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로마의 스캔들 황제들
칼리굴라(재위 37~41), 클라우디우스(재위 41~54), 네로(재위 54~68)는 광기와 우행을 연속한 로마의 스캔들 황제들이다. 칼리굴라는 티베리우스를 독살하고 황제가 되었다. 칼리굴라는 근친이나 주변 사람을 차례로 독살하고 자신의 누이들과의 육체관계도 서슴지 않았다. 클라우디우스는 병약하고 바보로 여겨져 거의 무시당하며 자랐다.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살았던 그는 칼리굴라가 죽자 돌연 후계자가 되었다. 그때 나이가 이미 쉰이었다. 클라우디우스는 칼리굴라에 비하면 괜찮은 황제였지만, 겁이 많고 우유부단하며 주견이 없었던 게 흠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황제가 바로 세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네로다. 황제에 즉위한 네로는 우선 민중에게 성대한 향연을 베풀었다. 축제, 전차 경주, 연극, 검투사 시합 등 온갖 볼거리를 제공하고 선물을 뿌렸다. 네로는 제국의 체제를 공고히 한 업적도 있다. 그러나 그야말로 그것이 전부였다.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잔치를 벌였고, 성적인 쾌락은 끝도 없었다. 네로는 음모를 꾸밀 만한 의심이 가는 자는 가차 없이 죽였다. 그리고 로마가 노후화해 지저분하다며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네로 시대는 14년간 이어졌다. 그 종말은 로마의 중심에서가 아니라 주변인 갈리아의 반란에 의해 초래되었다. 네로는 로마에서 도망쳤다. 궁지에 몰리자, “이 세상에서 뛰어난 예술가가 사라지는구나”라고 탄식하며 칼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지배한 약 30년은 로마의 역사상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 국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사회는 타락했으며, 황제들에 대한 온갖 추문이 횡행했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 세 사람을 로마 제국의 역사를 갉아먹은 ‘3대 스캔들 황제’로 기록하고 있다.
잔 다르크를 처형한 사법 스캔들
파리 대학의 신학자와 법학자들이 영국과 싸우다 붙잡힌 잔 다르크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재판에 회부하겠다는 것이다. 파리 대학은 영국 국왕에 의한 영국ㆍ프랑스라는 이원국가가 얼마나 합법적이고 옳은 것인가를 주장해왔다. 잔 다르크가 샤를 7세를 유일한 프랑스 왕으로 만든 것은 파리 대학의 권위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잔 다르크가 마녀라고 했다. 그녀는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것은 전투에서의 포로 재판이 아니라 이단 재판이었고, 파리 대학이 책임을 지고 관리했다. 파리 대학의 교수들은 어떻게든 잔 다르크를 유죄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가 지상 교회에 대한 복종을 깨버렸다며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신의 계시는 어디까지나 지상 교회를 통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잔 다르크는 결국 화형에 처해졌다.
훗날 샤를 7세는 잔 다르크 재판의 재심을 명했다. 그리고 1456년 잔 다르크 재판은 파기되었고 그녀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여론, 소문, 중상 등을 이용한 정치 재판이 한 소녀를 피의 축제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잔 다르크 재판은 중세의 종말을 그로테스크하게 물들인 대형 사법 스캔들이었다.
18세기 유럽을 뒤흔든 금융 스캔들
18세기 초, 프랑스는 영국과의 전쟁으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프랑스에도 영국의 은행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때 등장한 사람이 존 로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꽤 매력적이고 말주변이 좋은 남자였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영국에서는 사건을 일으키고 파리로 도피해 도박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5세가 어렸기 때문에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가 섭정을 했다. 존 로는 필리프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금융개혁을 제안했다. 그는, “돈은 사회의 혈액으로, 부드럽게 흘러가면 사회도 순조롭게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금, 은 화폐는 양이 부족해서 흐름이 나쁘다. 지폐라면, 부족할 경우 인쇄하면 되니까 이상적이다. 따라서 지폐를 발행하는 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리프는 존 로를 믿고 은행을 설립했다. 존 로는 은행만이 아니라 은행과 관련된 대형 회사를 만들어 국가적으로 경영할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시스템’이라 불렀다. 그러한 대형 회사는 국내에서는 어렵다. 그것에 어울리는 것은 해외의 식민지다. 프랑스가 갖고 있는 북미의 식민지를 개발할 독점적인 회사가 계획되었고 존 로에게 맡겨졌다.
1717년, 미시시피 회사가 설립되었다. 미시시피는 그 후 25년간 프랑스와 루이지애나 상거래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았다. 존 로는 이 회사의 주식을 판매했다. 그것을 위해 대대적인 선전을 했는데, 아메리카 인디언 아가씨를 파리로 데려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메리카는 아직 미지의 땅으로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해 투자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존 로는 선수를 써서 아메리카만이 아니라 인도, 중국 등 프랑스 식민지의 무역 독점권까지 얻었다. 그리고 화폐 주조권도 획득했다. 섭정 필리프는 프랑스의 재정을 통째로 이 남자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방대한 전시 국채의 변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존 로는 15억 리브르(livre : 프랑스의 옛 화폐단위)의 국채를 회사가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미시시피가 15억 리브르를 정부에 지불하고, 정부는 그것으로 국채를 지급한다. 변제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 돈으로 회사의 주식을 사도록 한다. 즉 국채를 미시시피의 주식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그러한 주식 거래 조작으로 그때까지 팔리지 않던 미시시피 주식이 팔리기 시작하고 가격도 올랐다. 액면가 500리브르가 1만8천 리브르까지 뛰었다. 광란의 거품이었다.
존 로는 이제 프랑스 정부의 구세주이자 금융의 신처럼 숭배되기에 이르렀다. 1719년이 그 ‘시스템’의 절정기였다. 1720년 그는 재무총감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배당금이 줄어든다는 정보가 흘러나가 사람들이 주식을 내다팔기 시작하자 주가는 폭락했다. 그리고 폭동이 일어났고, 존 로는 파산하여 국외로 도망쳤다. 이 거품 이후 뒤처리를 위해 지불이 정지되고 수많은 파산자가 발생했다. 존 로 스캔들은 주식회사가 막 태동하던 시기에 발생한 어처구니 없는 금융 스캔들이었다.
드레퓌스의 군사 기밀 유출 스캔들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 사건은 프랑스군에서 일어난 기밀 누설 사건이다. 사건은 1894년 프랑스군의 참모본부가 ‘명세서’(bordereau)라 불리는 기밀문서를 입수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독일 대사관에서 프랑스의 스파이가 훔쳐냈는데, 프랑스군의 대포와 관련된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프랑스 군대 내부의 배신자가 독일에 정보를 팔아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용으로 보면 그 스파이는 포병인 듯했다. 곧바로 드레퓌스 대위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포병 출신인 데다 필적도 유사했다. 그리고 유대인이었다. 그것으로 범인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곧 드레퓌스는 체포되었다.
그뿐이라면 사건은 은밀히 처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부 앙리 소령의 주변 사람이 우익 신문에 그 사실을 누설하고 말았다. 군부는 왜 스파이 드레퓌스 사건을 감추고 있는 것인가, 유대 세력이 쉬쉬하며 수습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기사가 난무했다. 그것에 떠밀린 듯 군법회의는 드레퓌스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고, 그는 투옥되었다. 게다가 그 전에 사관학교 교정에서 공개적으로 드레퓌스의 계급 박탈 의식이 열렸다. 드레퓌스의 휘장은 찢겨지고 사벌(기병이 허리에 차는 서양식 칼)은 휘어졌다. 군중은 ‘매국노를 죽여라! 유대인을 죽여라!’라고 외쳤다. 이것으로 여론의 흥분은 가라앉았고 사건은 수습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드레퓌스의 형 마티외는 끈기 있게 사건의 재심 요구를 계속했다. 참모본부 내에서도 앙리 소령의 방식에 의문을 품은 피카르 중령이 조사를 시작했다. 에스테라지 소령이 의심스러웠다. 명세서의 필적은 오히려 에스테라지의 필적과 유사했던 것이다. 피카르는 그것을 상사에게 보고했지만 어쩐 일인지 자신이 튀니지로 전출되고 말았다. 그래도 에스테라지가 수상하다는 이야기는 매스컴에서도 다루어졌고 의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한 의회는 움직이지 않았고, 군법회의에서 에스테라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태가 절망적이라고 생각되었을 때 의외의 길이 열렸다.
신문 ''오로르Aurore''에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글을 발표했다. 드레퓌스는 무죄이고 장군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다며 군부를 규탄한 것이다. 졸라의 고발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호소에 찬동한 것은 지식인들이었다. 대학 교원, 학생들이 운동에 가세했다. 사건은 여론의 장으로 옮겨갔다. ‘지식인’은 소수파이고 반(!)드레퓌스파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그래도 지식인 측의 논조가 두드러졌다.
반드레퓌스파는 불안을 느끼고 유죄를 확증하기 위한 재조사를 했다.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증거로 제출한 편지가 앙리 소령이 위조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앙리는 체포되었고 자살해버렸다. 살해당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에스테라지는 도망쳤다. 그들의 막후 인물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군법회의에 재심 명령이 떨어졌다. 반드레퓌스파가 소동을 일으키며 유대인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군법회의는 다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여론은 내셔널리즘으로 흘렀다. 군법회의가 다시 내린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외국에서도 비난이 일었다. 그러자, 드레퓌스가 유죄이기는 하지만 대립을 피하기 위한 명목이라며, 대통령령의 특별사면으로 그를 석방시켰다. 여론은 진범이 누구인지에 흥미를 잃었고, 특별사면으로 사건은 끝났다고 하여 진정되었다. 그리고 1906년, 드레퓌스는 무죄 판결을 받고 소령이 되었다. 예전에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한 바로 그 사관학교 교정에서 훈장을 받았다. 드레퓌스 사건은 여론의 장에서 전개되고 ‘지식인’ 계층이 특별한 역할을 하는 20세기 스캔들의 한 가지 특징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메이저리그 화이트삭스의 승부 조작
대중문화가 꽃피는 1920년대 입구에서 영화만이 아니라 야구도 스캔들에 휩쓸린다. 미국 야구는 19세기에 내셔널리그, 1900년에 아메리칸리그가 결성되었다. 1930년부터는 양대 리그의 우승팀끼리 치르는 월드시리즈가 시작되었다. 1919년, 내셔널리그에서는 신시내티가 우승하여 아메리칸리그의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월드시리즈를 하게 되었다. 당시 화이트삭스가 최강이라고 했는데, 예상을 뒤집고 신시내티가 5승 3패로 이기고 말았다. 뭔가 수상하다, 승부를 조작한 게 아닐까 하는 소문도 있었지만 싸움에 진 개가 짖는 것쯤으로 여기고 지나갔다. 그러나 다음 해가 되어도 소문은 가라앉지 않았고, 신문은 야구 도박 때문에 선수들이 매수되었다고 썼다. 검찰도 움직이기 시작해 투수였던 에디 시코테(Eddie Cicotte)를 비롯해 여덟 명의 선수가 고발되었다.
시코테는 승부 조작을 인정했다. 화이트삭스의 구단주인 찰스 코미스키(Charles Comiskey, 1859~1931)는 굉장한 구두쇠여서 선수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다. 게다가 불공평하기까지 했다. 2루수 에디 콜린스(Eddie Collins)에게는 1만 4천5백 달러나 지불하면서도 좌익수 조 잭슨에게는 6천 달러, 투수 에디 시코테에게는 5천5백 달러밖에 지불하지 않았다. 낮은 급료로 돈에 어려움을 겪던 선수들이 유혹에 넘어갔던 것이다. 1루수 갠딜은 3만 달러, 유격수 리스버그는 1만 5천 달러, 시코테는 1만 달러를 받았다. 나머지 선수들도 각각 5천 달러씩 받았다. 검찰에서 선수들은 승부조작을 인정했고, 대배심에서 판결이 내려졌다. 여덟 명의 선수는 모두 유죄였다. 그런데 재판이 이상하게 진행되어갔다. 재판 기록과 선수의 고백문서가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다시 재판이 열린 것은 1921년 7월이었다. 그러나 처음에 승부조작을 시인했던 피고들은 차례로 증언을 뒤집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심원은 무죄 평결을 내렸다.
한편 야구계의 대표들은 일리노이 주 판사였던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를 감찰관으로 임명했다. 감찰관에 취임한 랜디스는 법률적으로 무죄 선고를 받은 여덟 명의 선수를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했다. 랜디스의 처분을 야구 팬들도 납득했다.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은 법정에서는 무죄가 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야구 세계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매카시의 좌익 매도 광풍
조지프 매카시는 위스콘신 주에서 선출된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이권을 쫓는 비열한 정치꾼으로서 펩시콜라에 고용되어 그 회사를 대변하다 의회에서 펩시콜라 키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우연히 ‘공산주의’라는 절호의 먹잇감을 만났다. 다음 선거가 걱정이 된 매카시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무성에서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205명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확실히 조사를 한 것처럼 구체적인 숫자를 든 점이 그가 가진 선동의 재능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대대적으로 매스컴에 보도되었고, 그렇다면 그 205명의 명단을 공개해달라고 하자, 매카시는 당황하여 이런저런 변명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반공의 투사로서 단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매카시는 상원으로부터, 그의 발언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지 못하고 끝없이 종잡을 수 없는 무책임한 말만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그는 대중에게 어필했다. 대중들 안에 축적되어 있던 막연한 불안에서 나온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카시 주위에는 전직 FBI 요원 등 수상한 정보 제공자가 모여 있었다. 그는 소문을 근거로 전혀 관련도 없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라며 고발했다. 그는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나 트루먼 대통령까지 소환하겠다고 허풍을 떨었다. 하지만 그러한 허풍을 믿을 정도로 당시 미국은 매카시 열풍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상원은 매카시가 상원에 불명예를 초래했다는 비난 결의를 했다. 마침내 매카시는 급속하게 세력을 잃고 술에 찌들어 살다가 1957년에 죽었다. 냉전의 아이러니를 가장 교묘히 이용해 이득을 보다가 결국 스스로 목줄을 죈 사람이 바로 매카시였다.
케네디 의원의 섹스 스캔들
케네디 가의 막내아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코페크니라는 여인과 함께 1968년 여름, 채퍼퀴딕 섬에서 파티를 하고 수영을 즐겼다. 그리고는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그만 바다에 빠져버렸다. 에드워드 의원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뢸 동승했던 코페크니는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여자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불륜이 들통날까봐 혼자서 항구까지 헤엄쳐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아침까지 잠들어버렸다. 사고 후 여덟 시간 이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1963년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1968년 케네디 가문에서 두 번째로 대통령에 입후보한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당한 후, 케네디 가는 최후의 희망을 아홉 명의 자녀 중 막내인 에드워드 케네디에게 걸고 있었다. 당시 미국도 고인이 된 케네디에 매료되어 있던 터라 전 국민적으로 어떻게든 케네디 가에서 두 번째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 스캔들은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어버렸다. 재판을 거쳐 에드워드 케네디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상원의원에 재선되었지만, 사람들은 채퍼퀴딕 사건을 잊지 못했다. 여성을 익사시키고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케네디 가 출신의 상원의원이라는 권위 때문에 처벌을 면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결국 그는 두 번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케네디 가의 숙원은 영영 멀어지고 말았다. 국민과 가문의 지지를 받던 인물이 스스로를 세상에서 격리시킨 셈이었다. 훗날 이 사건은 대통령 후보자의 처신의 중요성을 일깨운 정치가의 섹스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 작가 소개
저 : 운노 히로시
海野弘,본명:나카무라 아라타마
1939년에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후 출판사에서 근무했다. 본명은 ''나카무라 아마타마''로, 박학다식한 저술가, 평론가, 문화사가이다. 백과사전 편찬과 동양문고 등으로 유명한 해본사에 입사하여 잡지 「태양」을 편집하다가 1976년부터 편집장을 역임하였다. 지금은 미술과 영화, 음악, 도시론,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음모의 네트워크』, 『스파이의 세계사』, 『아르누보의 세계』, 『도시의 신화학』, 『1920년대의 화가들』, 『모던댄스의 역사』, 『다이어트의 역사』, 『캘리포니아 오디세이』, 『음모의 세계사 : 음모의 시대를 읽다』, 『백화점의 박물사』등이 있다.
역 :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2009년 현재 연세대에서 강의와 번역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세설』, 『만년』, 『탐구1』, 『형태의 탄생』, 『눈의 황홀』, 『윤리 21』, 『포스트콜로니얼』, 『트랜스크리틱』, 『천천히 읽기를 권함』, 『번역과 번역가들』,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소리의 자본주의』, 『베델의 집 사람들』, 『매혹의 인문학 사전』, 『성난 서울』, 『핀란드 공부법』, 『빈곤론』, 『과학의 척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 모든 인간은 넘어진다
제1부 고대 그리스 - 신들을 비웃으며
기게스와 마법의 반지 / 신들도 넘어진다 / 희극과 스캔들 / 헤르메스상 스캔들의 진상
제2부 로마 - 스캔들의 향연
스캔들이 로마를 만들었다 / 카토와 명성 / 아프리카 독직 사건 / 카틸리나의 음모 / 로마 황제의 스캔들ㆍ악녀들 / 칼리굴라에서 네로까지
제3부 중세 - 그리스도교와 스캔들
중세의 스캔들 / 샤를마뉴의 헤픈 딸들 / 카노사의 굴욕 / 십자군 스캔들 / 템플 기사단 사건 / 잔 다르크 재판 / 리처드 3세의 악명
제4부 르네상스 - 개성적인 인간들
르네상스와 유마니즘 / 메디치 가의 성쇠 / 사보나롤라 현상 / 보르자 가의 악덕 / 첸치 가의 비극 / 조르다노 브루노 재판 / 카라바조의 죄 / 헨리 8세와 여섯 명의 아내 / 엘리자베스의 처녀 전설 / 카트린 드 메디시스 / 루이 14세와 독살 네트워크
제5부 18세기 - 스캔들의 시대
수다스러운 18세기 / 남해의 거품 / 헬파이어 클럽 / 유별난 윌크스 / 헨델의 ''메시아'', 스캔들을 구하다 / 패니 힐 : 외설과 검열 / 조지 3세의 스캔들 일가 / 미녀가 있었다 : 엠마 해밀턴 / 루이 15세의 시대 / 왕의 비밀 / 아베 프레보의 모험 / 데옹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 카사노바의 회상록 /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 사건 / 미라보 : 혁명의 멋쟁이 남자 / 사드 후작 : 성의 혁명가
제6부 19세기 - 혁명의 폭풍 이후
혼란에서 개조로 / 쾌락왕자 조지 4세 / 애런 버의 결투 / 나폴레옹의 두 왕비 / 캐롤라인 왕비 문제 / 바이런 경의 스캔들 편력 / 서양 배와 루이 필리프 왕―도미에의 풍자화 사건 /
조르주 상드의 남장 / 빅토리아 여왕의 스캔들 혐오 / 에로스의 컬트 집단 ‘오네이더’ / 나폴레옹 3세의 끊임없는 축제 / 마네의 누드 스캔들 / 미국의 ‘보스’ 트위드 / 파나마 운하 사건 / ‘칼잡이 잭’은 스캔들인가 / 오스카 와일드의 세기말 / 드레퓌스 사건 : 군사 스캔들
제7부 20세기 - 스캔들의 대폭발
제1장 1900년대
20세기 스캔들 특급 / 시카고, 악덕의 소문 / 뉴욕 사교계의 살인 /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시대 / 마크레이커(추문 적발자) / 시스터 캐리의 트러블 / 에드워드 시대 여자의 싸움 / 맨발의 이사도라 / 살인귀와 무선전신―크리펜 사건
제2장 1910년대
타이타닉의 음모 / 인류 기원의 위조 : 필트다운인 / ''봄의 제전'' 전쟁 / 생어 부인―피임은 죄? / 라스푸틴 : 러시아의 참극 / 사라진 로마노프 가 : 러시아혁명 / 예술의 사, 스캔들의 생
제3장 1920년대
할리우드에 웃음이 그친 날 / 데스먼드 테일러 살인사건 / 더러워진 화이트삭스 / 하딩 대통령의 이상한 죽음 / 티포트 돔 스캔들 / 영국 귀족의 작위를 팝니다 / 사보이 호텔 사건 / 사코와 반제티
제4장 1930년대
린드버그 : 영광에서 비극으로 / 스타비스키의 괴이한 죽음 / 악명 높은 휴이 롱 / 보니와 클라이드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왕관을 뒤흔든 사랑 : 심프슨 부인 / 화성인 침공 : 오슨 웰스 연출
제5장 1940년대
영국식 파시즘 / 케냐의 스캔들 천국 / 트로츠키 암살 / 할리우드의 빨갱이 블랙리스트 / 앨저 히스의 위증 사건 / 에롤 플린은 스파이인가?
제6장 1950년대
매카시의 대두와 전락 / 오펜하이머 추방 재판 / 남성의 주지육림 ??플레이보이??의 창간 / 러너 터너 : 할리우드의 지는 해 / 마거릿 공주의 모험 / 퀴즈 쇼크
제7장 1960년대
케네디의 영광과 비참 / 메릴린이여, 편히 잠들라 / 프로퓨모 사건 소동 / 무하마드 알리, 타이틀 박탈 / 샤론 티트 살인사건 / 차파키딕 사건의 은폐
제8장 1970년대
워터게이트를 뚫고 / 프레슬리 죽다 / 섹스 피스톨스 / 제러미 소프 사건 / 하베이 밀크의 샌프란시스코 / 록펠러의 정사
제9장 1980년대
존 레넌과 미국의 광기 / 레이건 대통령은 스캔들에 강하다 / 드로리언의 고속 인생 / 클라우스 폰 뵐로의 의혹 / 록 허드슨의 비밀 생활
제10장 1990년대ㆍ20세기 말
베르사체와 미국의 데카당스 /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 / 다이애너의 짧은 생애 / OㆍJ 심프슨의 무죄 / 우디 앨런의 중죄와 경죄
에필로그
참고 문헌
로마의 스캔들 황제들
칼리굴라(재위 37~41), 클라우디우스(재위 41~54), 네로(재위 54~68)는 광기와 우행을 연속한 로마의 스캔들 황제들이다. 칼리굴라는 티베리우스를 독살하고 황제가 되었다. 칼리굴라는 근친이나 주변 사람을 차례로 독살하고 자신의 누이들과의 육체관계도 서슴지 않았다. 클라우디우스는 병약하고 바보로 여겨져 거의 무시당하며 자랐다. 가능한 한 눈에 띄지 않게 살았던 그는 칼리굴라가 죽자 돌연 후계자가 되었다. 그때 나이가 이미 쉰이었다. 클라우디우스는 칼리굴라에 비하면 괜찮은 황제였지만, 겁이 많고 우유부단하며 주견이 없었던 게 흠이었다. 그리고 나타난 황제가 바로 세계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네로다. 황제에 즉위한 네로는 우선 민중에게 성대한 향연을 베풀었다. 축제, 전차 경주, 연극, 검투사 시합 등 온갖 볼거리를 제공하고 선물을 뿌렸다. 네로는 제국의 체제를 공고히 한 업적도 있다. 그러나 그야말로 그것이 전부였다. 엄청나게 사치스러운 잔치를 벌였고, 성적인 쾌락은 끝도 없었다. 네로는 음모를 꾸밀 만한 의심이 가는 자는 가차 없이 죽였다. 그리고 로마가 노후화해 지저분하다며 불을 질러 태워버렸다. 네로 시대는 14년간 이어졌다. 그 종말은 로마의 중심에서가 아니라 주변인 갈리아의 반란에 의해 초래되었다. 네로는 로마에서 도망쳤다. 궁지에 몰리자, “이 세상에서 뛰어난 예술가가 사라지는구나”라고 탄식하며 칼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칼리굴라, 클라우디우스, 네로가 지배한 약 30년은 로마의 역사상 가장 힘겨운 시기였다. 국고는 바닥을 드러냈고, 사회는 타락했으며, 황제들에 대한 온갖 추문이 횡행했다. 훗날 역사가들은 이 세 사람을 로마 제국의 역사를 갉아먹은 ‘3대 스캔들 황제’로 기록하고 있다.
잔 다르크를 처형한 사법 스캔들
파리 대학의 신학자와 법학자들이 영국과 싸우다 붙잡힌 잔 다르크의 신병 인도를 요구했다. 재판에 회부하겠다는 것이다. 파리 대학은 영국 국왕에 의한 영국ㆍ프랑스라는 이원국가가 얼마나 합법적이고 옳은 것인가를 주장해왔다. 잔 다르크가 샤를 7세를 유일한 프랑스 왕으로 만든 것은 파리 대학의 권위에 상처를 입히는 일이었다. 그들은 잔 다르크가 마녀라고 했다. 그녀는 재판에 회부되었다. 그것은 전투에서의 포로 재판이 아니라 이단 재판이었고, 파리 대학이 책임을 지고 관리했다. 파리 대학의 교수들은 어떻게든 잔 다르크를 유죄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가 지상 교회에 대한 복종을 깨버렸다며 유죄 판결이 내려졌다. 신의 계시는 어디까지나 지상 교회를 통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잔 다르크는 결국 화형에 처해졌다.
훗날 샤를 7세는 잔 다르크 재판의 재심을 명했다. 그리고 1456년 잔 다르크 재판은 파기되었고 그녀의 명예는 회복되었다. 여론, 소문, 중상 등을 이용한 정치 재판이 한 소녀를 피의 축제에 올려놓은 것이었다. 잔 다르크 재판은 중세의 종말을 그로테스크하게 물들인 대형 사법 스캔들이었다.
18세기 유럽을 뒤흔든 금융 스캔들
18세기 초, 프랑스는 영국과의 전쟁으로 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프랑스에도 영국의 은행 같은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다. 그때 등장한 사람이 존 로였다. 그는 스코틀랜드 사람으로, 꽤 매력적이고 말주변이 좋은 남자였다. 여기저기를 돌아다녔고 영국에서는 사건을 일으키고 파리로 도피해 도박장을 드나들고 있었다.
당시 프랑스는 루이 15세가 어렸기 때문에 오를레앙 공작 필리프가 섭정을 했다. 존 로는 필리프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금융개혁을 제안했다. 그는, “돈은 사회의 혈액으로, 부드럽게 흘러가면 사회도 순조롭게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금, 은 화폐는 양이 부족해서 흐름이 나쁘다. 지폐라면, 부족할 경우 인쇄하면 되니까 이상적이다. 따라서 지폐를 발행하는 은행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필리프는 존 로를 믿고 은행을 설립했다. 존 로는 은행만이 아니라 은행과 관련된 대형 회사를 만들어 국가적으로 경영할 계획을 품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시스템’이라 불렀다. 그러한 대형 회사는 국내에서는 어렵다. 그것에 어울리는 것은 해외의 식민지다. 프랑스가 갖고 있는 북미의 식민지를 개발할 독점적인 회사가 계획되었고 존 로에게 맡겨졌다.
1717년, 미시시피 회사가 설립되었다. 미시시피는 그 후 25년간 프랑스와 루이지애나 상거래의 독점적 권리를 인정받았다. 존 로는 이 회사의 주식을 판매했다. 그것을 위해 대대적인 선전을 했는데, 아메리카 인디언 아가씨를 파리로 데려오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메리카는 아직 미지의 땅으로서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해 투자는 진전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존 로는 선수를 써서 아메리카만이 아니라 인도, 중국 등 프랑스 식민지의 무역 독점권까지 얻었다. 그리고 화폐 주조권도 획득했다. 섭정 필리프는 프랑스의 재정을 통째로 이 남자에게 맡겨버린 것이다. 당시 프랑스는 방대한 전시 국채의 변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존 로는 15억 리브르(livre : 프랑스의 옛 화폐단위)의 국채를 회사가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미시시피가 15억 리브르를 정부에 지불하고, 정부는 그것으로 국채를 지급한다. 변제를 받은 사람에게는 그 돈으로 회사의 주식을 사도록 한다. 즉 국채를 미시시피의 주식으로 교환하는 것이다. 그러한 주식 거래 조작으로 그때까지 팔리지 않던 미시시피 주식이 팔리기 시작하고 가격도 올랐다. 액면가 500리브르가 1만8천 리브르까지 뛰었다. 광란의 거품이었다.
존 로는 이제 프랑스 정부의 구세주이자 금융의 신처럼 숭배되기에 이르렀다. 1719년이 그 ‘시스템’의 절정기였다. 1720년 그는 재무총감이 되었다. 그러나 이때 배당금이 줄어든다는 정보가 흘러나가 사람들이 주식을 내다팔기 시작하자 주가는 폭락했다. 그리고 폭동이 일어났고, 존 로는 파산하여 국외로 도망쳤다. 이 거품 이후 뒤처리를 위해 지불이 정지되고 수많은 파산자가 발생했다. 존 로 스캔들은 주식회사가 막 태동하던 시기에 발생한 어처구니 없는 금융 스캔들이었다.
드레퓌스의 군사 기밀 유출 스캔들
드레퓌스(Alfred Dreyfus, 1859~1935) 사건은 프랑스군에서 일어난 기밀 누설 사건이다. 사건은 1894년 프랑스군의 참모본부가 ‘명세서’(bordereau)라 불리는 기밀문서를 입수한 데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독일 대사관에서 프랑스의 스파이가 훔쳐냈는데, 프랑스군의 대포와 관련된 정보가 기록되어 있었다. 프랑스 군대 내부의 배신자가 독일에 정보를 팔아넘기고 있었던 것이다. 내용으로 보면 그 스파이는 포병인 듯했다. 곧바로 드레퓌스 대위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포병 출신인 데다 필적도 유사했다. 그리고 유대인이었다. 그것으로 범인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었고, 곧 드레퓌스는 체포되었다.
그뿐이라면 사건은 은밀히 처리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보부 앙리 소령의 주변 사람이 우익 신문에 그 사실을 누설하고 말았다. 군부는 왜 스파이 드레퓌스 사건을 감추고 있는 것인가, 유대 세력이 쉬쉬하며 수습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기사가 난무했다. 그것에 떠밀린 듯 군법회의는 드레퓌스에게 유죄 선고를 내렸고, 그는 투옥되었다. 게다가 그 전에 사관학교 교정에서 공개적으로 드레퓌스의 계급 박탈 의식이 열렸다. 드레퓌스의 휘장은 찢겨지고 사벌(기병이 허리에 차는 서양식 칼)은 휘어졌다. 군중은 ‘매국노를 죽여라! 유대인을 죽여라!’라고 외쳤다. 이것으로 여론의 흥분은 가라앉았고 사건은 수습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드레퓌스의 형 마티외는 끈기 있게 사건의 재심 요구를 계속했다. 참모본부 내에서도 앙리 소령의 방식에 의문을 품은 피카르 중령이 조사를 시작했다. 에스테라지 소령이 의심스러웠다. 명세서의 필적은 오히려 에스테라지의 필적과 유사했던 것이다. 피카르는 그것을 상사에게 보고했지만 어쩐 일인지 자신이 튀니지로 전출되고 말았다. 그래도 에스테라지가 수상하다는 이야기는 매스컴에서도 다루어졌고 의회에서도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소동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한 의회는 움직이지 않았고, 군법회의에서 에스테라지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사태가 절망적이라고 생각되었을 때 의외의 길이 열렸다.
신문 ''오로르Aurore''에 에밀 졸라가 ''나는 고발한다J''Accuse''라는 글을 발표했다. 드레퓌스는 무죄이고 장군들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침묵하고 있다며 군부를 규탄한 것이다. 졸라의 고발은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의 호소에 찬동한 것은 지식인들이었다. 대학 교원, 학생들이 운동에 가세했다. 사건은 여론의 장으로 옮겨갔다. ‘지식인’은 소수파이고 반(!)드레퓌스파 쪽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그래도 지식인 측의 논조가 두드러졌다.
반드레퓌스파는 불안을 느끼고 유죄를 확증하기 위한 재조사를 했다. 그것이 오히려 역효과를 낳았다. 증거로 제출한 편지가 앙리 소령이 위조한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앙리는 체포되었고 자살해버렸다. 살해당했다는 소문도 있었다. 에스테라지는 도망쳤다. 그들의 막후 인물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게 되었다. 결국 군법회의에 재심 명령이 떨어졌다. 반드레퓌스파가 소동을 일으키며 유대인의 음모라고 주장했다. 군법회의는 다시 유죄 판결을 내렸다. 여론은 내셔널리즘으로 흘렀다. 군법회의가 다시 내린 유죄 판결에 대해서는 외국에서도 비난이 일었다. 그러자, 드레퓌스가 유죄이기는 하지만 대립을 피하기 위한 명목이라며, 대통령령의 특별사면으로 그를 석방시켰다. 여론은 진범이 누구인지에 흥미를 잃었고, 특별사면으로 사건은 끝났다고 하여 진정되었다. 그리고 1906년, 드레퓌스는 무죄 판결을 받고 소령이 되었다. 예전에 자신의 명예를 훼손당한 바로 그 사관학교 교정에서 훈장을 받았다. 드레퓌스 사건은 여론의 장에서 전개되고 ‘지식인’ 계층이 특별한 역할을 하는 20세기 스캔들의 한 가지 특징을 예고하는 사건이었다.
메이저리그 화이트삭스의 승부 조작
대중문화가 꽃피는 1920년대 입구에서 영화만이 아니라 야구도 스캔들에 휩쓸린다. 미국 야구는 19세기에 내셔널리그, 1900년에 아메리칸리그가 결성되었다. 1930년부터는 양대 리그의 우승팀끼리 치르는 월드시리즈가 시작되었다. 1919년, 내셔널리그에서는 신시내티가 우승하여 아메리칸리그의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월드시리즈를 하게 되었다. 당시 화이트삭스가 최강이라고 했는데, 예상을 뒤집고 신시내티가 5승 3패로 이기고 말았다. 뭔가 수상하다, 승부를 조작한 게 아닐까 하는 소문도 있었지만 싸움에 진 개가 짖는 것쯤으로 여기고 지나갔다. 그러나 다음 해가 되어도 소문은 가라앉지 않았고, 신문은 야구 도박 때문에 선수들이 매수되었다고 썼다. 검찰도 움직이기 시작해 투수였던 에디 시코테(Eddie Cicotte)를 비롯해 여덟 명의 선수가 고발되었다.
시코테는 승부 조작을 인정했다. 화이트삭스의 구단주인 찰스 코미스키(Charles Comiskey, 1859~1931)는 굉장한 구두쇠여서 선수들 사이에 불만이 많았다. 게다가 불공평하기까지 했다. 2루수 에디 콜린스(Eddie Collins)에게는 1만 4천5백 달러나 지불하면서도 좌익수 조 잭슨에게는 6천 달러, 투수 에디 시코테에게는 5천5백 달러밖에 지불하지 않았다. 낮은 급료로 돈에 어려움을 겪던 선수들이 유혹에 넘어갔던 것이다. 1루수 갠딜은 3만 달러, 유격수 리스버그는 1만 5천 달러, 시코테는 1만 달러를 받았다. 나머지 선수들도 각각 5천 달러씩 받았다. 검찰에서 선수들은 승부조작을 인정했고, 대배심에서 판결이 내려졌다. 여덟 명의 선수는 모두 유죄였다. 그런데 재판이 이상하게 진행되어갔다. 재판 기록과 선수의 고백문서가 도난당했다는 것이다. 다시 재판이 열린 것은 1921년 7월이었다. 그러나 처음에 승부조작을 시인했던 피고들은 차례로 증언을 뒤집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배심원은 무죄 평결을 내렸다.
한편 야구계의 대표들은 일리노이 주 판사였던 케네소 마운틴 랜디스를 감찰관으로 임명했다. 감찰관에 취임한 랜디스는 법률적으로 무죄 선고를 받은 여덟 명의 선수를 야구계에서 영구 추방했다. 랜디스의 처분을 야구 팬들도 납득했다. 화이트삭스의 선수들은 법정에서는 무죄가 되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용서하지 않고 야구 세계에서 추방해버린 것이다.
매카시의 좌익 매도 광풍
조지프 매카시는 위스콘신 주에서 선출된 상원의원이었다. 그는 이권을 쫓는 비열한 정치꾼으로서 펩시콜라에 고용되어 그 회사를 대변하다 의회에서 펩시콜라 키드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리고 우연히 ‘공산주의’라는 절호의 먹잇감을 만났다. 다음 선거가 걱정이 된 매카시는, 이름을 알리기 위해서는 ‘공산주의의 위협’이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국무성에서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205명이라는 숫자는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확실히 조사를 한 것처럼 구체적인 숫자를 든 점이 그가 가진 선동의 재능이었다. 그는 자신이 그 205명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이야기는 대대적으로 매스컴에 보도되었고, 그렇다면 그 205명의 명단을 공개해달라고 하자, 매카시는 당황하여 이런저런 변명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반공의 투사로서 단숨에 유명인사가 되었다.
매카시는 상원으로부터, 그의 발언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는 확실한 증거를 보이지 못하고 끝없이 종잡을 수 없는 무책임한 말만 늘어놓았다. 그런데도 그는 대중에게 어필했다. 대중들 안에 축적되어 있던 막연한 불안에서 나온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매카시 주위에는 전직 FBI 요원 등 수상한 정보 제공자가 모여 있었다. 그는 소문을 근거로 전혀 관련도 없는 사람을 공산주의자라며 고발했다. 그는 국무장관 딘 애치슨이나 트루먼 대통령까지 소환하겠다고 허풍을 떨었다. 하지만 그러한 허풍을 믿을 정도로 당시 미국은 매카시 열풍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결국 상원은 매카시가 상원에 불명예를 초래했다는 비난 결의를 했다. 마침내 매카시는 급속하게 세력을 잃고 술에 찌들어 살다가 1957년에 죽었다. 냉전의 아이러니를 가장 교묘히 이용해 이득을 보다가 결국 스스로 목줄을 죈 사람이 바로 매카시였다.
케네디 의원의 섹스 스캔들
케네디 가의 막내아들 에드워드 케네디 상원의원은 코페크니라는 여인과 함께 1968년 여름, 채퍼퀴딕 섬에서 파티를 하고 수영을 즐겼다. 그리고는 밤늦게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운전하다가 길을 잘못 들어 그만 바다에 빠져버렸다. 에드워드 의원은 가까스로 탈출했지뢸 동승했던 코페크니는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여자가 물에 빠져 죽어가고 있었지만, 그는 불륜이 들통날까봐 혼자서 항구까지 헤엄쳐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대로 아침까지 잠들어버렸다. 사고 후 여덟 시간 이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던 것이다.
1963년 케네디가 암살당하고, 1968년 케네디 가문에서 두 번째로 대통령에 입후보한 로버트 케네디도 암살당한 후, 케네디 가는 최후의 희망을 아홉 명의 자녀 중 막내인 에드워드 케네디에게 걸고 있었다. 당시 미국도 고인이 된 케네디에 매료되어 있던 터라 전 국민적으로 어떻게든 케네디 가에서 두 번째 대통령이 나오는 것을 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이 스캔들은 모든 것을 허사로 만들어버렸다. 재판을 거쳐 에드워드 케네디는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상원의원에 재선되었지만, 사람들은 채퍼퀴딕 사건을 잊지 못했다. 여성을 익사시키고 신고도 하지 않았는데 케네디 가 출신의 상원의원이라는 권위 때문에 처벌을 면했다고 여겼던 것이다. 결국 그는 두 번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패배함으로써 케네디 가의 숙원은 영영 멀어지고 말았다. 국민과 가문의 지지를 받던 인물이 스스로를 세상에서 격리시킨 셈이었다. 훗날 이 사건은 대통령 후보자의 처신의 중요성을 일깨운 정치가의 섹스 스캔들로 기록되었다.
▣ 작가 소개
저 : 운노 히로시
海野弘,본명:나카무라 아라타마
1939년에 도쿄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 문학부를 졸업한 후 출판사에서 근무했다. 본명은 ''나카무라 아마타마''로, 박학다식한 저술가, 평론가, 문화사가이다. 백과사전 편찬과 동양문고 등으로 유명한 해본사에 입사하여 잡지 「태양」을 편집하다가 1976년부터 편집장을 역임하였다. 지금은 미술과 영화, 음악, 도시론, 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주요저서로 『음모의 네트워크』, 『스파이의 세계사』, 『아르누보의 세계』, 『도시의 신화학』, 『1920년대의 화가들』, 『모던댄스의 역사』, 『다이어트의 역사』, 『캘리포니아 오디세이』, 『음모의 세계사 : 음모의 시대를 읽다』, 『백화점의 박물사』등이 있다.
역 : 송태욱
연세대학교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외국어대학교 연구원을 지냈으며 2009년 현재 연세대에서 강의와 번역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르네상스인 김승옥』(공저)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사랑의 갈증』, 『비틀거리는 여인』, 『세설』, 『만년』, 『탐구1』, 『형태의 탄생』, 『눈의 황홀』, 『윤리 21』, 『포스트콜로니얼』, 『트랜스크리틱』, 『천천히 읽기를 권함』, 『번역과 번역가들』,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 『소리의 자본주의』, 『베델의 집 사람들』, 『매혹의 인문학 사전』, 『성난 서울』, 『핀란드 공부법』, 『빈곤론』, 『과학의 척도』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 모든 인간은 넘어진다
제1부 고대 그리스 - 신들을 비웃으며
기게스와 마법의 반지 / 신들도 넘어진다 / 희극과 스캔들 / 헤르메스상 스캔들의 진상
제2부 로마 - 스캔들의 향연
스캔들이 로마를 만들었다 / 카토와 명성 / 아프리카 독직 사건 / 카틸리나의 음모 / 로마 황제의 스캔들ㆍ악녀들 / 칼리굴라에서 네로까지
제3부 중세 - 그리스도교와 스캔들
중세의 스캔들 / 샤를마뉴의 헤픈 딸들 / 카노사의 굴욕 / 십자군 스캔들 / 템플 기사단 사건 / 잔 다르크 재판 / 리처드 3세의 악명
제4부 르네상스 - 개성적인 인간들
르네상스와 유마니즘 / 메디치 가의 성쇠 / 사보나롤라 현상 / 보르자 가의 악덕 / 첸치 가의 비극 / 조르다노 브루노 재판 / 카라바조의 죄 / 헨리 8세와 여섯 명의 아내 / 엘리자베스의 처녀 전설 / 카트린 드 메디시스 / 루이 14세와 독살 네트워크
제5부 18세기 - 스캔들의 시대
수다스러운 18세기 / 남해의 거품 / 헬파이어 클럽 / 유별난 윌크스 / 헨델의 ''메시아'', 스캔들을 구하다 / 패니 힐 : 외설과 검열 / 조지 3세의 스캔들 일가 / 미녀가 있었다 : 엠마 해밀턴 / 루이 15세의 시대 / 왕의 비밀 / 아베 프레보의 모험 / 데옹은 남자인가 여자인가? / 카사노바의 회상록 / 마리 앙투아네트의 목걸이 사건 / 미라보 : 혁명의 멋쟁이 남자 / 사드 후작 : 성의 혁명가
제6부 19세기 - 혁명의 폭풍 이후
혼란에서 개조로 / 쾌락왕자 조지 4세 / 애런 버의 결투 / 나폴레옹의 두 왕비 / 캐롤라인 왕비 문제 / 바이런 경의 스캔들 편력 / 서양 배와 루이 필리프 왕―도미에의 풍자화 사건 /
조르주 상드의 남장 / 빅토리아 여왕의 스캔들 혐오 / 에로스의 컬트 집단 ‘오네이더’ / 나폴레옹 3세의 끊임없는 축제 / 마네의 누드 스캔들 / 미국의 ‘보스’ 트위드 / 파나마 운하 사건 / ‘칼잡이 잭’은 스캔들인가 / 오스카 와일드의 세기말 / 드레퓌스 사건 : 군사 스캔들
제7부 20세기 - 스캔들의 대폭발
제1장 1900년대
20세기 스캔들 특급 / 시카고, 악덕의 소문 / 뉴욕 사교계의 살인 /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시대 / 마크레이커(추문 적발자) / 시스터 캐리의 트러블 / 에드워드 시대 여자의 싸움 / 맨발의 이사도라 / 살인귀와 무선전신―크리펜 사건
제2장 1910년대
타이타닉의 음모 / 인류 기원의 위조 : 필트다운인 / ''봄의 제전'' 전쟁 / 생어 부인―피임은 죄? / 라스푸틴 : 러시아의 참극 / 사라진 로마노프 가 : 러시아혁명 / 예술의 사, 스캔들의 생
제3장 1920년대
할리우드에 웃음이 그친 날 / 데스먼드 테일러 살인사건 / 더러워진 화이트삭스 / 하딩 대통령의 이상한 죽음 / 티포트 돔 스캔들 / 영국 귀족의 작위를 팝니다 / 사보이 호텔 사건 / 사코와 반제티
제4장 1930년대
린드버그 : 영광에서 비극으로 / 스타비스키의 괴이한 죽음 / 악명 높은 휴이 롱 / 보니와 클라이드 :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 왕관을 뒤흔든 사랑 : 심프슨 부인 / 화성인 침공 : 오슨 웰스 연출
제5장 1940년대
영국식 파시즘 / 케냐의 스캔들 천국 / 트로츠키 암살 / 할리우드의 빨갱이 블랙리스트 / 앨저 히스의 위증 사건 / 에롤 플린은 스파이인가?
제6장 1950년대
매카시의 대두와 전락 / 오펜하이머 추방 재판 / 남성의 주지육림 ??플레이보이??의 창간 / 러너 터너 : 할리우드의 지는 해 / 마거릿 공주의 모험 / 퀴즈 쇼크
제7장 1960년대
케네디의 영광과 비참 / 메릴린이여, 편히 잠들라 / 프로퓨모 사건 소동 / 무하마드 알리, 타이틀 박탈 / 샤론 티트 살인사건 / 차파키딕 사건의 은폐
제8장 1970년대
워터게이트를 뚫고 / 프레슬리 죽다 / 섹스 피스톨스 / 제러미 소프 사건 / 하베이 밀크의 샌프란시스코 / 록펠러의 정사
제9장 1980년대
존 레넌과 미국의 광기 / 레이건 대통령은 스캔들에 강하다 / 드로리언의 고속 인생 / 클라우스 폰 뵐로의 의혹 / 록 허드슨의 비밀 생활
제10장 1990년대ㆍ20세기 말
베르사체와 미국의 데카당스 / 클린턴의 섹스 스캔들 / 다이애너의 짧은 생애 / OㆍJ 심프슨의 무죄 / 우디 앨런의 중죄와 경죄
에필로그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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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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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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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