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전쟁은 인간 수컷을 남자로 호출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사내새끼가 그것도 못해?”, “그는 남자답고 아주 듬직해.”, “남성미가 철철 넘치시네요!”,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지.” “요즘 남자들은 약해 빠졌어.” 마초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저런 말들의 이면에는 ‘남성, 남자’에 대한 일련의 고정관념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 -남자는 힘 있고 당당하고 주체적이어야 한다. -남자라면 불의 앞에 굴해선 안 된다. -남자라면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등등. 남성성, 남성적인 것, 남자다운 것에 대한 이러한 모든 마초적 관념의 기원에 대해선 그동안 수많은 해석이 있어 왔다. 또 온갖 생물학적·사회학적·인류학적·문화적 요인이 제시되었다. 그러한 해석들의 공통점은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성이 전쟁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남성성을 불변의 것으로 본다는 점에선 남성중심주의든 페미니즘이든 다르지 않았다.
통상 남성성은 본질적으로 절대불변의 것이고 전쟁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여겨진다. 남자들이 원래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 19세기와 20세기의 페미니즘은 스스로를 정의하려고 이런 반석 같은 남성성 이론을 배경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러나 남자는 늘 그대로다. 그러므로 남성성은 종종 가부장제의 권력을 비롯한 여타 ‘불변의’ 생각들의 전치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남성 우월론자에게 남성성이란 이 부패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음직스러운 본보기이기도 했다. 나약하고 썩어 빠진 문명은 여자 같은 것이고, 진짜 남자는 그것과는 다르다. ---‘서론’ 중
신간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부제: 전쟁과 남성성의 변화)는 바로 이러한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전복하면서 남성성의 기원에 대해 새롭고 유례없이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 ‘남성’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왔고, 역으로 그 ‘전쟁’ 역시 남성성의 변화와 더불어 진화를 해 왔다는 것이다.
인류사라는 지형의 주요 굴곡을 만들어온 것은 전쟁이다. 곧 전쟁은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그 전쟁의 양상 역시 역사 속에서 변화해 왔다. 전쟁을 뒷받침해 온 이데올로기, 전쟁 무기, 주요 전략과 전술, 전개 양상, 규모 등 모든 점에서 전쟁은 진화와 변모를 거듭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역사 속 전쟁의 변천 가운데 남성성이 변화를 해 왔음을 치밀하게 논의한다. 물론 그 양상은 결코 필연적이고 결정론적이진 않다. 개연적이고 우발적인 방식으로 전쟁과 남성성은 상호 작용을 해 왔다는 점이, 책의 주요 논제라 할 수 있다. 폭넓은 배경 지식과 광범위한 사료에 의거한 논의가 가득한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직후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첨단 무기의 출현이 약한 남자를 양산하다?
고대 세계에서는 전쟁을 남성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통과 의례로 간주했다. 전쟁의 시련을 이겨 낸 자만이 전사이자 영웅이 될 수 있었고, 이들이 한 사회의 중심적 존재이자 진정한 남성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런데 고대의 전쟁은 야만에 대항한 성격이 강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한 전쟁의 성격과 결부해 남성이란 여성과 야만에 대비된 질서와 문명의 존재로 이해가 되었다. 무질서한 야만의 폭력을 응징한 정의로운 질서의 구현자. 그것이 고대가 이해한 남성이었다. 또한 이 시기의 전쟁 양상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이해도 지금과는 달랐다.
기원전 4세기, 동성 연인들로만 구성된 테반 성단(The Sacred Band of Theban)의 전사들은 카이로네이아(Chaeroneia)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에게 격퇴당하기 전까지 그리스의 자랑거리였다. …… 스파르타, 크레타, 봉건 일본 같은 많은 군사 사회를 비롯한 왕조 국가의 여러 정신적인 전사 집단에서, 동성 간에 동경심을 품고 나아가 동성애까지 이르는 관계는 전사 입문 · 훈련과 관련되는 측면이 있었다. ---‘서론’ 중
게이의 군입대를 반대하는 견해는 근대 이후의 남성관에서 비롯한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세에는 민족 간의 대립과 전쟁이 더욱 왕성하게 벌어진다. 이에 따라 남성성도 변화를 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 후반에는 전쟁으로 인해 민족적 차이에 대한 관념이 급격히 대두되어, 영국인들로 말하자면 “우리는 ‘계집애 같은’ 프랑스인들이나 ‘짐승 같은’ 아일랜드인 ? 스코틀랜드인들과 다르다”라는 식으로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기사도는 고대의 남성성에 대한 이해를 본질적으로 계승한다. 질서로 자신을 규정하는 남성성이 그것이다.
단단하게 빛나는 갑옷으로 몸을 감싼 채 싸우는 전사는 내가 ‘갇힌 남성성’이라고 부르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우월성에 초점을 맞춘 남성성의 전형이다. 수 세기 동안 유럽 남성성의 유일한 전범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주된 전범이었던 이러한 남성성은 종교라는 영적인 세계나 여성적인 가정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질서와 위계질서의 획일적 정치학으로 자신을 규정했다. 이러한 자아 감각은 문자 그대로 갑옷으로 장식된 신체(가장 고급스러운 전쟁 용품인)에 묶여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맨몸에 비해 훨씬 웅장하고 위협적인 모습을 투영하는 중세 시대 갑옷의 단단한 껍질은 그 자체가 기사도를 담아내는 형이상학적 인조 신체라 할 수 있다. --- 9장 ‘기사도의 스펙터클’ 중
명예를 중시하고, 문장이나 깃발, 장식 등을 중시하는 중세의 전투 양상은 바로 이러한 남성성에 대한 이해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전술상의 변화로는, 고대와 달리 중세에는 기병대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의 상징인 기사의 특권을 보여주는 것으로 “중장비 보병이 기사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식(전장에 맨발로 선 소크라테스가 그 예다)을 누르고, 갑옷에 싸인 기사의 계급 코드가 부상하는 현상을 보여 주는 예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중세사가인 필리프 콩타민(Philippe Contamine)은 실로 중세 전장의 진정한 혁신은 바로 기병이라고 말했다.”
근대에는 기술의 발달과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과 더불어 남성성이 대폭적으로 변화를 하게 된다. “전보, 철도, 장갑 증기선, 대형 범선의 청동 선체, 후장식 라이플총, 기관총과 여러 연발 무기들, 그리고 (좀 더 뒤에 가서는) 무연화약, 무기(와 기계류 전반) 제작을 한층 정교하게 만들어 준 정밀 나사 같은 것들뿐만 아니라, 비록 저급 기술이지만 군사적으로 중요한 기술인 가시철사” 등 다양한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전쟁 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도덕적이고 명예에 기반을 둔 전쟁-남성성의 결합을 파괴하고 보다 비인격적인 지배력이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된다. 신무기를 경멸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진정한 남성 전사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일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남성성은 더 이상 예전의 것일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남성을 규정하는 것은 더 이상 전쟁, 전시 상황만이 아니라는 인식의 대두다. 기존의 전사 남성성의 이미지 약화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유럽 사회가 더욱 복잡해져 중세의 ‘싸우는 자, 기도하는 자, 일하는 자’라는 분류를 넘어 훨씬 복잡한 남성적인 직업, 행동 양식, 성격 유형 등이 만들어지면서, 남성성을 오로지 군사적 위업하고만 연결짓는 핵심 전제가 서서히 부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군대가 직업화되어 그로 인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업무, 또는 직업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이미 시작된 과정이었고, 이 변화가 더욱 복잡해지는 데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그 전이라면 군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반 남성 시민들에게까지 군 동원령이 발령되었다는 사실이 한몫을 했다. --- 31장 ‘기술 진보와 실패한 역사’ 중
현대는 대량 학살 무기의 개발과 민족 국가 개념의 약화, 포스트 산업 사회의 전면적 대두라는 정세 속에서 양차 세계 대전과 같은 국가 간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는 시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서구 주류 세력의 이상과 문화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이 전면화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테러리즘이 발호하는 토양을 제공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을 강타한 알카에다의 테러는 현대가 테러리즘의 시대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테러리즘의 시대는 기존의 서구 백인 전사 남성-명예-국가-민족으로 이어진 일련의 가치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다원주의로 가는 맹아를 내포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유럽과 미국이 전쟁과 남성성 양측의 역사상 한 시대의 여파를 겪고 있으며, 섹슈얼리티, 종교나 인종을 개인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는, 인간 본성을 한층 크고 한층 복잡한 전체로 보는 방향으로 확실하게 옮겨가고 있지 않나 싶다. 민족성이나 민족주의의 연대들이 약화되는 것은 그 변화의 일부라고 해야 하리라. …… 유럽 역사를 기준으로, 배제를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 사회를 규정하는, 중세에서 시작된 순환의 고리가 이제 깨어지려 한다고 말하면 유토피아적이고 어리석게 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주의적이고 전사 중심적인 테러리즘과 남녀 양측의 더 넓은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산업 사회가 동시에 발생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인류가 자기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질곡에서 해방되는 데 필요한 한 걸음이 아닐까. --- 57장 ‘맺음말: 젠더 전쟁으로서의 테러리즘’ 중
‘남성·전쟁’, 그 착종된 역사를 파헤친 대작
무엇이 남성을 만드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은 일단 ‘전쟁’을 제시한다. 그러나 전쟁은 남성성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남성성의 변화에 의해 스스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기병대가 중시된 중세가 그 예이다. 또한 전쟁과 남성성의 상호 작용은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 맥락 속에서 지극히 복잡하고 착종된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 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문제의 핵심은 단일하고 고정 불변의 순수한 남성성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거나 규정을 당하는 방식에 작용하는 역사적 · 문화적 압력을 이해하지 않고, 또 개인들의 서로 다른 남성적 의무가 어떻게 더 큰 제도에 협력하거나 저항하는 그들 자신의 정체성의 갑주를 형성하는가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쟁과 남성성의 숙명적 등식을 벗어나, 얽히고설킨 그 둘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며 무엇이 부족한가를 식별해 낼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역사적으로 또는 특정한 한 시대에 남성성이 항상 동일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그 대신에 남성성이 어떤 전제가 아니라 탐색의 대상이 되는,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역사들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 남성성은 고정된 양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시스템이며, 그것이 늘 우리가 지금 아는 모습 그대로였다고 여기기보다는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할 수 없는가를 묻는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서론’ 중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대한 자료와 대화, 비판, 연구, 분석을 통해 저술된 이 저작은 남성성이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을 띠면서 어떤 식으로 진화를 해 왔는지를 조감할 수 있는 현존하는 최상의 책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리오 브로디 Leo Braudy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에는 컬럼비아의 예일 대학교와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인문학으로 국가기금의 시니어 스콜라 장학금을 받았고 구겐하임 펠로십도 수상했다. 로마에 있는 미국학 연구소의 상주작가 겸 이탈리아 벨라조의 빌라 세르벨로니 주재 록펠러 재단의 특별원구원이기도 하다. 전작인 『장 르누아르: 그의 영화 세계(Jean Renoir: The World of His Films)』는 내셔널 북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명성의 광열: 명성과 그 역사(The Frenzy of Renown: Fame and Its History)』는 내셔널 북 크리틱스 서클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와 『하퍼스』에도 기고했다. 아내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역자 : 김지선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오만과 편견』,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자의 초상』, 『돼지의 발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론: 무기와 남자
1부 남자와 남성성
1장 내 이름을 기억하라
2장 신체의 언어
3장 입문: 첫 상처
4장 전사와 여성
2부 갑옷과 명예
5장 전쟁의 순정함
6장 야만인 전사
7장 분노의 형태
8장 명예의 방패
9장 기사도의 스펙터클
10장 계보의 탄생: 기사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11장 기사와 기독교와 기사도: 어색한 화해
12장 기사도의 이론과 실제
13장 방랑 기사의 고독
14장 전투의 도발과 사랑의 유혹
3부 갑옷에서 성품으로
15장 제복과 갑주의 실추
16장 국가적 정체성과 종교의 명분
17장 돈, 민족주의, 그리고 ‘군사혁명’
18장 돈키호테와 개인 독자성의 픽션
19장 육체의 시험: 전투에 의한 재판, 단독 전투, 결투
20장 해적과 노상강도
21장 ‘남자’의 의례
4부 전투와 성
22장 전쟁과 포르노그래피
23장 수행 불안
24장 반대 성
5부 영웅은 아래로부터
25장 전쟁과 반전
26장 전장: 군주의 시선
27장 전장: 병사의 시선
28장 제복을 입은 국가
29장 시민이 군인으로, 군인이 시민으로
30장 일제 사격 대 조준 사격, 정규군 대 민병대
6부 19세기: 전쟁과 국가 정체성
31장 기술 진보와 실패한 역사
32장 야만의 에너지와 문명화된 의례
33장 소년 장군
34장 인간성의 통계학: 표준과 이상
35장 타락이라는 유령
36장 남자다운, 여자다운, 여자 같은: 문명인 내의 성
37장 스포츠와 남자다움의 이상
38장 1890년대의 가혹한 시련
39장 준비하라
7부 20세기: 대량 학살 무기와 전사 정신
40장 무인 지대의 영예
41장 원격 죽음
42장 광기의 이성
43장 원시 육체와 기계 육체
44장 T. E. 로렌스: 되살아난 모험
45장 후방의 전선: 평화주의와 준군사적 폭력
46장 31년 전쟁: 궁극의 지도자와 고독한 투사
47장 불순함의 위협: 인종주의와 여성혐오
48장 민간인을 겨누다
49장 후퇴 불가와 무조건 항복
50장 벽에 비친 그림자와 보통 남자
51장 세뇌와 내부전
52장 서부인의 고독
53장 전후 남성 섹슈얼리티와 킨제이 보고서
54장 완벽한 몸은 없다
55장 전선 없는 전쟁: 베트남과 냉전 종식
56장 전쟁 말고 사랑을 하자: 타고난 공격성 이론과 반전운동
57장 맺음말: 젠더 전쟁으로서의 테러리즘
삽화와 설명
서지 목록
감사의 말
전쟁은 인간 수컷을 남자로 호출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한다. “사내새끼가 그것도 못해?”, “그는 남자답고 아주 듬직해.”, “남성미가 철철 넘치시네요!”, “남자라면 군대를 다녀와야지.” “요즘 남자들은 약해 빠졌어.” 마초의 냄새를 풀풀 풍기는 저런 말들의 이면에는 ‘남성, 남자’에 대한 일련의 고정관념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보호해야 한다. -남자는 힘 있고 당당하고 주체적이어야 한다. -남자라면 불의 앞에 굴해선 안 된다. -남자라면 책임감이 있어야 한다. 등등. 남성성, 남성적인 것, 남자다운 것에 대한 이러한 모든 마초적 관념의 기원에 대해선 그동안 수많은 해석이 있어 왔다. 또 온갖 생물학적·사회학적·인류학적·문화적 요인이 제시되었다. 그러한 해석들의 공통점은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남성성이 전쟁을 유발했다는 것이다. 남성성을 불변의 것으로 본다는 점에선 남성중심주의든 페미니즘이든 다르지 않았다.
통상 남성성은 본질적으로 절대불변의 것이고 전쟁은 역사적 사건이라고 여겨진다. 남자들이 원래 그렇게 태어났기 때문에 전쟁은 일어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 19세기와 20세기의 페미니즘은 스스로를 정의하려고 이런 반석 같은 남성성 이론을 배경으로 사용하곤 했다. 그에 따르면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그러나 남자는 늘 그대로다. 그러므로 남성성은 종종 가부장제의 권력을 비롯한 여타 ‘불변의’ 생각들의 전치물이었다. 그런가 하면, 남성 우월론자에게 남성성이란 이 부패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믿음직스러운 본보기이기도 했다. 나약하고 썩어 빠진 문명은 여자 같은 것이고, 진짜 남자는 그것과는 다르다. ---‘서론’ 중
신간 『기사도에서 테러리즘까지』(부제: 전쟁과 남성성의 변화)는 바로 이러한 기존의 통념을 완전히 전복하면서 남성성의 기원에 대해 새롭고 유례없이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전쟁이 ‘남성’이라는 존재를 만들어 왔고, 역으로 그 ‘전쟁’ 역시 남성성의 변화와 더불어 진화를 해 왔다는 것이다.
인류사라는 지형의 주요 굴곡을 만들어온 것은 전쟁이다. 곧 전쟁은 역사를 만들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그 전쟁의 양상 역시 역사 속에서 변화해 왔다. 전쟁을 뒷받침해 온 이데올로기, 전쟁 무기, 주요 전략과 전술, 전개 양상, 규모 등 모든 점에서 전쟁은 진화와 변모를 거듭했다. 저자는 바로 이러한 역사 속 전쟁의 변천 가운데 남성성이 변화를 해 왔음을 치밀하게 논의한다. 물론 그 양상은 결코 필연적이고 결정론적이진 않다. 개연적이고 우발적인 방식으로 전쟁과 남성성은 상호 작용을 해 왔다는 점이, 책의 주요 논제라 할 수 있다. 폭넓은 배경 지식과 광범위한 사료에 의거한 논의가 가득한 이 책은 미국에서 출간 직후 대대적인 주목을 받았다.
최첨단 무기의 출현이 약한 남자를 양산하다?
고대 세계에서는 전쟁을 남성이 되기 위해 필수적인 통과 의례로 간주했다. 전쟁의 시련을 이겨 낸 자만이 전사이자 영웅이 될 수 있었고, 이들이 한 사회의 중심적 존재이자 진정한 남성으로 여겨진 것이다. 그런데 고대의 전쟁은 야만에 대항한 성격이 강했음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한 전쟁의 성격과 결부해 남성이란 여성과 야만에 대비된 질서와 문명의 존재로 이해가 되었다. 무질서한 야만의 폭력을 응징한 정의로운 질서의 구현자. 그것이 고대가 이해한 남성이었다. 또한 이 시기의 전쟁 양상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이해도 지금과는 달랐다.
기원전 4세기, 동성 연인들로만 구성된 테반 성단(The Sacred Band of Theban)의 전사들은 카이로네이아(Chaeroneia) 전투에서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왕에게 격퇴당하기 전까지 그리스의 자랑거리였다. …… 스파르타, 크레타, 봉건 일본 같은 많은 군사 사회를 비롯한 왕조 국가의 여러 정신적인 전사 집단에서, 동성 간에 동경심을 품고 나아가 동성애까지 이르는 관계는 전사 입문 · 훈련과 관련되는 측면이 있었다. ---‘서론’ 중
게이의 군입대를 반대하는 견해는 근대 이후의 남성관에서 비롯한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중세에는 민족 간의 대립과 전쟁이 더욱 왕성하게 벌어진다. 이에 따라 남성성도 변화를 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중세 후반에는 전쟁으로 인해 민족적 차이에 대한 관념이 급격히 대두되어, 영국인들로 말하자면 “우리는 ‘계집애 같은’ 프랑스인들이나 ‘짐승 같은’ 아일랜드인 ? 스코틀랜드인들과 다르다”라는 식으로 자신을 정의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중세의 기사도는 고대의 남성성에 대한 이해를 본질적으로 계승한다. 질서로 자신을 규정하는 남성성이 그것이다.
단단하게 빛나는 갑옷으로 몸을 감싼 채 싸우는 전사는 내가 ‘갇힌 남성성’이라고 부르는,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우월성에 초점을 맞춘 남성성의 전형이다. 수 세기 동안 유럽 남성성의 유일한 전범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주된 전범이었던 이러한 남성성은 종교라는 영적인 세계나 여성적인 가정 세계와 대조를 이루는, 질서와 위계질서의 획일적 정치학으로 자신을 규정했다. 이러한 자아 감각은 문자 그대로 갑옷으로 장식된 신체(가장 고급스러운 전쟁 용품인)에 묶여 있었다. 그 안에 있는 맨몸에 비해 훨씬 웅장하고 위협적인 모습을 투영하는 중세 시대 갑옷의 단단한 껍질은 그 자체가 기사도를 담아내는 형이상학적 인조 신체라 할 수 있다. --- 9장 ‘기사도의 스펙터클’ 중
명예를 중시하고, 문장이나 깃발, 장식 등을 중시하는 중세의 전투 양상은 바로 이러한 남성성에 대한 이해와 연관이 있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전술상의 변화로는, 고대와 달리 중세에는 기병대를 중시했다는 점이다. 이는 남성의 상징인 기사의 특권을 보여주는 것으로 “중장비 보병이 기사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인식(전장에 맨발로 선 소크라테스가 그 예다)을 누르고, 갑옷에 싸인 기사의 계급 코드가 부상하는 현상을 보여 주는 예다.” 이를 두고 “프랑스의 중세사가인 필리프 콩타민(Philippe Contamine)은 실로 중세 전장의 진정한 혁신은 바로 기병이라고 말했다.”
근대에는 기술의 발달과 민주주의의 발전으로 인해 전쟁의 양상과 더불어 남성성이 대폭적으로 변화를 하게 된다. “전보, 철도, 장갑 증기선, 대형 범선의 청동 선체, 후장식 라이플총, 기관총과 여러 연발 무기들, 그리고 (좀 더 뒤에 가서는) 무연화약, 무기(와 기계류 전반) 제작을 한층 정교하게 만들어 준 정밀 나사 같은 것들뿐만 아니라, 비록 저급 기술이지만 군사적으로 중요한 기술인 가시철사” 등 다양한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전쟁 기술의 발전은 기존의 도덕적이고 명예에 기반을 둔 전쟁-남성성의 결합을 파괴하고 보다 비인격적인 지배력이 전면에 나서는 계기가 된다. 신무기를 경멸하고 명예를 중시하는 진정한 남성 전사에 대한 향수를 간직한 일부의 반발이 있었지만, 남성성은 더 이상 예전의 것일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이러한 변화 중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남성을 규정하는 것은 더 이상 전쟁, 전시 상황만이 아니라는 인식의 대두다. 기존의 전사 남성성의 이미지 약화를 암시하는 대목이다.
유럽 사회가 더욱 복잡해져 중세의 ‘싸우는 자, 기도하는 자, 일하는 자’라는 분류를 넘어 훨씬 복잡한 남성적인 직업, 행동 양식, 성격 유형 등이 만들어지면서, 남성성을 오로지 군사적 위업하고만 연결짓는 핵심 전제가 서서히 부식하기 시작했다. 이는 군대가 직업화되어 그로 인해 전쟁을 수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업무, 또는 직업의 일종이라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이미 시작된 과정이었고, 이 변화가 더욱 복잡해지는 데는, 제1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그 전이라면 군인이 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던 일반 남성 시민들에게까지 군 동원령이 발령되었다는 사실이 한몫을 했다. --- 31장 ‘기술 진보와 실패한 역사’ 중
현대는 대량 학살 무기의 개발과 민족 국가 개념의 약화, 포스트 산업 사회의 전면적 대두라는 정세 속에서 양차 세계 대전과 같은 국가 간 전면전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이 강해지는 시대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해온 서구 주류 세력의 이상과 문화에 대한 비판과 문제의식이 전면화되고 있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는 테러리즘이 발호하는 토양을 제공한다. 2001년 9월 11일, 미국을 강타한 알카에다의 테러는 현대가 테러리즘의 시대라는 점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테러리즘의 시대는 기존의 서구 백인 전사 남성-명예-국가-민족으로 이어진 일련의 가치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다원주의로 가는 맹아를 내포하고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한다.
유럽과 미국이 전쟁과 남성성 양측의 역사상 한 시대의 여파를 겪고 있으며, 섹슈얼리티, 종교나 인종을 개인에 대한 판단 기준으로 삼을 필요가 없는, 인간 본성을 한층 크고 한층 복잡한 전체로 보는 방향으로 확실하게 옮겨가고 있지 않나 싶다. 민족성이나 민족주의의 연대들이 약화되는 것은 그 변화의 일부라고 해야 하리라. …… 유럽 역사를 기준으로, 배제를 통해 남성성과 여성성, 사회를 규정하는, 중세에서 시작된 순환의 고리가 이제 깨어지려 한다고 말하면 유토피아적이고 어리석게 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근본주의적이고 전사 중심적인 테러리즘과 남녀 양측의 더 넓은 가능성의 스펙트럼을 기꺼이 받아들이고자 하는 산업 사회가 동시에 발생한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인류가 자기 머릿속에서 만들어 낸 질곡에서 해방되는 데 필요한 한 걸음이 아닐까. --- 57장 ‘맺음말: 젠더 전쟁으로서의 테러리즘’ 중
‘남성·전쟁’, 그 착종된 역사를 파헤친 대작
무엇이 남성을 만드는가에 대한 물음에 대해 이 책은 일단 ‘전쟁’을 제시한다. 그러나 전쟁은 남성성을 규정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남성성의 변화에 의해 스스로 영향을 받기도 한다. 기병대가 중시된 중세가 그 예이다. 또한 전쟁과 남성성의 상호 작용은 사회, 문화, 경제, 정치적 맥락 속에서 지극히 복잡하고 착종된 방식으로 진행이 되어 왔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저자가 주장하는 문제의 핵심은 단일하고 고정 불변의 순수한 남성성 같은 것은 없다는 것이다.
남자들이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거나 규정을 당하는 방식에 작용하는 역사적 · 문화적 압력을 이해하지 않고, 또 개인들의 서로 다른 남성적 의무가 어떻게 더 큰 제도에 협력하거나 저항하는 그들 자신의 정체성의 갑주를 형성하는가를 의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쟁과 남성성의 숙명적 등식을 벗어나, 얽히고설킨 그 둘의 관계 속에서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이며 무엇이 부족한가를 식별해 낼 수 없다. 따라서 나는 역사적으로 또는 특정한 한 시대에 남성성이 항상 동일하다는 주장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이다. 그 대신에 남성성이 어떤 전제가 아니라 탐색의 대상이 되는, 정치사, 경제사, 사회사처럼 서로 다른 종류의 역사들이 교차하는 순간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 남성성은 고정된 양상이 아니라 역동적인 시스템이며, 그것이 늘 우리가 지금 아는 모습 그대로였다고 여기기보다는 무엇이 변하고 무엇이 변할 수 없는가를 묻는 쪽이 더 가치 있는 일이다. ---‘서론’ 중
7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방대한 자료와 대화, 비판, 연구, 분석을 통해 저술된 이 저작은 남성성이 역사 속에서 어떤 모습을 띠면서 어떤 식으로 진화를 해 왔는지를 조감할 수 있는 현존하는 최상의 책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리오 브로디 Leo Braudy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빙 석좌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에는 컬럼비아의 예일 대학교와 존스홉킨스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다. 인문학으로 국가기금의 시니어 스콜라 장학금을 받았고 구겐하임 펠로십도 수상했다. 로마에 있는 미국학 연구소의 상주작가 겸 이탈리아 벨라조의 빌라 세르벨로니 주재 록펠러 재단의 특별원구원이기도 하다. 전작인 『장 르누아르: 그의 영화 세계(Jean Renoir: The World of His Films)』는 내셔널 북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명성의 광열: 명성과 그 역사(The Frenzy of Renown: Fame and Its History)』는 내셔널 북 크리틱스 서클 어워드의 최종 후보에 올랐다. 『뉴욕 타임스』와 『워싱턴 포스트』와 『하퍼스』에도 기고했다. 아내와 함께 로스앤젤레스에서 살고 있다.
역자 : 김지선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에서 영문학을 공부했다. 출판사 편집자를 거쳐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는 『오만과 편견』, 『희망은 사라지지 않는다』, 『반대자의 초상』, 『돼지의 발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론: 무기와 남자
1부 남자와 남성성
1장 내 이름을 기억하라
2장 신체의 언어
3장 입문: 첫 상처
4장 전사와 여성
2부 갑옷과 명예
5장 전쟁의 순정함
6장 야만인 전사
7장 분노의 형태
8장 명예의 방패
9장 기사도의 스펙터클
10장 계보의 탄생: 기사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11장 기사와 기독교와 기사도: 어색한 화해
12장 기사도의 이론과 실제
13장 방랑 기사의 고독
14장 전투의 도발과 사랑의 유혹
3부 갑옷에서 성품으로
15장 제복과 갑주의 실추
16장 국가적 정체성과 종교의 명분
17장 돈, 민족주의, 그리고 ‘군사혁명’
18장 돈키호테와 개인 독자성의 픽션
19장 육체의 시험: 전투에 의한 재판, 단독 전투, 결투
20장 해적과 노상강도
21장 ‘남자’의 의례
4부 전투와 성
22장 전쟁과 포르노그래피
23장 수행 불안
24장 반대 성
5부 영웅은 아래로부터
25장 전쟁과 반전
26장 전장: 군주의 시선
27장 전장: 병사의 시선
28장 제복을 입은 국가
29장 시민이 군인으로, 군인이 시민으로
30장 일제 사격 대 조준 사격, 정규군 대 민병대
6부 19세기: 전쟁과 국가 정체성
31장 기술 진보와 실패한 역사
32장 야만의 에너지와 문명화된 의례
33장 소년 장군
34장 인간성의 통계학: 표준과 이상
35장 타락이라는 유령
36장 남자다운, 여자다운, 여자 같은: 문명인 내의 성
37장 스포츠와 남자다움의 이상
38장 1890년대의 가혹한 시련
39장 준비하라
7부 20세기: 대량 학살 무기와 전사 정신
40장 무인 지대의 영예
41장 원격 죽음
42장 광기의 이성
43장 원시 육체와 기계 육체
44장 T. E. 로렌스: 되살아난 모험
45장 후방의 전선: 평화주의와 준군사적 폭력
46장 31년 전쟁: 궁극의 지도자와 고독한 투사
47장 불순함의 위협: 인종주의와 여성혐오
48장 민간인을 겨누다
49장 후퇴 불가와 무조건 항복
50장 벽에 비친 그림자와 보통 남자
51장 세뇌와 내부전
52장 서부인의 고독
53장 전후 남성 섹슈얼리티와 킨제이 보고서
54장 완벽한 몸은 없다
55장 전선 없는 전쟁: 베트남과 냉전 종식
56장 전쟁 말고 사랑을 하자: 타고난 공격성 이론과 반전운동
57장 맺음말: 젠더 전쟁으로서의 테러리즘
삽화와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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