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감성적인 사진 위에 스민 아름다운 문장들,
그 따뜻하고 가슴 먹먹한 콜라보
월간 골수팬들에게 반가운 작가 황경신, 김원의 ‘영혼시’가 출간되었다. 김원의 사진 위에 스민 황경신의 아름다운 문장들, 황경신의 글을 품은 김원의 감성적인 사진들. 독자들 사이에서는 ‘영혼시(영혼을 위로하는 시)’라 불렸다.
이 책『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의 ‘영혼시’는 영혼의 한 조각이 말랑말랑해지는 과거의 글들과 사진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장롱 구석에 먼지 쌓인 오래된 추억 상자를 슬며시 열어 그 기억의 지층을 들추어 화석이 된 글들을 하나하나 파헤쳤다.
찬란하고 비루한 자의식을 다시 들여다보는 일은, 오래된 상처의 흉터를 살펴보는 일과 같다. 상처가 아물고 남은 자국은 아름다울 것도 없고 자랑스러울 것도 없으나, 그 자국을 남긴 때와 장소, 우연과 인연, 이야기의 시작과 끝이 거기 새겨져 있어, 최소한 진부하지는 않다. 비록 그것이 하는 이야기가 낡고 빛바랜 것이라 해도.
- 에필로그 중에서
영혼시가 선물했던 여러 추억들. 다시 꺼내어본 그 추억들은 우리들의 메마른 가슴에 물줄기를 드리우며 그때 그 시절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고 뜨겁게 아파했던 과거의 기억들을 불러온다. 성장기에 만난 의 글들과 사진은 함께 뜨겁게 사랑했고 뜨겁게 아파했던 우리 영혼의 동반자였다.
세월이 지나 인연을 잘 만난 글과, 운명을 잘난 사진을 차곡차곡 모아서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가 되었다. 그 사랑했던 글들과 다시 한번 재회하며 색을 잃었던 추억들이 다시 하나둘씩 색을 입고 두둥실 우리 가슴 안에 떠오른다.
◆ 추천의 글
#1. 답답한 일상의 해방구이자 소우주였던
적절한 시기에 너무 잘 만났구나 싶은 것들이 있다. 내겐 월간 가 그렇다. 제주도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던 1998년. 후배 하나가 불쑥 라고 적힌 잡지 하나를 수줍게 건네고는 도망갔다. “선배, 이거 한 번 보세요.” 가벼운 마음으로 페이지를 넘기는데 생각보다 흥미로웠다. 그냥 흥미롭다 정도가 아니라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잡지’의 개념을 완전히 해체해버리는 발랄함에 문화적 충격을 받고 한동안 얼얼했다. 정형화된 틀을 탈피한 글들, 이전에 본 적 없는 과감한 기획들, 무엇보다 만드는 이들의 폭발적인 에너지가 종이 안에서 기분 좋게 끓어오르고 있었다. 다루는 주제도 문화와 사랑, 예술과 사람 등 경계가 없었다. 나는 내가 사는 세상이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곳이라는 걸 그때 확신했다. 지금이야 ‘한 달 살이 열풍’이 불 정도로 제주도가 인기지만, 내가 학창 시절을 통과하던 90년도만 해도 제주는 문화적으로 척박한 땅이었다. 문화에 목마른 나에게 한 달에 한 번 바다 건너오는 는 답답한 일상의 해방구이자 소우주였다. 그렇게 난 와 사랑에 빠졌다.
뒤늦게 알고 보니 1995년 세상에 나온 는 서울에서만 배포되다가 1998년부터 전국 가판대와 서점에 깔리기 시작한 터였다. 나는 전국 진출의 첫 수혜자였던 셈이다. 를 사면 늘 가장 먼저 펼쳐 봤던 건,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에 실린 글과 사진이었다. 김원의 사진 위에 스민 황경신의 아름다운 문장들. 황경신의 글을 품은 김원의 감성적인 사진들. 그 아름답고도 따뜻하며 가슴 먹먹한 완벽에 가까운 콜라보. 나는 황경신의 글을 흠모하며 노트에 옮겨 적었고, 김원의 사진을 오려 책상 앞에 붙여놓곤 했다. 코너명이 딱히 없었던 두 사람의 합동 작업물은 독자들 사이에서 ‘영혼시(영혼을 위로하는 시)’라 불렸는데, 그 이름 참 잘 지었다 싶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영혼시’ 앞에 머무르다 보면 정말로 내 영혼의 한 조각이 말랑말랑해지는 느낌을 받곤 했다. 무방비 상태로 읽었다가 눈물 쏟은 날도 있었지만, 그 눈물이 그렇게 위안일 수 없었다. ‘영혼시’는 의 정체성이었고, 얼굴이었고, 소울(soul)이었다.
성장기에 만난 사랑은 강렬하다. 그리고 그 사랑은 때로 인생을 흔든다. 누군가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를 보고 영화감독이 되고, 누군가는 미야자키 하야오에 반해 만화가가 됐을 것이다. 에 새겨진 글들에 취해 성장했던 나는 그렇게 글쟁이가 됐다. 그리고 세상에나, 필진이 됐다. 운명처럼.
#2. 인연을 잘 만난 글, 운명을 잘 만난 사진
필진으로 합류한 후 김원과 황경신을 처음 만나러 가던 날을 기억한다. 오랜 시간 동경했던 분들이기에 긴장을 숨길 수 없었던 자리. 쭈뼛거리며 인사하는 나를 ‘허허’ ‘호호’ 맞아주는 두 분. 김원 두령님은 예상보다 더 유연한 사고방식을 지닌 근사한 은발의 멋쟁이셨고, 경신 작가님은 예상보다 더 소녀 감성을 지닌 사려 깊은 편집장이었다. 이런 분들이니까 그런 사진을 찍고 그런 글을 썼구나, 글과 사진이 사람을 퍽이나 닮은 것이었구나, 아아 너무나 행복하다, 그날 기쁨에 벅차서 속으로 울었다.
‘영혼시’에 숨겨진 뒷이야기를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내가 늘 궁금했던 것. 김원의 사진에 영감을 받아 황경신이 글을 쓰는 것일까, 황경신의 글에 감명받아 김원이 사진을 찍는 것일까. 정답은 전자에 조금 더 가까웠는데, 김원 두령님이 사진 몇 장을 후보로 건네면 그 중 마음에 드는 하나를 경신 작가님이 골라 글을 입히는 작업이었다. 결과적으로 인연을 잘 만난 글이고, 운명을 잘 만난 사진이란 생각이다. ‘영혼시’가 많은 이들의 마음에 가닿은 이
유일 것이다.
실제로 ‘영혼시’에 얽힌 여러 사연이 있었다. ‘영혼시’를 자신이 쓴 것처럼 속여 프러포즈에 성공했다는 독자가 있었고, ‘영혼시’ 덕분에 시에 눈을 떴다는 독자도 있었다. 내 사연도 범상치는 않다. 과거 남자친구에게 생일선물로 1년 정기구독권을 부탁했다가, 받고 나서 1년을 땅을 치며 후회한 적이 있다. 우린 곧 헤어졌고, 이별의 슬픔은 너무나 깊었고, 잊으려 애썼지만, 매달 찾아오는 가 지우고 싶은 그 얼굴을 기억하게 했으므로. 그럴 땐 ‘영혼시’의 화자가 괜히 나인 것 같아 또 한 번 그리움에 무너지곤 했다. ‘영혼시’가 선물했던 여러 추억들….
그리고,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영혼시’는 어느 날 연재를 중단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3. 다시 꺼내어본 그 추억은 아름다워라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를 통해 다시 ‘영혼시’를 들여다봤다. 사랑했던 과거의 글들과 재회하는 마음이란 게 참 이상했다. 게다가 나는 이제 ‘시’라는 걸 잘 읽지 않는, 일상에 찌들어 ‘시’를 볼 여유를 잊은 사람이 된 지 오래. 괜히 과거의 흔적을 들췄다가 나의 팍팍한 현실감각만 확인하는 게 아닌지 두렵기도 했다. 그런데 하… 펼치자마자 쏟아지는 익숙한 글과 사진들이 잊은 줄 알았던 내 추억들을 소환했다. 메마른 줄 알았던 내 감성에 물줄기를 드리웠다. 누군가에게 전하지 못해 서성였던 내 흩어진 사랑이, 누군가와 나눴던 웃음이 떠올랐다. 그때 그 시절, 그 감정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내 안에 가라앉아 있을 뿐이었다. 세월에 깎여 뾰족해진 나에게 그 시절마저 없었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시간은 흘렀지만 ‘영혼시’는 아직도 내 가슴에 살아 있다.
“오랜 세월 흘러 어느 날 문득 꺼내어본 그 추억은 아름다워라”- 황경신
글/정시우(영화 저널리스트)
작가 소개
지은이 : 황경신
부산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그림 같은 세상』, 『모두에게 해피엔딩』, 『초콜릿 우체국』, 『세븐틴』, 『그림 같은 신화』, 『생각이 나서』, 『위로의 레시피』, 『눈을 감으면』, 『밤 열한 시』, 『반짝반짝 변주곡』, 『한입 코끼리』, 『나는 토끼처럼 귀를 기울이고 당신을 들었다』, 『국경의 도서관』, 『아마도 아스파라거스』, 『생각이 나서2』등의 책을 펴냈다.
사진 : 김원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였고, 사진작가로 활동하신 아버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부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사진 찍기를 좋아하였음. 그런 이유 때문인지 그림이 사진이고 사진이 그림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마치 일기를 쓰듯 사진을 찍고 있음. 이미지 속에 어떤 느낌과 이야기가 담겨 있는 사진을 좋아함. 1995년에 PAPER를 창간하여 20년이 넘도록 발행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요즘은 남산 성곽마을의 작업실에 머물며 그림 그리기와 나무를 다듬어 작품을 만드는 일에 전념하고 있음. 친구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며 담소하기를 즐기는 몽상가이며, 개인 작품집으로 『좋은 건 사라지지 않아요』와 『봄날을 지나는 너에게』가 있음.
목 차
프롤로그
Chapter 01 흐린 믿음에도 나는 온통 그대를 향해 서 있습니다
종이배 하나 접어
하기야 슬픔 아니었다면
비가 그치면
눈을 감으면
어쩌면 모두 꿈 아닌 것들
푸른 자전거
아직 끝내고 싶지 않다
너무 늦게 알게 된다
흐린 믿음에도 나는 온통
추억의 문은 견고하고
Chapter 02 너, 한 번도 앉지 않은 빈자리에 말간 햇살들이 잠시 머물다 간다
빈자리
까맣게 잊어가지요
아주 사소한 것까지
가지 말아야 할 곳
사막에서 모래 위에서
내가 잠깐 움켜쥐었던
훔치다
나는 아직도 사랑 때문에 괴롭다
잊어버리면 행복해질 수 있다
한없이 얇고 투명해지도록
Chapter 03 이렇게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어도 그대를 사랑할 수 있나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나를 모르는 그곳에
너를 노래하지 않아도
누가 믿을까
이렇게 하찮은 존재로 태어났어도
나를 발견해줄 때까지
모퉁이 저편에 서서
길을 잃었을까
나는 한 마리 풀벌레가 되어
이미 많은 비가 왔다
Chapter 04 사랑, 그 무모한 이름만으로 갈 수 없는 수많은 길들을 위하여
기도한다 사랑
이 세상 끝까지 갔더니
그럴 수 있다면
아무도 모르게
네게로 흘러가려는 마음
바람으로 털실을 짜서
이별이 나를 발견하지 못하도록
숨을 죽이는 이 연약한 사랑이
유리벽 너머에
이 긴 기다림의 그림자는
Chapter 05 찾아 헤매인 어느 길 하나 그대 아닌 것이 없었으니
마음속에 장마 그치지 않던
그것도 참 기쁜 사랑이지요
그 속에 수없이 부서지는 그대
이 사소한 그리움은
그까짓 바람 한 줄기도
그대의 부재는 더욱 무거워지는가9
한 번도 말한 적은 없지만
그 추억은 아름다워라
네가 서 있던 그 자리
그대 뒤에 또 그대
Chapter 06 하지 못한 말들은 칼날이 되어 따가운 봄빛 속에 무심히 반짝인다
왜 그때가 아니었니
한 조각 종이처럼
혹시 하고 기다려요
조각달 하나
나의 겨울은 서러웠는데
하지 못한 말들은 칼날이 되어
이제 겨우 일흔여섯 번째 봄이야
닿지도 못할 마음만
어째서 그렇게
여름은 지나갔으니
Chapter 07 목숨처럼 무서운 사랑도 무엇이 어떻다고 잊지 못하겠습니까
무슨 상관이냐
새야 너 춥지는 않니
붙잡아도 붙잡아도
눈 속에 갇혔지
새들은 모두 떠나가고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해
베이고 찢어진 곳마다
잊은들 잊지 않은들
믿을 수 있는 건
먼 훗날 그대가 물으면
Chapter 08 온종일 그대에게서 달아날 궁리만 하던 그때는 가도 가도 깊은 사막인 줄 알았습니다
마치 그러리라 작정했던 것처럼
지워집니다, 지워집니다, 되뇌며
끝이 없다
얼룩진다
지워지는 것도 사랑입니까
후두둑 떨어져 내려요
기다리는 동안
아무도 몰랐지만
미소만 짓고 있다
알 것도 같았지
Chapter 09 아무리 멀어도 꿈이라면 닿겠지 아무리 그리워도 목숨은 건지겠지
묻는다
계절이 오기 전에
겨울이라서 다행이야
처음부터 그것은
그대 안녕하겠지
그해 삼월
저 혼자 설레다가
꽃을 피운다는 건
고스란히 갇혀 있다
우연히 생각났다 했지만
Chapter 10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서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된다면
그림자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가서
너도 어디로든 흘러가라
돌이킬 수 있었을까
그 사소한 이야기는
당신과 나의 경우에는
사랑일 수밖에 없는 사랑을
네게 거짓말을 했어
눈 속에서도 얼지 않고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에필로그 황경신 / 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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