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광개토대왕비의 성격과 역사적 의의
광개토왕비는 414년(장수왕 2)에 아들 장수왕의 주도로 만들어진 비석이다. 비문에 광개토왕 사후 2년 동안 왕릉과 비를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었다고 나온다. 광개토왕비는 현존하는 금석문 가운데 크기 면에서도 가장 크고 역사적 내용도 가장 많이 전하고 있다. 따라서 고구려사 연구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1차 사료로서 얼마 없는 문헌 자료의 한계를 조금이나마 극복하게 해준다. 광개토왕비는 보통의 비석문과는 다르게 총 4면에 기록을 담고 있는데 고구려 건국과 왕계, 광개토왕의 훈적과 대외 관계, 고구려 수묘제 운영 등의 내용으로 많은 시사점을 준다.
저자는 광개토왕비가 담고 있는 3부의 구성 내용 중 어느 부분을 중시하느냐에 따라 이에 따라 능비설, 신도비설, 훈적비설, 수묘제 창출과 관련한 송덕비설, 수묘비설, 훈적과 수묘의 내용이 모두 포함된 복합비설 등으로 의견이 분분하다며 이를 총체적으로 설명하고 저자의 의견을 개진한다. 저자는 광개토왕 사후 장수왕이 2개의 비석, 즉 부왕의 훈적을 기리기 위한 훈적비와 부왕의 왕릉 수묘를 위한 수묘인연호비를 세우려다가 둘을 한 비석에 합쳐 기록했다고 보는 주장을 새로운 시각으로 보고 이를 지지한다. 결론적으로 “훈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보인다”라는 구절, 그리고 이후 내용이 정복 전쟁과 수묘제 정비라는 두 가지 업적을 병렬적으로 구성했다는 점에서 비의 성격은 훈적비에 가깝다고 피력한다.
광개토왕비는 고구려사 연구에서 가장 핵심이 되는 자료로서 고구려의 건국?세계?신화?천하관?대외 관계?군사 활동?수묘인연호 등 많은 내용을 알려주는 동시에 고구려의 위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아시아 최대 석비라는 데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고구려가 4~5세기 동북아시아 역사를 이끌어간 한 축이었다는 사실, 다시 말해 신라?백제?가야?왜 등이 고구려의 막대한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2012년 7월 29일 지안고구려비를 발견하다!
지안고구려비가 2012년 7월 29일, 중국 지린성(吉林省) 지안시(集安市)에서 발견되었다. 지안시 마셴향 마셴촌에 있는 마셴허 강가에서 마사오빈이란 한 주민이 발견했다. 포도를 재배하기 위해 기둥 재목으로 쓰려고 강가에서 주어온 돌이었는데 바로 그것이 지안고구려비로 밝혀진 것이다. 하지만 지안고구려비는 광개토왕비에 비해 마모와 훼손 정도가 매우 심하다. 장기간 하천 바닥에 묻혀 있었던 비의 앞면은 글자의 형태가 어느 정도 보존되어 있었지만, 노출된 앞면 윗부분과 뒷면은 비바람과 강물에 깎여 비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을 정도다.
게다가 지안고구려비의 공개된 탁본을 살펴보면 크기가 다른 글자들이 적지 않다는 점, 각 행의 세로줄이 바르지 않다는 점, 글자의 모양과 서체가 일관성이 없다는 점, 비문의 크기에 비해 새겨진 깊이가 매우 얕다는 점 때문에 연구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현재 지안고구려비는 지안시박물관 로비의 거대한 유리 상자 안에 전시되고 있어서 비문에 대한 자세한 관찰이 불가능한 상태다. 정확한 판독을 위해서는 비를 직접 정밀 조사할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실정이다. 국내 학계는 지안고구려비 조사 기회를 제공받지 못해 비문의 탁본 사진에 의존하여 판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동북공정 등 중국과 역사 갈등 문제가 한?중 공동 연구를 가로막는 객관적인 조건이라 할 것이다.
지안고구려비는 광개토왕비에 나타나는 건국신화, 수묘제 등과 관련하여 유사한 내용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일부 구절에서는 광개토왕비에 보이지 않는 표현이 나타난다. 이에 저자는 지안고구려비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동시기의 금석문인 광개토왕비의 수묘인연호 기록과 면밀히 비교?검토하여 분석한다. 그 결과 광개토왕비의 비문은 바로 수묘인연호의 차착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건립한 묘상입비와 수묘인 매매 금지를 교령의 형태로 선포한 지안고구려비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라고 유추한다. 묘상입비, 지안고구려비 모두 수묘제를 정비한 광개토왕의 업적에 해당한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해석하여 시기를 따지자면 ‘묘상입비-지안고구려비-광개토왕비’ 순서로 건립된 것으로 추리할 수 있다. 이미 지안고구려비와 광개토왕비에 ‘묘상입비’라는 구절이 등장하고, 지안고구려비의 수묘인 매매 금지령이 광개토왕비에서 똑같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를 근거로 지안고구려비가 광개토왕 대에 건립되었다고 본다면 지안고구려비는 광개토왕비보다 앞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구려비라 할 것이다. 지안고구려비의 건립 시기와 성격을 확정하려면 향후 광개토왕비에 기록된 묘상입비의 실물을 찾는 노력이 필요한데, 저자는 하루라도 빨리 묘상입비의 실물이 발견되기를 고대한다.
고구려의 한반도 진출 충주고구려비에 남기다!
한반도에 남아 있는 유일한 고구려 석비인 충주고구려비는 과거 중원고구려비라 불렸었다. 충주고구려비는 1979년 4월 충청북도 중원군 가금면 용전리 입석마을에서 발견되었다. 현재의 충주는 삼국시대에 그곳을 국원성이라 했는데, 당시 국원성은 고구려가 신라와 가야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죽령, 계립령, 추풍령 방면을 통해 신라를 공격할 수 있는 요지라 할 수 있다. 충주고구려비 발견 당시 신라비일 것으로 추정했지만 ‘고려태왕(高麗太王)’ ‘전부대사자(前部大使者)’ 라는 글자가 판독됨으로써 고구려비임이 확인되었다. 한반도에서 발견된 유일한 고구려비인 충주고구려비는 남한 지역에서 고구려의 흔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다.
충주고구려비는 마모가 심하여 앞면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판독이 매우 어려운 상태지만, ‘오월중고려태왕조왕(五月中高麗太王祖王)’ 구절에서 고구려의 국명이 고려로 기록된 것은 후대의 고려가 고구려의 정통성을 이었다는 근거가 되는 대목이다. 충주고구려비는 한반도 남부의 유일한 고구려비라서 비의 건립 목적이나 성격을 밝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과제다. 충주고구려비는 공적비, 정계비또는 척경비, 순수비, 회맹비 등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어 있다. 가장 주목되는 견해로는 고구려와 신라 간의 회맹비로 파악하는 것이다. 고구려 왕이 신라 왕을 국원으로 불러들여 회맹한 후 그 내용을 비석으로 세운 것은 고구려의 국원 진출과 무관할 수 없는데 여기서 고구려가 신라를 회유하고자 한 의도를 읽을 수 있다. 고구려가 남진 거점으로 국원 지역을 차지한 것은 비단 신라만이 아니라 백제까지 염두에 둔 조치였다고 볼 수 있다. 이렇듯 충주고구려비는 고구려의 중원 지역 진출 상황, 그리고 신라와 백제의 경계 영역을 점유한 고구려가 외교 활동과 군사 작전을 수행해왔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충주고구려비는 만주 지역과 한반도 북부에 자리했던 고구려가 한반도 남부 지역까지 진출하여 영토를 넓힌 사실을 증명하는 유력한 근거다.
고구려가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화두는 무엇인가!
고구려는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을까?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말처럼 과거에 대한 분석은 곧 현재와 미래의 정치·경제·사회의 입지에 투영된다는 점에서 저자는 다음 4가지로 압축하여 그 의미를 되새긴다.
첫째, 동북아시아에서 과거 역사를 두고 일종의 역사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구려가 가지는 의미는 막중하다. 근래 중국의 동북공정, 일본 교과서 문제뿐 아니라 우리나라 내부에서도 상고사나 고대사, 현대사를 두고 역사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역사에 관한 것만이 아니어서, 그 배경에는 국가적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현재와 미래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둘째, 가속화하는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국경을 넘어선 이주가 전 지구로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고구려를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구려는 다종족 국가로서 다양한 이주민을 포용하여 주변의 다양한 종족들과 때로는 투쟁하고 때로는 교류하거나 융합하면서 국가를 발전시켜나갔다. 우리는 고구려의 포용 정신을 배워야 한다. 셋째, 현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맡겨진 역사적 책무 중 하나는 분단국가를 통일국가로 만드는 일인데 고구려를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해볼 수 있다. 우리 역사상 가장 진취적인 국가로 고구려를 꼽을 수 있다. 고구려인의 진취적인 기상은 곧 21세기 우리 청년들에게 요청되는 중요한 덕목이다. 넷째,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강대국이 세력 다툼을 하는 상황에서 고구려를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다.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는 방법을 고민할 때, 우리는 고구려가 독자성과 보편성, 개별성과 국제성을 어떻게 조화롭게 버무려냈는지 그 흔적을 따라야 한다.
고구려를 과거의 영광스러운 역사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에게 진정한 역사적 의미와 화두를 던지는 실체로 받아들일 때 고구려의 진면목은 우리 눈앞에 오롯이 되살아날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정호섭
鄭好燮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한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석사, 박사를 받았다. 2000년부터 고려대학교 박물관 학예사로 10년간 근무하면서 다양한 학술전시를 기획하였다. 2010년부터 한성대학교 인문대학 역사문화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주로 고구려사를 비롯한 한국고대사를 연구하고 있다. 미국 UC BERKELEY 방문학자,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기획총괄위원, 한국사연구회 연구이사, 고구려발해학회 총무이사, 한국고대학회 편집위원장, 고려사학회 편집위원장 등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고구려 고분의 조영과 제의』 , 『고구려사와 역사인식』 등이 있으며, 한국고대사 관련 논문을 관련분야 학술지에 꾸준히 발표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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