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수박이 먹고 싶으면』은 수박씨를 심어서 키우고 수박을 따기까지 과정을 보여주는 농사법에 관한 책만은 아니다. 동네사람 모두 둘러앉아 함께 수박 먹는 즐거움에 관한 책만도 아니다. 그것들도 물론 들어 있지만,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게 웅숭깊은 말을 글과 그림에 담고 있는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주 작은 것에 대한 정성 지극한 보살핌과 기다림, 거기서 울려 나오는 자연의 이치와 사람살이의 섭리라고 할 수 있을까. 싹을 보살피되 ‘제가 절로 난 줄 알도록/ 무심한 듯 모른 척해 주어야 한다’거나, 어쩔 수 없이 솎아낸 싹이 ‘슬프지 않게/ 남은 싹이 그 몫까지 자랄 수 있도록/ 북 돋워주고 물 뿌려주’는 양육법은 이 시대 아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방식이다. 진딧물과 잡초를 ‘농약 대신 일일이 손으로 뽑고 훑으며’‘고단한 노동을 마다지 않아야’ 하지만, 너무 지치지 않게 원두막에서 ‘시원한 미숫가루 한 사발 들이마시고/ 낮잠 한숨 잘 줄도 알아야 한다’는 말은 부모들을 위한 조언 같다. 그리하여 마침내 ‘단물 뚝뚝 듣는 붉은 속살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수박을 둘러싸고 모인 사람들은 장애인, 이민족, 동물 이런 구별 하나도 없는 공동체를 보여준다. 그냥 그대로 시로 읽히는 글은 나직나직, 자기 자신에게 눌러 다짐하는 어조다. 독자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자는 의도는 없지만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명확히 알고 있는 이 어조가 오히려 메시지를 깊고 넓게 퍼뜨린다. 그림의 메시지는, 농부 할아버지를 졸랑졸랑 따라다니는 강아지를 눈여겨봐도 된다. 씨 앞에서 젖먹이였던 녀석이 수확철 늠름한 성견이 되어 있는 모습이 세상 어린 것들의 성장과 성숙을 말하려는 듯하다. 그러나 메시지 이전에 ‘날 잡아 잡수! 하고/ 푸른 몸뚱이를 반짝거’리는 수박 한 덩이가 눈부시게 빛나는 자태, 그 수박을 감싸고 있는 주름진 농부의 손만으로도 이 책은 할 말을 다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 추천자: 김서정(동화작가, 아동문학평론가)
수박이 먹고 싶으면 무엇을 해야 할까?
더운 여름날, 시원한 수박이 먹고 싶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맞습니다. 수박을 사먹으면 되지요. 그러면, 그 수박은 어떻게 생겨난 걸까요?
사람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저마다 제 손으로 만들어 쓰지 않습니다. 나누어 생산하고 바꾸어 쓰는, ‘분업’이라는 방법과 ‘화폐’라는 수단이 있으니까요. 분업과 화폐는 우리의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해 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것들을 누가 어떻게 만드는지, 거기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정성이 들어가는지를 잊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럼으로써 삶을 지탱하게 해 주는 사물과 사람들을 귀하고 고맙게 여기기보다는, 그것들과 그이들을 얻고 부리겠다는 목표와 수단에 집착하게 하지요. 그리하여 우리는 종종 일하는 사람과 수고하는 과정 없이, 수단만으로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지곤 합니다.
이 그림책은 우리가 쉽게 사먹는 수박을 얻기 위해 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 나아가 그것을 제대로 얻기 위해 어떤 마음과 태도로 얼마나 많은 땀을 흘리는지를 보여줍니다.
책 속의 농부는 이른 봄 쟁기질로 밭을 깨우고도 겨울이 완전히 물러가기를 기다렸다가, 살구꽃 필 무렵에야 구덩이를 파고 퇴비와 참흙을 켜켜이 채운 뒤 까만 수박씨 서너 개를 뿌립니다. 그러고는 날마다 촉촉이 물을 주지요. 이윽고 서너 개 싹이 나면 개중 실한 놈 하나만 남기고 두세 개를 솎아 냅니다. 그리고 남은 싹이 줄기를 뻗고 꽃을 내고 열매를 맺도록, 날마다 밭을 드나들며 고단한 노동을 감내합니다. 뿌리가 숨을 쉬도록 북을 돋우고, 뻗어가는 줄기가 움켜쥐라고 볏짚을 고루 깔아 주며, 줄기가 힘을 모으게 곁순을 질러 주고, 꽃가루받이하는 벌 나비 모여들도록 끊임없이 나는 잡풀과 자꾸 생겨나는 진딧물을 농약 대신 일일이 손으로 뽑고 훑어 줍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들은 그저 몸으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땀만큼 마음도 쏟습니다. 씨 뿌리고 흙 덮어줄 때는 잘 자라라 잘 자라라 조용조용 읊조려 주고, 싹을 낼 적엔 날마다 물을 주며 정성을 쏟되, 끝내는 수박 싹 제가 절로 난 줄 알도록 무심한 듯 모른 척해 주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이윽고 떡잎이 고개를 내밀면 아이처럼 기뻐해 주고, 싹을 솎아 낼 땐 안타까워하며 그런 만큼 남은 싹에 더욱 정성을 쏟아 줍니다. 그렇다고 마냥 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열심히 일하다가도 너무 지치거나 더위를 먹지 않도록 가끔 원두막에 올라 시원한 미숫가루 물도 마시고 낮잠도 한 숨 잘 줄 아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농부는 수박이 익기를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동안 고라니며 멧돼지며 동네 꼬맹이들이 설익은 몇 덩이를 축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농부는 그도 자연스런 과정이려니 생각하고 서운해하거나 성내지 않습니다. 조급해하지도 않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는 법이니 농부는 그 때를 기다립니다. 줄무늬 또렷해지고 덩굴손 마르고 꽃자리 우묵해지고, 통통 두드려 맑은 소리 날 때가 바로 그때입니다. 그렇게 영글대로 영근 수박이 이윽고 몸뚱이를 뒤척인다 싶을 때, 농부는 성큼성큼 밭으로 들어가 그놈을 똑 따내는 것입니다.
이제, 수박을 맛볼 차례지요. 농부는 손을 크게 저어 사람들을 부릅니다. “어이! 이리들 오소!” 수박 먹고 싶은 이는 그 누구든, 엊그제 다툰 사이도 지나가는 길손도 반가이 불러 둘러앉힙니다. 혼자만 먹을라치면 그 고된 나날들이 얼마나 보람되랴 싶은 게지요. 그 마음이 수박의 마음마저 열게 합니다. 칼도 닿기 전에 쩍! 제 몸을 열어 단물이 흐르는 속살을 아낌없이 내어주게 합니다. 땀과 정성 쏟아낸 한 시절을 고스란히 돌려주게 합니다.
수박이 먹고 싶으면, 모든 사람이 농부처럼 수박을 심고 가꾸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수박을 얻기 위해서 반드시 마음까지 쏟아야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맡은 역할이 수박농사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때에 맞춰 수박을 길러야겠지요. 그리고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책 속의 농부처럼 땀 흘리고 마음 쏟으며 정성껏 일할 줄 알고, 나누어 넉넉히 보람 키울 줄 알아야 할 겁니다. 그래야 나와 우리의 삶이 더 풍성해지고 더 즐거워질 테니까요.수박농사 아닌 다른 일로 돈을 벌어 수박을 사먹는 사람이라도, 수박을 먹으며 그 달고 시원한 붉은 속살이 어떻게 차올랐는지, 거기에 누가 어떤 수고와 정성을 담았는지를 생각한다면 어떨까요? 저마다 그리할 때 우리는 서로를 더 고마워하며 더 귀한 삶을 살게 되지 않을까요? 수단이 아니라 아름다운 과정을 위해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요?
*이 그림책은 2014년 이 나라의 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내뱉은 ‘통일 대박!’이라는 말에 대한 성찰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마다지 않는 수고와 진실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성 어린 과정은 증발된 채 한 탕의 욕망만 노골적으로 번들거리는 ‘대박’이라는 말도 마뜩치 않거니와, 그 말을 한 사람이 통일을 이루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 왔던가를 짚어 보니, 그림책 만드는 이는 그림책으로써 무어라도 해야지 않겠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3년 동안 글쓴이와 그린이는 작게나마 실제로 두 번의 수박농사를 지어보고, 오랜 세월 수박을 재배하고 연구해 온 농부의 자문을 구해 가면서 이 그림책을 지었습니다. 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인 그림책 만드는 일을 제대로 하고 싶었기 때문이며, 이 사회가 수단이 아니라 아름다운 과정을 위해 사는 세상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그 사이 영혼 없이 통일 대박을 외치던 이는 국민의 심판을 받아 권좌에서 쫓겨났고, 우리 사회는 일하는 사람과 수고하는 과정을 귀히 여기는 세상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 그림책이 독자들과 함께 미약하나마 그 길을 함께 비추는 작은 촛불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작가 소개
글 : 김장성
서울에서 태어나고 성균관대학교에서 국어국문학을 공부한 뒤, 줄곧 어린이책 기획·편집자이자 작가, 그림책을 가르치는 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글을 쓴 책으로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가슴 뭉클한 옛날이야기』『어찌하여 그리 된 이야기』『박타령』『골목에서 소리가 난다』『나무 하나에』『가시내』『씨름』『까치아빠』등이 있다.
그림 : 유리
경기도 여주의 나지막한 숲으로 둘러싸인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자연에서 보낸 어린시절은 작가의 가장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작품으로 《돼지 이야기》 《대추 한 알》 《강아지똥 별》 등이 있으며, 《대추 한 알》로 2015년 한국출판문화상을 받았습니다. 느리지만 ‘날마다 꾸준히’의 힘으로 그림을 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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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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