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5가지 주제로 들여다본 고려사 시리즈
고려사 5부작 100년 시리즈는 분명 우리의 것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의 역사를 ‘굴욕’, ‘칼’, ‘불교’, ‘사랑’, ‘영광’이라는 5가지 주제로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에는 고려 500년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기 위한 지은이의 의도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 500년은 드라마, 소설, 영화 등 각종 문화콘텐츠로 제작되고 있으나 고려는 우리의 역사가 아닌 것처럼 대중들에게 점점 잊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고려의 역사를 주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500년의 장대한 역사니 영광과 굴욕의 시대가 있고 칼의 시대가 있을 것이다. 또한 500년 동안 고려인들의 정신세계를 관통한 불교의 역사가 있는가 하면 사랑의 역사가 있다. 국난을 당해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항쟁한 민중들이 있고, 공녀로 끌려간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수만 명이 노예로 끌려가 매매되고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몽골에 침탈을 당한 고려 민중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수천, 수만 명이 죽고 노예로 끌려갔는데도 역사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려의 흥망성쇠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고려인들의 희로애락을 살피지 않았다. 그러나 방대한 고려 역사 500년은 우리가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역사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은 5천 년 역사의 허리에 속한 우리의 고려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원나라의 신하로 전락한 무력한 고려의 왕들
-원나라 공주에게 지팡이로 얻어맞은 충렬왕
제24대 원종 이후 시호에 ‘충(忠)’자가 들어가는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의 신하로 전락한다. 원나라 황실은 고려의 왕을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고려로 시집 온 원나라 공주들의 권세는 행정부의 수반인 문화시중 김방경을 함부로 잡아다가 고문을 가할 만큼 막강했다. 특히 원세조 쿠빌라이의 딸을 왕비로 맞이했던 제25대 충렬왕은 지병을 돌보기 위해 천효사로 가던 길에 부인 안평공주에게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지팡이로 얻어맞는 참담한 일까지 당한다. 단지 공주의 수행원이 왕보다 적다는 이유였는데, 이를 통해 당시 국왕의 처지가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충렬왕의 병이 좀 차도가 있어서 천효사에 옮겨 거처하게 하였다. 왕이 먼저 행차하였는데 공주가 모시고 따르는 사람이 적다고 화를 내면서 돌아오니, 왕도 부득이하게 또한 돌아왔는데 공주가 마중 나가 지팡이로 때렸다. 왕이 모자를 벗어 그 앞에 던지고 인후를 쫓으면서 꾸짖기를, ‘이것은 모두 너희들의 소행이다. 내가 반드시 너희를 죄 주겠다’하니, 공주의 노기가 조금 풀렸다.
-《고려사》 中
-5년 동안 왕위를 방치한 충선왕
충렬왕 이후 고려의 왕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숙위라는 명목으로 원나라에서 생활해야 했다. 원나라 옷을 입고 원나라 풍속을 익히며 성장한 그들은 원나라 공주와 혼례를 올린 후 국왕이 되었기에 고려인으로서의 자긍심이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소년 시절 머리가 명석했고, 힘없는 민초들을 가엾게 여기며 일찍이 성군의 면모를 보였던 제26대 충선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개혁정치를 반대한 권신들의 모함으로 국새를 빼앗기고 폐위되어 원나라로 끌려간다. 그리고 몇 년 후 원나라 무종 황제를 등극시킨 일등공신이 되어 심양왕에 오르고 고려 국왕으로 복위하지만 충선왕은 고려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는 5년 동안 전지로 나라를 통치하다가 그마저도 팽개치고 아들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만다. 국왕이 없는 그 5년 동안 고려의 권신들은 국정을 농단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고,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초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충선왕은 원나라 도읍 연경에 만권당을 세워 중국의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만 정작 조국 고려는 돌보지 않았고, 여러 차례 귀국할 것을 종용하는 원나라 황실의 권유에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다가 끝내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하는 무책임한 왕으로 기록된다.
임금의 지위란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바이며 만사가 집중되는 곳이므로 하루라도 이 자리를 비워 두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은 이미 책명을 받고 다시 왕위에 오른 후에도 연경에 5년 동안이나 체류하는 동안 자국의 백성들은 공궤(供饋)하기에 곤란하였고 수종하는 신하들은 오랫동안 피로하여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서로 모함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원나라에서도 이상히 여겨 두 번이나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하여 왕은 거절할 구실이 없어서 아들 왕도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또 조카 왕호를 세자로 삼아 부자 형제 간에 마침내 시기와 질투를 빚어내어 그 화단이 몇 대까지 내려가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래에 대한 계책이 이처럼 좋지 못하였으니 토번으로 귀양 가게 된 것도 불행한 일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고려사》 中
-아버지의 여자까지 음간했던 충혜왕
제28대 충혜왕은 고려 역사상 가장 음란하고 잔인한 임금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왕위를 잃고 원나라에 끌려가서도 그 행실이 문란하여 발피(망나니)라 조롱받다가 추방되었고, 부왕 충숙왕이 죽자 상이 끝나기도 전에 서모인 수비 권씨를 음간했다. 그 후 복위를 하고서도 그의 패륜행각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는데, 자신이 품었던 여인 남씨를 시종 노영서에게 시집보냈다가 다시 찾아가 음행을 즐기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총애하던 신하 호첩목아에게 형장을 때리고 그 혀와 생식기를 잘라 불태운 후 섬으로 귀양을 보낸 일도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충혜왕은 후궁만 126명을 두었는데, 이것도 민간에서 음간한 여인들은 제외한 숫자라고 한다. 충혜왕은 부왕의 비인 경화공주를 강간한 일로 원나라 황실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결국 연경으로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받고 귀양을 가던 중 악양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누구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왕은 성격이 호협하고 주색을 좋아하여 놀이와 사냥에 탐혹하였고 부화방탕하여 절도가 없었으며 남의 처첩이 아름답다는 소문만 들으면 친소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후궁으로 데려온 것이 백 명이 넘었고 재리에는 털끝만한 것에도 이해를 타산하여 항상 영리하는 것을 일삼았으며 간악한 소인들이 앞 다투어 계책을 꾸며 백성의 토지와 노비를 강탈하여 모두 보흥고에 소속시키고 좋은 말은 내구에 몰아넣었다. ……(중략) 충직한 사람들은 배척을 당하여 한 번 바른말을 하면 반드시 살육을 당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벌을 받을까 두려워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고려사》 中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100년 동안 고려인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고려 왕실이 강화도에 천도했던 30여 년 동안 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한 수많은 고려인들이 몽골에 끌려가야 했다. 하지만 여몽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려 조정은 자국의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1272년 1월, 진도의 삼별초를 토벌한 몽골 장수 백양은 원나라로 돌아갈 때 전리품으로 수많은 고려의 여인들을 짐승처럼 묶어 끌고 갔다. 그들 대부분은 강화도에서 삼별초의 수장 배중손에 의해 진도로 끌려간 고려 관리의 부녀자들이었지만 고려 조정은 이를 외면했다. 고려는 이후 원나라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결혼도감이나 과부처녀추고별감 등을 설치해 여인들을 공녀로 보냈는데, 이는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자국의 여인들을 잡아다가 타국에 바치는 행위였기에 실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로 한 여자에게 화장 값으로 명주 12필씩 주고 만자(원나라 남쪽에 사는 사람들)들에게 나누어 주니 만자들이 즉시 데리고 북쪽으로 가는데 울음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으며 보는 사람들도 슬퍼서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고려사》 中
우리가 외면해선 안 될 고려, 그 굴욕의 역사 100년
이 책《굴욕의 역사》에서는 몽골이 침략해 오자 강화도로 천도를 가야 했던 제23대 고종 때부터, 이후 주권을 잃고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했던 제31대 공민왕 때까지 약 100년 동안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다. 이 시기의 고려는 주권을 상실한 암흑기였다. 왕자 시절 숙위라는 명목으로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왕들은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간신들은 국정을 농단하며 심지어 나라를 팔아먹는 자까지 생겨났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아서 굴욕적인 것이 아니라 원나라에 항전하는 영웅이 없어서 굴욕적인 시대인 것이다.
어느 시대이고 권력자가 부패하면 간신들이 들끓고 민중들의 삶은 고달파지게 마련이다. 이 책의 특징은 여타의 고려사를 다룬 책들과 달리 부패한 권력자들과 민초들의 피폐한 삶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는 역사가 외면했던 고통스러운 고려 민중들의 삶까지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 그 이면의 진실을 직시하려는 지은이의 집념이 담겨 있다. 지난 역사를 들여다보며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 이것이 고려사 5부작 100년 시리즈를 통해 지은이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이수광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1983년 <중앙일보>에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제14회 삼성문학상 소설 부문, 미스터리클럽 제2회 독자상,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이수광은 오랫동안 조선시대 살인사건 기록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생한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지금은 수 년 안에 한국뿐만 아니라 영미권 독자들을 사로잡을 작품을 쓰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의 지혜를 책으로 보여주는 저술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 특히 추리소설과 역사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와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대중 역사서를 창조해왔다. 1983년 「중앙일보」에 단편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저 문 밖에 어둠이』로 제14회 삼성미술문화재단 도의문화저작상 소설 부문, 『우국의 눈』으로 제2회 미스터리클럽 독자상, 『사자의 얼굴』로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단편에『바람이여 넋이여』,『어떤 얼굴』,『그 밤은 길었다』,『버섯구름』 外 다수가 있고, 장편에『나는 조선의 국모다』,『유유한 푸른 하늘아』,『초원의 제국』,『소설 미아리』,『떠돌이 살인마 해리』,『천년의 향기』,『신의 이제마』,『고려무인시대』,『춘추전국시대』,『신의 편작』,『왕의 여자 개시』,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등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그 중『나는 조선의 국모다』는 열여섯 살의 나이로 국모에 올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명성황후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역사의 ''허점''을 꼬집었을 정도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명성황후의 일대기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조선조 말의 혼란하고 긴박했던 역사적 상황을 명성황후의 삶과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유쾌하고, 가장 상쾌하고, 가장 통쾌한 이야기를 가려 뽑은 『조선사 쾌인쾌사』는, 특히 신분과 지위, 궁핍한 생활상의 한계가 있는데도 한세상 호쾌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처럼 경제 한파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는 잠시 숨 돌릴 여유가 필요하다. 저자는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이 책이 독자들의 가슴속 시련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으로 엮었다.
백성의 마음을 얻고자 한 조선의 설계자 이야기 『정도전』(상·하)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는 성리학의 기본이념에 따라, 백성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정도전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백성이 근본이라는 그의 가치와 정신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현대사회에 소중한 교훈이 된다.
또한 저자는 평소 경제 문제, 특히 부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신의 관심을 여러 권의 경제경영 저서로 풀어내며 열정적으로 집필을 하고 있기도 하다. 장사로 성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현재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나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의 의미와 목적을 되새기고 성공하는 장사를 위한 노하우를 전하는 『돈 버는 장사의 기술 장사를 잘하는 법』을 펴낸바 있으며 『부자열전』, 『선인들에게 배우는 상술』, 『성공의 본질』, 『흥정의 기술』,『한국최초의 100세기업 두산 그룹 거상 박승직』 등의 경제경영 관련서들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어린이 도서로는 『대한국인 안중근』이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사_ 거꾸로 읽는 고려사 5백년_ 안중근 기념관 관장, 중앙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김호일
머리말_ 고려, 나를 매혹시킨 제국
부록 | 고려 왕조 가계도(고종~공민왕)
1장 몽골 공주가 고려 국왕을 지팡이로 때리다
2장 최씨 정권의 종말과 고려의 항복
3장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4장 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다
5장 꽃 피고 술 있을 때 즐겁게 놀아 보세요
6장 일본정벌군이 가미가제에 패하다
7장 원나라 공주
8장 잃어버린 고구려의 혼
9장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다
10장 나라를 파는 고려인들
11장 천하제일의 망나니, 아버지의 여자를 간음하다
12장 굴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다
5가지 주제로 들여다본 고려사 시리즈
고려사 5부작 100년 시리즈는 분명 우리의 것임에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고려의 역사를 ‘굴욕’, ‘칼’, ‘불교’, ‘사랑’, ‘영광’이라는 5가지 주제로 재구성한 것이다. 여기에는 고려 500년의 역사를 독자들에게 좀 더 쉽고 재미있게 소개하기 위한 지은이의 의도가 담겨 있다. 조선시대 500년은 드라마, 소설, 영화 등 각종 문화콘텐츠로 제작되고 있으나 고려는 우리의 역사가 아닌 것처럼 대중들에게 점점 잊혀지고 있다. 이는 우리가 고려의 역사를 주목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500년의 장대한 역사니 영광과 굴욕의 시대가 있고 칼의 시대가 있을 것이다. 또한 500년 동안 고려인들의 정신세계를 관통한 불교의 역사가 있는가 하면 사랑의 역사가 있다. 국난을 당해 말발굽에 짓밟히면서 항쟁한 민중들이 있고, 공녀로 끌려간 여자들이 있는가 하면, 수만 명이 노예로 끌려가 매매되고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
애석하게도 몽골에 침탈을 당한 고려 민중들은 역사에 기록되지 않았다. 수천, 수만 명이 죽고 노예로 끌려갔는데도 역사는 기록을 남기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고려의 흥망성쇠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고려인들의 희로애락을 살피지 않았다. 그러나 방대한 고려 역사 500년은 우리가 결코 방치해서는 안 되는 우리의 역사다. 이 시리즈를 통해 독자들은 5천 년 역사의 허리에 속한 우리의 고려사를 새롭게 인식하게 될 것이다.
원나라의 신하로 전락한 무력한 고려의 왕들
-원나라 공주에게 지팡이로 얻어맞은 충렬왕
제24대 원종 이후 시호에 ‘충(忠)’자가 들어가는 고려의 왕들은 원나라의 신하로 전락한다. 원나라 황실은 고려의 왕을 마음대로 교체할 수 있었고 그 때문에 고려로 시집 온 원나라 공주들의 권세는 행정부의 수반인 문화시중 김방경을 함부로 잡아다가 고문을 가할 만큼 막강했다. 특히 원세조 쿠빌라이의 딸을 왕비로 맞이했던 제25대 충렬왕은 지병을 돌보기 위해 천효사로 가던 길에 부인 안평공주에게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지팡이로 얻어맞는 참담한 일까지 당한다. 단지 공주의 수행원이 왕보다 적다는 이유였는데, 이를 통해 당시 국왕의 처지가 어땠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충렬왕의 병이 좀 차도가 있어서 천효사에 옮겨 거처하게 하였다. 왕이 먼저 행차하였는데 공주가 모시고 따르는 사람이 적다고 화를 내면서 돌아오니, 왕도 부득이하게 또한 돌아왔는데 공주가 마중 나가 지팡이로 때렸다. 왕이 모자를 벗어 그 앞에 던지고 인후를 쫓으면서 꾸짖기를, ‘이것은 모두 너희들의 소행이다. 내가 반드시 너희를 죄 주겠다’하니, 공주의 노기가 조금 풀렸다.
-《고려사》 中
-5년 동안 왕위를 방치한 충선왕
충렬왕 이후 고려의 왕들은 모두 어릴 때부터 숙위라는 명목으로 원나라에서 생활해야 했다. 원나라 옷을 입고 원나라 풍속을 익히며 성장한 그들은 원나라 공주와 혼례를 올린 후 국왕이 되었기에 고려인으로서의 자긍심이나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었다. 소년 시절 머리가 명석했고, 힘없는 민초들을 가엾게 여기며 일찍이 성군의 면모를 보였던 제26대 충선왕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개혁정치를 반대한 권신들의 모함으로 국새를 빼앗기고 폐위되어 원나라로 끌려간다. 그리고 몇 년 후 원나라 무종 황제를 등극시킨 일등공신이 되어 심양왕에 오르고 고려 국왕으로 복위하지만 충선왕은 고려로 돌아가기를 거부했다. 그는 5년 동안 전지로 나라를 통치하다가 그마저도 팽개치고 아들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만다. 국왕이 없는 그 5년 동안 고려의 권신들은 국정을 농단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기에 급급했고, 오랜 전쟁으로 피폐해진 민초들의 삶은 더욱 곤궁해질 수밖에 없었다. 충선왕은 원나라 도읍 연경에 만권당을 세워 중국의 학문 발전에 크게 기여하지만 정작 조국 고려는 돌보지 않았고, 여러 차례 귀국할 것을 종용하는 원나라 황실의 권유에도 이리저리 핑계를 대다가 끝내 이국땅에서 생을 마감하는 무책임한 왕으로 기록된다.
임금의 지위란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바이며 만사가 집중되는 곳이므로 하루라도 이 자리를 비워 두지는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왕은 이미 책명을 받고 다시 왕위에 오른 후에도 연경에 5년 동안이나 체류하는 동안 자국의 백성들은 공궤(供饋)하기에 곤란하였고 수종하는 신하들은 오랫동안 피로하여 고향을 그리워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서로 모함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원나라에서도 이상히 여겨 두 번이나 본국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했다. 이에 대하여 왕은 거절할 구실이 없어서 아들 왕도에게 왕위를 물려주었고 또 조카 왕호를 세자로 삼아 부자 형제 간에 마침내 시기와 질투를 빚어내어 그 화단이 몇 대까지 내려가도록 그치지 않았다. 장래에 대한 계책이 이처럼 좋지 못하였으니 토번으로 귀양 가게 된 것도 불행한 일이라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고려사》 中
-아버지의 여자까지 음간했던 충혜왕
제28대 충혜왕은 고려 역사상 가장 음란하고 잔인한 임금으로 기록되고 있다. 그는 왕위를 잃고 원나라에 끌려가서도 그 행실이 문란하여 발피(망나니)라 조롱받다가 추방되었고, 부왕 충숙왕이 죽자 상이 끝나기도 전에 서모인 수비 권씨를 음간했다. 그 후 복위를 하고서도 그의 패륜행각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만큼 많았는데, 자신이 품었던 여인 남씨를 시종 노영서에게 시집보냈다가 다시 찾아가 음행을 즐기는 일도 서슴지 않았고, 총애하던 신하 호첩목아에게 형장을 때리고 그 혀와 생식기를 잘라 불태운 후 섬으로 귀양을 보낸 일도 있었다. 기록에 따르면 충혜왕은 후궁만 126명을 두었는데, 이것도 민간에서 음간한 여인들은 제외한 숫자라고 한다. 충혜왕은 부왕의 비인 경화공주를 강간한 일로 원나라 황실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결국 연경으로 끌려가 혹독한 취조를 받고 귀양을 가던 중 악양에서 최후를 맞이한다. 그러나 고려인들은 누구도 그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왕은 성격이 호협하고 주색을 좋아하여 놀이와 사냥에 탐혹하였고 부화방탕하여 절도가 없었으며 남의 처첩이 아름답다는 소문만 들으면 친소와 귀천을 가리지 않고 모두 후궁으로 데려온 것이 백 명이 넘었고 재리에는 털끝만한 것에도 이해를 타산하여 항상 영리하는 것을 일삼았으며 간악한 소인들이 앞 다투어 계책을 꾸며 백성의 토지와 노비를 강탈하여 모두 보흥고에 소속시키고 좋은 말은 내구에 몰아넣었다. ……(중략) 충직한 사람들은 배척을 당하여 한 번 바른말을 하면 반드시 살육을 당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벌을 받을까 두려워 감히 간언하는 자가 없었다.
-《고려사》 中
몽골의 지배를 받았던 100년 동안 고려인들의 삶은 어떠했는가
고려 왕실이 강화도에 천도했던 30여 년 동안 나라의 보호를 받지 못한 수많은 고려인들이 몽골에 끌려가야 했다. 하지만 여몽전쟁이 끝난 후에도 고려 조정은 자국의 백성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 1272년 1월, 진도의 삼별초를 토벌한 몽골 장수 백양은 원나라로 돌아갈 때 전리품으로 수많은 고려의 여인들을 짐승처럼 묶어 끌고 갔다. 그들 대부분은 강화도에서 삼별초의 수장 배중손에 의해 진도로 끌려간 고려 관리의 부녀자들이었지만 고려 조정은 이를 외면했다. 고려는 이후 원나라의 요구가 있을 때마다 결혼도감이나 과부처녀추고별감 등을 설치해 여인들을 공녀로 보냈는데, 이는 국가가 공권력을 동원하여 자국의 여인들을 잡아다가 타국에 바치는 행위였기에 실로 수치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체로 한 여자에게 화장 값으로 명주 12필씩 주고 만자(원나라 남쪽에 사는 사람들)들에게 나누어 주니 만자들이 즉시 데리고 북쪽으로 가는데 울음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으며 보는 사람들도 슬퍼서 탄식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고려사》 中
우리가 외면해선 안 될 고려, 그 굴욕의 역사 100년
이 책《굴욕의 역사》에서는 몽골이 침략해 오자 강화도로 천도를 가야 했던 제23대 고종 때부터, 이후 주권을 잃고 원나라의 부마국으로 전락했던 제31대 공민왕 때까지 약 100년 동안의 역사를 새롭게 재조명하고 있다. 이 시기의 고려는 주권을 상실한 암흑기였다. 왕자 시절 숙위라는 명목으로 원나라에 볼모로 끌려갔다 돌아온 왕들은 주색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간신들은 국정을 농단하며 심지어 나라를 팔아먹는 자까지 생겨났다. 원나라의 지배를 받아서 굴욕적인 것이 아니라 원나라에 항전하는 영웅이 없어서 굴욕적인 시대인 것이다.
어느 시대이고 권력자가 부패하면 간신들이 들끓고 민중들의 삶은 고달파지게 마련이다. 이 책의 특징은 여타의 고려사를 다룬 책들과 달리 부패한 권력자들과 민초들의 피폐한 삶을 동시에 보여준다는 데 있다. 이는 역사가 외면했던 고통스러운 고려 민중들의 삶까지 생생하게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역사의 단편적인 기록을 통해 그 이면의 진실을 직시하려는 지은이의 집념이 담겨 있다. 지난 역사를 들여다보며 오늘을 성찰하고 미래를 준비하게 하는 것, 이것이 고려사 5부작 100년 시리즈를 통해 지은이가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이수광
1954년 충북 제천에서 태어났다. 1983년 <중앙일보>에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제14회 삼성문학상 소설 부문, 미스터리클럽 제2회 독자상,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이수광은 오랫동안 조선시대 살인사건 기록에 남다른 관심을 기울여왔으며, 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생한 역사서를 집필해왔다. 지금은 수 년 안에 한국뿐만 아니라 영미권 독자들을 사로잡을 작품을 쓰고 싶은 꿈을 갖고 있다.
오랫동안 방대한 자료를 섭렵하고 수많은 인터뷰를 하면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역사의 지혜를 책으로 보여주는 저술가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서 팩션형 역사서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 베스트셀러 작가. 특히 추리소설과 역사서를 넘나드는 자유로운 글쓰기와 상상력으로 자신만의 독특한 대중 역사서를 창조해왔다. 1983년 「중앙일보」에 단편 「바람이여 넋이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저 문 밖에 어둠이』로 제14회 삼성미술문화재단 도의문화저작상 소설 부문, 『우국의 눈』으로 제2회 미스터리클럽 독자상, 『사자의 얼굴』로 제10회 한국추리문학 대상을 수상했다.
지금까지 단편에『바람이여 넋이여』,『어떤 얼굴』,『그 밤은 길었다』,『버섯구름』 外 다수가 있고, 장편에『나는 조선의 국모다』,『유유한 푸른 하늘아』,『초원의 제국』,『소설 미아리』,『떠돌이 살인마 해리』,『천년의 향기』,『신의 이제마』,『고려무인시대』,『춘추전국시대』,『신의 편작』,『왕의 여자 개시』,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연애사건』, 『조선을 뒤흔든 16가지 살인사건』 등 다수의 저작을 발표했다.
그 중『나는 조선의 국모다』는 열여섯 살의 나이로 국모에 올라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명성황후의 삶을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소설이기는 하지만 역사의 ''허점''을 꼬집었을 정도로 역사적 사실에 기초하고 있으며, 명성황후의 일대기가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조선조 말의 혼란하고 긴박했던 역사적 상황을 명성황후의 삶과 함께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조선 500년 역사에서 가장 유쾌하고, 가장 상쾌하고, 가장 통쾌한 이야기를 가려 뽑은 『조선사 쾌인쾌사』는, 특히 신분과 지위, 궁핍한 생활상의 한계가 있는데도 한세상 호쾌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최근처럼 경제 한파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을 때는 잠시 숨 돌릴 여유가 필요하다. 저자는 통쾌한 웃음을 선사하는 이 책이 독자들의 가슴속 시련을 한 방에 날려 보낼 수 있는 그런 여유가 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으로 엮었다.
백성의 마음을 얻고자 한 조선의 설계자 이야기 『정도전』(상·하)는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은 다음이고, 군주는 가장 가볍다’는 성리학의 기본이념에 따라, 백성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정도전의 삶을 흥미진진하게 전한다. 백성이 근본이라는 그의 가치와 정신은 민주주의라는 가치를 실현하고자 부단히 노력하는 현대사회에 소중한 교훈이 된다.
또한 저자는 평소 경제 문제, 특히 부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으며 그러한 자신의 관심을 여러 권의 경제경영 저서로 풀어내며 열정적으로 집필을 하고 있기도 하다. 장사로 성공한 사람들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현재 장사를 하고 있는 사람이나 새롭게 장사를 시작하려는 사람들이 장사의 의미와 목적을 되새기고 성공하는 장사를 위한 노하우를 전하는 『돈 버는 장사의 기술 장사를 잘하는 법』을 펴낸바 있으며 『부자열전』, 『선인들에게 배우는 상술』, 『성공의 본질』, 『흥정의 기술』,『한국최초의 100세기업 두산 그룹 거상 박승직』 등의 경제경영 관련서들을 저술하기도 하였다. 어린이 도서로는 『대한국인 안중근』이 있다.
▣ 주요 목차
추천사_ 거꾸로 읽는 고려사 5백년_ 안중근 기념관 관장, 중앙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김호일
머리말_ 고려, 나를 매혹시킨 제국
부록 | 고려 왕조 가계도(고종~공민왕)
1장 몽골 공주가 고려 국왕을 지팡이로 때리다
2장 최씨 정권의 종말과 고려의 항복
3장 원나라를 세운 쿠빌라이
4장 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다
5장 꽃 피고 술 있을 때 즐겁게 놀아 보세요
6장 일본정벌군이 가미가제에 패하다
7장 원나라 공주
8장 잃어버린 고구려의 혼
9장 오뉴월에 서리가 내리다
10장 나라를 파는 고려인들
11장 천하제일의 망나니, 아버지의 여자를 간음하다
12장 굴욕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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