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소설을 끌어가는 화자인 나는 월남전을 참전하기도 한 소설가인데 86일간의 10개국 해군 순항훈련부대 종군작가로 편승해 동남아시아를 순항하던 중 브루나이 수도에서 꿈에도 그리던 여인 데오 레이를 만난다. 내가 목숨보다 사랑한 월남여자 레이는 내 어머니와 여동생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특별한 여자이다. 경성과 동경에서 무역업을 하던 아버지의 동경 현지처였던 일본인 여자에게서 태어난 나는 해방이 되자 어머니, 형과 함께 아버지의 나라로 건너간다. 낯선 땅에서 숱한 고초를 겪던 어머니는 여동생을 낳고 세상을 떠나고, 아버지의 본가에 들어간 삼남매는 큰어머니 밑에서 애물단지로 자란다. 나는 동네 깡패로 떠돌며 방종과 방탕의 시간을 보내다가 대학 재학 중에 도피처를 찾아 입대했다가 월남전에 참전한다. 나는 월남에서 운명적으로 만난 레이와 주변의 온갖 고초와 방해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불태우며 제대 후에 곧바로 결혼을 약속한다. 하지만 레이를 사랑하는 베트콩의 보복과, 나와 레이의 사랑을 질투하는 중대장의 압력으로 현지제대를 4개월 앞두고 강제귀국을 당한다. 그 후 나는 27년 동안이나 레이의 생사를 모른 채 가슴에 멍울을 안고 살았다.
그렇게 그리워하던 레이를 나는 4반세기만에 기적적으로 만난다. 레이는 내가 소설가라는 것도 알고, 내 소설책도 읽었다. 레이가 브루나이에 정착하게 된 것은 말레이계 브루나이 토착민인 남편을 만났기 때문이다. 브루나이 궁전의 경비대장이라는 레이의 남편은 레이를 살뜰히 보살펴주었지만, 레이는 나를 한시도 잊지 못했다고 한다. 레이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순항훈련 후에 귀국한 나는 풀리지 않은 의혹에 사로잡혀 번민하다가 마침내 레이에게서 내 아들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출판사 편집자였던 아내와 결혼을 했지만 자식이 없던 나는, 사이공으로 와서 아들을 만나자고 하는 레이의 말에 한달음에 달려가 아들 키엔을 만나는데 놀랍게도 쌍둥이 딸도 같이 만난다. 아들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이고, 딸 역시 세계적인 바이올린과 첼로 연주자이다. 27년이 지나도록 딸과 아들이 태어난 줄 몰랐던 나는 눈앞의 현실이 믿어지지 않도록 놀랍지만 염치없게도 행복하고, 내 인생의 분에 넘치는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 하는 것 같았다. 그 후 딸 디엔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을 하고, 키엔은 베트남 여자와 결혼을 한다. 나는 한국과 일본계의 아들인데, 레이는 베트남과 중국계의 딸이고, 키엔과 디엔에게는 한국, 일본, 베트남, 중국 4개국의 피가 흐른다. 또한 레이가 사별한 전 남편 아잔과의 사이에 낳은 두 아들 역시 내 아들이다. 나는 그야말로 다민족 혈연의 국제적인 가족의 가장이다. 이런 나의 상황을 이해한 아내는 기꺼이 이혼에 동의를 한다. 나는 서울과 브르나이, 호치민을 오가며 가족들을 만나면서 레이와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러 번 여행한다. 르네상의 걸작품이 산재해있는 피렌체 구석구석을 다니면서 소설가인 나는 동양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떠올리며 21세기 르네상스, 그 화려한 부활을 굳게 믿는다.
이 소설은 한국과 월남 양쪽 모두에게 큰 상처인 월남전의 상혼을 뛰어넘는 르네상스적인 발상으로 독자들에게 묵직한 화두와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미 전지구적인 삶의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 지금, 국가나 민족을 넘어서서 지구에 살고 있는 모두가 더불어 평화와 번영의 일체화를 함께하는 전지구적인 21세기 르네상스의 부활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월남전의 시대를 통과해온 세대의 시각을 소설가 화자를 내세워 증언하는 소설의 형식은 독자들에게 그 시대를 바라보는 감각을 새롭게 벼리는 계기로 만들고 있다. 소설은 작가의 날카로운 성찰력으로 지난 연대기의 리얼한 재현을 넘어서는 장면과 현장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있어 몰입도가 굉장히 뛰어나다. 또한 경험과 상상을 동반한 사람만이 쓸 수 있는 문장이 소설을 읽은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 소설은 화자가 자신이 살아온 궤적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분노와 슬픔이 서사를 밀어가고, 개인적인 비애의 정서를 감성적인 것으로 자연스럽게 맡겨두는 힘으로 개인뿐만 아니라 시대를 성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 결과 독자들에게 세계의 고통과 자신의 고통을 분리할 수 없는 지점을 명확히 보여주면서, 그 고통을 뛰어넘은 21세기 르네상스의 화려한 부활을 노래하고 있다.
작가의 말
현대의 건축·문화예술은 인간의 머리에서 창조된다. 인간이 달나라에 가고,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하는 AI 역시 인간의 머리에 의해 창조된다. 공포감이 느껴질 정도로 발전하는 인간 머리의 한계는 그 끝을 가늠할 수 없다. 장난 같은 말이지만 가공할 그 머리도 문학을 창조하지는 못한다. 르네상스시대의 그 찬란한 건축·미술·조각예술을 창조한 예술인들도 문학을 창조하지는 못했다. 르네상스예술을 꽃피운 이탈리아 피란체공화국 정치가이며 시인이던 로렌초 데 메디치(1449~1492)의 시가 현대에 전해질 뿐, 인간의 손에 창조되는 예술이 너무 찬란하여 머리로 창조되는 문학은 소외되었을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발전하고 천지개벽이 되어도 인간의 머리로 창조되는 문학예술은 영원하다. 인간의 머리는 타고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작가 소개
저 : 박충훈
朴忠勳
1988년『월간중앙』복간 기념 논픽션 공모에 당선되었으며, 1990년『월간문학』제61회 신인문학상 소설 부문 당선으로 등단하였다. 장편소설『강물은 모두 바다로 흐르지 않는다』(전2권),『그대에게 못다한 말이 있다』,『우리는 사랑의 그림자를 보았네』, 역사소설『세종&김종서 군신』, 대하역사소설『대왕세종』(전3권), 장편논픽션『태극기의 탄생』, 작품집『그들의 축제』『동강』『못다 그린 그림 하나』『남아있는 사람들』『남녘형님 북녘형님』『동티』, 건강실용서『밥상위의 보약 산야초를 찾아서』『야생 생약재로 보약주 만들기』『박충훈의 건강차 35선』『잘 먹고 잘 누고 잘 자는 법』『뜯고 따고 캐고 맛보고 즐기는 산야초 기행』『반신욕 삼백초 건강법』이 있다. 2009년 조선일보 논픽션대상 수상자이며, 대하역사소설『대왕세종』으로 서울시문학상을 받았다. 2011년 제37회 한국소설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목 차
프롤로그
아름다운 추억의 슬픈 과거
되돌아가는 길
아름다운 만남
사랑의 파도
강제귀국
유년의 뜰
미로에서
해후
운명적인 사랑
사랑의 모습
아름다운 이별
고목나무에 핀 꽃
르네상스시대 열리다
슬픈 추억
쌍룡 날아오르다
다시 찾은 행복
두 여자의 남자
국제가족
사랑의 결실
아름다운 이혼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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