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죽음이 유폐된 사회,
우리는 왜 죽음 앞에 한없이 작아지는 걸까?
한 남자가 아버지의 죽음 앞에 오열한다. 아버지 살아생전에는 어서 고통 없는 하늘로 떠나셨으면 좋겠다던 아들은 무엇 때문에 눈물 콧물 쏙 빼며 고개도 들지 못하고 우는 걸까? 저자는 인간을 하나의 별에 비유하며 죽음이 주는 서글픔의 이유를 찾는다.
인간은 하나의 별과 같다. 별들이 서로 우주 안에서 관계 맺는 힘이 무게이듯 인간도 ‘중량감’이 있어야 궤도를 형성하고 중량감이 만든 공간 안에서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별이 소실될 때 중력파를 남기듯 한 인간도 생을 마감할 때 파장을 남긴다. 누군가의 삶과 체취가 변형한 시공간에 익숙해진 주위 사람들의 세포가 고인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것이다._8쪽
아무리 세상살이가 공허한 우주 같아서 홀로 걸어간다지만 우리는 서로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중력으로 함께 당기고 미느라 엮이고 닿아 있다. 그래서 이별은 슬프다. 상대가 내게, 혹은 내가 상대에게 남긴 흔적이 남아 있는 한 죽음은 마냥 회피하고 싶은 ‘종말’일지 모른다. 하지만 끝없는 회피는 삶 속에 소중한 무언가를 잃어버리게 하고 개인을 병들게 한다.
과거에 비해 현대인이 죽음 앞에 느끼는 공포가 더욱 극심하다. 현대 사회는 죽음을 철저히 유폐하기 때문이다. 생명에 위협이 되는 일을 겪지 않는 이상, 정신없이 흘러가는 삶 속에 죽음은 없다. 급브레이크를 밟듯 몸의 이상 징후를 감지하는 순간이나 사랑하는 누군가의 갑작스런 비보는 그렇게 개인을 무너뜨린다.
저자는 “죽음이 전문화, 의료화된 것도 문제”라고 지적한다. “의학은 아프기 이전의 삶을 회복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학문이지, 어떻게 죽음을 맞이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는” 탓에 저자는 의사가 되면서 임종을 앞둔 환자에게 정작 어떻게 말하고 행동해야 할지는 교육받지 못했다고 고백하면서 의학 또는 의사야말로 “여전히 삶에만 집착하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한다.
관계 안에서 피어나는 생,
‘끝’이 있기에 모든 게 애틋하다.
삶의 끝자락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바짝 뒤따라 붙은 죽음 앞에 “가야 돼. 흙 요만치밖에 안 되는데 그거라도 땅에 보태야제.” 하며 웃어 보이는 할머니, 몇 십 년째 말없이 꼼짝 않고 누워 있는 “답답 박 서방”을 변함없이 사랑스럽게 부르는 아내, 몸이 뻣뻣하게 굳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일그러진 얼굴로 연신 선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가족들의 마음을 녹이는 환자. 때로는 그들도 예정된 결말에 눈물짓고 세상을 향해 “격정적인 목소리로 항의”하기도 하지만 그들은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과 오늘 나눠야 할 이야기를 나누고 사랑하며 행복해한다. 저자는 그들을 보며 “언젠간 반드시 들이닥칠 죽음이라는 단절이 주는 불안, 두려움, 허무, 공포는 현재의 삶을 잠식하고 주위 사람들 과 나누는 사랑, 애틋함 같은 소중한 가치들을 폐기”한다는 걸 깨달으면서 사람들의 관계 속에서 피어나는 ‘생의 의지’에 주목한다.
우리는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지 않기에 찰나가 더 소중한지도 모른다. 서로에 대한 애틋함은 무한을 펼칠 수 있는 유한한 삶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끝이 있는 삶 속에서 서로가 만난 게 결코 우연은 아닐 것이다. 저자는 환자들과 함께하는 병원에서의 삶을 기록하며 각자가 세상에 내린 뿌리, 관계로 묶인 매듭들을 돌아보며 죽음을 자연스럽게 삶 안에 장착하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그의 글은 순간의 작은 웃음과 곁에 자리 잡은 사람들과의 일상 같은 평범한 일들을 선물처럼 바꿔버린다. 펼처보기
작가 소개
저 : 이낙원
공기 안에 들어 있는 무언가가 호흡하는 모든 것을 특별한 존재로 만든다고 믿는다. 30대 초반에 호흡기내과 의사가 되어 환자들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다. 연세대학교 원주 세브란스병원에서 내과와 호흡기 분과를 연마하여 현재 인천 나은병원에서 호흡기내과 과장, 중환자실 실장으로 근무한다. 저서로는 『몸 묵상』(삼인, 2015)이 있다.
목 차
Ⅰ. 죽음을 다시 생각하다
뭐라는 거야 019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사세요 024
흙 보태러 가야지 029
승패와 관계없는 죽음 037
빗나간 예감 046
생의 끝에서, 작은 웃음 052
의학이 연구하지 않는 것 056
Ⅱ. 우리 사이에 피어나는 생
겨울나무의 소원 069
의욕 잃은 삶에 물 뿌리기 073
하루하루 마음 리셋 080
할머니와 아롱이 088
답답 박 서방 094
동떨어진 몸, 하나 된 마음 103
평화로운 523호실 110
미치광이처럼 파티를 118
아버지의 진짜 속내 126
Ⅲ. 환자와 나
대화, 은근한 기쁨 137
귀로 오지랖 부리기 144
유행가는 그곳에 없었다 149
짜증 바이러스 155
고쟁이 입은 아주머니 162
아프고 나서야 168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76
타인의 고통―
연명치료에 관하여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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