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수량화와 재현성에 의한 근대과학의 탄생
18세기 과학사로 안내하는 최고의 개설서!
자연철학은 수학, 실험과학, 화학, 자연사, 생리학 등을 포괄하는 하나의 체계
달랑베르, 라부아지에, 뷔퐁, 오일러, 몽테스키외, 디드로, 볼테르, 콩도르세―
계몽주의의 성격과 그 토대를 이룬 자연철학을 역사적 맥락에서 폭넓게 조명
케임브리지 대학 과학사 시리즈의 필독서, 관련 문헌 안내도 충실
서구 과학의 역사에서 18세기는 그동안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그에 비해 17세기는 빛나는 ‘과학혁명’의 시대로, 19세기는 과학의 제도화·전문화가 이루어진 ‘제2의 과학혁명’의 시대로 여겨진다. 이 책 『과학과 계몽주의』는 그러한 두 혁명 사이에 낀 18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본 18세기 과학사의 거의 유일한 개설서다. 1985년에 출간되어 25년 넘게 이 분야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은 계몽주의와 수학에서 출발하여 역시 그것으로 끝난다. ‘이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계몽주의 시대에는 한편으로 수학과 무관한 실험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실험이야말로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자연철학)을 특징짓는다. 이 책은 대체로 계몽주의와 수학에 관한 서술, 그리고 실험에 기초하는 자연철학에 관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지은이 핸킨스는 당시의 역학과 실험이 서로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는 것, 화학혁명이 기계론의 귀결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유물론적인 사상이 생리학에는 도움이 안 되었다는 것 등등을 지적한다. 특히 수학이 계몽주의 시대 과학의 스타일을 결정했다고 본다.
계몽주의 시대의 자연철학
18세기 자연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 자연철학의 토대를 새롭게 마련함으로써 탈마법화된 세계를 건설하려 했다. 그들은 수학적 사유모형과 실험을 통해 자연세계를 설명하는 한편, 과학단체들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서로 검증하고 공유했다. 이러한 활동은 과학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당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그것은 특히 인간의 삶을 규율하는 도덕규범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신의 계시가 아닌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눈앞의 세계를 파악했던 그들은 이성을 자연에 부여된 질서로, 상식을 의미하는 분별력의 개념으로,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증의 틀로 사용했다. 이성의 원리는 또한 사회·정치적인 영역, 인간의 자유의지, 신의 존재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자연철학이 전개된 방식
그러면 계몽주의 시대의 자연철학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는가? 그 전개방식의 첫 번째 특징은 자연현상에 대한 예측성이며, 수학은 그러한 예측성의 중심에 있었다. 수학은 더 이상 세계의 형이상학적 원리를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학문이 아니라 물리적 자연현상을 기술하고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자연철학의 기본언어’가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실험과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확한 조건을 찾아냈으며, 이로써 우연적·우발적 사건에 불과했던 자연현상은 필연적 인과의 연쇄 속에서 파악되었다. 이것이 그 두 번째 특징인 재현성이다. 실험이 개별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시작되고 거기서 끝났다면 자연철학이 사회적인 흐름으로까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그 세 번째 특징인 사회적 성격을 찾을 수 있다. 자연철학자들은 실험을 분류·축적하고 서로 공유함으로써 그것을 여러 곳에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런던 왕립학회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같은 과학단체들이 생겨나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의 시도와 한계
사회적 신망을 얻은 자연철학은 세계 전체를 자신들의 시야 속에 두는 계몽주의 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들의 눈에는 우선 투쟁, 무질서, 무지한 미신을 조장하고 그것을 권력을 위해 사용하는 성직자와 귀족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러한 낡은 체제의 대표자들은 자연철학의 합리성과 상반되는 부조리와 부정에 빠져 있었다. 그런 까닭에 계몽주의자들은 합리적 의심과 비판을 통해서 불명료함과 오류를 밝혀내고 ‘밝은 이성의 빛을 비추어’ 인간 세계를 그 근저에서부터 새롭게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다만 자연철학의 합리성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줄 뿐,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계몽주의자들은 과학이 가진 객관적 태도가 가치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확신했으나 이는 그들의 심각한 착각이었으며, 더 나아가 가치중립적 또는 몰가치적 과학에서 가치를 이끌어내려는 그들의 태도는 자칫하면 그들의 기반 자체, 즉 자기완결적 단계에 이른 자연철학체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18세기 과학의 전반적 특징
이 책의 제목에서 보이듯, 서구의 18세기는 무엇보다도 계몽주의 시대이다. 과학사에서도 그 풍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계몽주의의 성격’이라는 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은이 핸킨스가 먼저 설명하는 것은 이 시대를 특징짓는 낱말인 ‘이성’이다. 17세기의 자연법칙의 발견은 자연을 이성적·합리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신에 접근하는 길을 열어, 마침내 신보다는 자연 자체를 이해하려는 자세로 이어졌다. 완벽한 지성으로서의 이성에서 자연법칙으로서의 이성으로 이행한 것이야말로 지은이가 말하는 계몽주의를 낳은 주된 요인이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과학은 아직 문학과 분리되지 않았다. 자연을 연구하는 활동은 이른바 ‘문예공화국’에서 이루어졌고, 자연철학자들 스스로 ‘문예인’으로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문학과 달리 자연철학이야말로 인류의 지식을 증대시켜 사회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인 것처럼 여겼다. 이 시대의 과학과 관련하여 흔히 사용된 ‘뉴턴의Newtonian’라는 꾸밈말은 그러한 감각과 이어져 있었다. 한편 데카르트, 말브랑슈, 뉴턴, 라이프니츠 같은 17세기 사람들의 사상이 이 말로 뭉뚱그려지더라도 그들은 운동과 그 변화의 원인, 즉 힘에 관해 상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차는 그 후로도 이어져, 힘을 둘러싼 논쟁은 18세기에도 줄곧 과학과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이성적 추론을 대표한 수학
18세기 과학을 특징짓는 것은 ‘이성’이고 이성적 추론을 대표한 것은 수학이었다. 따라서 수학이 계몽주의 과학의 스타일을 결정했던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해석/분석analysis’이다. 이 말은 수학의 문맥에서는 문제를 방정식으로 귀착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18세기에는 주로 미적분 계산과 그것을 역학에 적용하는 방식을 가리켰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말은 ‘종합synthesis’과 쌍을 이루며 적절한 과학적 방법도 의미하게 되었다. 콩디야크 같은 철학자들에게는 해석/분석이야말로 과학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제2장에서 이러한 해석의 의미와 수학에 있어서의 그 실제, 그리고 그것과 직접 관계되는 역학의 제반 문제, 천문학이나 측지학의 화제를 개관하고 있다. 살아 있는 힘(활력) 논쟁이나 지구 형상의 측정과 같은, 18세기 과학사를 수놓은 에피소드들도 소개된다. 또한 확률론에 관한 내용도 제6장에서 설명된다. 거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요컨대 인간의 판단을 수학적으로 다루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험물리학의 정량화
18세기의 자연철학이라는 것은 오늘날 말하는 ‘물리학’과 일치하지 않는다. 전기(정전기), 열, 빛 등의 연구만이 아니라 예컨대 생리학도 그 안에 포괄되었고, 화학과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18세기는 오히려 이러한 분야들이 각각 독립해나가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제3장에서 설명하듯이, 자연철학은 특히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사람들(부르하버, 스흐라베산데, 뮈스헨부르크)에 의해 1720년경부터 철저히 실험적인 영위로서 진행되었다. 다만 애초의 실험과학은 실험이나 시연장치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결코 정량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전기의 전도나 반발 같은 새로운 현상이 실험과정에서 확인되어 18세기 중엽부터 신비한 전기유체에 의한 여러 이론들이 제창되었다. 그리고 1760년경부터 드디어 전기의 양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었다. 이에 비하면 열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이론화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7세기에 이미 열은 ‘불 입자’에 의해 생긴다고 여겨져, 그렇게 해서 생긴 열을 재는 도구인 온도계가 제작되기도 했다. 18세기에 열 이론은 그러한 입자를 상정하면서 점차 발전해나갔다(잠열 같은 개념 등). 그런 ‘신비한 유체’가 계몽주의 시대에 그 역할을 맡았다. 그것은 실험물리학의 정량화를 가능케 하고 기계론 철학에 좀 더 추상적인 차원을 부여했던 것이다.
화학혁명 그리고 실험생리학
18세기에는 실제로 전기나 열이 ‘불’의 한 형태라고 여겨졌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기이하지만, 적어도 18세기 초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4원소설이 여전히 자연철학의 기본적 틀로서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4원소설은 거의 해체된다. 단일한 ‘흙’은 연소에 의해 다양한 ‘흙’으로 분해되고, 나아가 액체나 기체로도 바뀌었다. 또한 ‘공기’에도 다양한 종류(고정된 공기, 탈플로지스톤 공기 등등)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물’ 역시 복합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위를 흔히 ‘화학혁명’이라고 한다. 1740년경에는 화학도 물질의 구조를 기계론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그만두고 화학적인 프로세스를 합리화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와 흡사한 일이 생리학 분야에서도 일어났다. 즉, 생물의 구조를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는 데에서 생체의 기능을 실험적으로 탐구하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이러한 실험생리학의 발전과, 그와 관련한 발생 및 유전 이론의 변천은 제5장에서 다뤄진다. 호흡, 소화, 번식, 발생, 유전 등에 관한 관찰·실험과, 자극이나 발생 이론(전성설·후성설)이 라 메트리나 디드로 등을 통해 균형감 있게 서술된다. 이렇듯 전기에서 공기, 생리에 이르기까지 18세기의 자연철학은 실험 자체를 중시한 데에 그 특징이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토머스 핸킨스Thomas L. Hankins
미국 예일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여 1958년에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64년에 코넬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워싱턴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0년에 명예교수로 퇴직했다. 핸킨스 교수는 18~19세기의 물리수학mathematical physics과 과학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저서로 『장 달랑베르: 과학과 계몽주의』 『윌리엄 로완 해밀턴 경』 『실험도구와 상상력』 등이 있다.
역자 양유성
대학에서 응용화학을 공부하고 고분자 물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련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특히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다. 역서로 『인문학 스터디』(공역)가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제1장 계몽주의의 성격
이성과 자연/ 자연과학과 문학/ 과학의 범주들/ 기계론 철학/ 과학과 철학
제2장 수학과 정밀과학
해석학의 의미/ 곡선주 운동/ 역학원리들/ 역학과 계몽주의 철학/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세 가지 실험/ 위치천문학/ 물리천문학
제3장 실험물리학
신비한 유체/ 전기/ 전기의 초기 역사/ 벤저민 프랭클린의 단일유체이론/ 라이덴병/ 전류의 발견/ 열과 온도/ 잠열
제4장 화학
물체의 기체상태/ 기체화학/ 연소의 문제/ 플로지스톤 이론/ 라부아지에의 연소실험/ 산소와 물질의 기체상태/ 화학의 합리화/ 화학적 원자론
제5장 자연사와 생리학
기계론 철학과 생명연구/ 실험생리학/ 발생/ 전성설의 부활/ 자연사
제6장 도덕과학
인간과학/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백과전서/ 과학 아카데미/ 장 자크 루소, 사회비판가/ 중농주의자들/ 확률론과 인간과학/ 법률의 개혁/ 사회적 수학/ 계몽주의의 종말
주/ 참고문헌/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수량화와 재현성에 의한 근대과학의 탄생
18세기 과학사로 안내하는 최고의 개설서!
자연철학은 수학, 실험과학, 화학, 자연사, 생리학 등을 포괄하는 하나의 체계
달랑베르, 라부아지에, 뷔퐁, 오일러, 몽테스키외, 디드로, 볼테르, 콩도르세―
계몽주의의 성격과 그 토대를 이룬 자연철학을 역사적 맥락에서 폭넓게 조명
케임브리지 대학 과학사 시리즈의 필독서, 관련 문헌 안내도 충실
서구 과학의 역사에서 18세기는 그동안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해왔다. 그에 비해 17세기는 빛나는 ‘과학혁명’의 시대로, 19세기는 과학의 제도화·전문화가 이루어진 ‘제2의 과학혁명’의 시대로 여겨진다. 이 책 『과학과 계몽주의』는 그러한 두 혁명 사이에 낀 18세기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본 18세기 과학사의 거의 유일한 개설서다. 1985년에 출간되어 25년 넘게 이 분야의 필독서로 꼽힌다. 이 책은 계몽주의와 수학에서 출발하여 역시 그것으로 끝난다. ‘이성’에 의해 특징지어지는 계몽주의 시대에는 한편으로 수학과 무관한 실험의 영역이 확대되었다. 실험이야말로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자연철학)을 특징짓는다. 이 책은 대체로 계몽주의와 수학에 관한 서술, 그리고 실험에 기초하는 자연철학에 관한 서술로 이루어져 있다. 지은이 핸킨스는 당시의 역학과 실험이 서로 별다른 관계가 없었다는 것, 화학혁명이 기계론의 귀결이 아니었다는 것, 그리고 유물론적인 사상이 생리학에는 도움이 안 되었다는 것 등등을 지적한다. 특히 수학이 계몽주의 시대 과학의 스타일을 결정했다고 본다.
계몽주의 시대의 자연철학
18세기 자연철학자들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 자연철학의 토대를 새롭게 마련함으로써 탈마법화된 세계를 건설하려 했다. 그들은 수학적 사유모형과 실험을 통해 자연세계를 설명하는 한편, 과학단체들을 결성하여 자신들의 생각을 서로 검증하고 공유했다. 이러한 활동은 과학의 영역에 그치지 않고 당시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그것은 특히 인간의 삶을 규율하는 도덕규범으로까지 확장되었다. 신의 계시가 아닌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눈앞의 세계를 파악했던 그들은 이성을 자연에 부여된 질서로, 상식을 의미하는 분별력의 개념으로, 논리적으로 타당한 논증의 틀로 사용했다. 이성의 원리는 또한 사회·정치적인 영역, 인간의 자유의지, 신의 존재 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자연철학이 전개된 방식
그러면 계몽주의 시대의 자연철학은 어떠한 방식으로 전개되었는가? 그 전개방식의 첫 번째 특징은 자연현상에 대한 예측성이며, 수학은 그러한 예측성의 중심에 있었다. 수학은 더 이상 세계의 형이상학적 원리를 찾아내고 의미를 부여하는 학문이 아니라 물리적 자연현상을 기술하고 미래를 예측하게 해주는 ‘자연철학의 기본언어’가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의 실험과학은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정확한 조건을 찾아냈으며, 이로써 우연적·우발적 사건에 불과했던 자연현상은 필연적 인과의 연쇄 속에서 파악되었다. 이것이 그 두 번째 특징인 재현성이다. 실험이 개별 과학자의 실험실에서 시작되고 거기서 끝났다면 자연철학이 사회적인 흐름으로까지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여기서 그 세 번째 특징인 사회적 성격을 찾을 수 있다. 자연철학자들은 실험을 분류·축적하고 서로 공유함으로써 그것을 여러 곳에서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런던 왕립학회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 같은 과학단체들이 생겨나 사회적 영향력을 키워나갔다.
18세기 계몽주의자들의 시도와 한계
사회적 신망을 얻은 자연철학은 세계 전체를 자신들의 시야 속에 두는 계몽주의 사상의 근간을 이루었다. 그들의 눈에는 우선 투쟁, 무질서, 무지한 미신을 조장하고 그것을 권력을 위해 사용하는 성직자와 귀족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이러한 낡은 체제의 대표자들은 자연철학의 합리성과 상반되는 부조리와 부정에 빠져 있었다. 그런 까닭에 계몽주의자들은 합리적 의심과 비판을 통해서 불명료함과 오류를 밝혀내고 ‘밝은 이성의 빛을 비추어’ 인간 세계를 그 근저에서부터 새롭게 구축하려 했던 것이다. 다만 자연철학의 합리성은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가르쳐줄 뿐, 무엇을 해야만 하는지를 가르쳐주지는 않는다. 계몽주의자들은 과학이 가진 객관적 태도가 가치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확신했으나 이는 그들의 심각한 착각이었으며, 더 나아가 가치중립적 또는 몰가치적 과학에서 가치를 이끌어내려는 그들의 태도는 자칫하면 그들의 기반 자체, 즉 자기완결적 단계에 이른 자연철학체계를 무너뜨릴 수도 있음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18세기 과학의 전반적 특징
이 책의 제목에서 보이듯, 서구의 18세기는 무엇보다도 계몽주의 시대이다. 과학사에서도 그 풍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은 ‘계몽주의의 성격’이라는 장에서부터 시작된다. 지은이 핸킨스가 먼저 설명하는 것은 이 시대를 특징짓는 낱말인 ‘이성’이다. 17세기의 자연법칙의 발견은 자연을 이성적·합리적으로 탐구함으로써 신에 접근하는 길을 열어, 마침내 신보다는 자연 자체를 이해하려는 자세로 이어졌다. 완벽한 지성으로서의 이성에서 자연법칙으로서의 이성으로 이행한 것이야말로 지은이가 말하는 계몽주의를 낳은 주된 요인이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과학은 아직 문학과 분리되지 않았다. 자연을 연구하는 활동은 이른바 ‘문예공화국’에서 이루어졌고, 자연철학자들 스스로 ‘문예인’으로 알려지기를 바랐다. 그러면서도 문학과 달리 자연철학이야말로 인류의 지식을 증대시켜 사회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인 것처럼 여겼다. 이 시대의 과학과 관련하여 흔히 사용된 ‘뉴턴의Newtonian’라는 꾸밈말은 그러한 감각과 이어져 있었다. 한편 데카르트, 말브랑슈, 뉴턴, 라이프니츠 같은 17세기 사람들의 사상이 이 말로 뭉뚱그려지더라도 그들은 운동과 그 변화의 원인, 즉 힘에 관해 상이한 견해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견해차는 그 후로도 이어져, 힘을 둘러싼 논쟁은 18세기에도 줄곧 과학과 철학이 교차하는 지점이었다.
이성적 추론을 대표한 수학
18세기 과학을 특징짓는 것은 ‘이성’이고 이성적 추론을 대표한 것은 수학이었다. 따라서 수학이 계몽주의 과학의 스타일을 결정했던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 특히 중요한 것이 ‘해석/분석analysis’이다. 이 말은 수학의 문맥에서는 문제를 방정식으로 귀착시키는 것을 의미하며, 특히 18세기에는 주로 미적분 계산과 그것을 역학에 적용하는 방식을 가리켰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말은 ‘종합synthesis’과 쌍을 이루며 적절한 과학적 방법도 의미하게 되었다. 콩디야크 같은 철학자들에게는 해석/분석이야말로 과학의 방법이었던 것이다. 이 책은 제2장에서 이러한 해석의 의미와 수학에 있어서의 그 실제, 그리고 그것과 직접 관계되는 역학의 제반 문제, 천문학이나 측지학의 화제를 개관하고 있다. 살아 있는 힘(활력) 논쟁이나 지구 형상의 측정과 같은, 18세기 과학사를 수놓은 에피소드들도 소개된다. 또한 확률론에 관한 내용도 제6장에서 설명된다. 거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요컨대 인간의 판단을 수학적으로 다루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실험물리학의 정량화
18세기의 자연철학이라는 것은 오늘날 말하는 ‘물리학’과 일치하지 않는다. 전기(정전기), 열, 빛 등의 연구만이 아니라 예컨대 생리학도 그 안에 포괄되었고, 화학과도 명확히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18세기는 오히려 이러한 분야들이 각각 독립해나가는 과도기에 해당한다. 제3장에서 설명하듯이, 자연철학은 특히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 사람들(부르하버, 스흐라베산데, 뮈스헨부르크)에 의해 1720년경부터 철저히 실험적인 영위로서 진행되었다. 다만 애초의 실험과학은 실험이나 시연장치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결코 정량적인 것은 아니었다. 한편으로는 전기의 전도나 반발 같은 새로운 현상이 실험과정에서 확인되어 18세기 중엽부터 신비한 전기유체에 의한 여러 이론들이 제창되었다. 그리고 1760년경부터 드디어 전기의 양을 측정하려는 시도가 본격화되었다. 이에 비하면 열에 대해서는 일찍부터 이론화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7세기에 이미 열은 ‘불 입자’에 의해 생긴다고 여겨져, 그렇게 해서 생긴 열을 재는 도구인 온도계가 제작되기도 했다. 18세기에 열 이론은 그러한 입자를 상정하면서 점차 발전해나갔다(잠열 같은 개념 등). 그런 ‘신비한 유체’가 계몽주의 시대에 그 역할을 맡았다. 그것은 실험물리학의 정량화를 가능케 하고 기계론 철학에 좀 더 추상적인 차원을 부여했던 것이다.
화학혁명 그리고 실험생리학
18세기에는 실제로 전기나 열이 ‘불’의 한 형태라고 여겨졌다. 오늘날의 눈으로 보면 기이하지만, 적어도 18세기 초에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4원소설이 여전히 자연철학의 기본적 틀로서 이해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18세기 말에 이르러 4원소설은 거의 해체된다. 단일한 ‘흙’은 연소에 의해 다양한 ‘흙’으로 분해되고, 나아가 액체나 기체로도 바뀌었다. 또한 ‘공기’에도 다양한 종류(고정된 공기, 탈플로지스톤 공기 등등)가 있다는 것이 밝혀지고, ‘물’ 역시 복합적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경위를 흔히 ‘화학혁명’이라고 한다. 1740년경에는 화학도 물질의 구조를 기계론적으로 고찰하는 것을 그만두고 화학적인 프로세스를 합리화하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와 흡사한 일이 생리학 분야에서도 일어났다. 즉, 생물의 구조를 기계론적으로 설명하는 데에서 생체의 기능을 실험적으로 탐구하는 쪽으로 전환한 것이었다. 이러한 실험생리학의 발전과, 그와 관련한 발생 및 유전 이론의 변천은 제5장에서 다뤄진다. 호흡, 소화, 번식, 발생, 유전 등에 관한 관찰·실험과, 자극이나 발생 이론(전성설·후성설)이 라 메트리나 디드로 등을 통해 균형감 있게 서술된다. 이렇듯 전기에서 공기, 생리에 이르기까지 18세기의 자연철학은 실험 자체를 중시한 데에 그 특징이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토머스 핸킨스Thomas L. Hankins
미국 예일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여 1958년에 하버드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고 1964년에 코넬 대학에서 역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4년부터 워싱턴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00년에 명예교수로 퇴직했다. 핸킨스 교수는 18~19세기의 물리수학mathematical physics과 과학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했다. 저서로 『장 달랑베르: 과학과 계몽주의』 『윌리엄 로완 해밀턴 경』 『실험도구와 상상력』 등이 있다.
역자 양유성
대학에서 응용화학을 공부하고 고분자 물리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관련 분야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인문학을 공부하고 있다. 특히 17~18세기 계몽주의 시대의 과학과 문화에 관심이 많다. 역서로 『인문학 스터디』(공역)가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제1장 계몽주의의 성격
이성과 자연/ 자연과학과 문학/ 과학의 범주들/ 기계론 철학/ 과학과 철학
제2장 수학과 정밀과학
해석학의 의미/ 곡선주 운동/ 역학원리들/ 역학과 계몽주의 철학/ 만유인력의 법칙에 대한 세 가지 실험/ 위치천문학/ 물리천문학
제3장 실험물리학
신비한 유체/ 전기/ 전기의 초기 역사/ 벤저민 프랭클린의 단일유체이론/ 라이덴병/ 전류의 발견/ 열과 온도/ 잠열
제4장 화학
물체의 기체상태/ 기체화학/ 연소의 문제/ 플로지스톤 이론/ 라부아지에의 연소실험/ 산소와 물질의 기체상태/ 화학의 합리화/ 화학적 원자론
제5장 자연사와 생리학
기계론 철학과 생명연구/ 실험생리학/ 발생/ 전성설의 부활/ 자연사
제6장 도덕과학
인간과학/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백과전서/ 과학 아카데미/ 장 자크 루소, 사회비판가/ 중농주의자들/ 확률론과 인간과학/ 법률의 개혁/ 사회적 수학/ 계몽주의의 종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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