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2014년 공쿠르 상 수상작가 리디 살베르가 쓴
노골적이고 유쾌한 성 지침서
소설가 리디 살베르가 쓴 이 야릇한 책을 어떻게 소개할까. 2014년 공쿠르 상을 비롯해 에르메스 상·노방브르 상·프랑수아 비예두 상 등을 받은 이력을 내세워 대단한 작가임을 강조할까? 오비디우스·드니 디드로·샤를 보들레르·루이 아라공·기욤 아폴리네르·조르주 바타유 등 위대한 문학 거장들을 줄 세워 에로티즘 전통 혹은 외설 문학의 계보를 잇는 작품으로 설명할까? 아니면 수전 손택이 쓴 「포르노그래피적 상상력」을 동원해 현학적으로 해설해볼까? 그러자니 왠지 이 책을 변명하는 것 같기도 하고, ‘포르노그래피’라는 말에 행여 기대를 잔뜩 품을지 모를 독자를 오히려 실망시키게 될 것도 같다.
이 책을 쓰면서 저자는 “참으로 슬프게도 우리가 상스런 행위로, 참으로 천박하게 위생문제로 축소해버린 성행위에 본래의 야성을 돌려주려고 애써볼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짓궂은 장난기와 웃음기 가득한 조롱을 담아 성性의 다양한 측면들에 대해 거침없이 얘기한다. 욕망의 대상을 사로잡고, 매혹하고, 홀리고, 들뜨게 만들고, 꾀고 돌돌 말아서 유혹하기 위한 계략을 구체적으로 조언하는가 하면, 갖가지 체위를 묘사하고, 펠라티오며 쿤닐링구스며 항문성교를 노골적으로 설명한다. 상대가 내게 반한 징후, 상대의 감정이 식은 징후 등을 재미나게 열거하기도 한다.
성에 집중된 주제며 노골적인 표현들을 보면 이 책을 포르노그래피로 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수전 손택의 말을 잠시 빌리자면, 포르노그래피는 오직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데 목적이 있고, “언어는 격이 떨어지는 단순도구로서의 역할만” 수행하며, 인간관계나 감정에는 무관심하고 “비동기적이고 비인격화된 신체부위의 상호작용만” 드러낸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책은 포르노그래피로 볼 수 없겠다. 혹시 “성적 흥분을 유발”할지는 모르겠으나, 인간의 감정과 심리를 통찰하는 데다, 언어를 결코 단순도구로만 쓰지 않고 선입견이나 통념, 도덕적 판결 따위를 조롱하고 정교한 유머까지 구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노골적인 묘사 틈틈이 매혹적인 문구들이 반짝인다. 이를테면, “포옹은 가두는 것도 소유하는 것도 조종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시인이 그리 말할 겁니다.”라는 표현이나 혹은 “우리는 매혹하는 법을 잊으면서 증오하는 법을 배운다.”라는 근사한 니체의 글귀도 만날 수 있다. 사실 저자는 니체만이 아니라 사무엘 베케트·쇼펜하우어·파스칼·카툴루스·수에토니우스·마르시알리스·하이데거·오스카 와일드·키르케고르·플로베르·스피노자·사르트르·디드로·아부 알라 알마아리·오비디우스·페트로니우스·아레티노·루소 등을 화려하게 인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중심에 자리한 건 무엇보다 웃음이다. 리디 살베르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글을 써달라는 [롭스 L’Obs]지의 청탁을 받고 프랑수아 라블레에게 편지를 쓰며 웃음의 중요성에 대해 얘기한 바 있다. 그녀는 우리가 점점 호탕한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고 염려한다. 웃음이 “목구멍 속에서 포효하지 않고, 포복절도하게 만들지도 않고, 물어뜯지도 조롱하지도 않고” 조심스러워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비슷한 시기에 쓴 이 책에서 작가는 라블레 풍의 유머를 한껏 구사해보려 한 것 같다. 덕분에 우리는 책 곳곳에서 짓궂은 농담과 조롱 섞인 유머를 만날 수 있다. 이를테면 저자는 성욕감퇴제 목록에 “플라토닉 사랑을 떠들어대는 따분한 사람, 뒤끝 있는 사람, 정신과 의사, 문학 평론가”를 집어넣는가 하면, 오스카 와일드의 말을 빌려 “유혹에서 해방되는 유일한 길은 그 유혹에 넘어가는 것”이라고 능청을 떨기도 하고, 금융계 남자는 당신의 매력보다는 주식지수의 상승에서 더 쾌감을 느끼니(당신의 육체적 매력이 육류 분야에 상장된 경우라면 모를까) 조심하라고 조언한다. 또 “성가시도록 도처에 신출귀몰하며” “낯선 이의 손을 붙잡고, 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고, 연단에 올라 감언이설로 대중을 속이고, 박수갈채 받기를 좋아하는 정치인”도 사랑에는 부적합한 인물이니 경계하라고 당부한다.
때로는 짓궂고 노골적인 표현 너머로 뜻밖의 서정성을 만날 수도 있다. 여러 체위를 세세히 설명하고 나서 작가는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아름다운 체위를 깜빡 잊었다”며 “사랑하는 존재를 오래도록, 다정하고, 부드럽게, 미친 듯이 껴안고, 닳도록 애무하고, 격렬하게 끌어안고…그의 안에서 나를 잃고, 그의 품에서 죽을 때까지 포옹하는 것”이야말로 경이 가운데 경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죽음이 당신을 데려가기 전에 뜨겁게 사랑하라”는 말로 글을 마무리한다.
저자가 놀이하듯 유쾌하고 익살스럽게 써놓은 책을 긴 해설로 무겁게 만들지 말아야 하겠다. 이 책의 유머가 우리나라 독자에게 얼마나 통할지 모르겠으나, 부디 독자들이 잠시나마 진지함을 벗고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이 책을 읽기를 기대해본다.
(* 이 리뷰는 출판사의 요청으로 백선희 번역가가 쓴 글입니다.)
작가 소개
저 : 리디 살베르
Lydie Salvayre,본명: Lydie Arjona
1948년 프랑스 중부의 오탱빌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에스파냐 내전 후 프랑스로 망명한 공화주의자들이었다. 툴루즈 근교의 오트리브 에스파냐 난민촌에서 성장했다. 툴루즈 대학교에서 현대문학으로 학사 학위를 받고, 1969년 다시 의과 대학에 입학했다. 이후 마르세유로 가서 정신과 전문의 과정을 공부하고 가까운 부크벨레르에서 다년간 정신과 전문의로 일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해 1990년에 발표한 첫 소설 《선언La Declaration》으로 에르메스 첫 소설 상을 받았다. 1997년에 발표한 《유령회La Compagnie des Spectres》가 노방브르 상을 수상하고 문예잡지 〈리르〉에서 ‘올해 최고의 책’으로 꼽혔다. 이후 벗이자 탁월한 편집자인 베르나르 왈레를 모델로 한 소설 《BW》(2009, 프랑수아 비예두 상 수상)와 전설의 기타리스트 지미 핸드릭스를 모델로 한 《찬가Hymne》(2011)를 발표하는 등 실존 인물들의 초상을 그려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발휘한다. 살베르의 작가적 역량과 인간 심리를 꿰뚫는 정신과 의사의 능력이 결합한 산문집 《일곱 명의 여자》(2013) 역시 동일 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2014년에 1936년 에스파냐 내전을 소재로 한 소설 《울지 않기》로 프랑스 작가에게 최고 영예인 공쿠르 상을 수상했다. 살베르의 작품들은 많은 나라에서 연극으로 각색되어 상연되고 있으며, 전세계 20여 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역 : 백선희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현재 덕성여자대학교에 출강하고 있으며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다섯 손가락 이야기』 『파트리시아 카스, 내 목소리의 그늘』 『자크와 그의 주인』 『레이디 L』 『짜증나!』 『행복, 하다』 『흰 개』 『북극 허풍담』 『로맹 가리와 진 세버그의 숨 가쁜 만남』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웃음과 망각의 책』 『햄릿을 수사한다』 『나가사키』 『셜록 홈즈가 틀렸다』 『하늘의 뿌리』 『안경의 에로티시즘』 『앙테크리스타』 『피에르 신부의 고백』 『알코올과 예술가』 『풍요로운 가난』 『단순한 기쁨』 『청춘·길』『밤은 고요하리라』『울지 않기』 등이 있다.
목 차
들어가는 말 14
1. 예비 접촉의 종류 17
2. 절대 건너뛰지 말아야 할 단계, 키스 23
3. 유체이탈의 지름길, 펠라티오 27
4. 여성의 온전한 쾌락을 위한, 쿤닐링구스 33
5. 작업 준비와 전략 37
6. 주목할 만한 체위 75
7. 혹시 뒤쪽을 좋아한다면 91
8. 불가사의한 고통의 쾌락 97
9. 구둘라 성녀의 삶 103
10. 예절 107
11. 참고하면 좋을 관습 125
12. 누군가에게 반한 징후 147
13. 감정이 식은 징후 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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