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아이를 낳고서야 알았다
세상이 이 모양이라는 걸
좋은 엄마가 될 줄 알았는데…
어려서부터 아이를 좋아해 아이 없는 결혼은 생각해본 적 없던 10년 차 기자 임아영.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는 게 ‘당연히’ 가능한 줄 알았던 그는 임신, 출산, 육아와 함께 자신이 얼마나 순진한 생각을 했던 것인지 깨닫는다. 강하게 작동하는 가부장제 안에서 ‘나만 그렇게 살지 않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은 결혼 후 시가에 간 첫 명절에 처참히 무너지고, 두 아들을 성역할에 갇히지 않으며 기꺼이 약자의 입장에 서는 건강한 시민으로 키우는 일은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면서부터 ‘내 마음처럼 되지 않을 것’임을 직감한다.
두 아들을 낳고 기르며 ‘기자’라는 일과 ‘엄마’라는 역할 사이에서 수없이 갈등하는 ‘워킹맘’ 임아영의 이야기에는 한국에서 일하는 여성이 아이를 낳고 기르며 마주하는 부당함과 모순들이 낱낱이 담겨 있다. 같은 회사의 입사 동기인 남편의 존재는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달라지는 여성의 삶을 더욱 뚜렷하게 대비시킨다. 그러나 그는 ‘워킹맘’으로 사는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하고 한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많은 부모들이 독박육아와 장시간 노동으로 지쳐가는 현실에서 보다 나은 육아를 위한 해법을 모색하는 일을 시작한다.
아이를 낳고서야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1982년생인 임아영은 어려서부터 ‘남자처럼 잘할 수 있다’ ‘여자도 남자처럼 공부하고 일할 수 있다’고 배웠다. 그는 그것이 우리 사회가 진보한 결과이리라 믿었다. 여성이 밖으로 나간 만큼 남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는 사실에는 모두가 입을 다물고 있었음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임아영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여성으로 산다는 게 정확히 어떤 부당함과 모순을 마주하는 일인지 크게 체감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며 100여 곳에 서류를 넣을 때도 ‘회사는 여자를 싫어하는구나’ 하고 막연히 느낄 뿐이었다.
그 막연함은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구체화된 곤란과 괴로움으로 체감되기 시작한다. 임신한 몸은 참기 힘들 만큼의 졸음과 잦은 배뇨욕 등의 증상을 나타내고 몸은 점점 더 무거워져 새우 자세를 취해야 겨우 잠들 수 있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임신한 티 낸다’는 말을 들을까 봐 노심초사하며 ‘임신한 여직원’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누구보다 열심히 일한다. 그러다 결국 하혈을 하고, 그 뒤로는 혹시라도 아이가 잘못될까 스스로 움츠러들기 시작한다. 회사에서는 ‘2등 사원’으로 낙인찍히지 않기 위해 임신 중에도 이전과 똑같이, 아니 오히려 무리를 해서라도 더 일하려 애쓰지만, 만약 아이가 잘못되기라도 하면 모든 게 ‘욕심 많은 워킹맘’인 자신의 탓이 되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막연한 분노가 쌓여간다.
내 몸이 여성의 몸이라는 이유로 아이를 낳기까지 동반되는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온전히 홀로 감내하지만 사회는 아이를 가진 여성의 몸에 ‘희생하는 모성’ 외의 의미를 부여한 적이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이 더해졌을 때, 임아영은 이 사회가 여성의 생물학적 특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한 적이 없었음을, 그러한 사회에서 자신도 늘 ‘남자’라는 기준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음을 깨닫는다.
아이를 낳기 전까지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배반하며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임아영의 고백에는 ‘그래도 세상이 달라졌다’고 믿었던 낙관이 결혼과 임신, 출산, 육아를 거치며 비관으로 변하고야 마는 많은 여성들의 현실이 담겨 있다.
남편이 아니라 친정엄마와 아이를 기른다
― 또 다른 엄마를 착취해야 살 수 있는 엄마
‘난 엄마 같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엄마를 보면서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러고는 이내 고개를 젓는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자식에게 모든 걸 내어주는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내 이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았다. 지금도 똑같다. 내 인생을 자식에게 전부 줘버리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서도 내 일상은 엄마의 인생을 착취해야만 굴러간다. 그게 내 딜레마이고 죄책감이다. 나는 독립적인 여성으로, 오롯한 개인으로 일하는 삶을 유지하고 싶지만 그런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일평생 나와 동생을 위해 자신의 온 시간을 나눠 준 엄마를 착취해야 한다.
_또 다른 엄마를 착취해야 살 수 있는 엄마, 113~114쪽
‘애 보느니 파밭 매겠다’는 옛말이 있다. 어린아이를 돌보는 일이 워낙 체력전이라는 얘기일 것이다. 그런 체력전에 지금 수많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투입되고 있다. ‘할마’ ‘할빠’란 신조어의 탄생은 맞벌이하는 자녀 대신 손주를 돌보는 조부모가 얼마나 많은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임아영 또한 자신의 일을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친정엄마의 손을 빌린다. 아이를 누가 봐주느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친정엄마요”라고 대답할 때마다 이제 60대에 접어든 엄마의 성하지 않은 무릎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끼지만, ‘워킹맘’들 사이에서 ‘친정엄마가 백업해주는 엄마’는 부러움을 산다.
독박육아가 초래하는 이토록 모순적인 상황에서 남성들은 여전히 육아의 구경꾼으로 자리한다. 육아를 여성의 일로 여기는 구시대적인 관념도 없지야 않겠지만 임아영이 생각하는 보다 실제적인 원인은 다른 데 있다. 회사에 너무 오래 있기 때문이다. 가사와 육아를 여성의 일로 떠넘기고 OECD 회원국 중 최장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아이는 엄마, 아빠가 아니라 엄마와 할머니, 또는 보육교사와 할머니의 손에서 자란다.
‘일-가정 양립’을 향한 의문
가정이 더 중요하지 않은가요?
저출산은 장기적 문제로 접어들었다. 웬만한 정책으로는 출산율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임아영은 저출산의 원인에 노동, 주거, 보육, 교육, 인권까지 우리 삶의 전반적인 문제가 엮여 있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을 정도라고 말한다.
비혼과 비출산은 더 이상 개인의 가치관에 따른 파격적인 선택이 아니라 사회문제로 인한 인과적인 현상으로 여겨진다. 임아영 또한 결혼, 임신, 출산, 그리고 육아를 경험하며 ‘사회적 해법’에 대한 고민을 놓지 않았다. 그는 이러한 구조를 그대로 둔 채 개인이 치열하게 적응해 살아남을 게 아니라, 힘들고 더디더라도 구조를 바꾸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우리의 아이들이 지금과 똑같은 고민을 반복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임아영이 생각하는 해법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여성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부모가 아이를 돌볼 시간을 확보할 수 있고, 가사와 돌봄이 여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인식이 바뀌어야 남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 두 가지가 뒷받침되지 않고서는 독박육아, 여성의 경력단절, 저출산 그 어느 문제도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생각이다. 그러므로 그는 일상의 정치에 참여한다. 아이의 유치원 운영위원회부터 ‘엄마 정치’를 내세운 비영리 단체 ‘정치하는엄마들’까지.
일과 아이 사이에서 하루에도 몇 번씩 갈등하고 노심초사하는 엄마들, 가사와 육아의 전문성을 더 많이 요구받으면서도 ‘논다’는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한 엄마들, 독박육아와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다 기어이 일을 포기한 엄마들… 임아영은 그들 모두에게서 자신을 발견해내며 그 어느 순간에도 절대 놓지 않았던 무기인 펜으로 엄마이자 기자인 자신의 이야기를 끊임없이 이어간다.
아이는 자라서 사회가 된다
― 우리 모두의 아이를 기르는 일
임아영은 우리의 아이들이 자라 ‘다음 세대’가 될 것임을 강조한다. 그가 생각하는 육아는 건강한 시민을 길러내는 사회적 책임이기도 하다. 무한 경쟁의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생존시키려는 부모들의 몸부림을 비난할 수는 없다. 다만 임아영의 불안은 ‘아이가 경쟁에서 지면 어쩌나’ 하는 쪽보다 ‘아이가 좋은 시민으로 자라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쪽에 더 가깝다.
아이를 낳고서 마주한 현실에 분노하며 자신이 겪은 부당함과 모순의 구조적 원인을 파헤칠 때는 한없이 날카롭기만 했던 그의 펜이, 두 아들과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는 부드러운 색색의 연필로 바뀌기도 한다.
“엄마 주머니에 하트가 있어.”
대뜸 그런 말을 하기에 “응?” 하고 주머니를 살폈더니 그 작은 엄지와 검지로 내 주머니 속에서 하트를 만들고 있었다. 아, 남편보다 로맨틱한 아들.
_아이라는 우주가 찾아왔을 때… 사랑받는 건 오히려 나였다, 301쪽
두 아들의 엄마로서 좀 더 예민하게 고민하는 지점들도 있다. 그는 아이가 저지르거나 당하는 작은 폭력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어릴 때부터 ‘집안일 지능’을 길러주려 하고, 남자도 치마를 입을 수 있다고, 또 울고 싶을 때 우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아이가 크고 작은 권력을 무기로 다른 사람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사람으로, 성별에 따라 고정된 삶을 살지 않는 사람으로 자라길 바라는 건 이 아이가 자라 다음 세대의 사회를 이루는 한 명의 ‘시민’이 되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라보는 초점이 ‘나’에서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첫 번째 경험. 아이는 우주였다. 아이를 낳는 건 내가 돌봐주고 보살펴야 하는 작은 존재가 생기는 게 아니라 크기를 짐작할 수 없는 우주가 찾아오는 일이었다.
_아이라는 우주가 찾아왔을 때… 사랑받는 건 오히려 나였다, 297쪽
하나의 우주가 찾아오는 삶의 거대한 전환을 경험하는 일, 육아. 임아영은 그 전환이 결코 ‘부모’ 개인에게만 한정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그것이 아이를 낳고서야 깨달은 현실에 분노하면서도 그 분노를 동력으로 삼아 지금의 사회를 사는 한 시민으로서, 엄마로서, 그리고 임아영 자신으로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이유다. ‘속았다’고, ‘내가 순진했다’고 과거의 자신을 탓하는 엄마들의 하소연에 담긴 진실을, 이제 우리는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임아영
1982년에 태어나 거의 서울에서만 살았다.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일한 지 10년, 결혼한 지 7년, 첫째를 낳은 지 5년 8개월이 됐다. 아들 둘의 엄마로 전일 임금노동을 하는 ‘워킹맘’이다.
좋아하는 일이 글쓰기라 기자가 됐고, 아이를 낳고서는 답답함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 글쓰기뿐이라 일기를 썼다. 육아휴직 중에도 남편이 퇴근하면, 아이가 잠들면, 친정엄마가 와주시면 일기를 썼다. 그 일기를 ‘경향신문 부부기자가 사는 법’ 블로그에 ‘기특일기’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이 책을 썼다. 현재는 4주에 한 번씩 〈경향신문〉 토요판에 ‘임아영 기자의 폭풍육아’라는 칼럼을 연재 중이다.
가사와 육아 같은 돌봄노동이 ‘여성의 역할’이라고 믿는 신화와 싸워야 진정 평등한 세상이 온다고 믿으며 여성들이 밖으로 나온 만큼 남성들이 집 안으로 들어와야 남성들도 더 행복해진다고 믿는다. 한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일은 장시간 노동으로 지탱해온 한국식 자본주의와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가부장적 사회의 시선과 싸워야 하는 일이다. 그 이중 고통의 구조를 바꿔야 아이들이 행복해지고, 아이들이 행복해지는 만큼 우리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다.
육아는 고통스러웠지만 아이 눈짓 하나에 시름이 날아가기도 하는 일이었다. 남성들이 그런 기쁨을 누릴 수 있길, 여성들이 일과 육아 둘 다 하느라 가랑이가 찢어지지 않길, 딸이 안됐다는 마음에 무릎이 으스러지는 줄도 모르고 손주를 돌봐주는 할머니들이 자유를 누릴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글을 썼다.
목 차
프롤로그
1부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를 낳았을까
아이를 낳고서야 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했다
모성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당신은 편하잖아.” 남편은 어느새 타자
이럴 줄 알았으면 아이를 낳았을까
육아에는 모든 문제가 겹쳐 있다
2부 독박육아, 아웃!
엄마를 착취하는 독박육아
또 다른 엄마를 착취해야 살 수 있는 엄마
― 58년생 개띠 엄마의 고난과 독립하지 못하는 82년생 딸의 슬픔
독박육아에서 공동육아, 평등육아로
집안일 지능 기르기
남편과 아이들이 추억 만들 시간을 빼앗지 말아달라
100조 원을 쏟아부어도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
3부 회사에 다니지 않아도 워킹맘입니다
육아는 노는 일이 아니다
― 아이를 키우는데 ‘집에서 논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누가 엄마들의 죄책감을 부추기나
‘남의 편’을 바꿀 수 있을까
왜 여자들이 절반을 차지해야 하는가
워킹맘, 전업맘, 경단녀는 같은 이름이다
4부 아이는 자라서 사회가 된다
아들을 잘 키워야 세상이 변한다
유치원 운영위원을 하는 이유: 모든 게 정치니까
아이라는 우주가 찾아왔을 때… 사랑받는 건 오히려 나였다
아이들을 만나게 해준 신에게 감사하다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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