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프롤로그
‘ 큰대(大) 믿을신(信) △△증권’이라는 광고 카피가 한때 유행한 적이 있습니 다. 믿음경영을 내세운 한 증권회사의 TV광고입니다.‘믿고 맡겨주세요’라는 뜻이지요.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주식 투자를 해본 사람이면‘믿고 맡긴다’라는 말을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증권회사는 기본적으로 주식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매매를 중개해주는 투자중개업자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주식을 선택하는 단계에서 증권회사 직원의 도움을 받기는 합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주식같은 금융투자상품의 선택과 그에 따른 책임은 오롯이 투자자 개인의 몫입니다. 투자의 대가로 증권회사에 지불하는 수수료로 판단해보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요즘은 은행을 통해 펀드에 투자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은행의 역할에 대해 오해하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됩니다. 은행 직원을 통해 들은 이야기입니다. 지점 창구를 통해 펀드에 3,000만 원 어치 투자한 고객이 있습니다. 이 고객은“거액을 맡겼는데 왜 맞춤형 자산관리를 해주지 않느냐”고 불만을 제기한다고 합니다. 펀드 투자로 3,000만 원을 넣었으면 적지 않은 돈입니다. 은행 입장에서 생각 해보면 3,000만 원은 적은 돈도 그렇다고 아주 큰 돈도 아닙니다. 더구나 열 명 남짓의 지점 직원으로 펀드 고객마다 맞춤형 자산관리를 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 믿고 맡기는’ 투자라고 하면 흔히 펀드를 말합니다. 펀드는 2004년 적립식펀 드라는 개념이 소개되면서 대중화되었습니다. 2007년에는‘인사이트 펀드’로 절정의 인기를 누렸습니다. 그렇지만 금융위기를 지나면서 안타깝게도 펀드의 인기는 빠르게 식어가고 있습니다.
펀드의 인기가 추락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묻지마 투자’식으로 유행에 휩쓸려 펀드에 가입한 경우도 있습니다. 은행이나 증권회사 직원의 권유만 믿고 덥석 가입한 경우도 많습니다. 펀드 매니저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도 있습니다. 펀드는 장기투자라고 해서 신경쓰지 않고 묻어두었는데, 막상 수년이 지나서 보니 원금회복을 못한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앞서 은행에서 펀드에 가 입한 고객처럼 판매직원이 사후 서비스식으로 계속해서 관리해주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하루 종일 직장에서 생활하는 월급쟁이나 평범한 가정주부 입장에서야 펀드 가입만으로 재테크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라고 펀드 가입할 때 판매수수료를 내고, 해마다 꼬박꼬박 판매보수·운용보수·사무관리보수를 가져가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곤 하는 것입니다. 전문가를 믿고 재산을 맡겼으니, 전문가가 알아서 잘 굴려주겠지 하고 믿는 것이지요.
사실 펀드 그 자체는 훌륭한 투자상품입니다. 소액으로도 투자가 가능하고 포트폴리오를 통해 분산투자를 해 주기 때문에 개인 입장에서 활용하기 딱입니다.
문제는 관리입니다. 어떤 펀드도 시장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시장 상황에 따라서 포트폴리오를 교체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펀드를 갈아타야 하기도 합니다. 이런 걸 자산배분이라고 합니다. 펀드는 하나의 상품일 뿐 사후 관리를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자산배분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이 바로 투자일임입니다. 투자일임이라는 말은 낯설고 생소합니다. 제도적으로도 펀드에 비해 30년 이상 늦게 도입된 제도입니다. 증권회사와 거래를 제법 해본 사람은 랩 어카운트(Wrap Account)라는 걸 들어봤을 것입니다. 법률 상의 명칭은‘맞춤식 자산관리계좌’인데 보통 랩 어카운트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랩 어카운트가 투자일임의 한 종류이고, 투자일임이 바로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입니다. 전 세계 부자들의 재테크 수단이 바로 자문과 일임입니다. 전 세계 부자들이 재테크를 할 때 이용하 는 방법의 80% 이상이 자문과 일임입니다.
자문이나 일임 등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부자의 전유물이었습니다. 증권회사의 랩 어카운트에 가입하려면 최소 3,000만 원 정도는 있어야 했습니다. 주식이나 펀드만으로 자산배분을 하는 것이 아니라 포트폴리오 형태로 자산배분을 받 기 위해서는 3억 원 정도는 내야 했습니다. 시중은행의 프라이빗 뱅킹(Private Banking)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금융자산만 3억 원 정도 있어야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몇 년 전부터 이런 장벽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증권회사의 랩 어카운트는 보통 최소 2,000만 원 정도면 가입이 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정책금융상품인 일임형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는 1만 원으로도 가입이 가능합니다. 공모펀드 중심이고,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만들 수 없는 정형화된 서비스라는 한계가 있긴 하지만 말입니다. ISA는 앞으로 세제혜택도 늘어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투자일임 대중화의 선봉에 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용섭 일자리위원회 부위원장 의 말을 들어보면 그렇습니다. 이 부위원장은 2017년 5월 8일 더불어민주당 비상 경제대책단장 자격으로“ISA 가입 대상을 소득 여부에 관계없이 주부, 청년, 은 퇴자를 포함한 전 국민으로 확대하는 등‘신형 ISA’도입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랩 어카운트나 ISA 외에도 투자일임 서비스는 점점 더 영역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요즘 은행이나 증권회사 등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모바일 자산관리 서비스도 투자일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카카오톡 기반의 자산관리 서비스 회사인 두나무투자일임도 회사명에서 알 수 있듯이 투자일임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로보어드바이저(Robo Advisor) 회사로 유명한 디셈버앤컴퍼니, 쿼터백자산운용 등도 알고리즘(algorithm)에 기반하여 투자자문·투자일임업을 하는 곳입니다. 일임이라는 단어가 어려워서 그렇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알아서 잘 굴려주세요’,‘믿고 맡긴다’라는 게 모두 투자일임을 뜻하는 말입니다.
당신이 여전히 펀드만 알고 있다면, 이제는 투자일임 서비스에 가입하고 당당하게‘맞춤형 자산관리’를 요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책의 순서는 다소 딱딱할 수 있지만 국민 재테크의 변천사를 따라가고 있습니다. 제1장은 저성장·저금리 시대의 기본적인 투자 환경을 소개합니다. 고금리 시대를 지나 금융투자상품 투자의 필요성과 로보어드바이저의 출현에 따른 비대 면 자산배분 서비스의 출현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2장에서는 적립식 펀드의 도입으로 시작된 펀드 재테크의 흐름을 간략하게 정리하면서 펀드 이후의 국민 재테크가 어떤 변천을 겪었는지 정리해보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구성과 금융자산의 현황도 살펴봅니다. 제3장에서는 본격적으로 투자일임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IMF 외환위기의 와중에 탄생하여 펀드에 가려지고 통합 자본시장법의 제정 과정에서 초기 투자일임 시장이 자리를 잡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책을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펀드에 대한 서적이나 보고서는 무수히 많은데 이상하게도 투자일임에 관한 책이나 논문, 보고서를 찾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비대면 일임계약을 둘러싼 논란도 여기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사모펀드도 마찬가지지만 투자일임에 관한 제도적 정비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이라서 섣불리 손을 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제4장은 2003년 시작된 국내 증권회사의 랩 어카운트를 정리해보았습니다.
국내 랩 어카운트 시장은 자문형 랩 어카운트 이전과 이후로 대별되는데, 초기 랩 어카운트 시장에 대한 정리가 무척 어려웠습니다. 랩 어카운트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없고, 증권회사가 출시한 랩 어카운트 상품의 정확한 내용 파악도 어렵습니다. 제5장은 ISA의 탄생과 미래를 집중탐구하였습니다. 도입 1년이 지나면서 벌 써 잊혀진 상품 취급을 받지만 ISA 도입 자체는 나름의 철학적, 정치적, 경제적 기반이 있었습니다. 영국이나 일본의 ISA 운용 사례를 보면 여전히 보고 배울 것이 많기도 합니다. 문재인 정부의 벤처 육성 정책을 보면서 영국의 Innovative Finance ISA를 벤처투자와 접목시킨다면, ISA와 벤처 육성을 한꺼번에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아닐까도 생각해 보았습니다. ISA는 단순히 하나의 상품이 아니라 우리 금융제도의 근간인 전업주의와 겸업주의의 경계를 넘나드는 새로운 금융제도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제6장은 이 책의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제도에 대한 소개에서 한발 더 나아가서 실제 증권회사와 은행이 일임 업무를 어떻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독자에게 전달하고자 하였습니다. 실제 거래를 트기 전에 참고할 만한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하여 보았습니다. 아쉬운 점은 독립 로보어드바이저 회사나 투자자문·일임회사의 투자일임 서비스까지는 포괄하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미국에는 수천 개의 투자자문·일임회사가 있고, 증권회사는 이들의 다종다양한 모델포트폴리오를 고객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책을 쓰는 과정에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먼저 소중한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여 준 증권회사와 은행의 투자일임업무 종사자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신한은행의 신긍호 투자일임부장님, 미래에셋대우의 김분도 팀장님, 신한금융투자의 안성재 부장님은 투자일임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해 알려주 셨습니다. HMC투자증권의 권지홍 이사님과 신상윤 차장님, NH투자증권 박득현 부장님과 송현석 차장님, 키움증권 민석주 팀장님, 신한금융투자 문진철 부장님과 김태준 과장님, 삼성증권 박기한 수석님, 대신증권 서형종 팀장님, 미래 에셋대우 김현구 선임매니저님, SK증권 장기봉 차장님, 하나금융투자 안철영 부장님은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깊은 고민과 속내를 인용하고 소개할 수 있도록 해 주셨습니다.
책을 쓸 수 있는 기회를 준 성화용 머니투데이 더벨 대표이사와 이진우 국장 등 머니투데이 더벨 편집국 식구들에게도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자산관리업계와 시장을 함께 관찰하는 자산관리부 김용관 부장, 이승우 차장, 최은진 기자, 서정은 기자, 장소희 기자, 이충희 기자, 강우석 기자, 김슬기 기자, 최필우 기자에게는 우정의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부족한 원고를 기꺼이 출간해주기로 해준 지원출판사 정종률 대표님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한국기업평가의 강종구 리서치실장님은 귀중한 시간을 할애하여 초고를 읽고 날카로운 조언을 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언제나 나를 돕고 격려해주는 아내 홍주희, 아빠에 대한 무한 신뢰와 사랑을 보내는 장현·장호에게 이 책을 바친다.
2017년 7월 여의도에서 김현동
목 차
프롤로그 4
추천사 12
CHAPTER 01 AI 시대의 재테크 23
CHAPTER 02 응답하라 간접투자! 35
2.1 펀드의 대중화: 적립식 펀드와‘1억 만들기’ 36
2.2‘인사이트 펀드’열풍 39
2.3 펀드의 퇴장과 ELS의 부상 43
2.4 연금의 급성장과 가계의 빈곤 48
CHAPTER 03 펀드에서 일임으로 59
3.1 1997년생 투자일임 59
3.2 2015년 이후의 풍경 66
3.3 사모단독펀드의 폐지 68
CHAPTER 04 랩 어카운트 실험 77
4.1 랩 어카운트와‘종합자산관리계좌’ 77
4.2 1차 랩 어카운트 실험: 주식 몰빵 81
4.3 2차 랩 어카운트 실험: 랩의 대중화‘자문형 랩’ 83
4.4 투자일임에 대한 공격의 시작: 펀드와 일임 구별짓기 91
4.5 UMA, EMA 그리고 ISA 99
CHAPTER 05 ISA의 탄생 109
5.1 ISA의 탄생 1: 이사(移徙) 말고 가계재산 늘릴 수단을 찾아라 109
5.2 ISA의 탄생 2: 은행에 투자일임을 허용하다 116
5.3 ISA의 탄생 3: 뒷담화 125
5.4 ISA 시즌 2: 영국 ISA, 일본 NISA와의 비교 128
5.5 K·ISA를 위한 제언 136
CHAPTER 06 ‘믿고 맡기는’일임 151
6.1 증권회사의 일임 서비스 사용 설명서 1 : 랩 어카운트 154
6.2 증권회사의 일임 서비스 사용 설명서 2 : 일임형 ISA 206
6.3 ISA의 승부수‘수익률 공시’ 224
6.4 은행의 첫 일임 서비스: 일임형 ISA 230
6.5 은행의 첫 일임 서비스: 성적표 공개 252
6.6 투자일임업 허용해줬는데 왜 신탁형 ISA만 늘어날까 255
에필로그 : 투자일임의 한계와 신탁 260
참고문헌 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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