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저자 이승윤은 남덕우와 함께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서강학파’의 핵심이다. 제목 ‘전환의 시대를 넘어’가 암시하듯 저자는 60년대에 시작되어 70년대와 80년대에 정점을 이룬 산업화를 한국의 운명을 가른 ‘전환기’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60년대에 산업화의 첫 단추를 끼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산업화를 이끈 것은 맞다. 그러나 일본군 출신으로 일제시대의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박정희 대통령이 처음부터 '서구'산업화를 기획한 것은 아니었다. 쿠데타를 정당화하기 위한 ‘잘 살아보자’라는 구호가 아이러니하게 절대 권력화가 되어 초법적 기획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만들어졌고, 여기에 전후의 유학파들인 서구경제학자들이 정권에 참여해 서구근대이론을 접목시켜서 ‘산업, 근대화’로 개념화 한 것이다.
휴전직후,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에 재학 중이던 이승윤은 심각한 고민에 빠진다. 당시의 고민 한 대목을 보자.
‘부산의 전시연합대학을 거치며 2년여를 수학할 즈음 나는 전공과목에 대해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이때 서울대 문리대 영문과에는 당대의 유명한 석학인 이양하(李敭河), 권중휘(權重輝), 송욱(宋稶) 교수 등이 있었고, 나는 이들로부터 ‘세익스피어’와 ‘T. S. 엘리엇’ 등 고전과 현대 영문학을 배웠다. 그러나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전쟁의 참상에서 영문학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국토가 파괴되고, 경제의 기초인 의식주가 무너진, 전쟁이 홅고 간 참상에서 영문학 공부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라는 회의에 빠진 것이었다. 결국 이승윤은 전후의 현실에서 경제학 공부가 답이라는 결론을 짓고 미국유학을 떠나게 된다.
전후, 무너진 국가경제라는 문제의식에서 선택한 이승윤의 경제학 미국유학은 적중한 것 같다. 돌아와 아직도 전근대적인 일제의 경제정책을 답습하던 한국경제에 서구경제학을 접목하는데 일조를 했기 때문이다.
1961년 경제학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한 이승윤은 연세대, 그리고 서울대 상대 강단에 서며 학자의 길을 걷는다. 이에 대해 이승윤은 학자의 길을 소망했다기 보다는 당시 박사학위를 갖고 갈수 있는 곳은 대학밖에 없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서울대 부교수로 입지를 다질 무렵, 이승윤에게 운명 같은 제안이 들어온다. 서강대학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다. 한국 최고의 대학인 서울대 교수가 1960년에 설립된 신생 서강대학으로 간다는 것은 이해타산적으로 보면 격에 맞지 않았지만, 이때 이승윤은 서강대 행을 택한다. 파격적인 대우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결정적 계기는 상경대(商經大)에 <경제연구소>를 세워 소장 직을 맡기겠다는 것 때문이었다. 지금이야 경제 '연구소'가 흔해 빠졌다고 할 정도지만, 당시에는 경제를 연구하는 변변한 기관이 하나도 없었다는 측면에서 보면 이승윤의 '경제학'에 대한 천착은 짐작할만 하다.
서강대학 또한 이승윤을 스카우트하는데 심혈을 기울인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경제학과>를 한국 최고학과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수립하고, 그 적임자로 이승윤을 지목한 것이었다. 이승윤은 이때 서강대학 경제학부를 한국 최고로 만들기 위해서는 혼자만으로 안 된다고 생각하고 국민대학에 있던 남덕우 교수를 만나 함께 할 것을 권했고, 남덕우도 흔쾌히 응한다.
두 사람의 의기투합은 역사적인(?) 서강학파의 발단이었다. 이후 서강대 경제학부엔 김만제, 김덕중, 박성용, 김종인, 그리고 김병주, 김광두까지 서구유학파들이 운집했고, 특히 정부 정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며 서강대 경제학부는 근대화 국가경제정책의 산실이 되었다.
이승윤은 학교에 있으면서도 금융통화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고 비공식적으로 박정희 대통령에게 자문을 하다가 78년 학교를 떠나 국회로 진출했다. 80년에는 재무부장관을 맡아, 정치적 혼란기의 경제를 안정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다. 특히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내란음모로 체포되어 사형까지 언도된 김대중 씨에 대한 미국 등 서구 여러 나라로부터 경제지원을 고리로 하는 구명 압력도 이 회고록을 읽는 묘미로 다가온다.
1990년에는 경제부총리에 발탁되는데, 저자는 그때그때 주어진 상황에 충실할 뿐 살아오면서 무엇을 하겠다는 목표를 가진 적은 없었지만 경제부총리만은 꼭 해보고 싶었노라고 고백하고 있다. 그 대목을 보자.
나는 여태까지 살아오면서 ‘무엇을 꼭 하겠다’고 의도한 적은 없었지만 ‘경제부총리’만은 해보고 싶었다. 미국 유학을 다녀와 연세대, 서울대, 서강대 경제학교수, 그리고 재무장관과 국회에서의 정책위의장을 두루 거쳐 오면서 개안(開眼)되었다고나 할까, 한국경제가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그래서였는지는 몰라도 <경제부총리>를 맡아 국가경제를 한번 멋지게 경영해보고 싶었다.
경제부총리를 맡아 안정의 기조를 다졌지만, 조금 더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시간을 가지지 못한 아쉬움도 토로한다. 당시 <수서사건>에 휘말린 청와대가 민심수습용으로 개각을 하며 예기치 않은 퇴임을 했기 때문이다. 전임자 조순 부총리가 벌려 놓은 정책을 정리하다 막상 ‘이승윤경제철학’을 펼칠 시간을 갖지 못한 아쉬움이었다. 특히 비사(秘史)의 한토막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노태우 대통령이 부총리 임명당시 자신과 임기를 함께 하자고 약속했다는 점이다. 3년 가까이 남은 임기를 함께 하자는 것은 파격적인데, 그만큼 노태우 대통령이 저자를 신뢰했다는 증좌가 될 수 있지만 권력의 약속이라는 것은 정권의 운명에 따라 얼마든지 깨질 수 있는 공수표 같은 것이라는 점 또한 분명한 정치의 교훈으로 남는다.
1954년 저자는 전쟁의 폐허 속에 영문학 공부를 중단하고 ‘경제’라는 명제를 안고 유학을 떠났다. 그의 삶의 궤적을 볼 때 경제학 공부를 위한 유학은 잘된 선택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개인으로서나, 공인으로서나 말이다.
저자는 친지들이 자기에게 ‘행복한 사람이라고 한다’고 적고 있다. 저자는 인정하면서 ‘그렇다면 성공한 인생인가?’라는 질문을 하며 회고록의 끝을 맺고 있다. 후회 없이, 열심히 산 삶에서 묻어나는 함의일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이승윤
193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인천고를 나와 서울대 영문과를 다니던 중 ‘경제학’ 공부를 위해 1954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1955년 콜로라도 아담스 주립대학을 거쳐, 1957년 미주리대학과 시카고대학에서 경제학을 수학하고, 1960년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발전을 위한 선택적 신용통제(Selective Credit Control for Economic Development)’라는 논문으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 1960년 연세대, 1962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를 거쳐, 1964년 서강대학교로 스카우트되었다. 1976년까지 서강대 교수로 있으면서 <경제경영문제연구소장>, <경상대학장> 등의 보직을 맡았다. 이때 남덕우, 김만제 교수와 함께 정부 정책에 참여하여 근대화 시기의 경제정책을 주도함으로써 ‘서강학파’라는 신조어를 낳는다.
금융통화위원을 3번 연임하는 등 정부경제정책에 왕성히 참여하던 1976년 학교를 떠나 9대 국회에 등원하며 정계로 진출했다. 이어 10대 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던 중 정치ㆍ경제적 혼란기인 1980년 재무부 장관으로 입각해 위기국면을 수습하고 고도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1983년부터 1988년까지는 해외건설협회장으로 한국 건설의 중동건설 붐을 이끌었다. 1988년 인천 지역구 국회의원으로 의회에 진출해 13, 14대 의원을 지냈다. 이때 정책조정실장과 두 번의 정책위원회 의장으로 정부여당의 경제정책을 조율하면서 정책통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되었다.
1990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입각해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등 정치 전환기의 경제를 조율했다. 1997년 15대 총선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신현확 전 국무총리와 함께 한국의 전직 국가수반을 대표해 인터랙션 카운슬(Interaction Council)에 참석하였다. 1996년부터 2008년까지 <금호아시아나 그룹>의 고문을 지냈다.
목 차
1장 유학 시절
2017년과 1953년
새로운 세계의 낮선 이방인으로서
‘엘마 우드’ 그리고 ‘프리드먼’을 만나다
경제학에 있어서 ‘프리드먼학파’
이동헌 등 친구들과의 교유
박사학위 취득과 평생의 반려자, 정온모(鄭瑥謨)와의 만남
귀국, 그리고 귀향
2장 성장기
협궤열차와 소래포구
청소년 시절의 뜨락
꿈을 키우며 맞은 해방
미군 통역으로 활동
<제2국민병>으로 맞은 생명의 위기
3장 학자 시절
결혼, 그리고 부부가 나란히 강단에 서다
<신화폐금융론>의 저술
<서울대학교>에서 <서강대학교>로 가다
<서강학파>의 발원
언론의 기고와 칼럼으로 인한 필화
김학렬 부총리와의 끊을 수 없는 인연
<근대화> 논리
4장 9, 10대의원과 재무부장관 시절
학교를 떠나 국회로
국회에서의 정책의정활동
남북 간 경제교류를 주창
<서울의 봄>, 비상한 위기국면에서
80년, 혼란기에 재무장관으로 입각
정치적 격변과 위태로운 한국경제
남덕우, 이병철 특사론
미국 재무부와의 불화
천신만고의 엔(円) 차관 도입
비상한 경제안정대책을 세워나가며
<걸프>와의 격렬한 분쟁
금융권 인적교체의 괴로움
금융경쟁력 강화조치
각료추천까지 하게 된 사연
정치ㆍ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아 나가며
교육의 질적 향상을 위한 교육세 신설
금리정책을 둘러 싼 줄다리기
<IMF> 총회
IMF총회의 서울 유치와 김우중 회장의 기여
나의 부족함을 채워주었던 재무부의 인재들
경제 안정의 기반을 다지고 재무장관에서 퇴임
오랜만의 휴식
5장 해외협회장 시절
우여곡절 끝에 <해외건설협회장>에
해외건설업의 구조 조정
개인적으로는 가장 행복했던 시절
<기아경제연구소> 설립 비하인드 스토리
민정당의 ‘총선출마’를 제안 받고
6장 13, 14대 의원과 경제부총리 시절
총선출마, 다시 국회로
‘정책통’으로서의 정치활동
쌀 수매가(收買價)를 둘러싼 해프닝
극심했던 당정(黨政)갈등
<총체적 난국>이라는 신조어의 확산
<경제부총리>로 발탁되어
경제난국을 풀 해법의 고뇌
<관훈토론회>에서의 설전
경계해야 할 ‘정책’의 개념화
새로운 진용을 구축하고
논란(論難)과 난제(難題) 속에서
80년대를 잇는 거시적 담론으로 본 한국경제
경제(經濟)와 정치(政治) 사이에서
국회답변 과정에서의 야당과의 정면충돌
부총리 ‘당연직’ 제도의 폐해
‘인사(人事)’에 대한 한 단상(斷想)
민심수습용 개각에서의 예상치 못한 퇴임
7장 공직 후반기
대통령 특사로 남미 순방
어느덧 회갑(回甲)을 맞고
친구, 최종현 회장을 추억하며
1995년 <IDU당수회의> 서울개최 유치 등 의원외교
문민정부의 정책위의장을 맡아
문민정부 정책과의 갈등
<총선불출마> 선언
영욕의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고
나의 정치인생에 기반이 되어 준 사람들
마음은 항상 지역구민들과 함께
아름다운 작별
8장 여생과 요즘생활
산업 근대화의 소회
‘근대화시대’를 넘어 ‘범세계경제체제’로
나의 정치 운 공직 운
어느덧 원로가 되어
신현확 전 총리와의 친선외교 활동
남덕우 박사와의 반세기
<금호아시아나그룹> 고문으로
친구와 함께 인생의 황혼기를
박성용 명예회장의 뜻밖의 타계
배울게 많았던 친구, 박성용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아름다운 경영문화
사랑하는 가족들
새로 얻은 신앙생활
취미생활과 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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