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조선의 여성들이 남긴 글을 읽어 본 적이 있나요?
조선 시대 여성이 남긴 작품을 한번도 만나 보지 못한 초등학생들이 대부분일 거라고 짐작합니다. 남아 있는 작품도 적은 데다가, 조선의 여성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적어 소개될 기회도 거의 없었을 테니까요.
이화우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할까
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하노라
이 시는 매창의 작품인데, 조선 시대 전체를 통틀어 가장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 이별시라고 합니다. 이 시는 유명하여 어른들은 만나 본 적이 있을 듯합니다. 하지만 어른들마저도 조선 시대 여성이 남긴 작품을 만나 볼 기회가 아주 드물어, 그 외의 작품은 잘 모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손에 가위를 잡긴 했지만
추운 겨울밤 손가락은 뻣뻣해지네
다른 아가씨 시집갈 옷 만들며
해마다 나는 홀로 잠드는구나
이 시는 허난설헌의 작품입니다. 허난설헌은 허균의 누이이자, 그 당시 허씨 가문의 오문장가로 이름을 날린 시인입니다. 허난설헌은 신사임당과 함께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조선 시대 여성입니다만, 허난설헌의 작품을 직접 읽어 본 사람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허난설헌은 글을 잘 쓰기로 이름난 인물인데, 우리는 정작 작품에 대해 소홀히 한 듯합니다. 허난설헌의 작품을 읽고, 허난설헌을 제대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합니다.
백운대를 오를 때는 팔뚝만큼 굵은 쇠줄을 잡고 올라가는데 마치 하늘로 곧장 올라가는 듯했다. 내려다보니 구름과 안개로 자욱한 골짜기가 밑에 있어서 마치 그림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이 글은 『호동서락기』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김금원이 열다섯 살에 충청북도 제천을 시작으로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한양까지 다녀왔는데, 훗날 여행기를 남겼습니다. 오늘날에도 열다섯 살에 긴 여행을 떠난다는 것이 어려운데, 교통도 불편하고 지도도 없던 조선 시대에, 여자아이가 부모도 없이 여러 달 동안 여행을 다녀오는 것이 가능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더구나 보고 겪은 내용을 실감나도록 생생하게 기록한 것이 놀랍습니다. 이 책을 통해 기행문을 남긴 조선의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하늘과 땅이 아무리 커도 내 가슴속에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다는 포부를 지닌 여성이 있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섯 명의 조선 여인들이 남긴 글을 시, 자서전, 학문적인 글, 기행문 등 종류도 다양합니다. 실제 작품을 읽으면서 조선 여성의 삶과 생각에 대해 알아가는 특별한 시간을 가져 보세요. “타고난 것은 남녀가 다른 것이 없다. 여자라도 학식과 인격을 수양할 수 있다.”라고 파격적인 선언을 한 강정일당의 글처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조선 여성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은 눈 깜짝할 사이에 꿈처럼 잊혀진다. 글을 써서 남기지 않는다면 누가 지금의 나를, 금원이라는 사람이 있었음을 기억해 줄 것인가.
김금원이 남긴 글이지만,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여섯 명의 여성들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조선 여성들의 삶과 생각을 들여다보는 책
조선 여성들의 삶에 대해서는 역사 시간에 짧게 공부합니다. 조선 시대 여성의 삶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나요? 남자와 여자가 일곱 살 이후부터는 따로 앉아야 한다는 남녀칠세부동석? 여자가 따라야 한다는 세 가지 도리, 삼종지도? 여자가 해서는 안 되는 칠거지악? 여자는 안에서만 지내야 한다는 내외법? 혹시 재혼한 여자의 자손은 벼슬길에 나가는 것을 막는다는 재가녀자손금고법? 실제로 조선 시대는 자유롭지 못했고 제안이 많았던 남녀 차별의 사회였습니다. 글을 익힌 여성들도 드물었고요. 조선 여성들은 사회적 테두리에 갇혀 개인의 존재를 드러내지 못했습니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거의 알려진 것이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평등한 부부 관계를 만들어 낸 송덕봉 할머니, 신선 세계에 대한 상상과 조선 시대 백성의 삶에 대해 두루두루 작품을 남긴 허난설헌, 기생이면서도 자기 삶의 품격을 지켰던 시인 매창, 자기의 입장을 영리하게 기록한 풍양 조씨, 특별한 여성 학자 강정일당, 여행을 통해 넓은 세계를 가슴에 품은 김금원을 소개합니다.
조선 시대 여성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던 자기만의 생각을 담은 글을 남긴 여성들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여섯 명의 삶과 생각을 읽으면서 그동안 서너 줄 정도로 짧게만 알고 있던, 혹은 두리뭉실하게 알고 있던 조선 시대 여성들에 대한 시각을 넓힐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여섯 명의 인물을 한 명 한 명 기억해 주길 바랍니다.
작가 소개
저 : 홍인숙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고전과 여성을 연결하는 공부 를 하고 학위를 받았어요. ‘여자라서 못하거나 안 되는 것’이 없는 곳이어서 공부가 신나고 재미있었어요. 지금은 선문대 교양학부에서 독서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어요. 가르치면서 ‘읽기, 생각하기, 쓰기’가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음을 확인할 때마다 뿌듯해지곤 해요. 지은 책으로는 『여성 예술가 열전-누가 나의 슬픔을 놀아주랴』, 『근대계몽기 여성 담론』, 『책읽기, 나, 그리고 세상』 등이 있어요.
그림 : 장경혜
그림을 그리면서 내가 만난 건 여섯 명의 조선 여인들뿐이었지만, 글을 읽는 내내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조선의 여인들이 이야기를 건네 오는 느낌이었어요. 이름 모를 그들의 이야기를 잊지 않고 있으면 언젠가 연필을 쥐고 있는 내 손에도 힘이 실리는 날이 있겠지요? 그동안 그린 책으로 『둥근 해가 떴습니다』, 『박각시와 주락시』, 『침 묻은 구슬사탕』 등이 있어요.
목 차
제 1 장
송덕봉 이야기(1521년~1578년)
능력 있는 할머니
제 2 장
허난설헌 이야기(1563년~1589년)
모함과 소문 속에 가려진 진정한 시인
제 3 장
매창 이야기(1573년~1610년)
기녀로 산다는 것
제 4 장
풍양 조씨 이야기(1772년~알려지지 않음)
스물한 살의 자서전
제 5 장
강정일당 이야기(1772년~1832년)
여자가 공부를 한다는 것
제 6 장
김금원 이야기(1817년~알려지지 않음)
만나면 힘이 나는 삼호정 친구들
[인물 공부 생각 수업] 조선 시대의 여성들이 했던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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