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편집자의 말: 왜 이 작품을 소개하는가?
러시아 근대 문학의 선구자 니콜라이 바실리예비치 고골의 대표작 세 편을 엮은 『외투』가 「쏜살 문고」로 새롭게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제정 러시아의 수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세 편의 이야기, 즉 이미 널리 알려진 「코」와 「외투」를 비롯해 「광인 일기」 그리고 서평가 금정연의 「추천의 말」까지 수록되어 있다. 이 작품들은 모두 환상과 현실이 어우러진 독특한 방식으로, 부조리한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소외된 현실을 강렬하게 조형해 내고 있다. 또한 독특하면서도 지극히 현대적인 상상력과 신랄한 현실 풍자 의식은 고골을 러시아 근대 문학의 근원지에 자리하게 했다.
세 가지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물질적 욕망과 계급적 질서가 지배하는 허위와 혼돈의 세계다. 따라서 이들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다수가 관료며 모두 계급에 따라 움직이고 인생 전체가 계급에 의해 결정된다. 특히 계급 의식은 곧 속물적인 탐욕과 연결된다. 「코」에서 자신의 계급을 과장하여 자랑하는 꼬발료프의 코가 사라지는 일이나 「외투」에서 위계질서를 지키지 않는다고 불쌍한 하급 관리를 닦달하여 죽음으로까지 내모는 고위층 인사의 모습은 모두 계급적 허위의식을 극명하게 보여 주는 예다. 이렇듯 속물성과 탐욕을 대표하는 상류 사회(혹은 거기에 매달리는)의 인물들은 묵묵히 주어진 대로 살아가는 가난한 하층민들을 간단히 짓밟는다.(「외투」) 계급과 물질에 의해 모든 것이 판단되고 결정되는 근대 도시의 뒤틀린 모습은 이 책의 모든 작품에서 드러난다.
그런데 고골의 단편 소설이 지닌 특징은 무엇보다도 냉혹한 현실 앞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5급 관리 행세를 하는 코에게 주인공은 “저, 당신은 내 코가 아닙니까?” 하고 공손히 묻고(「코」), 유령이 “내 옷 내놔!” 하고 달려드니 기세등등하던 고위층 관리도 혼비백산하여 줄행랑을 친다.(「외투」) 또 주인공이 수줍어하는 아가씨에게 “실은 댁의 강아지와 할 말이 있는데요.”(「광인 일기」)라고 말하는 장면에 이르면, 어떤 독자라도 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웃음은 인간의 본질이기에, 웃지 않으면 인간이 아니다. 따라서 속물성과 탐욕이 판치는 냉혹한 현실 속에서 웃음을 찾아내려 하는 고골의 작품에는 따뜻한 휴머니즘의 깃들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웃음은 세 가지 이야기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현실 세계를 넘어서는 환상성을 지님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고골의 작품에서 환상성은 현실을 회피하는 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현실성을 극대화함으로써 현실을 풍자한다. 『외투』에 수록된 세 편의 이야기는 저마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현실성과 환상성을 절묘하게 결합시킴으로써 그 어떤 작품보다 현실 세계의 불합리성을 강력하게 비판한다. 5급 관료의 제복을 입은 ‘코’ 앞에서 절절매는 코의 주인(「코」), 외투를 빼앗기고 억울하게 죽은 영혼이 고위층 관리의 옷을 뺏고자 달려드는 장면(「외투」) 등은 공포와 연민, 웃음까지도 자아내는 놀라운 상상력의 결과물이다. 고골의 환상적인 면모는 19세기 초 일반의 상상력을 뛰어넘은 것일 뿐 아니라,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세상의 부조리를 들여다보게 하는 데에 여전히 효과적이다.
작가 소개
저 : 니콜라이 고골
1809년 폴타바 지방에서 폴란드-우크라이나계 소귀족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으며, 고교 시절에는 직접 희곡을 써서 공연을 하고 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네진의 김나지움에서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문화 예술을 섭렵했고, 알로프라는 필명으로 낭만주의 시와 서사시, 이야기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1828년 김나지움을 마친 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서는 관공서에서 일을 하기도 했으나 작가로서의 소명 의식을 가지고 시와 소설들을 발표했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것은 총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수록한 첫 소설집 『디칸카 근교의 야화』(1831~32)가 발표되면서였다. 우크라이나를 배경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다룬 이 소설들이 큰 인기를 누리면서 고골은 순식간에 유명 인사가 되었다. 이때부터 푸시킨과 같은 문호들을 만났고, 1830년대 대부분을 역사, 드라마, 에세이, 픽션 등 다양한 문학 장르를 실험하는 데 보냈다. 1835년에는 『아라베스크』와 『미르고로드』가 출간되었다. 『아라베스크』는 고골의 사실주의 기법이 확립된 단편 「광인일기」, 「초상화」가 포함된 글 모음집이며, 『미르고로드』는 환상성·풍자성이 도드라진 네 편의 작품을 담은 소설집이다. 「코」와 「마차」는 1836년 각각 개별적으로 문학잡지에 발표되었고, 같은 해에 『감찰관』이 페테르부르크에서 초연되어 호황을 누렸다. 『감찰관』은 고골이 자신의 창작 경향을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로 새롭게 전향하는 첫 번째 작품이다.
1836년 이후로는 로마 등 주로 외국에 거주하면서 『죽은 혼』 1부를 집필하였다. 고골의 문학적 역량이 집결된 대작 『죽은 혼』 1부는 1842년 출판되어 문단에서 거의 절대적인 호평을 받았고, 같은 해 전집에 포함되어 발표된 「외투」는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배경으로 한 걸작 단편소설이다. 1840년대를 거치며 작가로서의 자신의 재능에 회의를 느낀 고골은 악에 대해 풍자한 지금까지의 소설과는 다른, 도덕적 완성과 악에서의 부활을 그린 『죽은 혼』 2부를 집필하기 시작하나 실패한다.
결국 극심한 우울증에 빠져 단식을 단행하다 1852년 마흔세 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고 모스크바에 묻혔다. 그의 사인은 의학적으로 기아, 티푸스 혹은 우울증으로 규정되어 왔으며 그의 영혼이 유탈 이체한 상태에서 생매장되었다는 주장이 20세기 초에 제기되어 유력한 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늘날까지 그의 죽음은 출생보다 더 신비로운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고골은 사실주의 문학의 창시자로서 누구도 모방할 수 없는 사실주의적 묘사 기법과 풍자적 문체로 도스토옙스키를 포함한 후대 작가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역자 : 조주관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미국 오하이오 주립 대학 슬라브어문학과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러시아문학회 회장과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세계문학연구소의 학술 위원을 역임하고 러시아 정부로부터 푸슈킨 상을 받았다. 현재 연세대학교 노어노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러시아 문학의 하이퍼텍스트』, 『러시아 시 강의』가 있고, 옮긴 책으로는 『시의 이해와 분석』, 『러시아 현대 비평 이론』, 『러시아 고대 문학 선집』, 『보즈네센스끼 선집』, 『만젤쉬땀의 시선집』, 『러시아 희곡』, 『아꾸자바 시선집』, 『아흐마둘리나 시선집』, 『쮸체프 시선집』,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검찰관』, 『타라스 불바』, 『루슬란과 류드밀라』 등이 있다.
목 차
코
외투
광인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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