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1990년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연구팀은 원숭이의 뇌에 전선을 꽂고 이런저런 자극에 대한 반응을 조사하던 중 우연히 이상한 현상을 발견했다. 원숭이가 건포도를 집어들 때 발화하던 뇌영역이 사람이 건포도를 집는 것을 볼 때에도 발화하는 것이었다. 관찰대상의 행동을 그대로 미러링하기에 ‘거울뉴런’이라고 명명된 이 특이한 신경세포의 발견에 전 세계 과학자들은 흥분했고, 유명한 신경과학자 라마찬드란은 “생물학에서 DNA가 했던 역할을 심리학에서는 거울뉴런이 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거울뉴런의 발견이 이처럼 혁명적인 사건으로 평가받은 것은 어째서일까?
거울뉴런이 발견되기 전까지 신경과학자들은 뇌의 각 영역이 고도로 분업화되어 있다고 가정했다. 즉 뇌의 뒤쪽에 있는 시각피질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면, 앞쪽에 있는 전운동premotor 영역에서 행동을 계획하고 일차운동피질에서 행동을 실행한다고 여겼다. 그러나 우리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것을 이해하고 따라할 때(가령, 다른 사람이 초콜릿을 먹는 걸 보고 맛있겠다고 여기며 따라 먹을 때), 우리 자신의 시각체계와 운동체계의 기제는 명백했지만 우리가 어떻게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지는 수수께끼였다. 신경과학자들은 보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 어떤 정신화 모듈mentalizing module이 따로 있다고 여기고 그것을 찾아 헤맸다.
어떤 행동을 직접 할 때만이 아니라 다른 누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볼 때에도 활성화되는 거울뉴런의 발견은 입력(시각체계) 대 출력(운동체계)이라는 뇌 분업화 모델을 깨뜨리며, 어떤 뇌영역에서는 보는 것과 하는 것이 동일할 수 있다고 시사해주었다. 뿐만 아니라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데 정신화 과정이 늘 필요하지는 않으며, 전운동피질에 있는 거울뉴런이 어떤 직관적인 이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암시해주었다. 타인의 행동에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이 특별한 신경세포에 의해서, 당신의 행동은 나의 행동이 되고, 당신이 하는 것을 나는 느끼게 되는 것이다.
대단히 복잡한 계산을 쉽게 해내는 최신 인공지능 컴퓨터도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어려워한다. 반면에 사람은 일곱 살만 되어도 타인의 마음을 읽는 전문가가 된다. 우리는 어떻게 복잡한 계산보다 어려운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을 그토록 쉽게 해낼 수 있을까? 한 개인의 인지 차원(개인적 뇌)을 넘어서 사람들 간의 마음을 연결하는 어떤 기제(사회적 뇌)가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저자는 거울뉴런의 발견자 중 한 명인 비토리오 갈레세의 강연을 듣고, 거울뉴런이 뇌과학의 오랜 숙제인 ‘공감’의 비밀을 풀 열쇠임을 직감했다. 2000년 박사과정을 마치자마자 저자는 파르마 대학 연구팀에 합류해 본격적으로 거울뉴런 연구를 시작했고, 2004년 네덜란드 왕립학술원 신경과학연구소에 독자적인 연구소를 개설하여 공감의 신경과학적 기초를 밝히는 일련의 중요한 연구들을 수행했다.
사람에게도 거울뉴런이 존재한다
파르마 연구팀은 원숭이에게 거울뉴런체계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지만 사람에게도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제까지의 실험은 원숭이의 뇌에 머리카락 굵기의 작은 전선을 삽입해 뉴런이 발화할 때 생기는 미세한 전기자극을 감지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사람의 뇌에 전극을 삽입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뇌수술 전 일부 간질환자들에게 예외적으로 행해진다) 과학자들은 여러 비침습적 방법을 고안했는데, 이 책의 저자가 이용한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 뇌 스캐닝도 그중 하나다. (fMRI는 뇌의 특정 부위가 활성화될 때 더 많은 산소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 착안해, 커다란 자석통 안에 피실험자를 눕히고 미세한 혈류의 증가를 측정해 영상화하는 장치다.)
우선 저자는 원숭이 실험을 통해서 거울뉴런이 시각정보뿐 아니라 청각정보에도 반응한다는 것을 밝혔다. 원숭이가 직접 종이를 찢을 때 활성화되는 뉴런이 사람이 종이를 찢는 모습을 볼 때에도, 원숭이 눈을 가리고 종이 찢는 소리만 들려줄 때에도 똑같이 활성화되었다. 이로부터 우리는 원숭이의 거울뉴런이 행동의 실행, 관찰, 소리라는 세 가지 차원을 결합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인간에게도 이러한 청각거울뉴런이 있을까?
저자는 실험참가자들에게 헤드폰을 씌우고 fMRI 스캐너에 눕힌 후 콜라 캔을 따서 컵에 따르는 소리, 종이 찢는 소리, 지퍼 여는 소리 등을 들려주었다. 실험 결과는 원숭이 실험 때와 일치했다. 손으로 직접 동작을 할 때 활성화되는 부위가 같은 동작의 소리를 들을 때에도 활성화되었다. 원숭이에게 청각거울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한 지 2년 만에, 저자는 fMRI 실험을 통해서 사람에게도 그와 유사한 거울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TMS(경두개자기자극) 기계, PET(양전자방출단층촬영) 스캔 등 다양한 방법을 이용한 여러 연구자들의 연구 결과도 사람에게 거울체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공감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거울체계가 강하다
거울체계의 존재는 공감의 개인차를 설명해준다. 공감의 정도를 측정하는 간단한 방법 중 하나는 이 책의 부록에도 수록되어 있는 텍사스 대학의 마크 데이비스가 개발한 설문조사다. 저자는 이 설문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이들(공감능력이 뛰어난 이들)과 가장 낮은 점수를 받은 이들의 뇌를 스캔해 비교해보았다. 점수가 높은 사람은 행동 거울뉴런이 강하게 활성화된 반면, 점수가 낮은 사람은 어떤 유의미한 활성화도 보이지 않았다. 이로부터 우리는 행동 거울체계의 개인차가 타인에게 얼마나 잘 공감하는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단서가 붙는다. 우리가 타인의 행동에 더 많이 주의를 기울이고, 그 행동을 직접 했을 때 어떤 느낌일지 느껴보려고 의도적으로 노력할수록 우리의 거울체계는 더 강하게 활성화된다. 거울뉴런은 우리 뇌의 시각과 청각, 운동 영역들 간의 특정한 연결 패턴의 결과다. 그 연결이 강할수록 우리는 더 자연스럽게 타인의 행동에 공감하고 그들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그리고 그 연결의 강도는 얼마든지 후천적이고 의식적인 노력에 의해서 강화될 수 있다.
거울뉴런은 우리의 지각을 변화시킨다
이러한 사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실험들이 있다. 피아노를 한 번도 쳐본 적이 없는 사람들과 피아노 연주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에게 피아노곡을 들려주면서 그들의 뇌 반응을 검사한 결과, 유경험자들은 피아노 연주와 관련된 손가락운동 영역을 활성화시켰지만 문외한들은 그렇지 않았다. 유경험자들은 피아노 연주를 배움으로써 피아노 음악을 듣는 방식까지 변화시켰다. 그들은 피아노곡을 귀를 통해 들을 뿐 아니라 자기 손가락의 움직임을 통해서도 지각한다. 그들이 피아노곡을 들을 때 손가락을 가만두기 힘들어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 함께 연습하며 서로의 동작에 대해 잘 아는 남녀 발레무용수들에게 발레 영상을 보여주었을 때 남녀 모두 일정하게 거울뉴런이 활성화되었지만, 남자는 남자무용수만이 하는 특정한 동작에, 여자는 여자무용수만이 하는 고유 동작에 더 강하게 반응했다. 자기 몸으로 계속 반복해서 연습했던 동작을 봤을 때 거울뉴런이 더 강하게 반응한다는 사실은, 거울체계가 태어날 때 완전히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후천적 경험을 통해서 얼마든지 강화될 수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누구나 한 번쯤 어떤 운동경기를 몸소 배운 다음 TV 중계를 볼 때 훨씬 많은 것이 보이는 경험을 해봤을 것이다. 고전적 뇌과학은 자신의 행동을 실행하는 영역과 타인의 행동을 이해하는 영역을 엄격히 구분함으로써, 자신의 행동(피아노 연주나 발레 동작)과 타인의 행동에 대한 지각(피아노나 발레 공연 감상) 간의 이러한 상호작용을 설명할 수 없었다. 거울뉴런의 발견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행동과 지각 간에 긴밀한 인과관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스포츠든 음악이든 해당 분야를 더 깊이 알고자 하는 사람에게 신경과학이 들려주는 조언은 새겨들을 만하다. “공부하지 말고 기술을 습득하라. 그러면 훨씬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행동뿐 아니라 정서와 감각도 공유한다
우리가 타인과 공유하는 것은 신체 동작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그 사람의 정서(감정)도 공유한다. 슬퍼하는 사람을 보면 같이 울적해지고, 기뻐하는 사람을 보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 이러한 정서전염은 거울체계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실험을 통해 증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딸기나 민트 같은 기분 좋은 냄새, 썩은 달걀 같은 불쾌한 냄새를 맡을 경우 나타나는 뇌활성화를 측정한 후각 실험을 통해 불쾌한 냄새를 맡았을 경우에만 뇌 양쪽의 전섬엽anterior insula 영역이 강하게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섬엽은 음식의 맛과 냄새를 처리하는 부위로, 특히 구역질이라는 신체감각과 관련이 있다. 그런데 참가자들은 배우들이 불쾌한 냄새를 맡고 토할 듯이 인상을 찌푸리는 영상을 보았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섬엽 부위를 활성화시키면서 역겨운 듯 얼굴을 찌푸렸다. 얼굴을 찌푸리는 행동이 같은 표정을 짓게(안면모방) 만드는 전운동피질의 대리활성화 때문이라면, 역겨움이라는 같은 정서를 느끼게(정서전염) 만드는 것은 섬엽의 대리활성화 때문이다.
한편 다른 사람이 손을 베이는 것을 보는 순간, 우리는 마치 자신의 손이 베인 것처럼 아픔을 느낀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이제까지 살펴본 행동이나 정서의 공유가 아닌, ‘감각’의 공유다. 감각에 대해서도 거울체계와 같은 것이 있을까?
우리가 직접 신체 접촉을 당할 때 느껴지는 여러 감각(아픔, 뜨거움, 차가움, 간지러움 등)을 체성감각somatosensation이라고 하는데, 이때 뇌의 양 반구 상단에 위치한 일차체성감각피질SⅠ과 실비우스열 양 측면에 위치한 이차체성감각피질SⅡ이 활성화된다. 저자는 실험참가자에게 브러시로 다리를 쓸어내리는 영상을 보여준 후, 참가자의 다리를 목욕타월로 직접 쓸어주며 뇌 활동을 스캔했다. 피실험자가 직접 접촉을 경험할 때는 당연히 체성감각영역이 활성화되었지만, 놀랍게도 타인이 접촉을 당하는 것을 볼 때에도 같은 영역(특히 SⅡ)이 활성화되었다. 운동체계에서 행동의 거울뉴런이 발견된 지 10여 년 만에, 저자는 정서와 감각에 대해서도 유사한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처음으로 밝혀낸 것이다.
거울뉴런에서 공유회로로
이제까지 거울뉴런은 행동의 영역에서만 주로 연구되었다. 거울뉴런이라는 용어 자체가 본래 행동 중심적이다. 우리 뇌가 다른 사람의 행동을 내적으로 시뮬레이션하여 그 행동에 대한 거울상을 생성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행동뿐 아니라 정서와 감각에도 유사한 체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한 저자는 행동과 정서와 감각의 미러링을 모두 포괄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로 ‘공유회로shared circuits’를 제안한다.
전운동피질에서 우리는 직접 행동하는 것과 타인이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을 보는 경험을 공유한다. 마찬가지로 섬엽에서 역겹다는 느낌과 타인이 역겨워하는 것을 보는 경험을 공유하고, 체성감각피질에서 접촉의 감각과 타인이 접촉을 당하는 것을 보는 경험을 공유한다. 우리 자신의 행동과 정서와 감각 영역을 대리활성화시킴으로써 타인의 행동과 정서와 감각을 공유하게 해주는 우리 뇌 안에 공통 배선되어 있는 이 신경회로 전체를 일컫는 개념이 바로 ‘공유회로’다.
시각피질은 세상을 인식하는 데 필수적인 뇌영역이지만, 우리 뇌는 타인에게 일어나는 일을 공유할 때 이 특화된 영역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행동이든 정서든 감각이든 우리 뇌는 직접 경험할 때 이용했던 동일한 뇌영역을 타인의 경험을 공유하는 데에도 활용한다. 행동과 관련해서는 운동영역(전운동피질)을, 정서와 관련해서는 정서영역(섬엽)을, 감각과 관련해서는 감각영역(체성감각피질)을 말이다. 활성화되는 뇌영역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원칙은 동일하다. 미러링은 개별 뇌영역의 특수한 속성이 아니라 우리 뇌기능의 일반적 원리이며, 이 우아한 단순성에 의해서 우리들의 뇌는 서로 공감하도록, 타인과 연결되도록 진화해왔다.
행동의 거울뉴런, 협력의 메커니즘
행동과 지각을 연결하는 거울체계는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할까? 저자는 두 사람이 식탁을 들어 옮기는 행위를 예로 들어서 거울체계의 작동기제를 알기 쉽게 설명한다. “내가 식탁을 들어올리기 시작하면, 나의 운동영역에서 시각피질로 정보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동시에 나는 당신이 식탁을 들어올리기 시작하는 것을 본다. 그것은 당신의 전운동피질에서 당신의 몸으로 정보의 흐름을 만들 뿐 아니라, 거기에서 나의 눈, 나의 시각피질 그리고 나의 전운동 거울뉴런에 이르는 정보 흐름도 생성한다. 당신이 탁자를 들어올리는 모습은 나의 ‘들어올림 거울뉴런’을 활성화하고, 탁자의 높이를 유지하기 위해 탁자를 더 들어올리는 나의 정확한 반응의 실행을 촉진한다. 그것은 다시 나의 전운동피질에서 시각피질로 흐르는 정보를 낳고, 또한 당신이 나의 동작을 관찰함에 따라 나의 전운동피질에서 당신의 시각피질로 흐르는 정보를 낳고, 이런 식으로 계속된다.”
순간적이고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이 모든 과정은 순차적 정보교환이라기보다는 마치 두 개의 뇌가 하나로 연결되는 미세조정 과정과 같다. 여기서 두 사람의 뇌를 연결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행동과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한 지각을 연결하는 거울뉴런이다. 거울뉴런은 우리의 신체와 탁자를 포함한 외부세계 전체를 인터페이스로 삼아 복잡한 정보의 흐름을 정교하게 조율해낸다. 우리 뇌가 수백만 년의 진화를 거쳐 만들어낸 이 정교한 체계를 통해서, 우리는 혼자서는 절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함께 해내며 위대한 문명의 도약을 이뤄냈다. 큰 동물의 사냥에서 우주왕복선의 제작까지 우리의 모든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협력’)은 거울체계에 의해 가능했다.
자폐증과 사이코패스의 공감능력
자폐증이나 사이코패스처럼 공감능력이 결여된 듯 보이는 사람들의 경우는 공유회로가 손상되어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두 경우 모두에서 공유회로는 정상으로 보인다.
자폐증이 있는 사람은 수식이나 날짜 계산 같은 특정 분야에만 관심을 쏟고, 다른 사람의 시선이나 얼굴표정 같은 사회적 상호작용에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은 저자의 fMRI 실험 결과로도 증명되는데, 일반인이 타인의 표정을 모방할 때 활성화되는 영역들이 자폐증이 있는 사람의 경우에는 더 약하게 활성화되었다. 하지만 흥미로운 사실은 일반인은 나이가 들수록 안면모방시 뇌 활성화가 줄어드는 데 비해, 자폐증이 있는 사람은 그 반대라는 것이다. 18세의 자폐증 실험참가자들은 비정상적으로 낮았지만, 30세에 이르면 정상 수준을 보였고, 일부 자폐증 노인의 경우에는 일반인보다 더 많이 활성화되었다. 실제로 공유회로가 더 활성화된 자폐증 성인은 정상적인 사회생활이 가능해져 친구도 많아지고 직업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연구 결과로부터 우리는 자폐증이 있는 사람의 공유회로가 망가진 것이 아니라 지체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DNA상의 어떤 유전적 결함으로(뉴렉신과 뉴로리긴이라는 단백질군의 문제로 밝혀졌다) 발달 초기에 두뇌영역 간의 연합이 덜 활발해지고, 그 결과 공유회로의 발달이 지연되는 것이다. 이때 아이의 반응 부족에 좌절한 부모는 안면모방 등의 상호작용을 덜 적극적으로 하게 되고, 따라서 아이의 가뜩이나 낮은 사회적 자극에 대한 관심은 더욱 약화된다. 더 많은 학습경험이 필요한 아이에게 더 적은 학습기회가 제공되는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자폐아가 더 강한 공유회로를 조기에 발달시킬 수 있도록 돕는 여러 치료법이 연구되고 있다. (일례로, 큰 거울이 있는 방에서 부모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타인의 행동, 얼굴표정, 정서에 더 많이 관심을 기울이고 더 자주 모방하도록 격려하는 식의 상호작용이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하고 있다.)
한편 교묘하게 다른 사람을 조작할 뿐 아니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사이코패스의 경우는 어떨까?
저자는 네덜란드 법무부의 협조를 얻어 21명의 사이코패스 수감자의 뇌를 검사했다. 한 손이 다른 손을 비틀고 뿌리치거나 서로 사랑스럽게 쓰다듬는 영상을 보여주고, 실제로 피실험자의 손에 그러한 동작을 하면서 fMRI로 뇌의 반응을 측정했다. 예상대로 사이코패스는 체성감감영역, 섬엽, 전운동피질 등 감각, 고통, 기쁨을 느끼는 데 관여하는 뇌영역이 일반인에 비해 덜 활성화되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이코패스 실험참가자에게 영상 속의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해보라고 요청하자 그들의 반응은 일반인만큼이나 정상이었다.
이러한 실험 결과로부터 저자는 사이코패스가 공감능력이 결여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공감하지 않는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의 재범률을 낮추는 데 이제까지의 약물치료와 행동치료는 거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사이코패스들이 의식적으로 자신의 공감능력을 내면 깊숙이 잠재운다는 최신 뇌과학의 발견을 바탕으로 새로운 치료법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크리스티안 케이서스
Christian Keysers
거울뉴런을 직접 연구한 소수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공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대표적 연구자이다. 1973년 벨기에에서 독일계 어머니와 프랑스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생물학을 공부했으며, 영국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에서 인지 신경과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거울뉴런을 발견한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교 연구팀에 2000년부터 포스트닥 연구자로 참여해, 행동뿐 아니라 정서와 감각 영역에서도 거울체계를 확인함으로써 ‘공감’의 신경학적 기초를 밝히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34살 때 네덜란드 그로닝겐 대학교 부교수가 되었고, 현재 암스테르담 대학교 정교수로 있으며, 신경과학자인 아내 발레리아 가촐라와 함께 네덜란드 왕립학술원 신경과학연구소 산하 ‘사회적 뇌 연구소Social Brain Lab’를 이끌고 있다. 자신의 연구 성과를 일반 대중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는 강연을 활발히 펼친 공로로 마리 퀴리 우수연구상을 수상했으며, 그 연상선상에 있는 이 책으로 2012년 IPPY(독립출판협회) 최우수 과학도서상을 수상했다. 자신과 함께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를 연구하고 싶은 과학자나 연구에 도움을 주고 싶은 이들의 연락을 언제든 환영한다.
역 : 고은미
고은미는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덕성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한국심리학회 공인 건강심리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역 : 김잔디
김잔디는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하고, 가톨릭대학교 대학원에서 심리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덕성여자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를 수료했다. 현재 한국심리학회 공인 상담심리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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