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인간사와 문명사를 통합하며 우리 종의 기원과 한계를 밝힌 600만 년의 대서사
일반적으로 인류 역사는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는 진보의 역사로 이해되었다. 600만 년 전 아프리카 숲속 나무에서 내려와 서서 걷기 시작한 유인원이 진화를 거듭해 호모 사피엔스가 되었다. 사피엔스 무리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 소통하고 협력하고 생각하고 혁신하는 문화적 능력을 발휘해 다른 인간 종들과의 경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이후 그들은 석기 문명, 농업 문명, 산업 문명을 차례로 일으키고 마을, 도시, 국가, 제국을 건설하며 지구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 몸의 관점에서 보면 이처럼 호모 사피엔스의 진화적, 문화적 성공을 그린 이야기에 의구심이 생긴다. 과거 생명을 위협했던 전염병, 기아, 영양실조는 과학기술의 혁신으로 대부분 해결되었고 영유아 사망률이 낮아졌으며 인간 수명은 길어졌지만, 전에는 없거나 드물었던 비감염성 만성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기하급수로 늘고 있다. 알레르기, 근시, 불면증, 평발과 같은 기능장애 패턴도 심상치 않은데,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50년에 전 세계 인구의 절반 정도인 50억 명이 근시가 된다고 한다. 그렇다고 인공지능, 빅데이터, 크리스퍼가위 등의 정보기술과 생명공학에 힘입어 인간이 질병과 고통에서 해방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에 희망을 걸기에는 윤리적 문제와 기술적 한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우리 몸 연대기(The Story of the Human Body)』는 오늘날 비감염성 만성질환과 기능장애가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이유를 진화적 관점에서 폭넓게 탐구하는 책이다. 저자인 대니얼 리버먼(Daniel Lieberman) 하버드대 교수는 직접 고인류의 뼈를 만지며 인간 몸의 구조와 기능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진화했는지 연구하는 세계적인 진화생물학자이다. 그는 우리가 직면한 건강 문제가 일종의 진화적 산물로, 혹독한 환경 아래서 생존과 번식에 적합하게 진화한 우리 몸이 풍요롭고 안락한 현대 문명과 만나 벌어지는 부적응 때문이라는 것을 이 책에서 흥미진진하게 밝힌다. 화려한 수사와 현학적 개념 대신 인류학, 생물학, 유전학 연구에서 얻은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데이터와 과학적이고 치밀한 논증을 바탕으로 인간 몸과 문명의 공진화(共進化)를 서술한 이 책은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과 더불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위한 믿음직한 조언을 제공한다.
우리 몸은 ‘무엇에’ 적응해왔는가?
진보의 오해를 걷어낸 복잡다단한 진화의 모습들
『우리 몸 연대기』는 오늘날 유행하는 비감염성 만성질환과 기능장애가 현대의 특정 행동과 조건에 충분히 적응되어 있지 않은 구석기 시대의 몸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구석기 시대 우리 조상들의 수렵채집 생활로 회귀하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실제로 이러한 맥락에서 구석기 식단이나 맨발 달리기 같은 것들이 한때 인기를 끌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북극 툰드라에서 열대우림과 사막에 이르기까지 우리 조상들이 적응한 환경은 너무도 다양해서 일반화시켜 적용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혹시 특정 유전자나 인구 증가, 노화 때문에 이러한 질병이 흔해진 것은 아닐까? 실제 여러 연구 결과들에 따르면 유전자와 인구 집단의 크기, 나이가 질병과 강한 상관관계를 갖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형 당뇨병이 미국보다 아시아에서 더 빠르게 퍼지는 이유는 유전자 빈도의 변화 때문이라기보다 서구의 생활 방식이 과거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오래된 유전자들과 상호작용한 결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또한 인구수의 증가폭에 비해 만성질환의 확산 속도나 규모의 증가폭이 훨씬 크며 그 발생률이 노년층 외에 청년층과 중년층 사이에서 치솟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늘어난 수명만큼 병에 걸려 고통받는 현대인의 역설적인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는 우리 몸이 ‘무엇에’ 적응되어 있으며 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는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에서 출발해 인간 몸과 문명의 역동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봐야 한다. 저자는 구체적인 연대와 전문용어에 연연하는 대신 인간 몸을 빚은 핵심적인 일곱 가지 진화적 사건을 이정표로 내세우며 600만 년의 인류 역사를 다시 써내려간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몸은 강수량, 기온, 식량이 끊임없이 바뀌는 환경에서 번식과 생존의 이득을 꾀하기 위해 두 발로 먼 거리를 효율적으로 이동하며, 자연에서 나는 건강한 음식을 다양하게 섭취하고, 큰 뇌와 자녀 양육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해 지방을 축적하도록 수백만 년에 걸쳐 진화했다. 이러한 몸은 문화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훌륭한 생물학적 기반을 제공하며 호모 사피엔스의 성공을 이끌었지만 동시에 그 문화적 힘이 창조한 환경과 부조화를 일으키며 기근과 질병 같은 불행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더욱이 과학과 의학의 발전으로 증상을 효과적으로 완화시켜주는 치료법과 약물, 보조기구 들이 성행하는 가운데 우리는 진화적 불일치 질환을 촉진하는 환경조건과 행동방식을 후대에 물려주는 ‘역진화(dysevolution)’ 메커니즘을 확대, 재생산하며 오늘에 이르렀다.
우리 몸과 문명의 진화 이야기는 기존의 상식과 통념에 반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기도 한다. 예컨대 자연선택은 오래 건강하게 사는 생명체가 아니라 치열한 생존투쟁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왕성하게 번식하는 생명체를 만든다. 문명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창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환경을 급속도로 바꾸며 우리 몸에 근본적인 변화를 야기하는 또 다른 진화적 원동력이기도 하다. 결국 인간이 병에 걸리는 이유는 우리 종의 기원과 한계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역진화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고 삶의 조건을 개선할 수 있을까?
급부상하는 진화의학의 통찰과 역진화의 문제
『우리 몸 연대기』는 진화적 관점을 건강과 질병 문제에 적용한 ‘진화의학’에 학문적 기반을 두고 있다. 생리학과 해부학을 바탕으로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현대 임상의학이나 유전자, 세포, 분자 단위에서 질병의 인과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생물학과 달리 진화의학은 역사적 관점에서 인간이 왜 병에 걸리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1990년대 초 미시건대 의대 교수였던 랜덜프 네스(Randolph Nesse)와 세계적 진화생물학자 조지 윌리엄스(George Williams)가 창시했다. 세계 인구가 증가하고 고령화되면서 개인과 국가 모두에서 만성질환의 예방과 관리가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에 진화의학에 대한 관심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진화의학은 오늘날 흔히 보이는 2형 당뇨병, 심장병, 생식기 암과 같은 만성질환과 매복사랑니, 근시, 평발, 골다공증, 요통과 같은 기능장애의 원인이 무엇이며 그 질병들을 어떻게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새로운 설명과 대안을 들려준다. 예를 들어 2형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인슐린 민감성을 개선하거나 포도당의 흡수를 저해하는 약을 평생 먹을 수도 있겠지만 수백만 년 동안 여분의 에너지를 축적하도록 진화한 우리 몸이 다량의 당이 빠르게 흡수되는 것에 잘 적응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신체 활동을 늘리거나 탄산음료나 사탕 같은 가공식품을 피하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오늘날 우리는 갈고 으깨고 부드럽게 만들어진 음식을 주로 섭취하기 때문에 씹기 자극이 적고 따라서 턱이 모든 치아가 들어설 만큼 크게 성장하지 못해 매복 사랑니와 부정교합 같은 문제를 겪는다. 물론 사후에 치과 치료를 받을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진화적 메커니즘을 이해하고 뼈가 성장하는 시기에 껌을 씹어서 부족한 자극을 보충할 수 있다. 또한 맨발로 다니던 우리 조상들의 발을 물려받았지만 쿠션이 장착된 신발을 신는 것에 더 익숙해진 결과 발바닥활을 지탱하는 근육들이 약해져 평발이나 발바닥근막염 같은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은 편안한 신발이 좋다는 생각을 다시 검토하게 만들고 최소한의 기능을 가진 신발을 신도록 유도한다.
이처럼 우리 몸과 문명, 건강과 질병에 대해 진화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진화의학은 건강한 삶을 일구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준다. 기존의 건강과 질병 패러다임을 뒤집는 진화의학의 통찰을 바탕으로 환경조건과 행동방식을 바꿔나감으로써 역진화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낼 때,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지속 가능한 문명을 만들어나가며 진정한 ‘슬기로운 종’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작가 소개
저 : 대니얼 리버먼
Daniel Lieberman
하버드대학교 인간진화생물학과 교수이자 개체및진화생물학과 겸임교수다. 우리 몸의 구조와 기능이 왜 그리고 어떻게 지금과 같이 진화했는지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특히 인간 두개골의 진화와 맨발 달리기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지금까지 1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했고 대부분이 《네이처》와 《사이언스》에 실렸다. 저서로는 『인간 머리의 진화(The Evolution of the Human Head)』가 있다.
감수 : 최재천
崔在天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는 학자로,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을 번역하여 국내외 학계의 스타가 되었다. 그러나 1995년 이래로 시민단체, 학교, 연구소 등에서 강연을 하거나 방송출연, 언론기고를 통해 일반인에게 과학을 알리는 작업을 해왔다.
1953년 강원 강릉에서 4형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 대부분을 서울에서 보냈지만 방학만 되면 어김없이 고향의 산천을 찾았다. 1979년 유학을 떠나 1982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에서 생태학 석사학위, 1990년 하버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어 하버드대 전임강사를 거쳐 1992년 미시간대의 조교수가 됐다. 1989년 미국곤충학회 젊은과학자상, 2000년 대한민국과학문화상을 수상했고, 1992-95년까지 Michigan Society of Fellow의 Junior Fellow로 선정되었다. 2004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생물학과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환경운동연합 공동 대표, 한국생태학회장 등을 지냈고, 2006년 이화여대 자연과학대로 자리를 옮겨 에코과학부 석좌 교수, 이화여대 에코과학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분과학문의 경계를 넘어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내고자 설립한 통섭원의 원장이며, 기후변화센터와 136환경포럼의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그 밖에도 '국제환경상' '올해의 여성운동상' '대한민국 과학기술훈장' 등을 수상했고, <진화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을 비롯하여 4개의 국제학술지의 편집위원을 역임하였다. 해외에서는 주로 열대의 정글을 헤집고 다니며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국내에 머물 때면 "알면 사랑한다!"
라는 좌우명을 받쳐 들고 자연사랑과 기초과학의 전도사로 전국을 누비고 다닌다.
하버드 시절 세계적 학자인 에드워드 윌슨의 제자로 있었으며, 그의 개념을 국내에 도입하였다. '통섭'이라는 학문용어를 만들어 학계 및 일반사회에 널리 알리고 있다. 1998년부터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 자문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과학기술부 과학교육발전위원회의 전문위원을 맡아 청소년의 이공계 진출을 촉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등 과학의 대중화를 실천하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고 있다.
수 많은 어린이책에 과학적인 내용을 감수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러한 활동 외에도 최 교수는 영장류연구소를 설립하여 침팬지들을 연구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생태계의 가치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장소로도 이곳을 활용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생물학자에서 출발하여 사회생물학, 생태학, 진화심리학 등 학문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는, 언제나 공부하는 과학자이다. 그는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통합을 꿈꾼다. 학문 간 벽을 허물고 통합적으로 사고해야만 더 크게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학자이자 지식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져온 최재천은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지식의 대통합』을 번역 소개하여 학문 간 교류와 소통의 필요성을 널리 알렸으며, 저서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를 통해 생물학적인 시선으로 고령화 사회의 해법을 제시하여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에는 21세기가 요구하는 인간상으로 ‘호모 심비우스’를 제시하여 극단적인 경쟁과 환경 파괴로 위기를 맞고 있는 현대인에게 새로운 화두를 던지고 있다.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는 여성의 세기는 반드시 올 수밖에 없는 생물학적 필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 그는 사회생물학이라는 렌즈를 통해 진정한 여성성이 회복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그 새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지, 결국 여성과 남성이 더불어 잘사는 길은 무엇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과학자의 서재』와 『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를 비롯하여 30여 권의 책을 저술하거나 번역했다. 그가 한국어로 쓴 최초의 저서 『개미제국의 발견』은 2012년 봄에 영문판 The Secret Lives of Ants로 존스홉킨스대학출판부에서 출간될 예정이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 출판부에서 출간한 영문서적을 비롯하여 다수의 전문서적들과 『개미제국의 발견』『생명이 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인간의 그늘에서』『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인간은 왜 늙는가』『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통섭』『알이 닭을 낳는다』『최재천의 인간과 동물』『알이 닭을 낳는다』『벌들의 화두』『상상 오디세이』, 『경이로운 꿀벌의 세계』, 『21세기 다윈 혁명』, 『개미』, 『인문학 콘서트』, 『과학자의 서재』, 『통섭의 식탁』, 『호모심미우스』, 『다윈지능』,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 『여성시대에는 남자도 화장을 한다』 등의 저 · 역서 외에도 여러 책에 감수자로 참여했다.
역 : 김명주
성균관대 생물학과와 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을 졸업했으며, 현재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동안 옮긴 책으로는 『생명 최초의 30억 년: 지구에 새겨진 진화의 발자취』(2007년 과학기술부 인증 우수과학도서)를 비롯해 『메이팅 마인드』 『용 - 서양의 괴물 동양의 반짝이는 신』 『사용설명서 - 술』 『데카르트의 비밀노트』 『위험한 호기심』『다윈평전』 등이 있다.
목 차
머리말
서론: 인간은 무엇에 적응되어 있는가?
1부 유인원과 인간
1장 직립 유인원: 우리는 어떻게 두 발 동물이 되었는가
2장 모든 것이 먹는 것에 달렸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어떻게 과일에서 벗어났는가
3장 최초의 수렵채집인: 어떻게 호미닌에서 현생 인류가 진화했는가
4장 빙하기의 에너지: 큰 뇌, 통통한 몸, 긴 성숙 기간
5장 매우 문화적인 종: 현생 인류는 어떻게 세계를 차지했는가
2부 농업과 산업혁명
6장 진보, 불일치, 역진화: 구석기 시대의 몸으로 이후 세계를 산다는 것
7장 실낙원?: 농업 생활의 이익과 손해
8장 현대와 우리의 몸: 산업 시대가 초래한 건강의 역설
제3부 현재와 미래
9장 과잉의 악순환: 너무 많은 에너지가 병들게 한다
10장 쓰지 않아서 생기는 병: 너무 적은 사용과 자극이 쇠퇴를 가속화하다
11장 새로움과 안락함 속 보이지 않는 위험: 일상적인 혁신이 몸에 해로운 이유
12장 더 적합한 자의 생존: 진화적 논리는 더 건강한 몸을 일구는 데 도움이 되는가
감사의 말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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