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소설가로서의 김석범의 삶은 오롯이 4.3의 문학적 형상화의 삶이었다. 1957년에 발표한 그의 대표작이자 출세작인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은 그 시작이었다. 그는 4.3을 통해 역사와 인간의 문제에 천착했다. 4.3사건의 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인간군상의 모습은 그가 이 세계를 이해하는 거대한 뿌리이기도 했다. 이 작품은 대하소설 《화산도 火山島》의 마중물이기도 했다. 번역가 김석희는 《까마귀의 죽음》은 김석범의 필생의 대작 《화산도》를 축약시킨 4.3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책의 운명
1957년 일본에서 출판된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이 <소나무출판사>에서 김석희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에서 처음 출판된 시점은 1988년이었다. 이미 출간된 지 30년이 넘은 시점이었다. 4.3 40주년이 되던 해였다. 6월 항쟁 이듬해로 4.3 진상 규명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그 후 4.3 진상규명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어 2001년 1월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특별법’이 통과되었다. 2003년에는 《4.3진상규명보고서》가 작성·확정되었고, 그해 10월 노무현 대통령은 국가원수로서 제주도민과 유족들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 사이 이 책은 절판되어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4.3역사청산의 장도에서 보수정권이 들어선 이후, 수구세력들은 공세적이고 노골적으로 이전 정부에서 수행한 역사청산작업을 정면으로 부정하면서, 이미 결정된 사안들마저 흔들어 과거로 퇴행시키려는 책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1999년 특별법 쟁취를 위해 모였던 ‘4.3특별법쟁취연대회의’ 실로 오랜만에 4.3역사진실을 지키기 위해 도내 46개 시민사회단체 및 정치권 등이 참여하는 <화해와 상생 4.3지키기 범도민회>로 다시 결집, 전열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이 시기 우연찮게 다시 30여 년 만에 《까마귀의 죽음》은 4.3의 땅 제주의 출판사인 <도서출판 각>에서 새로운 판본으로 옷을 갈아입고 세상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 책의 운명일까? 그때처럼 다시 역사적 진실이 승리하는 시간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세상에 최초로 4.3의 부활을 알린 내력 때문인지 이 책 역시 자취를 감추었다가도 다시 부활했다.
평론을 쓴 김동윤은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도 첫 만남에서의 느낌은 여전하다. 거기에 세기를 뛰어넘는 묵직한 메시지가 또 다른 맛깔로 감지된다.”고 했다. 그렇다. 이 책에는 세기를 뛰어 넘어서도 다시 부활하는 영생의 문학성이 배어 있을지도 모른다.
책 소개
이 책은 1957년 일본에서 출판된 《까마귀의 죽음 鴉の死》이 <소나무출판사>에서 김석희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에서 처음 출판되었다 절판된 후 근 30년간 구해볼 수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초판 번역자였던 김석희선생이 “기존 번역본을 손 볼테니 다시 한번 각에서 출판하면 어떠겠는가”라는 제안이 있었고, 마침 4.3평화상 수상을 위해 제주에 와 있던 저자 김석범선생에게 제안하자 흔쾌히 이를 허락하면서 재출판의 길이 열렸다.
그리고 기왕 다른 출판사에서 새롭게 단장해서 내는 책이니 예전 <소나무출판사>본의 일본인 평론보다는 4.3문학에 대한 조예가 깊은 평론을 실으는 것이 어떨까 해서 김동윤 제주대교수에게 원고를 의뢰해 새로이 평론이 책 뒤에 얹혀졌다.
참고자료 1
소설가 ‘김석범’
김석범(金石範, 1925~ ). 올해 연세가 90세다. 노익장이시다. 그는 얼핏 보면 단아한 목련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미수의 목련(?), 영 아닌 비유인가? 하지만, 풍모와 자태가 그렇다는 말이다. 미수를 지난 백발, 이제는 세속의 인생을 파한 듯한 용모에서 세월이 익으면 또 다른 향기와 자태가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분이다.
그는 재일제주인 2세다. 1세들의 연령대이지만 2세대다. 일본에서 태어났기 때문이다. 그의 국적은 ‘조선적(朝鮮籍)’이다. 그는 1948년 일본 외국인 등록법이 생겼을 때, 남북한을 통틀어 ‘조선’으로 분류되었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그대로 한국도 북한도 아닌 분단 이전의 ‘조선인’으로 남아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 ‘조선’. 그의 육신은 실존하지만 그의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그 국가가 남북으로 쪼개어져 두 나라가 되었으나, 그는 분단된 나라를 그의 나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존재하지 않는 나라의 유민(遺民)인 셈이다. 이 때문에 그는 김대중 대통령 취임 이전까지는 한국방문 시에 늘 순조롭지 못한 절차를 밟아야 했다.
김석범 선생의 출생지는 제주도가 아니다. 일본의 오사카다. 오사카 이쿠노쿠(生野區)의 이카이노(猪飼野)에서 태어나 자랐다. 김석범 선생의 본명은 신양근이다. 부친은 제주시 삼양동 출신이다. 1925년 이주한 지 2~3개월 지나서 그를 낳았다. 이카이노는, 일본인들은 1973년부터 ‘모모다니(桃谷)’라는 지명으로 바꿔 부르고 있지만, 재일조선인 또는 재일제주인들에게는 여전히 이카이노다. 그의 출생연도인 1925년은 제주도민의 오사카 이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이전의 초기였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이카이노는 제주도민들의 집단거주지로, 학교에서는 공식어인 일본어를 쓰지만 생활언어는 제줏말이었다. 땅은 일본이었지만 사회는 제주였던 것이다. 이러한 환경은 뒷날 그가 제주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할 때 큰 자산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번역가 김석희는 그의 소설 《화산도》를 번역하면서 그가 묘사한 제주섬의 풍경과 풍속이 그렇게 사실적인 데 대해 놀라웠다고 술회한 바 있다.
그는 나이 열세 살 때인 1940년에야 비로소 생애 처음 제주땅을 밟는다. 그는 제주에서 1년 가까이 생활하였는데, 이 경험은 그에게 있어 내면적으로 엄청난 충격적 변화를 일으킨다. 뼛속까지 반친일파인 것은 이때 이루어진 정체성에 기인한다. 식민지 출신 ‘황국소년’에서 제주섬사람으로 그의 정체를 다잡은 것이다. 비로소 그에게서 제주섬의 풍토는 정체성의 한가운데 자리 잡는다. 그가 소년시절 잠시 경험한 제주섬의 자연과 고향사람들의 언어와 생활상은 이후 그의 제주섬과 사람들을 주제로 한 소설을 써가는 데 장기지속의 원동력이자, ‘원풍경’이 된다.
성장 후의 그의 일대기를 잠시 살피면, 1945년 6월 일시 귀국하여 서울에 머물렀는데, 얼마 되지 않아 조국이 해방을 맞았다. 어릴 때부터 문학에 뜻을 두었던 그는 국학대학(1947년 개교, 1967년 수도의과대학에 인수합병, 우석대학교로 개편되었다가 1971년 고려대학교에 합병된 대학) 국문학과에 들어갔으나, 학업을 포기하고 이듬해 8월 그가 태어난 일본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그리고 오사카에서 ‘간사이대학(關西大學)’ 전문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잠시 노동일을 하다가 ‘교토대학(京都大學)’ 문학부 철학과에서 미학을 전공한다. 이때 그는 이미 일본 공산당에 입당하고 있었다.
1948년 재일 조선인연맹(약칭 朝聯)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1951년에는 일본공산당을 탈당하고, 1959년 재일 조선인총연맹(약칭 朝總聯) 계열의 조선고급학교의 문학교과를 담당하는 교사로 부임하여 교직에 몸담기도 하였다. 또한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의 기자로, 《문학예술》지의 편집자로, 《삼천리》지의 편집위원으로, 다양하고 열정적인 활동을 전개한다. 그는 1968년 조총련을 탈퇴하게 된다. 이후 작가의 길로 들어선 그는 필명을 현재 널리 알려진 ‘김석범’으로 정하고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다. 대표작으로 <화산도>, <까마귀의 죽음>, <1945년 여름>, <사기꾼>, <밤>, <화산도> 등과 조국방문기 <고국행> 등이 있다.
소설 <화산도>는 그의 필생의 대작이다. 원고지 총 2만 2천 장. 20여 년이라는 긴 세월의 수고로움을 더한 노작으로, 1976년부터 일본 《문학계》에 연재를 시작하여, 1997년에 7권으로 완간된다. 이 작품은 1997년 전(全) 7권으로 일본 문예춘추사에서 출간되어, 일본에서 권위 있는 아사히신문의 ‘오사라기지로(大佛次郞)상’과 마이니치신문의 제39회 ‘마이니치예술상’을 수상하는 등 작가적 명예와 문학적 성취를 동시에 이룬다.
<제주의 소리>_‘박경훈의 제주담론’ 중에서
참고자료 2. 작품 평론
빛나는 전범(典範), 관점의 무게
김동윤(제주대 교수, 문학평론가)
1. 낯설음과 끌림의 기억
김석범의 4.3소설은 1957년부터 발표되었지만, 그것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국내에서 처음 출판된 시점은 1988년이었다. 4.3 제40주년이던 당시는 1987년 6월항쟁 이후 이어진 민주화운동고양기여서 4.3 진상 규명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기 시작하던 때였다. 현기영의 ?순이 삼촌?이 발표된 지 10년이 되어 4.3의 여러 얼굴 중 ‘민중수난사로서의 4.3’의 모습에 어느 정도 익숙해 갈 무렵이기도 했다. 무고한 양민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고발과 해원(解寃)이 지배적인 담론으로 부상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그런 시기에 김석희의 번역으로 나온 ??까마귀의 죽음??(소나무)과 이호철.김석희 공역으로 나온 ??화산도??(제1부, 실천문학사)는 한국 독자들에게 다소 이질적인 존재였다. 현기영.오성찬.현길언 등 한국작가들의 4.3소설과는 확실히 다른 면이 있었다. 우선, 자연스럽게 읽히지가 않아 당혹스럽기도 했는데, 그것은 번역소설임에서 기인하는 일반적인 생경함 혹은 낯설음과는 다른 차원이었다. 그다지 절절하거나 역동적인 서사가 아니면서도 묘한 끌림이 있었다.
이제 근 30년 만에 ??까마귀의 죽음??이 새로운 판본으로 옷을 갈아입고 우리를 찾아왔다. 오랜만에 다시 읽으면서도 첫 만남에서의 느낌은 여전하다. 거기에 세기를 뛰어넘는 묵직한 메시지가 또 다른 맛깔로 감지된다.
이 책에 실린 ?간수 박서방(看守朴書房)?(1957.8).?까마귀의 죽음(鴉の死)?(1957.12).?관덕정(觀德亭)?(1962.5)은 매우 긴밀히 얽혀 있는 연작이다. 이들 세 작품에서는 1948년 여름부터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의 4.3 광풍 속 제주섬이 그려진다. ?까마귀의 죽음?과 ?관덕정?에서는 아예 동일 인물의 이야기가 이어지기도 한다. ?똥과 자유(糞と自由と)?(1960.4)와 ?허망한 꿈(虛夢譚)?(1969.8)은 4.3을 다루진 않았지만 작가가 왜 4.3에 천착해야 했는지, 그의 관점이 어떠한지를 보여준다는 면에서 함께 읽을 필요가 있다.
2. 민중: 처절한 순수와 진실
여기에 수록된 세 편의 4.3연작에서 우선 주목되는 바는 개성적인 인물들이다. 국내 작가의 4.3소설에서 만나는 인물들과는 퍽 유다른 면이 있다. 그 인물들은 너무나 강렬하여 오래도록 독자들의 뇌리에 기억된다.
특히 인상적인 인물로는 박서방과 부스럼영감을 꼽게 된다. 그들은 배우지 못한 미천한 신분으로서 4.3의 한복판에 놓여진다. 그들은 매우 희화화(戱畵化)되어 나타난다.
박서방의 이름은 박백선(朴百善)이다. ‘백선이’로만 불리다가 주인마님 성을 따라 경주박씨가 되었다. 황해도에서 살던 그는 해방 후 상경한다. 그러나 서울에서 터 잡고 살기는 쉽지 않았다. 여인숙에서 자다가 보따리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거지 노릇까지 한다. 지게꾼 생활로 연명하던 중 제주에 입도한다. 제주에서도 지게꾼으로 일하던 그는 한 달 전에 경찰(간수)이 되었다.
박서방의 제주행은 여다(女多)의 섬에 대한 기대 때문이었다. 등이 구부정하며 마흔 살 가까운 노총각인 그의 최대 콤플렉스는 곰보라는 것이다. 죄수들에게는 하귤(夏橘)의 일본어 발음인 ‘나쓰미깡’으로도 불리며, 옛 동료에게 ‘엿장수 곰보자식’이라는 소리도 듣는다. 고향에서 혼담이 있었으나 여자가 곰보여서 가차 없이 거절했다고 한다. 간수로 일하면서 그는 여자 수감자를 만지고 싶어 안달한다. 막대기로 송명순의 치마를 들춰보다가 들켜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한다.
박서방은 경찰로서의 자부심이 대단했다. ‘간수님 박 선생’으로 불러야 한다고 으스댄다. 그러면서도 권력에는 비굴한 모습을 보인다. 고문의 조수 역할도 하고, 토벌도 나가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지만 “간수로서 제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어”(30)라고 상관에게 핀잔을 듣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마음에 두는 여죄수인 명순으로 인해 자신의 일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명순이 고문당하고 성적으로 유린당하는 상황에서도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집단학살의 현장에서 “처녀 아이를 달래주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54)힌 데 이어, 도망치다 총 맞은 한 소년의 시체와 마주친다. 한 노인이 지게에 소년을 싣고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 꽃잎 같은 노란 나비 한 마리가 소년의 시체 위에 앉았다. 백선은 문득 나비를 잡고 싶어졌다. 방랑하던 소년시절이 생각났다. (…) 지게끈을 움켜쥔 노인의 손이 피로 더러워져 있었다. 백선은 노인과 시선이 마주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진무른 눈꺼풀 밑에서 눈물방울이 번쩍 빛났다. 백선은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56쪽)
지게에 실린 소년은 박서방에게 쫓기다가 소대 주임의 총에 맞아 죽은 아이였다. 소년의 시체를 통해 어린 시절의 자신을 생각하고 노인의 눈물을 예사롭지 않게 마주했음은 소년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섬사람들의 처지에 공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는 이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질 수 없었다. 게다가 명순의 처형이 임박하면서 그는 좌불안석이다.
백선은 간수실에 들어가자,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벽을 두 손으로 힘껏 때려보았다. 꿈쩍도 하지 않는다. 가슴이 쑤시고, 배가 꾸르륵 하며 울었다.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연거푸 두세 잔 벌컥벌컥 마시고 싶었다./ “제기랄, 이놈의 세상은 좀처럼 뜻대로 안 되는구나.” 도대체 왜, 그렇게 얌전한 미인 명순이가 죽지 않으면 안 된단 말인가. 그의 가슴은 명순을 중심으로 번뇌하면서, 그녀를 체포하고, 그녀를 투옥하고, 그녀를 범한, 그리고 그녀를 죽이려고 하는 그 무언가를 저주했다.(61쪽)
명순 일행을 태운 트럭이 학살 현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 박서방은 그 트럭을 미친 듯이 쫓아가면서 “용서해줘. 기다려줘”를 외쳤다. 그 바람에 그는 경찰 자격을 박탈당했을 뿐만 아니라 처형되는 상황을 맞고 말았다.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나는 말입니다, 아무래도 대한민국이 마음에 들지를 않아요.”(64쪽)였다.
이처럼 박서방은 이북 출신의 민중으로서 4.3의 본질적 모순을 들여다봤다는 점에서 중요한 인물이다. 4.3을 제주민의 희생으로만 국한시키지 않으면서 역사의 진실을 제시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이러한 전형(典型)의 창조는 4.3소설사에서 의미가 매우 크다.
부스럼영감은 ?까마귀의 죽음?과 ?관덕정?에 연이어 나오는 인물이다. 60이 넘어 보이는 그는 절뚝거리는 데다가 맨발로 다닌다. 눈곱이 덕지덕지 낀 채로, 피고름자국이 번진 더러운 흰옷을 입은 행색이다. 고름을 빨아 부스럼을 치료하며 살아가던 그는 4.3이 한창이던 1948년 여름부터 ‘관청일’을 하고 있다. 관덕정 주변에서 처형된 빨치산의 모가지를 대바구니에 갖고 다니면서 그 신원을 알아내는 일에 동원된 것이다.
사람의 목을 대바구니에 넣고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애당초 밀고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 (…) 전사한 신원불명의 빨치산이다. 포로가 되었지만 고문에도 입을 열지 않은 빨치산의 배후관계와 가족관계를 조사하기 위해서는 이 목의 정체를 알아낼 필요가 있다. 그 결과, 가족이나 친척에게까지 화가 미친다. 당국은 그들의 뿌리째 검거할 뿐 아니라, 그 부락에 불을 질러 몽땅 태워버리기도 했다.”(74쪽)
그런데 부스럼영감은 관청일을 우직하고 충실히 수행하면서도 순수한 면모를 보여준다. 대바구니에 빨치산 모가지와 함께 동백꽃을 넣고 다니는 데서 그것이 감지된다. 미군정청 통역관인 정기준이 짐작했듯이, “그 동백꽃은 분명 바구니 속의 젊은이를 위해 바쳐진 것이었다.”(93쪽) 죽음을 애도한다는 의미임을 짐작할 수 있다.
?관덕정?에서는 관청일에서 해고된 부스럼영감이 나온다. “모가지를 갖고 다니는 영감이 모가지를 당한”(150) 셈이다. 한라산의 빨치산들이 전멸 직전인 상황에서 이승만 정부의 토벌작전 양상이 귀순을 유도하는 쪽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영감도 “지금 내가 모가지를 당한 것도 그 대통령 탓인 모양”(151)으로 생각한다. 그는 “그만두길 잘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팔팔한 젊은 놈들의 얼굴을 이 손으로 쓰다듬어주지 못하는 게 좀 섭섭하”(167)다는 심경도 드러낸다.
이런 점들을 보면, 부스럼영감의 내면을 포착할 수 있다. 그에게도 관청일은 역시 마뜩하지 않은 일이었다. 바구니 속 젊은이를 위해 동백꽃을 바치고, 그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는 행위는 모두 애도의 의미임이 짐작된다. 이는 그 어떤 목숨도 소중하다는 지극히 당연한 메시지라고 하겠다. 그런데 그러한 당연한 메시지마저 전혀 고려되지 않던 죽음들이 4.3 때는 일상이 되어 있었다. 그런 일상이었기에 영감의 헌화(獻花)와 어루만짐은 숭고한 행위가 된다.
부스럼영감은 관청일에서 해고된 뒤 선거에 이용된다. 원래 정씨였던 그는 1949년 국회의원 보궐선거를 앞두고 ‘등록공작’에 의해 ‘이백통’으로 등록된다. 전주이씨 집안의 유력자인 ‘서방님’이 호적 없는 사람들을 등록하여 선거권을 갖게 하고, 그 표를 부재자 투표 등에 마음대로 이용하려는 술책에 이용된 것이다. 영감은 등록공작에 직접 나서기도 한다. 일정한 자금을 받고, 성적이 좋으면 배당금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포섭할 수 있는 부랑자를 찾기는 그에게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던 중 인근 마을에서 집단폭행당하는 문둥이를 데려다 등록하려고 시도했다가 쫓겨나는 신세가 된다.
서방님 집에서 쫓겨난 영감은 성안 쪽으로 걸어가던 도중에 까마귀떼를 만난다. 무서운 기세로 이동하는 까마귀떼의 행선지도 그와 같은 성안의 관덕정이었다. 관덕정에는 군중들이 모여 있었다. 수십 명의 빨치산 패잔병들이 어깨에 모가지를 꿴 죽창을 메고 광장을 돌고 있었는데, 그걸 보는 주민들은 소위 ‘강제구경’에 동원된 상황이었다. 패잔병들의 가슴에는 ‘신성한 대한민국의 국시(國是)를 위반한 반도(叛徒)’라는 포고문이 붙어 있었다. 그 장면을 보면서 영감은 자신의 과거 관청일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졌을지 알게 된다. “모가지의 행렬 앞에서, 모가지를 갖고 돌아다니던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악한 것이었는지를 처음으로 깨달았”(191쪽)던 것이다.
그때 강제구경하는 군중 속에서 소푼이가 뛰어나왔다. 영감에게 오빠 목을 찾아달라고 돈을 주었던 처녀였다. 바로 그 빨치산 오빠의 목을 발견하고 달려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미처 오빠 목에 다가가기도 전에 경관의 총에 맞아 쓰러진다. 그날 밤 영감은 슬픔에 빠져 밤길을 거닐다가 관덕정 앞 경찰서로 갔다. 영감은 경찰에게 소푼이의 시체를 사는가 하면, 그녀 오빠 모가지 대신에 어떤 젊은이의 모가지를 함께 받아갔다. 그것들을 관덕정 돌계단 밑으로 가져간 그는 결국 젊은 남녀의 시신과 모가지 옆에서 죽어갔다. 애도를 넘어 죽음을 함께하기에 이른 셈이다.
이렇듯 박서방과 부스럼영감은 권력에 이용당하는 민중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 박서방과 부스럼영감은 지극히 순수하기 때문에 그 진실을 가장 투명하게 말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둘은 모두 4.3의 와중에 관청에 이용된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희화화된 탓도 있겠지만, 그 둘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은 퍽 부정적인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그들은 결국 긍정적인 인물로 탈바꿈한다. 하지만 그들이 긍정적 인물로 완전히 탈바꿈했을 때에는 불행히도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4.3은 그래서 더욱 처절한 것이다.
이밖에 ?간수 박서방?의 용담리 조과부는 제주민중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들려준다. “정말 터무니없는 세상이 되어버렸어”라며 경찰을 도둑놈으로 규정하고 이승만 대통령을 욕하는 조과부가 수용소에 갇힌 죄수라는 점은 4.3의 진실을 말해준다. ?간수 박서방?의 송명순, ?까마귀의 죽음?의 장양순, ?관덕정?의 소푼이는 유사성이 매우 큰 인물들이다. 셋 모두 빨치산 오빠를 둔 젊은 여성이다. 모두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누이들이다. 송명순은 박서방이, 소푼이는 부스럼영감이 각각 마음에 두는 여인이며, 장양순은 정기준의 애인으로 나온다. 이들은 작품에서 그다지 두드러진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아니지만, 모두 주요 인물의 인식 변화나 행동에 강한 영향을 끼치는 여성들이다. 4.3에서 여성수난사를 대변하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3. 지식인: 투쟁 앞의 고뇌와 번민과 갈등
4.3의 와중에서 전개된 제주 지식인들의 활동상은 ?까마귀의 죽음?에만 나타난다. 혈기왕성한 20대 젊은이들인 정기준과 장용석, 이상근은 각기 자신의 처지에서 섬의 운명과 관련하여 투쟁하고 고뇌하고 좌절하고 갈등한다.
정기준은 23살 청년이다. 미군정청 법무국에 소속된 통역으로서 주로 미군복 차림으로 다니지만, 비밀 당원이다. 미군정청을 통해서 확인되는 정보들을 입산한 친구인 장용석을 통해 당에 전하는 것이 그의 주요 임무다. 광주 전임(轉任) 통고를 받고서 떠날 것인가, 수를 써서 남아 있을 것인가, 아니면 아예 입산 투쟁을 전개할 것인가 고민에 빠진다. 그가 자신의 역할에 대해 크게 갈등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그를 배신자로 알기 때문이다. 입산하여 가족과 연락도 여의치 않은 장용석 정도만 그의 상황을 알고 있을 따름이다. 사랑하는 여인(장용석의 동생 양순)마저도 그가 스파이 당원임을 전혀 모른다. 어느 날 고향 마을에 갔다가 양순의 환영을 보고 당황하는 장면은 그의 심적 고통이 극심함을 입증한다. 기준은 수용소에서 용석의 부모를 만나고도 외면할 수밖에 없었다. 용석 아버지에게 “썩은 놈”이란 욕설을 들으면서도 끝내 자신이 비밀 당원임을 밝히지 못한다.
당을 위해, 조국을 위해! 이것이 이 순간의 그를 더한층 불행하게 만들어, 자신을 던져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무서운 양심의 평안을 위하여, 그는 인간성을 죽이고 양순의 양심을 죽였다.(116쪽)
기준은 수감 중이던 양순이가 부모와 함께 처형되는 장면도 멀리서 지켜볼 뿐이다. 밭 구덩이에 묻힌 시신도 수습하지 못한다. 그는 자기가 양순을 죽인 것 같은 착각에 사로잡힌 채로 술을 마신다. 이튿날 경찰서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여 미증유의 제주도 빨치산 섬멸작전이 전개될 것임을 알게 된다. 땀에 흠뻑 젖어 회의장을 나와 비가 세차게 내리는 밖에 선 그는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소녀의 시체와 시끄럽게 울어대는 까마귀를 만난다.
까마귀는 분명히 소녀에게로 날아오려고 했다. 기준은 자기도 모르게 발을 멈추고 까마귀를 쳐다보았다. 까마귀는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까마귀는 마른 나뭇가지를 침착하게 콕콕 쪼아대다가, 다시 울기 시작했다. 집요하게 계속 울어대며 침입자에 대한 적개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갑자기 기준은 그 무인부락(無人部落)의 길가에 굴러 있던 죽은 까마귀를 생각해냈다. 마른 나뭇가지를 콕콕 쪼는 부리소리가 그 맑은 구둣발소리를 되살렸다. 양순의 하얀 그림자가 나부꼈다.(135쪽)
기준은 권총을 꺼내 까마귀를 쏜다. 그리고 그때 나타나 총 솜씨를 칭찬하는 경비부장을 쏘고 싶다는 충동이 일자 다시 방아쇠를 당긴다. 탄환은 부장이 아닌 소녀 시체에 박힌다. 그는 “이곳이야말로 내가 의무를 완수하고 내 생명을 묻기에 가장 어울리는 땅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를 악물었다.”(138쪽)
기준이 소녀의 시신에서 양순을 떠올렸음은 곧 까마귀를 미국과 이승만 세력의 하수인인 경찰과 군인으로 인식했음을 뜻한다. 제주 민중을 괴롭히는 무리들에 대한 처단인 것이다. 쏴 죽이고 싶은 대상인 경비부장이 서북 출신이었음도 의도적인 설정임은 물론이다. 결국 기준의 총질은 자기 처지의 답답함에 대한 우회적 분출, 엄청난 폭압적 상황에 대한 상징적 저항 등의 의미로 읽힌다.
장용석은 양순의 오빠이자 정기준의 친구다. 입산 활동을 하는 가운데 기준에게 미군정청에서 나오는 정보를 전달받는 역할 등을 수행한다. 그는 누이가 기준을 배반자로 보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 “너희들이 아무리 친했다 해도 난 해서는 안 될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어”라면서 “그 녀석이 너를 배반자로 보고 단념한다면, 너는 진짜 배반자의 자격이 있는 셈이야. 하나의 공덕이지”(88쪽)라고 말하는, 매우 냉정한 인물이다. 오로지 투쟁만을 위해 헌신하는 이상적 인물로서, 평면적으로 그려졌다. 흥미로운 사실은 장용석이 실존인물과 동일한 이름이라는 것이다. 김석범이 해방 전후에 귀국했을 때 조국의 운명을 함께 논의하던 인물이 바로 장용석(張龍錫)이었던 것이다. 여기서도 우리는 소설 속 지식인 인물들이 작가와 거리가 가까움을 알 수 있다.
이상근은 부르주아 집안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식산은행 중역이며 전라도에도 땅을 많이 갖고 있는 지주다. 서울에서 학업을 포기하고 제주에 돌아와 방탕에 가까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 현실에서의 그는 그저 술꾼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런 생각이 없는 탕아가 결코 아니다. 정기준이 스파이라는 사실도 눈치 채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상근은 부스럼영감이 갖고 다니는 빨치산 목을 낚아채고는 그게 자신의 친척이라고 하면서 “그러니까 나도, 내 가족도 모두 죄인이야”라고 소리친다. 그 소동 때문에 그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경찰서에서 하룻밤 지내야 했다. 이는 빨치산 투쟁에 대한 심정적 동조 행위로 읽힌다. 그러기에 상근으로서는 눈앞에 전개되는 현실이 도무지 못마땅하고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야만적인 원색(原色)의 사회에서 내 영혼이 괴로워서 발버둥 치다가 둘로 쪼개져 있”(102쪽)다고 생각한다. 그는 기준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한다. 경찰서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후 기준과 술을 마시면서 넌지시 자기 심정을 드러내기도 한다.
“경철은 공무집행방해…… 하하하, 그게 공무랍니다. 나아가서는 우리 대한민국에 대한 반역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혁명을 모독한 비열한 반역자, 인민에 대한 배반자로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한 나를 권력에 대한 저항자로 볼 수도 있지요……”(128쪽)
상근은 자신이 ‘혁명과 인민의 반역자.배반자’이자 ‘권력에 대한 저항자’라는 양면성을 지녔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보듯이 그는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해 매우 괴로워하고 있다. 개인적 상황과 현실의 모순 사이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지식인의 모습이다.
그런데 그는 계속 방관자적 위치에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작품 마지막에서 그는 까마귀와 소녀 시체에 총을 쏜 후 신작로를 걸어가는 정기준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기준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세찬 빗줄기를 맞으며 상근이 가만히 지켜보는 장면으로 끝냈음은 의미심장하다. 머잖아 그에게 어떤 변화가 올 수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가 택할 길은 권력에 대한 저항자로서의 길로 짐작된다. 그것이 적극적인 투쟁 방식으로 나타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나름대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상 세 명의 제주 청년 지식인은 당시 존재했을 법한 세 유형을 대표함은 물론이요, 작가의 분신들이라고 할 만하다. 방관자적 위치에서 배반자와 저항자의 양면성을 지닌 이상근은 4.3 당시 일본에 있으면서 아무런 역할도 못하던 김석범의 외적 상황을 보여주고 있고, 정기준을 통해서는 4.3에 대한 김석범의 관점이 주로 표출되고 있으며, 장용석의 경우는 김석범의 이상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해방 직후 이들 청년 지식인들에게 주어진 ‘새 조국 건설’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아름답게 꽃피어 튼실한 열매로 맺어지지 못했음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4. 관점: 반제국주의 통일투쟁의 길
김석범의 4.3 연작은 구체적인 역사적 사실(팩트) 자체보다는 역사에 대한 관점이 중요한 작품들이다. 김석범은 4.3을 결코 지역의 특수 상황이나 국내의 혼란한 정국에서 발생한 문제로 묶어두지 않는다. 만약에 지역 문제나 국내 문제로만 4.3을 인식했다면 김석범이 굳이 일본에서 그걸 지속적으로 다루어야 할 이유가 없다.
그렇다면 김석범이 이 작품집에서 보여주는 관점은 무엇인가. 제국주의적 패권에 대한 저항, 통일 정부 수립을 위한 열망이 바로 그것이다. 작가는 4.3이 반(反)제국주의 통일투쟁이라는 입장을 뚜렷하게 견지한다.
특히 신제국주의적 전략과 관련된 미국에 대한 인식은 매우 주목되는 부분이다. 김석범은 4.3과 미국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되, 주저하지 않고 그 발발 원인으로 미국을 꼽는다. 남한을 점령한 미군이 일본에 이어 식민지정책을 시행한 것이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단선반대와 통일정부 수립이 봉기의 명분이었음도 분명히 한다.
그런 어처구니없는 일도 모두, 8.15 해방이 아다시피 미군의 남조선 점령으로 대치된 것에서 비롯된다. 일본 대신 식민지정책을 시행하여, ‘적색위협(赤色威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말을 듣지 않는 ‘놈’은 모조리 감옥에 처넣었다. 그리고 전근대적인 초전제국가(超專制國家)가 아니고는 불가능한 공포정치를 시작했기 때문에, 문자 그대로 암흑지대가 되었다. 자기 나라를 또다시 빼앗기고 인민이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 그래서 일어섰다. (…) 48년 4월에는 남조선만의 ‘단독선거’―즉 ‘대한민국’ 수립에 반대하고 조선의 통일을 요구하며 제주도에서 일제히 무장봉기가 일어났다. 제주도민이 손으로 만든 무기 따위를 손에 들고, 섬 한가운데에 우뚝 솟아 있는 한라산에 모여, 남조선에서 최초인 빨치산 투쟁의 봉화를 올렸던 것이다. 깜짝 놀란 미국과 이승만도 역시 이 투쟁의 철저한 탄압과 말살을 위해 일어섰다. 제주도민은 모두 ‘빨갱이’가 되어버리고, 감옥은 확장되었다.(36쪽)
인용문은 ?간수 박서방?에서 3인칭 화자(narrator)에 의한 서술이다. 작가 김석범의 목소리라고 해도 무방하다.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간 자리에 미국이 점령하여 식민지정책을 시행하였다는 것, 미군정은 반공의 명분 아래 민중들의 요구에 반하는 공포정치를 실시하였다는 것, 결국 남한만의 단독선거를 반대하면서 통일정부 수립을 요구하는 봉기가 발생하였다는 것, 급기야 제주도민들은 미국과 이승만 세력에 의해 모두 빨갱이로 지목되어 탄압과 말살에 희생되었다는 것, 이것이 바로 4.3을 보는 작가의 눈이다. ?까마귀의 죽음?에서 서술된 미군에 대한 입장도 마찬가지다.
일본이 망하고, 미군이 인천상륙보다 약 1주일 늦은 9월 중순경 이 섬에 상륙했을 때, 일시적이나마 확실히 해방군다운 감격을 청년들에게 주었었다. 섬사람들은 의아한 눈초리로 일본군 대신 섬을 점령한 이 이상야릇한 외국 군대를 쳐다보았다. (…) 미군 정책과 조선인민과의 이해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곧 분명해지고, 그것은 또한 도민과 제주 미군정청이 대립하는 형태로 눈앞에 뚜렷이 드러났던 것이다.(109-110쪽)
제주사람들에게 일시적으로 해방군다운 감격을 주었던 미군은 곧 점령군으로서의 본색을 드러냈다는 말이다. 하지만 미군(미국)은 교묘했다. 대리 세력들을 내세워 의도를 관철시키려 하였다. 작가는 “미군은 항상 배후에 숨고, 그 대변자들, 예를 들면 경찰 권력이나 우익정당의 돌격대인 ‘서북청년회’나 ‘대동청년단’ 또는 ‘한라단(漢拏團)’ 같은 지방테러단체를 앞에 내세웠다”(110쪽)고 분명히 말한다. 4.3은, 피상적으로만 본다면, 제주도민 혹은 국내 좌우 세력 간의 충돌이다. 하지만 그건 외피일 뿐이며, 실은 미국이라는 배후가 있음을 김석범은 분명히 하고 있다. 바로 이 점이 1980년대까지 국내 작가들이 썼던 4.3소설과 확실히 구별되는 부분이다.
김석범의 반제국주의적 관점은 일본에 대해서도 표출된다. ?까마귀의 죽음?에서 보면, 벚나무를 일제와 연결시키고 있다. 이는 왕벚나무 자생지가 제주도임이 강조되지 않은 시점에서의 관점으로, ‘사꾸라’로서의 벚나무에 의미부여한 것임은 물론이다.
옛날 ‘황민화(皇民化)’ 정책의 일환으로 심어진 묘목은 이제는 옹기투성이인 고목(古木)의 모습까지 보이며 찬 공기 속에 마른 나뭇가지를 쭉 뻗치고 있었다. 아침에는 감방에서 끌려나와 내팽개쳐진 수많은 시체가 벚나무 밑 잔디밭에 그대로 굴러 있곤 했지만, 오늘은 벌써 다 치웠는지 거적때기도 보이지 않았다. (…) 봄이면 구내를 온통 구름처럼 뒤덮는 벚꽃을 그는 순수한 눈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 옛날 조국을 잃은 어두운 나날들의 흔적이 아직도 그의 의식 굽이굽이에 밀착되어 있었다. 벚나무가 오로지 벚나무가 아니라 총칼의 동반자가 되어 있었던 그 나날 속에 그의 아픔은 연결되어 있었다.(66쪽)
경찰서 구내의 벚나무를 보면서 느끼는 정기준의 반일(反日)감정이 드러나 있다. 작가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정기준은 바로 그 벚나무 부근에서 총을 쏜다. “까마귀가 머리 위에서 시끄럽게 울”어서 “쳐다보니, 커다란 놈 하나가 벚나무의 높은 가지 위에 앉아 있었”(134쪽)고, 소녀의 시체를 노리는 그 까마귀를 향해 권총 방아쇠를 당겼던 것이다. 이는 일본 제국주의와 친일세력에 대한 응징이면서, 미국 제국주의와 친미세력에 대한 저격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사실상 차이가 거의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똥과 자유?와 ?허망한 꿈?은 일제 강점 문제가 직접 드러난 작품이다. 4.3 관련 내용은 아니면서도, 작가가 왜 그토록 시종여일 4.3을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는지, 4.3에 대한 그의 관점이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는 텍스트들이라고 하겠다.
?똥과 자유?는 김석범이 1959년 오사카 쓰루하시 역 근처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할 때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창작한 소설이라고 한다. 일제 말기 홋카이도 광산을 무대로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겪는 참혹한 실상이 그려진 작품이다. 나리야마 다이이치(成山太一)라는 창씨명을 가진 19살 성태일이 주인공이다. 일본에서 고학하며 중학을 다니다가 조선역사책을 소지했다는 이유로 퇴학당해 귀향한 후 모친상을 치르던 중 강제 징용된 인물이다. 창씨명이 리모토 메이쇼쿠(李元命植)인 이명식은 탈출했다가 체포되어 매 맞아 죽고, 오야마 류하쿠(大山龍白)라는 창씨명의 용백은 동료 집단 폭행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폭행당한 후 백치가 된 채로 계속 일을 한다. 지옥 같은 생활에 견디지 못한 성태일은 오랜 공을 들인 끝에 화장실을 통해 탈출을 감행하면서 똥물 속에서 자유를 느낀다. 일제의 만행과 민족주의적 관점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작가가 4.3소설에서 견지하는 관점과 맥락이 닿음을 알 수 있다.
?허몽담?은 작가의 실제 체험과 관련되는 작품이다. 1945년 8월 15일 오후 도쿄의 기차 안에서 젊은 일본 여자가 눈물 흘리는 장면은 김석범이 직접 본 것이라고 한다. 1960년대 후반이 소설적 현재인 이 작품에서는 ‘나(R)’가 1946년 3월경 서울에 있던 시절에 창자가 소라게들에게 먹히는 꿈을 꾸는가 하면, 외국인등록증명서 등 재일조선인의 현실적 문제를 제기한다. 특히 식민지조선에 정착한 일본인의 아들로 태어나 소학교 시절을 조선에서 보낸 저널리스트 ‘F’가 조선 문화에 친근감을 느낀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살고 있지만 일본 문화에 그러한 감정을 가질 수 없음을 토로한다. 결국 식민의 입장과 피식민의 입장은 전혀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인바, 일본에 사는 조선인 디아스포라의 위상과 정체성의 문제를 고민하는 작품이다. 이러한 민족 문제에 대한 천착 역시 작가의 4.3 인식과 깊이 관련되는 부면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일러둘 말이 있다. 한국의 독자들은 이 작품집에 나오는 4.3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에는 너무 기대지 않는 편이 좋다는 것이다.
예컨대 ?관덕정?에서는 시간적 배경이 혼란스럽게 설정된다. 등록공작이 전개되는 상황 즉, 보궐선거 직전으로 설정되었음에도 “가을도 깊어가던 어느날”(179)과 같은 표현이 나온다. 이는 실제 역사와는 맞지 않는다. 1948년 5.10선거에서 제주도의 2개 선거구가 무효로 된 이후 첫 보궐선거는 1개월 후인 1948년 6월 10일에 시도되었으나 실패하였고, 결국 1년 후인 1949년 5월 10일의 보궐선거로 모두 마무리되었기 때문이다.
나카무라 후쿠지(中村福治)도 ?까마귀의 죽음?에서 정기준이 미군정청 통역으로 일하는 상황 설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이미 존재하지 않은 미 군정청에서 일하는 정기준을 주인공으로 세운 것은 아무리 픽션이라 하더라도 분명한 실수”(??김석범 ??화산도?? 읽기??, 삼인, 43쪽)라고 지적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정치적으로 미군정은 종료되었는데, ?까마귀의 죽음?의 시간적 배경은 1948년 말에서 1949년 초의 겨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에 주목하는 것은 이 책의 올바른 독법이 아니다. 직접 체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타국에서 쓴 작품이기 때문에 디테일에서 미흡한 부분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게다가 작품 집필 당시는 4.3에 대한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이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5. 지금-여기에서도 빛나는 까닭
김석범은 첫 작품집인 ??까마귀의 죽음??이 자신의 창작 전체를 지배하는 원점이 되었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다. 그가 ?보이지 않는 힘이 써 가는 집대성으로서의 장편?(1989)에서 “??화산도??의 주인공이나 주요 등장인물, 그리고 테마 그 자체도 ??까마귀의 죽음??에서 원형을 구할 수 있을 것이고 (…) ??까마귀의 죽음??이라는 모태 없이 ??화산도??는 태어날 수 없었을 것”(나카무라의 앞의 책 36쪽에서 재인용)이라고 말했듯이, ??까마귀의 죽음??은 대하장편 ??화산도??와 긴밀히 연결된다. ??까마귀의 죽음??과 ??화산도??를 모두 읽은 이들은 특히 인물의 유사성을 어렵지 않게 파악할 수 있다. 정기준과 양준오, 이상근과 이방근은 거의 동일한 인물이며, 장용석과 남승지도 퍽 유사하게 설정되어 있다. 지식인 청년들의 고뇌, 빨치산 여동생과의 사랑, 스파이 당원 활동 등 전자의 주요 모티프들이 후자에서 반복되고 있다. 따라서 ??까마귀의 죽음??은 김석범 문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한 필독서일 뿐만 아니라, 4.3소설의 한 전범(典範)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마땅하다.
2015년 4월, 김석범은 4.3의 진상규명운동과 평화.인권운동을 펼쳐온 상징적인 인물로 평가되어 ‘제주4.3평화상’의 첫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수상 소감에서 김석범은 “저는 한국 국적도, 북한 국적도 가지지 않은, 한마디로 무국적자입니다. 90평생 서울과 제주를 합쳐 3, 4년밖에 조국에서 살아보지 못한 디아스포라입니다. 이 사람이 오늘 여기 고향땅 위에 발을 디디고 서 있습니다. 남과 북으로 두 동강난 반쪽이 아닌, 통일 조국의 국적을 원하는 나에게는 ‘국적’으로 뒷받침된 조국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라고 자신의 정체성과 통일조국에 대한 염원을 밝혔다. 그리고 “남한만의 단독정부, 반공이 국시인 대한민국, 그 정부의 정통성을 세계에 과시하기 위해 제주도를 소련의 앞잡이 빨갱이섬으로 몰았습니다. 해방 전에는 민족을 팔아먹은 친일파, 해방 후에는 반공세력으로, 친미세력으로 변신한 그 민족 반역자들이 틀어잡은 정권이 제주도를 젖먹이 갓난아기까지 빨갱이로 몰아붙인 것입니다.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표방했지만 과연 친일파, 민족반역자 세력을 바탕으로 구성한 이승만정부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할 수 있었겠습니까. 여기서부터 역사의 왜곡, 거짓이 정면에 드러났으며 이에 맞선 것이 단선.단정수립에 대한 전국적인 치열한 반대투쟁이 일어났고 그 동일선상에서 일어난 것이 4.3사건이었습니다.”라고 4.3의 성격 규정도 분명히 하였다. 사실 이는 ??까마귀의 죽음??에서 견지한 관점을 다시 강조한 것에 불과하다. 그런데 이런 수상연설 내용을 접한 일부 국회의원, 언론, 보수단체 들은 ‘대한민국을 민족반역자가 세운 나라라고 망발한 김석범의 평화상을 박탈하라’며 들고 일어섰다. 이런 협소하고 치졸한 시각이 엄존하는 것이 바로 4.3의 현실이다.
4.3에서 추모와 해원의 의미만 추구하다 보면, 종국에는 지역과 국가의 문제로 한정되면서 수구세력의 ‘종북프레임’에 걸려들고 말 것이다. 지역과 국가를 넘어서는 거시적 시야를 분명히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지구적 차원에서 평화와 인권에 기여하는 것, 그것이 우리가 4.3을 기억하고 기념해야 하는 진정한 이유일진대, 김석범이야말로 이미 수십 년 전에 그러한 거시적 시야를 제시하였던 것이다. 그러기에 ??까마귀의 죽음??은 지금-여기에서도 빛날 수밖에 없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석범
1925년 출생. 1967년 작품집 <까마귀의 죽음(鴉死)>을 출간하여 작가로서 데뷔. ‘제주 4?3사건’을 소재로 1997년에 완간한 <화산도(火山島)>(전7권)는 오사라기지로(大佛治郞)상, 마이니치(每日)예술상을 수상하였다. 이 소설은 한국에서 2015년에 전12권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같은 해에 제1회 ‘제주4.3평화상’을, 2017년에 제1회 ‘이호철통일로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이밖에도 <만월>, <땅속의 태양>, <죽은 자는 지상으로(死者地上)> 등의 많은 소설이 있으며, 평론으로는 일본어로 집필하는 재일작가의 역할과 그 문학적 방법을 담아낸 <언어의 주박(言葉呪縛)>과 <민족.말.문학> 등이 대표적이다. 이밖에도 재일동포의 인권문제와 국적문제, 조국의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낸 많은 작품과 평론, 대담 등이 있다.
옮긴이 : 김석희
서울대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 프랑스어, 일어를 넘나들며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의 《월든》,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 쥘 베른 걸작선집(20권) > 시리즈,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 등 많은 책을 번역했으며 제1회 한국번역대상을 수상했다.
목 차
초판의 ‘저자의 말’ - 008
간수 박 서방 - 013
까마귀의 죽음 - 081
관덕정 - 167
똥과 자유 - 235
허몽담(虛夢譚) - 317
작품 해설 - 355
역자 후기 -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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