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현대사회는 범위가 넓고 빠르게 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를 종합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는 학문적 대가가 출현하기를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이다. 이런 때일수록 고전으로 돌아가라는 말을 누누이 듣지만 현실은 그런 고전을 찾아보기 힘들다.
짐멜은 학문의 탁월함에도 불구하고 당대에 학계에서 주변적 위치에 있었고 우리나라에서도 상호작용이론, 현상학적 사회학 등에 많은 영향을 미쳤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저작에 대해서는 크게 소개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은 단순히 짐멜의 사회학을 재조명하자는 의도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곳곳에 만연하고 있는 갈등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큰 도움을 될 것으로 기대한다.
2. 사회학자로서 짐멜의 역할
게오르크 짐멜(1858~1918: Georg Simmel)은 『돈의 철학』(Philosopie des Geldes)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짐멜은 칼 마르크스, 막스 베버, 에밀 뒤르켕과 함께 현대 사회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주요한 고전 사회학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당시 프로이센)에 태어난 짐멜은 시기적으로 보면 막스 베버(1864~1920)와 거의 동년배이고, 마르크스(1818~1883)보다는 40년 뒤늦게 태어났다. 짐멜이 태어날 무렵 마르크스는 이미 성숙하여 마르크스이론은 독일 뿐 아니라 유럽 전체에 영향력을 발휘하던 시기이다.
짐멜은 막스 베버, 페르디난트 퇴니스(Ferdinand T?nnis)와 함께 독일 사회학회를 창립하고, 그의 저작들은 당대의 1세대 사회학자들에 의해 많이 읽히고 인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유태인 출신인 탓인지 아니면 탁월한 학문적 유명세로 인한 학계의 시기심 탓인지 오랫동안 교수직을 갖지 못하고 현재의 시간강사 같은 사강사(Privat Dozent) 지위에 머물렀다. 짐멜은 43세이던 1901년 베를린대학 명예조교수 자리가 주어졌으나 그 자리는 급료도 없고 학사행정에도 관여하지 못하는 허울뿐인 직책이었다. 당시 짐멜의 저작이 영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 폴란드어로 번역될 정도로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던 그에게는 서글픈 일이 아닐 수 없다. 10여년 후 1914년 정교수가 되었지만 그곳은 변방의 도시 스트라스부르크에 있는 지방대학이다. 그리고 4년 후 짐멜은 숨을 거두었다.
짐멜은 사회학자이면서 철학자이다. 그는 『사회 분화』(Uber sociale Differenzierung), 『사회학』(Soziologie), 『사회학의 근본 문제』(Grundfragen der Soziologie) 같은 사회학 저작 뿐 아니라 『윤리학 개론』(Einleitung in die Moralwissenschaft), 『역사철학의 문제』(Die Probleme der Geschichtphilosophie), 『돈의 철학』(Philosophie der Geldes), 『칸트와 괴테』(Kant und Goethe), 『종교』(Die Religion), 『쇼펜하우어와 니체』(Schopenhauer und Nietzsche), 『철학의 주요 문제』(Hauptprobleme der Philosophie), 『인생관』(Lebensanschauung), 『예술철학』(Zur Philosophie der Kunst) 등 철학, 종교, 윤리학, 예술 등에 관한 저작을 남김으로써 그의 학문적 경지는 종합학문의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저작에서 보듯이 짐멜의 학문적 영역은 종합학문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짐멜의 학문적 영역은 분절된 분과학문을 단순히 종합해서 묶어 놓은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현상을 반영하는 일관된 사회관을 표방하고 있다. 사회학의 주요 관심은 사람들(또는 집단들) 간의 관계를 다루는 학문이다. 마르크스의 계급관계, 베버의 개인 행위 간의 관계, 뒤르켕의 사회분화는 물론 현대 사회학의 구조기능주의, 갈등이론, 교환이론, 상징적 상호작용이론 할 것 없이 모두 관계―상호작용―를 다루고 있다. 그 관계를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 즉 우호적이냐 적대적이냐, 대립적이냐 상호적이냐에 따라, 요컨대 갈등관계에 있느냐 아니면 통일상태에 있느냐에 따라 많은 이론들이 분기되고 대결하고 있다.
3. 갈등이 없으면 통일은 없다
갈등이 없으면 통일은 없다!
짐멜은 갈등을 사회관계, 상호작용의 중심에 놓는다. 그러나 짐멜이 보는 갈등은 여느 갈등이론과도 사뭇 다르다. 이른바 갈등이론의 고전적 원류인 마르크스는 사회발전의 결과이자 원인으로 보고 사회진보의 원동력으로 간주한다. 현대사회학에서 갈등이론을 대표하는 랄프 다렌도르프(Ralf Dahrendorf) 역시 마르크스의 이론을 추종한다. 다만 마르크스는 경제적 관계에서 다렌도르프는 정치적 관계에서 갈등의 근원을 찾고 있다. 이 책에 제시된 짐멜의 갈등관은 전통적인 갈등이론에서 제시된 갈등관과는 전혀 다르다. 짐멜은 갈등을 통일과 대립적으로 보지 않고 통일을 위한 전제로 본다.
그러므로 위에서 언급했듯이 마르크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갈등이론가들이 거시적 측면에서 접근하는 반면, 짐멜은 혼인관계, 가족, 종교, 노사관계 등 모든 측면에서 접근한다. 또한 마르크스와 달리 갈등에 의한 역사발전의 논리를 펴지 않는다. 다만 갈등이 없으면 통일이 없고 비 온 뒤 땅이 더 잘 굳는 것처럼 더 나은 통일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갈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짐멜은 갈등을 역사적 필연으로 보지 않고 그의 사회학의 특징인 형식사회학적 관점에서 접근한다. 즉 갈등의 원인과 결과가 아닌 갈등의 형식을 중시한다.
[내용 소개]
갈등: 결합을 위한 한 방편
갈등은 서로 대립하는 것들 사이의 긴장을 해소한다.
갈등(conflict)의 사회적 중요성에 대해 지금까지 아무도 원리적으로 논의한 적이 없었다, 갈등은 각종 이익집단, 통일체, 조직체를 생겨나게 하기도 하고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편, 갈등을 갈등에서 유발되는 현상이나 갈등을 수반하는 그 어떤 현상과도 관련시키지 않고 그 자체로 결합(sociation)1의 한 형태로 보는 것은 상식적인 관점에서 보면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다.
언뜻 보면, 이것은 수사적인 문제로 들린다. 사람들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상호작용을 결합이라고 한다면, 갈등도 마땅히 결합의 한 형태로 간주해야 한다(갈등은 가장 강렬한 상호작용의 하나이며, 개인 혼자의 힘만으로는 일어날 수가 없다). 사실 결합을 해체하는(dissociating) 요인들, 즉 증오, 시기, 욕구, 욕망 등이 갈등의 근원이다.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갈등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갈등은 분기하는 이중성(divergent dualism)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다. 갈등은 통일(unity)을 성취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또한 갈등 대상을 소멸시키는 것도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한 방법이다). 즉 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유기체가 질병에 의한 장애와 피해로부터 벗어나려고 노력할 때 질병의 증상이 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그러나 이 현상[갈등]은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 준비를 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는 말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현상[갈등]은 아주 일반적인 현상인데, 이 격언은 특수한 경우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있다. 갈등은 서로 대립하는 것들 사이의 긴장을 해소한다. 갈등은 평화를 지향한다는 말이야말로 갈등의 본성을 명백하게 나타내는 유일한 표현이다. 갈등은 서로 대립하는 요소들 또는 서로 옹호하는 요소들을 종합한 것이다.
이러한 성격은 대립 관계와 수렴 관계라는 두 형태의 관계가 둘 이상의 개인 또는 집단 사이의 무관심(indifference)과 근본적으로 구별된다는 것을 깨달을 때 가장 분명하게 나타난다. 무관심은 그것이 결합의 거부를 의미하든 폐기를 의미하든 순전히 부정적인 측면을 내포한다. 무관심이 순수하게 부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갈등은 긍정적 측면을 내포한다. 즉 갈등에는 긍정적 측면과 부정적 측면이 통합되어 있다. 이 두 측면은 개념상으로는 분리할 수 있지만 실제 경험에서는 분리되지 않는다.
작가 소개
저 : 게오르그 짐멜
Georg Simmel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 1858~1918)은 독일 베를린에서 태어나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베를린 대학에서 역사학, 민족심리학, 철학, 예술사 및 고대 이탈리아어를 공부했으며, 칸트 철학에 대한 연구로 1881년 박사학위를, 그리고 1884년 ‘하빌리타치온’(대학교수 자격)을 취득했다. 학자로서의 짐멜은 불운했다. 1885년부터 베를린 대학 철학과에서 사강사로 가르치기 시작했으나, 아주 오랫동안 사강사와 무급의 부교수로 재직하다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인 1914년이 되어서야 비로소 슈트라스부르크 대학의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학계에서 주변인, 아니 이방인이었다. 그러나 짐멜은 『돈의 철학』(1900)을 위시해 『사회분화론』(1890), 『역사철학의 문제들』(1892), 『도덕과학 서설』(1892~93), 『칸트』(1904), 『칸트와 괴테』(1906), 『쇼펜하우어와 니체』(1907), 『사회학』(1908), 『철학의 주요 문제들』(1910), 『괴테』(1913), 『렘브란트』(1916), 『사회학의 근본 문제들』(1917), 『현대 문화의 갈등』(1918)을 비롯해 사회학, (사회)심리학, 문화철학, 예술철학, 인식론, 윤리학, 형이상학, 미학 등에서 다양한 저서를 남겼으며 수많은 글을 발표했다. 특히 그의 철학적 주저인 『돈의 철학』에서는 경험적 현실세계로 임하는 철학, 또는 달리 말해 경험과학의 차안과 피안에 위치하는 철학을 제시했으며, 이에 입각해 돈과 개인의 자유 및 인격의 문제를 심층적으로 논구했다. 또한 그의 사회학적 주저로 꼽히는 『사회학』을 비롯한 여러 저술에서 형식사회학을 구축해 사회학적 인식에서 일종의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왔으며, 1909년 막스 베버 및 베르너 좀바르트 등과 더불어 독일사회학회를 창립하여 사회학의 제도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짐멜이 남긴 방대한 지적 유산은 총 24권으로 된 『게오르그 짐멜 전집』에 담겨 있다. 오늘날의 모더니티 담론과 포스트모더니티 담론은 짐멜이라는 거대한 정신세계에 회귀하면서 더욱더 넓어지고 깊어지고 있다.
역 : 정헌주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졸업
고려대학교 사회학 박사
고려대학교 노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사회학과 강사
주요 저서 및 역서
『정보사회의 빛과 그늘』 (공저, 일신사, 2003)
『현대사회와 소비문화』 (공저, 일신사, 2005)
『지구시대』 (공저, 일신사, 2005)
『칼 마르크스의 역사이론: 역사유물론의 옹호』(공역, 한길사, 2011)
『사회학 이론: 무엇이 문제인가』(공역, 아카넷, 2013) 외 다수
목 차
제1장 갈등의 사회학적 성격 _ 17
갈등: 결합을 위한 한 방편 _ 19
갈등의 사회학적 적절성 _ 21
통일 대 불화 _ 25
갈등: 집단을 통일하는 원동력 _ 27
사회관계의 동질성과 이질성 _ 31
적대성: 결합을 위한 한 요소 _ 37
적대성의 근본적 성격 _ 42
적대감의 피암시성 _ 46
적대감을 유발하는 요인과 억제하는 요인 _ 48
적대적 게임 _ 52
법적 갈등 _ 54
대의를 둘러싼 갈등 _ 57
갈등의 토대: 대규모 사회구조 내의 공통적 성질 대 공동 성원권 _ 64
친밀한 관계 속의 갈등 _ 67
집단을 위협하는 갈등 _ 72
질투 _ 74
제2장 경쟁 _ 83
경쟁의 주관적 목표와 객관적 결과 _ 85
경쟁의 사회화 기능과 문명화 기능 _ 91
집단 내 갈등으로부터 집단을 보호하는 메커니즘: 유기적 연대 대 고립 _ 96
집단 내 경쟁과 집단의 구조 _ 100
가정 내의 경쟁 _ 101
종교집단 내 경쟁 _ 102
경쟁, 개인주의, 사회적 이해관계 _ 106
사회주의와 경쟁 _ 108
길드에서의 경쟁 _ 110
경쟁 수단의 제약 _ 112
법과 경쟁 _ 115
도덕과 경쟁 _ 121
제3장 갈등과 집단구조 _ 127
갈등과 집단의 중앙집중화 _ 130
갈등상태에서 중앙집중화된 집단의 행동 _ 133
집단 간의 갈등이 집단에 미치는 영향 _ 135
가톨릭교와 개신교 _ 137
남성과 여성 그리고 관습 _ 139
내부의 반대와 외부의 반대 그리고 집단의 결집력 _ 143
집단형성의 토대로서 갈등 _ 146
강조하고 싶은 욕구 _ 159
갈등과 평화의 모순관계 _ 161
갈등을 종식시키는 동기들 _ 163
갈등대상의 소멸에 의한 갈등의 종결 _ 165
승리 _ 167
타협 _ 170
화해 _ 173
화해불가능성 _ 179
찾아보기 _ 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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