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지구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주 특별한 SF 동화
SF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문학 장르 중 하나이다. 특히 미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전 세계 어린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저서 『미래 쇼크』에서 “상상력을 통해 사회적ㆍ심리적ㆍ윤리적 문제를 미리 탐험해 볼 수 있도록 어린이들에게 공상 과학(SF)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아동문학 작가들이 SF 동화에 도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계절 중학년문고 스무 번째 책인 『패티의 초록 책』(The Green Book)은 조금은 ‘별난’ SF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작가 질 페이턴 월시(Jill Paton Walsh)가 1982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지구를 떠난 사람들이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기존 SF물에 으레 등장하는 로봇이나 고도로 발전된 미래 사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 흔한 외계인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낯선 환경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응해 나가는 인간들의 모습만이 존재할 뿐이다.
『패티의 초록 책』은 순수문학의 본령으로만 여겼던 ‘인간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보여줌으로써 SF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바로 이러한 점이 『패티의 초록 책』이 거둔 문학적인 성취이며,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초록 책을 펼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먼 미래,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만다. 패티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기 위해 우주선에 오른다. 우주선 안에는 가난한 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뽑힌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탄 우주선은 낡고 오래되어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실을 수 있는데, 패티의 아빠는 아이들에게 책 한 권씩을 가져가도 좋다고 특별히 허락한다. 패티는 초록색 비단 표지에 금박 장식이 들어간 책 한 권을 챙긴다. 그런데 패티의 책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빈 노트라는 사실이 몇 달 뒤에야 밝혀진다. 조와 세라는 어린 여동생의 실수를 비웃고, 패티의 아빠는 자신이 직접 책을 골라 주지 않은 걸 후회한다.
세라가 책을 펴 보고 소리쳤다.
“아무것도 안 쓰여 있잖아!”
조가 말했다.
“비망록으로 쓰는 거네.”
세라가 물었다.
“그게 뭔데?”
“수첩 같은 거, 간직하고 싶은 생각을 써 두는 공책 같은 거야.”
“그럼 패티는 몇 달 동안이나 이걸 읽는 척했던 거야?”
세라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거렸다. -17~18쪽
사람들은 4년 동안 긴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유난히 붉고 반짝거리는 새 행성에 도착한다. 갓난아기를 제외하고 가장 나이가 어린 패티가 그곳의 이름을 ‘샤인’이라고 짓는다. 모든 식물이 투명한 유리처럼 반짝이는 땅, 샤인. 그러나 이 땅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은 유리 같아서 쉽게 부수어질뿐더러 날카로워 먹을 수도 없다. 사람들은 각자 역할을 나누어 손수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밭을 일구어 지구에서 가져온 밀알을 뿌린다.
어른들이 일을 하는 사이, 패티를 비롯한 아이들은 샤인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무언가를 발견하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에 들어온 것들은 불이 잘 붙는 나무나 초록빛을 내는 해파리, 달콤한 수액이 영그는 사탕나무 숲 같은,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이곳에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찾아 낸 나무로 땔감을 만들고 해파리로 등불을 만들며, 사탕나무에서 필요한 열량을 보충한다. 어느덧 샤인에도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고, 밀은 연둣빛에서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탐스럽게 자라난다. 그러나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수확한 밀은 낟알 껍질을 벗기자 황금빛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노란 육각형 구슬로 바스라진다. 비상식량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아아, 그 모습은 지구를 보는 듯했다. 사람들은 향수병으로 괴로워했다. 사람들은 슬프고 지치고 비참했다.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어른들은 괴로워했다. 그리고 아서 아저씨와 함께 농사일의 전문가인 빌 아저씨가 밀 잎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유리 자라듯이 뚝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근심은 더욱더 깊어졌다. 그래서 밀과 함께 두려움도 자라났다. 이 행성에서는 어떤 곡식도 기를 수 없으리라는 끔찍한 두려움이었다. -81~82쪽
그러나 패티와 조, 세라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밀을 가루로 곱게 빻아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난다. 아이들 덕분에 밀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 축제를 벌인다. 그리고 추수한 곡식을 서로 공평하게 나눈 뒤 음식을 어떻게 나눴는지 기록할 종이를 찾다가 패티가 가져온 초록 책을 떠올린다. 하지만 패티의 빈 노트를 보는 순간, 그들의 눈앞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펼쳐지는데…….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미래 소설
『패티의 초록 책』은 비교적 쉽고 간결한 구조 속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상징을 품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은 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빛나는 이유는 이야기의 주체를 아이들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패티는 지구를 떠나온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한다. 그래서 낯선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는 어른들과 달리 샤인의 모든 것이 신비롭고 놀랍기만 하다. 그것은 조와 세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아이들의 동심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는 역할을 한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아이들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패티의 초록 책’ 안에는 놀라운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패티는 지구를 떠나올 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공책을 가져와 웃음거리가 된다. 하지만 철없는 아이가 벌인 한낱 해프닝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보게 된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패티의 초록 책은 결국 비어 있기에 채워질 수 있는, 세상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이야기’, 즉 역사가 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라진 영웅의 자리는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될 아이들의 몫인 것이다. 작가는 벼랑 끝에 내몰린 지구인들의 운명을 책임질 열쇠를 패티에게 쥐여 줌으로써 말 그대로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미래 소설’을 탄생시켰다.
일과 사람, 그 안에서 다시 쓰여지는 인류 역사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작품 속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샤인의 풍경은 어느 시골 마을을 연상시킬 만큼 목가적이며, 사람들의 삶 역시 그러하다. 모든 식물이 유리처럼 투명한 샤인은 그 무엇에도 때 묻거나 훼손되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돕고 부지런히 일하며 삶을 꾸려 나간다. 필요한 것들은 자연에서 얻고, 저녁이면 모두 둘러앉아 이야기꾼이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종말 이후에 시작된 새로운 삶이 소박하게 살던 옛 사람들의 삶과 닮아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만큼’의 곡식을 기르고 나누어 먹는 일. 작가는 그러한 공동체적인 삶이야말로 새롭게 쓰일 인류 미래의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패티의 초록 책』은 간결하면서도 시적인 문장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진지한 물음들을 통해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 또한 어른들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선사한다. ‘소설 속 소설’이라는 독특한 이야기 구성도 읽는 재미와 함께 이 작품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 작가 소개
글 : 질 페이턴 월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 영어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66년 『헹기스트의 이야기』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등단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으며, 1970년대 영국 최고의 리얼리즘 작가라는 평판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북월드페스티벌 상을 받은 『분홍바늘꽃』(1969), 휘트브레드상을 받은 『황제의 수의』(1974), 국제 혼북 상을 수상한 『남은 것』(1976) 등이 있다. 현재 『어린이 책의 역사』의 저자 존 로 타운젠드와 함께 그린 베이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역자 : 햇살과 나무꾼
동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으로, 세계 곳곳에 묻혀 있는 좋은 작품들을 찾아 우리말로 소개하고 어린이의 정신에 지식의 씨앗을 뿌리는 책을 집필하는 어린이책 전문 기획실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 『모래밭 아이들』 『소녀의 마음』 『선생님, 내 부하 해』 『하늘의 눈동자』등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옮겼으며, 그 밖에『침묵의 카드 게임』 『열일곱 살 아빠』 『그리운 메이 아줌마』 『워터십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내가 나인 것』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리고 지은 책으로는 『위대한 발명품이 나를 울려요』 『세상을 바꾼 말 한 마디』석기 시대로 떨어진 아이들』등이 있다.
그림 : 박형동
‘성장''을 주제로 한 단편 만화와 일러스트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리버 보이』, 『우리들의 스캔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비롯한 다수의 표지 그림을 그렸고, 만화 작품집으로 『바이바이 베스파』가 있다. 경기 대학교와 상남 초등학교 등에서 예술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구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아주 특별한 SF 동화
SF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문학 장르 중 하나이다. 특히 미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전 세계 어린이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자신의 저서 『미래 쇼크』에서 “상상력을 통해 사회적ㆍ심리적ㆍ윤리적 문제를 미리 탐험해 볼 수 있도록 어린이들에게 공상 과학(SF)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많은 아동문학 작가들이 SF 동화에 도전하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사계절 중학년문고 스무 번째 책인 『패티의 초록 책』(The Green Book)은 조금은 ‘별난’ SF 동화라고 할 수 있다. 영국 작가 질 페이턴 월시(Jill Paton Walsh)가 1982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지구를 떠난 사람들이 새로운 행성에 정착하기까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하지만 기존 SF물에 으레 등장하는 로봇이나 고도로 발전된 미래 사회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 흔한 외계인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낯선 환경에서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으며 적응해 나가는 인간들의 모습만이 존재할 뿐이다.
『패티의 초록 책』은 순수문학의 본령으로만 여겼던 ‘인간성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보여줌으로써 SF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바로 이러한 점이 『패티의 초록 책』이 거둔 문학적인 성취이며, 출간된 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일 것이다.
초록 책을 펼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먼 미래, 지구는 더 이상 인간이 살 수 없는 지경에 다다르고 만다. 패티는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새로운 행성으로 떠나기 위해 우주선에 오른다. 우주선 안에는 가난한 나라에서 마지막으로 뽑힌 사람들로 가득하다. 그들이 탄 우주선은 낡고 오래되어서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물건만 실을 수 있는데, 패티의 아빠는 아이들에게 책 한 권씩을 가져가도 좋다고 특별히 허락한다. 패티는 초록색 비단 표지에 금박 장식이 들어간 책 한 권을 챙긴다. 그런데 패티의 책이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빈 노트라는 사실이 몇 달 뒤에야 밝혀진다. 조와 세라는 어린 여동생의 실수를 비웃고, 패티의 아빠는 자신이 직접 책을 골라 주지 않은 걸 후회한다.
세라가 책을 펴 보고 소리쳤다.
“아무것도 안 쓰여 있잖아!”
조가 말했다.
“비망록으로 쓰는 거네.”
세라가 물었다.
“그게 뭔데?”
“수첩 같은 거, 간직하고 싶은 생각을 써 두는 공책 같은 거야.”
“그럼 패티는 몇 달 동안이나 이걸 읽는 척했던 거야?”
세라는 그렇게 말하고 낄낄거렸다. -17~18쪽
사람들은 4년 동안 긴 항해를 마치고 마침내 유난히 붉고 반짝거리는 새 행성에 도착한다. 갓난아기를 제외하고 가장 나이가 어린 패티가 그곳의 이름을 ‘샤인’이라고 짓는다. 모든 식물이 투명한 유리처럼 반짝이는 땅, 샤인. 그러나 이 땅에서 자라는 모든 식물은 유리 같아서 쉽게 부수어질뿐더러 날카로워 먹을 수도 없다. 사람들은 각자 역할을 나누어 손수 나무를 베어 집을 짓고, 밭을 일구어 지구에서 가져온 밀알을 뿌린다.
어른들이 일을 하는 사이, 패티를 비롯한 아이들은 샤인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며 무언가를 발견하는 재미에 흠뻑 빠진다. 아이들의 호기심 어린 눈에 들어온 것들은 불이 잘 붙는 나무나 초록빛을 내는 해파리, 달콤한 수액이 영그는 사탕나무 숲 같은, 어찌 보면 사소하지만 이곳에 살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자원이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찾아 낸 나무로 땔감을 만들고 해파리로 등불을 만들며, 사탕나무에서 필요한 열량을 보충한다. 어느덧 샤인에도 새로운 계절이 찾아오고, 밀은 연둣빛에서 황금색으로 옷을 갈아입으며 탐스럽게 자라난다. 그러나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과는 달리 수확한 밀은 낟알 껍질을 벗기자 황금빛 유리처럼 반짝거리는 노란 육각형 구슬로 바스라진다. 비상식량도 점점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깊은 절망에 빠진다.
아아, 그 모습은 지구를 보는 듯했다. 사람들은 향수병으로 괴로워했다. 사람들은 슬프고 지치고 비참했다. 아이들은 그렇지 않았지만, 어른들은 괴로워했다. 그리고 아서 아저씨와 함께 농사일의 전문가인 빌 아저씨가 밀 잎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유리 자라듯이 뚝 꺾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자 근심은 더욱더 깊어졌다. 그래서 밀과 함께 두려움도 자라났다. 이 행성에서는 어떤 곡식도 기를 수 없으리라는 끔찍한 두려움이었다. -81~82쪽
그러나 패티와 조, 세라는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밀을 가루로 곱게 빻아 팬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그리고 다음 날, 그 어느 때보다 상쾌한 기분으로 깨어난다. 아이들 덕분에 밀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사람들은 풍성한 수확 축제를 벌인다. 그리고 추수한 곡식을 서로 공평하게 나눈 뒤 음식을 어떻게 나눴는지 기록할 종이를 찾다가 패티가 가져온 초록 책을 떠올린다. 하지만 패티의 빈 노트를 보는 순간, 그들의 눈앞에 깜짝 놀랄 만한 일이 펼쳐지는데…….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미래 소설
『패티의 초록 책』은 비교적 쉽고 간결한 구조 속에 여러 가지 의미 있는 상징을 품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은 뒤 다양한 이야깃거리를 길어 올릴 수 있다는 게 매력이다. 무엇보다 이 책이 빛나는 이유는 이야기의 주체를 아이들로 그려냈다는 것이다. 패티는 지구를 떠나온 사람들 가운데 가장 어린 나이에 속한다. 그래서 낯선 환경에 두려움을 느끼는 어른들과 달리 샤인의 모든 것이 신비롭고 놀랍기만 하다. 그것은 조와 세라도 마찬가지다. 이런 아이들의 동심은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들을 발견하는 역할을 한다. 어려움에 부딪힐 때마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 역시 아이들이다.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패티의 초록 책’ 안에는 놀라운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다. 패티는 지구를 떠나올 때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은 빈 공책을 가져와 웃음거리가 된다. 하지만 철없는 아이가 벌인 한낱 해프닝 때문에 사람들은 다시 희망을 보게 된다.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패티의 초록 책은 결국 비어 있기에 채워질 수 있는, 세상을 호기심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볼 수 있기에 ‘잊지 않으려고 쓰는 이야기’, 즉 역사가 된다.
그래서 이 책에는 ‘영웅’이 존재하지 않는다. 사라진 영웅의 자리는 새로운 땅의 주인이 될 아이들의 몫인 것이다. 작가는 벼랑 끝에 내몰린 지구인들의 운명을 책임질 열쇠를 패티에게 쥐여 줌으로써 말 그대로 ‘어린이의,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미래 소설’을 탄생시켰다.
일과 사람, 그 안에서 다시 쓰여지는 인류 역사
또 하나 흥미로운 건 작품 속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이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는 사실이다. 샤인의 풍경은 어느 시골 마을을 연상시킬 만큼 목가적이며, 사람들의 삶 역시 그러하다. 모든 식물이 유리처럼 투명한 샤인은 그 무엇에도 때 묻거나 훼손되지 않은 순수 그 자체의 공간을 의미한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서로 돕고 부지런히 일하며 삶을 꾸려 나간다. 필요한 것들은 자연에서 얻고, 저녁이면 모두 둘러앉아 이야기꾼이 입으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 종말 이후에 시작된 새로운 삶이 소박하게 살던 옛 사람들의 삶과 닮아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모두가 잘 살 수 있을 만큼’의 곡식을 기르고 나누어 먹는 일. 작가는 그러한 공동체적인 삶이야말로 새롭게 쓰일 인류 미래의 역사라고 이야기한다.
『패티의 초록 책』은 간결하면서도 시적인 문장과 그 안에 녹아 있는 진지한 물음들을 통해 미래의 주인인 아이들에게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삶의 지침을 제시한다. 또한 어른들에게는 과거와 현재를 통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선사한다. ‘소설 속 소설’이라는 독특한 이야기 구성도 읽는 재미와 함께 이 작품의 매력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 작가 소개
글 : 질 페이턴 월시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고 영어 교사 생활을 하다가 1966년 『헹기스트의 이야기』를 발표하면서 작가로 등단했다. 인간의 존엄성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주로 발표했으며, 1970년대 영국 최고의 리얼리즘 작가라는 평판을 받았다. 작품으로는 북월드페스티벌 상을 받은 『분홍바늘꽃』(1969), 휘트브레드상을 받은 『황제의 수의』(1974), 국제 혼북 상을 수상한 『남은 것』(1976) 등이 있다. 현재 『어린이 책의 역사』의 저자 존 로 타운젠드와 함께 그린 베이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역자 : 햇살과 나무꾼
동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곳으로, 세계 곳곳에 묻혀 있는 좋은 작품들을 찾아 우리말로 소개하고 어린이의 정신에 지식의 씨앗을 뿌리는 책을 집필하는 어린이책 전문 기획실이다.
『내가 만난 아이들』 『모래밭 아이들』 『소녀의 마음』 『선생님, 내 부하 해』 『하늘의 눈동자』등 하이타니 겐지로 선생님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옮겼으며, 그 밖에『침묵의 카드 게임』 『열일곱 살 아빠』 『그리운 메이 아줌마』 『워터십다운의 열한 마리 토끼』 『내가 나인 것』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그리고 지은 책으로는 『위대한 발명품이 나를 울려요』 『세상을 바꾼 말 한 마디』석기 시대로 떨어진 아이들』등이 있다.
그림 : 박형동
‘성장''을 주제로 한 단편 만화와 일러스트 작품을 꾸준히 발표해 왔다. 『리버 보이』, 『우리들의 스캔들』, 『플라이 대디 플라이』를 비롯한 다수의 표지 그림을 그렸고, 만화 작품집으로 『바이바이 베스파』가 있다. 경기 대학교와 상남 초등학교 등에서 예술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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