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나는 백범을 아저씨라 불렀다”
임정의 품 안에서 자란 김자동 임정기념사업회 회장
생생한 회고록 <영원한 임시정부 소년>
김 회장 집안은 독립운동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명문. 1919년 대한제국 대신이었던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의 중국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망명으로 시작된 가족의 독립운동은 아버지 김의한 (건국훈장 독립장)과 어머니 정정화 (건국훈장 애족장)로 이어졌고, 일가는 풍찬노숙하며 임시정부와 27년 영욕을 함께했다.
1928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김 회장은 석오 이동녕, 성재 이시정, 백범 김구 등 임시정부 주역들의 품에서 자라난 ‘임시정부의 손자’였다. 상하이, 자싱, 난징, 창사, 광저우, 류저우, 치장, 충칭 등으로 이어진 임시정부 이동 경로를 따라 성장했고, 임시정부의 중국내 마지막 소재지였던 충칭에서 감격의 광복을 맞는다.
그러나 광복은 분단과 한국전쟁으로 이어졌고, 보성중학을 졸업하고 서울 법대에 진학한 김 회장은 백범 서거와 아버지 김의한의 납북이라는 아픔을 겪는다.
이후 조선일보, 민족일보 등의 언론사에서 기자로 일했고, 1980년대에는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등의 책을 번역하며 한국사회 민주화와 평화통일운동에 기여했다.
2004년에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창립해 회장으로 해 지금까지 회장직을 맡아 사업회를 이끌어오고 있는 김 회장은 20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목전에 두고 정부의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 건립결정을 이끌어낸 성과는 큰 보람으로 꼽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006년 재북애국지사후손 성묘단을 조직해 평양을 방문해 선친 김의한이 묻혀 있는 재북인사묘역을 참배한 것은 잊을 수 없다고 한다.
김 회장은 임정의 참모습을 지켜본, 생존해 있는 몇 안 되는 분 중 한 사람이다. 그러기에 어쩌면 그런 분들 중 마지막이 될 그의 육성 증언은 귀하고 값지다. 할아버지 동농 김가진이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로 망명한 지 100년, 손자인 김자동 회장에 이르러 임시정부가 역사 속에 복원된 것이다. 여기 더해 그가 언론인으로, 기업가로 겪어낸 한국 현대사 이야기는 한반도의 역사적 전환기를 앞둔 우리들에게는 역사로, 교훈으로 흘려 들을 수 없는 가치가 있다.
역사책만으로는 알 수 없는 상하이 임시정부의 분투와 내밀한 속사정, 해방공간의 어지러움 그리고 한국전쟁,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을 견뎌낸 이야기를 되짚어본 김 회장의 회고록은 한 개인의 기억을 뛰어넘어 한국 현대사의 소중한 사료로 남을 것이다.
작가 소개
지은이 : 김자동
1928년 상하이 임정청사 인근 아이런리에서 독립운동가인 부친 김의한 선생과 모친 정정화 여사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김구, 이동녕, 이시영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의 품에서 임시정부와 함께 자랐다.
1946년 조국에 귀국한 필자는 보성중학과 서울대학교 법학과를 거쳐 《조선일보》와 《민족일보》 등에서 기자생활을 했다. 5·16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의해《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이 사형당하는 것을 겪으며 언론계를 떠났다. 쿠데타 직후 민주공화당이 요직을 제안했으나 이를 거절하고 군사정권에 협조하지 않은 일은 잘 알려지지 않은 일이다. 민주화운동에 기여하고자 하는 열망을 1980년대에 브루스 커밍스의《한국전쟁의 기원》,《모택동전기》(한수인 저) 등을 번역하면서 표출했다.
1987년 6월항쟁으로 새롭게 탄생한 헌법 전문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이 기술되면서 저자는 임시정부의 의의를 교육하고 사료를 발굴하는 일의 필요성을 역설했으나 역대정부의 무성의로 여의치 않았다. 이 사업을 민간운동으로 발전시키고자 2004년 (사)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를 만들어 지금까지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민족일보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든 저자와 유가족 등의 노력으로《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명예를 회복했다. 2011년 《한겨레》 ‘길을 찾아서’란에 ‘임정의 품 안에서’라는 제목의 글을 83회 연재했다. 중국어와 영어에 능통한 저자는 지금도 국제관계에 남다른 식견을 가지고 있다.
목 차
머리말
[1부] 충칭 시절
1. 귀국 전야
한커우의 자반고등어 구이 / 손창식과 정환범 / 한국인 검표원
2. 해방
갑자기 찾아온 해방의 두 얼굴 / OSS와 광복군 국내 정진공작 / 학병 출신들과의 인연 / 텃밭 농사와 배급 쌀 ‘평가미’ / 안개도시 충칭의 겨울날씨 / 폐결핵이 앗아간 박차정과 김인
3. 학생 시절
소학교 다섯 곳을 다니다 / 장진 제9중학 시절의 삼형제 / 학창 시절의 추억과 친구들 / 가장 듣기 싫은 소리 ‘왕궈누’ / 임시학교 교사 김효숙 부부와 김철 / 광복진선청년공작대 소년대원 활동 / 신문과 잡지로 시사에 눈을 뜨다 / 학생의용군에 지원하다 / 한독당 업무
4. 임시정부 선생님들
궃은 일 도맡은 ‘비서장’ 차리석 / 나의 ‘아저씨’, 백범 / 석오 이동녕과 성재 이시영 / 임정 어른들과의 추억
5. 임시정부의 여러 가지 사건들
5지대장 나월환 암살사건의 진실 / ‘김구 오른팔’ 안공근, 누가 죽였나 / 잊을 수 없는 사람들 김영린·김염·이건우 / 일본군 ‘위안부’ 여성들
[2부] 귀국 그리고 격동의 세월
1. 조국으로 가는 길
미군 수송선 타고 상하이 출발 / ‘개인 자격’으로 귀국한 임시정부 / 부산 도착, DDT 세례를 받다 / 숨은 애국자 우강 최석순 선생
2. 고국에서 시작된 생활
우사 집에서 받은 마지막 세뱃돈 / 아버지의 절친, 청전 이상범 화백 / 끝내 되찾지 못한 백운장
3. 보성중학 시절
두 차례 고배 끝에 보성중학 진학 / 보성중학 시절의 추억들 / ‘국대안 파동’과 스트라이크 반대 / 해방 공간에서의 추억 / 불발로 끝난 독립운동 자료 수집
4. 해방 정국
고하 송진우 암살사건 / 몽양 여운형 암살사건 / 설산 장덕수, 설산雪山에 묻히다
5. 백범 김구
백범 “내 직업은 독립운동이오!” / 잇따른 요인 암살의 배후
6. 신탁통치
모스크바 3상회의와 《동아일보》 오보 / ‘5·10총선거’와 단독정부 수립 / ‘단독정부’에 동참한 성재와 해공 / 족청族靑과 철기 이범석의 변신
7. 백범을 잃다
백범, 흉탄에 쓰러지다 / ‘무기징역’ 안두희, “할 일 다 했다”
8. 대학 입학과 한국전쟁
주위의 권유로 서울법대 진학 / 한국전쟁 발발 사흘 만에 서울 점령 / 의용군 강제입대, 꾀병으로 풀려나 / 아버지 납북과 박종길의 호의 / 미군 통역 시절 / 어머니의 ‘부역죄’ 감옥살이와 수양딸
[3부] 언론계 시절
1. 조선일보
《조선일보》 견습 1기 / 외신부서 시작해 판문점 출입도 / 유건호 사회부장과의 인연 / 《뉴욕타임스》의 얄타회담 비밀문서 / 송건호와 리영희 / 은마차다방과 ‘이승만 암살모의’ / 《조선일보》 시절의 편린들 / 백상 장기영 사장의 공과 / 장기영의 숨은 비화 두 가지 / 진먼도 취재 중 순직한 최병우
2. 다시 언론계로
진보당 사건과 친구 조규택 / ‘2·4 파동’과 《경향신문》 폐간 사태 / 4·19혁명과 언론계 복귀 / 싱겁게 막 내린 《새나라 신문》
3. 민족일보
7·29총선과 《민족일보》 창간 / 장면 정부의 탄압과 인쇄 중단 사태 / 파격적인 편집으로 지면 차별화 / 마산 3·15의거 1주년 현지 취재 / 대구 ‘2대 악법’ 반대투쟁 취재 / 보릿고개 ‘절량節糧농가’ 르포 / 이종률 편집국장과 오소백 부국장 / 《민족일보》 기자들 / 민족주의자 조용수 사장 / 5·16쿠데타와 《민족일보》 / 군사정권의 희생양 ‘민족일보 사건’
4. 마지막 언론인 시절
공화당 선전부장으로 갈 뻔한 사연 / 승승장구 윤주영, 쫓겨난 방낙영 / 언론계 생활 10년을 마감하다
[4부] 사업·사회활동 시절(1965~현재)
1. 사업가의 길
한국공업 무역부장 / 베트남에서 한김상사 설립 / 동창생 이기수 경남지사의 날벼락
2. 독재 시절5
전두환 소설책 번역 후 유치장 신세 / 《한국전쟁의 기원》 번역 / 혁신계 인사들과의 인연 / ‘미스터 야당’과 ‘노상예배’의 추억
3. 가족 이야기
어머니 일대기 《장강일기》 / 아버지 묘소를 찾아서 / 정세영 회장과의 특별한 인연 / 광복회 / 독립유공자 포상제도 /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 창립 / 회고록 《임시정부의 품 안에서》 / 아내 김숙정 / 4남매 이야기
맺음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꿈꾼 나라,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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