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윤동주 탄생 100주년 기념 동시집
영원한 소년 윤동주와 아우 윤일주의 동시를 만나다
100년이 흘러도 변함없는 시인의 동심
넣을 것 없어/걱정이던/호주머니는//겨울만 되면/주먹 두 개 갑북갑북.
- 윤동주 「호주머니」 전문
윤동주의 시는 빼어난 서정과 깨끗한 시어로 애송되어 왔다. 그중에서도 그의 꾸밈없는 성정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동시는 윤동주 시의 백미로 꼽을 만하다. 여기 실린 시편들은 철부지 개구쟁이 같다가도 때로 의젓한 아이들의 다채로운 모습이 눈앞에 선히 그려지며, 아기자기한 운율과 말맛 또한 일품이다. 어린이의 속내를 알아주는 대목에선 시인만의 남다른 눈썰미가 반짝인다. 어머니에게 혼쭐나고 빗자루를 숨기는 「빗자루」, 동화 속 세계를 연상케 하는 「귀뚜라미와 나와」, 일터에 나갔다 돌아오는 누나는 그린 「해바라기 얼굴」 들은 윤동주의 동시 세계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짤막한 시 「호주머니」는 단순하다 할 만큼 담백한 언어로 주머니처럼 텅 빈 마음을 충만하게 채워 준다. 그가 더 오래 동시를 쓸 수 없었던 시대의 비극이 못내 애석할 따름이다.
바닷가 사람/물고기 잡아먹구 살구/산골엣 사람/감자 구워 먹구 살구/별나라 사람/무얼 먹구 사나.
- 윤동주 「무얼 먹구 사나」 전문
닮아서 아름답고, 달라서 더욱 빛나는 형제의 시
별 총총한 밤에/바다 꿈을 꾸며 자는 산골 아이./바다는 파란 바다 끝이 없는데/돛단배에 앉아서 가고 있었다.//별 총총한 밤에/산골 꿈을 꾸며 자는 바닷가 아이./산길은 꼬불꼬불 끝이 없는데/하얀 꽃을 따면서 가고 있었다.
- 윤일주 「꿈」 전문
윤동주 탄생 100주년을 맞아 윤동주와 그의 아우 윤일주의 동시를 한데 모은 『민들레 피리』는 윤동주 동시에 대한 목마름을 가시게 하기에 충분하다. 윤동주의 아우 윤일주는 건축학을 가르치는 학자로 연구 틈틈이 동시를 써 왔다. 1985년 작고한 뒤, 1987년에 유고 동시집과 2004년에 유고 시집이 출간되었지만 지금은 모두 절판되어 그의 시를 궁금해하는 독자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윤일주는 가난한 이웃과 보잘것없는 존재를 귀하게 여길 줄 알던 형 윤동주의 정신을 이으면서 자신만의 시를 써 나갔다. 어린이의 눈으로 “바닷가 사람”과 “산골엣 사람”의 생활을 들여다본 윤동주의 「무얼 먹구 사나」를 떠올리게 하는 윤일주의 「꿈」은 그러나 거기에 그치지 않고 “꿈”이라는 또 다른 공간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윤일주는 이번 동시집 출간으로 다소 뒤늦게 알려지는 셈이지만, 그 덕분에 오히려 우리는 윤동주와 닮은 한편 고유한 세계를 확보한 새로운 시인을 만나는 기쁨을 누리게 되었다.
정다운 우애와 무구한 동심의 세계
햇빛 따스한 언니 무덤 옆에/민들레 한 그루 서 있습니다./한 줄기엔 노란 꽃/한 줄기엔 하얀 씨.//꽃은 따 가슴에 꽂고/꽃씨는 입김으로 불어 봅니다./가벼이 가벼이/하늘로 사라지는 꽃씨.//?언니도 말없이 갔었지요.//눈 감고 불어 보는 민들레 피리/언니 얼굴 환하게 떠오릅니다.//날아간 꽃씨는/봄이면 넓은 들에/다시 피겠지./언니여, 그때엔/우리도 만나겠지요.
- 윤일주 「민들레 피리」 전문
윤동주는 서울과 일본 유학 시절, 만주의 아우들에게 문예지를 부치거나 동화를 권해 주며 향수를 달랬다. 아우 윤일주는 형의 뜻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글을 쓰고자 하는 꿈을 싹틔운다. 형은 유학 도중 세상을 떠나고, 윤일주는 형의 시를 세상에 알리는 일에 앞장서는 동시에 형이 남기고 간 시작(詩作)을 향한 씨앗을 키워 나간다.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애썼던 형 윤동주를 따르고자 한 윤일주의 형에 대한 그리움과 시에 대한 애정이 만나 형상화된 것이 표제작 「민들레 피리」다. 윤동주?윤일주 형제의 정겨운 우애와 동심이 담긴 동시를 읽는 것은 탄생 100주년을 맞은 시인을 기리는 또 하나의 각별한 방법이라 하겠다.
작가 소개
글 : 윤동주
尹東柱
만주 북간도 명동촌에서 아버지 윤영석과 어머니 김용 사이의 4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명동소학교, 은진중학교를 거쳐 평양의 숭실중학교로 편입하였으나 신사참배 거부로 자퇴하고, 광명중학교 졸업 후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15세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에 「달을 쏘다」「자화상」「쉽게 쓰여진 시」을 발표하였고 문예지 『새명동』발간에 참여하였으며, 대학시절 틈틈이 썼던 시들 중 19편을 골라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연희전문을 졸업한 후 1942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하였고, 6개월 후에 교토 시 도시샤 대학 문학부로 전학하였다. 1943년 7월 14일, 귀향길에 오르기 전 사상범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교토의 카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되었다. 이듬해 교토 지방 재판소에서 독립운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되었다. 그리고 복역중이던 1945년 2월, 스물 여덟의 젊은 나이로 타계하였다. 유해는 그의 고향인 연길 용정(龍井)에 묻혔다.
그의 사후 자필 유작 3부와 다른 작품들을 모은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가 1948년에 출간되었다. 1968년 연세대학교에 시비가 세워졌으며, 1985년부터 한국문인협회가 그의 시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윤동주 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시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와 연변작가협회의 기관지인 「연변문학」에서도 동명의 문학상을 운영하고 있다.
그의 짧은 생애에 쓰인 시는 어린 청소년기의 시와 성년이 된 후의 후기 시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청소년기에 쓴 시는 암울한 분위기를 담고 있으면서 대체로 유년기적 평화를 지향하는 현실 분위기의 시가 많다. 「겨울」「버선본」 「조개껍질」 「햇빛 바람」 등이 이에 속한다. 후기인 연희전문학교 시절에 쓴 시는 성인으로서 자아성찰의 철학적 감각이 강하고, 한편 일제 강점기의 민족의 암울한 역사성을 담은 깊이 있는 시가 대종을 이룬다. 「서시」 「자화상」 「또 다른 고향」 「별 헤는 밤」 「쉽게 쓰여진 시」「십자가」 등이 대표적인 그의 후기 작품이다. 이같은 그의 후기 작품들은 일제 치하의 암울한 시대 속에서도 빼어나고 결 고운 서정성을 빛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서정적 민족시인'이라는 평가를 그에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라고 되뇌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라며 부끄러운 삶을 경계했던 시인은 그 댓가로 일제에 의해 젊은 나이, 스물 여덟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글 : 윤일주
1927년 만주 북간도에서 태어났습니다. 서울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건축공학과에서 가르쳤습니다. 1955년 『문학예술』에 「설조」가 추천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한국 양식 건축 80년사』 『한국 현대 미술사(건축편)』 등을 썼으며, 『근대 건축은 왜 실패하였는가?』 『건축학 개론』 등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1985년 작고한 뒤, 1987년에 유고 동시집 『민들레 피리』, 2004년에 유고 시집 『동화』가 출간되었습니다
그림 : 조안빈
1986년 경북 경주에서 태어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문득, 춘천 전주 경주』(공저)를 썼습니다.
목 차
제1부●윤동주
산울림
귀뚜라미와 나와
애기의 새벽
해바라기 얼굴
햇빛, 바람
나무
만돌이
개 1
반딧불
할아버지
둘 다
거짓부리
호주머니
겨울
닭
눈 1
눈 2
사과
버선본
편지
참새
개 2
봄
무얼 먹구 사나
굴뚝
해비
빗자루
기왓장 내외
비행기
오줌싸개 지도
고향 집
병아리
창 구멍
조개껍질
제2부●윤일주
공작아
아침
노란 알 하얀 알
연
함박눈
낮잠
샘
대낮
나비
솔방울
구슬
보슬비
벙어리 오뚝이
가을
외딴섬
민들레
염소
소나기 오기 전
병아리 학교
가을밤
송아지 방울
꿈
달밤에
어머니 무릎에
눈
우유 배달
점심때
빨간 자전거
이른 아침
길 잃은 까마귀
민들레 피리
해설|김제곤_두 형제 시인의 시를 함께 읽는 기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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