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출생에서 죽음까지, 인간 전봉준에 대한 새로운 사실들을 밝히다!
올해 2018년 4월 24일, 한말(韓末) 전옥서 터인 종로네거리 영풍문고 앞에 한 인물의 동상 제막식이 열렸다. 123년 전인 1895년 바로 이날 여기서 교수형을 당한 녹두장군 전봉준(全琫準)의 한 맺힌 듯 앉아있는 모습의 동상이다.
1894년의 동학농민혁명과 그 지도자 전봉준의 이름은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려있고, 「새야새야 파랑새야」란 민요로도 널리 불려왔지만, 정작 인간 전봉준의 실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가 어디서 태어났고, 어떤 유소년‧청년 시절을 보냈으며, 누구와 사귀면서 어떤 생각들을 키워왔는지, 그리고 왜 ‘동학’이란 종교에 가입했고, 동학농민혁명이란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어떻게 지도자로 활약하고 삶을 마감했는지 등등…. 많은 것들이 미스터리였다.
동학농민혁명의 실패 이후, 대한제국과 국권 상실기에 동학은 계속 탄압 당했고.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국사교과서의 공식 용어는 ‘동학란’에 머물렀었다. 1990년대 동학농민혁명 100주년을 앞두고서야 동학농민군의 재평가와 명예회복사업이 시작되었고, 관련 지역들에서 기념사업회가 조직되어 활동을 시작하였다. 농민군 유족들이 모여서 동학농민혁명유족회가 결성되었으며 농민혁명을 전공하는 학자들과 향토사 연구자들의 연구도 확대되었다.
그 당시 향토사 연구자인 이기화 고창문화원장이 「전봉준은 고창 당촌 태생」이라는 글을 발표했는데, 언론에서도 널리 관심을 가져 보도한 이 글의 근거가 된 것이 새로 발견된 전봉준의 족보였다. 구체적으로 1886년(병술년)에 천안전씨 문중에서 간행한 <천안전씨세보 병술보(天安全氏世譜 丙戌譜)>였다. 이기화 원장은 이 족보의 소유자인 고(故) 전성태(全聖泰)씨에게 족보를 빌려서 우선 검토한 내용을 글로 발표한 것이다. 그리고 전성태 씨는 이 책의 저자 송정수 교수의 외가쪽 삼촌이다.
이 인연으로 송정수 교수는 20여 년간 전봉준 장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는 일련의 실증 연구를 해왔다. 이 작업은 전봉준의 족보를 분석해서 처음으로 외가와 진외가 등 인척을 밝혀낸 연구가 중심이 되었다. 지역 현지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이뤄내지 못할 연구이고, 본인 스스로도 전봉준 장군과 인척이 되는 송 교수만이 할 수 있는 연구이다. 이제 이 연구 성과물들을 엮어서 한 권의 저서로 펴내게 되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새롭게 밝힌 주요 내용들을 살펴보자.
<병술보>에 의거한 바, 전봉준은 전병호라는 이름으로 족보에 올라있고. 1855년 12월 3일에 태어나서 1895년 4월 24일에 순국하였다. 길지 않은 생애였지만 수십만 동학농민군의 무장봉기를 촉발하고, 전국에 걸친 대일(對日) 항전을 선도했던 시대의 지도자였다. 또한 붙잡힌 뒤에도 비굴하거나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당당하게 죽음을 맞이한 지사였다.
우선 전봉준의 실제 출생지를 추적한 바, 고창군 고창읍 죽림리 당촌으로 밝혀졌다. 이는 현재 공식적으로 인정되어 고창군 당촌마을 63번지에 ‘전봉준 장군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또한 종래 전봉준은 천안전씨 삼재공파(三宰公派) 40대 손(孫)으로 잘못 알려져 왔었는데, <병술보>에 근거하면 천안전씨 문효공파(文孝公派)의 지파인 송암공(松庵公, 五常) 손(孫)파임이 밝혀졌다. 전봉준의 부친은 이름이 기창, 자는 인서, 초명은 기영이며, 순조 정해년(1827) 8월 20일에 태어났고, 모친은 언양김씨 김환(金煥)의 딸로, 1821년생임도 밝혔다.
또 전봉준의 사별한 첫 아내는 여산송씨 송두옥의 딸이며. 재혼한 아내는 남평이씨 이문기의 딸인바, 슬하에 두 딸과 두 아들을 각각 두었다.
전봉준은 유년시절부터 가난한 생활 등의 이유로 여러 지역을 전전했는데, 출생지인 고창 당촌마을을 떠나, 현재 정읍시 고부의 신중마을을 거쳐, 김제시 계룡리 황새마을에서 살다가 다시 정읍시 산외면 동곡리, 정읍시 산내면 소금실마을, 정읍시 이평면 조소마을들을 오랜 기간 유랑하다시피 옮겨 다니며 거주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 과정에서 나중에 같이 동학농민군 지도자로 활동한 김개남, 김덕명 등과 친분을 쌓고 계속 교류하였던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1890년 전후 동학에 입도하면서 손화중과도 친분을 쌓아 이미 농민군 주요 지도자들과는 오랜 기간 굳건한 신뢰관계를 형성해왔고, 이것이 농민군 지도부의 급박한 구성 때 큰 힘을 발휘하였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끝자락, 일본군 및 관군과의 전투에서 패퇴한 뒤 순창군 피로리에서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잡힌 전봉준이 서울로 압송되는 경로와 재판과정, 그의 죽음이 참형이 아닌 교수형이었다는 점 등도 관련 자료를 세밀하게 비교하여 확인하였다. 아울러, 기존에 전봉준 장군의 시신과 묘소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 주목받은 정읍시 옹동면 수암마을의 ‘장군천안전공지묘’란 묘소가 바로 전봉준 장군의 묘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여러 증언과 자료들을 동원하여 설득력 있게 주장하고 있다.
사실 전봉준과 동학농민혁명을 넓은 시각에서 연구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이고 방대한 실증들이 필요하다. 우선 역대 천안전씨 선조들이 살아온 마을을 찾아낼 필요가 있고, 함께 살아온 일가친척들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군현 단위의 통제된 사회에 살면서 일가친척은 결속력의 배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봉준이 평생 거주했던 마을을 상세히 조사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봉준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생사를 같이한 수천 명의 동학농민군은 지역과 인척, 친분과 이상 등 여러 관계로 묶여진 집단이었다. 이런 집단을 찾는 연구를 족보에서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들을 하나하나 발로 뛰며 확인해 간 작업들이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러한 연구는 현지 사정을 자세히 알지 못하면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연구다. 전봉준과 인척이 되는 송 교수만 할 수 있는 연구이기도 하다. 전봉준의 유동생활을 전해주는 지명은 외지인이 알기 어렵다. 고부‧고창‧태인‧정읍‧김제‧부안 일대에 세거해온 성씨들이나 지역의 여러 사정을 파악하고 있어야하는데, 본인이 부안 출신이자 가까운 일가들이 이들 지역에 살고 있는 저자이기에 가능한 내용들이어서 더 돋보이는 연구이다.
순국 123년을 맞아 올해 4월 종로 네거리에 건립된 전봉준 장군의 동상은 한국사 속에서 전봉준 장군과 동학농민혁명이 바르게 평가되고, 제 위치를 찾게 된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책은 기존에 전해지지 못하고 베일에 싸였던 전봉준 장군의 일생과 실제 상을 복원하는 데 큰 발걸음을 내딛는 작업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작가 소개
저 : 송정수
宋正洙
연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사학과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음. 현재 전북대학교 역사교육과 교수로 재직 중임. 대표 논저로 『중국근세향촌사회사연구』(혜안, 1997), 『중국 정사 외국전이 그리는 ‘세계’들』(공저, 역사공간, 2016), 「청 중기 왕륜의 청수교 반란과 청조의 대응」(『명청사연구』 30, 2008), 「청 중기 이후 ‘반청복명’의식의 전승과 굴절」(『동양사학연구』 108, 2009), 「전봉준의 가계와 출생지에 대한 연구」(『조선시대사학보』 12집, 2000) 등이 있음. 명청사학회, 동양사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현재 명청사학회, 동양사학회, 역사학회 평의원임.
목 차
머리말|전봉준 장군을 새롭게 만나게 된 여정
1부 『병술보』의 발견 경위와 내용 검토
1. 『병술보』의 발견과 그 진위 여부
1) 『병술보』의 발견 경위와 그 의의
2) 『병술보』의 진위 여부
2. 전병호와 전봉준 장군의 동일인 여부
2부 전봉준 장군의 출생지와 가계
1. 전봉준 장군의 출생지
1) 기존의 출생지 제설에 대한 검토
2) 『병술보』를 통해 본 고창 당촌 출생설 검토
2. 전봉준 장군의 가문과 가계 및 그의 신상
1) 가문과 가계
2) 신상에 관한 내용
3) 외가와 진외가, 증외가에 관해서
3부 전봉준 장군의 유동생활과 그가 만난 동지들
1. 전봉준 장군의 유동생활
2. 전봉준 장군이 만난 동지들
1) 유·소년기에 만난 사람들
2) 청·장년기의 인적 교유
4부 전봉준 장군의 피체와 죽음
1. 농민군의 패퇴와 전봉준 장군의 피체
2. 전봉준 장군의 죽음
5부 전봉준 장군이 묻힌 곳
1. ‘장군천안전공지묘’라는 묘비의 발견과 초기 조사 내용에 대한 검토
1) 묘비의 발견 경위와 초기 조사 내용
2) 조사 내용에 대한 검토
2. ‘장군천안전공지묘’의 주인공이 전봉준 장군일 가능성
3. 조사·발굴 과정과 결과에 대한 문제점
맺음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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