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수상한 일상 -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아이
새 집으로 이사 온 날. 북어 한 마리 현관문 위에 매달고 가신 할머니. 두 다리 뻗고 주무신대요. 귀신 걱정 도둑 걱정 안 하신대요.
부릅뜬 북어의 눈이 감시 카메라라도 되는 걸까요? 귀신이나 도둑이 들어오면 뾰족한 머리로 박치기라도 하는 걸까요? 그것도 아님 둘둘 감고 있는 저 실타래 속에 무전기라도 숨기고 있는 걸까요.
도대체 정체가 뭘까요? 아무래도 수상쩍은 북어 한 마리. 내 눈치 살피느라 감지도 못하는 저 눈. 시치미 떼느라 먼 산만 바라보는 저 눈 좀 보세요.
_ 「수상한 북어」 전문
어린이의 시선으로 맑고 따뜻한 세상을 그려 온 강지인 시인의 새 동시집. 시인의 전작 『할머니 무릎 펴지는 날』은 ‘따뜻함을 재발견한 동시집’이었다. 아이를 둘러싼 세상은 넉넉하고, 이해하고, 도와주고, 나누는 따뜻함으로 가득했으며 그 중심에는 할머니에서 엄마로, 엄마에서 ‘나’에게로 이어지는 모성이 있었다. 교과서에 수록된 동시 「꼬물락꼬물락」에 그려진 세상 또한, 한없이 따뜻하여 아이가 안심하고 “꼬물락”거릴 수 있는 세상이었다. 그런 시인이 『수상한 북어』에서는 조금 다른 세상을 펼쳐 보인다. 강지인 동시 특유의 따스함은 여전히 배여 있지만, 이번 동시집에서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때때로 매우 “수상쩍은” 곳으로 드러난다. 아이는 일상에 의문을 품기 시작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거푸 던지기 시작한다. “생각이 몸을 움직이는지 몸이 생각을 움직이는지” 궁금하고(「뱀」), “땅 위 세상”을 궁금해하며(「지렁이」), “우리 삼 형제 말썽 피우면/ 맏이인 나만 꿀밤 맞는 이유”를 찾고 싶어 하는 것이다(「그런 거였구나!」). “아무래도 수상쩍은 북어 한 마리”는 “감시 카메라”, “무전기” 등 다양한 존재로 탈바꿈하며(「수상한 북어」), 의심하고 질문을 던지도록 아이를 유혹한다. 차이를 인식하고 그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것, 세상에 내포된 수많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은 아이가 자신 앞에 펼쳐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힘을 기르는, 건강한 성장의 시작이다. 그리고 아이가 발견할 가능성 가운데 너무 위험하고 어두운 가능성은 조심스레 미리 걷어 내어 주는 따뜻함, 이것이야말로 강지인 시인이 이번 동시집에서 새롭게 닦아 놓은 길이라 할 것이다.
아이들의 ‘몸’과 ‘생각’이 똘똘 뭉쳐 변화하는 순간들
‘수상한 일상’이라는 공간을 구축한 시인은 그곳에서 아이들이 매 순간 겪는 변화와 성장의 순간 또한 포착했다. “그 아이”를 생각하며 “품고 있던 말들이” 마침내 새 한 마리로 부화하여 날아가는 순간은(「말의 부화」) 자신의 세상에 마침내 다른 사람을 들여 놓는 경이로운 변화의 광경이며, "두두두/ 다다다" 이리 튀고 저리 튀다가 좋아하는 친구 집에선 "톡!/ 톡!" 수줍게 접시에 떨어지는 「수박씨」 소리는 시인의 귀로 감별해 낸 성장음(音)이라 할 수 있다. 작은 잎이 떨어지는 소리와 조금 큰 잎이 떨어지는 소리의 차이마저 분간하는 예리한 감각은(「바스락 장난」) 일상 속에 흩어져 있는 작은 변화의 단서들을 그러모으기에 충분하다. 그리하여 시인은 ‘언제 이렇게 컸지?’라는 우리 질문에 대한 답을 기꺼이 내어 준다. 티셔츠를 벗느라 “두 팔을 활짝/ 만세!”(「만세」)하는 순간, 실컷 뛰어놀다가 “길어진 그림자”를 “이불처럼 돌돌 말고” 자는 동안(「그림자 말기」), 그리고 귤이 “미더덕처럼// 밍밍하게 터”질 때까지 귤을 만지작거리는 동안에도 아이들은 온 힘을 다해 자라나고 있다.
이거나 먹어 이거 먹고
요맨큼만 더 커
싫어 싫다니까 다 컸다니까
꽈배기처럼 비비 꼬인 길도
똑바로 갈 수 있으니까
자전거 사 줘
자전거 타고
꽈배기보다 더 맛있는 거
먹으러 갈 거야
_ 「꽈배기 말고」 부분
자전거는 좀 더 크면 타라며 자꾸만 꽈배기를 권하는 할머니에게 “자전거 타고/ 꽈배기보다 더 맛있는” 것을 내가 직접 사 먹겠다는 아이의 외침(「꽈배기 말고」)은 영민하고도 통쾌하다. “나는 더 이상 엄마 아빠에게/ 매달려 있지 않기로 했”다며 “빛나는 달의 눈동자”로의 변화를 다짐하는 말(「단추」)은, 언젠가는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을 일찌감치 통과하는 아이의 건강하고 성숙한 목소리이기도 하다. 이처럼 강지인 시인이 펼쳐 보이는 아이들의 성장은 비단 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몸속에는 생각이, 생각 속에는 몸이 똘똘 뭉쳐”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생각이 몸을 움직이”고, 때로는 “몸이 생각을 움직”이는(「뱀」) 광경이 편편이 펼쳐지는 이 동시집은 동시 밖 어린이 독자들의 몸과 생각도 튼튼하게 살찌워 줄 것이다.
“내 꿈은 내가 지킬게” - 주체적인 아이들의 통쾌한 목소리
반짝, 엄마에게 매달려 있었네
반짝, 아빠에게 매달려 있었네
엄마는 그런 나를 친구들에게
아빠는 그런 나를 친척들에게
반짝반짝 자랑했지만,
나는 밤마다 무서웠네
엄마 아빠가 잠든 밤이면
내 꿈이 실밥 터진 단추처럼
툭, 떨어질까 떼구르르
달아날까 봐
나는 더 이상 엄마 아빠에게
매달려 있지 않기로 했네
단추보다 빛나는
달의 눈동자가 되어
똘망똘망
내 꿈을 지키기로 했네
_ 「단추」 전문
아이들을 응원해야 할 어른의 ‘보호’는 때때로 날 선 ‘통제’가 되어 아이들이 뛰어가야 할 길을 가로막기도 한다. “엄마의 눈치를 살피느라” 머리에 더듬이가 돋아난 아이(「더듬이」), “내 꿈이 실밥 터진 단추처럼” “떼구르르/ 달아날까 봐” “밤마다 무서웠”다고 말하는 아이(「단추」)의 모습으로 엿보이는 현실이다. 그러나 시인은 위축된 아이들을 결코 현실 속에 그대로 남겨 두지 않는다. “화가 나서/ 머리에 싹이” 나고 “감자 눈”처럼 마음에 “독을 품”은(「감자」) 아이들의 당찬 목소리까지 대담하게 옮겨 담았다. 『할머니 무릎 펴지는 날』에서 할머니와 엄마의 목소리를 빌려 아이들을 따뜻하게 품었던 시인은 이제 착하고 순하기만 해야 한다는 강압적 시선에 몰려 있는 아이들을 마땅히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보고, 진정으로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이다.
“끝으로 권태응 시인의 「땅감나무」 시구인 “키가 너무 높으면/ 아기들 올라가다 떨어질까 봐”가 연상되는, 이번 동시집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 중의 하나인 「눈사람의 생일」을 옮긴다. “눈이 다치면 아이들이/ 울까 봐” “하늘이/ 살짝 키를 낮추”었다고 말하는 시인의 따스한 눈빛에서 와글와글 동시가 태어난다.”
_ 유강희(시인)
시와 그림의 여백 위의 뛰노는 아이들
『수상한 북어』의 그림은, 익살맞고 다채로운 표정을 너무도 사랑스럽게 그려 내는 화가 김재희가 맡았다. 매번 글에 꼭 들어맞는 장면을 연출해 내는 김재희 화가는 이번에도 개성이 또렷한, 살아 있는 표정을 아이들의 목소리 위에 입힘으로써 강지인 동시와 결을 같이하였다. 덕분에 동시 안팎의 아이들이 마음껏 상상을 펼치며 뛰놀 자리가 넉넉한 동시집이 탄생했다.
작가 소개
글 : 강지인
2004년 아동문예 동시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2007년 황금펜 아동문학상을 받았다. 경기문화재단, 대산문화재단에서 창작 지원금을 받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동시집 「할머니 무릎 펴지는 날」,「잠꼬대하는 축구장」이 있으며 초등학교 교과서에 「꼬물락꼬물락」이 실려 있다.
그림 : 김재희
성균관대학교 의상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HILLS)에서 일러스트레이션을 공부했습니다. 지은 책으로 그림책 『삼촌이 왔다』가 있고, 『천 원은 너무해!』 『초등학생 이너구』 『숙제 해 간 날』 『토끼는 화장품을 미워해』 등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목 차
그런 거였구나! / 마술 / 정반대 / 미운 오리 새끼 / 수박씨 /
복숭아씨 / 꽈배기 말고 / 엄마표 주먹밥 / 뚝배기 / 꼬깔콘 / 수상한 북어
제2부 : 저게 진짜 내 똥인가
나뭇잎 / 구름 간다 / 오리와 연못 / 개구리 / 할미꽃 / 우산 /
침이 고인다 / 새순 / 거미가 짓는 밥 / 눈사람도 똥을 눌까?
제3부 : 돌돌 말아 둔 그림자
감자 / 더듬이 / 왜 그랬냐면 / 귤 하나 /
곰팡이 나기 전에 / 안 돼! / 그림자 말기 / 단추 / 만세
제4부 : 생각이 돌돌 똬리를 틀면
뱀 / 지렁이 / 그럴지도 몰라 / 말의 부화 /
시골 버스 / 빨갛다 / 받아쓰기 / 파도 / 뿌리의 부탁
제5부 : 작은 잎은 톡, 큰 잎은 툭
틀니 / 다행이다 / 바스락 장난 / 오르락내리락 /
묵찌빠 / 딱 고만큼 / 감나무 / 조각보 / 눈사람의 생일
해설 - 유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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