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삶의 여유와 향기를 느끼는 시간이 되어야 할 시 읽기가 오히려 마음을 더 지치게 하고 압박해 온다면?
가르치는 교사도, 배우는 학생들도 “시는 어려운 것이다.”가 언제부터인지 정설이 되다시피 했다. 짧은 말에 깊은 의미를 응축시켜 놓은 것이 ‘시’이기에 시가 어렵다는 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꼭 어려워야만 시가 시다운 것일까? 자연스러운 말놀이나 발상의 전환만으로도 완성도 높은 시가 되기도 하고 아이들의 생각을 솔직하게 적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인 시가 되는 경우도 많다. 엄숙하고 무겁고 깊이를 강요하는 시들만 읽어야 한다면 누구에겐들 시가 어렵지 않겠는가. 더구나 오지선다형의 시험 지문에서 시를 만나온 아이들에게 ‘시가 쉽고 재미있는 것’이라는 말은 공부가 재미있다는 말만큼이나 고개를 젓게 하는 말일 것이다.
시적 쾌감을 느끼는 순간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SNS나 인터넷에서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표현한 것 같은 촌철살인의 문장을 만났을 때 카타르시스를 느끼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지하철 광고 문구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찡한 감동을 느끼기도 하지요. 그래요. 어떤 시인이 말했듯이 시는 여기에도 있고 저기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교실에서 만나는 시는 어떤가요? 언젠가부터 시는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먼, 알 수 없는 것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교과서에서 다루는 시는 지금 우리의 정서와는 거리가 먼 것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시를 좀 더 가깝고 재미있게 느끼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에서 출발해 이 책을 펴내게 되었습니다. _‘엮은이의 말’ 중에서
물론 시를 재미로만 읽을 수는 없다. 때로는 깊이 읽는 훈련도 필요하다. 그러나 깊은 의미에 다가가기 위해서도 먼저 시를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재미가 있으면 관심은 저절로 생길 것이고 관심이 생겨야지만 깊은 의미에도 한 발짝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학생들이 시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쉽고 친근하고 재미있는 시들을 모아 엮었다. ‘시의 재미’라는 것은 읽는 이에 따라 각기 달라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방향에서 재미있는 시를 담기 위해 노력했다.
예컨대 “도대체 내가 무얼 잘못했습니까?” (「지렁이-이외수」)나 “그 오징어 부부는 /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 부둥켜안고 서로 목을 조르는 버릇이 있다” (「오징어·3-최승호」)처럼 발상이 독특하고 참신한 시, “후, 후, 후, 후! 하, 하, 하, 하!/ 후, 후, 후, 후! 하, 하, 하, 하! / 후, 하! 후, 하! 후하! 후하! 후하! 후하!” (「조깅-황인숙」)이나 “느닷없이 접촉사고 / 느닷없이 삼각관계 / 느닷없이 시기질투 / 느닷없이 풍전등화 / 느닷없이 수호천사 /느닷없이 재벌2세 / 느닷없이 신데렐라 / 느닷없이 승승장구/(중략)느닷없이 해피엔딩” (「미니시리즈-오은」)처럼 말의 가락이 도드라지거나 말놀이의 재미가 있는 시를 골랐다.
그런가 하면 “살이 쪘어 두 달 동안 십 킬로나 쪄 버렸어 옷이 모두 작아졌고 교복까지 터지려 해 /
살찐 것도 억울한데 교문에서 걸렸어 교복을 줄였다며 벌점까지 먹었어 / 선생님 부탁합니다 벌점 좀 빼 주세요” (「선생님 부탁합니다-이장근」)나 “나는 속으로 부아통이 터졌지요 그래 / 징게맹경 어딘가 최생원네 손자란 놈 / 제 아무리 잘났어도 / 똥구멍 새까만 놈일 거라 생각했지요” (「똥구멍 새까만 놈-심호택」)처럼 익살과 웃음이 한껏 묻어나는 시, “아빠는 술 마시고 들어오면 / 나한테 늘 하는 말이 있다 / -에헴, 아빠는 어릴 때 잉크가 어는 방에서 공부를 했다! // 아빠는 이글루에서 살았나?”(「아빠-오탁번」)처럼 동심의 세계를 그린 시도 들어 있다.
「담양장-최두석」이나 「권태 72-김영승」과 같은 우리네 살아가는 이야기가 담긴 시들은 시가 반드시 절제와 긴장을 요구하는 가파른 글쓰기가 아니어도 됨을 넌지시 일러 줄 것이며 「묵념, 5분 27초-황지우」나 「나는 너에게 포위되어 살아간다-이유미」처럼 파격적인 형식으로 새로운 재미를 추구하는 시들은 시에 대한 섣부른 고정 관념을 깨 줄 것이다.
거기에다가 “가자가자 갓나무 오자오자 옻나무 가다보니 가닥나무 오자마자 가래나무”나 “앞발에 부스럼이 나고 뒷발에 종기 난 불개미가 광릉 샘 고개를 넘어 들어가 호랑이 허리를 가로물어 추켜들고 북해를 건넜다는 말이 있습니다.”처럼 옛 사람들의 흥이 담긴 시를 함께 실어 힘든 삶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재치와 해학을 엿볼 수 있게 하였다.
시 뒤에 따라붙은 학습 활동 또한 골치 아픈 분석 문제는 아예 빼고 친구들과 함께 읽은 후 상상의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활동, 게임을 하듯이 시를 가지고 즐겁게 놀 수 있는 활동으로만 구성했다. 재미있는 독후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하나씩 풀어가다 보면 어느새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물론이고 읽는 이 자신도 시인이 되어 있지 않을까?
시의 본류가 무엇인가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답은 그리 어렵지 않은 데서 찾아진다. 모든 예술의 시작이 그렇듯 시 역시 놀이와 하나였다. 시는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는 수다이자 신명을 풀어내는 노래였다.
『쫄깃하고 맛있는 시라면』은 시 공부를 시작하는 아이들이 시란 따분하고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며 시 공부에 지친 아이들이나 시와 멀어진 어른들에게도 잃어버린 말맛을 되찾게 해 주는 더없이 좋은 책이 될 것이다.
작가 소개
편 : 엄아람
동국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을지중학교, 도봉고등학교를 거쳐 현재 수락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일상을 깨우는 보석 같은 시를 발견해 함께 나누는 것을 좋아하며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로부터 배우는게 더 많은 축복을 누리고 있다.
편 : 구본희
현재 관악중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언제나 놀라운 생각으로 관성을 깨우쳐 주는 아이들에게 감사하며, 그런 아이들과 함께 책 읽고 대화하고, 생각하고 글 쓰는 수업이 행복한 선생님이다. 즐거운 국어 수업을 통해 우리 아이들이, 또 우리 사는 세상이 조금 더 행복해지기를 바란다. 엮고 쓴 책으로 『재미로 읽는 시』『재미로 읽는 소설』『마음으로 읽는 소설』『생각하며 읽는 소설』『국어샘과 도덕샘이 함께 만든 인성독서』『아름다운 삶, 아름다운 도서관』『북미 도서관에 끌리다』등이 있다.
목 차
뱀 - 쥘 르나르
지렁이 - 이외수
귀 - 장 콕토
메뚜기 - 김바다
새해 첫 기적 - 반칠환
봄 - 김기림
매미 허물 - 바쇼
오징어 3 - 최승호
쉼표 - 안도현
좌표 - 이장근
봄의 정원으로 오라 - 잘랄루딘 루미
밤이 쓸쓸해 - 오가타 가메노스케
2. 후, 하! 후, 하! 후하! 후하! : 말의 가락이 도드라진 시라면
조깅 - 황인숙
우포늪 - 김바다
미니시리즈 - 오은
사투리 오토바이 - 이이랑
빗방울 - 오규원
핀은 머리가 있는데 머리카락은 없어요 - 크리스티나 로제티
메시지 - 쟈크 프레베르
XX일 - 조운
말 - 정지용
유월 소낙비 - 박성우
3. 아아 어쩐다, 전복도 다진 야채도 싫은데 : 익살과 웃음이 가득한 시라면
선생님 부탁합니다 - 이장근
이러니 수학이 문제야 - 김미희
올백 - 배상환
사과 없어요 - 김이듬
이 바쁜 때 웬 설사 - 김용택
똥구멍 새까만 놈 - 심호택
귀도 없나, 잎도 없나 - 김동환
똥 찾아가세요 - 권오삼
한 수 위 - 복효근
4. 아빠는 이글루에서 살았나? : 동심의 세계가 어린 시라면
국어 시간 - 김미영
아빠 - 오탁번
마빡 맞기 - 박상욱
감 - 한원엽
호랑이는 내가 맛있대 - 김성범
어이없는 놈 - 김개미
저 많이 컸죠 - 이정록
병 속에 - 홍성란
별로 안 됐는데 - 윤수진
공장 굴뚝 - 한태천
참새 - 윤동주
별똥 - 정지용
5. 마을은 온데 간데 구신이 돼서 : 이야기가 있는 시라면
만약에 물고기가 - 신형건
흰둥이 생각 - 손택수
맛의 거리 - 곽해룡
권태 72 - 김영승
담양장 - 최두석
머슴 대길이 - 고은
마을은 맨천 구신이 돼서 - 백석
신부 - 서정주
접동새 - 김소월
애너벨 리 - 에드거 앨런 포
6. 열중 쉬엇! (흐느적) -자유로운 실험이 담긴 시라면
고백 - 고정희
메아리 - 최승호
시 제3호 - 이상
오랑캐꽃 7 - 이가림
저 산을 옮겨야겠다 - 김승희
비가 내린다 - 이경림
이 사진 앞에서 - 이승하
시 제4호 - 이상
나는 너에게 포위되어 살아간다 - 이유미
텔레비전Ⅰ - 박남철
묵념, 5분 27초 - 황지우
7. 꽃이 예쁜가요, 제가 예쁜가요 : 옛 사람들의 흥이 느껴지는 시라면
엿 장수 똥구멍은
나무 노래
시집살이 노래
오늘 밤은 꽃과 함께 주무세요 - 이규보
개성 사람이 나그네를 내쫓다 - 김병연
국화 - 이덕무
연암에서 먼저 간 형을 생각하다 - 박지원
빈 산에 우는 접동 - 박효관
바람 불으소서
창 내고자 창을 내고자
개를 여남은이나 기르되
어이 못 오던가
개야미 불개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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