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이라는 무늬

고객평점
저자김선아
출판사항황금알, 발행일:2017/11/30
형태사항p.112 국판:22
매장위치문학부(1층)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86547779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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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사막에서는 뼈다귀가 나침반이라지. 고독이란 말이 화사한 세상에서, 순도 높은 야생성 고독의 유일한 서식지는 사막이라지. 누군가는 이런 신기루 같은 사막을 마지막 순례지로 갈망한다지. 죽음이 산목숨을 필사적으로 당겨 각을 뜨듯, 모래수렁이 가시를 세울 때면 뼈다귀마다 높은 음계 돋아난다지. 순결한 고독을 찾아 헤매는 순례자의 발바닥을 마구 간질인다지. 간지러움은 목숨을 부지해주는 매혹. 내 안의 사막에서 맨발을 분실한 나는, 모래알 틈새를 넘나드는 순례자처럼 발가락뼈에서 간지러움의 음역 골라낼 수 있을까. 내 정신의 간지러움 되살아나 뼈다귀의 화살표를 따라갈 힘 생겨날까. 뼈다귀에 홀리는 일은 사막횡단지도를 손에 넣고 반짝거리는 일이라지. 죽음의 칠흑을 골똘히 믿어보는 동안에도, 사막은 북극성 별빛까지 뼈다귀 속에 쟁여두고 반짝인다지.
―「나는 가야지」 전문

 김선아 시인에게 사막은 필사必死의 장소이다. 일면 신기루 같아 보이지만 그곳은 “순결한 고독”을 보석처럼 발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이다. 가장 깨끗한 고독의 형태를 찾으러 시인은 이곳에 왔다. 그에게는 모든 부차적인 것들을 걷어내고 진실의 핵심에 다가갈 필요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모든 다신多神의 흔적을 지우고 시의 성소에 임하려 하기 때문이다.

시인은 오래 전 묻어놓았던 진실의 “뼈다귀”를 찾으려고 한다. 그는 오래 전 발견한 “북극성 별빛”에게로 돌아가려 한다. ‘뼈다귀와 별빛’은 시심의 다른 말이며, 그것은 김선아 시인의 가장 원천적인 가치, 혹은 그를 시인으로 만들었던 아주 오래 전 운명을 뜻한다. 이것을 나침반 삼는다는 것은 시의 행보를 지속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사막의 시는 이번 시집 이해에 있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시적 세계로의 복귀와 시매詩妹로서의 운명이 바로 이 사막 위에 놓여 있다. 시적 자아가 마음의 사막을 통과하고 난 후에 이 시집을 들고 나온 셈이다.

우리는 사막이라는 심경心景을 통해 시인 특유의 심경心境에 닿을 수 있다. 삶의 유일 원리가 시詩라면, 그런데 그 유일 원리가 심층에 존재한다면 무엇을 해야 하나. 유일은 본질이고 뼈대일 터, 그렇다면 본질과 뼈대가 나올 때까지 비본질과 비뼈대를 발라 버릴 수밖에 없다. 화사한 장신구를 벗고, 무의미한 의상을 벗고, 물컹한 살점을 벗고, 시인은 본질로 회귀하려고 한다. 즉, 그에게는 각고刻苦가 필요하다. 삶과 일상이 만들어 놓은 여러 가지 자아상을 벗어버려야 한다. 이것들을 벗어야만 본질에 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막’이라는 탈각의 장소와 시간이 김선아 시인에게 요청되었던 것이다.

또한, 김선아 시인과 그의 시는, 다신과 유일신의 이야기를 닮았다. 그는 사람이고, 여성이며, 어머니이고, 교사이다. 이 말을 신화적으로 풀이하자면, 그에게는 섬겨야 할 수많은 다신들이 존재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사람으로서 감당해야 할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책무들은 다신들의 하나였다. 가족과 자식은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다신이었다. 교사의 얼굴로 살 때는 교육과 학생들이야말로 섬겨야 할 대상이었다. 짐작건대, 그는 기꺼이 섬겼고 섬기고자 했으며 섬겨왔다. 그리고 지금, 오랜 시간 동안 엮여왔던 ‘다양한 섬김들’은 이제 유일한 ‘한 섬김’의 시간으로 종속되려고 한다. 시집 『얼룩이라는 무늬』는 한 섬김으로 향하는 움직임의 증거이다. 모든 다신들에 대하여, 그가 충분하고 적절하게 섬겨왔던 모든 세계에 대하여, 비로소 유일신의 도래를 선언하고자 이 시집은 탄생했다.
- 나민애(문학평론가)

김선아의 첫 시집 『얼룩이라는 무늬』는 꽃 중의 첫 꽃, 빛 중의 첫 빛인 양 뜨겁고 놀랍고 눈부시다. 붉게 달구어진 열망이 거침없이 굽이친다. 「자서」에서부터 거의 전편이 시詩를 향한 꿈꾸기와 사랑으로 넘실댄다. 삶이라는 일상에서 찢기고 핏물 진 ‘얼룩’을 보듬으며 절체절명의 순간에 이를수록 시인의 사유는 깊어지고 시는 스스로 빛을 낸다. 기막힌 역설이다. 그렇다. 그는 세상이라는 바다에 낚시를 드리워 놓고 자신이 꿈꾸는 시가 첫 무늬 첫 물결로 펄떡이며 올라올 때까지 기다렸다. 덫을 만나면 덫을 한 번 더 밟아서라도 기어이 그 상처와 어둠을 합하고 곱하면서 알몸의 시를 찾아 순례자처럼 헤매고 헤맸다. 그리하여 자신만이 낼 수 있는 목소리의 원형질을 찾고는 잘 여문 시를 여기 펼쳐 놓았다. 장차 그가 형상화할 시의 집은 타래난초처럼 향이 섬세하면서도 가시를 숨긴 장미처럼 강렬한 서정의 화법으로 우뚝 설 것이다.
- 김추인(시인)

시인의 말

시詩여!

절에 든 도둑이 보물 한 덩이 둘러메고는 밤새도록 도망쳤는데, 동트고 보니 절 마당 석등 앞이었다지요. 당신과 작별하고 전력 질주, 멀리로 내달렸다 여겼는데, 세상에나! 여전히 당신 심장에 나를 칭칭 동여맨 채 두 팔을 휘젓고 있었습니다.

작가 소개

저 : 김선아

1955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2011년 『문학청춘』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목 차

1부

나는 가야지·12
겨울 강·13
말문·14
구절초·15
까맣다·16
상강霜降·17
독락獨樂·18
11월에 듣는 샤콘느·19
첫눈 오는 날·20
한통속옷·21
묘약인 줄 모르고·22
꿈은 먼 곳에·23
먼 섬·24
가시를 발라내다·25
적빈赤貧·26
물매화·27
봉쇄수도원·28

2부
명필名筆·30
느티나무의 스킨십·31
천직天職·32
세상은 꽃밭이다·34
달빛전용여인숙·35
첫사랑·36
춤꾼을 위하여·37
들개와 풀꽃·38
얼룩이라는 무늬·40
킬 힐·42
어떤 마술·43
밥 먹는 손·44
북두칠성·46
또 봄·47
궁핍·48
싸다, 싸·49

3부

나를 담아 본다·52
가시의 영혼·54
어떤 포옹·56
그대 앞에서·57
얇은 귀·58
그 해안·59
믿을 만한 구석·60
틈새·62
백허그·64
폭설의 원리·66
얼마나 아팠을까·67
사랑의 급수·68
우리 깨졌어·70
내가 위로 할까·72
봄밤·74
천일야화·75
나팔꽃·76

4부

가족·78
나무 구멍에 살게 되면·79
찢어지게 햇살 좋은 날·80
봄날·81
서산 마애불·82
웃는 매미·83
양단 보자기·84
소금꽃·86
허영청虛影廳·87
나이롱박수·88
눈물은 훔치는 거·89
삶·90
입단 신청서·91
벚꽃 축제·92
나리·93
문맹文盲·94
소악분교·96
해설 | 나민애 봄이며 또한 겨울인, ‘데메테르’의 변증법·97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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