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강렬한 서사와 치밀한 묘사, 탄탄한 문체로 문단과 독자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는 작가 천운영의 두번째 장편소설 『생강』이 출간되었다. 쫓기는 고문기술자 아버지와, 아버지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딸의 내면을 파고들며 우리에게 폭력과 욕망의 문제를, 가식을 걷어낸 인간의 맨얼굴을 직시하게 한다.
천운영은 치열한 작가다. 날카로운 감각으로 인간의 욕망과 상처를 끝까지 파고드는 작가이며, 삶과 죽음을 감싸안고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모색하는 내내 단단하고 치밀한 문장에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작가다. 그런 그가 지난 소설집 이후 3년 만, 장편으로는 6년 만에 두번째 장편을 낸다. 준비와 취재에만 1년여를 들였고, 지난해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5개월간 연재하고 이후 작품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다듬는 데 반년 넘는 시간을 더 들였다. 연재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듯, 이것은 ‘한 고문기술자와 그의 딸’의 이야기이다. 왜 지금에 와서 고문기술자인지, 이로부터 대체 어떤 소설이 풀려나올지, 다른 작가도 아닌 천운영이 쓰는 소설이라면, 궁금증이 증폭되면서도 신뢰가 가지 않는가.
사람들은 그를 악마라 부른다. 그가 내 다락방에 숨어들었다
* 물을 부어라. 천천히 조금씩 부어라.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동시에 들어가야 한다. 물이 목구멍으로 차오를 때까지 물줄기를 멈추지 마라. 입을 다물어도 소용없고 숨을 참는 것도 한순간이다. 입은 벌리게 되어 있고 물은 들어가게 되어 있다. 버티려 할수록 고통의 시간만 길어질 것을.
한 남자가 있다. 소설은 불쑥, 이 남자가 행하는 끔찍하면서도 일상적인 고문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서 시작한다. 고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남자는 조직의 지시에 따라 쫓기듯 도피생활을 시작하고, 그는 이제 절대적인 폭력의 중심으로부터 도망자이자 추방자의 처지가 된다. 조직이 마련한 은신처인 갱생원에서의 폭력과 모멸, 야산 폐가에서의 절대적인 고립을 겪은 남자는 이윽고 위험을 피해 위험의 중심으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아내의 미용실 곁방에 딸린 다락방에 몸을 숨긴다.
*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데? 따귀 몇대 때린 거라면서. 실수한 거라면서. 그런데 물고문은 뭐고 전기고문은 뭐야. 내가 모를 줄 알아? 지금이 일제시대야? 아빠가 일제시대 앞잡이야? 잘못 없다면서. 잘못 없으면 왜 숨어.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그렇게 가르친 건 아빠잖아.
그리고 그의 딸 ‘선’이 있다. 소설은 아버지와 딸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자신만의 궁전인 다락방에서 하이틴로맨스와 순정만화를 읽으며 꿈을 키운 소녀는 이제 곧 맞이할 대학생활의 핑크빛 낭만에 한껏 가슴이 부풀어 있다. 그런 선의 눈앞에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낯선 남자가 나타나고, 선은 자신의 아버지가 고문기술자임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그 악마가 바로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아버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다락방에서 은신생활을 시작한다.
* 고문이 뭔지나 알아?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 되는 게 고문이야. 조기나 잡으면서 평범하게 살던 어부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게 고문이야. 술 먹고 말 한번 잘못했다가 끌려가서 간첩이 되는 게 고문이야. 여기서 어떻게 네, 편을, 어떻게 네 편을 들어? 너 프락치야? 그래? 그래서 일부러 우리한테 접근한 거지?
선은 정의감 넘치는 대학동기 ‘민’의 손에 이끌려 사랑을 느끼고 대학생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이 악몽 같은 현실을 떨쳐내려 애쓴다. 하지만 곧 둘도 없는 친구마저 자신을 떠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랐던 민마저 아버지의 정체를 털어놓자 자신을 외면하고 만다. 결국 선은 대학을 그만두고 미용사가 되지만,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다락방에 숨은 아버지는 딸의 물건들을 볼모로 삼아 필요한 물건들을 딸과 거래하는 기묘한 생활을 지속한다.
폭력과 악의 밑바닥에서 대면하는 발가벗긴 인간적 진실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 『생강』은 잘 알려진 한 고문기술자를 둘러싼 가까운 역사적 사실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실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소설로 옮기는 대신, 고문기술자 아버지와 그 딸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와 그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그를 소설로서 새로이 창조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하여 소설에서 부각되는 것은 한 시대의 비극에 대한 피상적인 판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폭력과 공포와 죄악이 인간의 몸과 내면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아프도록 생생한 진실이다.
*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발길질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지 않으면 불안하게 된 것은. 피를 보고서야 마음이 놓이고, 눈물을 보아야만 숨이 쉬어지고, 굴복을 시켜야만 편안해지기 시작한 것은. 살이 타는 냄새와 피와 오줌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짐승이기 시작한 것은.
남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기확신에 차 있었다. 오직 조직을 위해, 조직의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벌인 정의로운 일이었다. 남자는 다락방에 숨어서도 자신의 세계를, 자신이 아버지임을 고수하려 한다. 하지만 다락방에서 위축되고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남자의 신념은 점차 뒤틀려가고, 그는 점차 비루하고 치졸한 존재로 격하되어간다. 마침내 자신이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았음을 안 남자는 자신이 지켜내고자 한 세계가 산산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 당신은 기억하는가. 당신이 돌아갔을 때 당신에게 매달려 어린애처럼 훌쩍이던 청년의 얼굴을.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아주던 당신의 손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당신이 청년에게 처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기억해야 한다.
딸은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베풀던 따뜻한 아버지가 실은 악마임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가혹하고 절대적인 운명이 되었다. 나아가 딸은 다락방의 아버지가 자신의 소중한 세계를 담보로 치졸한 거래를 제안하는 비열한 신이 되는 것을, 비루하고 초라한 한 마리 짐승이자 어둠속에 숨은 유령이 되는 것을 지켜본다. 이제 딸은 매일같이 미용실 앞에 서서 떠날 줄 모르는 고문피해자 남자의 말을 온몸에 새겨듣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망가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이밀며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고 아버지에게 맞서기 시작한다.
아프고 씁쓸하고 애틋해서 오래 남는 이야기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그럴듯한 이해나 화해를 이끌어내는 데 바쳐지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버지에게도 딸에게도,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각자의 뼈저린 진실이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동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십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남자는 결국 죗값을 치르게 되고 딸 선은 미용실을 새로 단장하고 새봄을 맞이하는 듯하지만, 이후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놀라운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일을 소설적 내면으로 육화해내는 작가의 탁월한 솜씨다. 강렬한 가족서사와 정치한 묘사는 지금까지의 소설들에서 천운영만의 색깔을 빚어내온 그의 특징이자 장기이지만, 그것이 『생강』에서 더욱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문기술자와 그의 딸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가족을 둘러싼 욕망의 얽힘이 인물들 간의 관계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하고, 철저한 취재에서 비롯한 살아 있는 묘사가 폭력과 공포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아프고 무서운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간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부터 생생하게 형상화해내는 작가의 방법이 이만큼 적실하게 들어맞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소설에 담긴 고통은, 현실이 그렇듯 아프고 씁쓸하면서도 애틋하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빼어난 소설이란 어느 한 가지 단순한 감각으로 요약되지 않는 것이고, 『생강』 역시 그렇다. ‘쌉쌀한 단맛, 달달한 쓴맛’을 지닌 생강은 누군가에게는 김치 속에서 골라내고 싶은 불편하고 싫은 맛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겨우내 감기 걱정을 면하게 해주는 소중한 맛이다. 또 딸에게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온 생강과자를 잠결에 먹었다가 화들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게 되는 맛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몇번 스치듯이 등장해 알 듯 모를 듯 복잡한 맛을 입안에 감돌게 하는 생강처럼, 이 소설의 맛이 꼭 그렇다.
▣ 작가 소개
저 : 천운영
千雲寧
천운영은 1994년 한양대학교 신방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 국문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지난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1년 제 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등단작을 표제로 한 소설집 『바늘』을 출간했다. 2004년 소설집 『명랑』을 출간했고, 지난해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를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문단의 전면을 장식하며 등장했던 일군의 여성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작품 세계와 작가관을 선보여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신동엽창작상,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사람의 얘기를 쓰는 천운영은 그만큼 사람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그의 자취방은 공부하던, 회의하던 친구들이 저녁마다 주막처럼 들러서 국수를 말아먹고 갔던 곳이다. 애들 교육은 못 시켜도 이웃에 떡은 돌렸던 할머니의 천성을 이어받았다는 천운영은 남들 음식 해 먹이고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뚜렷한 사회 인식이 아니라 토익, 토플, 상식 따위이기에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가 공권력에 쓰러졌던 시절, 천운영은 손목에는 청 테이프를, 옆구리에는 대자보를 끼고 다녔고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출석만 부르고 도망가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소설가의 꿈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고 말한다. 4학년 때 들은 평론수업 시간, 당시 김영삼 정권의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평론을 쓰는 과제에서 선생님이 그의 평론을 재밌게 읽고는 차라리 소설을 써보라던 한 마디가 순간 한 줄기 빛으로 천운영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당시 평론을 논설문이 아닌 현실을 빗대는 이야기를 만들어 썼다는 천운영은 선생님이 농담처럼 덧붙인 한 마디에 소설가의 길과 우연히 마주쳤다. ''잘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소설은 잘 쓸 수 있겠다''는 확신에 한양대학교 졸업 후 서울예대로 진학했고 2년 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 수업시간에 모르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면 몰라도 아는 척 하며 메모를 했다가 저녁 때 서점에 들러 모두 읽어버리던 천운영은 그 2년 동안 평생 읽은 책보다 대여섯 배 많은 책을 읽었다. 천운영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이었던 소설에 대한 꿈을 키운 서울예대 2년은 "소설에 관해 얘기하는 친구도 얻었고,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소설을 고민하는 열정을 배운" 시기였다고 한다
천운영은 소설을 쓰면서 매 순간마다 집중하는 ''화두''가 있다.「바늘」의 미와 추, 「명랑」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요즘 고민까지.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씹다 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천운영의 소설들은 다르다. 그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차이는 자못 의식적일 정도이다. 가령, <바늘>의 주인공은 남자들 몸에 문신을 새기는 젊은 여자이고, <숨>에는 마장동에서 소머리를 분해하는 일을 하는 남자가 등장하며, <당신의 바다>는 곰장어를 구워 파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고물상(<행복고물상>), 유원지의 도깨비집 관리인(<유령의 집>), 건축공사장 노동자(<등뼈>) 등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은 최근 한국 소설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인물들이다. 그렇게 낯설고 독특한 이들의 세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점 역시 천운영 소설의 특징이다. 직접 발품을 팔고 꼼꼼히 취재한 노력이 돋보이거니와, 그것은 이웃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 주요 목차
생강
작가의 말
강렬한 서사와 치밀한 묘사, 탄탄한 문체로 문단과 독자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고 있는 작가 천운영의 두번째 장편소설 『생강』이 출간되었다. 쫓기는 고문기술자 아버지와, 아버지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게 된 딸의 내면을 파고들며 우리에게 폭력과 욕망의 문제를, 가식을 걷어낸 인간의 맨얼굴을 직시하게 한다.
천운영은 치열한 작가다. 날카로운 감각으로 인간의 욕망과 상처를 끝까지 파고드는 작가이며, 삶과 죽음을 감싸안고 타인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모색하는 내내 단단하고 치밀한 문장에 한점 흐트러짐이 없는 작가다. 그런 그가 지난 소설집 이후 3년 만, 장편으로는 6년 만에 두번째 장편을 낸다. 준비와 취재에만 1년여를 들였고, 지난해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 5개월간 연재하고 이후 작품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고 다듬는 데 반년 넘는 시간을 더 들였다. 연재 때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듯, 이것은 ‘한 고문기술자와 그의 딸’의 이야기이다. 왜 지금에 와서 고문기술자인지, 이로부터 대체 어떤 소설이 풀려나올지, 다른 작가도 아닌 천운영이 쓰는 소설이라면, 궁금증이 증폭되면서도 신뢰가 가지 않는가.
사람들은 그를 악마라 부른다. 그가 내 다락방에 숨어들었다
* 물을 부어라. 천천히 조금씩 부어라. 목구멍과 콧구멍으로 동시에 들어가야 한다. 물이 목구멍으로 차오를 때까지 물줄기를 멈추지 마라. 입을 다물어도 소용없고 숨을 참는 것도 한순간이다. 입은 벌리게 되어 있고 물은 들어가게 되어 있다. 버티려 할수록 고통의 시간만 길어질 것을.
한 남자가 있다. 소설은 불쑥, 이 남자가 행하는 끔찍하면서도 일상적인 고문 장면을 세밀하게 묘사하는 데서 시작한다. 고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남자는 조직의 지시에 따라 쫓기듯 도피생활을 시작하고, 그는 이제 절대적인 폭력의 중심으로부터 도망자이자 추방자의 처지가 된다. 조직이 마련한 은신처인 갱생원에서의 폭력과 모멸, 야산 폐가에서의 절대적인 고립을 겪은 남자는 이윽고 위험을 피해 위험의 중심으로,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아내의 미용실 곁방에 딸린 다락방에 몸을 숨긴다.
*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야 하는데? 따귀 몇대 때린 거라면서. 실수한 거라면서. 그런데 물고문은 뭐고 전기고문은 뭐야. 내가 모를 줄 알아? 지금이 일제시대야? 아빠가 일제시대 앞잡이야? 잘못 없다면서. 잘못 없으면 왜 숨어.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지. 그렇게 가르친 건 아빠잖아.
그리고 그의 딸 ‘선’이 있다. 소설은 아버지와 딸의 시점을 번갈아가며 진행된다. 자신만의 궁전인 다락방에서 하이틴로맨스와 순정만화를 읽으며 꿈을 키운 소녀는 이제 곧 맞이할 대학생활의 핑크빛 낭만에 한껏 가슴이 부풀어 있다. 그런 선의 눈앞에 아버지의 행방을 쫓는 낯선 남자가 나타나고, 선은 자신의 아버지가 고문기술자임을,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그 악마가 바로 아버지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어느날 아버지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고, 자신의 다락방에서 은신생활을 시작한다.
* 고문이 뭔지나 알아?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 되는 게 고문이야. 조기나 잡으면서 평범하게 살던 어부들을 간첩으로 만드는 게 고문이야. 술 먹고 말 한번 잘못했다가 끌려가서 간첩이 되는 게 고문이야. 여기서 어떻게 네, 편을, 어떻게 네 편을 들어? 너 프락치야? 그래? 그래서 일부러 우리한테 접근한 거지?
선은 정의감 넘치는 대학동기 ‘민’의 손에 이끌려 사랑을 느끼고 대학생의 세계에 가까이 다가가면서 이 악몽 같은 현실을 떨쳐내려 애쓴다. 하지만 곧 둘도 없는 친구마저 자신을 떠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기를 바랐던 민마저 아버지의 정체를 털어놓자 자신을 외면하고 만다. 결국 선은 대학을 그만두고 미용사가 되지만, 어느 곳에서도 안식을 찾지 못하고, 다락방에 숨은 아버지는 딸의 물건들을 볼모로 삼아 필요한 물건들을 딸과 거래하는 기묘한 생활을 지속한다.
폭력과 악의 밑바닥에서 대면하는 발가벗긴 인간적 진실
소설을 읽어나가는 동안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듯, 『생강』은 잘 알려진 한 고문기술자를 둘러싼 가까운 역사적 사실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실제 사실을 있는 그대로 소설로 옮기는 대신, 고문기술자 아버지와 그 딸이라는 두 인물의 관계와 그들의 내면에 초점을 맞추어 그를 소설로서 새로이 창조하는 길을 택한다. 그리하여 소설에서 부각되는 것은 한 시대의 비극에 대한 피상적인 판단이 아니라 구체적인 폭력과 공포와 죄악이 인간의 몸과 내면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아프도록 생생한 진실이다.
*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발길질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휘두르지 않으면 불안하게 된 것은. 피를 보고서야 마음이 놓이고, 눈물을 보아야만 숨이 쉬어지고, 굴복을 시켜야만 편안해지기 시작한 것은. 살이 타는 냄새와 피와 오줌 냄새가 향기롭게 느껴지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짐승이기 시작한 것은.
남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자기확신에 차 있었다. 오직 조직을 위해, 조직의 ‘아버지’에게 인정받기 위해 벌인 정의로운 일이었다. 남자는 다락방에 숨어서도 자신의 세계를, 자신이 아버지임을 고수하려 한다. 하지만 다락방에서 위축되고 지루하고 불안한 나날을 보내는 동안 남자의 신념은 점차 뒤틀려가고, 그는 점차 비루하고 치졸한 존재로 격하되어간다. 마침내 자신이 조직으로부터 버림받았음을 안 남자는 자신이 지켜내고자 한 세계가 산산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다.
* 당신은 기억하는가. 당신이 돌아갔을 때 당신에게 매달려 어린애처럼 훌쩍이던 청년의 얼굴을. 피투성이가 된 얼굴을 닦아주던 당신의 손을 기억하는가. 그리고 당신이 청년에게 처음 했던 말을 기억하는가. 기억해야 한다.
딸은 자신에게 무한한 애정을 베풀던 따뜻한 아버지가 실은 악마임을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꿈을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가혹하고 절대적인 운명이 되었다. 나아가 딸은 다락방의 아버지가 자신의 소중한 세계를 담보로 치졸한 거래를 제안하는 비열한 신이 되는 것을, 비루하고 초라한 한 마리 짐승이자 어둠속에 숨은 유령이 되는 것을 지켜본다. 이제 딸은 매일같이 미용실 앞에 서서 떠날 줄 모르는 고문피해자 남자의 말을 온몸에 새겨듣기 시작한다. 아버지가 망가뜨린 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이밀며 아버지를 똑바로 바라보고 아버지에게 맞서기 시작한다.
아프고 씁쓸하고 애틋해서 오래 남는 이야기
그러나 이 모든 이야기가 그럴듯한 이해나 화해를 이끌어내는 데 바쳐지지 않는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버지에게도 딸에게도, 가해자에게도 피해자에게도 각자의 뼈저린 진실이 있을 테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것을 자신의 마음으로 동감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만큼 쉽게 변하지 않는 것이 인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십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남자는 결국 죗값을 치르게 되고 딸 선은 미용실을 새로 단장하고 새봄을 맞이하는 듯하지만, 이후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바다.
놀라운 것은 고통스러운 현실의 일을 소설적 내면으로 육화해내는 작가의 탁월한 솜씨다. 강렬한 가족서사와 정치한 묘사는 지금까지의 소설들에서 천운영만의 색깔을 빚어내온 그의 특징이자 장기이지만, 그것이 『생강』에서 더욱 폭발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문기술자와 그의 딸이라는 소재를 다루는 데 있어 가족을 둘러싼 욕망의 얽힘이 인물들 간의 관계를 더욱 강렬하게 부각하고, 철저한 취재에서 비롯한 살아 있는 묘사가 폭력과 공포의 실체를 보다 선명하게 드러내는 데 기여하는 것이다. 아프고 무서운 현실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을 인간의 가장 깊은 바닥에서부터 생생하게 형상화해내는 작가의 방법이 이만큼 적실하게 들어맞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소설에 담긴 고통은, 현실이 그렇듯 아프고 씁쓸하면서도 애틋하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빼어난 소설이란 어느 한 가지 단순한 감각으로 요약되지 않는 것이고, 『생강』 역시 그렇다. ‘쌉쌀한 단맛, 달달한 쓴맛’을 지닌 생강은 누군가에게는 김치 속에서 골라내고 싶은 불편하고 싫은 맛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겨우내 감기 걱정을 면하게 해주는 소중한 맛이다. 또 딸에게는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온 생강과자를 잠결에 먹었다가 화들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게 되는 맛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 몇번 스치듯이 등장해 알 듯 모를 듯 복잡한 맛을 입안에 감돌게 하는 생강처럼, 이 소설의 맛이 꼭 그렇다.
▣ 작가 소개
저 : 천운영
千雲寧
천운영은 1994년 한양대학교 신방과를 졸업했으며 1997년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현재 고려대 국문대학원에 재학중이다. 지난 200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바늘」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2001년 제 9회 대산문화재단 문학인 창작지원금을 받았으며 같은 해 등단작을 표제로 한 소설집 『바늘』을 출간했다. 2004년 소설집 『명랑』을 출간했고, 지난해 장편소설 『잘 가라, 서커스』를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들의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1990년대 들어 문단의 전면을 장식하며 등장했던 일군의 여성 작가들과는 전혀 다른 작품 세계와 작가관을 선보여 새로운 여성 미학의 선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03년 신동엽창작상, 2004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했다.
사람의 얘기를 쓰는 천운영은 그만큼 사람을 좋아한다. 대학시절 그의 자취방은 공부하던, 회의하던 친구들이 저녁마다 주막처럼 들러서 국수를 말아먹고 갔던 곳이다. 애들 교육은 못 시켜도 이웃에 떡은 돌렸던 할머니의 천성을 이어받았다는 천운영은 남들 음식 해 먹이고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기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이 뚜렷한 사회 인식이 아니라 토익, 토플, 상식 따위이기에 명지대 신입생 강경대가 공권력에 쓰러졌던 시절, 천운영은 손목에는 청 테이프를, 옆구리에는 대자보를 끼고 다녔고 맨 뒷자리에 앉아 있다가 출석만 부르고 도망가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소설가의 꿈은 정말 우연히 찾아왔다고 말한다. 4학년 때 들은 평론수업 시간, 당시 김영삼 정권의 금융실명제 실시에 관한 평론을 쓰는 과제에서 선생님이 그의 평론을 재밌게 읽고는 차라리 소설을 써보라던 한 마디가 순간 한 줄기 빛으로 천운영의 머리를 꿰뚫고 지나갔다.
당시 평론을 논설문이 아닌 현실을 빗대는 이야기를 만들어 썼다는 천운영은 선생님이 농담처럼 덧붙인 한 마디에 소설가의 길과 우연히 마주쳤다. ''잘 하는 것 하나 없지만 소설은 잘 쓸 수 있겠다''는 확신에 한양대학교 졸업 후 서울예대로 진학했고 2년 동안 수많은 책을 읽었다. 수업시간에 모르는 작가의 이름이 나오면 몰라도 아는 척 하며 메모를 했다가 저녁 때 서점에 들러 모두 읽어버리던 천운영은 그 2년 동안 평생 읽은 책보다 대여섯 배 많은 책을 읽었다. 천운영에게 어느 날 한 줄기 빛이었던 소설에 대한 꿈을 키운 서울예대 2년은 "소설에 관해 얘기하는 친구도 얻었고, 좋은 선생님도 만났고, 소설을 고민하는 열정을 배운" 시기였다고 한다
천운영은 소설을 쓰면서 매 순간마다 집중하는 ''화두''가 있다.「바늘」의 미와 추, 「명랑」의 삶과 죽음, 그리고 요즘 고민까지. 지금 이 순간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씹다 보면 깨달음을 얻게 된다고 한다. 천운영의 소설들은 다르다. 그저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차이는 자못 의식적일 정도이다. 가령, <바늘>의 주인공은 남자들 몸에 문신을 새기는 젊은 여자이고, <숨>에는 마장동에서 소머리를 분해하는 일을 하는 남자가 등장하며, <당신의 바다>는 곰장어를 구워 파는 부부의 이야기이다. 이밖에도 고물상(<행복고물상>), 유원지의 도깨비집 관리인(<유령의 집>), 건축공사장 노동자(<등뼈>) 등 천운영 소설의 주인공들은 최근 한국 소설에서는 만나보기 어려웠던 인물들이다. 그렇게 낯설고 독특한 이들의 세계를 매우 사실적으로 그린다는 점 역시 천운영 소설의 특징이다. 직접 발품을 팔고 꼼꼼히 취재한 노력이 돋보이거니와, 그것은 이웃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애정어린 관심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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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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