해졌다”(『미완의 귀향과 그 이후』). 이는 민주화를 완성하지 못한 인도네시아에 대해 프람이 갖는 안타까움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민주화를 완성한 한국 사회에도 여전히 의미를 갖는다.
프라무댜 아난타 투르Pramoedya Ananta Toer, 1925~2006는 인도네시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로 알려져 있다. ‘부루 4부작’을 비롯한 그의 작품들은 세계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었고, 거의 매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2006년 그가 타계했을 때 많은 해외 언론들은 “세계 문학계의 큰 손실”이라며 애도했다. 수하르토 독재 체제 아래 강제수용소 생활과 가택 연금, 작품의 출판 금지 등을 겪으면서, 수하르토 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3년 전에 나눈 대담을 기록한 이 책에서는 세계적 작가의 삶과 문학 세계, 그리고 그 근간을 이룬 인도네시아 근·현대사를 작가 자신의 목소리를 통해 재조명했다.
▣ 작가 소개
저자 : 안드레 블첵 Andre Vltchek
체코계 미국인으로 소설가, 영화 제작자, 탐사 기자이며, 메인스테이 출판사의 공동 설립자이자 오클랜드 재단의 선임 연구원이다. 저서로 『귀환 불능 지점』(Point of No Return) 등의 소설과 에세이집 『서구의 테러: 포토시에서 바그다드까지』(Western Terror: From Potosi to Baghdad)가 있다. 수하르토 독재의 잔혹성을 고발한 90분짜리 다큐멘터리 [잠들다: 민족의 파괴](Terlena: Breaking of a Nation)를 감독·제작했다. 현재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지역에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저자 : 로시 인디라 Rossie Indira
건축가, 사업 분석가, 작가다. 『작가의 망명』 인도네시아판의 공저자이기도 한 그녀는 현재 인도네시아에서 『자카르타 포스트』와 『가트라』에 기고하고 있다.
역자 : 여운경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국제대학원에서 “인도네시아의 다룰 이슬람 반란: 서부 자바와 아체의 비교 연구”(Darul Islam Rebellion in Indonesia: A Comparative Study of West Java and Aceh)로 석사 학위(동남아시아 연구)를 받았다. 현재 미국 워싱턴 주립 대학 사학과에서 1950년대 인도네시아 팔렘방 지역의 사회경제적 변화를 주제로 박사 학위 논문을 쓰고 있으며, 다트머스 대학에서 동남아시아 역사와 인도네시아 역사를 강의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서론
서장 자카르타에서의 만남
1. 1965년 이전: 역사, 식민주의, 수카르노 시기
2. 1965년 쿠데타
3. 문화와 ‘자바주의
4. 글쓰기
5. 수하르토 체제와 현재의 인도네시아
6. 미국의 개입
7. 화해?
8. 혁명: 인도네시아의 미래
9. 헤어지기에 앞서
옮긴이 후기
연보 및 주요 저작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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