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물건에 대한 집착과 동생을 향한 질투와 사랑 등
어린아이의 기질을 깊이, 유쾌하게 보여 주는 작품
표지에서부터 이 책은 좀 낯설게 시작된다. 등을 돌리고 서서, 조그만 파란 의자를 바라보는 아이의 옆얼굴은 까맣다. 깡충한 바지와 초록색 양말 사이로 살짝 내다보이는 가느다란 발목도 얼굴만큼이나 까맣다. 이 까만 꼬마에게 그만큼이나 까만 동생이 생긴다. 갓 동생을 본 아이에게, 먹고 자고 빽빽 울어 대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동생을 귀여워해 줘야 한다는 것은 이만저만한 고역이 아닐 터이다. 게다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지 않았는데 하루아침에 상황이 싹 바뀌어서, 모두들 동생만 들여다보고, 자기는 갑자기 다 큰 아이 취급을 받는다. 요람을 가득 덮은 레이스 사이로 언뜻 보이는 작은 손말고는 피터의 동생인 수지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동생을 본 피터가 어떤 느낌을 갖는지는 생생하게 드러난다. 여기저기 칠이 벗겨져 나간 누런 벽이며 옷차림새에서 보이는 것처럼 피터네 집은 동생이 태어났다고 아기 용품을 새로 마련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지는 않다. 그래서 피터의 부모님은 피터가 쓰던 파란색 의자며 침대를 분홍색으로 칠해서 여동생에게 준다. 사실 피터에게는 더는 필요 없는 것들이며, 꽤 오랫동안 제 물건이라고 눈여겨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자기한테는 조용히 놀라고 야단치는 엄마가 아기 요람을 가만가만 흔드는 것을 보고서 피터는 엄마까지 포함해서 제 차지를 다 앗아간 동생을 시새우는 마음에 가출을 결심한다.
가출하겠다고 마음먹고서 피터가 챙긴 짐들이 재미있다. 공범인 강아지에게 줄 비스킷과 제가 먹을 과자, 장난감 악어, 거기다가 나뭇결을 그대로 살린 큼지막한 의자에 끼여 있는, 피터가 동생만 했을 때에 찍었음직한 사진과 아직 파란 채로 남아 있는 의자가 전부이다. 보기만 해도 무거운 액자며 의자를 낑낑대고 들고 가는 피터는 아직도 그만한 아기로 대접받고 싶어 하는 듯하다. 짐까지 싸서 제 말대로 “달아나”지만 피터가 가는 곳은 너무도 어린아이답게 고작 자기 집 앞. 이쯤 되면 피터의 행동은 가출이라기보다는 자기를 한번 봐 달라는 시위에 가깝다. 자기 집 밖으로 가출한 피터는 동생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켜 낸 의자에 앉으려다가 자기가 부쩍 자랐으며 더는 아기가 아니라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제 피터는 동생을, 제 차지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싸워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기도 뭔가를 베풀어 줄 수 있는 귀여운 “동생”으로 받아들이고, 동생에게 제 것을 주겠다고 선뜻 의젓하게 나선다. 아이가 새로운 사실이나 자기의 능력을 깨달았을 때에 느끼는 흥분이, 일상의 모든 것들을 단순화해서 따 붙인 콜라주 기법의 그림과 어우러져, 가슴 따뜻하고 유쾌하게 그려져 있는 그림책이다.
작가 소개
저자 : 에즈라 잭 키츠
1916년에 뉴욕 브룩클린의 빈민가에서 식당 급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키츠는 가난한 집안 형편 때문에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하고 독학으로 화가의 꿈을 키워나갔다. 키츠에게는 도서관에 꽂혀 있는 책들이 유일한 선생이었다. 그는 1947년에 한 잡지사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첫발을 내디뎠다. 키츠는 1962년에 자신이 직접 쓰고 그린 《눈 오는 날》을 발표하여 그림책 계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다. 《눈 오는 날》은 흑인 꼬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최초의 그림책이었고, 아이의 일상생활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였으며, 화법 역시도 혁신적인 것이었다. 키츠는 백인이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항상 흑인 꼬마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그것은 그이가 인종 문제에 민감해서라기보다는 흑인 꼬마 주인공이 전형적인 서민의 일상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에 맞춤하기 때문이었다. 키츠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어린이책을 만드는 목적은 실재에서 환상까지 나의 모든 경험을 아이들과 나누기 위해서이다. 나는 그 아이가 누구든 자신을 중요한 존재로 느끼며,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다.” 모든 아이들을 사랑했던 일러스트레이션의 혁명가 에즈러 잭 키츠는 1983년에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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