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반다나 시바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급진적 과학자 중 한 명이다” _《가디언 The Guardian》
살아 숨 쉬는 씨앗, 살아 숨 쉬는 토양, 살아 숨 쉬는 식량, 살아 숨 쉬는 농민
이 책은 농생태학으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단지 당위 차원에서 강변하는 책이 아니다. 반다나 시바는 이론과 주장을 펴는 데 머무르는 사상가가 아니다. 1970년대에 목재회사의 삼림파괴에 맞서 여성들이 마을의 나무를 껴안고 숲을 지켜냈던 인도의 ‘칩코운동’에서서부터 지구와 생명과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다양한 행동에 투신해온 반다나 시바는, 구체적 실태와 자료를 들어 산업농 시스템의 허구적 신화를 논파하고, 자신의 경험을 포함해 생태적이고 민주적인 푸드 시스템을 위한 다양한 실천들을 소개한다.
반다나 시바의 연구와 실천을 대표하는 것이 각각 이른바 ‘녹색혁명’에 관한 연구와 ‘나브다니야’ 운동이다. 시바에 따르면, 녹색혁명이란 인도에 도입된 화학물질 기반의 농업 모델에 붙여진 잘못된 이름이다. 전쟁 무기를 생산했던 화학기업들이 2차대전 후 화학비료라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으며, 1960년대 중반에 녹색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종자?화학물질’ 패키지를 남반구 국가들에 수출했다는 것이다. 녹색혁명이 식량문제를 해결했다는 신화가 만들어졌지만, 시바는 현실은 다르다고 말한다. “펀자브의 녹색혁명이 남긴 것은 사막화되다시피 한 토양, 고갈된 대수층, 생물다양성의 손실, 농가 부채, 살충제 탓에 암에 걸린 환자들을 라자스탄으로 태워 가는 ‘암 기차’였다.” 오늘날에는 GMO를 기반으로 하는 2차 녹색혁명이 진행 중인데, 시바에 따르면 이로 인해 이득을 얻는 것은 오직 기업들뿐이다.
‘나브다니야’는 반다나 시바가 1987년에 종자 보존, 생물 다양성 보호, 생태농법 보급을 목표로 조직한 공동체이자 운동이다. 시바는 1994년부터는 고향인 둔 밸리에서 나브다니야 농장을 시작했다. 100개 이상의 마을에 여성들이 운영하는 종자은행을 만들어 3천 종이 넘는 쌀 품종을 보존하는 등 나브다니야는 소농들과 함께 지구 자연과 화해하는 식량?농업 시스템을 실천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은 생물 다양성 기반의 생태농업이 토양의 비옥도를 높이고 온실가스를 감축하면서 건강하고 풍요로운 먹을거리를 생산할 뿐 아니라 농가 소득 증대에도 유리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반다나 시바는 나브다니야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푸드 시스템의 움직임을 제시하면서, 세계 식량의 70%를 생산하는 소농들에게 권력을 이동시켜야 하며, 종자 독립과 생태농법을 실천할 기회와 권리가 실질적으로 농민들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권력 전환을 통한 ‘푸드 민주주의’는 농지와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에 기여함으로써 ‘지구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지금 이 세계의 식탁을 차리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오늘과 내일의 세계를 누가 먹여 살릴 것인가? 반다나 시바는 이 질문에 분명하게 답한다. ‘푸드’가 생명의 그물이고 ‘세계’가 가이아(다채로운 존재와 생태계 그리고 여러 민족과 문화로 활력이 넘치는 어머니 지구)라면,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것은 생물 다양성과 소농들의 지혜라고. 화학비료와 농약, 단일경작, 종자 독재에 기초한 대규모 산업농은 세계를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위협하고 있다고. “30여 년의 연구와 삶의 경험은 내게 한 가지 진실을 가르쳐주었다. 식량 문제의 해답은 산업농이 아니라 농생태학에, 생태농업에 있다.” 반다나 시바는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해 기초해 농생태학이 발전시킨 실천들, 즉 이 세계를 먹여 살리는 주체를 구체화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화학비료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토양이다.
화학비료에 기초한 세계 농업 시스템에서 매년 240억 톤의 비옥한 토양이 사라지고 있으며, 토질 악화는 청정수 감소, 기후변화, 식량불안, 그리고 빈곤의 가능성을 증대시키고 있다. 비옥한 토양이 식량 생산의 기초다. 비옥한 토양을 만들어내는 것은 군집의 형태로 토양 내 먹이 그물을 구성하는, 무수히 많은 토양 유기체들이다. 생물 다양성, 그리고 유기 물질이 풍부한 토양은 기후 적응과 수자원 보존을 위한 최고의 방책이기도 하다. 물은 살아 활동하는 토양에 꼭 필요한데, 유기농법은 유기물 재순환을 통해 토양의 보수력을 키워 물을 보존한다. 이런 토양은 스펀지같이 되어 더 많은 물을 흡수하고 이로써 농업용수 사용량을 줄이고 기후변화 회복력에 기여한다. “건강한 흙이 건강한 식물을 생산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이다.
벌과 나비 같은 꽃가루 매개자들은 한 식물에서 다른 식물로 꽃가루를 옮기며 이 과정에서 식물을 수정시킨다. 아인슈타인이 “마지막 벌이 사라질 때 인류도 사라질 것”이라고 얘기했듯, 꽃가루 매개자들이 없다면 식물은 자기를 재생산할 수 없고, 식물이 재생산을 못하면 식량 공급이 위태로워진다. 2차대전 당시 화학전을 위한 실험실에서 탄생해 전후 새로운 시장을 개척한 유해생물억제제(농약)는 인간을 비롯해 표적으로 삼지 않은 수많은 유기체들에게도 독성을 발휘한다. 해충을 박멸하겠다고 죽음의 물질을 끌어들여 불균형을 심화할 것이 아니라 꽃가루 매개자들과 해충의 자연적 균형을 복구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의 먹을거리가 가진 영양과 건강, 생태계들 내의 지속 가능한 삶을 복구해야 한다.
# 지금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독성 어린 단일 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이다.
7천 종이 넘는 생물이 인류를 먹여 살려왔지만, 오늘날엔 단 30종의 작물이 인류의 식단에서 90%의 칼로리를 제공하며, 3종의 작물(쌀, 밀, 옥수수)이 칼로리 섭취의 5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 화학물질에 기초한 산업농 시스템이 종자?식품 대기업들의 통제와 결합해 획일적인 단일경작에 집중함으로써 생물 다양성이 사라지고 식탁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지구를 먹여 살린다는 것은 토양에서 해양에 이르기까지, 미생물에서 포유동물에 이르기까지, 식물에서 인간에 이르기까지, 온전함과 다양성을 갖춘 푸드웹(먹이그물)을 지속시킨다는 것을 뜻한다. 이 시스템의 기초는 이 행성이 생명을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재생하는 과정인 생태 과정이다. 지구의 통화는 생명이고 푸드다. 자연은 산업농이 말하는 것과 다르게 살아 숨쉬고 있으며 이 자연의 다양성이 우리를 먹여 살린다. 단일경작에서 다양성으로의 전환, 단위 면적당 산출량이 아니라 단위 면적당 ‘영양과 건강의 총량’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대규모 산업농이 아니라 소농, 농사짓는 가정, 텃밭 일꾼들이다.
우리의 식탁에 식량을 제공하는 것은 전 세계의 소농들이다. 소농들이 토양과 식물과 동물을 더 잘 보살피고 생물 다양성을 키우기 때문에, 화석연료나 유독성 화학물질, 부주의한 테크놀로지들로 대체하는 대규모 산업농보다 오히려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한다. 농민은 식물을 번식시키는 자, 종자를 보존하는 자, 토양을 보존하고 만들어내는 자, 물을 보호하고 수호하는 자다. 농민은 식량을 생산하는 자다. 오늘날 세계의 소농은 세계 자원의 30%만 사용하면서도 세계에 필요한 식량의 70%를 공급하고 있다. 여기에 크고 작은 텃밭들을 추가한다면, 사람들의 입으로 들어가는 식량의 대부분이 작은 규모의 땅에서 재배된다는 것은 한층 더 분명해진다. 식량 문제에 관해서라면 생태학적?문화적으로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작은 것이 크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이다.
씨앗은 푸드 시스템의 첫 번째 연결점이다. 씨앗이 없으면 식량도 없다. 씨앗이 다양하지 않으면, 생명체의 건강에 꼭 필요한 식량과 영양도 다양할 수 없다. 씨앗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기후 혼돈과 기후 불안정성의 시대에 기후 회복력도 있을 수 없다. 수천 년간 자유롭게 진화해오며 지구 생명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제공해온 씨앗을 기업들이 사유화하고 있다. 이윤을 위해 종자를 통제하고 개조하고 유전적으로 변형시키는 글로벌 기업 10곳이 230억 달러 규모에 달하는 세계 상업종자 교역량의 1/3을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종자를 장악해 푸드 시스템을 장악하려는 기업들의 종자 독재에 맞서 종자 독립을 실현해야 한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이다.
푸드는 세계 어디에서나 판매 가능한 향수나 보석 같은 상거래 품목이 아니다. 지상의 모든 존재가 푸드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개입하며, 모든 문화나 지역이 자체적으로 푸드를 생산한다. 모두가 먹어야만 하므로, 지역의 식량 주권은 식량 안보의 관건이다. 세계화 20년은 우리에게 농업 위기, 식량 위기, 감염병, 음식 폐기물과 점점 심각해지는 생태 위기를 남겼다. 하나의 푸드 시스템으로서의 산업형 세계화는 지구와 인류를 망쳤다. 이제는 지역 경제, 지역 푸드 시스템에 집중하는 새로운 푸드 생산?유통 시스템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렇게 지역을 살리는 시스템이 우리에게, 생명의 그물의 일부인 살아 숨 쉬는 진짜 식량을 가져다줄 것이다.
# 우리를 먹여 살리는 것은 기업이 아니라 여성이다.
종자, 생물 다양성, 토양, 물과 더불어 자연의 법칙, 생태학의 법칙에 따라 일하기. 이것이야말로 식량 생산의 기초다. 그런데 이와 관련된 지식과 실천은 전통적으로 여성의 몫이었다. 여성은 씨앗, 생물 다양성, 영양에 관한 광대한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 세계 사회들을 통틀어 식량?영양?음식물의 재배와 공급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것은 여성들이며, 이러한 여성들이야말로 농업을 진화시킨 장본인들이다. 지금도 여성이 세계 식량 생산자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여성 농민들과 생물 다양성 간의 파트너십이 인류 역사에서 세계를 먹여살려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식량 안보를 위해 보존하고 진흥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파트너십이다.
작가 소개
저 : 반다나 시바
Vandana Shiva
환경, 여성인권, 국제문제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선구자적인 사상가 가운데 한 사람. 핵물리학을 전공했다가 서구 과학기술의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고 생태운동에 투신한 활동가이다. 인도에서 다국적기업의 삼림파괴에 반대하는 칩코운동(Chipko movement)을 조직했으며, 제3세계의 생물 다양성 문제와 다국적기업의 생물 해적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다양한 반대운동들을 펼쳤다. 1995년에 또 하나의 노벨상으로 알려진 Right Livelihood Award를 수상했다. 현재 과학·기술·생태학연구재단의 책임자로 있다. 주요 관심분야는 제3세계 생태운동, 에코페미니즘, 생명공학과 특허 문제, 다국적기업의 생물 해적질, 농촌지역공동체의 자생적 발전 문제 등이다.
활발한 저술활동도 병행하고 있어서 저서도 매우 많으나, 대표적인 것으로는『살아남기』(1989), 『녹색혁명의 폭력』(1992), 『정신의 획일화』(1993), 『에코페미니즘』(1993, 공저), 『누가 세계를 약탈하는가』, 『물전쟁』, 『자연과 지식의 약탈자들』, 『진보의 미래』(공저) 등이 있다.
역 : 우석영
철학, 사회학 분야 연구자이자 작가. 연세 대학교, 시드니 대학교 대학원, 뉴사우스웨일스 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 문학, 철학을 공부했다. 환경철학, 문명론, 평화학 등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으며, 인문사회과학과 과학의 융복합 글쓰기를 추구한다. 환경철학회, 녹색아카데미 등에서 활동 중이며, 환경담론 영문 페이스북 페이지 Food Peace를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동서양의 다양한 그림으로 살펴본 우리 시대 인문교양서『철학이 있는 도시』, 한자어의 기원 연구를 철학적 사유와 접맥한 교양철학서 『낱말의 우주: 말에 숨은 그림, 오늘을 되묻는 철학』, 나무를 주제로 문학, 철학, 인류학, 생태학을 아우르며 펴낸 책 『수목인간: 나무의 시학, 나무의 생태학』, 『녹색당 선언』(공저)이 있다. 옮긴 책으로 『공부를 넘어 교육으로』, 『페어 푸드』,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말할 수 있을까』 등이 있다.
목 차
1장 폭력적인 지식 패러다임이 아니라 농생태학 _33
2장 화학 비료가 아니라 살아 있는 토양 _55
3장 독과 살충제가 아니라 벌과 나비 _75
4장 독성 어린 단일경작이 아니라 생물 다양성 _101
5장 대규모 산업형 농업이 아니라 소농 _125
6장 종자 독재가 아니라 종자 독립 _145
7장 세계화가 아니라 지역화 _173
8장 기업이 아니라 여성 _215
9장 푸드의 미래, 우리의 선택 _239
옮긴이 해제
: 온전한 자연과 식食과 인간, 셋이 아닌 하나 _266
주 _284
찾아보기 _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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