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삶의 지혜와 위안을 주는 판소리 이야기
201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 목록에 등재된 판소리는 17세기 이후, 조선 왕조 후기에 나타난 새로운 예술이다. 소리(노래)와 발림(몸짓)과 아니리(재담)로 이루어져 고수의 북장단 등 추임새에 따라 이야기를 엮어 가며 구연하는 우리 고유의 민속악이다. 본래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흥보가」 「적벽가」 「변강쇠 타령」 「배비장 타령」 「옹고집 타령」 「강릉매화 타령」 「무숙이 타령(왈자타령)」 「장끼 타령」 「가짜신선 타령」 등 열두 마당이었으나,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수궁가」 「적벽가」 「흥보가」 다섯 마당만이 전해진다. 이청준은 다섯 마당 중 「적벽가」 대신 「옹고집 타령」을 넣어 삶의 지혜와 위안을 얻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아이들과 어른이 모두 읽을 만한 재미난 판소리 동화를 엮어 냈다.
일반 백성들이 즐기던 판소리 이야기에는 벼슬아치들에게 느끼는 그들의 감정, 사회의 부조리들에 대한 비판 정신과 저항 정신이 담겨 있다. 이야기꾼은 자신과 듣는 사람들의 불만이나 희망을 이야기 속에서나마 해결하려는 꿈을 꾸었을 것이다. 이렇듯 판소리는 어느 한 사람에 의해 쓰인 것이 아니라 민간 설화에서 시작해 여러 이야기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다. 듣는 사람의 흥미를 유발하고 유지시키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야기가 더해지거나 빠지는 현장 예술이기도 한 판소리는 장면 장면의 재미가 자연스럽게 결말로 이어져 좋은 교훈도 얻게 된다. 이청준 역시 풍자와 웃음이 주는 재미를 통해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바른 마음을 알려 주는 동시에 ‘재미’ 속에 깃든 ‘교훈’을 이야기한다.
또한 판소리 이야기의 인물은 멋진 영웅이 아니라 좋은 점과 나쁜 점을 골고루 지닌 보통 사람들이다. 영웅적 인물은 드높은 이상에 따라 행동하지만 판소리의 인물은 세속적인 욕망과 인간관계에 매여 있다. 이야기 속의 인물은 그래서 우리와 더 닮아 있고, 사람들을 거리감 없이 작품 속 사건 안에 더 몰입하게 만든다. 이처럼 판소리 이야기에는 우리의 실제 삶의 모습이 친근하게 담겨 있다.
아버지를 향한 효심을 저버리지 않은 심청, 하늘을 감동시키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심봉사의 딸 심청은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동냥젖으로 자란다. 앞 못 보는 아버지 심학규는 어느 날 물에 빠진 자신을 구해 준 스님이 ‘부처님께 시주 쌀 삼백 석을 바쳐 전생의 허물을 빌면, 그 정성으로 눈을 떠서 밝은 세상을 보게 된다’는 말을 듣고 덜컥 시주 책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고 만다. 스님은 형편도 안 되어 보이는 심봉사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오히려 더 큰 벌을 받아 내세에는 앉은뱅이가 되거나 구렁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해 주지만 심봉사는 눈을 뜰 수 있다는 생각에 그 말을 귓등으로 넘긴 것이다. 그러고는 이내 자신의 형편을 돌아보고는 근심에 휩싸인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효심이 지극한 심청이는 아버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이 공양미 삼백 석에 팔려 가기로 한다.
인당수에 몸을 던진 심청에게 하늘과 땅은 감동한다. 공양미 삼백 석을 받은 부처님, 수중 세계의 용왕, 하늘나라의 옥황상제, 심봉사와 심청의 젖동냥과 밥동냥을 박대하지 않고 푸근한 인심으로 품어 주었던 동네 사람들 등 하늘과 땅과 인간과 바다가 모두 합심해서 죽음의 위기에 처한 심청을 구해 준다. 죽을 위기에서 다시 태어난 심청은 왕비가 되어 꿈에 그리던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착하게 살고자 한 심청의 강건한 마음이 이 책의 부제처럼 심청의 가장 든든한 ‘빽’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판소리는 인간과 삶이 지닌 양면성 내지 다중성을 진솔하게 보여 주고, 터무니없는 행동이나 언어 놀음을 통해 웃음을 유발시켜 우리로 하여금 삶이 가져다준 슬픔과 고통을 잊게 하는데 「심청가」는 이러한 판소리의 매력을 잘 보여 준다. 심봉사가 어린 딸을 데리고 동냥을 해서 밥을 얻어먹으면서도 설움에 겨워 흐느끼기는커녕 흰쌀밥, 보리밥, 콩밥, 팥밥, 수수, 기장밥 등이 한 쪽박에 섞여 있는 것을 보며 정월 대보름의 오곡밥을 떠올리는 대목은 가난의 설움을 해학으로 이겨 낸 옛사람들의 낙천적인 성품을 엿볼 수 있다. 이런 장면은 고된 현실 앞의 백성들에게 웃음과 위로를 건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작가 소개
글 : 이청준
Lee Chung Joon,李淸俊
1939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65년 '퇴원'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 공모에 당선되어 문단에 등단했으며 1966-72년 월간 [사상계] [아세아] [지성] 편집부 기자로 재직하였고, 1999년에는 순천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석좌교수로 활동하였다.
작품으로는 『병신과 머저리』, 『굴레』, 『석화촌』, 『매잡이』, 『소문의 벽』, 『조율사』,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떠도는 말들』, 『이어도』, 『낮은 목소리로』, 『자서전들 쓰십시다』, 『서편제』, 『불을 머금은 항아리』, 『잔인한 도시』, 『살아있는 늪』, 『시간의 문』, 『비화밀교』, 『자유의 문』, 『별을 보여 드립니다』, 『가면의 꿈』, 『당신들의 천국』, 『예언자』, 『남도 사람』, 『춤추는 사제』, 『흐르지 않는 강』, 『낮은 데로 임하소서』, 『따뜻한 강』, 『아리아리 강강』, 『자유의 문』 등 여러 편의 소설과 소설집이 있으며 수필집 『작가의 작은 손』, 『사라진 밀실을 찾아서』, 『야윈 젖가슴』 등을 비롯해, 희곡 『제3의 신』등이 있다.
그 밖에 동화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를 비롯하여 판소리 다섯마당을 동화로 풀어 쓴 『놀부는 선생이 많다』, 『토끼야, 용궁에 벼슬 가자』, 『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 『춘향이를 누가 말려』, 『옹고집이 기가 막혀』를 포함한 많은 작품이 있다.
어렸을 때 아버지와 큰형, 아우의 죽음은 이청준을 문학의 길로 이끌었다. 벽촌이던 고향에서 광주로 고등학교를 진학하여 고향 사람들의 자랑거리였다. 법관이 될 거라는 기대를 뒤로 하고 그는 문학의 세계에 눈을 돌리고 독문학과에 진학했다. 우리 현대소설사에서 가장 지성적인 작가로 평가 받는 이청준은 그의 소설에서 정치·사회적인 메커니즘과 그 횡포에 대한 인간 정신의 대결 관계를 주로 형상화하였다. 특히 언어의 진실과 말의 자유에 대한 그의 집착은 이른바 언어사회학적 관심으로 심화되고 있다.
그의 소설들 중에는 영화화된 작품이 많은데, 1972년 정진우 감독의 ‘석화촌’을 시작으로, 세계적인 컬트 감독으로 추앙받는 김기영 감독의 ‘이어도’(1977), 맹인 목사 안요한의 일대기를 그린 이장호 감독의 ‘낮은 데로 임하소서’(1982), 국내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했던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1993)와 ‘축제’(1996), ‘천년학’(2006), 삶의 의미와 구원의 문제를 탐색케 하는 칸영화제 수상작인 이창동 감독의 ‘밀양’(2007), 그리고 2008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상영됐던 윤종찬 감독의 ‘나는 행복합니다’(2008) 등이 모두 이청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다.
또한 그는 동화쓰기에도 힘을 기울여 『할미꽃은 봄을 세는 술래란다』를 비롯하여, 판소리 다섯마당을 동화로 풀어 쓴 『놀부는 선생이 많다』『토끼야, 용궁에 벼슬 가자』『심청이는 빽이 든든하다』『춘향이를 누가 말려』『옹고집이 기가 막혀』를 집필하기도 했다. 동인문학상, 한국일보 창작문학상, 이상문학상, 중앙문예대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산문학상, 대산문학상, 제비꽃 서민 소설상 등을 수상했으며, 사후에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초기에는 상징적이고 관념적인 성격의 소설을 많이 썼으나 1980년대 접어들면서 보다 궁극적인 삶의 본질적 양상에 대한 소설적 규명에 나섰다. 2007년 폐암을 선고받고 항암치료 중 병세가 악화돼 입원치료를 받다 2008년 7월 31일 유명을 달리했다.
그림 : 이명애
대학에서 동양화를 공부하고,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다. 쓰고 그린 그림책으로 『10초』, 『플라스틱 섬』이 있고,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할아버지라면』, 『우리동네 택견 사부』, 『알류샨의 마법』 들에 그림을 그렸다.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2회, 나미 콩쿠르 은상 2회 선정되었고, BIB 황금패상 등을 받았다.
목 차
심청이 세상에 나온 사연
심청의 지극한 아버지 봉양
공양이 삼백 석과 바꾼 목숨
다시 살아난 심청, 왕비가 되다
뺑덕어미의 욕심은 끝이 없다
심봉사 버리고 달아난 뺑덕어미
홀로 길 떠나는 심봉사
심봉사, 심청을 만나 눈을 뜨다
작품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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