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어린이들의 당당한 목소리
『알아서 해가 떴습니다』에는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주체적인 어린이들이 등장한다. 한 아이는 하루 종일 일하고 온 엄마를 폭 안아 주며 누가 엄마를 괴롭혔냐고 그 대상을 혼내 주겠다(「혼난 엄마」)고 말한다. 매번 만날 때마다 몇 살이냐고 묻는 위층 아줌마에게 다음부터는 인사 대신 고개를 꾸벅하며 아홉 살이라고 당당하게 말한다는 아이(「굿 아이디어」)도 있고, 아빠와의 뽀뽀를 협상의 도구로 생각하는 아이(「초등학생을 위한 뽀뽀 지침서」)도 있다. 아흔 살 먹은 증조할머니가 일흔 살 먹은 할머니에게 사소한 것까지 물고 늘어지며 잔소리하는 모습을 본 아이는 “나빠!/자꾸 그러면 증조할머니 방에서 안 자!//증조할머니는 입만 삐죽인다/역시 내 말엔 꼼짝 못 한다”라고 말한다. 아이만이 할 수 있는 표현으로 증조할머니의 잘못된 모습을 지적하는 어린이의 행동에서 미소가 지어진다. 특히 ‘오는 게 있어야 가는 게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 아이가 인상적이다.
어린이날에 엄마 아빠는/피곤하다고/피자 한 판 사 주고 대충 때웠다//어버이날에 나도/엄마 아빠 사랑해요,/오래오래 사세요, 라고 카드에 적고/대충 때웠다//엄마 아빠 나이쯤 되면/가는 게 있어야/오는 게 있다는 걸 알 텐데/왜 자꾸 깜빡하나 모르겠다//누가 만들었는지/어린이날 다음이 어버이날인 건/신의 한 수다
- 「신의 한 수」 전문
시인은 아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어른들이 아이들을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야 함을 일러 준다. 저마다 다른 생각을 표현하며 팝콘처럼 팡팡 튀어 날아다니는 어린이들을 만나면, 우리 곁에 있는 아이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상 속 작은 발견, ‘허’를 찌르는 잔잔한 유머
새로운 것은 생각의 전환에서 비롯한 경우가 많다. 동시도 그렇다. 시인은 오랜 시간을 두고 대상을 살펴보고 자세히 들여다본다. 거기서 ‘작은 발견’이 시작되고, 그것이 시 조각이 된다. 시인 정연철은 동시 짓기를 행복한 보물찾기에 비유한다. 그가 발견한 보물들은 우리의 일상에 존재한다. 모든 곳에 시가 있고, 우리 곁에 가까이 자리하고 있다. 『알아서 해가 떴습니다』는 소소한 일상을 성실하고 꾸준하게,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며 찾아낸 진실성이 있는 동시 50편을 담았다. 표제작 「알아서 해」는 자녀를 대할 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엄마의 반응을 잘 포착해 어린이 독자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해가 떴습니다/엄마 입에서 알아서 해가 떴습니다//엄마가 친구들과 약속 있어 급히 나가는 날/알아서 해는/세상에서 제일 신나는 해//엄마 기분이 오락가락하는 날/알아서 해는/세상에서 제일 알쏭달쏭한 해//학교에서 말썽 부린 날/학원에서 시험 망친 날/알아서 해는/세상에서 제일 끔찍한 해/이글이글 불타오르는 해
-「알아서 해」 전문
술에 취해 늦게 들어온 아빠의 행동을 꼬집어 난센스 문제로 풀어낸 「아빠 반성용 퀴즈」에는 특유한 유머가 담겨 있다. 그리고 하늘에 붉은 석양의 모습을 홍시에 빗댄 「노을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가족 구성원들과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신체에 비유해 소개한 「가끔 나쁜 사이 1, 2, 3」은 우리의 일상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일들을 다르게 관찰하고 재미있게 표현한 동시다.
동물과 자연에 건네는 다정한 시선
시인은 변신의 귀재이다. 때로는 눈사람이 되고, 제비 부부가 되고, 방앗간 참새가 되고, 아이비 화분이 되는 등 사람과 동물, 자연이 되어 그들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방학을 손꼽아 기다리지만, 그 기간 동안 교실에 홀로 쓸쓸히 남을 아이비 화분은 목마를 일이 걱정(「아이비는 방학이 두렵다」)이고, 학교 비상계단 3층 천장 구석에 집을 짓고 사는 제비 부부는 호기심 많은 아이들이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 떠드는 통에 살기 힘들다고 토로하기(「제비 부부의 하소연」)도 한다. 또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해서 삶의 터전을 잃게 생긴 다람쥐 아줌마들의 하소연(「무서운 소문」)도 들려준다.
『알아서 해가 떴습니다』는 사람과 동물, 자연이 공존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다시금 일깨워 준다. 우리가 공공연히 다 아는 사실이지만 그러려면 서로가 조금 더 배려해야 함을 깊이 생각해 보게 한다.
아무리 쫓아도 소용없짹/이리저리 싸돌아다녀 봤지만/이만한 데가 없짹/자꾸 스트레스 받지 마짹/그냥 포기하고/함께 먹고살 궁리를 해짹/내가 먹으면 얼마나 먹겠짹짹?
- 「떡방앗간 주인에게 보내는 협조문」 전문
동시집에 한 발 다가서게 하는 그림과 해설
늘 만화처럼 익살스럽고 재치 넘치는 그림을 선보여 어린이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 김고은은 『알아서 해가 떴습니다』가 ‘욕심이 나는 즐거운 작업’이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화가가 심혈을 기울여 그린 그림은 동시에 상상력이란 날개를 달아 동시 읽는 재미를 더한다. 따듯한 터치가 아닌 다소 거칠지만 화가만의 색깔이 입혀진 독특하고 재미있는 50개의 보물들이 더욱 반짝인다.
또한, 특별한 상상력으로 어린이의 마음을 잘 녹여 낸 작품을 써 온 동화작가 송미경의 작품 해설이 더해져 동시를 더욱 풍성하게 만든다. 작가는 이 동시집을 ‘사소한 풍경이 들려주는 소리’라 말한다. 그리고 어른들이 스쳐 지나간 풍경을 가만히 응시하고, 어린이의 일상에서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와 꾸준한 성장을 든든하게 지켜본 시선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사랑스러운 풍경의 주인이 우리 모두임을 말한다. 아이들의 세계에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논리를 태연하게 구사한다. 아이들의 삶에 가까이 있으나 훈계하거나 간섭하지 않으며 아이들을 지켜보는 시인의 시선이 있어서 이 동시집은 어디든 아이들이 찾아들 구석이 많다. 결국 아이들은 시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말하게 될 것이다.”
-작품 해설 중에서
『알아서 해가 떴습니다』는 눈에 띄지 않았던 것에 생명을 불어넣어 모든 일상이 특별한 일들임을 표현한다. 아이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한다. 시인의 이 마음이 독자들에게 온전히 닿기를 바란다.
작가 소개
저 : 정연철
경남 함양 두메산골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지은 책으로 청소년 소설 『열일곱, 최소한의 자존심』『마법의 꽃』『내일의 무게』(공저), 동화책 『주병국 주방장』『똥배 보배』『생중계, 고래 싸움』『속상해서 그랬어!』『태풍에 대처하는 방법』『만도슈퍼 불량 만두』『텔레파시 단짝도 신뢰가 필요해』『웃지 않는 병』『받아쓰기 백 점 대작전』, 동시집 『딱 하루만 더 아프고 싶다』『빵점에도 다 이유가 있다』『알아서 해가 떴습니다』 등이 있다. 맛좋고 몸에도 좋은 밥 같은 이야기와 시를 짓고 싶은 마음을 담아 글을 쓴다. 현재 대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 교사로 일하고 있다.
그림 : 김고은
독일에서 그림을 공부하고 작가가 되었으며, 현재 독일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쓰고 그린 책으로『눈행성』『딸꾹질』『일어날까? 말까?』『우리 가족 납치 사건』등이 있으며,『말하는 일기장』『똥호박』『욕망, 고전으로 생각하다』『공부의 신 마르크스, 돈을 연구하다』등에 그림을 그렸다.
목 차
1부 교실에 할매 잔소리가 생중계되다
혼난 엄마 | 교실에 할매 잔소리가 생중계되다 | 엄마 아빠의 이모티콘 반응 | 알아서 해 | 증조할머니를 꼼짝 못 하게 하는 한마디 | 신의 한 수 | 늦둥이 동생의 슈퍼 파워 | 초등학생을 위한 뽀뽀 지침서 | 신기한 현상 | 깨진 날
2부 떡방앗간 주인에게 보내는 협조문
노을에 대한 새로운 해석 | 맛있는 밤 | 떡방앗간 주인에게 보내는 협조문 | 과속 방지 턱 | 나뭇잎 벽지 |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 무서운 소문 | 아이비는 방학이 두렵다 | 제비 부부의 하소연 | 눈사람이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낸 문자 | 생크림 케이크 | 카메라 울렁증 | 미세먼지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 | 마른하늘에 날벼락
3부 형편없는 세상
형편없는 세상 | 반지의 추억 | 인생의 동반자 | 소파의 정체 | 귀에 사는 풀벌레 | 장래 희망 | 못 볼 걸 봤다 | 변신은 무죄 | 정말 중요한 일 | 코피가 고마운 건 처음 | 아빠 반성용 퀴즈 | 얼레리꼴레리 아이스크림 광고 촬영 현장 | 가끔 나쁜 사이 1 | 가끔 나쁜 사이 2 | 가끔 나쁜 사이 3
4부 콩가루 집안의 콩들
콩가루 집안의 콩들 | 굿 아이디어 | 맷돌의 꿈 | 생각하는 동물 | 존재 이유 | 즐겨찾기 | 우산 사용법 | 올해의 공로상 후보 | 비둘기에게 한 방 먹은 사연 | 초딩을 위한 당은 없다 |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받고 싶은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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