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우리는 관용 사회에 살고 있는가?
최근 한국 사회는 예기치 못했던 예멘 난민 사태와 함께 헌법재판소의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복무 판결을 둘러싸고 다양한 의견이 충돌하고 있다. 갑작스런 난민의 출현은 보편적 인권과 현실적, 잠재적 불안 요인이 대립하는 모습으로, 또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대체복무는 표면적으로 국방의 의무와 양심의 자유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그 밖에도 젠더, 외국인 노동자, 탈북자, 성적 소수자, 종교 등의 사안에서 서로의 견해가 엇갈리고, 때로는 상대의 주장은 물론 존재 자체를 아예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하나의 사안에 다양한 의견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직 한국 사회에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중받는 모습은 쉽사리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기존의 사회적 통념이나 지배적인 질서, 권력자나 기득권을 불편하게 하는 의견이나 주장은 ‘이단’처럼 취급되고 불온시 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인간이 만들어낸 모든 생각과 제도, 사상, 종교는 처음에는 모두 이단이었고 소수 의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다른 의견이나 사상을 용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불관용을 선동하는 주장들이 거리낌 없이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아직도 한국은 관용 사회가 아닌 것이다. 관용이란 불편하고 귀에 거슬릴지라도 폭력이 수반되지 않으면 나와 다른 생각, 의견, 사상, 종교, 정치, 양심을 존중하는 것이다.
역사에서 잊혀진 인물, 카스텔리오
이 책은 16세기 초 프랑스에서 태어난 카스텔리오의 삶과 사상을 통해 근대 서양의 역사에서 관용의 정신이 어떻게 탄생했는가를 탐구하는 저작이다. 유럽 대륙에서 종교개혁의 불길이 막 일기 시작한 시점에 태어난 카스텔리오는 평생을 불의에 저항하는 용기 있고 양식 있는 인문주의자로, 또 뛰어난 신학자로서 성서 번역을 비롯해 이단과 관용에 관한 많은 저작은 남겼다. 그렇지만 그는 철저하게 역사에서 잊혀졌다. 그의 맞수였던 칼뱅은 종교개혁을 이끈 인물로, 또 개신교 신앙의 아버지로 오늘날에도 널리 추앙받고 있지만 그에 맞서 양심의 자유를 옹호하고, 관용을 부르짖었던 카스텔리오는 그 존재조차도 희미하다. 실제로 그의 초상은 한 장밖에 남아 있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그는 서양의 역사에서 관용의 이념이 근대 민주주의 사회의 보편적 가치로 뿌리 내리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양심적이면서 실천적인 인문주의자 카스텔리오의 전기
이 책에서는 주인공의 삶을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연대기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카스텔리오의 학문적 배경, 평생 맞수가 된 칼뱅과의 만남, 제네바에서 교육자로서의 활동, 성서 해석과 학문 활동 과정에서 칼뱅과의 갈등, 성서 번역을 비롯한 저서의 출판, 결정적으로 세르베투스 사건으로 인한 갈등의 격화와 논쟁 등을 사료에 입각해 사실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다른 생각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정신적 독재자이자 광신적인 주지주의자”였던 칼뱅과 그에 맞서 “관용과 양심의 자유를 부르짖은” 카스텔리오를 대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두 인물을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만든다.
칼뱅과 카스텔리오의 대결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의견 말고는 모든 의견을 억압하려는 편협한 광신주의”와 “이 세상의 온갖 적대심을 해결할 수 있는 관용”의 대립, 양심과 생각의 자유를 억압하는 독선적인 체제의 폭압성이다. 카스텔리오에 대한 칼뱅의 공격은 전방위적이었다. 카스텔리오의 성서 번역은 칼뱅의 검열로 발간이 어려웠으며, 글을 쓰거나 대학에서 강의도 할 수 없었다. 그로 인해 생계수단마저 봉쇄당해 끼니를 잇기 힘들 만큼 궁핍한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스텔리오는 끝까지 관용의 이념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관용이야말로 신의 참된 뜻이며, 그것이야말로 인류를 야만성에서 구할 수 있는 길이라고 보았다.
후대의 유명한 전기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감히 카스텔리오를 에밀 졸라나 볼테르, 로크, 흄 같은 인물들과 함부로 비교하려 들지 말라. 이러한 비교는 카스텔리오가 한 행위의 도덕적인 높이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고 하였다.
카스텔리오의 실천적 관용론
칼뱅과 카스텔리오가 결정적으로 부딪히게 되는 지점은 세르베투스 사건이다. 스페인 출신의 재기 넘치는 젊은 신학자인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설을 부정함으로써 이단 판정을 받고 칼뱅에게 장악된 제네바 시의회에서 화형을 언도받는다. 볼테르의 표현에 따르면 “개신교 최초의 종교재판”으로 기록된 이 사건을 계기로 카스텔리오는 저 유명한 『이단은 박해받아야 하는가』(『이단론』)를 집필하여 칼뱅의 독선과 광신, 억압적 권력에 대항해 양심의 자유, 관용의 정신을 옹호하는 싸움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시작한다. 카스텔리오는 세르베투스의 주장을 옹호하거나 동조하는 입장이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세르베투스의 화형을 비판하며 칼뱅과의 싸움에 나섰던 이유는 단순명료했다. “한 인간을 죽이는 것은 절대로 교리를 옹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냥 한 인간을 살해한 것이다.”
카스텔리오의 관용론은 그의 『이단론』 속에 잘 표현되어 있다. “정통교리와 다른 주장을 하는 이들에 대한 박해는 자신만이 진리를 소유, 독점하고 있다고 오만에서 비롯되는 것이며, 따라서 그들에게 가하는 양심의 폭력적 침해를 멈추어야 한다. 다른 이들의 주장이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강요해서는 안 되며, 함부로 이단의 낙인을 찍어서도 안 된다.” 한마디로 모두에게 다른 의견을 가질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관용론은 중세 이후 근대 민주주의 사회를 떠받치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의 근간을 이루는 이념이 되었다고 하겠다.
치열한 논쟁의 기록
이 책은 칼뱅을 중심으로 한 제네바 교회의 목사들과 카스텔리오 사이에서 벌어진 논쟁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인 대목은 카스텔리오가 벌떼처럼 달려드는 논쟁자들에 맞서면서 온건하고 차분하게, 그러면서도 흠잡을 데 없이 설득력 있는 논리로 칼뱅 일파의 논리를 공박하는 부분이다. 오직 하나의 견해만을 진리라고 고집하거 다른 이들에게 강요하는 칼뱅에 맞서 카스텔리오는 이렇게 반박한다.
“자신만이 올바르다는 그런 오만에서 잔인함과 박해가 나온다. 진리를 소유 혹은 독점하고 있다는 확신은 그리스도마저 죽음에 이르게 하지 않았는가. 잘못된 확신은 이토록 위험한 것이다. … 양심을 강제하는 것을 멈추어라. 다른 의견을 가졌다고, 또 신앙을 이유로 사람을 죽이거나 박해하는 것도 그만두어라.”
작가 소개
저 : 데무라 아키라
出村彰
1933년 일본 센다이 출생. 도쿄신학대학과 같은 대학원을 졸업하였으며, 미국 프린스턴 신학대학과 스위스 바젤 대학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공은 종교개혁사와 그리스도교사. 지은 책으로는 『중세그리스도교의 역사』 『스위스 종교개혁사 연구』 『종교개혁 논집』 『제세례파』 등이 있다. 일본 도후쿠가쿠인대학 교수를 역임했으며, 일본종교학회상(1972)을 수상했다.
역 : 이문수
서강대 종교학과를 졸업하였으며, 여러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했다. 옮긴 책으로 『이슬람 환상세계』 『인도 만다라대륙』 『도교의 신들』 『천천히가 좋아요』 등이 있다.
목 차
머리말
1장 양심을 위한 투쟁
카스텔리오의 출생과 성장/제네바에서/바젤 시대
2장 삼위일체론을 둘러싼 논란
세르베투스 사건/삼위일체의 성립/세르베투스 재판
3장 길고 먼 길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카스텔리오와 브렌츠/관용론의 내실과 근거
4장 | 신앙과 양심의 자유를 위하여
모든 논쟁의 결론 : 관용
지은이 후기/카스텔리오 연보/인명 해설/찾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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