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최희철 시인은 시집 『영화처럼』에서 중심으로부터 끝없이 탈주하려는 욕망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마치 딱딱한 고체 질료를 액체 속에 풀어 버리는 아이들의 유희처럼, 빙글빙글 공간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돌린다. 그리고 시간을 타고 흐르며 의미들을 생성해낸다. 그의 서정은 극채색의 닭 벼슬처럼 선명하게 붉다가도, 어느 순간 은밀한 틈 속의 고양이 눈빛처럼 응시하고는 끝내 담을 넘어 버린다. 한마디로 너무 독특하다.
우연히 딸애의 똥을 닦아주다
항문이
꽃잎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세상의 출구
마치 봉제인형의 마무리 작업 같은
주름이 잡혀 있지
끝없이 존재를 만나다 보면
우주의 끝도 이렇듯 주름이 있을까.
부드러운 힘으로
온갖 부스러기들을 되살려내는
경이로운 생산에 대해
할 말을 잃을 뿐.
비관론자들은
그것이
늘 어둡고 칙칙하다고
불평하지
하지만 항문만큼
세상의 비계를 보기 좋게
조절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변함없이 되돌려놓기에
무엇을 삼켰는지 알게 되고
항문이 성실하기에
우린 곤히 잠들 수 있다. ―「항문(肛門)에 대하여」 전문
그는 거꾸로 삶을 본다. 망원경의 대물렌즈 쪽에 눈알을 붙이고 우주의 지평을 넓히려는 듯, 버려진 것들의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그저 탈주의 방향을 거칠게 탐색하는 과정일 뿐이다.
황규관 시인은 그의 시편들을 ‘자유를 욕망하는 힘’이라고 했다. 결코 관념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은 욕망들, 그것들은 현실의 도처에 산재해 있는 균열을 탐험함과 동시에 그 균열을 끝내 자기의 힘으로 만들어 버리는 운명애(運命愛)의 원형질이다.
화장실 욕조 벽의 균열,
10년 전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것으로
그동안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조금씩 커진 것인데
내가 해준 것이라곤
샤워할 때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한 것과
기억도 나지 않는 몇 년 전,
백시멘트 한 번 발라준 것뿐이다.
하지만 균열은
스스로 벽을 부여잡고 있을 뿐
균열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운명을 그토록 사랑하는 힘이
그로 인하여 무너질 거라는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
굽어보는 참된 힘,
균열은 결코
조짐이나 결과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벽에 속한
적절한 힘의 배분,
그들의 뿌리였을 뿐.
―「균열을 보며」 전문
최희철의 시는 절대성의 의심으로부터 발화된다. 그건 고통스런 성찰이자 리얼리즘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으므로 익숙해져 버린 것에 대한 반격, 그 익숙함의 수렁 속에서는 끝내 단잠을 잘 수 없었다는 걸 알아 채 버린 불온한 그 무엇 말이다. 남송우 문학평론가는 “최희철 시인의 시가 지닌 강점은 시적 대상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서 삶의 반성적 사유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의 몸을 통과한 시들은 반복을 통해 다시 돌아온다. 허나 그게 내면에 정착하기 위한 동일성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차이를 끌며 돌아온다. 그것들은 양적인 그 무엇이 아니므로 하여, 측량 가능하지도 않다. 그저 서걱되는 삶의 주변이며, 무한의 바다에서 퍼덕이는 ‘잡어’의 운동성, 또는 그 운동성에 대한 욕망일 뿐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최희철
1961년 부산에서 출생해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 어업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부터 7년 간 원양어선 및 상선 항해사로 근무했다. 1982년 ‘향파문학상’ 수상, 2005년 ‘인터넷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리얼리스트 100’, ‘잡어’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 주요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별빛
몸의 감각
장모님 세계관
숲은 왜 그렇게 위대할까
지우고 싶은 것
석대정비
돼지고기
파리들
불
초생
남성
하치장 냉장고
균열을 보며
가드
제2부
암말
막내
머리핀
훌라후프와 나이테
생산일자
솟아오르고 싶었다
바퀴벌레
생의 변주(變奏)
영화처럼
김 씨의 곡괭이질
음주단속
웃기는 이야기
고 최태식
동물의 세계
제3부
갇혀 있는 것들
입동 즈음에
동물의 왕국
황금박쥐
오리지날
맨손체조
원터치
똥집
못을 박으며
빙산의 일각
거실의 감응
순대를 먹으며
마린보이의 꿈
삼계 닭발
제4부
도계장(屠鷄場)에서
반송가는 길
태풍
공터를 바라보며
잡어(雜魚)
막차를 타며
내 마음속의 보석
항문(肛門)에 대하여
침대 밑을 치우며
화장실 모기
우리는 푸른 별이다
노상현
우연한 목격
얼음을 치는 이유
해설 자유를 욕망하는 힘-황규관
최희철 시인은 시집 『영화처럼』에서 중심으로부터 끝없이 탈주하려는 욕망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마치 딱딱한 고체 질료를 액체 속에 풀어 버리는 아이들의 유희처럼, 빙글빙글 공간이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돌린다. 그리고 시간을 타고 흐르며 의미들을 생성해낸다. 그의 서정은 극채색의 닭 벼슬처럼 선명하게 붉다가도, 어느 순간 은밀한 틈 속의 고양이 눈빛처럼 응시하고는 끝내 담을 넘어 버린다. 한마디로 너무 독특하다.
우연히 딸애의 똥을 닦아주다
항문이
꽃잎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건 세상의 출구
마치 봉제인형의 마무리 작업 같은
주름이 잡혀 있지
끝없이 존재를 만나다 보면
우주의 끝도 이렇듯 주름이 있을까.
부드러운 힘으로
온갖 부스러기들을 되살려내는
경이로운 생산에 대해
할 말을 잃을 뿐.
비관론자들은
그것이
늘 어둡고 칙칙하다고
불평하지
하지만 항문만큼
세상의 비계를 보기 좋게
조절해줄 수 있는 게 있을까.
변함없이 되돌려놓기에
무엇을 삼켰는지 알게 되고
항문이 성실하기에
우린 곤히 잠들 수 있다. ―「항문(肛門)에 대하여」 전문
그는 거꾸로 삶을 본다. 망원경의 대물렌즈 쪽에 눈알을 붙이고 우주의 지평을 넓히려는 듯, 버려진 것들의 냄새를 맡는다. 하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그저 탈주의 방향을 거칠게 탐색하는 과정일 뿐이다.
황규관 시인은 그의 시편들을 ‘자유를 욕망하는 힘’이라고 했다. 결코 관념적이거나 일방적이지 않은 욕망들, 그것들은 현실의 도처에 산재해 있는 균열을 탐험함과 동시에 그 균열을 끝내 자기의 힘으로 만들어 버리는 운명애(運命愛)의 원형질이다.
화장실 욕조 벽의 균열,
10년 전 이사 올 때부터 있던 것으로
그동안 느끼지도 못할 정도로
조금씩 커진 것인데
내가 해준 것이라곤
샤워할 때 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한 것과
기억도 나지 않는 몇 년 전,
백시멘트 한 번 발라준 것뿐이다.
하지만 균열은
스스로 벽을 부여잡고 있을 뿐
균열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운명을 그토록 사랑하는 힘이
그로 인하여 무너질 거라는
걱정을 사라지게 한다.
굽어보는 참된 힘,
균열은 결코
조짐이나 결과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벽에 속한
적절한 힘의 배분,
그들의 뿌리였을 뿐.
―「균열을 보며」 전문
최희철의 시는 절대성의 의심으로부터 발화된다. 그건 고통스런 성찰이자 리얼리즘이다. 우리가 오랫동안 믿어왔으므로 익숙해져 버린 것에 대한 반격, 그 익숙함의 수렁 속에서는 끝내 단잠을 잘 수 없었다는 걸 알아 채 버린 불온한 그 무엇 말이다. 남송우 문학평론가는 “최희철 시인의 시가 지닌 강점은 시적 대상으로 향했던 시선을 다시 자신에게로 향하게 함으로서 삶의 반성적 사유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낸다.”고 말했다.
그렇다. 그의 몸을 통과한 시들은 반복을 통해 다시 돌아온다. 허나 그게 내면에 정착하기 위한 동일성으로 되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반드시 차이를 끌며 돌아온다. 그것들은 양적인 그 무엇이 아니므로 하여, 측량 가능하지도 않다. 그저 서걱되는 삶의 주변이며, 무한의 바다에서 퍼덕이는 ‘잡어’의 운동성, 또는 그 운동성에 대한 욕망일 뿐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최희철
1961년 부산에서 출생해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 어업학과를 졸업했다. 1984년부터 7년 간 원양어선 및 상선 항해사로 근무했다. 1982년 ‘향파문학상’ 수상, 2005년 ‘인터넷문학상’ 시 부문에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리얼리스트 100’, ‘잡어’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 주요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별빛
몸의 감각
장모님 세계관
숲은 왜 그렇게 위대할까
지우고 싶은 것
석대정비
돼지고기
파리들
불
초생
남성
하치장 냉장고
균열을 보며
가드
제2부
암말
막내
머리핀
훌라후프와 나이테
생산일자
솟아오르고 싶었다
바퀴벌레
생의 변주(變奏)
영화처럼
김 씨의 곡괭이질
음주단속
웃기는 이야기
고 최태식
동물의 세계
제3부
갇혀 있는 것들
입동 즈음에
동물의 왕국
황금박쥐
오리지날
맨손체조
원터치
똥집
못을 박으며
빙산의 일각
거실의 감응
순대를 먹으며
마린보이의 꿈
삼계 닭발
제4부
도계장(屠鷄場)에서
반송가는 길
태풍
공터를 바라보며
잡어(雜魚)
막차를 타며
내 마음속의 보석
항문(肛門)에 대하여
침대 밑을 치우며
화장실 모기
우리는 푸른 별이다
노상현
우연한 목격
얼음을 치는 이유
해설 자유를 욕망하는 힘-황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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