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일본 홋카이도부터 러시아 사할린까지,
65년 전 그곳,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 연인원 600~700만 명. 1939~1945년, 그 6년 사이 식민지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 한일 과거사 문제의 최대 쟁점 중의 하나인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일본 본토는 물론 사할린, 남양군도까지 일본 전범기업이 조선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했던 작업장을 중심으로 취재한 르포이다. 일제가 조선인 강제동원을 시행하게 된 전후 배경부터 강제동원이 본격화된 1939년 이후의 상황을 피해자의 증언과 관련 연구 기록을 토대로 새롭게 복원했다.
이 책의 필자는 현직 기자들이다. 2009년 말 미쓰비시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금 명목으로 99엔 지불을 판결한 일명 ‘99엔 사건’에 충격을 받아 이 문제에 뛰어들게 됐다고 한다. 필자들은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하되, 이와 병행하여 자료조사에도 많은 공력을 들였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조사위)와 같은 정부 기관과 국내외 연구 기관들의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하는 한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내 사회운동가들이 제공한 각종 문서와 사진자료 등을 취합하고 기존 연구자료와 꼼꼼히 대조해나갔다. 역사적 진실을 다루는 문제인 만큼 작은 통계 수치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초부터 9월까지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연재됐다. 이 책은 그 기획기사를 골격으로 하여, 연재 당시 지면의 한계로 빠진 부분과 취재 때 미진했던 부분들을 대폭 보완하여 엮어낸 것이다.
이 책은 총론과 본론 4부로 이뤄졌다. 총론에서는 이 책에서 다룰 주제들을 전반적으로 개괄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을 위해, 조선인 강제동원의 방식과 유형, 과정을 실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사례를 짚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강제동원의 한 축으로 작동한 일본 기업들의 숨겨진 역할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1부에서 2부까지는 일본 본토의 강제동원지를 취재한 글을 각 기업별로 묶었다. 우리 사회에도 잘 알려진 미쓰비시나 미쓰이 등 일본의 굵직굵직한 대기업은 물론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일본 기업들의 조선인 노무자 작업장을 취재했다. 필자들이 찾아간 대부분의 작업장은 폐광됐거나 관광지로 탈바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역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필자들의 힘겨운 취재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3부는 일본 본토를 제외한 강제동원지인 남양군도, 사할린 등에 대한 현장 취재와 국내 동원, 유골 반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국내 동원의 경우 일제가 조선인들을 석탄을 캐는 일보다 금을 캐는 일에 집중적으로 동원시킨 사례가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4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정부와 기업 간의 피해 배상, 미불임금 보상에 대한 소송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패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멈추지 않는 피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그들을 돕는 한일 양국 시민운동가들의 뜨거운 열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강제동원 기간 6년은 ‘전 민족적 수난’
일본 전범기업은 조선인 강제동원에 어떤 역할을 했나?
이 책은 기존 국내에 출간된 강제동원 자료집과 피해자들의 증언록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내용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이 책은 일제시대 강제동원 분야 중 징병과 군 위안부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고 징용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징병과 군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반면, 피해자 규모 면에서는 훨씬 압도적인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반적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 필자들이 학계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바에 따르면, 1939년부터 해방 전까지 6년 동안 매년 조선 인구의 30%나 되는 600~700만 명이 일제의 강제동원 현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이렇게 동원된 노무자 중 적게는 10~20만 명, 많게는 50만 명이 작업장에서 죽음을 맞았다. 필자들이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전 민족적 수난’이었다고 기술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다음으로 이 책은 기존 국내 연구들이 간과해온 강제동원의 주요 축인 일본 기업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39년경 일본 대기업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조달할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군수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은 생산 인력에 필요한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식민지에 눈을 돌렸다. 대기업들이 고용한 브로커들이 조선 현지로 찾아가 모집 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노무자 인솔부터 작업장 관리까지 기업의 손이 미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필자들은 조선인 강제동원지로 알려진 나가사키 조선소, 미쓰이 탄광 등의 당시 강제동원 작업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증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증언과 자료를 찾는 데 주력했다.
셋째, 이 책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필자들의 다각적인 노력과 고민의 과정이 담겨 있다. 전문가 집단의 자문, 외국 사례의 검토, 중국인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 배상 청구 소송으로부터 화해를 이끌어낸 사례를 점검한다. 이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는 결코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님을 역설한다. 특히 필자들은 독일의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의 사례를 주목하면서, 전범기업들이 전후 일본 정부에 맡긴 미불임금에 대한 공탁금 등을 토대로 일본 정부와 함께 기금을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들이 니시마츠건설과 화해를 이끌어내어 보상금을 받아낸 데에는 중국 정부의 노력과 중국 국민의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투자·영업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압박 수단들을 강구할 수 있다면, 전범기업들이 지금처럼 강제동원 문제를 미온적으로 대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 피해자 보상 문제 그렇게 어려운가?
소수자의 문제로 방치된 과거사!
2010년 11월 2일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9대 정책을 제안했다. 이 의원은 “해방된 지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아래 강제 동원된 근로자 문제에 대해 양국 간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제안의 취지를 밝혔다. 이 의원이 제시한 9대 정책은 일본 전범기업들의 기금 마련이나 포스코와 같은 한일협정 대일청구권자금의 수혜 기업들의 기금 조성 등, 이 책의 필자들이 제시한 해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와 관련한 해법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논의되어왔다. 그중에 몇몇 제안들은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왜일까? 필자들은 그 주된 이유가 우리 정부의 의지 부족에 있다고 본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대일청구권 문제는 끝났다는 입장이고, 과거 정부와 기업들이 행한 범죄 사실을 먼저 나서서 밝힐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도의적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를 보다 치밀하게 조사하고 피해자들의 보상 해법을 강구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현황 조사는 물론이고 미불임금 규모, 일본 내 미귀환 유골 파악 등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전조사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배상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제대로 압박하지도 못했다. 2004년 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보상 문제도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럼 그동안 정부는 이 문제에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했을까. 필자들은 강제동원의 문제가 한편으로 소수자 문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피해자들 대부분이 고령에다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다수가 오늘날까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보통 마을에서 가장 못 배우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징용 대상자로 뽑혀 끌려갔다. 그들은 한창 경제적 활동을 할 나이에 돈 한 푼 없이 귀향해야 했고, 그중에는 부상자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그들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수십 년간 사회적·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소수자인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러다 2003년 청와대 앞에서 사건이 터졌다. 자신들의 호소에 무관심한 국가를 향해 일제 피해자 단체 회원들이 강력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일명 ‘국적 포기 사건’이다.
2003년 8월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일제 강제연행 한국 생존자협회’, ‘나눔의 집’, ‘시베리아 삭풍회’ 등 일제 피해자 단체 회원 약 300여 명이 청와대 앞에서 국적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과 대일 관계를 이유로 희생자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절규했다. 나라를 잃어 타국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그 국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일 만큼 비극적인 게 또 있을까. 막다른 곳에 다다른 고령의 피해자들이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다. ―본문 521쪽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부는 2004년부터 위로금 지원 사업을 시작한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돌려주어야 할 돈을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신 주겠다는 것이다.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부상자의 유족, 생환자 등을 구별하여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필자들은 우리 정부가 이만큼이나마 강제동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나, 여전히 여러 가지 면에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강제동원 노무자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 빈약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기록은 주로 일본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는 기초적인 자료들밖에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보다 전략적으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는 게 필자들의 생각이다. 그 밖에 국내 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지원되지 않는 점, 미불임금 지급금이 현대 물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필자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한일관계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피해자, 가해자 모두가 기억해야 진정한 화해 가능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 차원이 아니라, 역사의 퇴행을 막기 위한 작은 안전장치로서 이 책이 독자들의 역사 인식에 보탬이 되기를 소망한다. 피해자가 기억하고 가해자도 기억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고 미래도 열린다. 어설픈 초월이나 망각은 역사의 교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가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에서 던진 명제를 상기한다. “과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 「들어가는 글」 10쪽
고(故) 박경식의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은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로, 1965년 한일협정이 맺어진 해에 출간됐다. 그는 서문에서 “조선과 일본의 우호친선과 진정으로 평등한 국제 연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국가 간에 진정한 우호관계가 형성되려면 두 나라의 과거사 청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제병합 10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가 있었다. 다음 100년을 내다보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내 여론들은 담화 내용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한일 강제병합 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발언도 없었고, 군 위안부나 징용 노무자 등 전쟁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에 대한 언급도 찾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알맹이는 모두 빠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과오에 대한 분명한 청산 없이 한일관계의 미래를 얘기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필자들이 이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필자들은 우리 정부와 사회 또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왔다고 지적한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강제동원 문제가 불거진 것도 점도 그렇고,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 과정에 벌어진 피해 사실들을 제기하며 일본 정부를 압박하지 못했던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어쩌면 정부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우리 사회 일반의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필자들은 일본 현지 취재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일본인 사회운동가들에게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자비를 들여 평생을 걸쳐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연구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비교하면 크게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오는 11월 27일에 윤도현 밴드가 교토에서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을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공연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단바망간기념관은 고(故) 이정호 씨가 단바 지역의 망간광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2009년 폐관됐다. 우리 사회의 의식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중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역사를 제대로 알 때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프리모 레비의 이 말은 역사의 피해자나 역사의 가해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 작가 소개
저자 : 김호경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전공과 무관한 길을 택해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했다. 주로 정치부 정당팀과 사회부 사건팀·법조팀에서 일했다. 문화부에서도 약 2년 근무하며 미술·출판 분야 등을 담당했다. 사회부 사건팀장 시절 고위공직자 등의 ‘쌀 직불금 부당수령’ 사건 보도로 동료들과 함께 삼성언론상,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저자 : 권기석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곳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탐사기획팀, 정치부에서 일했다. ‘월남越南1세대, 그들이 사라진다’, ‘한국 속?난민, 그들은 누구인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 10년 긴급 점검’ 등의 기획 보도를 했다. ‘사형수 63인 리포트’ 기획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에 이어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
저자 : 우성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국제부, 사회부, 정치부, 탐사기획팀을 거쳤다. 선배 기자와 함께 고위공직 후보자 논문 문제를 탐사 보도해 한국기자상과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이명박 대선 후보 위장전입’ 추적 보도, ‘기후변화-조용한 재앙’ 특별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
총론 강제동원과 전범기업
1. 강제동원이란 무엇인가
2. 왜 기업이 문제인가
3. 모리야 요시히코 총괄 인터뷰
1부 일본 3대 재벌의 전쟁범죄
1. 군수산업의 대명사, 미쓰비시
2. 극우진영과 결탁한 최대재벌, 미쓰이
3. 군국주의의 배후 조종자, 스미토모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관부연락선
2부 낯선 기업, 숨은 가해자
1. 근로정신대 징용의 주범, 후지코시
2. 일본제철, 철을 녹여 포탄으로
3. 아키타 현 대표 전범기업, 도와홀딩스
4. 아소, 골수 우익 가문의 탄광 잔혹사
5. 공포의 노예노동, 북해도탄광기선
6. 그 밖의 전범기업들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강제동원
3부 강제동원 더 깊이 들여다보기
1. 남양군도, 휴양지 속에 깃든 피눈물
2. 사할린, 일본에 버림받고 소련에 억류된 징용자들
3. 국외 동원 그늘에 가려진 국내 동원
4. 미귀환의 상징, 유골 문제
5. 강제징용 최소한의 보상, 미불임금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99엔의 굴욕? 35엔짜리 수당 지급도 있었다
4부 투쟁과 좌절, 그리고 희망의 역사
1. 투쟁과 좌절의 역사
2. 영원한 족쇄 한일협정
3. 베를린에서 길을 찾다
4. 전범기업에 승리한 중국인 피해자들
5. 한일 양국과 기업이 나아갈 길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박경식의 위대한 첫걸음, 그리고 일본 풀뿌리 NGO의 힘
미주
글을 마치며
참고문헌
찾아보기
일본 홋카이도부터 러시아 사할린까지,
65년 전 그곳, 조선인 강제동원의 현장으로!
일제의 침략전쟁에 동원된 조선인 노무자 연인원 600~700만 명. 1939~1945년, 그 6년 사이 식민지 조선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나? 강제병합 100년을 맞는 올해, 한일 과거사 문제의 최대 쟁점 중의 하나인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본격적으로 조명한 책이 출간됐다. 일본 본토는 물론 사할린, 남양군도까지 일본 전범기업이 조선인 노무자들을 강제 동원했던 작업장을 중심으로 취재한 르포이다. 일제가 조선인 강제동원을 시행하게 된 전후 배경부터 강제동원이 본격화된 1939년 이후의 상황을 피해자의 증언과 관련 연구 기록을 토대로 새롭게 복원했다.
이 책의 필자는 현직 기자들이다. 2009년 말 미쓰비시에 강제 동원됐던 근로 정신대 할머니들에게 후생연금 탈퇴 수당금 명목으로 99엔 지불을 판결한 일명 ‘99엔 사건’에 충격을 받아 이 문제에 뛰어들게 됐다고 한다. 필자들은 현장 취재를 중심으로 하되, 이와 병행하여 자료조사에도 많은 공력을 들였다.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희생자등지원위원회’(이하 강제동원조사위)와 같은 정부 기관과 국내외 연구 기관들의 방대한 자료를 치밀하게 검토하는 한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내 사회운동가들이 제공한 각종 문서와 사진자료 등을 취합하고 기존 연구자료와 꼼꼼히 대조해나갔다. 역사적 진실을 다루는 문제인 만큼 작은 통계 수치 하나라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2010년 초부터 9월까지 「잊혀진 만행, 일본 전범기업을 고발한다」라는 제목으로 기사가 연재됐다. 이 책은 그 기획기사를 골격으로 하여, 연재 당시 지면의 한계로 빠진 부분과 취재 때 미진했던 부분들을 대폭 보완하여 엮어낸 것이다.
이 책은 총론과 본론 4부로 이뤄졌다. 총론에서는 이 책에서 다룰 주제들을 전반적으로 개괄하고 있다. 일제 강제동원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을 위해, 조선인 강제동원의 방식과 유형, 과정을 실제 강제동원 피해자의 사례를 짚어가며 알기 쉽게 설명한다. 또한 강제동원의 한 축으로 작동한 일본 기업들의 숨겨진 역할에 대한 중요한 물음을 던진다. 그리고 1부에서 2부까지는 일본 본토의 강제동원지를 취재한 글을 각 기업별로 묶었다. 우리 사회에도 잘 알려진 미쓰비시나 미쓰이 등 일본의 굵직굵직한 대기업은 물론 국내에 비교적 덜 알려진 일본 기업들의 조선인 노무자 작업장을 취재했다. 필자들이 찾아간 대부분의 작업장은 폐광됐거나 관광지로 탈바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역사의 흔적을 찾으려는 필자들의 힘겨운 취재 과정이 흥미롭게 그려진다. 3부는 일본 본토를 제외한 강제동원지인 남양군도, 사할린 등에 대한 현장 취재와 국내 동원, 유골 반환 문제 등을 다루고 있다. 특히 국내 동원의 경우 일제가 조선인들을 석탄을 캐는 일보다 금을 캐는 일에 집중적으로 동원시킨 사례가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4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일본 정부와 기업 간의 피해 배상, 미불임금 보상에 대한 소송 투쟁의 역사를 보여준다. 반복되는 패소에도 불구하고 소송을 멈추지 않는 피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그들을 돕는 한일 양국 시민운동가들의 뜨거운 열정이 감동적으로 그려진다.
강제동원 기간 6년은 ‘전 민족적 수난’
일본 전범기업은 조선인 강제동원에 어떤 역할을 했나?
이 책은 기존 국내에 출간된 강제동원 자료집과 피해자들의 증언록과는 뚜렷이 차별되는 내용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먼저 이 책은 일제시대 강제동원 분야 중 징병과 군 위안부 부분은 거의 다루지 않고 징용 부분에 집중하고 있다. 징병과 군 위안부 피해 사실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인지도가 상당히 높은 반면, 피해자 규모 면에서는 훨씬 압도적인 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오히려 일반적 관심이 현저히 떨어지는 것을 반영한 것이다. 실제 필자들이 학계의 연구 결과를 검토한 바에 따르면, 1939년부터 해방 전까지 6년 동안 매년 조선 인구의 30%나 되는 600~700만 명이 일제의 강제동원 현장에 투입됐다. 그리고 이렇게 동원된 노무자 중 적게는 10~20만 명, 많게는 50만 명이 작업장에서 죽음을 맞았다. 필자들이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전 민족적 수난’이었다고 기술하는 것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다음으로 이 책은 기존 국내 연구들이 간과해온 강제동원의 주요 축인 일본 기업들의 역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39년경 일본 대기업들은 일제의 침략전쟁에 조달할 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군수기업으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당시 대기업들은 생산 인력에 필요한 인원을 모집하기 위해 식민지에 눈을 돌렸다. 대기업들이 고용한 브로커들이 조선 현지로 찾아가 모집 활동에 주도적 역할을 했고, 노무자 인솔부터 작업장 관리까지 기업의 손이 미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 필자들은 조선인 강제동원지로 알려진 나가사키 조선소, 미쓰이 탄광 등의 당시 강제동원 작업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일본 기업들이 강제동원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실증적으로 제시할 수 있는 증언과 자료를 찾는 데 주력했다.
셋째, 이 책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한 필자들의 다각적인 노력과 고민의 과정이 담겨 있다. 전문가 집단의 자문, 외국 사례의 검토, 중국인 동원 피해자들이 일본기업 배상 청구 소송으로부터 화해를 이끌어낸 사례를 점검한다. 이를 통해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는 결코 해결 불가능한 문제가 아님을 역설한다. 특히 필자들은 독일의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EVZ)의 사례를 주목하면서, 전범기업들이 전후 일본 정부에 맡긴 미불임금에 대한 공탁금 등을 토대로 일본 정부와 함께 기금을 창설할 것을 제안한다. 또한 중국인 강제연행 피해자들이 니시마츠건설과 화해를 이끌어내어 보상금을 받아낸 데에는 중국 정부의 노력과 중국 국민의 여론이 크게 작용했다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일본 전범기업의 국내 투자·영업 활동에 제약을 줄 수 있는 압박 수단들을 강구할 수 있다면, 전범기업들이 지금처럼 강제동원 문제를 미온적으로 대응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적을 포기한 사람들…… 피해자 보상 문제 그렇게 어려운가?
소수자의 문제로 방치된 과거사!
2010년 11월 2일 민주당 이용섭 의원은 대정부질문에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9대 정책을 제안했다. 이 의원은 “해방된 지 65년이 지났지만 일제 강점기 아래 강제 동원된 근로자 문제에 대해 양국 간 과거사 청산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제안의 취지를 밝혔다. 이 의원이 제시한 9대 정책은 일본 전범기업들의 기금 마련이나 포스코와 같은 한일협정 대일청구권자금의 수혜 기업들의 기금 조성 등, 이 책의 필자들이 제시한 해법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강제동원 피해자 보상 문제와 관련한 해법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많이 논의되어왔다. 그중에 몇몇 제안들은 충분히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문제의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왜일까? 필자들은 그 주된 이유가 우리 정부의 의지 부족에 있다고 본다. 일본 정부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대일청구권 문제는 끝났다는 입장이고, 과거 정부와 기업들이 행한 범죄 사실을 먼저 나서서 밝힐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필자들은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에 도의적 책임을 묻기 전에 우리 정부가 강제동원 문제를 보다 치밀하게 조사하고 피해자들의 보상 해법을 강구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현황 조사는 물론이고 미불임금 규모, 일본 내 미귀환 유골 파악 등 강제동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수적인 사전조사조차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배상 문제에 있어서는 일본 정부와 기업들을 제대로 압박하지도 못했다. 2004년 특별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보상 문제도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럼 그동안 정부는 이 문제에 왜 이렇게 소극적으로 대처했을까. 필자들은 강제동원의 문제가 한편으로 소수자 문제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피해자들 대부분이 고령에다가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든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실제 통계를 보면 강제동원 피해자의 대다수가 오늘날까지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다. 보통 마을에서 가장 못 배우고 힘이 없는 사람들이 징용 대상자로 뽑혀 끌려갔다. 그들은 한창 경제적 활동을 할 나이에 돈 한 푼 없이 귀향해야 했고, 그중에는 부상자도 적지 않았다. 이렇게 그들은 고국에 돌아와서도 수십 년간 사회적·경제적으로 낮은 지위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소수자인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렇게 수십 년이 흘렀다. 그러다 2003년 청와대 앞에서 사건이 터졌다. 자신들의 호소에 무관심한 국가를 향해 일제 피해자 단체 회원들이 강력한 시위를 벌인 것이다. 일명 ‘국적 포기 사건’이다.
2003년 8월 ‘태평양전쟁 희생자유족회’, ‘일제 강제연행 한국 생존자협회’, ‘나눔의 집’, ‘시베리아 삭풍회’ 등 일제 피해자 단체 회원 약 300여 명이 청와대 앞에서 국적 포기 선언을 하기에 이른다. 이들은 “한국 정부가 1965년 체결된 한일협정과 대일 관계를 이유로 희생자들을 외면하고 있다”고 절규했다. 나라를 잃어 타국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리며 청춘을 바친 사람들이 자신들을 보호해줄 그 국가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하는 일 만큼 비극적인 게 또 있을까. 막다른 곳에 다다른 고령의 피해자들이 최후의 선택을 한 것이다. ―본문 521쪽
이 사건을 계기로 한국 정부는 2004년부터 위로금 지원 사업을 시작한다. 일본 정부와 기업이 돌려주어야 할 돈을 한국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신 주겠다는 것이다.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유족, 부상자의 유족, 생환자 등을 구별하여 보상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필자들은 우리 정부가 이만큼이나마 강제동원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환영할 일이나, 여전히 여러 가지 면에서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먼저 강제동원 노무자인지를 가늠할 수 있는 기록이 빈약하다는 주장이다. 이런 기록은 주로 일본에 기댈 수밖에 없는데, 일본 정부와 기업으로부터는 기초적인 자료들밖에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가 보다 전략적으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얻어내야 한다는 게 필자들의 생각이다. 그 밖에 국내 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지원되지 않는 점, 미불임금 지급금이 현대 물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필자들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한일관계 어떻게 만들 수 있나
피해자, 가해자 모두가 기억해야 진정한 화해 가능
과거에 대한 피해의식 차원이 아니라, 역사의 퇴행을 막기 위한 작은 안전장치로서 이 책이 독자들의 역사 인식에 보탬이 되기를 소망한다. 피해자가 기억하고 가해자도 기억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고 미래도 열린다. 어설픈 초월이나 망각은 역사의 교훈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프리모 레비가 『익사한 자와 구조된 자』에서 던진 명제를 상기한다. “과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다.” - 「들어가는 글」 10쪽
고(故) 박경식의 『조선인 강제연행의 기록』은 조선인 강제동원 희생자에 대한 최초의 보고서로, 1965년 한일협정이 맺어진 해에 출간됐다. 그는 서문에서 “조선과 일본의 우호친선과 진정으로 평등한 국제 연대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다”고 밝혔다. 국가 간에 진정한 우호관계가 형성되려면 두 나라의 과거사 청산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강제병합 100주년에 즈음하여 일본 간 나오토 총리의 담화가 있었다. 다음 100년을 내다보며 미래지향적 한일관계를 구축하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국내 여론들은 담화 내용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한일 강제병합 조약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발언도 없었고, 군 위안부나 징용 노무자 등 전쟁 피해자들의 보상 문제에 대한 언급도 찾을 수 없었다. 한마디로 알맹이는 모두 빠졌다는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과오에 대한 분명한 청산 없이 한일관계의 미래를 얘기할 수 있을까? 이것은 필자들이 이 책을 통해 던지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질문이기도 하다.
또한 필자들은 우리 정부와 사회 또한 과거사 문제에 대해 너무 무관심해왔다고 지적한다. 민주정부가 들어서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강제동원 문제가 불거진 것도 점도 그렇고,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제의 침략전쟁 과정에 벌어진 피해 사실들을 제기하며 일본 정부를 압박하지 못했던 것도 문제라는 것이다. 어쩌면 정부의 이런 소극적인 태도가 우리 사회 일반의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무관심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필자들은 일본 현지 취재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준 일본인 사회운동가들에게 깊은 감동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자비를 들여 평생을 걸쳐 조선인 강제동원 문제를 연구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무관심과 비교하면 크게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오는 11월 27일에 윤도현 밴드가 교토에서 단바망간기념관 재건을 위한 기금 마련 자선 공연을 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단바망간기념관은 고(故) 이정호 씨가 단바 지역의 망간광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을 기리기 위한 기념관으로 2009년 폐관됐다. 우리 사회의 의식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 대중들에게 중요한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그 역사를 제대로 알 때에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과거 이런 일이 벌어졌다. 그러므로 그런 일은 다시 일어날 수 있다.” 프리모 레비의 이 말은 역사의 피해자나 역사의 가해자 모두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 작가 소개
저자 : 김호경
고려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했다. 전공과 무관한 길을 택해 1997년 국민일보에 입사했다. 주로 정치부 정당팀과 사회부 사건팀·법조팀에서 일했다. 문화부에서도 약 2년 근무하며 미술·출판 분야 등을 담당했다. 사회부 사건팀장 시절 고위공직자 등의 ‘쌀 직불금 부당수령’ 사건 보도로 동료들과 함께 삼성언론상,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저자 : 권기석
서강대학교 사회학과와 같은 곳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3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사회부, 탐사기획팀, 정치부에서 일했다. ‘월남越南1세대, 그들이 사라진다’, ‘한국 속?난민, 그들은 누구인가’, ‘국민기초생활보장제 10년 긴급 점검’ 등의 기획 보도를 했다. ‘사형수 63인 리포트’ 기획 보도로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에 이어 관훈언론상을 수상했다.
저자 : 우성규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2004년 국민일보에 입사해 국제부, 사회부, 정치부, 탐사기획팀을 거쳤다. 선배 기자와 함께 고위공직 후보자 논문 문제를 탐사 보도해 한국기자상과 한국신문상을 수상했다. ‘이명박 대선 후보 위장전입’ 추적 보도, ‘기후변화-조용한 재앙’ 특별기획 보도로 이달의 기자상을 받았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
총론 강제동원과 전범기업
1. 강제동원이란 무엇인가
2. 왜 기업이 문제인가
3. 모리야 요시히코 총괄 인터뷰
1부 일본 3대 재벌의 전쟁범죄
1. 군수산업의 대명사, 미쓰비시
2. 극우진영과 결탁한 최대재벌, 미쓰이
3. 군국주의의 배후 조종자, 스미토모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관부연락선
2부 낯선 기업, 숨은 가해자
1. 근로정신대 징용의 주범, 후지코시
2. 일본제철, 철을 녹여 포탄으로
3. 아키타 현 대표 전범기업, 도와홀딩스
4. 아소, 골수 우익 가문의 탄광 잔혹사
5. 공포의 노예노동, 북해도탄광기선
6. 그 밖의 전범기업들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문학작품 속에 나타난 강제동원
3부 강제동원 더 깊이 들여다보기
1. 남양군도, 휴양지 속에 깃든 피눈물
2. 사할린, 일본에 버림받고 소련에 억류된 징용자들
3. 국외 동원 그늘에 가려진 국내 동원
4. 미귀환의 상징, 유골 문제
5. 강제징용 최소한의 보상, 미불임금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99엔의 굴욕? 35엔짜리 수당 지급도 있었다
4부 투쟁과 좌절, 그리고 희망의 역사
1. 투쟁과 좌절의 역사
2. 영원한 족쇄 한일협정
3. 베를린에서 길을 찾다
4. 전범기업에 승리한 중국인 피해자들
5. 한일 양국과 기업이 나아갈 길
*강제동원 이것이 궁금했다면―박경식의 위대한 첫걸음, 그리고 일본 풀뿌리 NGO의 힘
미주
글을 마치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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