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문학적 자취로 가득한 파리!
기자로 문인으로 파리에서 50여 년을 산 로제 그르니에가
평생 사랑한 도시 파리의 거리들을 돌아보며
우리에게 자신의 기억을 풀어놓는다.
누군가의 삶을 설명해주는 여러 지표들 가운데 그간 거쳤던 주소들을 보면 아스라하면서도 뭔가 떠오르는 느낌이 있다. 그 주소들에 자신만의 기억을 더하면 세상에 둘도 없는 멋진 회고록이 된다는 것을 이 책이 보여준다.
98년의 삶 동안 절반 이상을 파리에서 보낸 작가 로제 그르니에는 자신과 연관된 100여 곳이 넘는 파리의 거리들을 기억하고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회상함으로써, 20세기라는 격변기 동안 기자로 작가로 편집자로 살아온 삶을 회고한다.
“내가 시골 사람인지 파리 사람인지 모르겠다. 어쩌다 보니 나는 노르망디에서 태어났다.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포Pau와 베아른B?arn이 내 책 대부분에 영감을 주었다. 그러나 나의 도시는 파리다. 내가 느끼기에 진짜 파리지엥들은 다른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고, 그들에게는 파리에서 사는 것이 일종의 정복이다. 나는 센 강의 다리 위를 지나기만 해도 감탄한다. 한쪽에는 시테 섬과 노트르담 성당이 있고, 다른 쪽에는 그랑 팔레와 샤이요 언덕이 있다. 그리고 비할 데 없는 하늘이 있다! 꿈이 아닌데, 내가 파리에 있다니!”_6p
이 책의 첫 문단에서 느낄 수 있듯이, 그에게 파리는 특별한 도시이다.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파리 출신이었지만 그의 어머니가 건강 악화로 파리를 떠나게 되어 정작 그가 태어난 곳은 노르망디였고, 그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피레네 산맥 근처 소도시들에서 보냈다. 그러다 파리 해방 전 해에 어머니와 누이와 함께 살던 타르브를 떠나 파리로 올라온 이후, 본문에 소개된 일화에 의하면 2010년 어느 날 프랑스의 명문 앙리 4세 고등학교에서 문학 강의를 하고 난 후에야 마침내 ‘그 잘난 파리지엥’이 된 느낌이 들었다고 하니, 그가 그야말로 파리를 정복하기까지 수십 년이 걸린 셈이다.
이 책 내내 그르니에는 파리의 거리들을 거닌다. 그가 마주치는 거리?건물? 공원은 어떤 특별한 사건이나 만남을 회상하는 기회가 된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기억이 로제 그르니에에게 중요한 개념이라는, 작품의 열쇠가 되는 개념이라는 느낌이 든다. 이 작품에서 그는 재미나거나 괴상한 만남이나 일화를 떠올리는데, 그 일화는 언뜻 평범해 보이다가 결국은 심오한 무언가를 드러낸다. 잘 알려지지 않은 파리의 거리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것도 이 책이 지닌 여러 장점 중 하나다.
“파리지엥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알았고 사랑했으나 사라져버린 것을 찾는 데 일평생을 보낼 수 있다.”고 표현한 대로, 그는 이 책을 쓴 아흔다섯 나이에도 무엇 하나 잊지 않았다. 로제 그르니에는 꼼꼼한 기억력의 소유자다. 그는 1931년 파리에서 열린 식민지 전시회를 기억하고, 소르본에서 들은 가스통 바슐라르의 강의를 기억하고, 파리 해방 즈음 플레옐에서 본 루이 암스트롱의 반짝이던 트럼펫을 기억하고, 물랭 루주 테라스에 세워진 보리스 비앙의 아담한 집을 기억한다. 그에게 <콩바>지에 들어오라고 권한 알베르 카뮈의 제안을 기억하고, 카페 플로르에서 본 윌리엄 포크너를 기억하고, 앙드레 지드의 집으로 찾아가 그와 대담한 후 지드가 “치음을 연습해야겠어”라고 한 말을 기억한다.
아버지가 태어난 마자린 길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친구이자 동지였던 클로드 루아의 유해가 뿌려진 퐁데자르 길에서 끝맺기까지, 그는 파리의 수많은 거리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을 언급함으로써 우리의 망각을 건드린다. 그가 들려주는 추억과 일화는 각각의 장소들에 의미를 부여하고, 잊힌 사람들을 되살려놓는다. 역사의 한복판에서 20세기를 바라보는 로제 그르니에의 예리한 눈길이 느껴지면서, 위대한 보통사람들이 만든 파리의 역사가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평생을 글과 책과 더불어 살아왔기에, 그의 기억들의 대부분은 문학과 연관되고, 파리는 문학적 자취가 가득한 도시로 그려진다. 카뮈.네르발.빅토르 위고.보들레르.스탕달.로맹 가리.자크 프레베르.보리스 비앙.샤토브리앙.사르트르.프루스트.지드.포크너.헤밍웨이.카렌 블릭센… 등 문학의 거장들이 대거 소환된다. 이 책을 우리말로 옮긴 백선희 번역가는 “이 글은 로제 그르니에라는 한 작가의 개인사이자 부침 많았던 한 세기에 대한 증언이며 문학적 자취를 가득 품은 파리에 대한 애정과 향수가 물씬 느껴지는 기행”이라고 했다.
로제 그르니에는 이 책을 출간한 후 <Zone Critique>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잊힐 만하지 않은 작가들이 망각되는 빠른 속도에 놀랐다. 루이 기유는 겨우 망각을 면했지만, 다른 이름들은 젊은 세대에게 아무 감흥을 주지 못한다. 이를테면 마르크 베르나르가 그렇고, 클로드 루아조차 요즘 사람들은 읽지 않는다. 30년 전에 타계한 작가들 가운데 로맹 가리와 알베르 카뮈 같은 몇몇 작가는 여전히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성을 누리고 있다. 그들이 우리의 기억 속에 살아남은 것은 비극적 운명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나는 이 책에서 이 모든 사람들에 대해 얘기한다. 그들의 문학적 자질과 무관하게 그들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이다. 이 망각은 아주 부당한 것이다.”
평생 사랑했던 파리의 거리를 거닐며, 잊힌 사람들?만남?사건을 회상함으로써 우리의 망각을 다시 열어주는 로제 그르니에의 파리 기행. 새삼 그의 기억을 좇아 파리의 골목골목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작가 소개
지은이 : 로제 그르니에
1919년 프랑스 캉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서남부 피레네 산맥 근처 도시 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파리 소르본 대학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944년 ‘파리 해방’에 참여했다. 알베르 카뮈의 추천으로 레지스탕스 신문 <콩바>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했고, 이후 <프랑스 수아르>를 거쳐 20년 넘게 신문기자로 활동했다.
에세이 《피고의 역할》로 작가생활을 시작한 이후 사십여 편의 작품을 출간했고, 페미나 상, 아카데미 프랑세즈 단편소설 대상, 알베르 카뮈 상 등 프랑스 문학의 굵직한 상들을 석권했다. 1985년에는 그의 전 작품에 대하여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 대상이 수여되는 영예를 안았다. 2017년 11월 8일 별세했다.
옮긴이 : 백선희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 덕성여자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그르노블 제3대학에서 문학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쳤다. 로맹 가리?밀란 쿤데라?아멜리 노통브?피에르 바야르 등 프랑스어로 글을 쓰는 중요 작가들의 작품을 우리말로 옮겼다. 옮긴 책으로 《웃음과 망각의 책》 《레이디L》 《울지 않기》 《흰 개》 《햄릿을 수사한다》 《예상 표절》 《하늘의 뿌리》 《내 삶의 의미》 《책의 맛》 등이 있다.
목 차
_ 로제 그르니에의 작품 목록 160
_ 옮긴이의 말 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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