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가까운 옛날, 1960년대 강경에서
집집마다 아이들이 복닥거리던 시절, 아이들은 형제자매 틈에서 뒤엉켜 놀며 자라고 산으로 들판으로 장터로 활기차게 뛰어다닌다. 봄이면 민들레처럼 노란 병아리가 마당에서 삐악거리고, 여름이면 강 건너 외할아버지네 수박밭에서 수박이 달게 여물며, 가을이면 신나는 운동회, 겨울이면 썰매타기, 눈사람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주인공의 ‘옛날이야기’는 조곤조곤 이어진다. 물댄 논에서 우렁이를 잡고 들판의 송전탑에 기어오르며 놀던 기억, 동네 형이 아침마다 자전거로 배달해주던 고소한 산양 젖과 장터에서 팔던 달콤한 공갈빵, 노을 질 무렵이면 붉은 비단처럼 반짝이던 금강, 김장철 젓갈장수의 흥겨운 노랫가락과 겨울밤에 울려 퍼지던 고추감주 장수의 목소리…. 그리고 그 기억의 한복판에 사진을 찍는 아버지가 있다. 사진관에서, 또 마을 곳곳에서 사진을 찍고 컴컴한 암실에서 마술을 부리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졸졸 따라다니던 어린 아들이 있다.
그림책 작가 유애로, 아버지의 사진에 숨을 불어넣다
사진은 모두 강경의 사진가 유석영이 찍었다. 유석영은 일본 도쿄에서 사진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강경에 정착하여 1985년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사진관을 운영했다. 누나 등에 업힌 아기, 옹기종기 모여 앉은 정다운 오누이들, 땜통 자국 선명한 까까머리 소녀, 송전탑을 기어오르는 개구쟁이들, 수레바퀴살에 조르르 올라앉은 털실뭉치 같은 병아리. 땡볕 아래에서 무자위를 돌려 물을 퍼 올리는 농부, 수박을 베어 무는 노인, 강둑에서 풀을 뜯는 산양, 우람한 자태를 뽐내는 팽나무, 기마전이 한창인 운동회, 꽃단장을 한 화동, 고깃배들이 숨 고르는 나루터, 생선 말리는 포구, 눈사람을 만드는 아이들…. 이 책에서 처음 공개되는 유석영의 사진에는 1960년대 강경의 자연과 아이들, 평범한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이 오롯이 담겨 있다.
그 사진들을 토대로 중견 그림책 작가 유애로가 새롭게 이야기를 엮고 그림을 그렸다. 유석영의 딸이자 강경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작가는 특유의 다감하고 아기자기한 솜씨로 오래된 사진에 숨을 불어넣어, 그때 그곳의 이야기를 지금 우리 눈앞에서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만들어냈다.
어제의 아이와 오늘의 아이가 이야기를 나눈다―세대 간 이해를 돕는 그림책
뷰파인더를 내려다보며 찍는 이안(二眼) 리플렉스 카메라를 비롯하여 1960년에 쓰던 다양한 필름 카메라와 사진 관련 기술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사진을 현상하고 인화하는 암실 풍경이나 뾰족한 연필로 필름에 점을 찍으며 수작업으로 사진을 수정하는 모습, 흑백사진에 직접 색칠하여 컬러사진으로 만드는 과정도 흥미롭다.
휴대폰만 집어 들면 사진을 찍을 수 있고 하루에도 수십 장씩 사진을 찍고 지우는 시대에 작가는 사진을 찍으려면 사진관에 가야 했던 시절, 사진 한 장 한 장이 그리도 귀했던 시절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달라지지 않은 건 무엇일까. 작가는 말한다. “상구 아버지의 사진 속에 동네 사람들의 삶과 동네의 역사가 모두 담긴 셈”이라고. “사진을 찍고, 찍은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기쁘고 자랑스러웠던 일들, 행복했던 순간들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또 기념”했다고. 그리고 그 사진들을 통해 어제의 아이와 오늘의 아이가 소통하고 있다.
책장을 덮으면 이제껏 목소리로만 존재하던 어른이 된 상구가 우리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그 사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작가 소개
글 : 유애로
유애로는 자연과 놀이를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전개하는 그림 작가이다. 그녀는 출판미술협회 이사로서 여러 행사를 주최하면서 아이들이 캐릭터 상품처럼 구체적이고 아기자기하면서도 상상력의 여지를 남기는 주인공들을 좋아한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녀의 주인공들은 한결같다. 그녀에게 어린이 문화대상을 안긴 작품 『갯벌이 좋아요』에서부터 『쇠똥 구리구리』,『반짝반짝 반디각시』는 모두 자연과 곤충들을 그 대상으로 하고 있다.
유애로 작가는 자연을 통해 아이들이 상상력을 키우며 자라나기를 바란다. 또한 그녀는 최근 육아기를 편찬하여 지켜보되 참견하지 않는 그녀의 육아원칙으로 아이들을 기르는 법을 적어냈다. 도심 속에서 나물을 캐고 방아깨비를 쫓는 그녀의 동화처럼 자연과 가깝게 자라나는 아이들을 통해 『눈 이렇게 뜨지 않을께요』는 그녀의 두 딸, 단아와 소담이의 호기심과 재능을 그대로 담아냈을 뿐 아니라 그 재능을 키워내는 그림작가 유애로의 손길도 느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선생님의 꿈은 풀냄새 가득한 곳에 야생화와 예쁜 나무들과 곤충들과 이야기하며 지낼 수 있는 뜨락에 조그만 집을 짓고 좋은 그림책을 만들어 더 많은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 주는 거랍니다.
『으악,도깨비다!』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100권의 한국의 그림책전시와 일본 미야자키현 키조오 그림책 마을, 원화전시에 초대되었다. 그림책과 연계된 조형놀이와 창의력 키우기 프로그램 기획과 어린이 그림책 워크샵을 하고 있다.
사진 : 유석영
정읍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오리엔탈 사진학교를 졸업했다. 1941년 강경에 정착하여 전원사진관을 열었다. 전원사진관은 논산 지역에서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사진관으로 초상사진 전문 스튜디오다. 1985년 타계할 때까지 강경에 거주하면서 강경 일대 초·중·고교의 앨범을 제작하고 각종 예식 사진 등을 촬영하며 지역 사람들의 일상과 희로애락을 사진으로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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