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공권력의 폭압에 쓰러지고 만 스물두 살 청년
연세대학교 경영학과 86학번 이한열.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집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효자, 학교에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진국이었다. 매사에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했다. 자신보다 불우한 사람을 걱정했을 뿐 아니라 부당한 사회를 고민하곤 했다. 학과 공부에 부지런 했던 만큼 학생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래서 1987년 6월 10일 국민대회를 하루 앞두고 학교에서 열린 총궐기 대회에도 적극 참여했다. 그날 이한열은 몇몇 학우들과 같이 ‘소크(soc)’를 맡았다. “시위하는 학생들과 전투경찰들 사이에 최소한의 거리를 확보하고, 경찰들이 시위대를 공격할 경우 이를 막기 위해 무장 상태에서 시위대를 보호하는 이들”(26쪽)이 바로 소크다. 그날따라 누나가 이른 외출을 만류할 정도로 몸살이 심했음에도 이한열은 일찍 집을 나섰다. 자신과 한 약속, 학우들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헌데 그날 전경들의 진압은 유난스러웠다. 최루탄이 생각보다 많이 터졌고, 그중 다수가 학생들에게 직격으로 날아왔다. 최루탄이 하늘에서 큰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거든 그것을 직접 확인하고 피하곤 하던 보통 때와 달랐다. 당황한 학생들은 황급히 학교 안쪽으로 피신했다.
그러나 단 한 사람, 이한열만은 그러지 못했다. 직격탄에 맞고 홀로 길 한복판에 쓰러졌다. 그렇게 이한열은 폭압에 의식을 잃고 말았다.
쓰러진 그를 지켜야 했고, 결국 지켜 냈던 사람들
당시 공권력은 잔인했다. 정부에 반하는 이들을 응징한 것은 기본이요, 공안 사건으로 숨지는 이가 생기면 사망 원인을 은폐하기 위해 시신을 탈취해 몰래 처리하기도 했다. 세브란스 병원 중환자실에 들어간 이한열도 안전할 수 없었다. 그해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경험한 학생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한열이 입원하자마자 학생들은 경비에 나섰다. 총학생회가 나서서 학우들의 경비 참여를 호소했다. 그러자 학생들은 소속과 학번을 불문하고 경비에 나섰다. 순서와 규칙을 정해 이한열 곁을 지켰다. 참여자 수는 하루 평균 500명에 달했다. 연세대 학생뿐 아니라 다른 학교 학생들까지 지원을 자청했다. 이에 교수들과 교직원들도 뜻을 함께했다. 이처럼 수많은 사람이 이한열을 통해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예기치 않은 시기에 위기가 발생했다. 많은 학생이 6.29민주화선언을 접하고 긴장을 풀었다. 선언 직후 병원을 경비하는 인원수가 급격히 줄었다. 하루 2500명에 이르기도 했던 인원수가 100명 밑으로 떨어졌다. 정권과 제도가 아직 그대로인데, 이한열이 아직 누워 있는데, 세상은 이미 들떠 있었다.
가장 큰 위기는 이한열이 숨을 거둔 7월 5일 새벽에 찾아왔다. 이한열이 사망하자마자 경찰 병력이 대거 병원에 투입되었다. 안 그래도 경비 인원수가 줄은 상황에서 꾸준히 경비에 나서던 학우들까지 그날따라 학교에 없었다. 당시 경비 인원은 50명도 채 되지 않았다. 다행히 이한열의 사망 소식이 빠르게 학생들 사이에 빠르게 퍼지면서 경비 인원은 몇시간 만에 급증했다. 결국 경찰의 탈취는 실패로 돌아갔지만, 이한열이 눈감은 그날은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시기였다.
마지막까지 이한열을 괴롭힌 공권력, 그 이면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
이한열이 쓰러진 후, 공권력은 줄곧 그를 괴롭혔다. 안기부(국가안전기획부) 요원은 세브란스 병동을 감시했고, 경찰들은 이한열의 사망 직후 시신을 압수해 가려고 했다. 경찰 측은 장례식에서도 딴죽을 걸었다. 장례준비위원회가 운구 행렬의 동선을 짤 때 서울시청 앞이 포함되는 것을 막았다. 서울시청과 청와대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급기야 장지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정부가 끼어들었다. 정부는 이한열의 죽음에 정치적인 의미가 부여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래서 유족들에게 일반 묘역을 강권하기까지 했다. 결국 이한열은 다수의 뜻에 따라 광주 5.18묘역에 묻혔지만, 마지막까지 공권력이 보인 방해 공작은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공권력의 편에 서 있던 사람들을 모두 악한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공권력에 굴복해 충성을 다해야 했던 이들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교 앞에서 자기 또래 학생들과 맞서야 했던 전투경찰들의 고충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위 현장에 나선 그들은 학생들의 증오는 물론 시민들의 분노까지 감내해야 했다. 실제로 1987년 6월 당시 연세대 앞에서 전투경찰로 시위를 진압했던 최 모 씨는 “학생들을 막으려 해서 막은 게 아니라, 막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살기 위해 막았다”(133쪽)라고 토로한다. 시위에 소극적으로 임하는 자는 고참의 구타까지 각오해야 했다.
방대한 자료들이 엮어낸 생생한 기록지
이외에도 이 책에는 많은 사람의 다양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쓰러진 학우를 처음 부축한 이종창, 이한열의 신발을 주워 가족에게 전달한 이정희 등 이한열의 동문들은 물론 그 누구보다 가슴 아파했을 가족들도 말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어머니의 담담한 에필로그는 심금을 울린다. 여기에 이한열을 지키지 못해 줄곧 죄책감에 시달린 총학생회장 우상호(현 국회의원), 총학생회 사회부장으로서 삭발까지 감행한 우현(배우), 쓰러진 중학교 동창의 소식을 듣고 충격을 금치 못한 박철민(배우) 등 유명인들도 이한열에 얽힌 가슴 찡한 이야기를 털어 놓는다. 저자를 비롯한 이한열기념사업회가 모은 방대한 자료들이 오롯이 빛을 발한다.
이한열 사망 30주기를 맞아 기획된 본 단행본은 1987년 이한열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미시사다. 이한열 한 사람의 전기가 아니라 쓰러진 그와 그의 뜻을 지키기 위해 앞장섰던 다수에 대한 기록이다. 그동안 제대로 정리되지 않았고 밝혀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씨줄과 날줄로 엮였다. ‘우리’가 앞장서고 힘을 모은다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이 책의 교훈은 지금도 유효하다. 1987년 6월과 이한열을 막연히 어둡거나 어렵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기대 이상의 감동과 공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김정희
이한열이 입학한 같은 해인 1986년에 연세대학교 사회학과에 입학했고, 1987년 6월 9일 이한열이 쓰러진 시위 현장에 서 있었다. 그 인연이 이어져 2011년부터 (사)이한열기념사업회 일을 하고 있다. <동아일보> 출판국에서 기자로 10년 동안 일했고, 이후 자유기고가로서 몇 권의 책을 번역, 편집했다.
목 차
친구를 추억하며
그해 여름의 기억 (소설가 김영하)
프롤로그
꽃이 피었다
1부
중요한 약속
그래도 앞에 선다
힘드니까 쉬었다 가라
신발 찾아가세요
우리 한이
한 장의 사진
세브란스의 기적
모두가 만든 걸개그림
연세 공동체
운동의 풍경
뜨거운 동행
나의 중학교 동창 한열이
그들이 강요당한 분노
계엄령이 선포된다면
2부
한열이 손에 힘이 없어요
불을 붙이겠다
최종 사인 ‘최루탄’
작별을 준비하며
그림으로 음악으로
가자, 광주로 가자
옷 속에 숨긴 낫
그의 나이 스물둘
에필로그
어머니
그리고 남은 사람들
그리고 남은 물건들
* 감사의 글
* 책이 나오기까지 도움을 주신 분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습니다’ 프로젝트 후원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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