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숙제, 정말 안 해도 되나요?
최근 한 연구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어린이들이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창 친구들과 뛰어놀아야 할 시기에 스트레스라니! 하지만 우리 아이들의 하루 일과만 떠올려 봐도 절로 고개가 끄덕거려진다. 학교 수업과 방과 후 활동, 기본 두세 개의 학원을 오간 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오면 코앞에 닥친 시험공부와 쌓인 숙제까지…….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그 중에서도 스트레스의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숙제가 아닐까?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은 숙제 때문에 마음을 졸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미처 숙제를 해 가지 못해 하루 종일 선생님의 눈치를 보거나, 개학 전날 밀린 방학 숙제를 하느라 온 가족이 동원되던 일은 차라리 추억에 가깝다. 세상이 달라졌다지만, 아이들이 느끼는 숙제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한 듯하다. 아니, 오히려 어른 못지않게 바쁜 요즘 아이들에게 과도한 숙제는 단순한 부담을 넘어 학교생활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주범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사계절 저학년문고 쉰한 번째 책인 『오십 번은 너무해』는 숙제 때문에 인생이 고달픈 한 초등학생의 이야기로, 『국경 없는 마을』,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의 작가 박채란이 『까매서 안 더워』 이후 3년 만에 내놓는 동화이기도 하다. 그동안 이주 노동자나 아동 청소년의 인권 문제에 유달리 깊은 관심을 보여 왔던 작가의 시선은 이 책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숙제는 꼭 다 해 가야 하는 걸까?’, ‘왜 어른들은 숙제를 그렇게 많이 내주는 걸까?’라는 사소하지만 ‘발칙한’ 질문에서 출발한 이 이야기는 숙제 때문에 벌어지는 영주의 짜릿한 꿈속 모험담을 거치며 기존 교육 방식에 대한 묵직한 의문을 던진다.
“오십 번은 너무해!” VS “오십 번도 부족해!”
초등학교 2학년인 영주는 받아쓰기 시험에서 틀린 문장을 오십 번씩 쓰는 숙제를 하느라 밤늦도록 잠도 못 자고 낑낑댄다. 영주는 총 오십 문제 중 열 개를 틀려 자그마치 오백 문장이나 써야 하는 상황이다. 영주가 세 번째로 틀린 문장은 ‘엄마와 함께 꽃밭에 갔습니다.’이다. 영주는 ‘꽃’을 ‘꽂’이라고 써서 아깝게 틀리고 말았다. 단지 한 글자만 틀렸는데 문장 전체를 오십 번 쓰라니, 영주는 억울하기만 하다.
이게 다 마귀할멈 같은 선생님 때문이에요. 선생님은 숫자 오십을 너무 좋아해요. 꼭 오십 문제씩 시험을 보고 오십 번식 써 오라고 하잖아요. 선생님이 학교 다닐 때는 한 반에 학생이 오십 명도 넘었다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고요. 동시를 외울 때는 적어도 오십 번은 소리 내 읽어야 한다고도 자꾸 말해요. 선생님은 왜 그렇게 오십을 좋아하는 거죠? - 본문 23쪽
결국 숙제를 다 하지 못한 채 학교에 간 영주는 선생님한테 혼이 날까 봐 하루 종일 가슴을 졸인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선생님은 숙제 검사를 하지 않고 넘어간다. 집으로 돌아온 영주는 그것이 바로 자신이 아끼는 연필과 지우개, ‘드림이’와 ‘몽이’가 꾸민 일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란다. 숙제 때문에 괴로워하는 영주를 위해 드림이와 몽이가 영주 몰래 선생님의 꿈속으로 가 교사 수첩의 ‘숙제 검사’라는 글씨를 지운 것.
“멍멍! 네가 우리한테 이름을 붙여 주었잖아. 모든 이름에는 능력이 숨어 있어. 내 이름 몽이도, 얘 이름 드림이도 뜻은 ‘꿈’이잖아. 그러니까 우리는 꿈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야. 네가 우리를 그렇게 만들어 준 거지.”
“우아!”
영주는 신기했어요. 이름에 능력이 숨어 있다니! 그렇다면 영주라는 이름에도 신기한 능력이 숨어 있지 않을까요?
“네가 우리를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우리에게 생명이 생긴 거야. 그래서 우리도 너를 도와주고 싶었고. 내가 잘 지워 놓았으니까 염려 마. 숙제 검사는 없을 거야. 그러니 걱정 말고 어서 자. 멍!” - 본문 60~61쪽
하지만 다음 날, 받아쓰기 시험을 잘 본 우철이가 숙제 검사 안 하냐고 묻는 바람에 숙제를 안 해도 된다는 영주의 기대는 물거품이 된다. 드림이와 몽이는 실망한 영주에게 함께 선생님 꿈속으로 가서 숙제를 줄여 달라 말하자고 제안한다. 선생님 꿈속으로 간 영주는 그곳에서 역할이 바뀌어 선생님이 된다. 영주는 반대로 학생이 된 선생님에게 자신의 숙제를 대신 하게 하고, 그 덕에 현실에서의 숙제 검사도 무사히 통과한다.
선생님이 다시 물어요.
“왜 오십 번이나 써야 하냐고요? 오십 번은 너무 많아요.”
오십 번이 많다는 건 영주도 잘 알아요. 하지만 선생님이 오십 번을 다 써야 영주가 내일 혼나지 않는걸요.
“그건, 그건 말이죠…….”
그때 영주의 눈에 생일 케이크가 들어왔어요.
케이크에는 촛불 오십 개가 켜져 있어요. 오늘은 선생님의 오십 번째 생일이니까요. 영주는 이제 이유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그건 선생님, 아니 유말숙 학생이…… 오십 살이기 때문이에요! 오십 살이니까 오십 번씩 써야 해요.”
영주의 말을 들은 선생님은 울상을 지으며 영주를 바라봐요. - 본문 95쪽
며칠 뒤 글쓰기 반 대표로 뽑힌 영주는 교장 선생님 앞에서 칭찬을 받는다. 교장 선생님이 글쓰기를 잘하는 비결을 묻자, 선생님은 틀린 문장을 오십 번씩 쓰는 숙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영주의 생각은 다르다. 정작 자신의 글쓰기 실력을 늘게 해 준 건 숙제를 할 때면 더 생각나는 그림책인 것이다. 영주는 억울한 나머지 그 자리에서 꿈속 모험 이야기를 동시로 써 담임 선생님을 난처하게 만든다. 영주의 꿈속 모험 덕분인지, 동시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 일이 있고 난 뒤 선생님은 받아쓰기 숙제를 오십 번에서 열 번으로 줄인다.
반복 학습보다 강력한 상상력의 힘
이 책에 자주 등장하는 ‘50’이라는 숫자는 반복 학습, 즉 ‘무조건 외우는 것이 능사’인 주입식 교육을 받아 온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상징한다. 선생님의 나이가 오십 살이라는 설정 역시 그러한 의미이다.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에게 오십은 열 손가락으로 해결할 수 없는, 열 보다는 백에 가까운 ‘상식 이상의 수’이다. 작가는 유난히 ‘오십’이라는 숫자에 집착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학교 교육의 문제점을 은근히 지적한다.
그렇다고 분위기가 어둡거나 무거운 건 절대 아니다. 연필, 지우개와 대화를 나누고 선생님 꿈속으로 여행을 떠나는 등 유쾌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읽는 이로 하여금 시종일관 미소를 짓게 만든다. 또한 작가는 생명이 없는 사물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 나름의 관계를 맺어 나가는 영주의 해맑은 동심을 통해 창의력은 단순히 외워서 얻어지는 것이 아님을 철저하게 아이의 시선에서 이야기한다.
작가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밤새워 겨우’ 숙제를 해 가는 한 아이의 사연을 듣고 이 동화를 쓰기로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숙제 때문에 걱정하고 괴로워하는 아이의 심리가 섬세하게 투영되어 있다. 또 숙제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이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따뜻한 위로의 목소리도 살아 숨 쉰다. 특히 꿈속에서 영주가 담임 선생님한테 틀린 문장을 오십 번이나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하는 장면이나 동시 한 편으로 선생님들의 가슴을 뜨끔하게 하는 장면은 무릎을 탁 칠 만큼 압권이다.
작가 소개
2004년, 《국경 없는 마을》을 시작으로 《까매서 안 더워》, 《목요일, 사이프러스에서》, 《오십 번은 너무해》, 《우리가 모르는 사이》 등의 책을 썼습니다. 《벽》은 글쓴이의 첫 그림책입니다. 글쓴이는 일곱 살 여자아이와 다섯 살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목 차
1. 엄마와 함께 꽃밭에 갔습니다 · 9
2. 마귀할멈은 오십 번을 좋아해 · 16
3.코가 닳았잖아! · 26
4.오십 번도 부족하다고? · 35
5.정말 안 해도 되나요? · 40
6.어떻게 된 거냐면…… · 55
7.숙제 검사 안 해요? · 63
8.선생님 꿈속으로 출발! · 71
9.얼마나 더 가야돼? · 80
10.생일 축하합니다 · 86
11.이상하게 팔이 아파 · 96
12.그래서가 아니에요 · 104
13.몽아, 드림아, 안녕! · 113
14.열 번이면 충분해요 · 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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