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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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미경
출판사항나무옆의자, 발행일:2017/09/08
형태사항p.280 A5판:21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61570143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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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지금 여기 생생한 현재성으로 다가오는 여성들의 이야기
페미니스트저널 이프 전 편집장 정미경의 강렬한 데뷔작

작가는 소설을 구상하며 무엇이 무녀들로 하여금 역심을 품게 했는지, 그때나 지금이나 뜬구름처럼 허황하기 그지없는 대우경탕설이 어떻게 무녀들을 사로잡았는지, 원향과 그를 따르는 무녀들은 어떤 깊은 이야기를 품고 있었을지 자문한다. 이 물음은 필연적으로 조선시대 무녀의 삶과 존재성에 대한 탐구로 이어진다. 그리하여 『큰비』는 유교의 예를 숭상하는 사대부의 나라 조선에서 음란하고 사악한 존재로 내몰려 추방당한 무녀의 삶과 목소리를 생생하게 불러온다. 그들은 하늘과 통하는 신이한 힘으로 말미암아 유교 지배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철저히 짓밟히고 배제되었다. 하지만 바로 그런 능력으로 인해 여전히 뭇사람들의 슬픔과 고통을 위로해주고 응어리진 한을 풀어주는 존재였다. 늘 빼앗기는 삶을 살아야 했던 가난한 백성들을 품어주고, 살아서는 욕되고 죽어서는 원통한 여인들을 넋을 달래주는 게 그들의 역할이었다. 사대부들조차도 사람의 힘으로 어찌해볼 수 없는 일 앞에서는 남몰래 무녀를 불렀다.

신과 사람의 매개자인 조선 무녀들의 삶과 새로운 하늘을 열려는 그들의 꿈을 작가는 한없이 사려 깊고 치밀하게, 뛰어난 미학적 성취로 그려낸다. 세계문학상 심사를 맡은 소설가 구효서는 “(무녀들이) 제 힘으로 부활해서 제 입으로 말하고 권부의 핵심을 향해 진격하도록 내버려두는 작가의 자기은닉이 참으로 미덥다”고 평했으며, 문학평론가 정홍수는 “정확하고 명징한 서술이 지긋이 맺고 푸는 유연한 문장의 호흡 속에 단단하게 감싸여 있다”며 “그 문체가 결국 소설 『큰비』의 현재성이자 글쓴이만의 사상이고 고유성”이라고 칭찬했다. 이러한 “부활”과 “현재성”이야말로 이 소설 속 이야기를 300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어 지금 여기 우리의 이야기로 가능하게 하는 핵심일 터다.

무녀들이 큰비로 도성을 쓸어버리고 이루려던 세상은 천한 사람이 귀해지고 핍박받는 무녀들이 자유로워지는 세상이며, 여인들의 통한이 사라지는 세상이다. 그 오래된 꿈에서 2017년 현재 한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페미니즘을 떠올리기는 어렵지 않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하고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편집장을 지낸 작가는 “여성의 시선으로 사회의 불편 속에 있는 누군가의 고통과 눈물을 담아내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큰비』도 여성의 시선으로 인간과 세상을 읽는 한국문학 서사의 대열에 확연한 고유성을 지닌 작품으로 함께 자리할 것이다.

태초의 하늘을 열려는 조선 무녀들의 위태로운 꿈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그 이야기가 시작된다!

때는 조선 숙종 14년인 1688년 7월 13일. 열아홉 살의 황해도 만신 원향은 한탄강에서 여환의 무리와 함께 한양으로 떠난다. 뜻을 같이하는 수십 명의 사람들 중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한 열세 명만이 선택되어 행로에 오른다. 이들은 양주 대전리를 출발해 동두천을 거쳐 양주목에서 하룻밤을 묵고 도봉산 누원에서 흥인문을 거쳐 어의동에 닿을 계획이었다. 이들이 양주에서 한양까지 150리 길을 가는 목적은 대우경탕, 즉 큰비를 내려 도성을 쓸어버리고 미륵 세상을 맞이하기 위함이었다.

열두 살에 내림굿을 받고 무당으로 살아온 원향은 여환의 무리에 의해 용녀 부인으로 추대되어 거사에 합류했다. 여환이 황해도로 찾아와 혼인을 청했을 때 원향은 송화마을의 기우제로 답을 대신했다. 잠자고 있는 용을 승천시켜 마른 땅에 비를 내리는 원향의 신이한 능력을 보고 여환은 미륵이 왜 원향을 원했는지를 깨달았다. 대장장이의 아들 여환은 미륵이 새로운 세상을 이끄는 지도자로 벌통(도성)에 세운 인물이었다. 미륵은 그 징표로 삼국을 뜻하는 누룩 세 덩이를 여환에게 주었다. 미륵은 새로운 세상의 시작과 말세의 대재앙을 예언하며 용이 자식을 낳아 나라를 다스릴 것이라 했고, 이에 여환은 구름과 비를 일으키는 용녀인 원향과 성혼했다. 미륵과 용신의 결합. 이로써 큰비가 도성을 휩쓸고 난 후 여환의 무리가 궐에 입성하는 거사의 준비를 마치게 된다.

하지만 원향의 계획은 여환과 그 무리들과 달랐다. 원향은 계화를 비롯한 양주의 성인무당들과 그들만의 거사를 따로 준비한다. 무녀의 세상을 여는 의례로 그들이 하려는 일은 18년 전 경술 대기근으로 나라 전체가 수렁에 빠져 있을 때 기우제를 하던 중 목숨을 잃은 만신 하랑의 넋을 건지는 일이었다. 조정의 부름을 받고 죽음의 길로 걸어간 하랑의 넋을 건지고 그 힘을 얻어 큰비를 내림으로써 무녀들을 귀히 여기는 세상을 열겠다는 뜻이었다.

한편 원향은 한양으로 가는 도중 칼을 쓰려는 무리와 끊임없이 갈등한다. 가혹한 세상에서 한 줌 가진 것을 빼앗긴 자들이 검계니 살주계니 화적떼니 해서 칼의 힘에 의지하는 때, 그 원한의 칼이 결국 누구를 향하는지 원향은 알고 있었다. 그 칼은 힘없는 부녀자들을 겨누었다. 하여 인간 세계에서 칼을 드는 자는 순수할 수 없으며, 미륵의 세계를 여는 시작은 인간의 칼이 아닌 영의 칼이어야 한다는 것이 원향의 생각이었다.

원향과 무녀들이 다른 일을 꾸미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무리는 하랑의 넋건지기 굿을 하는 모화루에 들이닥친다. 굿판은 아수라장이 되고, 격한 언쟁과 물리적 충돌이 빚어지는 가운데 원향이 연못에 빠지고 만다. 원향은 죽음을 경험하면서 하랑의 넋을 만나 비로소 깨닫는다. 자신이 지금껏 교만하게 영의 칼을 휘둘러왔음을. 열두 살 때 내림굿을 받을 적에 원향에게 들어앉아 원향과 한 몸이 된 하랑 만신의 유장한 이야기가 분노에 차 있는 원향을 일깨운다. 쟁투하지 말 것이며, 분노와 원망마저 태워 텅빈 채로 사람들을 품어 안는 크고 강한 만신이 되거라! 그때 너의 큰비가 내릴 것이며 태초의 미륵 세상이 열릴 것이다!

원한과 분노의 칼날 대신 한 올 한 올 베옷을 짜는
노동과 보살핌의 시간으로 도래할 여성성의 후천

『큰비』는 여환을 통해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단지 그들이 만들어놓은 판에서 꼭두 놀음은 하지 않겠다는 원향을 중심으로 결속된 무녀들의 이야기가 맞물려 전개된다. 거기에 신령이 되어 원향과 함께하는 만신 하랑의 사연과 목소리가 소설 전반을 감싸며 무녀들의 이야기가 더욱 전면으로 부각된다. 특히 하랑이 들려주는 창세가는 무녀들이 열고자 하는 세상과 그들이 세상 속에서 펼치려는 바가 무엇인지를 뚜렷하게 지시해준다.

거인신 미륵이 땅과 하늘을 갈라 세상을 열고 모든 것을 화평하고 조화롭게 운영하고 있을 때 석가가 나타나 미륵의 세상을 빼앗으면서 분별이 생기고 다툼이 생겼다는 이야기. 거대한 몸을 한 미륵이 칡을 베고 삼고 익혀 실을 만들고 베틀 앞에서 옷감을 짜는 수고로운 노동을 마다하지 않으며 몸소 옷을 지어 입었다는 이야기. 이것은 무녀들이 태초의 미륵 세상과 같은 조화로운 세상을 열고자 함이요, 사람들 속에서 아프고 화를 입고 재앙을 당한 이들을 알뜰하고 촘촘하게 품되 그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당하겠다는 의미다.

원향도 처음에는 이를 온전히 알지 못한다. 그래서 칼을 쓰는 자들을 경계하면서도 스스로 영의 칼을 휘두르려 했다. 그 역시 신령의 힘을 빙자한 파괴의 심성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하랑의 넋과 만나면서 만신이 가야 할 길, 열어야 할 세상은 그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미륵의 힘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원향 안에 있었다. 그러니 죽음을 겪고 난 원향이 뭇사람들 곁으로 돌아가는 것은 참으로 마땅한 결정이다. 그 속에서 원향은 이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이야기를 새로이 시작할 것이다.

부풀어 오르는 대신 비어 있고 사람들 사이에 있어야 하며 사람들을 품어 안아야 했다. 그랬을 때, 원향의 하늘은 열릴 것이었다. 원향의 큰비가 내릴 것이었다. 태초의 미륵 세상, 하늘에 축원해 사람을 갈구하여 있게 한 그 미륵의 큰 세상이 열릴 것이었다. 당신 손으로 감을 짜 베틀로 옷을 짜 입던 그 미륵의 세상이 올 것이었다. 세상을 한 번에 갈라 치는 영의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한 올 한 올 베옷을 짜는 마음이 미륵의 세상을 열 것이었다. (267쪽)

 

작가 소개

저 : 정미경

1973년 광주에서 태어났다. 서울의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한참 동안 전라도 사투리를 쓰며 살았다. 대학원에서 여성학을 공부한 후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편집장을 지냈다. 이후에도 숱한 글을 쓰며 살았지만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뒤늦게 찾아왔다. 조선 숙종기 무녀의 순수하고도 불길한 역모의 꿈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 『큰비』로 2017년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했다. 20년간의 서울 생활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와 소설 쓰기를 업으로 살고 있다.  

 

목 차

청배
한탄강
칼과 영
보름달
용녀
신의 일, 사람의 일
어의동
죽을 길
큰비
결초

이 소설을 쓰기까지
작가의 말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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